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사색(四色) 나비
여름 한복판, 불을 피워 놓은 자리엔 유독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흔히 불나방이라 할 정도로 벌레들은 뜨겁게 빛나는 자리를 좋아했다.
왜일까.
저들이 갖지 못하는 것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이지러지는 모양새가 아름다워 절로 홀리는 걸까.
타오르는 불과 너풀너풀 춤을 추는 벌레들의 모양새가 때론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어딘가 어울려서.
아직 한낮의 열기가 남은 여름 숲, 타오르는 모닥불과 춤을 추는 벌레들이 기억 속 깊이 남아 있다.
지금 펼쳐진 풍경은 그때와 같았다.
다만 솟아오르는 빛이 수백 배, 몰려드는 독충의 숫자가 수천 배라는 점이 달랐으나.
“아름다워.”
아름다웠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특무대 요원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그래, 어찌보면 아름답고.
“끔직하군.”
어찌보면 끔찍한 풍경.
엘프들을 징치하고 막 새로운 불을 얻은 순간.
독충들이 원시림을 뒤덮을 듯 일어났고 놈들이 낙엽이 진 자리를 메우며 전진했다.
벌레들이 이루어 낸 검은 파도는 황태자가 이루어 낸 붉은 파도 못지 않게 압도적이었고.
마른 나뭇잎을 흩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이파리 대신 앉았다.
새까맣고 독이 잔뜩 오른 나뭇잎들이 빽빽하게 자리하여, 아직 살아 숨쉬는 엘프들과 숲에 들어온 인간들을 죽이려 했고.
더 나아가 알곡이 가득한 평원으로 향하려는 순간.
모두가 어찌해야 할지 떠올리지도 못할 때.
황태자가 세계수를 불태우듯 거대한 빛기둥을 뿜어냈다.
그래, 빛이다.
눈을 멀게 만들려는 듯 샛노란 빛.
모든 존재감을 옅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광명이 솟아난 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독충들이 일제히 황태자와 세계수가 뿜어낸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막 독침을 엘프에게 꽂아 넣으려던 녀석도.
맑은 불을 멍하니 보더니 너풀너풀 끌려 날아갔다.
강렬한 빛에 눈이 멀어 버린 걸까.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일까.
아니면 그저 곤충의 본능인 걸까.
새까맣게 몰려든 독충들이 일제히 빛 안으로 스며들었고.
파지지지-
거세게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바스러져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풍기는 독한 냄새만이 원시림에 스멀스멀 퍼져 나갔다.
적을 좀먹던 흑이 황색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위대했다.
그 가운데.
“모두 정신 차려라! 진짜 적이 온다!”
황태자가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다.
눈앞의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미처 알지 못했으나.
키이이익-!
모든 벌레가 빛에 홀린 것은 아니었다.
독충 중 왕이라 불리는 인섹터(Insector).
과거 수도에서 만났던 군단장 또한 독충 중 강한 종일 뿐 인섹터는 아니었다.
그들은 곤충이 오래 묵고 묵어 인간과 비슷해진 존재들.
엘프들이 만들어 낸 독충 중 가장 독하며 가장 위협적인 존재들.
놈들이 제 군세를 이끌고 다가오는 중.
“흰 바람! 살아남은 엘프들을 모두 불러라! 블러디! 네가 받은 축복으로 그들을 보호하라!”
황태자가 살아남은 엘프들을 일제히 모으라 명했고.
곧 붉은 원시림 사이 휘파람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비록 숲의 축복은 잃었지만 평생 살아온 땅.
그들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재빨리 세계수를 향해 달렸고.
“평민! 신호탄!”
황태자의 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이!”
안드레가 품에 소중히 간직해 온 신호탄을 꺼내어 하늘로 쏘아올렸다.
거대한 빛기둥에 비하여 참으로 초라한 불꽃이었으나.
“전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달려!”
특무대와 정보부가 약속된 신호를 보곤 빠르게 발을 놀렸다.
물론.
“우으으- 더 빨리! 더 빨리!”
바로 뒤에 따라붙은 독충 때문이기도 했고.
탈칵, 탈칵!
날카로운 집게로 앞을 가로막은 가지들을 잘라 내는 소리가 살벌했다.
바로 귓가에 느껴지는 날갯짓과 언제 닿을지 모르는 독침을 상상하며 달리길 오래.
정보부 인원 하나가.
낙엽 사이 숨어 있던 뿌리에 발이 걸려 나뒹굴었고.
“이런!”
“달려! 어서!”
다들 그를 돌볼 수 없어 그저 달리려 할 때.
