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문명의 뒷면
황소가 한 마리가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만 한 덩치의 사내가 날아가는 진귀한 풍경.
“으윽-! 이 배신자!”
베론이 아직도 분노를 지우지 못한 채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이겨 내려 해 봤으나.
디딜 곳이 없는 이상 그의 두꺼운 근육도 소용없는 법.
평소 바위 같은 단단한 신체로 싸움에서 밀려 본 적이 없었건만.
방금 부딪힌 거검은 그를 뛰어넘는 거력을 품었다.
어떻게? 호리호리한 체격임에도 이런 괴력을 뽐낸단 말인가.
방금도 봐준 것을 안다.
하지만.
“으그그극!”
전생에 뒷골목을 점령했었던 미친 황소 베론은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불굴.
그가 황소라 불린 이유엔 커다란 덩치도 한몫했으나.
절대 굽히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성격도 이유.
상대가 고귀한 자면 어떠한가, 상대가 강하면 어떠한가.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고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이라면 죽어서라도 지켜 낸다.
베론, 그는 그런 사내였다.
그리하여 과거 안드레가 폭군에게 치욕을 당하고 버림받았을 때 그를 구했고.
이후 반역을 돕다 세상에 버림받았을 때도 억센 몸과 굳센 신념 하나로 수십의 칼을 견뎌 냈다.
한 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편 허리가 꼿꼿했다 전해졌고.
그를 상대했던 기사들마저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기사들에게 인정받은 뒷골목의 전설이자 반역도.
그런 그가 꺾이지 않는 의지로 공중에서나마 자세를 바로잡을 때.
번쩍.
옆에 밝은 빛이 몰아치기 잠깐.
황태자가 바람결에 백금발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입술을 끌어올린 그가.
“빛의 속도로 차여 본 적 있나?”
매혹적인 물음을 툭 던지고는.
황금빛 발차기를 날렸다.
분명 황금빛이었다.
몸에 전해지는 충격이 거셌고 이어 변하는 풍경이 화려했다.
분명 두꺼운 팔로 막았건만 내장을 걷어차인 듯 속이 아렸다.
등을 때리는 바람이 따가웠다.
꺽꺽 막히는 숨을 억지로 틔우려 노력해 봐도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여 움직이질 못하겠다.
강하다.
강하구나.
역시 이 사람은 강하구나.
이렇게 강한데 왜,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겁니까-!”
치미는 분노가 일시적으로 고통을 억눌렀고.
베론이 피를 토하듯 원망을 토했다.
“분명, 분명!”
허나 그것도 거기까지.
어느새 그의 위에 나타난 황태자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베론을 내려다볼 뿐.
남의 분노과 감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좀 맞자.”
자신의 감정.
화가 났으니 일단 패고 보자는 단순한 논리를 따라 길쭉한 다리를 위로 올려 그대로 미친 황소을 내리찍었고.
바닥에 처박힌 그가 피를 토해 냈으나.
“인사치고는 너무 무엄했어.”
황태자는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지르밟는 발길질에 베론이 몸을 웅크렸으나 파고드는 고통이 너무나도 아팠다.
이런 경우는 처음.
칼에 찔려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의 단단한 근육들은 어떤 몽둥이질에도 질기게 버텼고 심지어는 어설픈 검마저 막아 내었다.
그런데 고작 발길질에 이리 쉽게 무너지다니.
베론이 고통스러워하거나 말거나 황태자의 일방적인 폭행이 계속되었고.
이내.
“뭐야, 죽었나?”
베론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멈추었다.
그가 벌건 눈을 들어 주변을 쓸어 보자.
주변 창문 틈 사이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흡, 히익, 비명을 지르며 숨었고.
“어, 다 끝났냐? 죽은 거 아냐?”
살라스와 마법사들, 장인들 또한 황태자의 눈치를 살필 뿐.
이제 황자의 광기와 패악스러움이 확실히 각인되었는지 공손한 자세가 인상 깊었다.
숨을 씨근덕거리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린 황태자가.
“평민. 왜 이러는 거냐, 이 녀석.”
그제야 이유를 물어 왔고.
* * *
“어- 그건 전하께서 하도 흠씬 두들겨 패셔서 당장은 못 듣겠는데요?”
“팬 내 잘못이다?”
“그럴 리가요. 덤빈 저놈 잘못이죠.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제가 아주 호되게 교육해놓겠습니다.”
