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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88화 (88/200)

88화 황자는 고프다

최근 강철성은 매우 평화로웠다.

물론 물밑에서 일어나는 암투와 세력다툼은 여전했으나.

표면은 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눈치가 빨라 오랫동안 강철성에서 밥 벌어먹은 고용인들이 당장 상황을 알아챘다.

누군가 공통의 적이 생겼구나.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 작은 명분 가지고도 서로 죽일 듯 으르렁거리던 이들이.

다시는 얼굴도 보지 않을 원수처럼 대적하던 이들이.

이익이 겹치면 참으로 쉽게 얼굴을 바꾸고 손을 맞잡았다.

그러면서도 나중 어떻게 뒤통수를 때릴까 고민했다.

실제로 수도 페르마 사교계에선.

웃는 상일수록 사람을 쉽게 죽인다.

이런 금언이 있을 정도.

앞에 보이는 표정은 모두 거짓.

서로 웃는 얼굴로 마주 본 채 턱밑에 칼을 들이미는 바닥.

어떻게 보면 하수구 구역보다 더 비열하고 지저분하게 싸우는 게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지만.

“열한 번째 황자. 그가 돌아온다더군요.”

“어허, 이번 서부에서도 살아남았다지요.”

“살아남았다 뿐이겠습니까. 일을 해결했다 들었습니다.”

“커다란 공이로군요. 하필 아르한 황자가 일을 해결하다니요.”

“7황자 살라스가 있었음에도 하필. 아쉽게 되었습니다.”

11황자 아르한의 존재와 그의 승승장구는 부담스러웠다.

소문이 파다했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황자.

광기가 삼엄하여 어떤 행동도 예측할 수 없는 자.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원래도 유명했으나.

최근 수도 사교계에선 아르한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독 많이 오갔다.

“듣자 하니 북부의 검, 루카르 경이 죽은 이유가 황자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어허, 북부의 검을 일부러 꺾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부의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지요.”

“이건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만 심지어 에스키모의 등장이 황자가 계획한 일이라는 증거도 있다더군요.”

물론 거짓이었다.

허나 진원지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들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수도 사교계를 휩쓸었다.

누군가의 입을 넘어갈 때마다 뽐내기 좋아하는 귀족들이 살을 붙이니.

“그거 아시오? 바이올렛 경이 사실은 황자의 볼모라더군. 그녀의 목숨을 쥐고선 북부 백작가를 협박하는 것이라고.”

“뿐만인가. 지난 하수구에서 있었던 일. 그때 죽인 이들만 물경 천에 달한다던데?”

“약을 스스로 뿌렸다는 소문도 있었지.”

황자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흉악해졌다.

“그가 황제가 된다면-.”

“제국이 멸망하겠지.”

“어쩌면 악마에게 이 제국을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야.”

마치 악마 숭배자라도 마주하는 듯한 적대감.

어떠한 증거 없이도 그저 말뿐만으로 황자는 악인이 되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공고한 권력과 평생 누릴 부를 위협하는 대상이니.

악마보다 더욱 악랄한 자.

다만 지금 당장은 이룬 공이 너무나도 커, 속에서 불만을 부글부글 끓일 뿐.

서부에서 들려온 황자의 승리 소식에 수도의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졌다.

그를 물어뜯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현실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아니.

그저 더러운 말로 씹어 돌릴 뿐.

그런 그들에게.

“황후께서 부르십니다만, 같이 가시겠나이까.”

짙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내시들이 그림자와 같이 접근했다.

둥둥 떠다니는 창백한 얼굴이 마치 하얀 가면과 같아 불길했으나.

“최근 오가는 흉흉한 소문에 대해 하문할 것이 있으십니다.”

감히 황후의 부름을 거부할 자는 없었다.

황자가 미래에 도래할 공포라면 황후는 지금 군림하는 공포.

황후의 소문 또한 황자 못지않게 흉흉한 편.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황후께서 지난 산림 개발권을 허락해 주신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십니다.”

황후는 황자처럼 홀로 독식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이권을 챙겨 주고 그들의 사정을 돌보아 주는 자.

“가야지요. 황후께서 부르시면 당장 가야지요.”

누가 감히 거절할까.

황후를 알현한 귀족들이 어딘가 공허한 눈동자로 강철성을 빠져나왔고.

곧 은밀히 영지의 군사력을 집결시켰다.

* * *

모두가 11황자를 미워하며 어떻게든 무너뜨릴 계획을 짜고 있는 동안.

정작 11황자 궁엔 봄이 찾아왔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했고.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신비할 정도로 꽃향기가 가득했다.

주인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으나 돌아다니는 고용인들의 얼굴엔 생기가 가득하니.

“황비 마마, 기침하셨나이까.”

“황비 마마, 이건 어찌할까요?”

