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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18화 (118/200)

118화 오히려 좋을지도

“내가 죽였다. 너희들의 스승을, 너희들의 앞길을 막은 구태의연한 구더기들을. 슬픈가, 거짓말하지 마라.”

충격은 고요하게 퍼졌다.

안 그래도 흉흉한 시기, 더욱 흉흉한 말을 던지니 모두의 얼굴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단상 위에 빈자리가 꽤 많았다.

마법, 기사, 전략, 행정 가릴 것 없이 아카데미 소속 교수들 중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아마 그의 말대로 직접 죽인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추살당하는 중일지도 모르지.

다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며 던진 말이 충격적이었다.

앞길을 막은 구더기들이라니, 슬프다 거짓말하지 말라니.

그것도 황태자가 직접 강행한 개교기념 및 입학식 연설 아니던가!

위로의 말과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제시하는 게 보통의 범주이건만.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뚝 멎었고, 눈을 부릅뜬 채 황태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꿀떡꿀떡 침을 삼켜 대었다.

황태자는 모두의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빈자리는 비극이 아니라 너희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다. 치열하게 살되 비열하게 살지 마라. 스스로의 살은 파먹어도 남의 상상력은 빌어먹지 마라. 그리하면 내 약속하지-.”

잠깐의 침묵, 누구도 감히 입을 벌릴 생각도 못 하는 사이.

“네가 누구든, 무엇이든. 여기 넘치는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다. 내가 그리 만들겠다. 앞길은 내가 뚫을 터이니 너흰 뒤따라 달려라. 그저 뜨겁게.”

연설 끝.

짧은 연설을 끝낸 황태자가 피 묻은 얼굴 그대로 벌건 미소를 띤 채 자리를 떠났고.

싸늘한 침묵만이 아카데미 대강당을 떠돌았다.

박수조차 없었다.

모두가 마치 재해가 물러나기라도 바라는 양, 숨을 멈추고는 돋아오르는 소름을 쓸어내렸다.

황태자가 나간 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들의 팔을 타고 올라온 전율이 찌르르 뒷목을 울릴 정도.

방금 황태자는 새로운 제국을 만들겠다 선포했다.

미래의 황제가 될 황태자들은 의례적으로 아카데미의 개교기념식 겸 입학식 연설을 첫 공식 일정으로 잡는다.

황태자 책봉식 이후 두 번째로 행하는 공식 연설.

두 연설이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연설임은 두말할 것 없다.

처음 황태자 책봉식에서 행하는 연설은 강철성에 머무는 신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앞으로 이끌어 갈 국정에 관해 이야기하기 마련.

물론 지금의 가장 패악스럽다던 황태자는 덤비면 모두 죽여 버린다 했지만.

뭐, 좋게 해석하면 황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두 번째 공식 연설이자 어찌 보면 첫 번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방금 이루어진 연설.

아카데미는 제국의 미래.

황태자가 황제가 됐을 즈음엔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한창 제국을 섬길 시기.

제국을 이끌어 갈 이가, 자신과 함께 제국을 꾸려 갈 이들에게 보여 주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겠다.

즉, 황태자가 황제가 되면 어떤 제국을 그려 나갈지 설명하는 자리.

그런 자리이니만큼 차려입은 옷매무새, 소소한 행동과 말투, 억양까지 모두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는 법.

가령 지금의 황제가 황태자이던 시절, 단상에 선 그는 평화와 유지를 강조했다.

옷은 황가를 상징하는 묵색이었으나 장식은 동남부에서만 난다는 재질.

억양 또한 동남부 특유의 부드러우나 고저 없는 형식.

별다른 제스처도 없이 그저 길고 장황하게 지금껏 이루어진 제국의 발전과 영광을 찬양했을 뿐.

즉 정치적으로 보면 이렇다.

제국은 현재로 충분하며 모든 과정엔 변함이 없다.

확실한 것은 현 황후의 입김과 동남부의 세력이 거대해질 것이며 황제의 활동이 활발하진 않을 거다.

이렇듯 모든 건 의미를 내포하니.

그렇다면 지금 황태자가 보인 행동과 말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직접 구태의연한 구더기들을 죽였다는 말, 얼굴과 몸에 묻은 피, 거침없는 태도와 걸음걸이, 치열하게 빈자리를 차지하라는, 심지어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주겠노라는 충격적인 발언.

