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기계와 악마들이 판치는 광산
비행선에서 막 뛰어내려 끓어오르는 공간에 휩싸인 순간.
“우와아아악!”
“이얏호-!”
안드레와 무명 기사가 상반된 고함을 질러 댔다.
그거야 안드레는 땅에 떨어지면 부서지는 육신을 지녔지만.
“걱정마라! 나는 부서져도 다시 붙이면 끝이거든.”
“나는 부서지면 죽는다고!”
무명은 그야말로 깡통이니 떨어진다고 해서 죽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바닥.
이대로는 죽음을 예상한 안드레가 급히 검을 뽑으려 할 때.
둘의 몸이 자리에서 멈추었다.
직후 벌어진 일.
철컥! 철컥!
안드레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무명 기사가 이리저리 해체되었고.
그의 각 부분이 허공을 떠도는 동안.
안드레가 철푸덕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여긴? 방금은 뭐야?”
안드레가 생경한 풍경을 보며 고민하길 잠시.
어차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금세 의문을 털어 냈고.
“어? 너 몸이 왜 그 모양이냐?”
무명이 자신의 꼴은 생각지도 못한 채 안드레의 꼬락서니를 보며 웃어 댔다.
“이리저리 일그러진 게 못난이가 따로 없구나.”
“오체 분시된 게 시체만도 못하군요.”
“하하! 난 다시 결합하면 끝이거든!”
무명이 자랑스레 외치곤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 했으나.
“안 되네?”
어그러진 공간은 각 부위의 연결을 허락지 않았다.
어째서?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그거야 다 따로 노니까 그렇죠.”
안드레의 말대로였다.
지금 무명의 갑옷은 어깨면 어깨, 팔이면 팔, 다리면 다리 모조리 다른 공간에 휩싸여 있는 상태.
서로 다른 크기의 공간 왜곡으로 인해 접합 부분이 어긋나 있으니 맞을 리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좋은데.”
무명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작정한 모양.
따로 노는 신체가 마음에 드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길 잠시.
“네 팔은 그대로구나?”
안드레의 팔을 보며 투구를 갸웃거렸다.
신체 중 유일하게 공간 왜곡 속에서도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오른팔.
평민이 물끄러미 제팔을 쳐다보다가.
“전하께서 지켜 주고 계신가 보군요.”
작게 미소 짓고는.
“전하를 찾아야겠습니다.”
황태자를 찾겠노라고 선언.
“어떻게?”
무명의 질문에.
“이 팔이 알려 줄 겁니다.”
당당히 왜곡된 공간 속에서도 한 점 일그러짐 없는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움찔움찔 떨리는 손가락이 향한 방향을 따라가면.
분명.
“이쪽에 전하께서 계십니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라.
그리 믿었다.
참으로 단순한 논리.
충직한 기사가 잃어버린 전하를 충성심만으로 찾는다라.
전설이나 이야기에선 종종 볼 법했으나 현실은.
“…전하께서 모습이 많이 변하셨는데?”
“…그야 전하가 아니니까요.”
그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오른팔의 인도를 따라가는 길.
“이봐! 나 좀, 나 좀 살려 줘요!”
마주친 수염이 덮수룩한 드워프 하나.
뒤에는 악마들이 달려드는 풍경.
참으로 신기한 건 풍성한 머리카락과 덮수룩한 수염이 찰랑이는 금발이라는 점.
흩날리는 결이 참 고왔다.
“정말 아니야?”
“아니죠! 전하께선 백금발이시라고요!”
두터운 몸통으로 열심히 달리면서도.
“기사님 저를 구해 주세욧!”
가녀린 목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이 골을 울렸다.
“어, 숙녀분인 거 같지?”
“…그렇네요.”
“기사 안드레. 네가 나설 차례다.”
“무명 기사도 나서야죠. 저만 나섭니까?”
“난 이름이 없잖아. 기사는 레이디를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법이야.”
“모범을 보이셔야죠, 선배님, 수염이 풍성한 레이디를 위해서라도.”
말로는 투닥거리면서도 둘이 어느새 검을 뽑아 들었고.
몰려드는 악마들을 상대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합을 맞추어 적들을 상대했다.
지난 영림에서 호흡을 맞추어 본 적이 있어서일까.
요란스러운 절삭음과 더불어 악마들을 썰어 나갔고.
그런 그들을 보며.
“멋져-!”
금발 덮수룩한 수염을 기른 드워프가 가녀린 감탄을 토해 내자.
순간 안드레의 검 끝이 흔들렸으나.
못 들은 척 금세 의지를 다지곤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적을 베고 찌르고 가른다.