“이런 빌어먹을!”
남부의 뱀이 잠시 발을 멈추었다.
그래도 부하인데 두고 갈 순 없다.
그가 어떻게서든 부하를 구하려 했다.
본인도 미련한 선택임을 안다.
생각보다 몸이 앞서 움직여 버렸다.
흐려진 눈에 지금 쓰러진 부하와.
“가요! 어서!”
과거 엘프들의 노리개에서 벗어나 탈출하던 당시.
자신을 두고 가라던 사람들이 겹쳐졌다.
아… 멍청하기는, 남부의 뱀이라 불릴 정도의 냉혈한이 고작 과거의 아쉬움 때문에 죽음을 택하다니.
더군다나 집단을 이끄는 이라면 냉혹한 결단을 내려야했건만.
그가 스스로를 자조할 때.
“병신아, 넌 왜 여기 있어.”
문득 옆에서 들린 욕설에 돌아보니 잿가루가 서 있었다.
하필 그마저 멈출게 무어란 말인가.
“넌 왜 병신같이 멈췄어.”
“같은 이유지 뭐.”
친우의 거친 물음에 잿가루 또한 흉터를 꿈틀거리며 자조 어린 표정을 지었다.
과거의 망령에 발목을 잡히고야 말았구나.
그래 같은 이유구나.
둘 다 멍청이다.
죽음을 각오하며 부하를 잡아 올리려는 순간.
마법과 칼이 자리를 휩쓸었고.
“어서 갑시다.”
그들의 옆, 긴 귀를 뽐내는 엘프들이 자리했다.
엘프들을 마주한 잿가루의 등에 작열통이 몰려왔으나.
“시간이 없소. 이대로는 부하 모두가 죽어.”
귓가에 들리는 엘프의 말이 생경하여 잠시 고통을 잊었다.
이대로는 모두 죽는다니… 마치 우리를 살리려는 것 같지 않은가.
순간 다가오는 엘프의 손을 뿌리치려했다.
고통스럽게 죽어 간 이들과 자신들이 구하지 못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때.
“그래, 이대로는 다 죽겠군.”
남부의 뱀이 와락 다가오는 엘프의 손을 잡았다.
비록 눈밑과 입가가 파르르 떨렸으나.
기억했다.
한 하프 엘프의 사과를.
전하께서 말씀하셨지 용서하라고 그래야 새로운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단풍 안에서도 살아남은 엘프는 사죄를 한 이들.
새로운 세상을 위해선.
때론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방금은 과거에 얽매어 제 목숨을 도외시하고 부하를 구하러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미래를 꿈꾸며 과거의 원한을 묻어 두어야 할 때.
친우의 결의 어린 얼굴을 바라보던 잿가루도 결국 덩달아 엘프의 손을 잡았다.
“…고맙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벌려 고마움을 표하자.
“미안하오. 이렇게라도 사죄하고 싶었소.”
엘프 또한 씁쓸한 표정으로 남부의 뱀과 잿가루를 위로했다.
그렇게 새로운 전우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겨 황태자가 기다리는 자리로 향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같이 숲을 달리는 길.
속속 엘프들과 제국 요원들이 합류했고 독충들을 몰아내며 낙엽 가득한 숲을 달렸다.
엘프들의 길 안내를 따라 요리조리 달리길 얼마였을까.
빛기둥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거리에서.
“키아아악!”
인섹터를 만났다.
사마귀와 인간이 융합된 듯 흉측한 형태.
날카로운 앞발과 좌우로 흔들리는 머리가 무엇을 잡아먹을까 고민하는 듯했고.
번뜩, 움직였다 싶은 순간 어느새 모두를 이끌던 엘프 앞에 나타났다.
터지는 충격파가 뒤이었고…….
말도 안 되는 속도.
뒤로 활짝 펼친 날개와 침이 흐르는 입, 놈의 망막에 비치는 수백 개의 얼굴.
엘프가 죽음을 각오했다.
순간 방금 보았던 인간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결심.
아, 인간을 이해하는 순간이 오는구나.
그리 생각하며 고위 엘프가 무기를 꺼내 들어 맞서는 순간.
까앙!
잿가루가 흩뿌린 검이 놈의 옆구리를, 남부의 뱀이 휘두른 채찍이 놈의 팔을 휘감았고.
찌이익, 채찍 덕일까.
간신히 엘프의 머리통 바로 앞에 낫이 멈추었다.
엘프가 소환한 정령이 놈의 몸을 유린하려 했으나.
단단한 갑피 때문에 소용 없었다.
“모두 달려라!”