“황녀 전하, 이제 씻으러 가셔야지요.”

본래라면 다른 거처에 머물 아르한의 어머니와 동생이 11황자궁에 머물며 모두를 가꾼 까닭.

황자가 보면 꽃 일색이라며 싫어하겠으나.

평소 삭막하게 지내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핀잔 들을 걸 각오하고서 이리 꾸며 놓았다.

다만.

“수심이 엿보이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평소 밝은 꽃들과 같이 아리따웠던 황비의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했고.

어린 황녀가 그녀를 똑 닮은 커다란 눈망울로 어머니를 걱정하니.

“아니에요, 황녀. 그저, 그저.”

어미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시침 떼길 잠시.

“황자가 참 외로웠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어릴 적부터 눈치 빠르고 영특한 황녀에게 에둘러 걱정을 표했다.

최근 사교계에 도는 이야기들을 그녀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소문의 내용도 대략 전해 들어 알고 있다.

자신에게 정말 그럴 능력이라도 있었다면.

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자신이 정말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감히 이런 소문도 내지 못했겠지.

지금까지 황후가 저지른 짓이 얼마인데.

누구 하나 입도 벙긋 못하니까.

최근 들어 주변을 돌아다니는 낯선 이들이 많아졌다.

은근한 적의와 염탐을 느꼈다.

허나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평소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전부.

누군가의 은근한 시선을 느낄 때면 황녀를 감싸 안았다.

그저 아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자괴감이 들어 깊이 눈을 감았다가 뜨니.

“황자……?”

공들여 키운 꽃밭 사이.

고고히 백금발을 휘날리는 아들이 보였다.

환상을 보는 거라기엔 너무나도 뚜렷했다.

하지만 지금 꽃밭에 선 자가 정말 황자일까.

어머니의 눈에도 의심스러운 풍경인 이유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네요.”

“우와, 전하 꽃을 키우는 취미가 있으셨어요?”

“이 꽃은 달맞이꽃이군요. 보통 밤에만 피는 꽃이 어찌 지금 폈을까요.”

“뭐냐, 어울리지 않게 이 솜씨 좋은 화원은.”

주변에 선 이들이 시끌벅적했다.

황자의 주변엔 원래 죽음과 침묵만이 떠돌았다.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고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능력과 기반 없는 황자에게 충성하고 아부를 떨 시간에 다른 이들에게 꼬리를 치는 것이 더욱 이득이니까.

그럴수록 황자는 포악해졌다.

자신을 봐 달라는 듯 관심 없는 세상에 분노를 토하듯 점점 어그러진 방식으로 사람을 대했다.

그런 아들이 불쌍해 아무 말 못 했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비뚤어졌다.

어미로서 부덕함이라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쓸데없는 잡담은 삼가라.”

황자가 사람들 사이 저리 서 있다니.

그의 말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긴 집이 아니라 적진이다. 그 어떤 전장터보다 위험하니 다들 정신 차려.”

그의 말에 신뢰와 복종을 표하는 이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때.

“오라버니!”

어린 동생이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황자에게 도도도 달려가다 중간에 멈추어 섰다.

보았을 땐 반가웠으나 진홍색 눈을 마주하자 과거 그의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

아이가 목을 움츠리며 어머니와 오라비를 번갈아 보았다.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

어중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은빛 머리칼이 찰랑이며 요동칠 때.

“오랜만이구나.”

성큼, 황자가 먼저 길쭉한 다리를 뻗어 걸음을 내디뎠다.

아이에겐 여러 걸음이나 황자에겐 단 한 걸음.

동생이 느낀 거리를 단번에 무너뜨린 오라비가.

“조금은 컸나?”

그녀의 머리에 커다란 손을 올려놓으며 무던한 관심을 표했고.

비록 껴안거나 서로를 반가워하는 살가움은 없었으나.

“다녀오셨어요? 오라버니.”

히이-.

외로웠던 동생에겐 그걸로도 충분했다.

황자의 광기 어린 웃음과는 다른, 같은 핏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해맑고 순수한 미소.

황자의 커다랗고 하얀 손이 따뜻한지 머리를 부벼 오니.

아르한이 동생의 어리광을 둔 채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아들의 인사에 어미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어서.

“오셨어요.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어요. 황자.”

살갑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피어난 미소가 딸의 것과 똑 닮았다.

어디서 온 미소인지 알 수 있는 장면.

이어서.

“알프레드가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전하를 섬기는 기사 안드레라 하옵니다. 인사 올리옵니다.”

“안녕하세요, 마마. 전투 마법사단 소속 솔이라 합니다. 인사드려요.”

“북부 드보르작 백작가의 바이올렛 드보르작이라 하옵니다. 존귀한 황비 마마께 인사 올리옵니다.”