단순한 작업의 반복.
숫자가 몇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왜곡된 감각을 믿기보다는 검이 향하는 본능을 믿었다.
스으으읍-
들이켜는 호흡, 온몸에 폭발적으로 마나를 돌리며 팔을 휘두르자.
악마들이 찢겨 나갔고.
자리를 박차 앞으로 달렸다.
이를 악문 표정에 생기가 돈다.
오른팔, 전하께서 주신 오른팔!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다.
검을 휘두르는 팔이 육신의 한계를 넘어 가열차게 움직인다.
본래라면 어깨나 팔꿈치가 파열되었을 만한 움직임에도 끄덕없다.
때로 검술의 한계는 곧 육신의 한계이기도 했다.
움직이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 심상 또한 재한되는 법.
그러나 황태자 전하께서 주신 팔은 그 한계를 넘어.
“흐아압!”
새로운 지평으로 안드레를 이끌었다.
머릿속 그어져 있던 한계선을 넘는 순간.
우우웅-
안드레의 몸이 시퍼런 광망을 머금었고.
마나를 함빡 머금은 검이 푸른 궤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벽을 넘었다.
마나를 몸에 품는 것을 넘어 검밖으로 내뿜고, 더 나아가 기존의 모든 검술 체계를 뒤집어엎는 경지.
검의 극의에 이른 자, 소드 마스터.
안드레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어렸고.
몸이 폭발과 수축을 반복했다.
이젠 악마도 공간의 왜곡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새로운 검이 그리는 길을 따라갈 뿐.
더욱 빠른 속도, 더욱 날카로운 궤적, 더욱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각도!
지금껏 해 온 노력이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서 꽃을 피웠고.
“들어라, 검과 육신은 유한하나 정신은 무한한 것. 마나는 파도라 몸은 구름이라. 떠올려라. 드넓은 바다와 폭풍이 몰아치는 하늘을. 그 사이에 존재하는 바람과 번개와 빗줄기 그 모든 것이 너의 검이다.”
무명의 속닥임이 이어졌다.
기괴한 풍경이었다.
투구 하나가 안드레의 머리 옆에 둥둥 떠다니며.
나머지 팔과 다리는 이리저리 떨어져 안드레의 깨달음을 받쳐 주는 꼴.
허나 그 자유로움이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안드레의 검이 새어 나가는 자리를 무명이 메꾸었고.
어찌 움직여야 하는지 따로따로, 하지만 치밀한 연계로 보여 주니.
그야말로 훌륭한 스승.
“난 바다를 본 적이 없어.”
다만 제자가 좀 나사가 빠져 있는 듯싶었으나.
“나도 없다. 그저 넓고 푸르고 잔잔하면서도 거칠다는 것만을 떠올려라.”
스승도 만만치 않았다.
본래 깨달음의 순간, 어떤 심상과 어떤 가르침을 받느냐는 중요한 문제.
안드레에겐 엄청난 행운.
정말 전하의 가호라도 있었던 걸까.
악마들을 밀어내며 탁 트인 공터에 도착한 순간.
드넓은 철옹성 앞 바글바글한 악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이는군.”
“절호의 기회다.”
둘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감탄사.
깨달음을 공고히 만들고 더 높은 잠재력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
“반드시 이 손으로 이루겠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옆에 안 계시지만 전하께서 주신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결심을 굳혔다.
뒤에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
지난 숲에서 한 결심.
넓은 등을 바라만 보는 것으론 부족하다.
그 너머를 보려는 욕심은 없다.
다만.
“등 뒤를, 더 나아가 옆을 지킬 수 있도록.”
전하께서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리라.
그가 세운 새로운 지표.
하여 그분이 걷는 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지키겠다는 마음가짐.
“좋은 마음가짐이다. 가자, 후배.”
“가죠, 선배.”
기사의 마음을 이해한 무명이 안드레를 이끌었고.
후배는 선배를 따랐다.
“기사님들- 모두를 구해 주셔요!”
촉촉한 눈으로 백금발 턱수염을 휘날리는 드워프의 외침을.
“잊어. 번뇌다.”
“심마는 떨쳐 내야겠죠.”
애써 외면하며 악마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치열한 싸움 끝 승리를 쟁취했단 이야기.
* * *
“그렇게 됐단 말이지.”
안드레와 무명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외의 수확.
[운명 커다란 행운이 작용하여 운명의 변화가 일찍 개화했습니다]
거대한 행운이 오랜만에 움직였던 모양.
내가 직접 관여해야 할 일을 다른 이들을 통하여 이루었고.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독선, 고집, 단절, 미움이 해소되었습니다]
[새로운 운명 화합, 대화, 교류가 싹 틉니다]
답답하게 묶여 있던 드워프들의 운명이 트였다.