남부의 뱀, 잿가루, 엘프 셋의 목소리가 하나처럼 울렸다.
같은 마음을 품은 전우들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퍼져 나갔고.
엘프들과 부하들이 주춤주춤 몰려드는 독충들을 막아 보려 할 때.
피식.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들렸나 싶었던 순간.
사마귀의 머리통에 새까만 구멍이 뚫린 뒤에야.
뒤늦게 땅에 꽂힌 밝은 빛살 하나를 발견했다.
훤히 뚫린 구멍 안에 비치는 풍경 속.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안 오고.”
세계수 맨 위, 선 채로 활을 거두는 황태자의 고고한 자태가 보였다.
그가 활을 겨누어 당기자.
밝은 빛이 압축되고 또 압축되어 날카롭게 뭉쳤고.
곧 다른 인섹터를 향해 바늘처럼 얇게 뭉친 빛을 쏘아 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곤충들의 왕이라던 인섹터들의 몸통에 구멍이 뚤렸다.
강하구나.
인섹터들도 강하였으나 황태자가 더욱 강했다.
물론 그들 또한 생명이 질겨.
“크으아악!”
단번에 죽지 않았고.
머리가 뚫린 사마귀가 남은 눈으로나마 엘프와 다른 이들을 쫓으려는 사이.
“달려!”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렸다.
시야를 잃은 탓일까.
나무를 부수며 나아오는 놈의 기세가 살벌했으나, 막상 방향이 엉망이었고.
모두가 무사히 황태자가 기다리는 세계수 아래에 도달하고 나서야.
황태자가 양팔을 활짝 펼쳐 그들을 맞이했다.
“모두 귀 막아.”
아, 아니구나.
일제히 모두가 귀를 막자.
그가 온 힘을 다하여 양손을 부딪쳤고.
쩌어엉!
몸에 깃든 파사의 힘이 일제히 주변을 떨어 울렸다.
또 한 번 모두가 눈앞의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우우웅- 귀를 막았으나 온몸에 느껴지는 진동과 더불어.
화려하게도 피어오르는 낙엽들.
덩달아 세계수을 감싼 빛살들이 부스스스 휘날렸다.
붉고 노란 시야 속, 충격파에 정신을 잃은 곤충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듯 찬찬히 허물어지는 독충들의 모습이 춤을 추는 듯도 싶었다.
이윽고 다시 손뼉을 마주치자.
시간이 되돌아오며 부유하던 것들이 일제히 휘말려 올라갔다.
빛기둥 속으로.
남은 건 인섹터들뿐.
분명 독충들의 왕이라며 원시림 속 공포로 군림한 지 오래건만.
황태자의 파사의 힘을 마주하자, 푸른 독물을 게워 내며 힘겨워하는 모습.
“난 손뼉을 칠 테니 너희들은 곤충을 썰어라.”
황태자가 살기 어린 명령을 내렸고.
모인 이들이 무기를 단단히 잡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세계수 위에는 빛기둥이,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벌레가.
황태자가 마주하는 손바닥이, 달려드는 인섹터들이, 이를 막아서는 엘프들과 제국 요원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승리를 확신할 때쯤.
이질적인, 소름 끼치는 존재감이 다가왔다.
스산한 걸음이 마치 변하는 계절과 같이 확고하며 은밀했다.
싸우는 이들 모두가 그 존재를 느꼈다.
역겨운 감각.
마치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가 피부를 타고 오르는 듯한.
독충보다 더욱 독하고 악랄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느낌.
첫 일격은.
“커헙.”
남부의 뱀과 잿가루를 구했던 엘프.
기껏 조금은 가까워졌다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그의 가슴팍이 쩌억 갈라졌고.
그 사이, 이리저리 엉크러진 뿔 두 개와 송곳니 두 개를 자랑하는 인형 하나가 나타났다.
새빨간 몸통 가득한 핏줄.
한눈에 보기에도 참으로 추하게 생긴 외형.
막 놈을 향해 남부의 뱀과 잿가루가 전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달려들려 할 때.
“나서지 마라. 내 상대다.
황태자의 목소리가 울렸고 그들이 멈추었다.
곧 붉고 힘줄이 가득한 무엇과 고귀한 자가 마주했고.
황태자께서는.
“좆같이도 생겼다.”
남들은 생각에 그치는 것을 당당히 입 밖으로 내뱉었고.
-네놈이 알리굴, 그 거짓부렁이나 즐기는 놈을 죽인 자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추악공 보티스가 황태자를 마주하여 물었다.
물론 고귀한 황태자께선.
