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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42화 (142/200)

142화 장막 속 진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간에 휩쓸리고 난 후.

어그러지는 감각과 흔들리는 마나에 까무룩 정신을 잃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입안에 흘러들어오는 깨끗한 단맛에.

“우웅, 머리야-.”

춤추는 가로등, 솔이 찬찬히 눈을 떴다.

까맣게 물들었던 시야가 열리며 눈에 들어온 것은.

투명하고 새빨간 무언가.

영롱하게 빛을 뿜어내는 모습이.

“보석?”

보석과도 같았다.

특이한 점이라면 크기가 거의 사람만 하다는 것 정도.

역시 전설 속 광부들, 드워프들이 지내는 땅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커다란 보석도 존재하는구나.

솔의 얼굴에 깊은 고민이 어렸다.

훔쳐도 될까?

이 정도 크기의 보석이라면 분명 비싸겠지?

엄청 비쌀 거야.

전하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이걸 가져가면 가로등 말고 진짜 이름을 불러 주실 수도.

좋아하실 전하를 생각하니.

“흐흐, 흐흐흐. 흐흐흐흫.”

솔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번져 나갔고.

그녀가 보석, 보석이다아.

웅얼웅얼 손을 뻗어 눈앞에 거대한 보석을 잡는 순간.

몰캉.

보석이라기엔 너무나도 보드랍고 말랑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보석이 말랑하다니?

그녀가 여전히 잠에 취한 채로 이리저리 붉은 보석을 만져 보았으나.

손에 감겨 오는 감촉은 여전히 몰캉몰캉.

보드랍고 따뜻하여 기분이 좋았다.

이거 큰 돈이 되겠는걸?

뭔가 특별한 보석을 찾았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 좀.”

그때 보석이 말을 꺼냈다.

말까지 해?

영롱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데다가 말까지 하다니!

어쩌면 귀하디 귀하다던 정령석은 아닐까?

대박이다!

그녀가 곧 앉을 돈방석을 생각하며 헤벌쭉 웃으려니.

“가슴 좀 그만 만져.”

찰싹!

참다 못한 보석이 솔의 이마를 때리고 나서야.

“어? 보석이 때렸어? 날?”

“보석처럼 아름답긴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거리가 멀걸, 가로등?”

“어어? 내 별명을 알아요? 어떻게? 역시 정령님?”

“그거야 들었으니까 알지. 아니, 그만 만지라니까!”

멈추지 않는 손길에 결국 보석이 몸서리를 치며 그녀를 떼어 놓았고.

바닥에 쿵 등을 찧고 나서야.

지금 보이는 보석의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블러디? 블러디예요?”

“그래, 이제야 알아차린 거야? 잠을 얼마나 자던지… 또 일어나선 왜 이렇게 주물럭대.”

“어, 어어. 그러니까. 보석이 아닌 죠?”

“보석은 맞지. 그런데 그렇게 음흉하고 탐욕스런 눈으로 볼 보석은 아니야. 춤추는 가로등.”

“어엇, 죄송해요! 그러니까 더듬으려는 게 아니라 제가 보기엔 보석 같아서요.”

“뭐야, 고백하는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취향이 그쪽이라니 처음 알았네. 으음, 전하께서는 아시려나?”

“아니라니까요!”

빼액- 소리를 지르는 솔을 보며 블러디, 이제는 루비라 불리는 하프 엘프가 짓궂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둘의 투닥거림을 지켜보던.

“그만하세요. 막 기절해 있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바이올렛이 루비를 말렸고.

“어? 이번엔 자수정이야?”

솔이 보라색 보석 덩어리를 보곤 입을 헤 벌렸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 헷갈리는 모양.

하여.

“바이올렛이에요. 제 가슴은 주무르지 마세요. 솔.”

영애가 먼저 제 이름을 밝히자.

“히잉,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요. 다들.”

솔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못된 손장난을 치지 못한 것이 아쉬운걸까, 아니면 일확천금의 꿈이 날아가 아쉬운 걸까.

그도 잠시.

“근데 왜 둘은 그런 모양새인 거예요?”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루비와 바이올렛의 외형에 대해 물었고.

