83화 메테오
가면을 버려라.
처음 전하의 말을 들은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막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하얀 가면을 풀러 아래를 바라보니.
찰싹, 찰싹, 발끝으로 밀려오는 황자의 그림자가 그녀의 정신을 아득히 잠식했다.
자신의 것보다 한참이나 깊은 어둠, 사이를 부유하는 세밀한 빛 덩이들.
밤하늘이 파도와 같이 밀려와 그녀의 발끝을 적셨고.
떠돌아다니는 빛무리가 그녀에게 속삭이듯.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황자의 명을 되풀이했다.
그녀가 막 가면을 던지려다 문득.
정수리가 따끔거려 앞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황자의 눈길.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저었고.
그제야 솔이 정신을 차렸다.
“허억.”
지금껏 그림자에 빠져 숨도 쉬지 못했던 듯 깊이 들어오는 공기가 싸늘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곳곳에서 자신의 가면을 던지다 못해 몸을 내던지는 자들이 보였다.
몇몇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숨이 막히는지 꺽꺽거리며 목줄을 움켜쥐었다.
홍련의 군세와 황자의 다른 일행들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한 발짝 물러설 정도.
알 수 없는 광기의 현장.
그러나 솔은 물러서지 않았다.
괴상하고 음침한 광경이 두렵지 않았다.
알지 않는가, 황자가 본래 이런 사람임을.
아니, 오히려 익숙했다.
평소 황자에게 느껴졌던 깊은 그림자.
자신의 상위 종, 포식자의 기운을 느껴왔다.
그저 더 강해졌을 뿐.
오히려 자신을 불러 주었으면 했다.
깊은 그림자 속으로.
죽더라도 파묻히리라.
왜 자신은 가면을 버리지 못하게 하였는가.
이제는 황자의 그림자에 몸을 던지는 제사장들이 부러웠다.
자신 또한 안에서 영면을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 비루한 능력이나마 전하의 일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새끼손톱이라도 좋아.
안드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왠지 섭섭해 눈물이 어렸다.
자신도 죽게 해 주었으면,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해 주셨으면 싶었다.
서러웠다.
그녀가 속에서 밀려오는 괴이한 서러움을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할 때.
“아직 가면을 버리지 않은 자여. 내가 허락했으니 가면을 쓰고 나아오라.”
전하께서 부르셨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간의 서러움이 싹 가셨다.
드디어 죽게 해 주시려나 보다.
가면을 뒤집어쓴 그녀의 숨결이 뜨거웠다.
가면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가 눈과 입술을 달구며 머리를 잠식했다.
나아가 바치자.
생명을, 그림자를.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눈은 오직 전하를 담았다.
귀하신 분.
다른 마법사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던 자신을 여기까지 불러 주신 분.
앞에 있는 황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도 마법사단 건물에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청소 도구를 든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여 검을 휘두른 모습을 기억했다.
북부의 겨울, 위태로운 자리에 머물면서도 이 부족한 사람은 살라고 뒤로 물리신 것을 안다.
매번 퉁명스럽게 놀리는 와중에도 지켜 주신 것을 안다.
한없이 믿었다.
그렇기에 그림자에 빠지지 않았고.
앞에 도착한 순간.
“솔, 그대가 나의 첫 제사장이라.”
황자의 말이 벽력처럼 울렸다.
그의 목소리로 빚어낸 자신의 이름이 낯설었다.
머릿속에 빠지직 벼락이 치듯 무언가 깨지는 감각이 개운했다.
방금까진 죽고 싶었다면.
전하의 말을 들은 순간.
솔이라는 자아가 첫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깊이 속에 새긴 순간.
강렬히 염원했다.
평생토록 첫 제사장으로서 전하를 섬기고 싶다고.
제단을 지키겠노라고.
그저 3전투 마법사단의 말단, 청소 도구라 불렸던.
황자에겐 가로등이라 놀림받았던 솔이 제 진정한 능력을 깨달았고.
그녀의 몸에서 어둑한 그림자와 빛이 동시에 흘러나오니.
“첫 번째 제사장 솔. 제단의 주인을 뵙나이다.”
강렬한 힘을 품었으나 주인 앞에선 한없이 겸손하였다.
주변 믿음이 없어 익사한 시체들 사이.
홀로 뿜어내는 흑백의 대비.
같은 마법사인 살라스도, 등대지기와 하란도 그녀의 빛과 그림자를 보며 놀랐다.
살라스는 갑자기 깨우친 그녀의 마법적 성장이 놀라웠다.
“써클의 개화? 아니. 저건 깨달음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거야.”
