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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85화 (85/200)

85화 오색 빛줄기

[제단의 운명 분리, 추출을 이용하여 세 번째 심장 광염의 분리 및 추출이 가능해졌습니다]

[제단에 개변 점수를 투자합니다! 운명 분리에 새로운 속성 회전을 더 합니다! 분리와 추출의 위력이 더욱 거세집니다]

시위를 당기는 중에도 떠오르는 운명들이 점점 고조되었다.

흑해가 끓어오르듯 점차 상승하는 운명들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으니.

검은 기름이 끓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마유가 부글부글 역한 냄새를 뿜어내며 몸을 뒤틀었다.

불이 번지기 좋은 온도.

두 번의 파도.

세 번째 파도가 도착하기 전.

[솔의 주요 운명 별빛 제사장과 신비 빛, 그림자를 더합니다! 제단의 분리와 추출 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홍련족의 운명 월래, 춤, 의식을 더 하여 제단의 운명들을 강화합니다!]

마침내 제단과 홍련의 섬이 임계점을 돌파.

시위를 끝까지 당기며 반대로 손목을 비틀자.

툭, 투툭.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치미는 고통을 억누르며 오히려 입술을 쭉 찢어 웃었다.

고통은 즐거움, 즐거움은 광기, 광기는 나의 원동력이며 힘이자 근간.

광폭한 폭군은 본래 제대로 두는 것이 없는 법.

본디 추웠어야 할 북부를 따뜻하게 만들었고.

본래 까맣게 물들었어야 할 서부를 새로운 색으로 채우고자 하니.

-광염, 세 번째 심장의 안에는 무수한 색이 잠들어 있다. 후손이여 제단은 본래 색을 나누는 것. 그러니 가능할 것이다. 네가 하려는 일.

건국제가 내 계획을 듣고 감탄했다.

-흑해를 끓여 발화점에 이르게 만들고 광염을 나누어 오색 비를 다시 내린다? 그리하여 마유에 오색 불을 붙이겠다고?

크하하하하하하! 미친놈이로구나! 미친놈이야!

두 번째 성에서 본 하늘, 별빛으로 이루어진 건국제가 신나게 웃어 젖히곤.

-그래, 그래야 내 후손답지. 드디어 후손다운 후손을 보는구나.

극찬을 남겼다.

흑해를 끓여 증발시키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며 오색 불을 내린다 해도 흑해가 멀쩡하면 정화가 어렵다.

결국은 두 결과가 맞물려야 운명이 뒤틀릴 것.

오래전, 서부 멸망 보고서를 읽으며 떠올린 가정.

만일 오색 부족이 살아 있었고, 그들의 염료가 충분했다면 흑해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네 부족의 멸망이 수상했고.

끝내 버텨 온 홍련이 맞이한 최후가 수상했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검은 빗줄기도.

“홍련의 섬, 현재는 흑해의 눈이라 불린다. 마유의 근원이자. 어둠을 뿜어내는 원흉이다.”

전생에 홍련의 섬은 하늘에서 마유를 펑펑 쏟아 내는 재해의 원흉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검은 눈, 천공이라 부르며 하늘이 뚫렸다 두려워했다.

물론 나중에 사용법이 밝혀지고 나서는 하늘의 돈구멍이라 불렀지만.

여러모로 심상치 않았던 과정과 결과.

당시엔 그저 정보부의 보고서와 살아남은 목격자들이 남긴 목격담이 전부.

홍련의 주인이자 황후였던 이엘에게 묻고자 했으나.

홍련, 서부란 단어만 나오면 그녀는 눈물을 쏟았다.

“미안, 미안해요. 미안. 미안해 모두.”

하염없는 사과와 함께.

제 목숨을 끊는 순간까지도 사과했던 대상은 누구일까.

어떻게 그녀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홀로 생명을 부지했던 걸까.

아니 내가 만난 현생의 이엘은 부족의 멸망을 외면한 채 홀로 뻔뻔히 살아남을 이가 아니었다.

문득.

몰려드는 빛, 찢어지는 근육, 몰아치는 광기 속에서.

이엘을 바라보니.

그녀를 감싼 서글픈 운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폭풍에 휩쓸리는 꽃잎과도 같이 흔들리는 붉은 궁장처럼 뒤바뀌는 운명이 이지러졌다.

그 와중 뒤늦게 드러나는 새로운 운명들마저 비극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패악과 광기, 잔혹이 가득했다면 그녀에겐 슬픔과 비련이 가득하구나.

내 시선과 웃음을 느낀 이엘이 눈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저러면 응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때 그중 가장 깊은 곳.

처음 보았을 땐 보이지 않았던 가장 깊은 운명이 드러났고.

