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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45화 (145/200)

145화 폭풍

철과 기름, 피와 악의가 튀어 오르는 전장.

흡족한 냄새에 폐부 깊숙히 숨을 들이켰다.

비리고 끈적한 냄새가 연료가 되어 심장까지 치달았고.

네 개의 심장이 불을 힘차게 뿜어내며 맥동했다.

그러고 보니.

“전투를 치른 지가 꽤 되었지.”

엘프들과의 조우를 전투라 할 수 있었나?

보통 그런 건 압도라 하는 법.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지루했기 때문.

통제된 상황, 완벽한 명분을 등에 업은 이상.

품은 신비에 한계는 없으며 어떤 위협에도 다칠 리가 없다는 확신.

그렇다면 보티스와의 싸움은 전투라 할 수 있었나?

그건 일방적이라 칭해야 맞겠지.

내가 녀석보다 강해서는 아니었다.

단순히 전투력의 논리로는 따질 수 없는 결과.

강대한 악마는 완전하지 않았고.

준비한 수는 완전했기에.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적이 방심한 순간.

상황을 뒤집어엎었고.

비원을 이루어 줄 장소가 죽음의 자리로 뒤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추락하는 먹잇감을 낚아채는 일은 어렵지 않다.

보티스와 추수꾼은 나의 능력을 몰랐지만, 나는 적의 능력과 탄생의 기원, 행동 원리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지독한 자기자랑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렇게 백 번을 싸우면 아흔아홉 번을 패배할 싸움에서.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주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과포화된 공간.

감각은 일그러진 상태.

적도 아군도 없는 바깥.

뒤에는 긴장한 수하들의 숨소리.

드워프들은 저들의 생존을 위해 검을 벼리고 스스로 방패가 되어 가는 중.

내가 물러나면.

모두 망가진다.

숨막히는 압박감.

그래, 항상 이랬다.

제국은 언제나 벼랑 끝에 있었고.

나는 온힘을 다해 버텼다.

전생엔 처참히 실패했고.

이번 생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다.’

한 번의 패배도, 실패도 있어선 안 된다.

눈덩이가 구르기도 전에 막아야 한다.

산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한 눈더미를 막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힘과 희생이 필요할 테니까.

이미 겪었지 않은가.

알지 않는가.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있을지.

시작도 하기 전에 제거해야만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야기할 희생이 너무나도 많기에.

참으로 위태로운 자리와 상황.

그렇기에 오히려.

둥- 둥- 둥- 둥-!

불을 담은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가슴 속부터 외쳐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겨 내라고 모두 태워 버리라고.

신비를 짊어진 이상, 내가 걸을 길에 패배란 없다.

건국제가 그리 말했지.

더욱 단단해지리라, 더욱 뜨겁게 타오르리라.

나 또한 마찬가지.

어떠한 운명이든 이겨 내리라 다짐했기에.

앞에 가득한 적을 밀어내리라 다짐했기에.

가장 앞에서 모두를 이끄는 자이기에.

“간다.”

쓰러지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다리와 허리를 굽혔다.

추진력을 얻기 위한 잠깐의 겸손.

오랜만에 겪는 진짜 전투다.

지금껏 쌓아 온 능력들을 확인하기 좋은 자리.

드워프들을 천국으로 이끌고 나면 분명 한 번쯤 거친 싸움을 치러야 하리라.

생각은 여기까지.

잔뜩 부푼 허벅지에 담아 낸 힘을 뿜어낸 순간.

광염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공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멀어 보였던 전장이 눈앞으로 확 당겨졌다.

아직 감찰관들과 악마들이 서로 드잡이질을 하는 풍경 속으로 뛰어들며.

푸화학-!

첫 번째 심장 적염을 둘렀고.

머리 위로 올린 망치의 끝에 두 번째 심장 초적염을 터뜨렸다.

폭음과 동시에 거대한 망치가 땅에 박혀 들었다.

이어지는 폭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며 적들을 으깨는 동안.

몸에 둘렀던 불이 한발 늦게 치밀어 폭풍처럼 불어닥쳤고.

찢어진 악마들과 무너진 기계들이 휩쓸려 올올히 흩어졌다.

첫 일격이 만족스럽다.

그제야 적들이 나를 인식.

서로를 물어뜯던 악마들과 기계장치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가장 강한 적이 있기에 동맹이라도 하려는가.

그 꼴이 우스워.

“하!”

세 번째 심장 광염을 온몸에 퍼뜨린 순간.

세상이 멈추었다.

몸에는 샛노란 광휘.

번지는 빛을 두른 채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악마들과 기계사이를 유유히 걸었다.