“그래 좆같은 새끼야.”
상대방에 대한 존중 따윈 없이 사실을 인정했다.
-재밌구나. 지금 가진 힘들이 너무나도 녀석을 닮았어. 건국제 카이론. 놈의 힘을 이어받았나. 아니면 진짜 놈 자체냐.
“헛소리 그만하고 덤벼.”
-독충들을 태우는 저 빛, 세 번째 불 광염. 그걸론 날 어찌할 수 없다.
“그래? 그럼 이건 어떨까.”
아르한이 제가 가진 불 세 가지를 전부 피워 올렸다.
적염과 초적염이 세계수에 더불어 피어났으나.
-불가하다. 네가 정말 놈의 현신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현자의 눈이 틀렸나. 그럼에도 놀랍다. 고작 인간의 몸으로 적염과 초적염마저 몸 안에 담고 있구나.
보티스는 여전히 태평했다.
하여 이번엔 황태자가 손뼉을 쳤다.
파사의 힘이 다시금 공간을 휩쓸었고 단풍이 몰아쳐 놈의 주변을 감쌌다.
허나 놈은 웃을 뿐이었다.
추악공 보티스, 비록 그를 따르는 세력과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진 못했으나 본래 강력한 존재.
지금 지닌 힘만으로도 모두를 위협할 정도.
-소용없다. 인간이여. 그 장난 같은 손뼉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보아하니 강철을 품어 많은 불을 감당할 수 있었구나. 놀랍다, 아주 놀라워… 그러나.
뚝.
놈의 말이 멈춤과 동시에 몰아치는 단풍과 파사의 울림이 멈추었고.
-소용없다. 절망적이게도.
모든 것이 굳었다.
몰아치는 단풍도, 퍼지는 파사도, 심지어 인간들의 움직임과 세계수를 덮은 세 불꽃마저.
그 생경한 풍경 속을.
놈은 그저 걸었다.
몸에 닿는 단풍이 산산이 부스러졌고 파사의 진동이 일그러졌다.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모두가 멈춰 있는 사이를 참 편하게도 걸었다.
제 힘을 자랑하듯이.
하여 세계수의 앞에 선 악마 보티스가.
-오랜만이로구나. 미련한 나무.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의 자식들을 내 노예로 삼아 교육시켜 주겠다고 말이야.
재수없게 웃었다.
슬금슬금 뽀얗게 드러난 몸통을 쓰다듬는 손이 미끌거리듯 역겨웠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세계수와 간단한 재회를 나눈 악마가.
다시 홀로 떠올라.
-흐음, 퍽 이쁘게도 생겼구나. 놀라워. 아주 놀라워. 순결한 백금발이라 이대로 껍질을 벗겨 장식해 놓아도 아주 만족스럽겠군.
이번엔 황태자를 품평했다.
모욕에 가만히 있을 그가 아니건만.
분명 그렇건만.
어인 일인지 다들 멈춰선 풍경 속, 그 또한 멈추었다.
살기와 광기가 가득한 눈동자를 아까 악마가 선 자리에 고정한 채 그렇게.
보티스가 입을 쭉 찢어 웃더니.
천천히 손가락을 황태자의 유독 빛나는 눈동자로 가져갔다.
-아름답구나. 눈동자에 담긴 감정들이 아름다워. 우선 오만의 대가로 한쪽 눈을 가져야겠다.
그렇게 황태자의 한쪽 눈을 빼내려 할 때.
번뜩, 황태자의 눈동자가 놈을 향해 움직였다.
그래, 황태자는 멈추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멈추어 있는 척했던 것.
덥썩.
이윽고 얼굴 바로 앞에 다가온 놈의 손을 잡은 그가.
살벌한 미소를 피워 내었다.
“잡았다.”
추악공 보티스, 잡을 수 없는 뱀이라 불리는 악마를.
황태자가 붙잡았고.
이내.
푸르른, 싱그러운 봄을 넘어 진한 여름을 닮은, 녹음과 같은 불이 황태자와 악마를 휘감았다.
더 나아가 심장의 고동을 따라 생명력이 약동하며 퍼져 나오기 시작.
세계수마저 감쌌고.
네 가지 불이 형태를 갖추어 잎사귀로 화했다.
이어 새로운 불, 녹염이 나머지 세 불꽃에 스며들자.
생명력을 머금은 잎사귀들이 움트며 날개를 펼치더니.
심장으로 이루어 낸 사색(四色) 나비 수만 마리가 흐드러지게 날아올랐다.
이지러지는 나비 속 마주선 황태자와 악마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멈추었고.
깊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