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스물하고도 한 걸음
압도적이었다.
처음 빛 한 줄기가 묵색의 광장으로 떨어져 내린 순간.
어둑한 기색만이 가득하던 모두의 눈동자에 찬란한 광망이 번져 나갔다.
강철성을 지배하는 색은 묵색.
화려하게 치장해도 아름답게 꾸며도 항상 음울한 기운이 맴돌았다.
모두가 이런 풍경을 당연하게 여겼다.
광장의 바닥, 주변에 깔린 길, 모여드는 신하들과 귀족들, 심지어 상석에 서는 황제와 황족들까지.
모두가 어둑한 옷을 입은 채 나누는 어둑한 말들을 당연시 여겼다.
누군가는 황가를 상징하는 묵색이 겸손과 검소를 표한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황가의 단단함을 보여 준다고도 했으나.
몇몇 발칙한 학자는 황가에 칠해진 묵색은 탐욕과 죽음을 가리기 위한 보색이라고 폄하했다.
물론 그런 말을 한 자들은 붉은 피를 묵색 성문에 뿌리는 역할로 생을 마감했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노라 그리 생각하는 자들도 꽤 많았다.
목숨이 아까우니 속으로만.
모두의 시야를 물들였던 첫 빛줄기가 가시며 황자가 등장했고.
그제야 깨달았다.
강철성의 묵색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어두웠구나.
그리 평할 만했다.
샛노란 빛이 사그라든 자리, 까만 땅에 한 떨기 꽃이 흐드러지듯 황자가 피어났다.
몸에 망토처럼 두른 검은 불꽃을 거두어 내자.
봉오리가 피어나듯 오색 염료가 광장을 뒤덮었다.
숨 속 깊은 곳까지 치미는 생명력이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다.
꽃향기가 번지듯 황자가 뿜어낸 상서로운 염료와 맑은 불 냄새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대비가 선명하여 눈이 아릴 정도.
특히 모든 풍경 중에서도 황자가 쓴 가면이 참으로 신비로웠다.
첫 충격이 침묵으로 다가온 후.
“저것은 대체.”
“아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군요.”
“영림에서 나온 것일까요.”
“영림에서 나왔다기엔 너무나 존귀하고 상서롭습니다.”
귀족들의 감탄이 파문이 일듯 퍼져 나갔다.
황자가 피워 낸 오색 염료와 얼굴을 덮은 아름다운 가면.
살면서 저런 신비를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바람에 살랑이는 깨끗한 백금발은 황손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피를 물려받았다는 증거.
그런데 그와 똑 닮은 색의 가면 위, 그려진 오색 그림이 아름답게 빛나니.
“무얼 그렸단 말인가?”
“누구일까요. 저 얼굴은.”
자리에 있던 자들이 신장을 얼굴을 마주하곤 본능적으로 압도되었다.
신장임을 모르나 느낄 수 있다.
사방을 내리누르는 패기와 군중의 시선을 잡아끄는 신묘한 기세.
신장이란 본래 장수 중에서 으뜸이며 모두를 이끄는 자.
황자는 광장에서 가장 빛났으며, 가장 화려했고, 가장 위압적이었다.
황제보다도, 황후보다도.
상석에 있지 않았으나 검은 물결 속 홀로 피어난 그는 분명 가장 존귀했다.
자연스러웠다.
어느새 귀족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예를 표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
자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무릎을 꿇는 행위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광장에 피어난 황자의 자태를 구경하던 사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
귀족들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으나 이미 내린 고개 덕에 보이지 않았고.
“만족스러운 풍경이군.”
한껏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들이켠 황자가 깊은 만족을 표했다.
광장 가득한 귀족들과 신하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린 풍경.
심지어 주변을 경계하던 기사들과 마법사들마저 자신들의 임무를 잊은 채 황자를 향하여 고개를 조아리니.
유일하게 우뚝 선 모습이 참으로 고귀했다.
이어 변혁을 예고하듯 거친 바람이 불어왔고.
고개를 숙인 자들의 몸이 바람에 휩쓸려 더욱 낮게 깔렸다.
파르르륵!
주변 가득한 황가의 깃발이 요동치며 쌍두독수리가 활짝 날개를 펼쳤다.
저벅, 저벅.
아르한이 기다란 다리를 내뻗어 주변 가득한 존경과 경악을 지르밟으며 전진했다.
저 멀리, 가장 높다란 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황제와 황후를 향해.
꼿꼿이 세운 등, 넓게 뻗는 다리, 당당히 치켜든 턱.