황자를 따르는 이들이 일제히 황비를 향해 정중히 예를 취했다.

표정과 행동에 정중함과 조심스러움이 묻어 나오니.

그 가운데 선 황자의 오롯한 아름다움이 한결 더 빛이 났다.

그녀가 문득.

꽃은 역시 홀로 피는 것보다 같이 피는 것이 아름답다고, 혼자가 아니라 황자가 더 아름답다고 그리 느꼈다.

만발한 화원 속 황자가 향그러운 숨을 들이켜고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 들지 않았어요. 모두 같이 드는 거 어떤가요?”

“모두 같이 든다라… 좋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준비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끼리 먹는 것은 다같이가 아니지요.”

입가에 살벌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그의 미소에 주변에 선 자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고.

순진한 황녀가 물끄러미 제 오라비를 바라볼 때.

“다 같이 드시러 가시죠. 황제궁으로. 함께 아침을 먹어야겠습니다.”

먼저 포문을 열겠다 선언.

살랑이던 꽃들이 살기에 짓눌려 허리를 낮게 숙였다.

* * *

“전하, 곧 식당으로 향해야 할 시간입니다.”

“알아요. 잔만 비우고 일어날게요.”

강철성 정령의 화원 중앙, 만발한 꽃과 춤을 추는 정령들 사이.

황녀 세린느가 여전히 고귀한 자태로 차를 홀짝였다.

최근 그녀는 정령의 화원에 살다시피 했다.

다름이 아니라 곧 돌아온다는 열한 번째 황자 아르한 때문.

“그 무뢰배가 오면 당분간 여기 들르는 게 어려울 테니 잠시 두세요.”

그녀의 부탁에 모두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예전 황자와 다툼을 벌일 때만 해도 주변 가득했던 이들이 지금은 꽤 줄어든 상태.

그녀가 선택한 일이었다.

황자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에 남았던 걸까.

그래도 자신했다.

이들은 진정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이라고.

놈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정말로.

세린느가 애써 미친 황자의 얼굴을 지우며 차를 입에 가져다 대자.

향기로운 차향이 그녀의 불안해진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다.

이 평화가 계속되었으면 그리 바랄 때.

“전하!”

저 멀리서 울린 경호성.

동시에.

후다다닥.

세린느가 훈련된 정예병처럼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고.

대기하던 이들이 재빨리 자리를 정리했다.

탁자와 차를 치우는 손놀림이 절도 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야 한다고 했지? 당장 황제궁으로 향하죠.”

분명 황제궁으로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했으나 왜인지 걸어가는 모양새가 도망치는 듯 다급한 느낌.

방금 울린 경호성은 화원에 누군가 나타났을 때 외치기로 한 신호.

황자가 오고 있다.

세린느의 새침한 얼굴, 관자놀이에 슬그머니 식은땀이 맺혔다.

그 미친놈이랑 마주치기 싫다.

그때.

“전하!”

다급한 외침이 화원 앞에까지 울려왔고.

“꺄악! 왜 벌써 왔어!”

세린느가 경기를 일으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황자를 피하고 싶은 모양.

체통마저 버리곤 빠르게 내달려 대기하는 차에 올라타서는.

“어휴-. 그 미친놈은 왜 날 찾는 거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왔나.”

바로 옆자리.

숨결이 닿듯 광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세린느가 가슴을 쓸어내리던 자세 그대로 굳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옆을 바라보자.

“허업!”

아르한의 일렁이는 진홍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녀가 막 차 밖으로 도망치기 전.

“출발해.”

“네, 전하.”

운전석에 탄 알프레드가 차를 출발시켰고.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세린느의 보좌관들이 다급히 차량 뒤를 쫓아왔으나.

금세 멀어져갔다.

“자신이 탈 차와 남이 탄 차는 구별을 했어야지. 안 그래?”

황자의 핀잔에.

“뭐 하는 짓이야! 폐하와 마마에게 가야 하니까 차 돌려! 너 이거 납치야.”

세린느가 억지로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황자를 상대로 대들어 보았으나.

“성인식이 얼마나 남았지, 세린느 황녀.”

“…내년.”

“성인이 아니라 해할 수 없다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 순진하려고.”

“무슨 뜻이야? 지금 황가의 법을 어기겠다는 거야? 요즘 공을 세웠다고 해서 오만해졌구나? 황자.”

“이제 와 변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원래 오만했거든.”

황자는 불길한 웃음을 터뜨릴 뿐.

이윽고 그가 손가락 끝 날카로운 불꽃을 피워 올렸다.

검지에 맺힌 작은 불 속 어리는 폭발들.

그 신비한 능력으로 황녀를 겨누곤.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어도 사고는 당할 수 있는 법이야. 황녀. 지금처럼 차 한잔 마시다가 차를 잘못 탄다거나 했을 때 말이야.”

