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새로운 전장터
서부 사막은 엄밀히 보면 제국 경계선의 끝자락.
수도 페르마를 중심으로 먼 사막까지 이어지는 길.
수많은 영지와 영주가 존재했고 별 탈 없이 삶을 영위했다.
어느 날부터 저 먼 사막, 하늘에서 검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을 보기 전까지.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천재지변 정도로 생각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평생 본 적 없는 끝없는 검은 바다가 영지 앞에 펼쳐져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실제로 검은 폭우를 피해 사막에서부터 밀려온 몬스터들이 민가에 들이닥쳤고.
서부 전체에 폭발적으로 몬스터들의 숫자가 증가했다.
검은 비와 바다를 피해 온 놈들.
느닷없이 몰아친 피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급히 사방으로 서신을 띄웠고 황가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서부가 멸망 위기에 처했다!
북부가 맞이했던 위협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음에도 막아 내지 못했다.
이유 또한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공장을 짓느라 남는 집결지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하옵니다.”
“병사들을 전진 배치하면 되는 일, 보급로는? 분명 보급로를 확보해 두라 했을 텐데.”
“보급로는 충분하나 당장 식량이 부족하단 답입니다.”
“식량이 없다고? 어찌하여? 서부는 척박한 땅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광산 개발 등으로 모두 사용했다더군요.”
“북부와 남부에 요청한 보급품들은. 보급로는 넓게 뚫렸으니 금세 지원해 주겠지. 얼마나 걸리겠나.”
“아직 적게는 닷새, 길게는 열흘이 걸릴 것입니다.”
“…….”
어차피 외부의 침략 따위 없는 땅.
욕심 많은 이들이 로이스 가문의 득세와 북부의 변화를 보고는 욕심을 부렸고.
본래 군사적 요충지와 집결지 사용되었어야 할 장소들에 몰래 공장을 세우기 시작 남아나는 땅이 없었다.
그나마 몰래 자원을 수입하고 물건을 파느라 보급로는 잘 닦아 놓았으나.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노동력 착취로 영지 재원이 박살 나 민병대를 모으기도 벅찬 상태.
심지어.
“영주들이 운용하는 사병들은?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모아도 민병대보다 훨씬 나을 터. 어찌 되었는가 그들은.”
“그것이 대부분은 공장을 지키러 흩어진 상태이며 심지어는 고용했던 마법사들과 기사단을 해체한 영주까지 있다고 합니다.”
“허, 참.”
“이런 말도 안 되는.”
미련한 몇몇은 영지를 지킬 무력을 포기하고서라도 제 욕심을 채우려 했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시작한 영지 개발.
서부, 백작성 회의실 곳곳에서 탄식이 울렸다.
그중 가장 상석, 회색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긴 사내.
우람한 몸체와 푸른 눈빛이 사자와 같이 강렬하여 장내를 압도하는 자.
철사자, 데카론 아이로니아.
그가 이윽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모인 군사들은?”
그의 물음에 참모가 보고를 시작했고.
“기대의 반도 못 미치는군.”
그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불만스러운 듯 꿈틀거렸다.
황제의 명을 받고선 급히 달려온 지가 벌써 열흘.
서부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엉망이었고.
내부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에만도 벅찰 정도였다.
허나 묵묵히 기다렸다.
많은 병사가 필요치는 않았다.
“이번이 기회에요. 황자. 명심하세요. 반드시 서부를 정리하고 흑해를 안정화시켜요. 그러면 분명 황태자의 위를 내려 줄 터이니.”
어머니의 장담.
폐하 또한 분명 공을 세우는 자에게 합당한 상을 내리겠다 했다.
그리하여 기다렸다.
상황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검은 바다가 출렁이고 안에서 악마들이 튀어나온다는 소식에 내심 웃었다.
힘없는 자들이 위기에 처했으나.
그들의 위기야말로 자신의 계승권을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
그들의 희생으로 황태자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철사자 데카론은 냉혹한 자였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그저 슬퍼하는 척, 그들을 위하는 척 화를 내었으나.
정작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이권에 간섭했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뇌물과 충성 맹세를 즐길 뿐.
