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11화 (111/200)

111화 악마가 되리라

처음 고아들의 납치에 4황녀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 떠올린 생각.

황자가 날 속였구나.

고귀한 분들의 다사다난함을 이해하지 못한 베론이 떠올린 가정은 그뿐.

황손끼리 죽고 죽이는 황가의 비극을 알 리 없었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공작을 이해할 만큼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저 우직함과 굳건함으로 살아온 짧은 세월.

아직 어린 베론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흉악한 계략들.

하여 황태자 또한 납치를 도왔구나 오해했다.

고아원을 지어 주겠다 한 것도, 굳이 뒷골목을 정리하라 한 것도 어쩌면 모두 자신을 이용한 게 아니었을까.

의심은 곧 확신이 되었고.

전에는 참으로 고귀해 보였던 황태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어쩌면 멍청하게 속은 자신에 대한 분노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삶을 얻을 동생들을 보며 눈물지은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베론이 황소 같은 눈망울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뱉은 고백.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황태자가 자신을 이용해 먹었다는 게 아님을 알고 나서야 그가 사과를 되뇌었다.

황태자의 발길질이 꽤 분노를 잊는 데 꽤 효과적이었던 모양.

방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냐는 베론의 원망이 떨어진 순간.

철썩!

“이 새끼가 말 똑바로 안 해!”

안드레의 분노가 먼저였다.

방금까진 동생의 상태를 그리 걱정하던 형이 주군을 원망하는 꼬락서니에 화를 참지 못하였고.

동생의 뺨을 거세게 올려쳤다.

철썩, 철썩, 철썩.

이미 엉망이 된 베론의 얼굴이 더욱 엉망이 되건 말건.

안드레의 눈가엔 벌건 분노가 가득했다.

몇 대를 연거푸 뺨을 때리고 나서야.

“감히 그딴 말을 해! 구해 준 자는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거다! 아니, 그것마저도 갚을 길 없는 은혜지! 살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고 너희의 몫이야! 도움을 받는 거로도 모자라 삶마저 대신 살아 주길 바라냐 이 염치도 없는 새끼야!”

떨리는 목소리로 미련한 동생의 발언을 탓했다.

구원 이후의 삶은 구원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살아가는 건 본인.

안드레가 삶의 의미를 찾아 달라는 베론의 투덜거림을 단번에 염치없는 무뢰배의 소행으로 몰아붙였고.

베론이 어릴 적, 자신을 가장 따뜻하게 돌봐 주었던 형의 얼굴을 아프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맞는 말이다.

감히 탓해선 안 된다.

삶은 스스로 살아 나가는 것, 살 기회를 얻었다면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함이 맞다.

살 기회를 베풀어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혜인가.

베론 또한 알고 있건만, 왜일까.

황태자를 보자 원망과 분노부터 튀어나왔던 것은.

어쩌면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몸은 누구보다 장성했으나 사실 아직 성인도 못 된 나이.

하지만 방금, 주리던 시절 제 먹을 빵 한 조각마저 떼어 주던 형의 질책에 깨달았다.

어리광을 부렸구나, 함부로 굴어선 안 되는 이에게 함부로 굴었구나.

일찍 세상에 내던져지는 고아들은 어리광 부릴 곳 하나 없이 외로이 세상을 살아가야 했고.

남들보다 한참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리지만, 속에는 그 누구보다 유약한 어린아이가 존재했다.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아이가.

황태자가 베푼 친절에 잠시 착각했나 보다.

자신은 고아, 탓해선 안 된다.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세상은 부모님과 같이 투정을 받아 주지 않으니까.

“미안해, 형. 죄송합니다, 전하. 전 죽어도 좋으니, 그러니. 아이들만, 아이들만 구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베론이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사죄와 더불어 아이들을 구해 달라는 말만을 되뇌었다.

이번에는 안드레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반쯤은 정신을 놓아 버린 동생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볼 뿐.

일순간 일어난 소란에 모두가 착잡한 얼굴로 선 풍경.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황태자가 비로소.

“잘하는 짓들이다.”

신랄한 목소리로 지금껏 벌인 그들의 행동을 일시에 조롱했다.

“나이 처먹은 늙은 마법사는 선인들이 쌓아 온 노력을 모조리 부정하는 말이나 지껄이고 있고, 덩치만 큰 곰탱이 녀석은 자기 누울 자리도 못 찾아 대뜸 덤벼드는 꼴부터… 평민, 이 미련한 놈아. 넌 그리 맞은 애를 또 때려야겠더냐?”