바로 뒤, 진생철퇴로 내리쳤던 자리엔 작은 기포들이 차근차근 몸을 키워 가는 중.

앞을 가로막은 잔해들을 이리저리 치워 내며 걸어갔고.

몸에 둘렀던 광염을 이번엔 철퇴에까지 밀어넣었다.

곧 진생철퇴가 샛노란 빛을 머금자.

시위를 당기듯 망치를 뒤로 당겼다.

꾸우욱 돌아가는 허리와 팽팽하게 부푸는 어깨.

발이 땅을 파고들었고.

적들의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나를 향했다.

놈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망치를 휘둘렀고.

유리를 깨어 부수듯 망치에 닿는 모든 것이 일제히 허물어졌다.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악마들의 손톱과 기계들의 날붙이들.

부스러지는 적들의 감촉을 느꼈다 싶을 때.

망치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간 뒤.

늦게 따라붙은 몸이 주욱 늘어지는 감각과 함께.

도착한 장소는 전장터의 끝.

다시 한번.

양발을 땅에 박아 넣어 몸을 멈춘 뒤.

앞으로 향하려는 철퇴의 방향을 억지로 뒤틀자.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 듯 요동쳤으나.

반발력은 잠시.

그대로 망치를 휘돌려 보이는 놈들의 뒷통수에 다시 내던졌고.

시야가 일렁이며 뒤섞인 순간.

처음 출발했던 자리에 닿았다.

처음 터뜨렸던 기포가 아직까지 끓어오르는 중.

적들의 날붙이와 눈동자가 향한 방향도 그대로.

하지만 멀쩡한 형태가 하나도 없는 풍경.

광염을 몸에서 거두고 나자.

이유도 모른 채 죽어 간 적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귓가를 가득 채웠다.

마침 뒤에서 끓어오르는 공간이 범람.

진생철퇴을 아래로 깔아 확장하는 흐름 위에 올라탔다.

이번에 손에 든 것은 활, 스타 레인.

망치 위에 올라선 채 시위를 당기자.

몸을 타고 오르는 푸른 새싹들.

이내 넝쿨이 엮이듯 네 번째 심장 녹염이 화살을 대신하였고.

화살 촉엔 날카로운 폭발 대신.

자그마한 푸르른 잎사귀 하나.

“도망치느라 바쁘구나!”

범람하는 공간을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하는 놈들의 꼬락서니가 재미있었다.

놈들을 휩쓸기 직전, 녹염으로 이룬 살을 쏘아 내자.

짓푸른 생명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도망가는 놈들을 얽어매었고.

이내 공간에 휩쓸려 스러졌다.

뒤에서 아스라이 들리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그제야 너무 흥을 냈음을 파악했으나.

어쩌겠는가.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결하도록!”

그들의 속도에 맞추자니 재미가 없는 것을.

건국제는 자신의 등으로 이들을 지켜 준다 했으나.

난 그런 그릇은 아니었다.

모두를 담아 같이 달리기보단 홀로 쏘아져 뚫어 내겠다.

너희들은 뒤늦게라도 따라와 범람하면 될 뿐.

그렇게 얼마나 많은 적을 부수고 나아갔을까.

문득 주변이 조용해졌다 느꼈고.

내가 일으켰던 공간 해일도 잠잠해졌을 즈음.

- 멍청한 왕은 홀로 움직이는 법이지.

동시에 울리는 두 가지 목소리.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다.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길다.

하나는 두껍고 하나는 가늘다.

상반된 개념이건만 둘의 조화가 기묘하게 맞물렸다.

- 폭군은 홀로.

- 패망도 홀로.

- 죽음도 홀로.

- 패배도 홀로.

이번엔 하나였던 목소리가 갈라졌다.

명확히 달랐다.

웅웅 울리듯 사방에서 조잘대던 목소리가 다시.

- 너는 혼자. 영원히.

하나가 되어 귓가를 찔러 왔다.

동시에 콧속을 찌르는 악취.

악마.

텅빈 공터.

사방이 막힌 터전에 가득한 소악마들 사이.

- 멍청한 군주가 혼자 함정에 빠졌다.

몸이 붙어있는 두 악마가 나를 비웃었다.

홀로 죽으러 왔느냐고.

멍청하고 고집 센 자가 함정에 빠졌노라며 즐거워했다.

푸르푸르, 무르무르.

몸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 악마이자.

에스키모들의 근원.

놈들은 단절된 이들을 찾아 잡아먹는 고약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혼자 남은 이의 옆에서 조롱과 가학을 일삼으며.

