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천국으로 향하는 입구
“어?”
발자크가 의문을 표하며 검 손잡이를 쥐었던 손을 슬며시 떼어 냈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
당연히 드워프들의 폭동을 예상했건만.
황태자의 말은 신하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폭언.
만일 과거 첫 만남에 자신에게 녹슨 부품이라 말했다면.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검을 꺾고선 깊은 산으로 들어가 버렸으리라.
뭐 지금이야 그 이유를 묻겠지.
왜 그렇게 성이 나셨냐고, 피가 필요하시냐고, 어디서 깰 머리통이라도 하나 대령하면 되겠냐고.
그러면 좋다 웃으실 전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황태자를 처음 만난 상태.
그의 성격이 어떤지 그의 폭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모를 테니.
당연히 성을 내리라 예상했고.
“다들 모루를 가져와!”
“무기의 주인을 만족시키는 자 대장인이 되리라!”
“검과 날카로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떠들어 대는 장인들의 눈에 열망과 광기가 엿보였다.
무엇이 저들을 저리 만들었는가.
황태자가 땅에 꽂아 둔 검?
아니면.
“장인전이다!”
“장인전! 장인전을 알려라!”
장인전이라는 말 때문에?
드워프들이 수염 가득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었고.
곧 그들의 거주지 철옹성 내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 본 적이 있다.
강철성.
그제야 백작이 간혹 방문했던 황성의 풍경을 떠올렸다.
이리 자유자재로 움직였었지.
아니 지금 보이는 풍경이 더욱 다채로웠다.
마치 파도가 너울거리듯 자잘한 공간들이 일렁였고.
곧 단단하게 뭉쳐 들기 시작.
“전하!”
황태자의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모래가 뭉쳐 바위가 되듯, 발아래에 깔린 철과 톱니가 단단한 언덕이 되었고 곧 기름이 혈관이 되어 흘렀다.
그 가운데에는 거검과 함께 선 황태자.
이미 불꽃이 검과 함께하니.
어느새 돋아난 땅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고.
주변 건물들이 모여들어 단단한 모루를 형성했다.
“풀무를 일으켜라!”
어느 드워프의 외침에 쉬이이이-! 기관들이 이리저리 맥동하기 시작.
맹렬한 불이 모루 위에 방울방울 맺혔다.
장인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망치와 도구를 들고 위에 올라 불 앞에 자리했다.
얼굴에 서린 결의와 열망이 주변 가득한 불꽃만큼 뜨거웠고, 기름만큼 끈적였다.
그렇게 모두가 준비를 끝마쳤을 즈음.
“주인께서는 가진 드워프의 작품을 모루 위에 놓으시오.”
대장인이 선조들이 선물한 무기를 요구했고.
황태자가 브레이커를 쥔 손을 놓자.
모래 속으로 빠져들 듯 거검이 스르륵 모루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브레이커를 삼킨 모루가 더운 숨을 헉헉 뱉어 내길 잠깐.
장인들의 앞에 같은 모양을 한 거검들이 솟아났다.
브레이커.
같은 모양새를 한 브레이커 수백 개가 그들 앞에 등장.
곧 장인들이 이를 이리저리 두들기고 해체하기 시작.
모두가 진지한 얼굴들.
누군가 직접 부순 브레이커를 뜨거운 불에 던져 넣고는 손을 뻗자.
같은 모양의 거검이 다시 솟아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작의 탄성과 알프레드의 침묵.
반응은 달랐으나 놀람은 같았고.
* * *
“드워프들다운 방법이로군.”
나 또한 솔직히 감탄했다.
브레이커의 구조를 분석하여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내다니.
일종의 마법사들이 하는 계산식과 상상 실험을 실제로 구현한 효과.
누군가 실질적인 성과를 일궈 낸다면 그때서야 브레이커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대체 어떻게?”
아스불라의 의문이 들려왔다.
“무엇이.”
“이번에도 어떻게 당신에게 길을 열어 줄 것을 알았으며, 어떻게 대장인이라는 걸 알았고, 어떻게 우리의 불만을 알았고, 어떻게 장인전을 알았습니까.”
당장 검을 다루는 것보다도 궁금한 모양.
별것 아니었다.
“너희들의 자부심을 알았고, 희게 센 수염과 풍기는 철냄새를 맡고 알았고, 반질반질한 손톱을 보고 알았으며, 난 그저 최고를 정하겠단 말을 했을 뿐이다. 알아서 장인전을 열라 발작한 건 너희들 아니냐.”
“발작…….”
“그래,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이 발작이 아니면 뭐냐.”
“끄응, 맞긴 한데… 나름 대장인을 정하는 신성한 의식입니다만.”
“의식은 원래 광기와 열기로 치르는 거다. 나쁜 말론 발작, 좋은 말로 의식이지.”
