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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98화 (98/200)

98화 담금질

놈이 나타나기 전부터.

[오래 묵은 그림자에 휩싸인 운명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거센 운명이 숲에 가득했다.

죽음과 악의, 절망과 후회가 스멀스멀 몰아쳤다.

놈이 몰고 오는 검은 불이 숲을 휩쓸자.

생명력을 채워 넣은 나무들이 칙칙하게 죽어 갔다.

땅에 고인 색색의 빛 웅덩이가 순식간에 말라붙었고.

오색 빛으로 물든 나무 기둥이 뿌리부터 퇴색되었다.

아니 삭아 갔다.

폭발과 불꽃으로 활짝 피어났던 잎사귀들이 순식간에 사위어 떨어져 내렸다.

그 과정이 마치 수없는 시간을 맞아 풍화된 것처럼 보였다.

놈의 불은 회한과 원망을 형상화한 것.

닿는 순간 늙는다.

생명력 넘치는 불꽃도 시간 앞에선 무의미한 것.

아니, 오히려 불이기에 더욱 취약하다.

불의 생은 짧고 강렬하니까.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몰고 오는 놈을 마주했다.

얼굴에 그려진 황제의 모습이 우스웠다.

“평민, 깡통은 따라오라. 나머지는 계속하여 숲을 망치도록.”

놈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뛰쳐나갔다.

나는 죽지 않아도 주변에 선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여파에 휩쓸려 죽을 거다.

몰아치는 시간에 덧없이 흩어지겠지.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지금까지 숲을 파괴해 가짜 황제의 세력을 약화했으니.

이제 자리를 찬탈할 시간이었다.

처음엔 운명의 끝자락만이 보였다면.

[상대를 감싼 힘이 옅어집니다. 운명의 새로운 일부 가짜, 오염된 정신, 뒤틀린 악의가 숲에 번집니다]

영림을 변화시키자 점차 놈의 운명이 드러났다.

조금은 약해졌기에 이제는 상대가 될까 하여 검을 부딪치는 순간.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에 바로 검을 놓았다.

그대로 버텼다간 팔이 으스러지거나 내가 으스러졌을 거다.

지금껏 운명을 강화하여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음에도 놈의 힘이 워낙 강했다.

그래서 급히 계획을 바꾸었다.

힘 대 힘으로는 답이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방금 하늘을 보는 것은 태연을 가장한 준비.

본래 어떤 동물이든 가만히 있을 때 가장 위험한 공격을 준비하는 법.

떨어지는 오색 비와 몰아치는 염료를 두 손에 담아 세 가지 불꽃과 함께 버무려 두었다.

손안에 담기는 힘이 무한했고.

이를 끝없이 응축했다.

브레이커를 버리며 파고든 놈의 품속.

구슬을 던지니.

놈의 가면 앞, 발칙하게 황제를 따라 한 면상에 구슬이 닿자.

빠지직, 구슬의 표면에 금이 가는 것까지가 내가 본 마지막 장면.

눈을 감고선 얼굴에 가면을 덮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지우려는 듯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기로 했다.

시간도 불꽃도.

이번 터뜨린 구슬이 유독 화력이 강했던 걸까.

안에 염료와 오색 비를 담았으니 폭발이 더 거대했으리라.

일순간 몸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폭발 직전에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현상.

문득.

폭발을 가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문이 들었다.

지금 불꽃들을 안에 담아 폭발을 일으켰듯.

이번에는 밖으로 뻗어 나가는 폭발을 안에 가두면 어떨까.

잠깐 스쳐 지나간 호기심.

그래서 그림자를 펼쳐 나를 포함하여 폭발과 영황, 무명, 안드레를 담았다.

이어서.

번쩍, 번쩍, 콰콰쾅!

쏟아져 나온 불이 좁아진 그림자 안을 휩쓸었다.

몸이 떨어진 낙엽처럼 휩쓸렸다.

가면을 뚫고선 번지는 빛들이 소란스러웠다.

끝까지 외면했으나 폭발의 여파 덕에 쉽지 않았다.

몸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이대로 있다간 사지가 먼저 꺾일 거다.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신체에 투자하려 할 때.

“숨을 깊이 들이쉬십시오.”

등에 두터운 손 하나가 느껴졌다.

몰아치는 폭발 사이에서도 느껴지는 굳건함.

무명 기사의 손이리라.

그가 내 등을 받친 채 말을 이었다.

“몸을 이완시키고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숨을 느리게 쉬십시오. 지금 그림자 깊은 곳에 들어왔습니다. 찬찬히, 찬찬히.”

깡통의 조언대로 몸을 이완시킨 채 차근히 숨을 들이켰고.

천천히 내뿜으며 몸을 관조했다.