“솔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제 모습도요?”

“그래, 너도 지금 보석같이 영롱해. 내가 루비, 영애가 자수정이라면 넌 흑수정 같아.”

“흑수정이요? 그럼 저도 두 분처럼 반짝반짝 투명한가요?”

“그렇지.”

“오와- 그런데 자기 몸은 제대로 보이나 보네요. 끓어오르던 공간 때문일까요. 너무나도 심한 왜곡 때문이겠죠? 이거.”

“맞아. 실시간으로 왜곡이 쌓여 가고 있었어. 산 위는 공간이 좁으니까 샴페인의 탄산이 모여 올라가듯 끓어오른 거고.”

“샴페인이요? 먹는 거예요?”

“먹는 건 맞는데… 뭐라 설명해야 하지?”

정작 마법사로서 대화는 통하는데 상식에서 차이가 벌어지자.

블러디의 도움 요청에.

“와인의 일종인데, 병을 따면 기포가 올라오는 종류에요. 화산 터지듯이요.”

바이올렛이 첨언하고 나서야.

솔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러니까 그 샴페인? 그거처럼 병목 구간이라 그랬나 보군요.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어떤 뜻인지 알겠어요.”

그런 둘을 바라보던 바이올렛이 문득 손을 뻗어.

“그렇다면 지금도 여기는 계속 공간이 왜곡되고 있단 뜻일까요? 탄산을 품고 있는 샴페인처럼요.”

의문을 표했고.

블러디와 솔의 얼굴이 스산하게 굳었다.

바이올렛의 지적대로였다.

“맞아. 더 최악인 건 샴페인은 열어 두면 기포가 빠지지만 여긴 계속 쌓이고 있단 거지.”

“어쩌면 입구에서 만난 왜곡된 공간이 우리를 지켜 준 걸지도 몰라요. 지금 몸에 감싼 공간이 아니라면 은은히 변하는 공간에 휘말려 문제가 생겼을지도요.”

“그러니까 여긴 점점 독해지는 샴페인 병 속이고, 우리는 기포로 보호받는 중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좋은 비유네요. 바이올렛 말대로예요. 신비와 마법은 문제없나요?”

“공간이 비틀려 대상 설정이 어려워.”

“그렇다면 새로운 전투 방법을 모색해야겠어요.”

셋이 지금 자신들을 둘러싼 공간을 둘러보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계속 변화하는 공간이라니 듣도보도 못한 현상.

특히 블러디가 가장 걱정하는 점 한 가지는.

“샴페인은 작은 충격에도 금방 터져 버린단 말이지.”

작은 충격에도 탄산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듯.

왜곡이 가득한 이 장소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

오랜 세월 묵은 만큼 왜곡의 밀도가 높으니 공간 전체가 충격에 민감할 게 분명했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작은 충격에도 부글부글 끓을지도.

더군다나.

“으음, 누구보다 커다란 충격을 몰고 다니는 분이 계시니까요.”

그들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부수는 데 재능이 있는 고귀한 사람 하나를.

“알려야 할 텐데.”

“아니요. 알리면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블러디의 중얼거림에 솔과 바이올렛이 손사래를 쳤다.

전하라면, 우리의 미친 전하라면.

“알리는 순간 바로 터뜨릴 거예요. 전하께선.”

“맞아요. 그거 참 흥미로운 소리로군. 그리 말하시며 살벌한 미소를 지으시겠죠.”

“그리곤 망치로 샴폐인을 퍼펑!”

“그대로 끝.”

바이올렛과 솔의 훌륭한 연계에.

“어, 어어. 그래? 그렇구나. 근데 난 그렇게 말 안 했다. 나는 아무 말 안 했어.”

블러디가 슬며시 한 발을 뒤로 뺐다.

봐선 안 되는 걸 본 것처럼 흐르는 식은땀과 흔들리는 동공.

무언가를 부정하듯 절레절레 흔들리는 고개.

분명 방금까진 같이 즐겨 놓고 왜 갑자기?

