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망치 역전 세계
알리굴, 오랜 악마.
과거 건국제가 대륙을 질타하며 이종족들과 악마들을 몰아내기도 전에 활동했던 녀석.
환상과 욕망, 거짓을 심어 주고 그의 심장과 피를 대가로 받는다던가.
악마란 원래 이런 족속이다.
모든 걸 앗아 가는 대신 거짓된 충족을 주는 놈들.
악마를 섬기는 자들이 하는 착각.
태생부터 악한 놈들이 자신을 섬긴다고 인간에게 선을 베풀 리 없단 사실.
그저 악마들이 지닌 능력과 신비, 저들이 받을 콩고물만을 생각하며 근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렇다.
인간이 그렇다.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악마 숭배자들이 어떤 끝을 맞이했는지 진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거짓만이 가득하여 사람을 현혹했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아 보았다.
강철성에 하루가 멀다하고 악마들이 벌인 일들이 전해졌다.
놈들이 얼마나 악랄하며 잔혹하고 사람을 가축처럼 여기는지.
분노와 처참함에 얼마나 몸을 떨었던가.
괜히 악마란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놈은 악마다.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 풍경.
제국이 안정을 되찾고 모두가 행복하게 웃는 얼굴들.
악마들은 모두 물러가고 어떤 위협도 없다.
잔뜩 썩어 있던 제국이 되살아난 풍경.
모두가 성실했고, 모두가 열심이었고, 모두가 선했다.
누구 하나 주리지 않았고 땅에 금화가 떨어져 굴러다녀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신분의 제약 없이 혜택을 누렸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으며 서로가 서로를 아껴 주었다.
부모 없이 태어난 고아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어떤 차별도 아픔도 없는 세상.
솔직히 아름다웠다.
황제로서 이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 아닐까.
풍족하며 평화로운 삶이라니.
그야말로 태평성대(太平聖代).
누구든지 넋을 놓을 만했고 감격할 만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
생각지도 못한 이상향을 만났고 절로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참으로.
“따분하구나.”
하아아암.
따분한 풍경에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고야 말았다.
눈가에 어린 눈물이 그제야 아롱져 떨어졌다.
아아, 마음속 차오른 건 감격이 아닌 지루함.
“누가 이런 삶을 살겠다고 했나.”
분명 앞에 놓은 세상은 완벽했고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숨이 막혔다.
모두가 같은 행복, 같은 즐거움, 같은 삶을 누린다.
완벽하여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완벽은 없으며 모두는 각자의 삶을 산다. 인간의 욕망과 잔인함을 우습게 보지 마라, 악마.”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조롱이며 모욕이다.
유토피아는 없다.
지금껏 많은 학자가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학문을 창시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은 억눌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때론 거센 악마들과 괴물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고 어떤 멍청한 이들은 직접 세상을 멸망시키겠다 선언했다.
하지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품은 희망이 굳건했기에.
“우린 예상할 수 없으며, 같은 삶을 살지도 않는다. 비극은 인생의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이를 통하여 희망과 삶을 엿본다. 조롱과 모욕에도 한계가 있다.”
모두가 어찌 같을까.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생각이 존재하는 법.
차이가 있기에 세상은 굴러간다.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머저리도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난.
“나에게 평화는 구태의 또 다른 말이며, 안정은 광기의 적이니 필요 없음이다. 미련한 악마야 너무 오랫동안 활동을 안 했더니 머리마저 썩어 버렸는가. 진짜 세상을 내놔라. 피와 광기와 잔혹이 가득한 세상을 내놔라. 그곳이 내가 살아갈 곳이며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으리라. 나는 악한 것을 장작 삼아 타오르는 불꽃이다.”
미친 세상과 썩어 버린 제국을 원했다.
나에게 황태자란 그런 자리였다.
미쳐 버린 세상을 더욱 큰 광기와 패악으로 태워 버리는 것이 생의 목표.
불꽃은 장작이 필요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
태워 버릴 세상이 필요했다.
그래야 속에 품은 광기와 패악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과거 이루어 내지 못한 원한을 깨치고 진짜가 될 수 있으리라.
하여 이 눈물 나게 지루한 풍경은.
“필요 없다.”
나에겐 달콤하지 않았다.
악마는 잘못 짚었다.
그리고 당사자의 자아를 만족시키지 못한 환상은.
쩌적.
깨지는 법.
환상적인 풍경에 커다란 금이 갔고 구린 악취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행복만을 노래하는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하니.