가뜩이나 몬스터들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영지민들의 등에 수탈과 착취라는 짐이 더해지니.
많은 이가 내뱉는 절망과는 별개로.
데카론은 황태자가 되면, 황제가 되면 누릴 막대한 권력과 부를 생각하며 내심 미소 지을 뿐.
그런 그의 희망과 꿈이 깨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느 날 갑작스레 그친 검은 비.
이어진 오색 폭우과 사막의 변화.
급변한 상황에 서둘러 준비를 끝마치고 진입하려 했으나.
“준비한 배들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습니다! 마법도 제대로 듣질 않습니다.”
이번엔 오색 바다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흑해를 대비하여 준비한 마법과 공학 장치들이 전혀 다른 성질의 오색해를 만나자 문제를 일으켰다.
마법사들을 쥐어짜 어떻게든 수단을 마련했을 즈음.
바다가 말랐다.
“이런 개 썅! 누굴 놀리는 거야? 지금!”
평소 황자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성격을 드러내지 않았던 데카론이 상스런 욕설을 뱉을 정도.
사실 가장 그의 마음을 불안케 했던 것은.
“어떻게 됐는지 상황 파악 먼저 해라. 당장.”
혹여 자신이 개입할 새도 없이 서부의 상황이 종료되었을까 봐.
공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만큼 화나는 게 없는 법.
남의 고통엔 무감각했던 심장이 자신의 것을 빼앗길 상황에 놓이자 요란히 방망이질 쳤다.
“상관없다. 아직 끝나지만 않았다면 들어가 깃발을 꽂으면 끝나는 일이다.”
내심 잔혹한 계획도 세워 두었다.
만일 아르한이나 살라스가 무언갈 하고 있다면 간단하다.
그들을 죽이고 공을 가로채면 그만.
사막은 넓고 보는 눈은 적으니.
모래 사이에 묻힌 진실을 알 자가 없으리라.
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묻어 버리면 될 뿐.
데카론이 막 군사들을 이끌고 사막으로 진입하려 할 때.
저 멀리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낮의 태양이 머무는 오후.
육안으로 보일 만큼 밝은 별똥별이라니.
무언가 심상치 않다.
데카론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불안감과 불쾌감을 억누르며 하늘을 가르는 별을 빤히 바라볼 때.
반짝반짝.
길게 이어지는 별의 꼬리 뒤로 흩뿌려지는 빛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다 감탄하는 자들 사이.
데카론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이상하다.
왜 저 빛무리가 살기를 뿜어내는가?
어째서 천벌을 내리려는 것처럼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가.
“다들 전투 준비.”
잔혹하고 냉혹한 성격만큼 실력을 갖춘 데카론이 하늘을 경계했고.
급히 마법사들이 실드를 펼쳐 그를 보호했다.
그리고 정말 그의 예감을 증명하듯.
“점점 커지는데?”
“공격이다!”
하늘 가득하던 빛무리가 순식간에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
모두가 공격에 대비해 방패를 들어 올릴 때.
“이런 빌어먹을.”
데카론이 무언갈 확신하곤 나지막이 욕을 짓씹었다.
지금 저 빛무리가 향하는 곳은 자신들이 아닌 바로.
“영지! 영지가 위험하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영지.
사태를 파악한 누군가의 외침에 각자 병력을 이끌던 서부 영주들이 혼비백산하며 뒤돌아 자신들의 터전을 바라보았고.
별똥별이 지나간 자리.
떨어지는 빛무리와 뒤섞인 불꽃들이 떨어져 내리는 풍경이 크게 떠진 동공에 가득 맺혔다.
곧.
귓가를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땅을 보며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 저기는 공장이 모여 있는 곳인데!”
“아, 안 돼. 어떻게 저길!”
“저, 전하! 돌아가야 합니다. 이대로는 진격을 할 수 없나이다!”
“여, 영지민들의 안위가!”
개소리다.
평소 영지민들이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던 이들이 이제 와 그들을 챙길 리가 있는가.
바로 별똥별에서 떨어진 폭격이 향한 장소가 바로 그들이 영혼을 끌어모아 세운 공장과 비자금을 모아 둔 창고, 심지어 영주성에 떨어지는 걸 보았기 때문.