“뭐예요. 정말. 제국 최고위 수배자였던 천하의 블러디가 발을 빼시겠다? 흐음- 왜 갑자기 약해지셨어요? 재미없게.”

“그러게요. 마치 황태자 전하라도 본 것처럼-.”

거기까지 말하던 솔과 바이올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방금까지만 해도 여긴 셋만 있었는데.

다른 이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 말을 나누었는데.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뒷목을 스치고 감은 왜일까.

둘이 찡긋찡긋 요상한 기분을 애써 부정하는 사이.

“호오-, 그거 참 흥미로운 소리로군.”

“……!”

“히이익-!”

바로 뒤,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에 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

이 목소리는.

“전하…?”

“어떻게 여기에… 오셨을까요?”

바로 황태자.

그들이 애써 현실을 부정해 보았으나.

뒤에 느껴지는 섬찟한 감각은 황태자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

“언제부터… 들으셨어요?”

“그저 농이었습니다.”

솔과 바이올렛이 애원하듯 용서를 구했고.

턱을 떨며 뒤돌아보려다가.

“돌아보지 마라. 명이다.”

머리를 잡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흠칫 머리를 굳혔다.

둘의 눈망울이 울망울망 물들었다.

블러디를 원망스럽게 보려니 그녀가 고개를 피했다.

이윽고.

“자, 경주마들아. 앞만 보아라. 그대로 앞만 보고 달리도록. 알겠나?”

“네.”

“네에.”

“좋아. 신호를 줄 테니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샴페인처럼 퍼펑! 터져 버릴 테니까.”

아, 다 들으셨구나.

바이올렛은 눈을 감으며 모든 걸 포기했고.

솔은 죽음이라도 각오한 듯 결의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뒤에선 황태자가 그들의 체념이 맘에 들었는지 작게 웃곤.

“자, 달리기 경주다. 신호가 들리는 순간 뛰면 돼.”

황태자가 망치를 들어.

공간 어딘가를 콰앙!

내리쳤다.

충격을 받은 공간이 순식간에 부르르 떨며 끓어오르기 시작.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 일그러지는 모습에.

“뭐 해? 달려.”

바이올렛과 솔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간 상태.

황태자가 뒤이어 달리며 다른 이들을 재촉했다.

“어? 저희도요?”

“어어? 나도?”

백작과 블러디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곤 따라 달렸다.

이미 알프레드는 황태자의 뒤를 바짝 쫓는 중.

이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충격이 사방으로 퍼지며 그들을 쫓았다.

그야말로 공간의 범람.

“이, 이런 미친!”

방금까지 실의에 빠져 있던 알렉세이가 황태자가 저지른 짓을 보며 놀라는 사이.

“저기에 휘말리면 어떻게 되나.”

황태자가 돌아 버린 눈으로 침착하게 물었고.

“어떻게 되긴! 나도 모르지! 휘말려 본 적 없다고 저딴 거에!”

이젠 아주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인지 알렉세이가 질린 얼굴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내지른.

“어쨌든 좋지 않을 거란 것만은 확실하지!”

마지막 장담에.

“그거 잘되었군.”

황태자가 더욱 크게 광소를 터뜨렸다.

대체 이 미친 인간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좋다고 웃어대는 걸까.

뭐가 잘되었고 뭐가 최고란 말인가!

아까 시온과 바벨이 하나임을 보았을 때 했던 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국과 지옥이 하나라는데, 모든 게 소용없어져 버렸는데 뭐가 이리 즐겁단 말인가.

몰려오는 공간을 피해 달리는 중에.

“대체 뭐가 즐겁다는 거냐. 모두 죽게 생겼는데. 대체 뭐가 최고라는 거냐. 최악이 아니냐. 부족들은 단절됐고 퇴보는 끝없고 공간은 포화 상태. 대체 뭐가 그리 즐거운 거냐.”

그가 허탈하게 속닥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밝은 웃음이 이상했다.

어찌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가.

그저 남이 처한 위기라서?

그렇다면 아까 보였던 분노는?

그런 그의 의문에 답하듯.

“최악은 최고로 가는 열쇠. 아느냐. 추진력을 얻기 위한 추락을.”