“하하하- 아하하하하!”
비로소 만족스러웠다.
무너지는 거짓 속에서 양팔을 활짝 펼치고 웃으려니 스멀스멀 악의가 밀려 들어왔고.
냄새를 맡기 싫어.
얼굴에 백금색 가면을 썼다.
신장의 얼굴이 드러났고, 불꽃과 폭발이 어린 눈에 악의의 실체가 비추었다.
모두가 시체와 피를 빌려 이룬 거짓.
손을 뻗어 갈라진 틈을 잡고선 찢었고.
찢어진 공간으로 비치는 풍경은 여전히 엉망인 수양원 지하 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달린, 안드레, 베론의 형상이 보였다.
악마가 뿜어낸 어둠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모습들.
백금면신장의 눈이 그들이 보는 환상을 뚫어 보았고 그들의 내면 깊은 곳 숨은 욕망을 보았다.
안드레는 궁극적인 검을 깨달은 그랜드 소드마스터를 꿈꿨으며, 베론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꿈꾸었다.
그리고 달린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마법적 이상향을 꿈꾸니.
그의 마법이 꽤 놀라웠다.
백금면신장의 눈으로 이를 보길 꽤 오래.
그의 환상을 바라보던 신장이.
[신비 백금면신장이 보는 풍경들을 흡수합니다. 오랫동안 이루어 놓은 체계를 흡수합니다. 속성 체화, 재현을 획득했습니다]
달린의 마법을 그대로 베껴 내었다.
복잡한 수식들과 연쇄되는 과정들이 파도처럼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지끈거리는 두통도 잠깐.
이윽고 달린이 오랜 고련 끝에 만들어 낸 기술을 체득하였고.
그사이 그들 모두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마 안 가 잠잠해졌다.
하여 주변 가득한 어둠을 흩었다.
안드레와 베론이 씁쓸한 여운을 느끼는 동안.
“꽤 멋진 기술에 비해 그리 멋진 이름은 아니군. 새로 생각해 보도록.”
그간 쌓아 왔을 달린의 노력을 치하하곤.
여전히 우리를 비웃는 악마 앞에 당당히 섰다.
다섯 호흡.
나에게 허락된 시간.
걸음으로 따지면 스물 하고도 한 걸음이며, 인생에서 따지면 참으로 찰나와 같은 시간.
허나 부족하지 않았다.
백금면신장으로 화한 순간 확신이 들었다.
몸을 내달리는 힘이 터질 듯 부풀었다.
놈이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가면을 가리키며.
“호오-! 놀랍구나 그 가면은 분명 가식과 나태를 관장하는 놈의 장난질일진대. 어찌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지? 마왕만이 가능했던 재주였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떠한 위기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
아마 이 모든 게 유희로 느껴지는 모양.
하여 나 또한 답하지 않고는 그저 방금 본 달린의 기술을 그대로 재현했다.
놈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기도 했고.
어서 한시라도 빨리 저 징그러운 놈을 죽이고 싶었다.
주변에 흩뿌린 염료가 일정한 식을 따라 형상을 이루니, 겉모양을 색색의 염료로 빚었고.
안에는 불과 폭발, 빛으로 채워 생명을 불어넣었다.
켜켜이 쌓인 신비로 이룬 마법들.
아니 마법의 본질이자 이상향으로 빚은 것들이 일제히 악마를 향해 쏟아졌다.
깨지는 염료를 비집고 나오는 폭발과 불이 화려하게도 피었다.
눈이 부셨는지 안드레와 베론이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도.
“아아- 아아아-! 환상이다! 아니, 현실이자 꿈이자 이상이다!”
달린은 눈이 멀어도 좋다는 듯 그저 감탄의 감탄을 연속했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이 강렬한 빛 때문인지 아니면 감격 때문인지 모를 지경.
눈먼 마법사는 필요 없기에 작은 그림자 하나를 그의 눈가에 덮어 주고는.
양손을 기도하듯 마주했고.
화르르르륵-! 퍼퍼퍼퍼퍼펑!
손안에 무한한 세계를 빚어냈다.
심장에서 치닫는 고동이 귓가를 세게 울렸다.
세 개의 심장이 서로 맞물려 달리는 소리와 불과 빛이 얽히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거기에 염료까지 함께 담아 흑염과 그림자로 감싸 압축하니.
우우우웅-
구슬 하나가 기묘한 진동을 뿜어내며 손에 맺혔다.
이내 백금면신장이 과정을 체득.
순식간에 재현해 내니.