“…네 친한 동생 아니냐?”
“맞습니다만 전하께 덤비면 어림없습니다. 오히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녀석의 치기 어림이었으니 너무 마음에 두진 마세요. 다음번엔 제가 미리 해결하겠나이다.”
“허, 좀 컸네.”
“그럼요. 전하를 모신 지 좀 되었잖습니까.”
안드레의 뻔뻔한 대답에 내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말은 저리하면서도 떨리는 손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감추지 못했다.
참으로 서툰 거짓말.
아마 분노보다는 걱정, 의문이 주된 감정이겠으나 말이라도 바로 하여 베론을 구하려는 생각이 우선.
전생에 졌던 목숨값이라도 갚을 생각인가.
둘의 우정이 나쁘지 않아 일단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했다.
무엄하게 달려든 것에 대한 벌은 충분히 내렸으니까.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분노, 절망, 살기가 깃듭니다. 잊혀 가던 운명이 다시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유를 들어야만 했으니까.
어째서 기껏 버렸던 운명을 다시 찾아야만 했는지.
독기와 살기로 버텼던 전생, 기껏 이를 버리게 해 주었더니 왜 다시 버린 운명을 집어 들었는가.
분노는 풀었으니 호기심을 풀어야겠다.
“데려가라. 정신을 차리면 이유라도 들어야겠다.”
그제야 떨어진 허락에 다급히 안드레가 달려와 베론의 상태를 살피고는 품에 숨겨둔 회복약을 입에 따라 주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입가에 약이 줄줄 흐를 정도.
“어휴, 이 멍청한 놈아. 어쩌자고 다짜고짜. 미련한 녀석.”
안드레의 안도감 섞인 타박을 뒤로하곤 다시 길을 걸으려 할 때.
“제가 대신 설명해 드려도 되겠나이까. 전하.”
로브를 쓴 자가 문득 골목에서 나와 말을 걸었고.
“물러나라.”
“주변 경계.”
어느덧 바이올렛의 검과 살라스의 마법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분명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건만.
바이올렛의 눈가와 살라스의 눈가의 경계심이 어렸다.
제국 내에서도 꽤 강자에 속하는 그들이 긴장할 만한 강자.
그런 상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지. 보는 눈들이 많아.”
별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낯선 이를 딱히 경계하지 않았고.
바이올렛과 살라스가 얼굴에 의문을 띄우기에.
“황가에 충성하던 자다. 그러니 두어라.”
대충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를 들은 상대가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지만.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엄격히 수련한 마나가 앞을 가립니다. 일부 운명만을 확인합니다. 운명 버린 명예, 충성, 고련을 엿봅니다]
내 눈엔 운명이 보였다.
단편적인 정보였으나 상대의 대략적인 정체를 유추하긴 충분했다.
엄격히 수련한 마나가 신비의 눈을 가릴 정도로 삼엄한 자.
황가에 충성했으나 지금은 명예를 버렸고 힘든 수련이 운명에 어릴 정도.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몇 있었으나.
정작 강렬한 직감은 전생에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그저 두꺼운 보고서로만 만났던 자를 자꾸 떠올렸다.
모두 끌고 다닐 수 없어 곧 장인들과 마법사들을 제 집으로 보낸 뒤.
주변에 주렁주렁 달린 시선들을 무시하며 안가로 향했고.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막 안가에 도착하여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달린, 자네는 어째서 여기 있는 것이지?”
“네,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이곳에 머물렀나이다.”
“영림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아직 못 들었나 보군.”
“예? 영림이… 사라지다니요?”
넌지시 상대의 정체를 캐물었고.
과거 1전투 마법사단 부단장이자, 영림에 관한 보고서를 남겼던 마법사가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자신의 정체를 파악당했다는 것도 못 떠올릴 정도로 놀란 모양.
“영림이 사라졌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떻게요? 누가요?”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결심했던 모든 각오가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어지간히도 놀랐던 모양.
그럴 만도 했다.
전생엔 그 보고서 하나만을 내놓곤 세상에서 흔적을 감추었으니까.
아니 지워졌다는 게 맞겠지.
그만큼 속에 품었던 비장함이 남달랐을 테니 영림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충격받을 만도 했다.
물론.
내 알 바 아니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전한 이유는.
“내가 없앴거든.”
