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열려라
검과 날카로움을 벼리는 철옹성.
높이 솟아난 모루 위, 망치 두들기는 소리와 풀무 부는 소리만이 요란한 가운데.
자리에 선 드워프들 모두가 다른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가짜 브레이커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해야 이미 완벽한 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진 기술을 빛낼 수 있을까.
불을 바라보는 눈동자 위 번들거리는 명예욕과 과시욕.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혹여라도 누가 훔쳐볼까 경계하는 우스운 꼴.
그때.
“다들- 멈춰-!”
우렁찬 목소리 하나가 철옹성을 울렸다.
검 하나만을 바라보던 장인들이 고개를 돌리자.
막 장인전의 모루 위로 복귀한 것은 바로.
“다들 멈춰라!”
검과 날카로움을 벼리는 철옹성의 주인, 대장인 알렉세이.
그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 내지도 못한 채 낑낑거리며 들고 온 것은.
“원본을 갖고 움직이는 게 어디 있어!”
“이봐, 대장인! 그건 반칙이잖아!”
바로 황태자가 갖고 있던 원본 브레이커.
악마들과 전투를 시작하기 전.
“따르겠습니다.”
“필요 없다.”
황태자는 따르겠단 이들을 거부했다.
“난 죽일 테니 너희들은 구해라.”
악마는 자신이 상대할 테니 다른 드워프들을 구하고 규합하라는 명령.
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각자가 각자의 길로 출발하기 직전.
“이봐 늙은 드워프.”
황태자가 알렉세이를 찾았고.
“열쇠를 맡기마.”
그에게 브레이커를 맡겼다.
손에 얹히는 무게가 무겁디 무거워 휘청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무겁나? 그게 책임감이다. 열쇠와 책임을 맡길 테니 갖고 가서 승리를 벼려 와라. 기다리지.”
“자, 잠깐! 만일 내가 늦으면? 그러면 어쩌게?”
알렉세이의 다급한 물음에.
“죽는 거지 뭘 물어?”
황태자는 그저 담담히 받아칠 뿐.
“아니, 그러니까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하냐고. 이 검, 완성될 때까지만 기다려. 그러면 되잖아?”
“그동안 죽는 이들은 어쩌게.”
“…….”
“난쟁이, 하나 알려 주지.”
가득했던 광기를 걷어 낸 황태자의 얼굴에 현명함이 도드라졌고.
“커다란 이들은 많은 걸 굽어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 거친 자리에 서서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크다는 의미다. 커다란 자의 안전은 작은 이들의 위험이다.”
뱉어 낸 말에도 현기와 자비가 가득했다.
태(太)와 대(大).
황자 중에 커다란 이, 장인 중에 거대한 이.
그런 이들이 가져야 할 덕목.
“그러니 꾸물거리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라. 어쩌면 이건 내가 너에게 내리는 마지막 시험일지도 모르지.”
“스스로를 악마에 내던져 가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보며.
황자 중 제일 크다는 이는.
“그 또한 즐거움 아니겠나.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지.”
고결한 탐욕을 드러냈다.
가장 위험한 자리가 재밌어 멈출 수 없다는 표정.
그가 풍기는 광기의 근원일까.
잠시 황태자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린 알렉세이가.
“다들 멈추라고! 입도 닥치고!”
버럭 소리쳐 장인들의 불만을 단번에 억눌렀다.
잠깐의 소강상태, 브레이커를 모루 위에 올려두곤.
망치와 정을 들어.
접합부를 쾅쾅 내리치니.
모두가 경악했고 주위에 있던 드워프들이 달려와 그를 뜯어말렸으나.
이미.
“이런 미친 드워프야! 검을 망가뜨릴 셈이야?”
“이미 망가졌다고!”
브레이커의 검날은 와장창 무너져 내린 뒤.
알렉세이가 달라붙은 이들을 놀라운 힘으로 떼어내며.
부서진 브레이커의 조각들을 불 속에 쓸어 넣고선.
“자! 원본이 망가졌다! 누구도 고칠 수 없다고 이제!”
당당히 외쳤다.
그 뻔뻔한 태도에.
“이 미친놈 조져!”
“가만 안 둘 거야!”
분개한 드워프들이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바닥에 쓰러진 알렉세이를 그 짤막한 다리로 마구 밟아 대는 동안.
대장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숨넘어갈 듯 터뜨리는 웃음 속 광기가 섞여 있어 듣는 이들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
질린 드워프들이 서서히 발길질을 멈추었고.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연장자인데 이렇게까지 때려? 카악 퉤-!”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 알렉세이가 피 섞인 가래를 뱉어 내며 클클 웃었다.
어디 보자.
“그래, 이제야 다들 이쪽을 보는구나.”