“추진력을 얻기 위한 추락?”

“그래, 천국과 지옥이 하나라는 게 무슨 상관이지. 오히려 이득이다. 둘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니까. 귀찮음을 덜었어.”

이런 미친-.

단지 귀찮음을 면했단 말에 알렉세이가 다시금 황태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고.

“맞아, 난 미쳤다.”

황태자가 이를 인정했다.

미친놈이 제 스스로를 미쳤다는데 어쩔 것인가.

“허나 미친놈이라 보이는 것도 있지. 천국과 지옥이 하나라면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 아닌가.”

“……!”

그의 당당한 답에 알렉세이가 넋을 빼 놓은 사이.

“도착했군.”

황태자가 저 멀리 보이는 또다른 철옹성.

알렉세이도 금방 알아보았다.

“방패와 굳건함을 두드리는 부족이다.”

열 부족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부족.

“아쉽군, 망치를 만드는 부족이 아니라.”

황태자가 아쉬움을 표하곤.

“상관없어. 어차피 다 만날 생각이니까.”

다음을 기약했다.

오히려 잘되었다.

“한 가지 묻지. 저들의 굳건함과 뒤에 몰려오는 공간이 부딪히면 누가 이길까?”

유독 단단하게 뭉친 철옹성의 입구를 부풀어 오른 공간이 때리면 어찌 될까.

그의 궁금증에.

“어, 그건 나도 궁금한데?”

알렉세이가 처음으로 동조했고.

그가 그림자를 펼쳐 다른 이들을 일제히 감싸 아래로 끌어당겼다.

“어? 전하! 저는요!”

“넌 그림자 있잖아.”

“너무해욧!”

솔이 투덜거리곤 제 몸을 알아서 보호했다.

곧 휘몰아치는 공간이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났다.

와르르륵, 모든 것을 휩쓰는 공간의 파도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유리로 이루어진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위협적이고 환상적인 풍경.

마침내 황태자가 일으킨 온 공간 무더기가 해일이 되어 철옹성의 외벽에 닿는 순간.

휩쓸린 외벽이 뭉그러지길 잠시.

와장창!

겉을 감싸고 있던 공간이 깨져 나갔고.

“어?”

“어!”

“뭐야!”

갑작스레 드러난 진실에 모두가 경악을 뱉었다.

신기루가 깨지듯 드러난 것은 전쟁의 흔적.

분명 방금까지 보였던 단단하고 두터웠던 외벽이 이리저리 갈라져 신음하고 있었고.

매케한 연기가 성 곳곳에서 올랐다.

그리고.

“악마다.”

갈라진 성벽을 기어오르는 악마들이 가득했다.

어찌된 일인가.

분명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모습이었건만.

“겉은 거짓. 이게 진실이다.”

황태자의 말대로였다.

평화는 위장, 진짜는.

“악마들이 너희 땅을 노리고 있군. 아니지 어쩌면 찾는 건 저들이 쉴 지옥일지도.”

악마들의 준동.

황태자의 은근한 눈길에 알렉세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땅을 노린다는 말보다도 지옥을 찾는다는 말에.

황태자가 일으킨 해일이 멈춘 사이.

크르르르-?

악마들 또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악함을 가려주던 위장막이 사라진 걸 느낀 탓.

놈들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무어라 소통을 하는 동안 공세가 멈추었고.

“어? 어어? 보인다! 바깥이 보여!”

막 성문 위 방패를 들어 몰려드는 악마를 막던 드워프 하나가 꼬질꼬질한 얼굴을 빼곰 들어 상황을 확인했다.

방금까지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이 막혀 있던 공간이 열렸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준비! 발 빠른 놈들 준비!”

방패와 굳건함을 두드리는 철옹성에서 무언가 생각이 있는지 소란이 일었고.

곧 유난히 팔뚝이 두꺼운 드워프들이 원형 방진을 짠 채 성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숫자는 총 여섯.

적들을 몰아내기 위함은 아닌지 그들은 방패를 든 채 그저 자리에서 버틸 뿐.

정신 차린 악마들이 곧 날카로운 손톱과 흉한 이빨을 들이밀었으나.