뿐만 아니라.
“그 몸은 누가 고쳐 준 거냐.”
“저분이 고쳐 주었습니다. 들어 보니 갑옷과 용맹을 조립하는 드워프들의 대장인이라더군요.”
“운이 좋았군.”
“하하하! 이전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무명 기사가 대장인의 호감을 샀는지 완벽히 조립해 준 걸로도 모자라.
“이렇게 발사도 되지 뭡니까.”
새로운 기능까지 준 모양.
뭐 나쁘지 않았다.
수하의 발전이 전력의 강화고 어쨌던 나에게도 이득이니.
거기다.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새로운 운명 검의 극의가 개화했습니다! 멈춰 있던 운명들이 가파르게 깨어납니다]
“평민, 조금은 자격을 갖추었구나.”
“감사합니다! 전하!”
덕분에 멈춰 있던 안드레의 운명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 그만큼의 성과가 있겠지.
거기에 더해.
“좋은 인연을 찾았군. 잘해 보도록.”
“억-.”
아직도 옆에서 반짝거리는 시선을 보내오는 턱수염 가득한.
“신체와 생명을 가다듬는 대장인의 딸이라 했던가.”
“신체와 생명을 가다듬는 철옹성의 주인이자 대장인이신 스투코프의 딸, 쏘냐가 제국의 황태자님에게 인사를 올려요.”
영애가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왔다.
나풀나풀 흩날리는 풍성한 금색 턱수염이 참으로 곱다.
드워프는 성별 상관없이 턱수염이 나는 모양.
두꺼운 이두와 허벅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으음-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신음을 참아 냈다.
싸움을 잘할 것 같은데.
“그래 대장인은.”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철옹성을 지키시려다 그만 큰 상처를 입으시고 크흐흡-!”
아버지 이야기에 쏘냐의 똘망한 눈망울이 물기를 머금었고.
위로를 바라는 듯 안드레의 허벅지에 살포시 그 작달막하며 우람한 몸을 기대어 왔다.
안드레의 떨리는 동공을 보며.
뭐 해?
눈짓하자.
그의 얼굴이 마구 요동치길 잠시.
“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제가 지켜 드릴게요.”
떨리는 손으로 쏘냐의 어깨를 두드렸고.
으와아앙-! 이때다 싶었는지 그녀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금새 젖어 가는 바지춤과 덩달아 젖어 가는 안드레의 눈가.
사랑이 싹트는 풍경에.
“잘 돌봐 드려라. 기사가 숙녀를 대함에 있어서 모자람이 있어서야 되나.”
“…눼.”
안드레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선.
“대화는?”
막 돌아온 알렉세이와 니콜라이, 또 다른 대장인을 바라보자.
“용서를 구했고 용서를 받았네.”
알렉세이가 더욱 후련해진 얼굴로 답해 왔다.
“생각보다 별거 없지?”
내 물음에 그가 이전과는 다르게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별거 없네.”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이 별거 아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래, 원래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쉬워진다.
사과든, 용서든, 협력이든.
여기 모인 드워프들은 두 부류.
하나는 원래 철옹성의 주인인 갑옷을 다루는 부족.
하나는 악마를 피해 도망쳐 나온 신체를 다루는 부족.
신체를 다룬다 함은 의수와 의족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굳이 안드레를 쏘냐의 곁에 둔 것이다.
내가 어설프게 만든 오른팔을 더 강화시켜 줄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주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강하게 다리를 옥죄는 쏘냐의 두터운 팔을 어쩌지도 못하는 안드레의 표정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들을 구경하며.
“그들의 철옹성은.”
“점령당했다고 하더군.”
“악마들의 수장은 만났다고 하던가.”
“그게 좀 특이한 놈들이라던데.”
“특이한 놈들?”
“그래, 몸이 붙어 있는 쌍둥이 악마라 했던가.”
지금 산맥 안을 휘젓는 악마에 대해 물어보았다.
큰 상처를 입었다는 대장인의 증언.
몸이 붙어 있는 쌍둥이 악마.
단번에 어떤 놈들인지 짐작했다.
푸르푸르, 무르무르.
하나는 가학과 살육을, 하나는 조롱과 저주를 즐기는 악마.
둘은 하나며 또한 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니는 놈들로서.
북부에 에스키모라는 재앙을 뿌린 놈들이기도 했다.
전생 북부가 패망한 후.
놈들이 에스키모들을 이끌고 황성으로 쳐들어왔으니까.