심지어 데카론이 따로 권리를 양도받은 광산과 여러 사업체까지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외에도 숲 곳곳을 향하여 떨어지는 불과 빛들.
데카론이 서부와 영지를 번갈아 보길 잠시.
서부 영주들이 그런 황자의 눈치를 보며 몸을 움찔거리는 걸 확인하곤.
“말머리를 돌려라. 망할 땅보단 사람들이 사는 땅이 우선이니.”
결단을 내렸다.
사막의 급격한 변화부터 갑자기 나타난 별똥별까지.
자신의 행보를 막는 듯한 느낌.
수상했다.
아니, 불길한 예감에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서부에 일어난 변고를 해결했구나.
그렇다면 지금 가 봤자 허탕일 가능성이 크다.
중간에 끼어들어 공을 가로채는 것과 이뤄 놓은 공을 빼앗은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챠라리.
“나는 얼굴 모르는 서부 사막보다 그대들의 영지를 구하겠다. 따르라. 돌아가자.”
힘없는 사막보다 욕심 많은 영주들을 제 수족으로 삼는 것이 훨씬 이득이리라.
손익 계산을 끝낸 그가 말머리를 돌렸고.
영주들이 기뻐하며 그를 따랐다.
데카론이 그들을 끌고 가며 넌지시.
“감히 우리들의 터전을 건드린 이가 누구인지 찾아 벌해야겠으니. 영주들은 돌아가는 즉시 병사들과 기사들, 마법사들을 모집해라. 얼마 지나지 않아 필요할 것이다.”
그들에게 병력을 규합하라는 명령을 내리니.
영주들이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곤 고개를 끄덕였고.
데카론의 스산한 살기가 감도는 사자와 같은 눈이 저 먼 자리, 강철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번뜩였다.
* * *
사막을 넘어 서부 영지 위를 지나가는 순간.
[장소의 운명 탐욕, 이기심, 착취, 비자금을 확인하였습니다!]
[장소의 운명 불법, 군자금, 수탈, 탈세가 어른거립니다]
[장소의 운명 사기, 거짓, 탈세, 범죄가 고여 있습니다]
여러 운명이 가득 떠올랐다.
이를 어찌 그냥 지나칠까.
바로 활을 꺼내 들어 보이는 운명들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모여드는 광염과 적염.
이후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진 살들이 구질구질한 운명들을 분쇄하고 터뜨렸다.
문득.
“욕심 많은 놈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못 보니 아쉽군.”
저 아래 우리를 바라보는 영주들의 표정을 보려니 절로 즐거움이 치밀었다.
직접 놈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 내고 싶었으나.
자신이 누구에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건 축복이지 않은가.
지금은 놈들이 몰래 키워 온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조만간 보자고.”
내가 그들을 벌할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사이.
“저기, 데카론 아니냐.”
살라스의 물음에 탐욕스러운 자들 사이 홀로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큰형님을 바라보았다.
순간 살기가 강하게 치밀었다.
[대상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대상의 운명이 너무 거대하여 당신의 눈길을 거부합니다. 아직 그의 운명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놈의 운명이 보이지 않았다.
강해서? 아니면 정말 거대한 운명을 지녀서?
글쎄 왜일까.
죽이면 알지 않을까.
꾸드드득, 시위 가득 힘을 실을 때.
“때가 아니야.”
살라스가 내 어깨를 잡았다.
순간 그에게 화를 돌릴 뻔했다.
눈에 담긴 깊은 뜻과 존중이 아니었다면.
이 인간이 왜 이러지? 의심하기도 전에.
“지금 놈을 향해 공격하면 지금 벌어지는 일이 네 짓임을 알 거다.”
“상관없어.”
“미친놈아 폐하께서 상관 있으시다. 네게 큰 상을 주실 작정이신 것 같던데 괜히 놈들에게 명분 실어 주지 마. 좀. 제발. 부탁이다.”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는 무슨. 그냥 단순한 계산이다.”
“어차피 우리가 빛을 타고 온 걸 알게 될 거다.”