시선은 충분히 끌었다.
“자 기껏 장인전이 열렸는데 개선할 원본이 망가져 버렸으니 황태자에겐 뭐라 할까?”
“당신이 혼자 처박아 버린 거잖아! 그걸 왜 우리한테 따져!”
“그럼 조립해. 다시 고쳐 봐. 그러면 대장인이 될 테니. 여기 그게 가능한 장인이 있어? 너희들도 알잖냐. 손댈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누가 저 기술을 뛰어넘을 수 있어. 다시 재현은 가능하냐? 개소리지. 여기 있는 장인 누구 하나 저 검을 재현할 수 없어.”
이제 그들에게 진실을 알릴 때.
알렉세이가 입을 신랄하게 놀려 대었고.
말에 쏘인 장인들이 반론도 못 한 채 몸을 움찔거렸다.
떨구는 고개가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알려 주었다.
장인들의 기죽은 얼굴을 살피던 대장인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중 진짜 장인이 누구냐. 나와 봐라. 누가 이룰 수 있는지. 누가 해낼 수 있는지 좀 보자.”
그의 이어지는 물음에도 누구 하나 입을 벌리지 못했다.
지난 시간 동안 다들 브레이커를 자세히 살폈고.
내심 경악했다.
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를 티 낼 수 없어 입을 다물고 무엇이라도 두들기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으니까.
사실은 모두가 그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지 못했고, 혹여라도 들킬까 봐 남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최고의 장인들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과거 지혜 넘치던 거인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대체 우리는 왜.
“이리 멍청하게 변해 버렸단 말이냐.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거냐. 너희들뿐만 아니라 나 또한…….”
점점 퇴보하는 거냐.
그의 쓸쓸한 목소리에 장인들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때.
젊은 장인 하나가 손을 불쑥 들고는.
“그럼 같이하면 됩니까? 할 수 있는 겁니까?”
궁금한 걸 물어왔다.
“전 손잡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이 있습니다. 방금까지 브레이커의 손잡이 개량은 얼추 끝마쳤어요. 훨씬 손에 감기게, 더 나아가 어떤 적을 갈라도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 수 있죠. 다른 분들은요?”
그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솔직히 고백했고.
나이든 드워프들이 우물쭈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
젊은 혈기로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하는 모양.
그래서.
“나는 날을 날카롭게 벼리고 더 나아가 한 날에 여러 각도의 날카로움을 담을 수 있다. 한 번을 베어도 여러 번 벤 것 같이 만들 수 있지.”
대장인이 먼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읊었다.
“또 하나, 검에 동력을 실을 수 있는 마나 회로 확장 기술이 있다. 깊이 구석구석 마나를 흘려보낼 수 있어. 그걸로 대장인이 되었거든.”
지금 하는 짓은 자신의 목숨줄을 읊는 것이나 마찬가지.
다들 침을 꿀떡 넘기는 것을 보곤.
“그걸 어디서 얻었는지 알아?”
“……?”
“시온이다.”
“……!”
대장인이 기술의 원천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리고 바벨이기도 하지.”
장인들을 상대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겪었는지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타오르는 풀무 불과 바그르르 끓는 쇳물을 배경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이어지길 꽤 오래.
“지옥과 천국은 하나였고 나는 지금껏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빠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미련했지. 그래서 이제라도 고백한 거다. 미안하다.”
마침내 사과로 말을 맺었고.
“후우-, 이렇게 뱉어 내고 나니 시원하군.”
후련한 한숨을 뱉었다.
“황태자는 이 검을 벼려 오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던데. 자 어떻게 할 거냐. 선택해라.”
이어진 선택이란 단어에.
대장인의 개운한 표정을 묵묵히 보던 장인들이.
“내 기술은 날과 손잡이를 결합하는 기술이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나는 죽지 않는 날을 만들지.”
하나둘씩 저들이 가진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
곧 대장인과 같이 후련한 얼굴을 했다.
용서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행동으로 함께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서히 각자가 맡아야 할 분야가 나누어졌고 모인 이들끼리도 기술을 교류하기 시작.
어떻게 하면 더욱 완벽한 검을 만들까 토론이 이루어졌다.
점차 고조되는 열기와 흥분.
그 위로.
“참, 검의 주인께서 말씀하시더군.”
대장인이.
“끝없이 확장하는 검을 만들라고.”
황태자가 요구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끼얹었고.
장인들의 활발한 대화가 풀무 바람을 맞은 불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곧 다시 망치질 소리가 철옹성을 금세 메우기 시작.
이번엔 소란스러운 목소리도 함께였다.
* * *
검을 벼리는 철옹성이 한창 새로운 브레이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시각.