그래, 한 손에는 드워프들의 살코기를 든 채 말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구나.
본래라면 북부가 에스키모에게 완전히 먹혔을 시기.
여기서 어떤 일을 벌여도 알지 못했겠지.
실제로.
“충격적인 소식이 있어.”
알렉세이와 니콜라이가 말을 망설이다가.
“놈들이 산맥 전체를 잡아먹으려 한다는군. 심지어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이야.”
“그뿐만 아니라- 듣기론 우리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철옹성을 공격하는 중이라더군. 그만큼 악마들이 많다는 이야기겠지.”
상처 입은 대장인이 물어온 정보.
철옹성이 완전히 함락되기 직전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모양.
불길한 소식에 주변이 모조리 침묵에 잠겼고.
철옹성을 버리고 탈출했던 드워프들이 눈물을 머금었다.
그들은 분명 뛰어난 장인들.
과거 거인이었던 시절, 밖에서부터 몰려올 멸망을 피하기 위해 존재마저 버리고 숨었던 겁쟁이들.
독선과 오만이 서로의 소통을 잘라먹었고.
각자 동굴을 파 내려가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면 안전할 줄 알고.
하여 치명적인 맹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안에서부터 시작된 붕괴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모래성과 같은 상태의 드워프들은 그 뛰어난 기술을 갖고도 각개격파당했을 테고.
상황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상황.
부랴부랴 도망친 자리는 시린 벌판.
오랜 시간 차가운 눈보라를 맞으며 도망쳤겠지.
악마들은 그들의 절망과 두려움을 양식 삼아 조롱하고 또 조롱했으리라.
결국 결말은 일족의 멸망.
자리에 모인 이들은 깨달았으리라.
지금 이 상태로는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결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음을.
사과와 용서는 이미 충분히 익숙해졌다.
자,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
그들의 행동을 기다릴 때에.
“시온과 바벨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 황태자 그대가 말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그런 뜻일 테고.”
알렉세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낡디낡았던 부품이 서서히 오랜 녹을 벗어 가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양.
그가 한 꺼풀 벗겨진 눈빛을 똑바로 들어.
“어찌하면 되겠나. 어찌하면 우리가 바벨 대신 시온으로 들어갈 수 있겠나. 부탁? 희생? 용맹?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할 테니 제발 길을 알려 주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꺼내 들었다.
질문.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의문.
처음 뱉었던 어떠한 뜻도 없던 망연자실한 중얼거림과는 달랐다.
명확한 목적성과 뚜렷한 의지가 담겨 있다.
비로소 이 낡은 부품은.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무엇인가!”
제 홀로 갇혀 있던 껍질을 깨고 모두를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머물 둥지를 잃고, 함께할 동료를 잃고 나서야 했던 결심을 이번엔 제때에 해냈고.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답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미 머릿속엔 영감이 가득할 터. 머리게 가득 낀 녹을 털어 내라 데리고 다녔지. 어때. 좀 감이 잡히나?”
새로운 열쇠, 브레이커의 새로운 모습이.
나지막한 질문에.
“충분히 영감을 얻었네.”
다시 깨어난 장인의 혼이 약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나머지는 간단하지.”
낡은 부품이 비로소 기름을 머금고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파악하곤.
“검을 벼리는 난쟁이는 검을 벼려 오고, 방패를 두드리는 난쟁이는 방패를 두들겨라.”
“방패? 새로운 방패라면.”
“너희들의 의지를 방패 삼아야지. 거기엔 저 갑옷을 조립하는 난쟁이의 실력이 필요하겠군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
본격적으로 움직일 마음을 먹었다.
방패에 대한 새로운 정의.
“굳건함을 두드리라는 말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한데 조립하여. 의지를 벼리고 뜻을 결합하는 것. 어때? 장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이 될 거 같은데.”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닌 서로의 결합을 통해 방패와 같은 굳건함을 품으라는 말에.
“놀랍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더 높은 차원의 방패이자 더 높은 차원의 갑옷.
장인들이 무기를 벼리고 방패를 두드리며 갑옷을 결합하는 동안.
“나는.”
손에 망치를 들어 올리며.
“악마를 상대한다.”
어느덧 왜곡된 공간을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악마들을 마주했고.
막 불타오르는 심장으로 전쟁터에 뛰어들려 할 때.
우르르르르-.
땅의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왜곡된 공간이 무너지며 감찰관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교한 기계장치와 악마들이 뒤엉켜 서로를 물어뜯는 풍경 속에서.
“가자, 기계와 악마들이 판치는 광산으로. 지옥을 바라는 악마를 잡으러.”
멸망을 부르려는 악마를 잡기 위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