“자신만의 빛을 얻었네요. 새로운 길잡이며 등대지기가 되었어요.”
“빛이 참 순결하며 밝구나. 내가 본 빛 중 제일이야.”
등대지기와 하란은 그들이 만난 어떤 등대지기나 길잡이보다도 밝은 빛을 뿜어내는 그녀의 밝기에 놀랐다.
그런 그녀를 보며.
“좋다. 첫 제사장은 제단 예식을 준비하라. 염료를 수확해야겠으니.”
“네.”
황자가 태연히 명을 내렸고.
그녀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자의 그림자 속, 둥둥 떠다니는 시체와 가면들.
그중에서 너저분한 시체는 치우고 가면들을 자리에 띄워 올렸다.
안을 그림자로 채우니.
영림에서 보았던 백면귀들이 이 높은 곳까지 찾아온 듯 보였다.
허나 모두가 그녀의 통제하에 있으니 그때처럼 달려들지 못했다.
분명 배운 적이 없음에도 스멀스멀 본능적으로 가면을 쓴 귀신들을 움직였다.
아니, 지난 두 번째 성에서 배웠다.
건국제가 알려 준 마법.
그때는 그것이 마법 술식인 줄 알았는데.
지금을 위함이었구나.
기세를 탄 그녀가 너풀너풀 손을 휘둘렀고.
그녀의 손짓을 따라 가면과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그림자는 더욱 까맣게, 가면은 더욱 하얗게.
뒤섞이는 와중에도 서로의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그렇게 흑백이 주변을 휘돌기 시작.
가운데 선 황자는 고고한 자태 그대로 첫 제사장의 제사를 지켜보았고.
첫 제사장 솔은 앞에서 춤을 추며 의식을 치렀다.
둥, 둥, 둥, 둥.
어디선가 북소리가 울렸다.
황자의 심장 소리였다.
화르르륵, 지붕을 덮은 붉은 불꽃이 타오르며 장단을 맞추었다.
고조되는 분위기와 흩어지는 땀방울, 고속으로 도는 가면들과 그림자들.
귀신들의 무도회 속 깔깔거리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제사장 솔이 그 중심에서 모두를 지휘하길 꽤 오래.
마나를 뿜어내어 마법진을 짜 올림과 동시에.
홍, 백, 흑이 서로의 존재감을 유지한 채 마구 뒤섞였고.
푸화하하학!
붉은 염료가 폭죽처럼 솟아올랐다.
* * *
황자가 지나간 골목골목.
모두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선 불안한 눈빛으로 제단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걸까.
족장인 이엘과 함께 걸어간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방금까지의 소란을 기억했다.
분명 제단의 흑색 깃발과 홍련의 붉은 깃발이 충돌했고.
반역이 일어났음을 알아챘다.
허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저 슬픈 눈으로 기울어가는 홍련의 풍경을 바라만 볼 때.
갑작스레 몰아친 붉은 밤.
눈을 감으라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뜨자.
모든 일이 한낮의 꿈이었던 것처럼 끝나 있었다.
이후에는 불과 광기의 향연이었다.
무사한 이엘을 본 그들이 모두 안도했고.
황자의 상서로운 백금발과 주변을 사르는 불을 보곤 감탄했다.
타오르나 죽이지 않는 불이라니.
붉은색을 숭상하는 그들에겐 황자의 적염은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
검은 제단에 붉은 불이 걸어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염료가 화산이 터지듯 솟아올랐다.
“아아. 아아아!”
“어떻게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염료야! 염료가 하늘에서 내린다!”
“다들 나와! 나와 보라고!”
펼쳐진 축복에 홍련 부족이 감격했다.
먼 과거, 전설에 따르면 한때는 붉은 염료가 하늘에서 눈처럼 내렸다던 기록이 있었다.
풍요했던 시절을 표현할 길이 없어 적어 놓은 선조들의 수식어 또는 과장이라 생각했는데.
“홍설이다!”
“홍설이야!”
홍련의 섬에 홍설(紅雪)이 내렸다.
소복소복 쌓이는 염료가 그들의 옷과 집을 물들였고 모두가 생생히 살아났다.
황자의 불이 더욱 벌건 빛을 머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모두 아름다웠다.
그렇게 얼마나 쏟아졌을까.
정신을 차린 이들이 재빨리 집에서 양동이를 가져와 염료를 받기 시작.
기뻐하는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이를 바라보는.
“아, 아아. 이건. 어쩜 이렇게.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홍련의 주인 이엘이 감격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온통 붉은색이 가득했다.
빛바래 가는 홍련이 안타까워 지샌 밤이 얼마던가.