“지금 무슨 소리를-.”

“그저 짓궂은 장난 정도지. 와인에 독을 타는 것과 같은. 본인이 즐기던 짓 아닌가.”

“…….”

“선택권은 주지. 눈? 코? 목소리? 원하는 것 하나만 말해. 앗아 가 주지.”

과거 독살을 시도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래, 자신도 그런 장난을 쳤었지.

눈에 깃든 진심이 엿보였다.

말을 잘못했다간 정말 눈을 뽑을지도.

아니면 혀를 태우려나.

사고라기보단 분명한 위협이었으나 이미 잃은 뒤에 내리는 처벌이 무슨 소용이겠나.

아니 자신의 공을 깎아서라도 빠져나가겠지.

그녀가 본 황자는 그럴 인간이었다.

세린느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고요해졌고.

“그래, 이제 좀 동생다운 자세를 지녔군. 가자, 황제궁으로.”

황자와 황녀를 태운 황실 전용 차량이 고요히 황제궁을 향하였다.

제국의 아비 어미와 아침을 먹기 위해.

* * *

아침 한 끼 같이 먹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황제궁에 도착하여 식당까지 걸어 들어가면서도 불만이 입에 어렸으나.

이내 마주할 얼굴들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곧 죽을 얼굴을 한 세린느를 옆에 대동한 나를 마주한 내시들이 혼비백산하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막아서려 했으나.

“비켜라. 아버지와 밥을 좀 먹어야겠다.”

혈연을 핑계로 억지로 길을 뚫었다.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고 나서야 식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침없는 행보에 황제궁에 머무는 최강의 전력 제1기사단을 비롯하여 암철단까지.

반역을 저지하려는 이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몰려드니.

식당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을 남겨 두고.

“전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우선 정식으로 요청하시고 무기와 위협이 없다는 걸 확인받으시지요.”

황가 1기사단 소속 소드마스터들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풍기는 기세가 날카로웠다.

운명이 읽히지 않을 정도의 강자들.

지금껏 헤쳐 온 위기 중에 저들이 함께 있었다면 희생이 덜했으리라.

부딪혀야 하나?

죽이진 못해도 식당 문은 열어 젖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변에 선 기사들의 살기에 오싹한 한기가 치밀었다.

좋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위다.

“사막은 너무 더웠는데 괜찮군.”

만족스러워 홀로 중얼거리니 세린느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녀의 눈망울에 맺힌 원망과 두려움이 더욱 커지는 걸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폐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밥 한 끼를 얻어먹으러 왔나이다! 황후 마마! 황녀 세린느와 저의 어머니,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나이다!”

소리쳐 황제와 황후를 불렀다.

이윽고 끼이익 식당치고는 장엄한 문이 열렸고.

안에는.

“아르한?”

당황한 표정의 아버지와.

“황자가 어찌 여기.”

살벌한 표정을 한 황후.

그들의 앞에서.

“서부에서 성인식을 막 마치고 돌아왔나이다. 폐하, 아침을 같이 드신다는 말에 실례를 무릅쓰고 급히 왔습니다.”

“황자, 무엄합니다. 미리 언질도 없이 이런 행동이라뇨. 충분히 오해를 쌓을 수 있다는 걸 모르시나요.”

“폐하, 황비와 여동생도 데려왔나이다. 형님도 함께이니 반가운 얼굴들을 보시지요.”

“황자.”

“또한 서부에서 퍽 즐거운 소식도 가져왔습니다. 어찌, 들어보시겠습니까?”

“황자, 내 말이 들리지 않나요?”

황제는 침묵을 황후는 분노를 표하기에.

“침묵은 긍정이라 생각하고 들이겠습니다. 들어와라!”

당당히 모두를 불렀고.

“막아! 황자, 무엄도 정도가 있는 법이에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삐뚜름이 꺾으며 황제에게 물었다.

“아, 혹시 식사 자리에서 피를 보시는 건 싫어하십니까? 그럼 자제는 하겠습니다만-.”

저 뒤에서 들어오는 이는 어머니와 동생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식사하시며 음악을 듣는 것 정도는 괜찮으시겠지요. 들을 만할 겁니다. 제국이 서부에서 해 온 짓이 마치 교향곡과 같이 화려해서 말이지요.”

나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마법 전투단의 잔당들이 비척거리며 들어오는 중.

“고하라.”

한 마디에 그들이 식당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와들와들 떨며 모든 죄를 고하기 시작했다.

정신 나간 악사들이 입으로 오랜 죄를 연주했고.

내가 기품 넘치는 자태로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앉은 자리는 황후의 바로 맞은편.

적진 한가운데 적장을 앞에 두고 먹는 식사라.

“배가 고프군. 피도.”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 입맛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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