폭발의 여파로 심장에 어린 고리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아마 연속하여 구슬을 빛은 데다가 숲 전체에 비를 내리기까지 했으니 무리했겠지.

평소라면 규칙적이었을 고동이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운명 파괴, 파열, 피곤, 깊은 상처, 아물지 않는 흉터, 퇴화, 후유증, 오랜 잠이 당신을 잠식합니다]

[지닌 운명 조금 단단한 체질과 체력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속성 회복이 현저히 느려집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싸워왔더라.

하루가 멀다고 목숨 건 전투를 치렀다.

생각해 보면 전생보다 더욱 치열하게 살아왔다.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내 왔다.

홀로 오롯하겠다는 다짐으로 견뎌왔으나.

정작 폭군의 몸은 그리 강인하지 않았다.

북부의 에스키모부터 서부의 흑해까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이겨 온 것이 기적.

몸이 버텨 준 것이 기적이었다.

[운명 행운, 속성 구사일생이 부서지려는 신체를 붙잡습니다]

본래 쌓인 데미지는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전 제국이 그랬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안에서부터 시작한 부식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가장 치명적인 모습으로 방심한 자를 습격했다.

제국의 부패를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몸을 돌보지 못했구나.

심장 주변에 서린 고리가 폭주했고 몸이 깨질 듯 시렸다.

안은 뜨겁고 밖은 차갑다.

유리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동시에 부으면 어찌 될까.

깨진다.

와장창, 원형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내 몸이 그런 상태.

부서지려는 몸, 안에 치미는 불꽃과 밖에 도사리는 냉기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

아니.

[개변 점수를 행운에 투자합니다! 일정 수준에 달한 행운이 제법 커다란 행운으로 진화합니다! 속성 구사일생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부상을 면합니다]

개변 점수로 행운을 강화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균열이 시작되면 그곳을 메꾸는 식.

결국 부서지는 건 시간 문제.

[운명을 확인합니다. 부상이 스며듭니다]

몸 곳곳에서 일어나는 균열을 간신히 막아 내는 중에.

“철은 본래 물과 불을 오가는 법. 단단해져야 합니다. 불로 천천히 몸을 두들기소서. 차가움으로 전신의 감각을 깨우십시오. 근육을 이완시켰다가 단번에 조이십시오. 이완과 경직을 반복하시면 분명 찾아올 겁니다. 강철이”

다시 무명 기사의 말이 들려왔다.

몸에 치미는 열기와 냉기가 끔찍한 가운데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선 그의 말을 따랐다.

터지기 직전인 몸이 마구 떨리는 중에도 억지로 숨을 안정화하려 애썼다.

숨결이 떨렸으나 위기를 외면한 채 안정에만 집중했다.

끝없이 행운과 위기가 서로의 크기를 견주었다.

그때마다 빗겨 나간 많은 운명을 포식했고 이를 다시 행운에 집어넣었다.

끝없는 순환 속에서.

“강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지며 위기 속에서 더욱 날카로워지는 법. 지금 몸에 치미는 열기와 추위를 기회 삼으소서. 강철처럼 단단해질 시간입니다.”

기사의 말이 계속되었다.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일까.

주변을 떠도는 놈의 머리통에서 나오는 소리일까.

문득 손은 등 뒤에, 머리통은 주변을 떠도는 장면을 생각하곤 웃음을 참았다.

머리에 치미는 열기가 자꾸 광기를 자극했다.

본디 황가의 신비는 두 가지.

하나는 강철이며 하나는 불.

불을 잃어버린 황가에는 강철만이 남았다.

첫째 황자 데카론은 몸을 강철처럼 만들고 무기를 갈기처럼 두른다지.

일곱째 황자 살라스는 철 속성 마법으로 적들을 부순다 했다.

실제로 흑해를 건널 때 그 덕을 보았고.

그렇다면 분명 내 몸에도 강철의 신비가 담겨 있을 터.

깊은 그림자 속으로 침잠하듯 내 몸 깊은 곳까지 정신을 침몰시키니.

무명 기사의 오랜 기억이 끝없이 안에 담긴 피를 불러내었다.

이윽고.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불꽃이 안정된 숨결을 따라 점차 가라앉기 시작.

“심장은 불꽃이오. 몸은 강철이니. 무한한 열기를 품은 신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으리라.”

무명 기사의 인도를 따라 불이 몸 구석구석을 달구었다.

열이 오른 몸이 내쉬는 숨과 더불어 이완되었고.

“차가운 시련은 쇠를 강하게 만드는 법. 담금질을 견딘 영혼과 육체의 단단함은 강철임이 분명하니.”

내쉬던 숨을 멈추며 몸을 경직시키자, 밖에서부터 흘러들어온 냉기가 몸을 쨍하게 얼렸다.