폭군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차오른 단어 하나.

황태자는 선언한 것이다.

구시대의 적폐들을 죽였노라고, 더 나아가 지금의 제국을 뒤집어엎고 더 많은 자를 죽이겠다고.

얼굴에 칠한 피와 거침없는 걸음걸이, 어떤 세력과도 관련 없는 옷차림.

그의 몸을 감싼 정복은 생전 처음 보는 재질.

옷감은 밤하늘과 같이 아롱졌고 황금빛 장식들은 진짜 금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황태자 개인의 개성과 고귀함을 나타내듯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니.

그는 홀로 오롯한 자.

북부와 서부를 살렸고 그들을 휘하에 두었음에도.

그들이 나를 따르는 것이지 내가 그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제 세력들을 대표하여 자리에 선 게 아닌 오롯한 제국의 황태자로서 선 것이라고.

그리 선언하는 듯했다.

그가 떠나고도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그제야 강당을 메운 학생들이 입을 열었고.

“이게 맞는 건가……?”

“결국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 거잖아…….”

황태자의 방식에 거부감과 의심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배우기를 옳지 못한 것이라 배웠으니까.

폭군은 존재해선 안 된다.

절대 권력을 지닌 황제가 부릴 패악과 광기가 위험하기에 신하들과 귀족들은 항상 이를 경계해야 함이 옳다.

이리 배웠는데, 방금 황태자의 발언에 가슴이 뛰는 것은 왜일까.

“오히려 좋을지도?”

누군가의 조용한 혼잣말이 고요한 강당에 벽력처럼 울렸다.

자신이 중얼거려 놓고도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울려 화들짝 놀라려니.

몇몇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들은.

“달리는 방향만 맞다면… 괜찮지 않을까?”

“치열하게 살되 비열하게 살지 마라. 그러면 자리가 있다…….”

“내가 누구든, 무엇이든? 정말?”

황태자의 말을 곱씹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치열하게 살고 비열하지만 않으면 누구라도 자리를 꿰찰 수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피는 자신의 손에 묻힐 테니, 길은 황태자가 뚫은 테니 뒤따라 달리기만 하란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말인가!

어쩌면 단순 이상주의자의 괴론이라 하겠으나.

황태자는 직접 손에 피를 묻혀 가며 증명하지 않았는가.

문득 이 모든 상황이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치밀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물론 본래 손에 권력을 쥐고 태어난 이들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당의 대부분.

아직 높다란 현실에 부닥치기 전, 순결한 꿈을 품은 젊은 이들의 마음에 황태자가 뿌린 불씨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하니.

문명이 가장 찬란하다는 플라워 밸리의 뒷면을 보고 실망했던 청년들의 마음속 빈자리를 황태자가 대신 채웠다.

* * *

[장소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기존 운명 허례허식, 관료주의, 오만, 술수, 비열함을 포식하였습니다! 새로운 운명들이 싹을 틔웁니다]

[아직 어린 새싹들의 운명이 당신의 운명 광기, 현혹, 혼란, 패악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들의 운명이 뒤틀립니다!]

[평야 곳곳에 가득했던 운명 중독, 마약, 부패, 허무를 뿌리 뽑았습니다. 운명을 대량 포식하였습니다!]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대량 획득하였습니다. 신비 운명 포식자의 능력이 진화합니다! 운명을 보는 눈이 더욱 맑아집니다. 획득한 점수를 자신 말고도 타인에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강단을 나가는 길 떠오르는 운명들이 이어졌다.

싸움이 끝나고도 지난 며칠간 플라워 밸리를 비롯하여 스프링 필드 전역에 낀 짙은 피 냄새가 지워지질 않았다.

수양원에서 수집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고아들의 납치에 협력한 자, 아이들의 상상력을 뽑아 먹은 자, 밤하늘을 유통한 세력까지.

추적하여 남김없이 죽였다.

방금도 숨어 도망치려던 녀석을 죽이고 오는 길.

참으로 깊게도 썩어 있었다.

플라워 밸리 고위직 중 밤하늘을 접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지금 아카데미 학장실, 바닥에 엎드려 비는 학장 또한 마찬가지.