“직접적인 공격과 몬스터를 사냥하다 일어난 사고는 다른 이야기지.”
“조언해 주는 건가?”
“조언이라면 조언이겠지만 너도 항상 이야기하지 않냐.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광기와 현실도 다른 법이다. 우매한 동생아. 제발 현실을 좀 살자.”
살라스에게 한 방 먹었다.
그런데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스치는 풍경 속에서 신나게 웃고 있으려니.
“뭘 그렇게 웃어? 재수 없게.”
그가 나를 노려보며 퉁명스레 물었고.
“이제야 조금은 마법사다워 보이는구나.”
“원래 마법사였다.”
“그래 살라딘이지. 어때 이젠 좀 귀에 익나?”
“차차 익어 가야겠지.”
“떠날 생각이구나.”
“…….”
내 물음에 답은 없었으나.
[살라스의 운명에 커다란 영감, 깨달음, 시대 변혁이 짙게 끼었습니다. 황자의 운명을 버릴 각오가 되어 대마법사의 운명이 그를 감쌉니다]
운명이 그의 입을 대신하여 긍정했다.
드디어 황자의 운명을 버리기로 했구나.
서부에서 영감과 깨달음이 어떤 시대 변혁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시작된 운명.
되돌릴 방법은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
“서부인들이 너를 향해 외치더군.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그래, 들었지. 본래 황자가 걸어가는 길엔 영광이 있어야지.”
“너는 영광스럽게 걸어라. 그게 어울려.”
“살라딘, 자네는?”
“살라딘 마법사는 글쎄. 오랜 연구의 길을 걸어야지.”
“무엇을 꿈꾸는지 알 수 있겠나.”
내 물음에 잠시 꿈을 꾸듯 이제는 멀어진 사막과 가까워지는 수도, 아래에 가득 펼쳐진 제국을 바라보던 그가.
“우리가 흑해를 건너던 순간을 기억하겠지.”
“물론.”
“생각해 봐라. 커다란 배가 무한한 동력을 품은 채 바다를 가로지른다고.”
“이미 제국엔 열차가 있지 않나.”
“열차만 있지.”
“북부엔 커다란 차량이 물건을 나른다.”
“북부와 수도에 있는 몇 대가 전부일 뿐이지 않냐. 마나석은 출력에 한계가 있어.”
“무엇을 꿈꾸는가. 마법사, 네 상상을 이야기해 봐. 계산 없이, 불안함 없이.”
그가 잠시 우물우물 입을 짓씹었다.
마법사란 상상력에 의존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차가운 이성으로 이를 억눌러야 하는 자들.
아마 지금 가능성과 체념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게 보여.
“살라딘 마법사, 명이다. 나 아르한이 뭐든 이루어 줄 것이니. 속에 담은 비원을 말해 보라.”
꿈을 꾸는 마법사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그의 비원을 이루어 줄 것이란 장담에.
살라스가 결심한 듯.
“무한한 에너지. 사람들의 삶을 채울 동력을 만들 생각이다. 더 나아가 하늘과 바다를 돌아다니는 고래보다 크고 섬과 비견되는 배를 만들 거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나석이 아닌 다른 것으로 움직일 거야.”
자기가 뱉어 놓고도 너무 황당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으나.
누구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사님, 대단해요-!”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살라딘 마법사님이라면요.”
“하늘을 나는 배라니! 가장 먼저 타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그의 뜻을 응원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긍정했다.
그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했으니까.
나 또한 그의 의견에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정말 이루어질 일들이니까.
누구의 손이냐는 다르겠으나 결국 제국은, 대륙은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 거다.
하늘엔 커다란 비행선이 날 것이며, 바다엔 거대한 함선들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돌아다녔지.
한겨울에도 식물을 길러 내는 화원과 소소한 공학 발명품들이 사람들의 삶 깊은 곳까지 스며들 거다.
마유 또한 정신 깊은 곳까지 스며들겠지.
하지만.
“네가 꾸는 꿈이니 악마의 힘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 낼 일이겠지. 많은 연구와 고뇌가 필요할 거다. 사막에서 보았던 검은 풍경을 보지 않으려면.”
