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35화 (135/200)

135화 반가운 인사

지난 며칠 간, 세계수 옆에서 눈을 감고 치미는 녹염을 제어하던 중.

“나무의 부드러움과 생명력을 담은 철이자, 철의 단단함과 날카로움을 닮은 나무라 할 수 있지.”

갑자기 나타난 건국제의 신철목에 관한 설명은 이러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식물이자 광물이지. 모두가 탐을 낼만큼. 생각해 봐라 계속해서 자라나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무엇인가를.”

참으로 위대한 물건.

식물이라 하기엔 광물의 속성을 가졌고 광물이라 하기엔 식물처럼 자라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파리는 강한 생명을 품어 회복약의 중요한 재료로 쓸 수 있을 정도요. 열매는 비약 그 자체이고 뿌리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악한 기운을 정화한다. 단 한 그루만 있어도 가문의 보물로 여겨지고도 남는 물건이야.”

신철목은 어디 하나 버릴 구석이 없어 그 껍질 조각조차 거금으로 거래했다는 희소식.

드는 의문 한 가지.

“신철목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라면 왜 지금껏 남아있지 않은 겁니까? 심지어 황가 비고에도 그런 기록은 없었는데요.”

왜 아무도 신철목에 대해 모르는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고에 있는 대부분의 자료를 읽어 보았음에도 심지어 추악공 보티스를 죽이는 방법마저도 그곳에서 찾았음에도 신철목에 대한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았다.

“보티스를 죽이는 방법? 그걸 비고에서 찾았다고?”

오히려 건국제가 의문을 표했다.

“신철목에 대한 증거는 이미 네 눈앞에 가득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기록이 사라졌다니? 그 귀한 것이 잊혀졌다고? 그럴 리가.”

신철목에 대한 증거가 가득하다는 말.

심지어 기록이 없다는 말도 믿지 못하는 모양.

이게 무슨 소리일까.

어찌된 영문인지 물으려 할 때.

“아, 일단 보티스를 죽인 방법부터. 대체 나도 못 죽인 악마를 어찌 그리 쉽게 죽였느냐. 그러면 나도 답해 주마.”

아, 꼰대가 진화해 버렸다.

여러 번 당하더니 날 상대할 새로운 방법을 찾은 모양.

입가에 피어난 득의양양한 미소가 괜시리 맘에 들지 않았고.

“음, 으음. 그래 알려 주면 나도 알려 주마. 그러고 보니 요 고얀 후손은 항상 지 들을 것만 쏙 듣고 도망간단 말이지.”

가락을 덧붙여 내뱉는 잔소리가 더욱 약을 돋구었다.

“그렇게 노래 붙이는 거 아저씨들이나 하는 겁니다.”

“이미 죽어 백골이 된 지 오래인데 아저씨든 할아버지든 무슨 상관이냐? 왜, 넌 아저씨가 안 될 거 같으냐?”

“대체 어디서 그렇게 말빨 살리는 법을 배워 오셨습니까?”

“네 녀석에게서 배웠지. 짐작컨대 네 녀석이 내 아들이었으면 여러 번 쓰러졌을 거다.”

크헤헤, 드디어 승리했단 기쁨에 취해 웃는 건국제를 외면하며.

“동화를 보았습니다.”

보티스를 죽일 방법을 어디서 찾았는지 솔직히 답했다.

동화라는 황당한 말에 건국제의 입이 살며시 벌어졌다.

“보티스는 추악한 뱀, 과거 거대한 나무에 기생하여 살았다더군요. 어느 여인에게 나무에 달린 과실을 먹으라 유혹했다가 그리 추악해졌다던가요.”

“아, 그랬지. 그런 신화가 있지.”

전생, 보티스가 남부를 넘어 수도 근처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때.

놈을 죽이기 위해 온갖 문헌을 찾아보았고.

결정적 힌트를 얻은 곳은 역사서도, 마법서도 아닌 비고에서 찾아낸 아주 낡디 낡은 동화 한 권.

누가 넣어 놨는지, 누가 썼는지도 모를.

거기엔 이리 적혀 있었다.

“내용을 축약하면 약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망치를 들고 뱀의 머리를 으깼다. 그래도 죽지 않아 나무와 함께 으깼다고 적혀 있었죠. 제가 했던 것처럼요.”

“…그걸 하나만 믿고 그런 짓을 벌였단 거냐?”

건국제의 황당하단 표정에.

어깨를 으쓱이곤.

“적도 그걸 믿고 보티스를 세계수 주변에서 부활시키지 않았습니까.”