그런데 지금 보이는 풍경은 어둑한 밤을 도화지 삼아 그려 왔던 홍련의 부흥 아니던가!
그녀가 다급히 제단 밖으로 향했고.
“족장이시어!”
“어디 가시나이까!”
“다들 따라가라! 따라가!”
덩달아 붉은 염료가 쏟아지는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무사들이 정신을 차리곤 급히 족장을 따랐다.
그녀가 충성심 깊은 그들에게 잡힐까 붉은 궁장을 휘감아 올리며 다급히 달려 나갔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이엘이 휘청일 때마다 궁장 소매가 펄럭였다.
그 걸음이 나비의 날갯짓 같이 작은 소란을 동반했다.
얇은 발바닥 살과 단단한 제단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길 잠깐.
사박, 그녀의 뽀얀 발이 어느새 쌓인 염료 위를 밟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밟을 때마다 발자국이 새겨졌다.
새침하게 드러난 종아리와 발이 창백하게 보일 정도의 붉은색.
그녀가 손 가득 들었던 궁장 자락을 툭 던지듯 놓으니.
풀썩, 염료가 바람을 타고 후욱 피어올랐다.
그 사이에 선 이엘의 눈가가 붉었다.
몰려오던 무사들이 주변에 늘어섰고.
잠시 고개를 들어 염료를 함빡 맞던 홍련의 주인이.
“아름답네요.”
홍조 가득한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가득 내리는 홍설, 되살아난 홍련을 배경으로 그들의 주인이 짓는 열기와 생명을 품은 미소가 포근하여 무사들이 넋을 놓았다.
아름다웠다.
검은 머리 위로 소복이 쌓이는 붉은 염료와 이를 뒤집어쓴 이엘의 자태가 귀했다.
그렇게 첫 제사장 솔은 계속 춤을 추었고.
염료는 홍련을 덮어 갔다.
아니 덮다 못해 쌓였다.
모두가 기뻐했다.
이엘부터 자리에 있던 무사들과 병사들, 섬에 사는 거주민들까지 전부.
다들 춤을 추고 염료를 서로에게 던지며 축복했다.
축제와도 같은 현장.
이엘이 평생 남을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다 이마를 짚었다.
“아아, 너무 감동했나 봐. 머리가 어지럽네요.”
“기대시겠나이까.”
“아냐. 괜찮아. 이제 누군가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저는 족장님의 심복입니다.”
무사의 의아함과 섭섭함이 뒤섞인 표정에 이엘이 고개를 저었다.
사르르륵 찰랑이는 검은 머리가 비단결 같아 다시금 시선을 빨아들였다.
이엘이 한결 단단해진 눈빛으로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심복이니까 이제 나한테 기대요. 황자를 보며 알았어요. 이끄는 자란 저런 거구나. 누군가에게 기대고 선의에 기대고 희생에 기대지 않는구나. 이겨내는구나. 악착같이 발걸음이 무거워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니까.”
자신의 가녀린 어깨를 팡팡 두들긴 그녀가 뒤에 늘어선 군세를 향해 다짐하듯 명했다.
“다들 언제든지 기대요. 이래 봬도 꽤 튼튼하니까!”
“그럼 저도 머리 좀 기대겠습니다.”
“저도 기대도 되겠습니까?”
“다들 기대랍신다!”
“아니! 진짜 기대지 말고! 무겁잖아! 머리 무겁다고 다들!”
그들이 서로 장난치며 웃는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정말 치대는 머리가 무거웠던 것일까.
이엘이 휘청였고 무사들이 놀라 그녀를 잡았다.
“어? 진짜 어지러운가?”
“저도 어지러운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기울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를 잡은 그들이 고개를 갸웃할 때.
맑은 웃음이 안에서부터 울려 나왔다.
황자의 목소리.
광기와 피 가득했던 모습과 다르게 웃음이 참 순수하구나 이엘이 그리 생각할 때.
“전하께서 웃으신다! 꽉 잡아!”
“뭐, 뭐야. 이번엔 또 뭐야! 이 미친 새끼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그를 잘 아는 안드레가 경고했고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살라스는 절규하듯 볼을 감쌌다.
뭔가… 뭔가 또 벌어지고 있다!
그때.
예민한 바이올렛이 저 먼 지평선을 침착하게 가리키며 물었다.
“어, 알프레드? 저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아니죠?”
“으음. 저 또한 기울어져 보이네요.”
알프레드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소란을 떨던 안드레와 살라스 또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 설마 모두의 눈에?”
이엘과 무사들 또한 같은 풍경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모두가 잘못되었거나-.”