따앙!

한 번의 반복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후.

따앙, 따앙, 따앙!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몸을 강철 삼아 열기와 냉기를 오가며 담금질하니.

팽창과 수축, 이완과 경직을 반복하는 몸이.

떨림을 잊고 심장 고동, 숨결과 하나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스으으읍, 후우-.

둥 둥 둥 둥 둥.

따앙- 따앙- 따앙-.

세 가지 소리가 반목하듯 아슬아슬하게 맞물려 울렸다.

불안하던 박자가 맞아 갔고 점차 하나의 흐름을 이루자.

점점 속도가 빨라졌고 강도가 강해졌다.

“담금질 끝에 탄생할 것은 강철이니. 강철이여 깃들라, 강철이여 깃들라.”

등을 받치던 무명 기사의 두툼한 손도 이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수축하는 신체와 박동하는 심장만이 느껴질 뿐.

뒤엉켜 반복되는 소리 위에 얹힌 목소리가 천천히 의식을 인도했고.

담금질을 반복할수록.

[신체의 강도가 점점 강해집니다. 운명 조금 단단한 체질과 체력이 점점 강화됩니다]

운명이 질겨졌다.

혈관을 휘도는 피가 급히 흐르자 근육 한 올 한 올에 찌르르 차오르는 힘이 강렬했고.

몸 전체에 점차 열기가 피어났다.

심장에서 흐르는 불이 고속 회전하는 피를 따라 혈관 전체에 퍼졌고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내 몸에 어린 새로운 힘이 근육을 벗어나 피부까지 도달, 전신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변하고 있다.

쥐어짜 내듯 힘을 줄 때마다 신경 끝까지 응축하는 감각이 치밀었다.

마치 몸 전체가 거대한 심장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점차 열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강철의 육체와 불꽃 어린 심장을 지닌 이여. 이제 깨어날 시간입니다.”

무명의 말에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신비 강철이 신체에 깃듭니다! 신비의 효과로 조금 단단한 체력과 체질이 강화됩니다. 운명이 강건한 체력과 가능성을 품은 체질로 변화하였습니다!]

[운명 제법 커다란 행운의 작용으로 속성 회복이 급속 회복으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체질로 인해 새로운 가능성이 깃듭니다! 경지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깃들던 부정적인 운명들을 일제히 포식합니다! 얻은 개변 점주와 신비 점수를 신비 강철에 투자합니다! 신체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벅찬 알림들.

본래 쓰레기 수준에 불과했던 몸이 신비를 품어 단단해졌고.

강인한 철과 같은 신체는 본래 도달하지 못했을 경지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거면 되었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저 멀리, 그림자 속에 홀로 떠다니는 브레이커를 향해 손을 뻗었고.

와르르릉!

마치 주인을 반기는 사냥개처럼 울어 젖힌 검이 불꽃을 뿜어내며 달려왔다.

손에 감기는 거검이 가볍다.

손에 쥔 검을 뻗어.

그림자 바깥을 가리켰고.

이내 빛이 되어 쏘아졌다.

전에는 거센 압력에 몸이 저렸는데 지금은 고통 하나 없다.

단단해진 신체가 압력을 튕겨 내고 있다.

공기보다 훨씬 밀도 높은 그림자를 밀어내는 통에 피부에 열이 올라오는 지경이었으나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거친 환경일수록 몸의 밀도가 높아지는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쾌락을 깨달은 순간.

푸화학!

그림자 밖으로 뿜어지듯 솟아 나왔고.

좁은 공간.

오색으로 타오르는 백면영황을 마주했다.

앞에는 한쪽 팔과 머리통이 없는 무명 기사.

갑옷 속에는 피칠갑을 한 채 숨을 몰아쉬는 안드레.

아마 둘이 합심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운 모양.

투구 없는 얼굴, 반쯤 감긴 눈과 갑옷 없이 훤히 드러난 손에 쥔 검이 떨렸다.

“후욱, 후욱. 이 새끼야 여길 봐!”

갈라진 목소리로 치는 고함이 억울했다.

홀로 기다렸던가.

곧 무명 기사와 영황이 부딪혔고.

둘의 검이 거칠게 서로의 몸을 탐하는 사이.

빈틈으로 안드레가 검을 찔러 넣었으나.

영황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림자를 뻗어 안드레의 검을 막아 냈을 뿐.

갑옷 안, 안드레가 처절한 표정으로 팔을 휘둘러 전력을 다해 영황을 찔러 댔고 드디어 놈이 안드레의 드러난 얼굴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자.

무명의 검이 앞을 가로막았다.

충격만으로도 안드레가 피를 왈칵 쏟아 내며 휘청였다.

두 거인의 싸움 사이에 낀 새우와 같았다.