가장 존귀하며 오만하게 걷는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깃발이 찢어질 듯 요동쳤다.
하늘이 거부하는가.
그의 걸음을 막으려는 듯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에도.
다들 눕는 풀과 같이 몸을 낮추는 와중에도.
꼿꼿한 황자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자신을 막아 낼 수 없다는 듯 바람마저 짓밟으며 나아가니.
문득 그의 패기 넘치는 발걸음에 귀족들과 신하들의 얼굴에 근심이 피어났다.
저자는 홀로 오롯하구나.
그런 그들의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상석에 오르는 계단 앞에 도착한 황자가.
“하늘도 즐거워 축복을 내려 주시는군요.”
남들의 속내와는 반대되는 말을 내뱉고는.
한 계단 한 계단 상석을 향해 올랐다.
위에는 그를 내려다보는 황후와 많은 황족.
황후의 눈에 무미건조한 살심이 피었고.
다른 황자, 황녀들의 얼굴에 분노와 불만, 시기가 어렸다.
몇몇은 진짜 죽일 각오를 얼굴에 표했으나.
아르한은 그저 묵묵히 계단을 오를 뿐.
참으로 신기했다.
분명 아래에 있는 것은 황자, 다른 이들은 그를 내려다보고 있건만.
오히려 압도됨은 왜일까.
그들의 분노와 시기가 강자를 만난 약자가 뿜어내는 성마름과 같음은 왜일까.
고개를 조아린 만인을 뒤로한 채 서서히 올라오는 황자의 자태가 유독 여유로웠다.
이윽고.
터억.
황자가 상석에 올라섰다.
가면을 쓴 채로 주변을 훑어보니.
“흐읍.”
“허억.”
“끄으으.”
백금면신장의 적염과 초적염으로 이루어진 눈을 마주한 자들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내었다.
감당할 수 없다.
단번에 패배를 직감했다.
그리고.
“…….”
황자와 황후가 마주했다.
분명 가면은 황자가 쓰고 있건만 황후의 굳은 얼굴이 마치 가면과 같아 더 이질적이었고.
황자가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면을 벗자.
그를 축복하듯 오색 염료와 검은 불티가 꽃가루처럼 휘날리며.
신장의 껍질 안, 황자가 품은 적염과 초적염이 그를 보호하듯 휘감았다.
묵색의 강철성에 잃어버린 신비가 등장했다.
“열한 번째 황자 아르한, 북부의 오랜 귀신과 서부의 재앙을 해결하고 왔나이다.”
[불을 휘감은 그가 붉은 입술과 붉은 눈동자를 휘며 요염하게 미소 지으니.
뒤에 흐드러지는 배경과 더불어 그의 미소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방금까지 황자를 거부하듯 몰아치는 바람이 지금에 와선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축복이 되니.
그는 분명 바람을, 세상을, 운명을 바꾸는 자라.]
당시를 목격한 서기관의 기록이었다.
* * *
상석에 올라섬과 동시에 백면금신장의 유지 시간이 끝났다.
모든 것은 계산.
모든 것은 연출.
극적인 것에 극적인 것을 더하는 법.
영림을 변화시킨 후 승전식이 시작되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궁금증과 불안감이 키웠다.
광장에 불안과 불만이 가장 팽팽하게 차오른 순간.
꽉 차오른 둑을 터뜨리듯 날카로운 빛으로 광장 중앙을 쿡 찔렀다.
이후 백금면신장에 서린 운명들로 만인의 운명을 억누르니.
그들이 제풀에 꺾여 고개를 숙였고.
그 사이를 당당히 걸었다.
[신비 바람이 더욱 거센 바람을 불러모읍니다!]
그러며 바람을 불렀다.
동부에서 얻었던 작은 신비.
하늘이 나를 거부하여 바람을 몰아쳤다고?
웃기는 소리, 모든 건 내 계획대로.
전생 가짜 황제이던 시절, 폭군이 아님에도 폭군과 같은 위압감을 뿜어냈던 비결을 지금 한순간을 위해 총동원했다.
일부러 가슴을 더욱 폈고 당당히 걸었다.
상석에 선 자들과의 격차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눈빛을 짓뭉개며 계단을 오를 때 느껴지던 쾌감.
광장의 중앙부터 상석의 끝까지 정확히 스무 걸음.
신비 백금면신장의 유지 시간이 정확히 스무 걸음하고도 하나.
처음, 이 거대한 힘은 결코 자신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주인은 자신보다 더욱 강해야 한다는 듯 몸부림을 쳤고, 얼마 안 가 산산이 흩어졌다.