이번 제국엔 그런 새까만 풍경은 없으리라.
편해진 삶 속, 정작 삶의 의지를 잃고선 죽어 가는 얼굴로 쾌락만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풀린 동공이 사라지리라.
내 기대감 어린 물음에.
“물론이지. 세상엔 오색 연기가 가득할 거고 사람들은 어둑한 풍경에 묻히는 대신 삶의 의지를 찾아 움직일 거야. 물론 세상 전부를 바꾸리라는 생각은 않아. 마법과 현실은 다른 법이잖아. 안 그래? 그러니 세상을 바꾸는 건 전하 네가 맡으라고. 살라딘은 살라딘의 일을 할 테니.”
살라스가 너스레를 떨었고.
자리에 있던 모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즐거움이 감도는 얼굴들.
지난 서부에서 보았던 어두침침한 풍경 때문에 어두워진 마음이 비로소 밝아진 모양.
나 또한 오랜만에 광기가 아닌 진짜 즐거움으로 그들과 함께 웃었다.
여기 빛 속에 함께 있는 자들과 북부에 날 기다리며 하루하루 새로운 생명을 위해 힘쓰는 자들.
저 서부에서 새로운 염료를 만들어 낼 자들까지 함께 이루어 낼 미래가 기대되어서.
비록 아직 썩은 곳이 많아 광기와 패악, 잔혹을 놓지는 못하겠으나.
이 순간만큼은.
함께하는 자들과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과거의 멸망을 생각지 않고 나아질 미래를 생각하며.
[커다란 운명 멸망의 일부가 다시금 뒤틀립니다. 운명 시대 변혁이 멸망의 방향을 조금 바꿉니다. 관련된 운명들이 연쇄적으로 뒤틀립니다!]
[당신의 운명 중 외로움, 외톨이를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획득합니다]
지금을 준비했다.
“영애, 주머니에 넣어 놓은 마법사들의 상태를 확인해라. 가자마자 놈들을 이용할 일이 있을 거다.”
“아직 모두 살아 있습니다.”
“알프레드, 가는 대로 정보부에 삼 현자 중 추수꾼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고 정보부 중 포섭할 이들을 추리도록. 승전식이 열리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명을 받들겠나이다, 전하.”
“가로등과 평민은 소속 마법사단과 기사단에 가 지난번 명령한 작업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조만간 영림에서 보자 일러라.”
“네, 전하.”
“알겠습니다.”
“살라딘, 떠나기 전 이건 확실히 하자. 폐하 앞에서 계승권을 포기하고 날 지지하겠다 표명할 것이냐.”
“물론이지. 미친 짓만 하지 마.”
“예를 들면?”
“가자마자 황후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누군가를 협박한다거나, 폐하를 곤란하게 한다거나 이런 짓들.”
“그중 하나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이런 제기랄. 그래, 아주 너다운 대답이다. 어쩌다가 이런 미친놈과 엮여서. 설마 그 괴물 같은 황후랑 대놓고 척지려는 건 아니지? 이르지 않겠냐.”
“이제 슬슬 마주할 때도 됐지. 계속 피하면 어머니나 동생에게 마수를 뻗을 여자니까. 북부와 서부가 내 것이니 이전과는 다를 거야.”
“…난 직접 마주할 생각은 없다.”
“누구 마음대로.”
“아니-!”
“살라스, 우린 지금 공을 이루고 강철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황자였던 네가 의미를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그래, 싸우러 가는 거지. 가장 영악한 싸움을 하러.”
“맞아. 나의 승전식은 개전식이 될 거다.”
앞서 꿈꾼 미래를 위해선 꽤 위험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황후를 비롯하여 그들을 따르는 이들과 나를 미워하는 모든 신하를 상대해야 하니까.
[예비되어 있던 암살, 악의, 검은 비, 죽음, 상실, 계략을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새로운 운명이 싹틉니다. 운명 충신이 당신의 운명을 보호합니다]
[주요 운명 계승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변화하는 운명 계승을 따라, 새로운 운명 적의, 암살, 유혹, 위협, 술수, 감시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수도 페르마에 도착했다.
아니, 새로운 전장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