“좋은 말로 해 주시면 안됩니까?”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죄송함다.”
아스불라가 어림없는 청을 했다는 걸 깨닫고는 슬며시 물러섰다.
그리곤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었다.
주변 가득 장인들이 철을 두드리는 모양새를 보자니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
“가서 참여해라.”
“정말입니까?”
“안내자 역할을 다했으니 기회를 주어야지.”
“감사합니다!”
아스불라가 총총 걸음으로 비어 있는 불 앞에 서서 브레이커의 복제품을 들어 살피고는 망치를 두들기기 시작.
“어쩌시겠습니까.”
알프레드가 물어왔다.
아마.
“걱정되나. 다른 이들이.”
나를 따라 떨어져 내렸다던 다른 이들이 걱정되는 모양.
공간 속을 헤매는 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명령하시면 가서 구출해 오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알프레드와 백작의 설레발에.
“아서라, 난쟁이와 홀쭉이가 어딜 가서 누굴 구한다는 거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른 이들 또한 이미 실력으론 일가를 이룰 만한 자들.
과한 걱정이다.
알아서 제 길을 뚫을 동안,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하여 멍하니 불을 바라보는.
“낡은 부품.”
대장인을 불렀다.
그가 흠칫 어깨를 떨며 이쪽을 바라보았고.
“어차피 두들기지 않을거면 같이 움직이지 그러나.”
동행을 제안했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얼굴이 과거 보았던 것과 겹쳤다.
그때는 분노과 절망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공허와 미련함이 가득하구나.
“이름은?”
“알렉세이.”
“좋아, 낡은 부품. 내가 검 말고도 또 찾아야 할 게 있거든. 찾아야 할 녀석들도 있고.”
“방금 이름을 말했는데?”
“원래 이름으로 안 불러.”
당당한 대답에 헛웃음 짓던 대장인 알렉세이가.
“근데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브레이커는 영원한 검이자, 날카로움이며, 열쇠. 제국의 영광을 두고 굳이 이런 깊고 위험한 곳에 온 이유를 모르겠군. 설마 밖에 무슨 일이 있나?”
근심어린 표정으로 걱정을 표했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다고 뭔가 이상함을 짐작한 모양.
주변 가득 망치 두들기는 소리와 더불어 거세게 타오르는 풀무불을 배경으로 드워프의 귓가에 대고.
“잘 들어라. 난 대장인과 나머지 부족 모두 모을 작정이다.”
앞으로 할 일을 작게 속삭여 주었다.
“하여 너희들에게 망가진 집에 대한 보상을 받아 내고 새로 계약을 맺을 생각인데 어때?”
망가진 산맥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브레이커를 제대로 변화시켜 주기만 하면 새로운 거주지의 주인으로 세워 주지. 사실 알고 있지 않나? 이 공간이 얼마 가지 않을 것임을. 그러니 안내해.”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하며 달콤한 제안을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드워프가.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미끼를 물었고.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지. 그 늙고 낡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보라고.”
놈에게 과제를 부여하자.
“…좋아. 주인이 될 욕심은 없어 그저-.”
쫓겨나지만 않게 해 줘, 어디든 머리 누일 곳을 있어야지.
새로운 의지가 낡은 몸을 타고 번졌다.
언제쯤이었더라.
“과거의 약속이며 건국제의 결의 아닌가! 드워프들은 북부 탈환에 힘 써 줄 것을 요청하는 바!”
강철성에 한 난쟁이가 찾아왔다는 기록을 보았다.
과거 건국제와 약속의 증표로 헌신한 묵색의 강철성.
그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자와 마주하는 알현실에서 소리를 질렀다지.
저들이 북부에 갇혔다며.
다시 산맥, 저들의 집을 되찾지 못하게 되었다며.
“새로운 집을 구해 준다면 내가 가진 기술 모두를 주겠소!”
드워프로서 가진 기술을 모조리 주겠다는 말은 목숨을 주겠다는 의미.
지금 이 철옹성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도 유혹받지 않을 이가 누굴까.
하나.
“뭣들 해. 저 역겨운 난쟁이를 당장 치워라.”
당시 황좌에 앉아 있던 것은 내가 아닌 폭군.
“아니지. 살 곳이 없다고 했나? 그럼 황성에 머무르는 건 어떠하냐.”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광대로 쓰면 딱이겠어!
폭군은 갈 곳이 사라져 북부를 떠도는 그들의 처지를 비웃으며 황성까지 먼 걸음한 한 드워프를 내쫓았고.
목숨과 자긍심, 자존심과 두려움 모두를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온 드워프들의 수장.
대장인 알렉세이는 모욕을 받고선 돌아갔다는 서기관의 기록을 보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당시 기록을 읽으며 얼마나 분노를 토해 냈는지.