최초 유지 시간은 걸음으로라면 스물 전투라면 다섯 호흡 안.
[신비 백면금신장에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투자합니다! 당신의 운명보다 강대한 신비가 쉬이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반걸음 더 나아갑니다]
가진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 대부분을 투자했으나 고작 반걸음 늘린 게 전부.
거대한 힘인 만큼 내 뜻을 거부했다.
영황을 이긴 것도 가짜와 진짜라는 상성 덕택이었지.
순수 전투력으로는 많이 부족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리하여 승전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머지 반걸음을 걷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마침내 승전식 시작 전, 완성된 스물하고도 한 걸음.
스무 걸음으로 광장 중앙부터 상석까지 올랐고.
마지막 한 걸음으론.
황후와 황족들을 겁박했다.
얼굴에 쓴 가면을 보며 황후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들이 공들여 키웠던 귀신이 이젠 나의 힘이 되었음을 보았으니.
어지간히도 약이 오르겠지.
시간이 다 되어 가면을 벗어 던짐과 동시에 신장의 능력으로 붙잡아 두었던 염료와 영화가 바람에 일제히 떠올랐고.
이를 배경 삼아 황가가 잃어버린 불꽃을 피워 올리니.
단 스물한 걸음 동안 이루어진 훌륭한 한 편의 연극이자 전투였다.
잠깐 사이 피어오르는 운명들이 얼마나 극적인지.
진정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이젠 완연히 드러난 얼굴로 모두의 시선을 한껏 만끽하며.
“또한 영림을 화림으로 정화하여 황가의 뜻을 바로 세웠나니. 모든 것이 황제 폐하의 영광입니다.”
황제를 향해 예를 표하다 문득 멈추어 섰다.
왜?
처음 든 의문은 이것.
분명 지난번 식탁에서 마주했을 때는.
[운명 가짜가 그의 주변에 어립니다]
가짜를 준비한다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얼른 떠나라고 살라스를 통해 등까지 떠밀었다.
영림을 마음껏 휘젓게 해 달라 허락을 받아오라며 전한 말.
가짜와 얼른 교대하라 한 말이었건만.
어째서.
[당신이 지닌 운명들의 영향으로 대상의 운명이 뒤틀립니다. 운명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취합니다. 운명 공고한 결심이 또 다른 운명들을 불러옵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 황제가 아직 자리에 남아 있단 말인가.
내 멈칫거림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황제가 고개를 갸웃했고 곧.
“황자 아르한은 이 아비 앞으로 가까이 오라.”
직접 손짓하여 날 불렀다.
이전에는 멀리서 보았는데 지금은 먼저 나를 부르는 게 생소했다.
그의 눈가에 서린 결심, 옆에 선 황후의 분노를 보며 확신했다.
나 때문이구나.
황제는 이 폭군의 아비는 결심한 거다.
나를 홀로 두지 않겠다고.
황후의 진노를 감당하겠단 각오를 세운 모양.
그런 아비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자.
“지난 시간 동안 황자가 세운 공이 컸노라. 전번에는 북부의 멸망을 막아 내었고, 얼마 전에는 서부의 멸망을 막았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들과 검은 바다와 악마들을 멸했음을 짐이 들었느니라. 마음이 흡족하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여 이전 황후와 말했던 대로 서부를 구한 황자 아르한에게 커다란 상을 내리려 하니. 황자는 고개를 숙이고 뜻을 받들라.”
“황자 아르한 존귀하신 폐하의 뜻을 받듭니다.”
대기하던 신하가 준비된 성지를 들어 펼치더니.
“제국은 들으라! 오랜 귀신들과 악한 악마들이 제국을 침범하려 한 바! 어려운 때를 걱정한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제국을 지켜 낸 황자 아르한에게 크나큰 상을 내리시리니-.”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된 성지를 주절주절 읽기를 잠시.
마지막 대목에서 목울대를 꿀렁이며 눈치를 살폈으나.
황제도 황후도 묵묵부답.
하여 눈을 질끈 감은 그가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로 마지막 구절을 힘껏 내질렀다.
“황자 아르한을- 제국의 황태자로 세우리라-!”
세우리라, 세우리라, 세우리라.
긴장했기 때문일까 날카롭게 어긋난 목소리가 광장에 메아리쳤고.
모두가 침묵했다.
방금까지 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날아오를 듯 요동치던 황가의 깃발들마저 날개를 접으며 얌전히 늘어졌다.
시간이 멈춘듯했다.