“아-.”

합당한 이유를 뱉었다.

많은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보티스를 죽이기 위해선.

첫 번째로 껍질을 벗겨 그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낼 것.

두 번째는 놈이 저주를 받았던 거대한 나무, 특히 생명력이 가득한 나무 위에서 놈을 때려죽일 것.

사실 어떻게 보면 가정에 모든 걸 걸은 도박에 불과했으나.

“모든 증거가 한 가지를 가리켰고 해냈을 뿐입니다.”

모든 증거가 이 방향이 옳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전생엔 껍질을 벗겨 내어 이를 확인했고 이번 생엔 추수꾼이 굳이 원시림과 엘프, 세계수를 선택한 이유를 고민했다.

그리고 보티스를 만난 순간 확신했다.

놈의 힘은 세계수를 차지해야만 진짜 회복되는 것이라는 걸.

신화는 그들의 삶.

신비를 지닌 이가 명분과 의지를 지켜야 이를 유지할 수 있듯.

세상의 법칙을 벗어난 존재들이 다시 현현하기 위해선 과거의 역사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알리굴은 마약을 계곡에 풀었고.

추수꾼은 가장 신성한 나무가 존재하는 원시림에 보티스를 잉태시켰으리라.

지닌 역사를 통해 힘을 획득하려는 만큼 이를 역이용하여 놈을 응징한 것.

기회의 땅은 곧 가장 위험한 땅.

그리 어려운 논리가 아니었고.

실제로 세계수 위에 올라선 놈을 내리친 결과 보티스의 생명을 완전히 거둘 수 있었다.

“만일 통하지 않았다면? 그땐 또 다른 방법으로 놈을 죽였겠죠. 결국 죽는 건 똑같았습니다. 제가 놈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놈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떻게서든 죽였으리라.

실제로 진생철퇴에 보티스의 껍질과 본체 일부를 세겼으니까.

세계수 위에 있어서 일이 쉬웠을 뿐이지, 시간을 들여 며칠이고 놈을 두들겼다면 결국 연옥 속에 놈을 가둘 수 있었을거다.

팔이 좀 아팠으려나.

“으음, 뭐 진생철퇴와 녹염을 지닌 채로 만났다면 세계수 없이도 가능하긴 했겠군. 나는 녹염만 갖고도 훌륭히 상대했으니 말이야.”

꼰대의 자기 자랑을 끝으로.

“이제 대답해 주십쇼. 신철목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실전된 기술이 있는 겁니까? 그리고 신철목에 대한 증거라뇨.”

나의 물음에.

“오랫동안 보아 왔지. 가장 커다란 신철목을.”

건국제가 삐죽거리는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황궁 강철성. 정녕 그 모든 것이 신철목으로 만들었음을 몰랐더냐?”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강철성은 본래 한 그루 신철목이었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네가 이야기한 보티스가 살았던 나무기도 했지. 신화에 따르면.”

강철성으로 탈바꿈하기 전, 신화시대부터 남아 내려온 죽어 있던 나무였노라고.

“원래라면 화려한 은색을 뽐냈겠지만 죽은 밑둥만 시커멓게 남아 쓸쓸했던 장소였지. 누구도 살지 않는 폐허 위를 제국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 위에 깃발을 꽃은 것이 바로 건국제 카이론.

신화시절부터 존재했던 의미 깊은 곳에 강철성을 세우고 인간이 둥지를 틀었으니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참 무모하고 위대한 짓.

후손이 존경을 담아.

“은근슬쩍 잘난 척 그만하시고 얼른 정보부터 주세요. 그래서 신철목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말입니까.”

답을 재촉했다.

이 아저씨가 자꾸 딴길로 새고 있어.

“이놈아 원래 이야기엔 흐름이라는 게 있는거다!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려 했더니만 으이구, 으이구! 이런 놈을 내 후손이라고!”

건국제가 답답한 가슴을 퉁퉁 치고는.

“인간은 못 다룬다.”

“에라이, 이 씨-.”

“대신 다룰 수 있는 종족이 있지.”

“누굽니까.”

“방금 발까지 들린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

“…왜요, 뭐요.”

잠시간의 대치.

“여튼 신철목은 너무 뜨거우면 타 버리고 그냥 다듬기엔 너무 단단하다. 인간이 다루기엔 너무나 섬세한 기술과 고도의 장인 정신이 필요하거든. 신비에 준하는 실력이 필요하지.”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는 거군요.”