“저, 정말 밤하늘만을 잠깐 맛보았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늙수그레한 얼굴로 비는 모습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정말 살고 싶은 모양.

묵묵히 그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학장의 얼굴에 땀이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떠오르는 운명을 잠시 바라보다가.

짜악!

양손을 강하게 맞부딪히자.

기묘한 파장이 학장실을 휘감았고.

우욱, 늙은이가 헛구역질해 대길 잠시.

곧 울렁이는 목울대로 토악질을 참아 내었다.

“좋다. 살려 주지.”

그걸로 끝이었다.

밤하늘을 한 자 모두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플라워 밸리는 물론 남부 전체가 텅 비어 버릴 테니까.

하여 한 가지 기준을 세웠다.

몸에 담긴 파사의 기운을 견뎌 내면 살려 준다.

못 견디고 토악질을 심하게 해 대거나 피를 토한다면.

우웨에에엑-!

지금처럼.

“넌 죽어야겠다.”

단번에 죽였다.

학장실에서 손뼉을 치는 순간.

학장 대신 그를 모시던 수행원 한 명이 토악질하며 피눈물을 흘려 댔고.

그 자리에서 학장의 명패를 손에 잡아 쓰러진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몇 번이고 완전히 숨이 멎을 때까지.

잔혹한가? 아니.

토악질할 정도라면 이미 심각한 중독, 더 나아가 피눈물을 흘릴 정도면 알리굴의 속삭임이 들리는 상태일 터.

죽은 놈의 품을 뒤지자.

막 폭발하기 직전인 마법 장치가 드러났고.

그대로 그림자에 감싸 감추었다.

이어 들려오는 답답한 폭발음에.

“전하?”

밖에서 대기하던 안드레가 들여다보았으나.

“별일 아니다. 나가.”

손을 휘적휘적 내젓고선 다시 학장을 마주하자.

잔혹한 장면에 겁을 먹은 그가 몸을 벌벌 떨었고.

입술을 따라 흐르는 피를 맛보며 그에게 물었다.

“살고 싶나?”

“네! 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다 하겠나이다!”

“좋아. 살려 주지.”

살려 준다는 말이 어지간히도 기쁜지 활짝 웃는 얼굴.

“대신 조건이 있다.”

아직 손에 쥔 명패를 힐끔힐끔 살피던 학장이 조건이 무엇인지 말하기도 전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하겠나이다! 반드시!”

조건은 간단했다.

“안가에 관심을 끌 것. 동생과 어머니에게 과한 호의를 베풀거나 간섭하지 말 것. 다만 원칙대로 대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할 것. 또 플라워 밸리에 생기는 이상 상황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울 것. 아카데미에서 쓸 만한 인재들이 있으면 재깍재깍 보고할 것. 로이스 가문과 연락하여 재능 있는 아이라면 신분에 관계없이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것. 내 이름으로.”

아니, 간단하진 않은가?

내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관심을 쏟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목표가 될 수 있기에 아예 배제.

하지만 차마 완전히 정을 떼긴 어려워 규정대로 하라는 사족을 남겼다.

똘똘하고 선한 유리엘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잘 적응하리라.

어머니와 동생에게서 관심을 떼어 낸 대신 플라워 밸리를 살펴 혹시 모르는 이상 상황에 대비.

더 나아가 로이스 가문과의 연계를 통해 고아들 중 재능이 뛰어나고 인성이 바로 선 아이들을 키워 줄 생각.

더 긴 미래를 보고자 함이었다.

“돈은 지금껏 너희가 처먹은 돈으로 해결하도록.”

난 명령만 내리면 될 뿐.

돈과 시간, 어려운 절차는 여기 있는 수완 좋은 학장과 로이스 자작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소피아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성실히 임하도록. 혹여 나중에 확인했는데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 죄를 물을 거야. 자기 이름이 적힌 명패에 맞아 죽긴 싫잖아?”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학장을 일별하곤 아카데미를 벗어났다.

의전용 차량을 타고 안가로 향하는 길.

이전보다 휑해진 길바닥이 쓸쓸했고, 얼핏얼핏 망가진 건물들과 아직 지워지지 않은 토사물과 피가 흉측함을 더했다.

돌아다니는 이들의 얼굴에도 경계와 불안이 어려 있는 모습.