그들의 방패는 굳건하니.

“밀어!”

“우, 하! 우, 하! 우, 하!”

일정한 기합에 맞추어 드워프들이 악마들을 밀어내기 시작.

“버텨! 버텨!”

“옆으로 몸을 밀어! 호흡 맞춰 인마!”

“맞추고 있다고!”

“다들 망치를 두드릴 때처럼 리듬을 맞춰!”

그들이 어설프게나마 호흡을 맞추어가며 전진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본래 호흡을 맞춰 본 이들이 아니기도 했고.

“이런 빌어먹을 놈아! 너무 느리잖아!”

“뒤엣것이 처지는데 어째!”

남을 베려할 줄 모르는 성미와 자존심이 이런 상황에서도 균열을 일으켰다.

아무리 단단한 방패를 지녔으면 뭐 하는가 이를 잡은 이들의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을.

“후퇴! 후퇴! 이대론 죽어!”

“이놈들이랑 못 해 먹겠어!”

곧 두려움과 분노에 마음이 꺾인 드워프들이 성문으로 되돌아왔고.

“뭐해! 새끼들아! 도움 요청해야 할 거 아냐!”

“도움은 무슨 도움! 누가 우릴 도와?”

심지어 성문에 선 드워프들까지 목소리를 높여 가며 사분오열하는 중.

악마들이 그들의 분열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이.

다리가 빠른 드워프 하나가.

“비켜 이 병신들아!”

방패를 든 드워프들을 젖히곤.

“으아아아!”

홀로 악마들 사이를 달리려 할 때.

“어? 뭐야?”

문득 묘한 고요함을 느끼곤 멈추었다.

분명 방패로 악마들을 이리저리 밀어냈건만 놈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더욱 거대한 적을 만났다는 듯.

철옹성의 반대편으로 이빨을 드러낸 채 몸을 웅크린 형태.

위협하는 듯도 했고 겁먹은 듯도 했다.

드워프가 막 까치발을 들어 너머를 보곤.

“불?”

타오르는 형상 하나를 발견하니.

이지러지는 모습이 불과 닮았고 어깨에 둘러멘 것은.

“망치?”

사람만 한 망치.

불과 망치라니.

장인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 아닌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왜 저기에 불과 망치가.

의문도 잠시.

불이 웃었다.

참으로 맑게.

이내 망치를 높이 들어올려서는.

그대로.

꽈아앙!

땅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혼자만의 의식이라도 치르는가, 아니면.

“땅이라도 벼리는 거야? 뭐 하는-.”

대장장이다운 생각.

허나 황태자는 대장장이가 아니었고.

와글와글, 공간이 일그러지며 높이 일더니.

“으, 으와아아악! 들어가! 다들 들어가!”

성벽과 악마들을 휩쓸듯 몰아쳤다.

막 앞으로 튀어나왔던 드워프가 급히 뒤돌아 도망쳤고 덩달아 다른 드워프들도 일제히 철옹성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간신히 성문 안으로 들어간 직후.

파도처럼 밀려온 공간이 악마들을 휩쓸다 못해 성벽을 거세게 때리자.

끼기기기긱-!

드워프들의 철옹성이 힘겨운 소리를 내었으나.

굳건함을 두드리는 일족답게 간신히 버텨 내었다.

마침내 파도가 가라앉은 뒤, 물보라가 피듯 부서진 공간들의 파편이 부스스 휘날렸다.

악마들마저 가루가 되어 버린 듯 모조리 사라진 풍경.

드워프들이 엉덩방아를 찧은 채 반쯤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는 때에.

타오르는 불이 망치를 쥔 채 성벽 위로 올랐고.

마치 장인들의 신처럼 모두를 굽어보길 잠깐.

“방패와 굳건함을 다루는 대장인이 누구냐.”

“…나요.”

간신히 대답한 철옹성의 대장인을 와락 붙잡더니.

그대로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

악마들이 사라진 자리, 거친 폐허와 기묘한 침묵만이 남은 철옹성.

“X 됐다.”

누군가의 뱉은 쓸쓸한 한줄기 진실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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