“그런 장인이 신비에 가까운 실력을 발휘하여 다룰 수 있는 나무는 한 그루 정도. 그마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론상 가능할진 몰라도 실질적인 결과는 차이가 꽤 있으니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저 예민한 신철목을 다룰 정도의, 신비에 가까운 기술을 품은 자가 누구입니까. 한 명으론 어림도 없다면서요. 강철성을 짓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거 같은데.”

“혼자가 아니라면? 신비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장인이 바글바글하다면?”

그의 말을 따라 어디선가 망치질 소리가 울렸다.

그래, 오래 전 대륙에 그런 자들이 있었다지.

겁에 질려 저들의 크기와 위대함을 버리고 땅속으로 숨었다던.

“그런 족속이 대륙엔 존재하지. 겁이 많은 만큼 놀라운 손을 가진 이들이.”

“드워프.”

“그래, 맞다. 멸망을 피해 달아난 난쟁이들.”

드워프.

최고의 손기술에 반해 겁이 많아 땅에 숨어 산다는 족속.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워낙 오래라 잊혀졌건만.

“그들이 죽은 신철목을 다듬어 주었다면 그들을 만났단 이야기로군요. 어떻게요? 어떻게하면 난쟁이들을 구워삶을 수 있습니까?”

“그 답은 네가 찾아야지.”

이번엔 건국제가 어깨를 으쓱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겁이 많은 족속을 어떻게 설득했기에.

“평소 네 녀석이 하던 협박은 통하지 않음을 알지? 겁도 많지만 고집도 세거든. 그 빌어먹을 자존심은 어떻고. 신철목만큼 다루기 어려운게 놈들이었다.”

“협박하면 도망가고 가두면 자살하고, 무시하면 함정을 판다 했죠.”

“그래, 동화에 나오는 엘프들이 거짓인 것처럼 놈들도 마찬가지. 위대한 장인은 개뿔. 옹졸한 좀생이들이다. 놈들은.”

“그래서 어떻게 그들을 꼬드겼습니까?”

“교환했지. 나는 그들의 집을, 그들은 나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산맥, 강철성을 만드는 대가로 드워프들에게 북부 산맥을 준 겁니까?”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건 문헌으로도 안 남겨 놓았는데.”

의아한 눈길을 스윽 피하며 모른 척 눈동자를 굴렸다.

전생, 에스키모에게 북부를 먹힌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드워프들이 피난을 시작했으니까.

그들이 다루던 기계장치들을 향해 달려들던 악마들과 놈들을 밀어내던 드워프들의 고함이 기억났다.

산맥 깊은 곳에서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었을 뿐.

나중에 북부 깊이 들어간 바이올렛이 그들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소식까지가 마지막.

이후에는 무너지는 제국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모두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지.

산맥에 숨어 살던 드워프들도 그들과 함께했던 북부 해방군도.

차가운 블리자드 속에서 죽어 갔단 이야기를.

이걸로 정보는 충분히 모았다.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게? 좀 더 이야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요.”

“그래, 기다리는 사람이 많긴 하더라. 그 평민 기사에겐 신비라도 줄 생각이냐? 녀석 충심이 꽤 깊던데.”

“시험을 하나 내릴 겁니다. 통과하면 신비를 얻을 테고 통과 못 한다면 팔을 잃겠죠.”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 벌이는 것이겠지. 너 은근히 모험 안 하잖냐.”

“…….”

“왜, 찔리냐? 너무 맞는 말이라?”

“건국제께서는 만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이겨 보려고 하는데 못 이길 운명이라면요.”

이번 엘프와의 비화를 듣고나자 새삼 그가 겪어 온 인생의 굴곡이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고.

내심 그라면 내가 전생에 겪었던 멸망을 어찌했을지 궁금했다.

물음에 잠시 입을 움직거리던 그가.

“못 이길 운명은 없다.”

“없는 겁니까?”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환히 웃었다.

“못 이겨도 이겨 내야지. 그게 황제가 할 일이다.”

“부서져도요?”

“부서져도. 처참히 깨져도 다시 일어나 마침내 이겨야지. 그러려고 강철이 되어 단단해졌고, 그러려고 불꽃이 되어 타올랐고, 마침내 대륙을 질타했다. 의심하지 마라. 네 앞에 무엇이 놓여 있던 당당히 마주해야 한다.”

“멸망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요?”

이번엔 건국제가 놀랐다.

“멸망과 죽음이 제국 앞에 놓여 있더라도 당당히 마주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의 얼굴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짙은 어둠과 밝은 광휘가 교차하며.