깊은 열등감과 피해 의식 속으로 희생양을 집어넣고선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충동질을 일삼는 놈들.

그렇게 감정의 밑바닥까지 쥐어짜고 나면 그를 이용해 애꿎은 이들을 상처 입히는 악마.

어쩌면 악마라는 족속의 비열함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놈들.

“기다렸나.”

쌍둥이 악마는 기다렸던 거다.

내가 홀로 되기를.

그러기만 하면 따로 낚아채 지금껏 해 왔던 대로 말려 죽일 생각이었겠지.

악마의 입가에 피여난 잔혹한 미소가.

신난 듯 서로 마주치는 손바닥이 그러했다.

- 아아, 일이 쉬워지겠어.

-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지. 네 녀석, 우리가 뿌린 악의를 태울 때도 오만을 부렸으니까.

- 그러고도 가장 소중한 검을 잃었다지?

에스키모와 북부에서 벌였던 전투를 아는 모양.

내가 부린 고집과 고결한 희생을 비웃는 목소리에.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이번엔 모두 떼놓고 오지 않았느냐.”

입술을 뒤틀며 역으로 놈들을 비웃었다.

맞다.

지난번의 실수.

당시 백작과 노병들을 희생시키고 얻어 낸 승리.

후회가 깊었다.

오래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하여 내린 결론.

“옆에 죽을 사람이 없으니 후회도 없겠지.”

후회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옆에 없으면 죽을 일도 없다.

참 멍청하지만.

“그게 내 결론이다. 이 빌어먹을 악마놈들아.”

합당한 결론.

그러는 와중에도 입에선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이 꼴을 보는 드워프들은 이리 소리지르지 않을까.

우리한텐 뭉치라며! 왜 너는 혼자냐. 이 빌어먹을 황태자 놈아!

그들에게 내린 가르침이 그러한데 정작 내 행동은 다르니까.

물론.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그딴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황태자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

오롯하지 못한 너희들은 단절로 인해 멸망하고 지옥을 만났으나.

“황태자는 누구보다 오롯하고 고귀해야 하거든.”

난 오롯한 자.

단절 속에서도 홀로 서야 하며 외로워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지배자.

남들에게는 화합과 소통을 강요하면서도 정점에 선 자는 때로 누구보다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

철저하게.

“어디 시험을 내려 보아라. 고독이든 조롱이든 열등감이든 뭐든. 다 씹어 먹어 줄 테니.”

막 불을 뿜어내며 놈들을 쳐 죽이려 할 때.

“전하!”

들려선 안되는 목소리가 울렸고.

급히 돌아본 진생철퇴 반대면에.

“신 안드레! 매달려 왔나이다!”

안드레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매달려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드워프들의 갑옷을 입은 채로!

그 시절, 트렁크에 숨어 왔던 때처럼.

투구 속 드러난 환한 미소에.

“이 미친놈-!”

욕이 절로 튀어나왔으나.

왜일까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알고 있었습죠! 전하께서 이리 나가실 줄을요!”

녀석이 벌겋게 피가 번진 얼굴로 득의양양하게 웃기에.

“뭐 하나. 옆으로 안 튀어 오고.”

결국 안드레를 옆에 세웠다.

“보아라. 내가 보는 풍경이다.”

탁 트인 시야, 득시글거리는 악마들이 동시에 나와 안드레를 바라보았고.

일시적으로 그의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항상 내 뒤에 있었으니 이리 적나라한 풍경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겠지.

파도처럼 몰려오고 절벽처럼 드높이 쌓이 악의 앞에서.

안드레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이래도 옆에 설 수 있겠느냐.”

이건 앞서 물었던 충성심과는 달랐다.

날 믿고 뒤에 서는 것을 넘어 같은 풍경을 볼 수 있겠냐는 물음은.

뒤따르는 것과 함께 달리는 건 다른 문제.

“루카르와 노병들은 함께 섰다 죽었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쓸쓸한 회한이 안드레의 귓가를 건드렸다.

요즘 들어 종종 속내를 터놓는 일이 생겼다.

그들이 나를 믿듯, 나 또한 주위에 있는 자들을 믿어서일까.

그들이 내 뒤를 받쳐 주고 있단 생각에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걸까.

억지로 드는 감상을 잘라 내었다.

적을 앞두고 생각할 만한 감상은 아니다.

그렇게 굳어 있는 안드레를 두고 막 악마가 가득한 지옥속으로 뛰어내리려 할 때.

“으와아-!”

안드레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제 오른팔을 감싼 갑옷을 뜯어냈다.

