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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34화 (134/200)

134화 아프지 않습니다

휘두른 망치가 안드레의 팔을 으깬 순간.

“으윽!”

“허업!”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들이 분분히 고개를 돌렸다.

보기만 해도 전해 오는 고통에 팔이 부르르 떨렸다.

특히 자리에 있던 기사들과 전사들의 얼굴이 창백했다.

검을 잡은 자로서 또는 무기를 휘두르는 자로서 팔을 잃는다는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서.

특히 안드레는 한 손 검수.

모든 걸 잃은 것이기나 마찬가지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터.

함께한 이들은 알았다.

지난 영림에서 보았던 실력.

이후에도 끝없는 고련을 거쳐 왔다.

점차 늘어나던 검술이 이제 대가의 위치에 다다르기 직전.

소드 마스터로서의 발돋움을 바로 앞에 두고 있던 때.

팔을 잃다니, 그것도 섬기던 주군에 의해서.

그의 노력과 실력을 알기에 더욱 아픔이 절절했다.

그가 느낄 상실과 충격을 짐작하기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여기 있는 누구보다.

“끄으으윽-!”

안드레가 가장 아팠다.

몸도 마음도.

자신의 상태를 그가 모를까.

늘어난 실력이 기꺼웠고 이번 전투에서도 전하의 능력에 가려 빛나지는 못했으나 충분한 전공을 세웠다.

많은 독충을 베었고 많은 악마를 베었다.

엘프들과의 검술 대결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으며 나중엔 그들을 구하기까지 했다.

항상 황태자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트렁크에 실려도 운전대를 잡아도 기사로서 책무라며 불만 한 번 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굳건히 목숨으로 전하를 지키겠노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고통을 감내하는 그를 바라보는 황태자의 얼굴은 무감정했다.

정말 자신의 주군이 맞는가 싶을 정도.

물론 저런 표정을 자주 보기는 했다.

죽어 가는 적을 마주 볼 때 저러했었지.

항상 뒤에서 보기만 했는데 이리 마주하니 북부의 백설수정보다도 투명하고 차갑구나.

자신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핏발선 눈이 얼핏 비치는 듯도 싶었다.

속에서부터 치미는 의문이 많았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이대로 버려지는 것인지.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의문.

어쩌면 이전부터 숨겨 왔던 불안.

자신은 뛰어난 것 하나 없었다.

맨 처음, 지금의 황태자가 망나니나 다름없던 황자 시절.

어쩌다 벌인 치기 어린 사건이 빌미가 되어 그의 측근으로 발탁되었지.

사실은 변덕이 아니었을까.

본래라면 죽일 녀석을 그저 흥미로 살려 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후엔 어떠했는가.

어린 시절 돌아다녔던 하수구 구역을 태우고 다닐 때는.

자신과 동생들을 키워 주었던 고아원장이 악마의 하수인이었다는 걸 안 순간.

부복하여 빌었던 순간, 악마로 변한 원장 앞에서 무기력했던 순간.

황태자는 첫 햇살처럼 자신을 찾아왔다.

참으로 놀라웠다.

그의 능력과 당당함이.

타고난 고귀한 피 덕일까, 아니면 원래 저런 분일까.

의문이 많았던 시기, 살면서 처음으로 충성이라는 싹을 마음속에 틔웠다.

북부에 막 도착하던 순간 차가운 눈을 맞던 콧대와 고고하게 서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선연했다.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난잡하게 찢어진 열차 지붕 위, 거검에 기대 선 자태가 고귀했다.

북부, 아 북부.

안드레에겐 후회의 땅이었다.

에스키모에게 죽어간 노병, 자신의 스승.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에게 배웠던 검사로서의 마음가짐과 기술만은 진짜였다.

평생 부모 없이 살아온 인생, 따뜻한 보호자 없었던 삶 중에서 가장 어른이었던 사람.

차갑고 매서운 블리자드가 지나간 후, 남은 건 쓸쓸한 영광.

그날 흘렸던 황태자의 눈물을 잊지 못했다.

본인이 가장 아팠으리라.

단단히 굳어 북부를 지키는 의지로 남은 전대 백작을 기억했다.

참으로 고결했다.

기사로서 정신을 배우고 날카롭게 다듬었던 시간이었다.

흑해와 홍련, 검고 붉었던 풍경.

벽에 머리를 들이받던 전하의 모습.

그가 흘리는 피가 참으로 새빨겠고.

그를 막아선 검은 비와 악마들이 참으로 새까맸다.

홍련의 섬에 올라 솔은 첫 제사장이 되었지.