상대의 호기심과 의문을 증폭시키기 위함.
아깝지 않은가.
전생에 영림의 비밀을 폭로할 만큼 강단 있는 마법사, 심지어 전투 실력도 뛰어나며 정치적 수완마저 없다니.
이런 인재를 놓칠 순 없지.
사람을 낚는다는 것엔 죽일 자들을 끌어들인다는 뜻도 있으나, 이처럼 쓸 만한 인재들을 찾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금 만났던 공돌이들과 골방 마법사들처럼, 지금 만난 외골수 노마법사처럼.
비록 나이가 많아 관절이 시리긴 하겠지만, 썩어 문드러지지만 않았다면 상관없다.
물론 그쪽 말고 내가.
감히 황태자인 나도 제국을 살리기 위해 동네 미친개처럼 이리저리 방방 뛰어다니는데.
나이가 대수인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제국을 위해 쓰리라.
아니, 움직일 수 없다면 누운 채로 손가락이라도 놀리게 할 생각.
이젠 완연히 찾아온 밤.
흉흉한 분위기가 돌기 시작한 플라워 밸리.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아직 놀라움을 지우지 못한 마법사를 굽어보며.
“궁금한가? 궁금하겠지. 궁금해 미쳐 버릴 거야. 그렇지?”
살살, 미끼를 흔들었다.
로브를 쓰고 있음에도 울렁이는 목울대가 보이는 듯했다.
그렇지 대어는 살살, 아주 살살 꾀어내야 하는 법이지.
그렇게 대문을 사이에 두고는 대치하길 잠시.
“서해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는 걸 알고 있나? 북부의 에스키모는? 참, 이 신비는 본 적 있는가? 영림에 잠들어 있던 것들인데.”
손끝에 그림자를 피워 올려 흔들자.
그의 고개가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가 최면이라도 걸리겠다 생각이 들 때 즈음.
“원하시는 것이 있나이까.”
전투 마법사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갖췄다는 달린이 미끼를 바라보며 묻는 말에.
“단순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나.”
“그저 따르라 명하면 될 뿐입니다. 제국의 황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단순히 명해서 행하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이봐, 전 황실 마법사. 내가 원하는 것은 비어 있는 껍데기 따위가 아니다.”
잠시 로브 안에 숨겨진 말간 눈동자를 마주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가 품었던 황가에 대한 충성, 자신의 존재가 사라짐을 각오하고서라도 영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한 의지. 아, 물론 굳이 치부를 꺼낸 미련함은 빼고.”
원하는 것들을 늘어놓았고.
“저기 보이나? 미련해 보이는 마법사가.”
“마법사라면- 저 아이 말입니까.”
“그렇지. 저기 저 녀석이 이 그림자를 다룰 줄 아는 녀석이지. 자네의 전투 기술을 알려 주면 나 또한 충분한 답을 해 주지.”
마침 등장한 솔을 가리켜 가르침까지 맡겼다.
능력과 타고난 재능은 출중하나 그녀를 끌어 줄 사람이 없어 아직 개화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남부 원시림은 무른 정신 상태로는 견딜 수 없는 곳.
훌륭한 스승이 필요했다.
그런 나의 제안에 마법사 달린이 물어 온 것은.
“전하의 뒤를 따르면 더 신비한 것들을 볼 수 있나이까?”
제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냐는 기대.
참으로 수완 없는 자였으나, 오히려 그래서 믿음직스러웠다.
마법사의 전형 아닌가.
하여.
“방금 보았지 않나? 자네가 보았던 어떤 빛보다 아름다웠을 터.”
이미 확인한 믿음을 의심치 말라 하였고.
그가 넘어오기 직전.
“나 또한 동의. 제국에 어떤 풍경도 저 녀석보다 놀랍진 않을 거야.”
살라스가 달린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마법사가 안가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고.
내 만족스러운 미소에 살라스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풍경 뒤.
바이올렛과 안드레가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중.
그렇게 마법 전투의 대가 달린은 두 형제의 낚시에 낚여 버렸고.
제 운명도 모른 채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하루 만에 마법사들과 장인들에 더해 베론과 달린이라… 이 정도면.
“어부의 자질이 출중한걸.”
사람 낚는 어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
남 고생시킬 생각에 배부른 미소가 입가에 피어났다.
* * *
분명 방금까지 기분이 좋았다.