모두가 고요히 가장 충격적인 소식을 받아들이는 동안.
[지금까지 포식한 운명들과 세운 운명들이 모여 중요 운명 계승을 뒤틉니다. 운명 계승이 황태자로 비약합니다!]
본래 악마의 힘을 빌려 이루어야 했을 운명이 바로 섰다.
황태자라는 단어를 듣자 몸이 바르르 떨렸다.
예상은 했으나 실제 와닿는 감각이 달랐다.
황태자, 다음 황제가 될 제국의 후계자.
가짜 인생을 살 땐 이러한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까.
어떠한 업적도 영광도 내 것이 아닌 인생.
이젠 아니다.
업적도 지금 하사받은 황태자의 위도.
모두 내 것이다.
내가 바로 폭군이며 미친 황태자이니.
[운명 정적, 경계, 암살, 독살, 결투, 모함, 계략, 시기, 질투, 유혹, 찬탈, 반역 모의가 당신의 목줄을 옥죄어 옵니다]
주변에 다가오는 악한 운명들이 몇 개냐.
나를 시기하고 죽이려는 자가 몇이며,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 세력이 얼마냐.
황태자의 위를 내리겠다는 선언과 함께 어깨를 내리누르는 운명의 무게가 무거웠다.
가짜일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무게.
새삼스레 깨달았다.
가짜라 그나마 책임에서 자유로웠구나.
가짜에겐 영광도 허락되지 않으나 무거운 중압감도 덜했단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침묵이 지그시 어깨를 내리눌러 왔다.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네가 지켜 낼 수 있을까.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귓가를 울리는 듯했고, 등 뒤에 매달린 수천 쌍의 눈길이 금세 칼이 되어 찌를 것만 같았다.
이런 자리로구나.
진짜 황제가 되면 더욱 많은 것을 감내해야겠지.
그래도 다행이라면 과거 가짜이지만 황제의 자리에 앉았던 덕분일까.
금세 중압감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작용했다.
아무리 무거워도 진짜 인생이 즐거웠다.
전생엔 영광은 없고 죽음의 공포만 있었다면.
지금은 무거운 중압감과 날카로운 공포, 이를 태우는 광기와 분노가 가득하니.
이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구나.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래, 이게 살아 있는 삶이다.
진짜의 삶이다.
몰아친 광기와 패악이 금방 중압감을 몰아내었고.
당당히 고개를 들자.
“황태자 아르한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으면 하도록.”
황제가 발언을 허락했다.
황태자로서 공식 석상에서 하는 첫 발언.
제국을 이끌겠다, 영광의 시대를 이루겠다, 선황의 유지를 잇겠다는 말이 보통.
무슨 말을 할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게가 무거워 다리에 힘을 주었다.
꿇지 않으리라.
나는 제국의 황태자이니.
누구의 위협에도, 반역에도, 모함에도 무너지지 않으며 가장 빛나는 첫 번째 깨우침으로 제국을 이끌리라.
그러니 앞에 고개를 조아린 자들아 따르라.
제국을 악마에게서 구원하고 멸망에서 구원할 자를.
내가 제국의 황태자로서 제국을 정화할 것이다.
또한 나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적들은 들어라.
너희가 어떤 시련을 들고 와도 제국의 황태자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황가가 잃어버린 불꽃을 되살려 다시 강철을 두드릴 것이다.
시련에 단단해지는 강철과 같이 삿된 것을 사르는 불꽃과 같이.
그러니 함부로 요동하지 말라.
함부로 모략을 짜지 말라.
너희의 생명이 덧없이 흩어지리라.
참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꿇어 고개를 조아려라.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 죽여 주마. 아니면 따르라. 내가 너희의 황태자다.”
거칠게 축약하여 뱉었고.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 나감을 보곤 붉게 미소 지었다.
황태자가 된 자리에서 처음으로 뱉은 첫 공식 발언이 썩 마음에 들었다.
* * *
“저 미친놈이 기어코.”
살라스의 나지막한 욕설에.
황제가 공감하듯 깊이 눈을 감았다.
문득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가짜를 세웠다면 이 꼴은 보지 않았을 텐데.
황후의 위협보다도 황태자의 저 광기가 더욱 충격과 공포였다.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 자리를 지켰을까.
“어휴, 저 미친놈.”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탄식.
아비와 형님의 한숨을 들은 황태자가 동의하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고.
전 미친 황자, 현 제국의 황태자가 된 아르한의 웃음이 고요한 광장에 맑게도 퍼져 나가니.
맑은 웃음이 위험하여 앞으로 제국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