“더욱 즐거운 일 아니냐.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지고 타오르고 질타할 테니. 기껍고, 먹음직스러우며, 멋진 위기로다.”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한 압박이 몸을 짓눌렀다.

점점 커지는 건국제의 몸이 마치 산처럼 하늘을 가렸고.

그가 굽어보는 시선이 타오를 듯 뜨거웠다.

시대를 바꾼 초인의 진면목.

오히려 위기 앞에서 타오르는 열망과 갈망.

그는 바랐던 거다, 자신이 날뛸 수 있는 세상을.

“모두의 앞에서 넓은 등으로 가려 주어야지. 멸망은 홀로 알면 그만이다. 난 모두를 이끌고 그 속에 뛰어들어 이겨 내리라. 깨지고, 터지고, 으깨지더라도! 그게 내가 품었던 의지고, 신비의 발현이다!”

건국제의 목소리가 벽력처럼 울렸다.

멸망이 앞에 있다면 황제로서 이를 가려 주겠다.

설령 그것이 따르는 이들을 속이는 짓이라 할지라도.

왜냐면 그가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설 테니까.

“후손의 답은 무엇인가?”

굽어보는 물음에.

“물론. 아니.”

나 또한 더욱 광기 어린 미소를 품었다.

뛰는 심장과 몸을 내달리는 피가 뜨거웠다.

“죽더라도 되살아나 멸망을 막을 거다. 난 건국제가 아닌 새로운 황제가 될 것이며 제국은 새로운 탄생을 맞이하리라. 그대가 세운 제국의 기초만을 남긴 채 부수고 태워 새롭게 탄생시키리라. 그게 내 결심이다.”

내 선언에 비로소 건국제의 크기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좋은 대답이다.”

“가겠습니다.”

“그래, 드워프들을 설득한 방법은 생각했고?”

“네, 간단하죠.”

간단하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건국제의 얼굴이 마지막.

답을 알려 주진 않았다.

문득 눈을 떠 보니.

“전하. 북부 산맥! 산맥에 도착했어요!”

솔의 호들갑이 울려 퍼졌다.

하늘을 유유히 나는 플라잉 해머호 바깥, 하얗게 눈에 덮힌 거친 산맥이 보였다.

창문을 날카롭게 두들기는 눈발들이 반가웠다.

북부에 도착했다.

“그들의 탄생, 그걸 이용할 생각입니다.”

뒤늦은 답을 홀로 중얼거리고는.

“문을 열어라!”

대뜸 플라잉 해머호의 문을 열라 소리 질렀다.

가득한 마법식과 장치들, 고급스런 내장재에 아직도 감탄하며 안을 구경하던 이들이.

“네?”

“문을요? 여기서요? 지금요?”

놀라 반문했다.

그럴 만도 하지.

밖은 산맥 꼭대기가 보일 만큼 높은 하늘.

문을 열라니, 대체 무엇을 위해?

“오랜만에 보는데 환영식을 제대로 해 주어야지.”

씨익 못된 웃음을 짓고는.

“안 열면 부순다. 열어. 살라딘.”

결국 협박에 못 이긴 살라스가 문을 열었고.

후우우웅-!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플라잉 해머호 안을 헤집었다.

뒤섞이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나머지는 나중에 따라오도록-!”

당장 몸을 밖으로 날렸고.

“영애! 망치!”

이젠 물건 보관함이 된 바이올렛이 다급히 공간을 열어 진생철퇴를 던져 주었다.

손에 감기는 묵직한 감각과 몸을 때리는 거친 바람.

아아, 보였다.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깊은 곳에 아집, 두려움, 미성숙, 열등감이 단단히 뭉쳐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을 조롱하는 악의와 채찍질하는 악의가 존재합니다]

산맥 깊은 곳에 담긴 운명이.

떨어지는 몸에 열기가 올랐고.

곧 녹염을 몸에 휘감았다.

새싹처럼 이지러지는 불꽃이 넝쿨이 되어 하늘을 수놓았다.

그 마지막, 떨어져 내리는 힘까지 더해 망치를 찍어 내리자.

콰아아앙-!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산맥 꼭대기에 터지듯 솟아나더니.

우르르르-

산맥 가장 높은 산을 뒤덮은 만년설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며 눈사태를 일으켰다.

초록 불꽃, 거대한 폭발을 신호 삼아.

“백작-! 오랜만이다!”

눈에 휩쓸려 내려가는 백작을 부르니.

으아아아-! 이 미친-!

백작이 건네는 반가움이 담긴 인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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