“전하가 때리신-.”

“그 입 다물어라. 악랄한 평민, 못된 평민, 미련한 평민.”

“저 혼자만 욕먹는 겁니까?”

“저 곰탱이 새끼랑 은퇴 마법쟁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저 곰탱이는 어리기라도 하지. 마법쟁이는 나이도 많건만 추태다. 추태야.”

“곰탱이 새끼요?”

“마법쟁이? 추태요?”

그들의 놀란 표정을 보고 나서야 황태자가 피식 웃음을 피워 올렸다.

그 또한 분노와 아픔이 서린 얼굴이었으나.

“감정에 잡아먹히지 마라. 우린 울어야 할 쪽이 아니야. 해결해야 하는 쪽이다. 의심보다는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지. 궁상은 일이 끝난 이후에, 이왕이면 나 없는 데서 떨도록.”

차가운 사실만을 전했다.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는 말이 유독 무거웠다.

아마 그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겠지.

“그러니 의심도 불안도 버려라. 선인들의 깨달음이 더러운 곳에서 피어났는지 궁금한가? 알면 어쩔 것이지? 모조리 폐기하고 문명 없는 삶으로 돌아갈 참이냐? 마법이 전쟁과 전투, 피를 먹고 자랐음은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 개인적 의심으로 다른 이의 삶을 부정하는 것 또한 멍청한 일이다.”

나이만 먹고 요령은 없으니 마법 전투단 부단장임에도 쫓겨났지.

황태자의 정확한 지적에 달린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말로 두들겨 맞은 건 참으로 오랜만.

마법으로 맞은 지도 오래전이건만 뼛골이 시린 기분에 몸서리칠 때.

이번엔 황태자의 진홍색 눈동자가 베론을 향하였고.

베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안드레의 소매를 꼬옥 쥐었으나.

안드레가 이를 외면하며 슬며시 소매를 거두어들였다.

배신감 어린 얼굴로 어릴 적부터 믿고 따랐던 형을 보는 사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만큼 멍청하고 미련하며 길바닥 돌아다니는 똥보다도 가치 없는 질문이 없군. 이 빌어먹을 덩치만 큰 어린놈아. 너는 지금 너를 비롯한 모든 고아를 욕보인 것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지 처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게 아니다.”

타인에게 답을 찾아 봤자 거짓임도 모르고, 쯧.

황태자의 혀 차는 소리가 베론의 귓가를 날카롭게 찔렀고.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동자가 송아지처럼 처량했다.

몸은 단단하여 여러 번의 발차기를 견뎠으나 정신은 여린지라 황태자의 독설에 충격을 받은 모양.

뭐 그래도 신경도 안 쓸 전하시니.

다들 축 처지는 두꺼운 어깨를 신기한 듯 바라볼 뿐.

황태자가 신랄한 독설로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을 하려는 모양.

“가로등, 영애, 살라딘. 강철성에 머무는 3, 4전투 마법사단과 청익을 불러라.”

“네.”

“알겠습니다.”

“오려면 며칠 걸릴 텐데 그동안은?”

마지막 살라스의 물음에.

“평민, 곰탱이, 늙은 마법사는 따라오도록. 좀 휘저어 놔야겠다. 살라딘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여길 지켜. 밖이 좀 소란스러울 거다.”

“일주일 뒤에 아카데미 연설이다. 아니 이제 6일 남았어.”

“걱정 마라. 그 전에 싹 죽여 버릴 테니.”

“처음으로 믿음직스럽군.”

살라스의 응원에 황태자가 대충 손을 휘젓곤.

뒤에 안드레와 베론, 달린을 매단 채 안가를 나서려 할 때.

상황이 험해 보여 끼어들지 못하던 황비가 황태자의 앞에 섰다.

“황태자.”

“별일 없을 겁니다.”

아들의 대수롭지 않은 답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 그의 행동에 참견하지 않던 그녀였는데 어인 일로 이리 앞을 막았을까.

물끄러미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비가.

“상처 입었을 아이들에게 그대가 제국의 황태자이며 그들의 아비임을 보여 주세요. 그 누구보다 뜨겁게. 아비는 자식의 아픔에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이니까요.”

아들이 걸을 길을 응원했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맞잡은 손에 깃든 분노가 보였다.

그래, 황비 또한 아들과 딸을 키우는 어머니.

어찌 이 소식에 분노하지 않겠는가.

마침.

“우웅, 마마 왜 나가셨어요-.”

“유리엘, 어찌 나왔나요.”

“오라버니는 어디 가시는 건가요?”