살라스의 중얼거림을.
“사실이거나.”
황자가 받았다.
그의 얼굴에 피어난 짓궂은 미소에 모두가 눈을 꿈뻑이는 중.
그가 다시 지평선을 가리켰고.
방금 보다 더 기울어진 풍경을 보고 홍조가 돌았던 얼굴들이 창백해졌다.
방금까지 홍련의 섬 바깥, 꾸물거리는 먹구름과 직선으로 솟아오르는 검은 비가 가득했다면.
지금은 45도 가량 기울어진 모습.
“섬이 뒤집힌다?”
“뒤집힌다!”
설마설마했던 최악의 상황에.
모두가 패닉에 빠진 채 놀라 소리쳤고.
황자의 웃음만이 사실을 긍정했다.
점점 기울어지는 풍경과 함께.
끼이이이익, 불안한 소리가 주변을 가득 울렸다.
이윽고.
풍경이 직각에 이르렀다.
섬의 반은 구름 위, 반은 구름 아래.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이 지평선 끝에 걸린 구름들이 찢어지며 이지러졌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반절 너머 찬란한 볕이 부스러졌다.
뒤섞이는 검은 비와 염료, 볕과 구름이 모두의 정신을 산란시켰다.
“끼야아아악!”
“뒤집어진다! 꽉 잡아!”
“다들 집! 집으로 들어가!”
“집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소용인데! 섬이 뒤집히는데!”
멀리서 보기엔 희극, 가까이서 보니 비극이라.
멀리 비치는 풍경은 분명 아름다웠으나.
정작 직각에서 멈춰 선 섬 위에 사는 사람들의 공포는 정점을 찍었다.
끼이이익.
불길한 소리가 끊기더니 우뚝 솟은 섬이 잠시간 그대로 멈추었다.
사람들 또한 일제히 멈추었다.
심지어 숨까지 멈춘 자들도 있었다.
그대로, 그대로 멈춰라.
기울어진 섬과 사람들의 공포와 염원이 정점에 치달았고.
모두가 숨도 못 쉬고 눈동자만을 굴릴 때.
“가장 커다란 파도가 몰려들기 전의 침묵이 가장 즐거운 법이지.”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황자가 홀로 떠들더니 마구 광소를 터뜨렸다.
그제야 그의 웃음이 맑은 이유를 알았다.
미쳤구나.
미친 자가 가장 순수하다더니.
지금 웃음이 바로 그렇구나!
웃음 속 다른 감정 하나 없이 그저 즐거움만이 가득하니.
처음 느껴보는 순도 높은 광기에 감탄할 새도 없이.
쿵!
그가 발을 굴렀고.
“이 미친 새끼야아아아아-!”
살라스의 고함을 시작으로.
끼이이이익, 다시 기울어지기 시작한 섬이 그대로 뒤집혔다.
푸화하! 터지는 구름과 검은 비가 분무처럼 비산했고, 그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홍련을 축복하듯 들이닥쳤다.
첫 제사장 솔이 뿜어낸 붉은 염료가 일시에 폭발하여 하늘을 부유하니.
붉은 분진이 몰아치는 검은 구름과 빗방울들, 햇볕을 막아 주었다.
거대한 소음에 모두의 외침이 묻히는 와중.
“길잡이! 등대지기 항로를 설정해라!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황자의 날카로운 고함이 분진과 구름, 이글거리는 태양을 가르며 울리니.
어디로 말입니까!
어디로요!
서로를 부둥켜안은 둘의 물음에.
“땅으로! 사막으로! 성들의 중앙으로!”
황자가 활짝 팔을 펼치며 모두를 굽어보았다.
“흑해 위로! 홍련의 섬 모두를 실어라! 빛은 충분하다!”
그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외치자.
하늘 위 가득한 쨍한 볕이 그가 뿜어낸 빛과 뒤섞여 노란색을 가득 품었다.
곧 샛노란 광염이 홍련의 섬 전체를 감싸안았고.
등대지기와 하란이 재빨리 황자가 말한 대로 땅 위, 3, 4, 5, 6번째 성이 이룬 사각형 가운데로 항로를 설정하자.
붉은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불과 빛을 한데 두른 홍련의 섬이.
서서히 먹구름 속으로 가라앉았다.
살라스가 점점 새까매지는 풍경을 보며.
“메테오 스트라이크?”
문득 화 속성 마법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의 의문을 들은 황자가 입술을 뒤틀며 형의 부족함을 비웃으니.
“마법 나부랭이와 비교가 될까.”
신비로 이룬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흑해 한가운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