같은 진동이 여러 번 울리기를 반복했고.
순식간에 구슬 여럿이 주변에 떠올랐다.
본래 하나를 빚어내는 대도 꽤 시간이 걸렸는데 백금면신장의 넘쳐나는 힘은 여럿을 빚어도 무리 없을 정도.
더군다나 이를 만들어 내는 와중에도 계속하여 신비를 쏘아 내니.
악마의 주변을 두른 어둑한 안개가 서서히 옅어졌고.
때에 맞춰.
“옜다. 선물 받아라.”
냅다 구슬들을 집어 던졌다.
일제히 갈라지는 표면, 삐져나오는 염료와 불.
계속하여 치닫는 신비들.
느리게 보이는 풍경 속.
다시금 기도하듯 손을 모으자.
태동하던 모든 것들이 일시에 멈추었고.
달린이 그러하였듯 공간을 좁혔다.
지난번처럼 나까지 가두는 멍청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림자를 뿜어내어 일시에 구슬들과 집약된 신비들과 악마를 동시에 가두어 압축하니.
소리 없이 요동하는 공간 속.
악마가 추는 춤이 우스꽝스러웠고.
이를 구경하면서도 폭발하려는 신비들과 공간들을 점차 구겼다.
손에 느껴지는 압력이 거셌다.
허나 단 하나의 힘도 새어 나가게 두지 않았고.
모든 분노와 폭발이 맞물려 돌아가며 오직 적 하나를 갈궈 댔다.
달린이 오랜 기간 했을 고된 수련과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절절히 느껴질 정도.
이런 놀라운 것을 만들어 놓고 고작 연쇄 폭발이라니.
문득 떠오르는 단상이 있어.
“쉐도우글로브, 이름은 쉐도우글로브다.”
네가 사용한다면 익스플로전글로브겠군.
달린의 지난 고생을 위로할 겸 기술명을 새로 내려주었다.
안에서 춤추는 악마와 끝없이 휘도는 폭발이 마치 스노우글로브와 같아서.
내가 펼친 것은 그림자이니 쉐도우글로브, 달린이 감싸는 것은 익스플로전이니 익스플로전글로브.
‘연쇄 폭발’이나 ‘번쩍번쩍 콰콰쾅’보단 낫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번쩍번쩍 콰콰쾅’은 진짜 별로네.
새로운 기술명을 하사받은 달린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어렸다.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그때.
[대상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운명 충성이 당신을 향합니다. 오랜 운명 열등감, 불만족이 조금은 해소됩니다. 심장을 억누르는 분노가 조금 풀립니다. 경지가 상승합니다]
떠오르는 운명을 보고선 만족했다.
늙은이가 부끄러움이 많구나.
어느새 공격은 막바지.
안에 일었던 폭발이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만신창이가 된 악마의 형체만이 그림자 안에 남았다.
그대로 놈을 구겨 죽이리라.
힘을 다해 손아귀를 압축.
정말 글로브라도 만들려는 듯 점차 세상을 좁혀 나갔다.
그리고 그때.
다섯 호흡이 끝났다.
파앙!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터지듯 흩어졌고.
기껏 억압했던 그림자가 다시 크기를 불려 나갔다.
분명 모두 나의 신비건만 자꾸 손아귀를 빠져나가려 했고.
어떻게해서든 버텨 보려 할 때.
안에 담긴 악마 놈이 구겨진 모습 그대로 입을 쭉 찢으며 웃었다.
튀어 나온다.
튀어 나오면 분명 누군가는 죽을 거다.
내가 아니라 다른 이더라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놈을 가둔 그림자가 급격히 팽창하며 자잘한 실금이 가득 퍼졌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고.
“공단에 가 있을 테니 여길 수습하도록.”
남을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급히 좌표를 설정, 온몸에 광염을 두르자.
파스스스.
그림자가 가루처럼 흩어지며 기다란 손이 울컥 내 얼굴을 쥐었다.
느껴지는 강한 압력과 살을 침범하려는 역한 악의.
손이 광염에 타들어 가는 중에도 알리굴은 싱글벙글 웃는 표정.
세로로 찢어진 눈을 굴려 가며 입가엔 붉은 침을 뚝뚝 흘려 댔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
남을 보며 군침을 흘려 본 적은 있어도 내가 그 대상이 되려니 불쾌했다.
놈이 그대로 입을 벌리며 다가와 얼굴을 물어뜯으려 하는 순간.
“너, 고통을 못 느끼는 거냐?”