마음같아서는 당장 놈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굴러 들어온 회생의 기회를 이딴 식으로 차버리다니!
저들의 기술이 얼마나 위대할지, 지금 당장 위기에 처한 제국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값으로 따질 수 없었던 기회.
이후.
“찾아! 드워프 알렉세이를 어떻게 해서든 찾아!”
내 나름 모든 힘을 동원하여 사라진 드워프를 찾아나섰으나.
이미 차가운 동토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넓은 제국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찾아 드워프들을 돕고자 했다.
하나 에스키모에게 먹힌 동토에서 들려온 소식은 드워프들의 패망.
저들의 몸을 보호하던 무구와 장치들이 부서진 채 설원에 나뒹군다던 보고.
그리고 밝혀진.
“죽은 드워프들의 몸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합니다.”
드워프들의 본래 정체.
막바지에는.
“산만한 시체가 설원에 가득하며 에스키모들이 그 주변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다 합니다.”
죽고 나서야 거인의 모습을 되찾은 드워프들이, 에스키모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비극적 결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들이 남긴 무구들과 장치들을 야금야금 훔쳐 망해 가는 제국을 유지하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그러던 어느날.
“찾았다고 합니다! 과거 황성을 방문했던 드워프의 흔적을 찾았다는 보고입니다!”
“당장, 당장 가져오라 이르라.”
정보부에서 알렉세이가 남긴 흔적을 찾았고.
그가 발견된 곳은.
“동북부 수정궁에서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바로 공작가 가장 깊은 수정 속이었다.
반역의 누명을 쓰고 멸문당한 공작성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과거 폭군은 북부와 서부가 패망한 후, 태후를 잘라 내기 위해 동북부와 동남부 전체를 전대 황제를 죽인 반역 세력으로 규정.
모조리 멸문시키기에 이른다.
가관이었다.
본인이 죽인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노라고 외치는 뻔뻔함.
지금 짐작하건데.
악마 세력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리라.
유일하게 악마에게 대항할 만한 강자를 죽이려는 계략도 겸사겸사 포함되었겠지.
폭군을 지원하는 보티스와 추수꾼, 태후와 동남부의 악마들, 수정거북이라 불리는 대마법사의 삼파전이었을 터.
물론 결국 승자는 악마였고 패자는 인간.
벌건 피로 물든 수정궁에 마지막 드워프가 잠들어 있었고.
기록엔 분명.
- 후대를 위하여 기록과 더불어 기술을 남긴다.
미래를 위한 안배가 적혀 있었다.
공작과 알렉세이는 멸망 이후를 대비했던 거다.
언젠가 다시 건국제와 같은 위대한 영웅이 등장하는 순간.
단단한 수정 가장 깊은 곳에 잠든 장인이 다시 깨어나 자신이 가진 지혜를 모두 전수해 주리라.
그리고 알렉세이가 수정에 남긴 기록엔.
- 드워프는 본래 거인이었으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곤 산 깊은 곳으로 숨었고.
나 또한 멸망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수정 깊은 곳에 숨었다.
후손들아, 악마들을 물리친 영웅들아.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다오.
여기 나, 검과 날카로움을 벼리는 부족의 대장인이자, 가장 못난 드워프였던 알렉세이가 남기는 기록이다.
드워프의 탄생과 섭리, 그들의 멸망 이유와 산 깊은 곳에서 벌어진 비극, 그가 선택한 희생에 대해 적혀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대, 유독 멸망을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거인들이 있었다 한다.
그들은 인간을 먹기보단 살리기를 택했던 자애로운 이들.
남의 피와 살을 양식 삼지 않으니 거대한 머리와 눈이 자연의 섭리를 꿰뚫었더라.
넘쳐 나는 악마들과 혼란스러운 현재 속, 먼 미래에 찾아올 멸망을 예언했고.
멸망을 피해 산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 그 깊은 곳, 멸망을 대비하여 긴 세월을 보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 생각했으나, 사실 침묵과 단절은 끝없는 나선이었고, 위대한 크기를 자랑했던 거인들은 나선을 따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작아졌다.
그렇게 우린 난쟁이가 되었다.
동화와는 달랐다. 처음부터 작지 않았단 드워프의 고백.
침묵과 단절이라는 나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그들은 과거의 지혜를 잃었고.
과거보다 못한 현재가 자리 했단다.
겁쟁이가 되어 버린 드워프들은 그저 과거의 기술들만을 반복.
새로운 것엔 손대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반복하며 점차 장인으로서의 실험 정신마저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의심을 품은 드워프가 있었으니.
- 쌓여 온 공간이 어그러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우리가 사는 지하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나 발전보다 퇴보를 선택했던, 장인들이라 불리기도 부끄러운 우리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장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시온을 바랄 뿐.