어머니의 부재를 알아챈 어린 동생이 잠 가득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등장했고.

나이에 맞게 입은 토끼 무늬 잠옷이 참 잘 어울렸다.

칭얼대는 딸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어머니를 보며 베론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저런 삶을 누려 본 적이 없었기에.

황태자가 별말 없이 모녀의 옆을 지나쳤고.

“다들 돌아오세요. 기다릴 테니.”

어머니와 동생이 그들을 끝까지 배웅했다.

일 나가는 아들들을 바라보듯 근심을 미소로 숨긴 얼굴.

베론이 남은 여운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넷은 플라워 밸리, 깊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예전, 하수구 구역에 들어섰을 때처럼.

* * *

깊은 밤, 오후에 있었던 사건이 플라워 밸리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도 전에.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로 튀어나온 황태자는 말없이 걸었다.

그저 손에 매달린 살기가 살벌했다.

어찌하려 이리 무작정 뛰쳐나온 걸까.

그가 사방을 둘러보길 잠깐.

코를 킁킁거리더니 어느 거리 안으로 들어섰고.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가.

“이봐.”

지나가는 사내를 불러 세우더니.

“…….”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이상했다.

분명 웃고 있건만 가면을 쓴 듯 무감정했다.

이윽고.

“저는 카르멘 학파의-.”

그가 자기를 소개하려 함과 동시에.

콰드득.

황자가 그의 팔을 부러뜨렸다.

자비 없는 손속.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잔혹한 행동.

그러나.

“일원이자. 난멘 자작가의 차남이며 현 아카데미 행정학부 졸업을 앞둔-.”

소개를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자신을 자작가 차남이라고 소개하던 이가 문득 솟아나는 식은땀에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덜렁이는 팔을 발견하곤.

“어?”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얼굴에 맺힌 미소는 그대로.

다만 눈에 보이는 어색한 각도로 꺾여 있는 팔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황태자는 그런 그를 보며.

“방금 나온 건물이 어디냐.”

담담히 물을 뿐.

아직도 고통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상대가 여전히 행복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덜렁이는 팔이 향한 곳을 확인한 황태자가.

상대의 목을 꺾어 버리곤 발걸음을 옮겼다.

행복한 얼굴로 생을 마감한 시체와 떠나는 황태자를 번갈아 보던 달린이.

“전하, 플라워 밸리에 제가 아는 조사관이 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밤하늘과 관련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저와 베론을 도와 함께하고 있고요.”

이렇게 무작정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단 차라리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안했고.

“아, 갈런 수사반장님이시라면 도움이 될 거예요. 얼마 전에도 유독 귀족들과 고위직이 몰려드는 수상한 장소를 발견했다 하셨죠.”

베론도 동의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던 처지, 유일하게 베론과 뜻을 같이하여 밤하늘과 팔려 가는 아이들을 찾아 주었던 또 다른 이.

황태자가 익숙한 이름에 어디서 들었더라 떠올려 보는 사이.

안드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갈런? 갈런이면 그 하수구 구역에서 일하던?”

과거 인연을 떠올렸다.

그래, 황태자가 지난 하수구 구역에서 난리를 쳤던 때.

직접 사건을 조사했던 조사관.

황태자 덕에 잡고 싶어 하던 고위직들을 줄줄이 잡아넣었지.

그가 여기 있었구나.

그렇다면 달린은 과거 1전투 마법사단 부단장이자 은퇴 후 수도 화재 진압 마법사로 활동하면서 갈런에게 당시 황태자가 남긴 증거를 전해 주었던 인연.

사람의 연이란 게 참 묘했다.

알프레드도 긴장했던 강자.

1전투 마법사단 부단장이라면 그럴 만했다.

마침 잘되었다며 손뼉을 치려던 순간.

“늙은이, 그와 아는 사이인가.”

“네, 그가 수도 하수구 구역 조사관일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이곳으로 온 것도 그가 여기에 발령받아서였지요.”

“나에 대해서도 들었겠군.”

“당시 전해 주신 증거를 지켰습니다… 이리 나선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를 만나지 못한 지 얼마나 지났지.”

“베론이 말한 대로 며칠 전에 직접 조사를 떠나겠다는 말이 끝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디인지는 아나?”

“극비라 아직은 말해 줄 수 없다더군요.”

황태자의 계속된 물음에 달린이 강렬하게 밀려드는 직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질문에 담긴 뜻이 심상치 않았다.

황태자의 얼굴에 맺힌 표정도 마찬가지.

“위치 추적할 방법 정돈 마련해 놓았겠지.”