첨단, 최고, 최대 도시의 민낯은 추했고 그 결말은 초라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겨울을 견뎌만 낸다면 언젠간 꽃은 피고 열매가 자라나는 법이지.”

땅이 남아만 있다면 계절은 돌아 언젠간 봄이 오고 꽃이 핀다는 것.

지난 북부에서 그랬듯 잠시 삭막한 시기를 맞이한 플라워 밸리 또한 고름을 뱉어 내고 더 윤택한 땅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장소의 운명에 새로운 운명 윤택, 깨끗한 이성, 바른 탐구, 교류가 스며듭니다]

벌써 고름이 빠져나간 자리엔 새로운 피와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중.

나름 만족스러운 계곡행임이 틀림없었다.

“장인들과 마법사들은.”

“살라스 전하의 지휘 아래 플라워 밸리 재건을 돕고 있습니다.”

“골방 마법사들 치곤 별일이군.”

“책임을 느끼나 보더군요.”

“그딴 것에 손댄 놈들이 미친놈들이지 뭔 놈의 책임. 앞으로 보이면 죽이기나 하라고 해.”

내 퉁명스러운 말에 바이올렛이 살포시 웃곤 보고를 이어갔다.

대도서관 소속 골방 마법사들과 공단 장인들이 살라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파를 형성하고 있단 이야기.

심지어 벌써 몇몇은 살라스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소식.

살라스의 운명이 마법사들과 장인들을 중심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미칠 플라워 밸리의 변화도.

골방에 박혀 있던 살라스가 플라워 밸리를 장악하기로 마음먹은 모양.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맺은 열매가 제국을 배불리 먹이리라.

“황녀 전하께선 안가에서 통학하시기로 하셨답니다. 최근 신학에 관심이 많아지셨다고-.”

“신학? 갑자기 그건 왜? 유리엘이라면 정령이나 예술 쪽이 잘 맞을 텐데. 아니면 행정도 좋지. 이왕이면 이 오라비를 도와주었으면 했는데 말이야.”

“전하를 돕겠다고 신학에 관심을 가지셨답니다.”

“신학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대신 속죄를 위해서… 라고 하시더군요…….”

바이올렛이 말끝을 흐렸고 운전대를 잡은 안드레가 저도 모르게 푸흡 웃고는 웃지 않은 척했다.

창밖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짓는 광기 없는 담백한 미소.

속죄라.

마음이 참 갸륵했으나.

“속죄하려면 평생을 기도해야 할 텐데. 미친 황태자의 동생이 성녀라도 되면. 볼 만하겠어.”

푸하하하!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안드레의 뒤통수를 한 대 칠까 고민하는 사이.

[유리엘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주요 운명 감금, 희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주요 운명의 변화로 인해 운명 신성, 기도, 성스러운 가호가 피어납니다]

떠오른 운명에 흠칫 놀랐다.

단순히 동생의 운명이 변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창문 밖 거대한 운명, 아니 운명을 벗어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기에.

어떤 절대적인 힘이 세상의 운명을 뒤틀려 했고.

을씨년스러운 거리, 웃는 안드레와 그를 타박하는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아, 기분 나쁜 현상.

전생에 악마가 태어나거나 신이 사람을 버릴 때 느꼈던, 타의에 의해 결정적인 운명을 맞이할 때 느꼈던 감각.

이윽고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간섭이 유리엘의 여린 운명을 거칠게 파고들었고.

[거대한 자가 아이의 작은 운명을 건드립니다. 주요 운명 성령과 성녀가 깃듭니다]

격랑이 일었다.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후회할 틈도 없이.

[신성 왕국의 운명이 성녀의 존재를 파악했습니다]

신에 미친 미치광이들이 이를 알아챘다.

더불어.

[확장된 눈이 먼 땅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원시림 속 세계수가 당신의 운명을 간절히 청합니다]

[곤충들의 왕이 당신의 운명을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잠잠하던 남부 원시림이 플라워 밸리와 스프링 필드의 소동을 눈치챘는지.

벌떼와 같이 날카롭고 소란스러운 운명이 나를 불러 대었다.

하여.

“바이올렛.”

“네, 전하.”

“모두 모이라 해. 슬슬 다음을 준비해야겠다.”

좀 이른 여름을 준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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