그녀가 이룬 성과와 전하에게 받았던 축복을 축하해 주었다.

떨어지던 섬과 선연한 전하의 웃음.

이후 벌어졌던 세상의 멸망과 같았던 싸움.

홍련 부족의 춤과 황태자가 쏘아 냈던 별무리가 눈앞에 뒤엉켰다.

오래된 기억 같기도 했고 생생한 수채화 같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영림.

지금은 오색화림으로 변한 저주받은 땅.

과거 황태자와 함께 들어갔던 때, 솔이 가면을 하사받았지.

더불어 청익 기사단과 3전투 마법사단 또한 가면의 조각을 받았다.

그때도 그들의 발전을 축하해 주었지.

다른 색색의 가면들과 함께 선 솔의 모습을 보곤 참으로 잘되었다며…….

진짜?

의심이 불쑥 고개를 치켜들었다.

진짜로? 정말로? 진심으로 그들을 축하하고 축복했나?

말간 황태자의 얼굴에 비친 자신의 핏발 선 눈동자.

그들을 이런 눈으로 보진 않았는가.

왜 나보다 늦게 나타난 저들이 저런 능력을 부여받는지 불만을 품지 않았는가.

어째서 솔에게만 능력을 쥐어 주는지 억울하지 않았는가?

정작 가장 오래, 가장 성실히 섬겨 오던 것은 자신이건만.

알프레드의 빈자리가 아쉬우면서도 트렁크가 아닌 운전석에 앉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마음이.

홀로 뒤에서 남들의 영광을 축복해 주던 순수함이.

따뜻한 집안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즐기던 아이들을 바라보던 때와 닮아서 마음이 아려 왔다.

세상의 중심이 아님은 어릴 때 깨달은 사실이나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마저 외면받은 것 같아 서러웠다.

억울한 마음이 폭풍처럼 밀려왔고.

목울대가 울렁이며 흔들렸다.

갑자기 소리가 지르고 싶어졌다.

왜 자신을 이리 불러 치욕을 주느냐고,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거냐고.

차라리 부족하다면 쫓아냈으면 될 일 아닌가.

황태자의 주변엔 뛰어난 이들이 많으니.

북부의 영애는 자신보다 고귀했고.

솔은 자신보다 황태자에게 소용 있었고.

살라스는 자신보다 가까운 전하의 형이자 동료였으며.

알프레드는 자신보다 유능하고 전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이였다.

누구 하나 자신보다 못한 이가 없구나.

심지어, 소피아는 자신보다 훨씬 돈이 많았지.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만 이런 고통과 치욕이라니.

안드레가 막 울분을 쏟아 내려는 순간.

“아.”

울분과 원망 대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나오지 않았다.

뱉을 수 없었다.

비록 앉을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았으나, 심지어 삶의 모든 것이었던 팔마저 빼앗았으나 황태자에게 감히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가 베풀어 준 은혜가 너무나도 컸다.

플라워 밸리, 상상을 빼앗긴 고아들을 보며 흘리던 피눈물.

영림, 마침내 그림자를 깨치고 나아와 자신에게 고생했다 치하해 주었던 인자한 목소리.

그때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주셨었지.

그는 언제고 앞에서 자신을 기다려 주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못된 말로 안드레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몇 번일까.

전투의 와중에서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게.

기사로서 주군을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구함받았다는 게 문득 부끄러워졌다.

무능한 기사.

주군은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터지려던 울분이 가라앉았다.

억울함이 사라졌다.

납득했다.

모든 결과를.

탓하지 않으리라.

자신이 일찍 깨치고 나아가지 못하였구나.

모든 걸 관조하자 남은 건 후회와 아쉬움뿐.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뛰어났다면.

그의 눈가에 가득했던 핏줄이 가라앉았고, 일렁이던 목울대가 잔잔해졌다.

꽤 긴 요동 끝에 뱉어 낸 말은 단순했다.

“제 불찰입니다.”

목소리에 남은 감정들이 비죽비죽했으나 결국은 그뿐이었다.

곧 그마저도 사라졌다.

결국은 따르는 주군이다.

그가 내친다면 내치는 것이고 이끈다면 이끄는 것이다.

버림받았다 해서 따르기로 한 결심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지.

상황에 흔들리지 않자 오롯이 남은 것은 그의 충심.

어느새 안드레의 얼굴도 황태자와 같이 맑고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잔잔한 순풍과도 같이.

그제야.

“좀 바른 표정이 되었군.”

황태자가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잘 자란 자식을 보듯, 올바로 자란 아이를 보듯.