나는 망치를 놓은 채 고민했다. 다가올 종말을 어찌 막을 것인가.
바로 알렉세이.
오랫 동안 퇴적된 왜곡이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음을 파악.
과거 기술을 재현할 수 없다는 현실에, 자신들이 퇴보했다는 현실에, 지금껏 과거의 영광을 흉내 내는 정도에 불과했단 현실에.
좌절했고 장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렸다.
장인전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읽었다.
진짜 핵심은 바로 마지막.
- 장인들의 지옥 바벨이 현실이 되었다. 각자의 것만을 파고든 장인들의 기술은 언어가 다른 것처럼 서로 소통하지 못했고.
드높은 긍지의 탑은 처절하게 부서졌다.
후인이여, 만일 그대가 과거 영광 가득했던 제국의 땅을 되찾았다면 날카로움을 형상화한 검을 찾으라.
그 이름은 브레이커.
브레이커에 대한 이야기.
- 장인들의 천국 시온을 열 마지막 열쇠이니.
시온은 실존한다. 또한 천국으로 가는 입구가 내게 있다.
수정 안에 숨어 버린 드워프가 남긴 이야기의 전부.
드워프에게 내려오는 전설.
바벨, 드워프들의 지옥.
시온, 드워프들의 천국.
그는 드워프들이 바벨을 이루어 멸망했으며 천국의 입구는 자신에게 있다 적어 놓았다.
수정에 제 몸을 가둔 난쟁이의 구구절절한 자기 고백.
앞선 알렉세이가 막 우리를 이끌고 철옹성을 벗어난 순간.
발을 멈추었다.
찬찬히 왜곡된 공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어디일까.
시온은.
무엇일까.
바벨은.
왜곡된 공간 가득 떠오르는 운명을 읽고 있으려니.
“빌어먹을 낡은 부품, 흰 수염 가득한 늙은이, 대머리 장인 술 중독자.”
“전하?”
“낡고 흰 수염이 난 것 맞지만 대머리도 아니고 술 중독자도 아니야.”
“아니 맞아. 대머리 술 중독자. 요즘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있을 거다.”
“…….”
“대머리로 진화 중인 소감이 어때?”
“아니다!”
“네 기술 의심할 시간에 머리 심을 기술이나 생각해 내라. 대머리 난쟁이. 난쟁이에 대머리라 최악의 조합이군.”
“대머리 아니라니까!”
심술이 나 알렉세이를 갈궈 댔다.
내가 본 수정 속 알렉세이는 대머리였고,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손에 술을 쥔 채.
녀석은 모르겠지만 미래의 자신에 관해 미리 아는 것도 좋지.
날아갈 머리카락과 알코올에 찌들 딸기코를 애써 부정하는 모습에 비로소 심술이 좀 가라앉았다.
안일하게 대처한 미래의 자신을 탓해라.
제 정수리를 만져 보며 고민에 빠진 알렉세이를 일별하곤.
“와라.”
철옹성의 정문을 향해 손을 뻗자.
브레이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의 부름에 응답한 애검을 쓰다듬길 잠시.
“장인들의 천국 시온, 그곳이 너희가 지낼 새로운 땅이라면 믿겠나.”
“시온이라니 어찌 천국이 현실에 존재한단 말인가.”
나와 늙은 드워프의 눈이 여러 의미를 교환했다.
말은 그리했으나 어찌 당신이 그걸 아느냐는 표정.
확신했다.
놈은 이때부터 시온의 존재에 대해 알았구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지.
철컥.
열쇠 브레이커를 철옹성에 끼워 넣은 채.
“시온은 어디 있는가, 너희들의 천국은. 입구를 열어라.”
대놓고 시온의 위치를 물었다.
드워프들은 지금 새로운 브레이커를 만든다고 정신이 없는 상황.
끼리릭- 손에 쥔 브레이커를 돌리자 정교히 맞물렸던 철옹성이 별 반항 없이 일그러지는 모양새.
놈들은 실수한 거다.
브레이커를 성에 입력한 순간, 성을 허물 정보 또한 브레이커에 입력되었다는 건 몰랐겠지.
열쇠를 돌리는 순간 철옹성은 무너진다.
“말해라. 현재의 멸망을 보겠는가. 아니면 너희들의 천국으로 인도하겠느냐.”
점점 헐거워지는 성문을 보며.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알렉세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고.
“살리기 위해서. 너희와 우리 모두를.”
진실로 답했다.
“지옥 바벨을 막고 천국 시온으로 모두를 이끌기 위해, 집주인이 찾아왔다. 어때. 너희에게 새로운 집, 시온을 주마. 새로운 계약을 하자.”
답이 끝난 순간, 알렉세이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이내 드워프가 작은 공간을 꺼내 들어.
“이 아래가 드워프의 천국 시온이다.”
천국으로 향하는 입구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