분명.
마법사들과 장인들을 얻고 달린을 휘하로 끌어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어째서 저 황소 베론이 돌아 버렸는지 듣고 있자니.
빠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황태자에게서 피어나는 살기가 살벌했다.
분명 가만히 앉아 있건만, 불 하나 뿜어내지 않았건만 몸에서 피어나는 살기만으로 그의 백금발이 훌훌 일어났다.
그만큼 그는 분노했다.
“지금 뭐라고?”
아까는 달린이 황태자에게 자신이 들은 사실을 되물었듯이 이번엔 황태자가 질문을 되풀이했다.
평소 놀라는 일 없이 항상 남을 놀라게 만들었던 황태자 아르한이 유례없이 놀라고 분노하고 있다.
물론.
“이, 이 개새끼들이-.”
“…….”
“당장,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 당장!”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가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황태자보다도 더욱 붉어진 얼굴로 분노를 씹어 댔다.
안드레는 자신이 따르는 황태자가 앞에 있다는 것도 잊고선 이를 물고 욕을 뱉었고.
바이올렛은 입술을 꽉 물며 검 손잡이를 굳게 쥐었다.
당장 무엇이라도 베고 싶어 하는 표정.
살라스는 가슴을 치며 깊이 탄식을 토해 내니.
그래, 달린이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 있는 이들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고아원의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나이다.”
처음은 간단한 사실이었다.
황소 베론은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뒷골목을 정리했다 한다.
수도를 접수한 뒤로는 북부로 가 재건이 이루어지는 동안 몰려든 왈패들을 완전히 정리.
로이스 가문에서도 약속을 지켜 수도와 북부 곳곳에 고아원을 지어 주었다.
물론 후원도 잊지 않았고.
비록 그들의 삶을 충만하게 해 주지는 못했으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었고.
실로 많은 아이가 베론과 로이스 가문 덕에 주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아원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이들의 실종.
처음엔 고아원의 규율이 엄격하여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럴 만도 했다.
로이스 가문에서 만든 고아원은 단순히 먹고 재우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글과 셈을 가르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주는 과정을 도입했고.
때론 엄격한 가르침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그저 먹고 재우는 것으론 부족하다는 소피아의 의지가 강했기에 지켜온 규칙.
“베론이 아이들을 찾아 나섰지요. 말로 타이르면 될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아마 말보단 그의 몸을 둘러싼 근육이 더 설득력 있었겠지.
그렇게 몇몇은 돌아왔으나 대부분은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고아들이 갈 곳이야 뻔한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심지어 그 많은 고아가 한꺼번에?
고아들의 삶은 외롭고 축축한 법.
그들의 죽음과 실종 따위 신경 쓸 사람이 없으니 범죄에 노출되기 참으로 쉬웠고.
베론 또한 이런 점을 눈치채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조직을 최대한 동원하여, 심지어 로이스 가문에 요청까지 하여 아이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이 이곳으로 납치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4황녀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지요.”
아이들의 동선을 추적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
그런 베론과 달린은 같은 진실을 추적하다 만났다 한다.
그렇게.
“네, 그랬지요. 플라워 밸리 학문과 마법, 공학이 꽃을 피웠다는 곳 뒤편에서는-.”
잠시 눈을 감으며 주름진 얼굴 깊이 분노와 절망을 삼킨 달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실을 읊으니.
“아이들을 쾌락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아셨나이까.”
고아원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플라워 밸리 깊은 곳, 누구도 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마약 밤하늘과 아이들의 순진한 상상이 만나면 무한한 영감과 한계를 초월하는 지혜를 얻는다는 소문… 이를 아셨나이까.”
우리의 삶이 아이들의 덧없는 희생으로 새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전.
노인의 쓸쓸한 의심이 방안을 휘돌았고.
누워 있던 베론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분명 몸이 아파 말도 하기 힘들 텐데.
“아이들, 아이들의 원한은 누가, 누가 풀어준단 말입니까.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리 학문을 쌓았단 말입니까… 전하, 전하, 알려 주십시오. 당신은, 당신은 무얼 위해 우리를 구했고 약속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생과 현생 모두 삶의 가치를 부정당한… 아직 어른이 되기엔 이른, 일찍 어두운 곳으로 내몰린 덩치만 큰 아이의 서글픈 물음이 울음과 섞여 뚝뚝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