[운명 악마의 매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대상의 운명이 뒤틀립니다]

[운명 악마의 제사장을 발견했습니다. 대상의 운명이 옅어집니다]

[운명 피로 얼룩진 복수, 무한한 죄책감, 자결을 포식합니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드디어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서부의 고의적인 멸망, 그 속에서 살아남은 홍련의 후예, 마유의 근원지가 되어 버린 홍련의 섬.

폭군이 이엘을 황후로 삼은 이유, 그녀가 죄책감을 못 이기고 자살한 이유.

폭군이 일어나지 못하고 내가 대역을 하게 된 것과.

악마의 힘을 빌려 황제가 되었던 폭군의 운명까지.

과거 고아원에서 보았던 운명.

[중요 운명 악마에 의한 찬탈을 거절했습니다. 중요 운명을 조금 포식했습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폭군은 악마의 힘을 빌려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중요 운명 악마에 의한 황권 강화를 거부합니다. 관련 운명들 계승, 악마 숭배자, 악의, 패륜 관련 운명 전부를 뒤틉니다. 당신이 얻었어야 할 힘들이 의미를 잃고 스러집니다]

본래 거두었어야 할 악마의 힘이 덧없이 사라져 갔다.

어쩌면 전생에 그녀는 망해 버린 홍련의 복수를 위해.

폭군에게 악마의 힘을 빌어 주는 제사장이 되었나 보다.

복수를 이루고도 악마를 섬겨야 하는 자신의 삶이 끔찍하고 죽어간 이들에게 미안해 그런 결말을 택했나 보다.

언젠간 폭군이 취했을 힘들이 아쉬울까?

전혀.

“이 개새끼들이.”

오히려 잘됐다.

폭군은 본래 남에게 의지하는 자가 아니다.

공포로 군림해야 진짜 폭군.

악마의 힘을 빌어 자리를 차지한 자가 어찌 폭군이라 불릴까.

그건 그저 꼭두각시일 뿐.

꾸드드득.

홍련의 회전 방향과 반대로 시위를 꼬았다.

분리와 추출을 위한 준비.

저 멀리 높게 일어나기 시작한 세 번째 해일 속.

부글부글 끓는 마유를 견디지 못한 악마들이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두칠성의 운명과 광염이 모여 운명 가장 밝은 별, 폴라리스를 이루었습니다]

드디어 가장 밝은 빛을 손에 쥐니.

이제 끝낼 시간이다.

몸 안 가득했던 광염과 몰려든 별빛들을 모조리 모아 쏘아 내었고.

마지막 홍련의 회전과 쏘아 낸 빛살이 맞물려.

철커억.

여덟 번째 열쇠 폴라리스가 열리니.

-오색이 모여 하나가 되면 여덟 번째 열쇠, 서극성 폴라리스가 열린다.

-난 그걸 부수어 오색을 흩뿌릴 것이고요.

-그래, 본래 선조가 만든 것을 부수는 것이 후손의 미덕이지.

-근데 다른 새끼들은 너무 심했어요. 개새끼들. 어떻게 이 따위로 모든 걸 망쳐 놓았는지. 제국 전역을.

내 험한 불평에.

-다른 이들이 모두 망쳤어도 이리 나서서 새롭게 만들어 주는 후손이 있지 않으냐. 그거면 되었지.

건국제는 나를 별빛으로 비추며 웃었더랬다.

자신의 의도와 노고가 무너진 것은 상관없다며 다만 이를 새롭게 가꾸어 나갈 후손이 하나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며.

-후손아. 잊지 마라 지금은 너희들의 시대다. 만일 내 뜻이 너희의 삶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부수고 치워라. 그게 후손의 권리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뭘 새삼스레. 그래도 걱정 마십쇼. 내 제국은 살려 드릴게.

아스라이 퍼지듯 기억 속에 남았던 건국제의 웃음처럼 하늘 끝까지 치달은 빛살이 완전히 해방되었고.

다섯 부족 중 네 부족이 멸망했음에도 먼 옛날과 같이 오색 빛방울들이 먹구름 위를 가득 메웠다.

“내려라.”

간절히 검은 구정물을 씻어 줄 비를 바라니.

처음 오색 빛이 닿은 곳은 먹구름.

점차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구름들의 색이 변하였다.

염료를 함빡 머금듯.

검은 구름들이 악의를 잃고선 서서히 오색으로 물들어 갔고.

이내 검은 구름에서 오색 찬란한 구름으로 바뀌더니.

툭, 투툭, 투투투투투툭!

한둘씩 떨어지던 오색이 이윽고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흑, 백, 청, 황, 홍 다섯 빛줄기가 시야에 그득했다.

이전 내리던 빗줄기가 검은색 일색으로 모두를 질척하게 물들였다면.

지금은 타오르는 오색 빛줄기가 되어 모두를 씻어 내리니.