들어올린 검은 팔뚝에 가 있는 선명한 백색 금.

태동의 증거.

“옆에서 따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을 이겨 내고 새로운 자리로 나아가려 하는 기사의 눈빛에.

“죽지 말고 따라오도록.”

짓궂은 응원을 건네곤.

그대로.

악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옆에 따라붙은 안드레가.

“길을 뚫겠나이다.”

실례를 무릅쓰겠다는 듯 고개를 꾸벅이곤 달려나가.

숨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검을 흩뿌렸고.

반투명한 장막처럼 촘촘히 짜여진 검로로 악마들을 분쇄.

이전 고아원장을 죽일 때처럼 길을 뚫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잔챙이는 자신이 상대할 테니 그동안 저 샴쌍둥이 악마를 상대하라는 뜻.

섬긴 시간이 길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모양.

나를 위한 융단을 깔 듯 악마들의 피를 흩뿌리던 안드레가.

어느 순간부터 막힌 듯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픽, 피픽.

그의 몸 곳곳에 자잘한 상흔들이 피어났다.

거센 검격에 휘날리는 핏방울이 얼굴이 묻었으나.

나서지 않았다.

기껏 두려움마저 떨치고 과거의 충성을 재현하려는 기사의 마음을 존중해서이기도 했고.

터지는 소리를 내며 점점 드러나는 그의 새로운 오른팔 때문이기도 했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악마들을 베면 벨수록 금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새하얀 팔뚝을 빼꼼 드러냈고.

그 사이, 날카로운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운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방해할 순 없지.

그리 가만히 서서 기사의 각성을 바라보는 동안.

“비켜라! 황태자 전하 납신다!”

안드레가 넙죽 커다란 소리로 행차를 알리고는.

팔을 크게 떨쳐울리자.

파앙- 맑은 소리와 함께 감싸 쥔 그림자가 부스러져 내렸다.

드러난 건 순백색의 오른팔, 은은하게 서려 있는 일렁이는 무늬.

귀한 금속과도 같이 생긴 팔이 담은 것은.

“쓸어버려라.”

폭풍.

지금껏 묶여 있던 운명이 껍질을 깨며 용트림했고.

불어닥친 바람이 막혀 있던 길을 뚫었다.

안드레의 검이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깨 나아갔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 퍼지는 마나를 머금은 폭풍이 주변을 찢어발겼다.

기존 검이 닿는 범위를 벗어나 멀리까지 일제히, 구석구석 끝까지.

지금 안드레는 폭풍의 눈이었고.

나는.

“되었다. 이번엔 내 차례로군.”

기사가 일으킨 폭풍 속에 숨어 활을 끝까지 당겼다.

방금 전엔 녹염을 시위에 걸 수 있는지 보았으니.

이번엔.

“얽고, 타오르고, 빛나고, 폭발해라.”

네 가지 불꽃을 한데 뒤얽어 뽑아내었다.

터질 듯 몸을 뒤트는 네 가지 불꽃을 억지로 꼬아 냈고.

안드레가 뿜어내는 바람에 얽은 불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요동쳤다.

이어 네 가지 불꽃을 엮어 만든 화살 위로 어두운 불과 그림자를 덧씌우니.

사위가 잠잠해졌다.

외치기도 부끄러운 기술 ‘번쩍번쩍콰콰쾅’의 변용.

폭풍의 한가운데, 거대한 힘이 기척을 감춘 공백 사이로 고요가 짙게 끼었고.

휘날리던 머리카락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투웅- 시위를 놓았다.

거친 바람에도 의지를 담아 쏘아 낸 화살이 곧게 나아가 쌍둥이 악마를 맞춘 순간.

그림자가 풀어짐과 동시에 공간의 압착, 흑과 백이 교차하는 시야.

이윽고 피어난 네 가지 불꽃이 사위를 감쌌고.

이지를 벗어난 굉음이 공동을 메웠다.

기사의 새로운 경지를 축하라도 하듯 축포가 둘과 악마들의 얼굴을 색색ᄁᆞᆯ로 물들였다.

승리인가.

아니.

- 어지럽기만 하구나.

불꽃을 찢으며 들린 건 악마의 조롱.

이후 벌어진 건.

분열.

붙어 있던 악마들의 몸이 수백 갈래로 뻗어 나가더니.

나와 안드레가 선 공동 가득 거미줄이 촘촘하게 벌어졌다.

거미줄 위에 놓인 우리를 향해 악마들이 몰려들었다.

망치와 검이, 불과 폭풍이 한데 뒤엉켜 거미줄 가운데 피어났고.

쏟아지는 악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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