광염에 휩싸여 타들어 가는 중에도 태연한 놈을 보며 생긴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잠시 눈을 굴리며 나의 의중을 파악하던 놈이.
“거짓은 너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지. 나를 태우는 이 불, 나에겐 거짓이다.”
“방금의 폭발도 마찬가지였겠군.”
“그건 퍽 위험했어. 오랜만에 거짓을 침범하려는 진실을 느꼈거든. 준비하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번엔 내가 묻지. 너는 환상조차 없는 미친놈이더군. 우리만큼 인간을 이해하고 있어. 대체 너를 이루는 진실이 무어냐.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광기 아래 묻힌 그것은-.”
놈이 진실로 궁금하다는 듯 세 개의 눈을 번뜩이며 답을 기다렸다.
아니면 내 깊은 곳이라도 보려는 걸까.
하여 놈의 손을 치워 내곤 얼굴을 들이밀었고.
놈의 역겨운 얼굴 바로 옆.
진실을 속삭여 주었다.
“좆 까.”
어쨌든 진실한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진실 아니겠는가.
놈이 조롱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입을 쩍 벌리는 순간.
한 줄기 빛으로 화하여 쏘아졌다.
끝없이 위로.
계속하여 날아올랐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시끄럽다.
점차 내려가는 기온, 온몸에 불을 둘렀음에도 시렸다.
곧 플라워 밸리가 아래에 펼쳐졌고 이내 먼 스프링 필드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평야가 잔잔했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씹기 위해 이를 딱딱거리는 놈의 머리를 피해 가며 우리는 그렇게 춤을 추듯 하염없이 상승했다.
높이, 더 높이.
하늘을 뚫을 듯이.
이윽고, 얼핏 수도와 강철성.
북부의 산맥과 동부의 산성들, 서부의 오색 사막이 보이는 높이까지 치달았고.
광염마저 열기를 잃고 차갑게 얼어붙을 듯 공허와 어둠, 냉기만이 가득한 허공의 끝.
하늘 가득한 별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을 보아라. 별빛이 우리를 축복하는군.”
시리게 웃으며 놈을 마주했다.
“어찌 거짓만을 먹으며 살아가는가. 삶에는 진실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네 녀석의 오랜 삶이 참으로 덧없다, 덧없어. 악마이지만 갸륵하고 불쌍하구나.”
광증이 깊어진 것일까, 그 오랜 세월을 산 알리굴을 향해 주저리주저리 연설을 늘어놓자.
“…미친 거냐.”
악마 또한 황당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인간은 처음 만난 모양.
이겼다.
놈의 광기보다 나의 광기가 커다람에 만족스레 웃고는.
“꽉 잡아라. 떨어진다.”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끝없는 추락.
상승 중엔 차가워졌다면 떨어지는 중에는 점점 뜨거워졌다.
뒤바뀌는 높이와 온도가 교차하며 서로가 반대의 극점을 향해갔다.
멀리 펼쳐졌던 세상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해가 가라앉듯 산맥부터 사막, 수도, 스프링 필드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플라워 밸리가 동공 가득 맺혔다.
추락하는 동안 달아오른 온도는 최고점에 이르렀고.
품은 불이 열기를 타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니.
“뜨겁다! 뜨겁구나! 하지만 이것도 거짓이다! 너는 나와 같이 죽지 못한다. 나의 죽음은 거짓이며 너의 죽음은 진실이라!”
악마가 여전히 나를 비웃으며 헛된 죽음을 조롱했으나.
“죽음이 아니다.”
단번에 놈의 말을 부정했다.
그래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우리가 몸을 부딪칠 곳은 진실을 두드리고 거짓을 깨는 망치.”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철퇴.
건국제가 휘둘렀다던 생명과 진실을 두드리는 망치.
크기가 커 휘두르기 불가능한가? 무거워 들어 옮길 수 없는가?
의문의 끝 해답은 간단했다.
망치를 휘두를 수 없으면 적을 휘둘러 부딪히면 될 뿐.
처음 철괴를 발견한 내가 몸을 부딪혔듯.
어쨌든 내리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주체는 달라져도 결과가 같으면 됐지.
그야말로 망치 역전 세계.
놈의 얼굴에 피어난 경악에.
나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어린 순간.
“진실의 망치야 울려라.”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순식간에 치달은 새빨간 별빛이 철퇴 위로 떨어져 내렸고.
-……!
인지 범위를 벗어난 충격과 굉음이 남부 전체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