“이 개새끼야 전하를 어떻게 했어! 당장 전하를 내놔!”

아아, 저 충성심 넘치는 기사를 보라.

제 주군이 헛짓거리하여 위기에 빠진 걸 모르고 적을 탓하는 모습이라니.

허나 눈에 서린 분노가 진심이라 놀리지 않았다.

“나도 강해질 거다! 강해져서 반드시 도움이 될 테다!”

안드레의 검이 더욱 빨라졌고 잇새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리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솔이 강해질 기회가 많았다.

바이올렛이야 본래 명문가의 자제이니 비할 바 없이 훌륭했고, 살라스는 황자이며 대마법사의 제목.

심지어 알프레드마저도 암철단의 수장이 될 자.

무력은 이미 경지에 오른 지 한참 되었을 터.

아마 자신이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 생각했겠지.

참 모두를 이끈다는 것은 이리 피곤한 일이다.

안드레가 피를 토하면서도 끝까지 영황에게 달려들었고.

무명 기사와 함께 간신히 버티는 사이.

“둘 다 나와라. 내 차례다.”

브레이커를 들어 놈을 겨누었다.

“잠시 쉬어라. 고생했다.”

이후 지금껏 고생한 그들의 노고를 짧게 치하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안드레가 방금까지 뿜어냈던 분노를 지워 내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무명 기사가 물끄러미 서 있길 잠시.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투구와 팔 한 짝으로 끼워 넣고는 물러나니.

안드레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모양새.

이제야 제대로 놈을 마주할 수 있겠다.

그래.

“이제야 보이는구나. 어설프게도 따라 했어.”

처음 강대한 힘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였다.

백면에 그려진 얼굴.

“건국제가 되고 싶었나.”

환상으로 만난 건국제를 닮았다.

그래, 모든 황제의 이상일지 모르지.

하지만.

“따라만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따라 하는 것은 그저 열화판에 지나지 않는다.

“답하라. 가짜 너는 어째서 죽지도 않고 현생에 관여하려 하는가. 많은 이들의 목숨을 깊은 어둠에 던지려 했는가.”

놈의 어설픈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라도 결국은 가짜.

놈은 건국제도 황가의 핏줄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저 원한과 회한으로 가득한.

“잡종! 답해라! 어찌하여 감히 제국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느냔 말이다!”

잡종.

놈은 잡종에 불과했다.

오색 불에 휘감긴 채 바스러져 가던 놈이.

-……!

분노하며 달려들었다.

잡종이라는 말이 어지간히도 정곡을 찔렀던 모양.

가짜가 휘두르는 검이 모든 걸 부식시키는 검은 불을 품었고.

이에 맞서 나 또한 검에 붉은 불과 폭발을 휘감아 맞서니.

꽈앙!

둘의 거검이 부딪힘과 동시에.

몸을 수축시켰고.

따앙, 맑은 쇳소리가 울리자.

우뚝.

브레이커를 밀어내던 놈의 거검이 멈추어 섰다.

아까는 팔을 비롯해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면 지금은.

“할 만하네.”

저리긴 했으나 팔이 으스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단단해진 몸을 이완시키며 더욱 강하게 거검을 휘둘렀고.

놈의 검과 내 검이 부딪히는 순간.

따앙-!

강한 수축과 경직을 반복했다.

온몸에서 터진 반탄력이 다시 놈의 검을 멈추어 세웠고.

이어 다시 한번.

또 다시.

놈과 검을 부딪칠 때마다 전신을 담금질했고.

쏟아지는 불꽃과 폭발이 마치 망치로 쇠를 두들기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담금질이지.

망치질 없는 강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팔이 떨어질 것 같이 떨려 왔으나 억지로 놈의 검을 받아 내려니.

“전하! 그겁니다! 강철엔 망치가 필요한 법입니다!”

무명이 벌떡 일어나 외쳤고.

“자, 더욱 거칠게 휘둘러 봐라. 가짜 잡종. 결국 너의 검은 나에겐 강해지기 위한 망치질에 불과하니. 누가 깨지는지 붙어 보자.”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를 띠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검이 부딪힐 때마다 터지는 폭발과 불꽃이 이지러졌다.

놈의 검은 불에 닿은 옷과 불이 스며든 세월을 못 이기고 사그락거리며 바스러지는 사이.

점차 내가 쥔 브레이커가 해처럼 떠오르듯 놈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강철과 불을 품은 진짜 앞에서 가짜는 스러지리라. 황제의 자리를 내놓아라.”

불을 두른 맹장이자, 자신의 신화를 쌓은 진짜가 가짜의 자리를 찬탈하듯 적을 몰아붙이니.

완성된 강철이 불을 뿜어내며 세월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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