곧 오색 폭우가 흑해를 덮었고.

달궈진 흑해가 이를 따라 오색으로 타올랐다.

“정화할 시간이다.”

내 당당한 선언에.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화려하게 타오르는 검은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멸망하는 악의와 악마들의 비명이 겹쳐 울리는 가운데.

[장소의 운명 학살이 도래합니다. 본래 운명이 닿았어야 할 대상을 비틀어 바다에 담긴 모든 것을 사릅니다!]

드디어 쌓아 왔던 학살의 운명이 악마들을 덮쳤다.

원래라면 모래성과 바위성 서부에 존재하는 모든 이를 멸했을 운명이.

지금은 악마들을 휩쓰니.

놈들의 죽음이 기꺼워 즐겁게 웃었다.

본래 사람들의 비명을 먹고 크는 악마들이 지금은 저 스스로 비명을 지르며 불꽃에 잡아먹히고 있다.

광염에서 갈라져 나온 다섯 갈래의 빛줄기가 세상을 메우듯 쏟아졌고.

흑해가 오색으로 물들어 가자.

서부의 섬들이 생명을 얻었고.

[거대한 운명을 파악합니다. 운명 포식자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행동의 결과만을 전달받습니다]

지금 이 순간, 거대한 운명 하나가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무언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오색 비가 내리고 흑해가 정화되는 것을 넘어선 무엇.

세상의 변화.

흔히 주술사들이 입에 담는다는 천기가 이러할까.

열쇠 따위로 하늘을 여는 것이 아닌.

거대한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길 잠깐.

[당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제국의 운명 멸망 중 일부가 뒤틀립니다. 이를 포식하여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거대한 운명의 변화로 당신의 운명 패악, 광기, 죽음, 잔혹, 쇄락-]

세상의 운명이 변하였고.

그중 일부인 나의 운명도 덩달아 변하니.

눈앞에 떠오른 가득한 운명의 변화와 포식 알람 속.

“웃기지 마라. 내가 너를 변화시켰고. 내가 세상의 주인이니. 언젠간 너의 운명 또한 내 아래 둘 것이다. 내 운명이 더 크다.”

당당히 읊조렸다.

세상의 운명보다 내가 더 큰 운명을 지녔다고.

언젠간 그리 만들 것이라고.

그리하여 전생에 만났던 모든 결과를 비틀겠다 그리 결심했다.

결심을 축복하듯 빛줄기 쏟아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 * *

세상이 오색으로 변하였다.

흑색 일색이던, 아니 전에는 쨍한 햇빛만이 가득했던 사막에.

찬란한 오색 바다가 흘렀다.

오색 바다 위 떠오른 일곱 개의 별빛 섬과 하나의 붉은 섬.

해무가 떠돌 듯 홍련의 섬을 감싼 붉은 염료와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오색의 빛줄기.

이엘이 손을 뻗어 이를 어루만지니.

찰랑찰랑 고이는 오색의 빛이 상서로워 얼굴을 씻자.

지금껏 머릿속에 가득했던 불안과 고민이 일시에 씻겨 내려갔다.

그녀가 혹시나 싶어 손에 고인 오색 빛을 마셔 보려 할 때.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종일 웃기만 할 테니까. 정신 빠진 사람처럼.”

아르한의 경고가 울렸고.

막 입을 벌려 꿀떡꿀떡 쏟아지는 비를 삼키던 안드레가.

“허헣, 허허허헣, 허허허헣. 전하 미리 좀 허허허헣. 말씀 좀 허허허허허. 해 주시죠. 우하하하하!”

갑자기 대폭소를 하기 시작.

그의 조심스러움 없음을 탓하듯 혀를 쯧쯧 찬 황자가 알프레드에게 눈짓했고.

알프레드가 조용히 뒤로 다가가 안드레의 뒷목을 눌러 기절시켰다.

기절하고서도 흐흐흫, 흐흐흐흐흫 허옇게 까뒤집은 눈으로 웃는 꼴이 기괴했다.

황자와 일행들이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젓는 사이.

“그럼 이제 홍련은 어찌 되는 건가요?”

이엘이 궁금해 물었다.

사실 이것 외에도 궁금한 게 한가득이었다.

방금 황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지었던 표정과 했던 말의 의미.

어떻게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움직였는지까지.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 이런 멍청한 질문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실망스러울 정도.

그런 이엘을 보며 황자가.

“그걸 나에게 물어보는 건가?”

오히려 되묻고는.

“봐라. 주변을, 사람들을, 상황을 이제 홍련의 후예 네가 이끌어 갈 서부다.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네?”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아니 그전에요.”

“…….”

되풀이되는 물음에 황자가 신경질 어린 표정으로 살랑이는 백금발을 쓸어 넘기니.