“네, 대략이나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좋다. 안내하도록, 겸사겸사 가는 길에 정리부터 해 볼까.”

자작가의 차남이 가리킨 건물 앞에 선 황태자가 그때와 같이 손에 불을 피워 냈고.

단번에.

푸화하학!

새빨간 불이 건물을 감쌌다.

발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태자가 손을 거두어들였을 때는 이미 건물이 통째로 새까맣게 변한 뒤였으니까.

“늙은이, 뛸 수 있겠나.”

“아직 정정합니다.”

“좋아.”

막 피어난 불에 주변 건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고.

황태자가 혹여라도 불장난이 들킬까 순식간에 건물 사이를 주파했다.

늙은 마법사 또한 아직 현역 때 실력이 사라지지 않은 뜻 재빨리 뒤로 따라붙었다.

안드레와 베론 또한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이.

거리에 행복한 얼굴을 한 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에는 무기를 든 채.

단번에 보아도 황태자와 무리를 공격하러 나온 모습.

감히 제국의 황태자를 향하여 무기를 들다니.

미쳤구나 그리 생각하기도 전.

놈들이 목숨을 버리듯 그들을 향하여 달려들었고.

“제가 맡겠나이다!”

황태자가 나설 것도 없이 달린이 먼저 손을 흩뿌려 작은 마나 덩어리 수백을 앞으로 쏘아 내자.

중독자들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이어 베론이 주먹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은 놈들을 쳐냈고 안드레의 쾌검이 사이를 훑고 지나가니.

순식간에 피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피와 시체가 피어나는 거리.

황태자가 맑은 불과 함께 광소를 흩뿌리자.

플라워 밸리가 다시금 몸을 뒤틀며 열병을 호소했다.

* * *

달리는 길.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마약, 오염, 거짓 행복, 중독이 가득 끼었습니다]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죽음, 마약, 중독, 살인이 가득합니다]

플라워 밸리 뒷골목엔 밤하늘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강한 운명이 끼어든 장소들을 태워 버리며 전진했다.

모조리 죽였다.

그곳에 무고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단 걱정은 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운명이 모두가 중독자임을 알려 주었으니까.

문제는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많은 아이가 사라졌다기에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린아이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밤하늘에 찌든 채 헬렐레한 표정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중독자뿐.

무엇을 믿고 이리 날뛰는 것일까.

의문도 잠시.

마침내.

“이곳입니다.”

달린이 도착했음을 알려 왔다.

“어, 여기는-? 수도원 아닙니까?”

“플라워 밸리에서도 가장 커다란 정신 수양원입니다.”

마법사가 친우의 흔적을 따라 도착한 곳은 환락가의 커다란 살롱도 혹은 비밀리 숨겨진 토굴도 아닌.

플라워 밸리에서도 가장 많은 이가 찾는다는 수도원.

정신을 닦고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는 장소.

정문에 달린 장식물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삼각형으로 배치된 눈 세 개.

위화감이 들어 고개를 돌려 시야를 비틀어보자.

[숨겨진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역삼각, 악의, 눈속임, 거짓, 배반이 가득합니다]

[운명 빼앗긴 상상, 제물, 타락한 순수함이 악의 속에 잠겨 비명을 지릅니다]

과거 보았던 무늬와 똑 닮았다.

세로로 찢어진 눈 세 개가 역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모양.

고대 악마를 섬기는 숭배자들의 표식.

밤하늘을 생산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잡아 공양에 썼구나.

이를 마주하자 암전이라도 된 듯 갑작스레 눈앞이 깜깜해졌다.

오직 분노와 광기만이 머리를 내달렸고.

얼핏 스친 풍경엔 떨어지는 머리, 몸통, 타오르는 놈들의 시체와 비명만이 보였다.

빌어도, 울어도, 용서를 구해도.

모조리 죽였다.

행복한 얼굴을 가르고 도망치는 몸통을 찢었다.

악마가 강림하길 원했나?

하여.

“내가 악마가 되어 주마.”

타오르는 악마가 되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휩쓸었고.

저 아래, 메아리치는 고통이 들려 안으로 부수고 들어가니.

순수함을 잃은 아이들의 밀랍 같은 얼굴이 보였다.

“…전하?”

저 멀리 비참한 꼴로 갇힌 갈런이 나와 달린을 보며 메마른 목소리를 내었고.

아래에 펼쳐진 풍경 속, 홀로 생명을 잃어 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눈가에 새빨간 분노가 흘러내렸다.

“늦었구나.”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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