그가 짙게 웃으며.

“보아라, 아프지 않은 걸 아프다 착각한 마음이 문제였다.”

안드레에게 현실을 알려 주었고.

문득 안드레가.

“어? 어어?”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아프지 않습니다.”

뭉개진 팔이 아프지 않았다.

분명 그 거대하고 강해 보였던 악마를 곤죽으로 박살 냈던 망치건만 왜 아프지 않은 것일까.

황태자의 답은 간단했다.

허무할 정도로.

“그야 당연하지. 어느 미친 주군이 충성스런 신하의 팔을 뭉갠단 말이냐. 이 미련한 녀석아. 그렇게 날 못 믿었느냐.”

그저 내가 널 아프게 하지 않았다는 답.

그것만으로도 이 눈앞에 확고한 사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일이건만 안드레는 믿기로 했다.

전하의 말이니까.

황태자의 살랑이는 백금발과 입에 피어난 미소가 아롱졌고.

“글쎄, 먼 옛날 어떤 미련한 폭군은 그랬던 것도 같다만, 그게 나는 아니지. 같은 모습일지라도 품은 뜻과 상황이 다르니, 결과도 다른 법. 아니 그런가, 기사 안드레?”

기사를 부르는 물음에.

“전하의 뜻이 옳습니다. 신 안드레. 잃었으나 잃은 것이 아니오니 여전한 주군의 기사이옵니다.”

그가 선선히 따라 웃으며 마음 깊은 곳 심겨 있던 번뇌마저도 털어내 버렸다.

“너의 팔을 새롭게 빚을 것이다. 주군으로서 내리는 선물이기도 하며 지금 품은 마음과 충정을 끝까지 지키라는 족쇄이기도 하다. 기사 안드레는 받겠는가.”

“받겠나이다.”

“되었다. 마음을 확인하였고 속에 품은 충정을 확인하였으니. 응당히 깃들리라.”

황태자의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손잡이와 철퇴가 얽히더니.

그의 살과 섞였다.

이들을 이어 주는 아교는 황태자가 뿜어낸 녹염.

세계수, 철퇴, 녹염이 서로 뒤엉키고, 뭉개진 안드레의 오른팔과 뒤섞여 수복을 시작했고.

“때가 되면 피어날 거다.”

황태자가 그림자를 붕대처럼 둘둘 감아 주고 나서야.

안드레의 새까만 오른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하게 어린 빛무리들이 마치 밤하늘로 팔을 빚은 것도 같았다.

* * *

안드레의 환한 웃음이 그의 투명한 얼굴을 덮으며 피어났다.

본래라면 전생엔 폭군에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눈에 거슬렸다는 이유만으로 한쪽 팔이 잘려 버려질 운명.

이후엔 반역자가 되어 폭군의 목을 노리다 결국 끝까지 비극적으로 끝날 인생이.

예정되었던 파괴를 맞이했고 마침내 재생되었다.

이 원시림과 같이.

세계수가 제 자식들을 잘라 냈다 새롭게 연을 이었듯.

원시림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윽고 새로운 숲을 형성했듯.

나 또한 안드레의 팔을 부수었다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로써 안드레는 지난 영림에서 영황을 죽여 반역자의 운명을 이루었고.

지금은 팔을 잃을 운명을 이루었다.

같은 상황이나 모든 게 달라졌다.

반역은 자신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으며 팔을 잃고도 원망하지 않으니.

이로써 모든 조건을 만족했고.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안드레의 예정된 운명 상실, 절망, 억울함이 마음에서 떠나갑니다.]

[주요 운명 외팔이를 만족하였습니다. 빈 자리에 비로소 새로운 운명을 새겨 넣을 수 있습니다]

[안에 담긴 신비와 힘이 새로운 형상을 이루어 갑니다. 그의 주요 운명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결합하여 더욱 위대한 경지로 나아갑니다!]

[주요 운명 계승자가 새로운 신비를 키워 나갑니다!]

[기사 안드레의 운명 충심, 헌신,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강건한 의지가 그의 몸에 깃드는 새로운 신비를 단단히 굳힙니다!]

그의 팔에 새로운 운명들과 신비가 깃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둑한 그림자에 쌓여 있다지만 언젠가 때가 오면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날개를 펼치듯.

새로운 팔이 위력을 떨치리라.

벌써부터 움틀대는 운명을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싶었다.

그만큼 그의 충심이 깊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간 해 온 노력이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로소 외팔이 반역자를 온전히 얻었으니.

그가 어떤 기사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

물론.