그의 손짓을 따라 흐르는 오색 빛물과 훤히 드러난 황자의 곧은 콧날이 아름다웠다.

문득 생각했다.

저렇게 신경질적인 표정마저 아름다운 건 반칙 아닐까.

그녀가 잠시 홀린 듯 황자를 마주 보자.

“멍청한 표정 짓지 말고.”

“멍청한?”

“그래. 멍청한 홍련의 후예. 대체 질문다운 질문을 해야지 원.”

그가 그녀를 타박했으나 이엘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처음 바락바락 맞섰던 처음과 달라진 모습에.

“네가 이끌어 갈 서부라 하였다.”

황자가 김빠진 얼굴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고.

확답을 받은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역시 황자는 약자를 억압하는 자가 아니구나.

이런 사람이라면 서부뿐만 아니라 모두의 미래를 맡겨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평생 후회할 때도 있겠죠?”

“무수히 많지.”

“오래 산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어려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내가 좀 똑똑하거든. 멍청한 누구랑 다르게.”

“으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아주 맞는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요. 똑똑하신 전하. 제가 한순간 기분에 휩쓸려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는데 후회할까요? 평생 이 순간을?”

그녀의 물음에 문득 황자의 진홍색 눈동자에 묘한 감정이 어렸다.

오히려 이엘이 놀랐다.

그저 가볍게 던진 말이건만 그의 눈에 어린 감정들이 너무 진득하고 무거워서.

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자신을 마주한 순간에도 보았던 감정의 조각들.

그러나 읽어 보려 해도 너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해석이 불가했다.

짧은 사이 감정을 정리한 황자가.

“믿어라. 순간의 격정을. 네가 본 사실들을. 고민한다고 하여 변하지 않음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단번에 해답을 내려 주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똑똑한 사람인가 보다.

오랜 시간 고민했으나 홍련을 구할 수 없었다.

그저 괴로움만 늘어났지.

그리하여.

“답이 되었어요, 현명하신 전하.”

그녀가 황자의 조언을 받들어.

“모두를 부르세요. 모든 홍련은 들어라!”

이엘이 홍련의 주인으로서 부족의 운명을 정했다.

그녀의 외침에 주변 가득한 무사들과 지금까지도 쏟아지는 오색 빛줄기가 선사하는 신비로움에 압도되어 있던 자들이 홀린 듯 그쪽을 바라보았고.

“이제부터 홍련은! 여기 계신 황가의-.”

그녀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구르자.

“열한 번째 황자 아르한 전하이십니다.”

어느새 다가온 알프레드가 복화술로 정체를 알려 주고 나서야.

“열한 번째 황자이신 아르한 전하이자 홍련과 서두칠성! 사막과 서부의 구원자를 섬길 테니 모두 예를 취하세요! 우리 홍련은 여기 계신 아르한 전하를 사막의 가장 밝은 별, 구원자 폴라리스로 삼아 끝없는 사막을 헤쳐 나갈 것이에요!”

그의 이름 뒤 업적을 칭송할 영광스러운 단어들을 주렁주렁 달아 외쳤다.

제 나름대로 덕지덕지 붙인 꾸밈말에 황자가 당당히 어깨를 폈다.

이 정도 칭송은 당연하다는 태도.

이엘을 시작으로 홍련의 섬 전체에 사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황자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북부에 이어 서부의 세력을 등에 업은 순간.

밝게 빛나는 별빛처럼 오만하며 귀한 황자는 뭐라 답할까.

그들의 섬김이 당연하다 할까.

물론 제국에 충성함이 당연하나 홍련이 황자를 섬기겠다 선언한 건 다른 이야기.

그런 그들에게 황자는.

“제국의 황자이자 서두칠성의 주인, 홍련의 은인이자, 사막의 가장 밝은 별, 서부의 구원자로서 말하니. 너희 홍련이 서부의 주인이 될 것을 허하노라. 그러니 당연히 날 섬기며 따르도록.”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약속했고.

붉은 염료와 오색 비가 그들의 미래를 축복했다.

황후의 계략이 다시 한번 황자의 힘이 된 순간이었다.

지지 세력 하나 없이 광인이라 불리던 황자가 북부에 이어 서부까지 등에 업은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그를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음이 자명하니.

이 소식이 들어가면 제국 전체가 다시금 술렁이리라.

벌써부터 황자의 눈앞에 떠오르는 귀족들의 계략과 너저분한 운명들이 시끄러웠다.

그러나 황자의 입가엔 밝은 미소만이 자리했다.

그가 오랜만에 강철성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수도에 가득한 더러운 운명을 포식하기 위해.

그때.

“헉, 허억. 전하! 저 죽을 거 같은데 언제까지 춰야 하나요?”

아악!

지금껏 홀로 제사를 지내던 솔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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