“어, 전하. 손가락이 좀 부족합니다만?”

충심이 깊어지고 신비를 하사 받았다 하더라도 저놈의 주둥아리는 어디 가는게 아니었고.

안드레가 제 팔을 삐걱거리며 나에게 불편함을 호소했다.

저놈 운명 중에 주접이 없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그, 좀 왼팔보다 과하게 두꺼운 것도 같고 길이도 좀 어긋난 거 같고… 말입니다.”

“뭐, 그래서 못 쓸 정도 아니잖아.”

“이건 못 쓰죠. 팔꿈치가 밖으로 휘잖아요.”

“줘도 지랄이야.”

끼리릭, 밖으로 굽는 팔이 기괴했다.

놈의 애처로운 표정에 혀를 차고는 결국 뚝딱뚝딱 망치질을 다시 해 주었고.

“손가락이 하나 부족하긴 한데. 나중에 따로 뽑죠. 뭐.”

나름 만족한 안드레가 물러났다.

“정말 괜찮은 거야? 정말로?”

세계수가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황당하단 목소리로 물었으나.

몇 번 검을 휘둘러 본 안드레가.

“새끼가 없으니 편한데요? 힘도 더 들어가고.”

오히려 좋습니다.

만족하니 뭐 할 말이 있겠는가.

나야 뭐 말할 것도 없지.

“다 뜻이 있었느니라.”

내 당당한 표정에 세계수는 기괴한 신음을 안드레는 역시! 하며 감탄을 표했다.

그렇게 안드레에게 새로운 팔을 부여해 준 뒤.

언덕에 서서 모두를 둘러보았고.

“…….”

다들 내 시선을 피했다.

몇몇은 슬그머니 제 팔을 뒤로 숨기기까지 했다.

문득 심술궂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굳이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안드레에게 펼친 방법은 그야말로 극약 처방.

나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팔을 잃었을 터.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 만큼 커다란 보상을 받겠지.

결국은 나의 수족이니 나의 힘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 가득한 나무들의 소유가 나에게 있다는 건 알겠지.”

“갑자기?”

“비료도 내가 주었고 키우기도 내가 키웠고 엘프들을 혼낸 것도 내 공이다. 넌 그냥 나뭇잎만 흔들었잖아.”

“치사하게 이러기야? 땅값 정도는 쳐줘.”

“너흰 너희 땅에서 날 대신해 내 나무를 키우는 것이다. 그게 새로운 맹약이지. 넘치는 자원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으나. 소유는 확실히 하자고.”

진생철퇴로부터 피어난 새로운 원시림 또한 마찬가지.

“원시림에 자라는 것은 나의 것이다. 세계수.”

“그래, 마음대로 해. 그런데 저 신철목들을 어떻게, 다듬을 순 있고?”

세계수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장인들의 얼굴에 곤란하다는 표정이 어렸다.

엘프들은 본래 나무를 다듬지 않아도 원하는 모양으로 키울 수 있다.

그들이 정원사라 불리는 이유.

원한다면 검의 모양이든 도끼의 모양이든 더 나아가 활과 화살도 만들 수 있겠지.

그들은 다듬는 자가 아니라 키우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다듬고 깎고 잘라 내야 하는 족속.

문제는 세계수가 신철목(神鐵木)이라 지칭한 은빛 나무들.

저것들을 다룰 기술이 인간에겐 없었다.

내가 북부에 만든 불의 샘과 서부 사막의 오색 모래를 원동력으로 삼는 장비들로도 어쩔 수 없는 나무.

훨씬 고도의 기술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다.

어떻게 아냐고?

꼰대의 설명에 따르면 그랬다.

내가 뿌린 전생철퇴가 어떤 나무가 될지, 얼마나 훌륭한 멸악(滅惡)의 재료인지 장장 며칠간 설명을 들어야 했으니까.

그간 요령이 생겼는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겠다던가.

뭐 그래도 잔소리와 자기 자랑을 듣는 대가로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다듬을 수 있는 자들을 찾아야지.”

“다듬을 수 있는 자?”

유일하게 신철목을 다룰 수 있는 자들.

문득, 아직 하늘에 머물러 있는 플라잉 해머 호를 올려다보며.

“북부를 떠난 지 오래되었군.”

지난 시간 마주했던 매서운 추위를 떠올리자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명 후텁지근한 남부 원시림에 있건만 속에서부터 치민 한기에 입김이 피어오르는 기분.

“영애, 준비해라.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북부로 간다.

산맥 깊은 곳에 숨어 있을 난쟁이들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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