“다들 막아!”
“청익, 검을 뽑아라!”
산 아래로 뛰어내린 건 비단 황태자와 안드레뿐만이 아니었다.
청익과 마법사단 일부가 도착한 곳은 활과 화살, 관통을 다듬는 드워프들이 머무는 철옹성.
성벽 위에 올라선 마법사들이 실드와 광역 폭격을 준비.
기사들은 실로 오랜만에 활을 들어 올렸다.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기사들이라 해서 활을 쏠 줄 모르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이거 좋잖아?”
“다음부턴 보조 무장으로 활을 들고 다닐까.”
드워프들이 만든 활이 뛰어났고.
철옹성 안.
“오호 이건, 이건!”
“잠깐 너만 보지 말고 나도 좀 보자!”
옹기종기 모인 드워프들이 새로운 형태의 활을 보며 놀라는 중.
바로 기사들이 챙겨 온 비행선에 달아 놓은, 원통을 여러 개 이어 붙인 철 조각 발사대.
살라스가 명명하길 개틀링 건이라 했던가.
플라워 밸리, 한 학자가 만든 물건이 지금 장인들을 경악시키고 있었다.
남에게 성의 방어를 맡겨 놓고선!
“이런 비스름한 걸 만들어 달라는 말이지?”
“네! 어서요!”
마법사들의 부탁으로 시작된 작업.
얼마 안 가.
“뭐 하는 짓거리들이에요!”
각자 숨어 작업하는 것을 발견한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성을 내었고.
드워프들이 쭈뼛쭈뼛거리기에.
“이러면 우리 그냥 성 포기한다! 정신들 안 차려! 너희 놀러 왔어? 너희 철옹성 버려?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도 당신들보다 빨리 만들겠다! 당장 만들어 와! 이러다 다 죽는다고!”
이들을 이끄는 살라스가 지금껏 황태자에게 받았던 압제와 폭정을 그대로 베풀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 상황에서 그딴 장인 정신 따위 알 게 뭐야.
생명과 자존심 중에 선택할 건 당연히 생명.
장인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서로의 뜻을 공유.
철옹성 위에 부품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형태의 개틀링 건이 튀어나왔고.
드워프들이 이를 뚝딱거리자.
이어 불꽃을 튀기며 철 조각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바탕 악마들을 소거한 뒤에야.
“청익! 마법사단! 준비! 황태자를 찾는다!”
막 철옹성을 벗어나려는 때.
“전하! 전하-!”
저 멀리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알프레드?”
바로 알프레드와 그의 옆구리에 낀 채로 함께 오는.
니콜라이.
“이봐! 다들 잘 들어-!”
시온과 바벨은 하나다!
그의 외침에.
저게 뭔 개소리야라는 표정을 짓는 살라스와는 달리.
그가 선 철옹성 안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이.
“시온은 실제로 존재한다! 가는 입구를 찾았다!”
“모두 가진 기술을 나누어라! 너희들의 알량한 지식을 나누는 게 시온으로 향하는 열쇠다-!”
나머지 철옹성 곳곳에서 벌어졌다.
블러디를 따르는 하프 엘프들이 머무는 망치와 파괴를 뭉치는 철옹성에도, 사막 전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엘이 도착한 창과 순간을 찔러내는 철옹성에도.
시온이 실존한다는, 심지어 입구를 찾았단 소식이 전해졌고.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 모든 것이.
“가라, 너희는 가서 갑옷을 조립하듯 드워프들의 단절을 끊고 서로를 이어라. 그 뒤 진실을 전하여 방패를 두들기듯 단단히 만들어라.”
황태자의 안배.
“무어라 전하지. 시온이 진짜 있다는 것, 우리가 퇴보하고 있었단 사실, 심지어 시온과 바벨이 하나라는 것까지 모두 전하면 되는 건가.”
그가 악마들을 향해 달려들기 전.
“먼저 달콤한 과자를 건네 주어야지. 시온이 존재하며 너희들의 소통과 용서, 고백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 전해. 그러면 될 거다.”
남긴 말.
정말 그의 말 대로였다.
시온이 현존한다는, 입구를 찾았다는 말에 받은 충격은 잠깐.
소통과 합의가 천국으로 향하는 열쇠라는 소식이 그들의 머릿속 깊이 남았고.
장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언어는 같았으나 서로 입을 다물고 있어 뜻이 쉬이 맞지 않았고.
심지어 성이 다른 드워프들은 단어와 억양의 차이가 심해 서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
그제야 모두가 심각성을 알아챘다.
만일 더 오랜 시간 서로 입을 닫았다면 어땠을까.
종국엔 같은 뿌리, 다른 가지가 되었겠지.
몸서리치던 그들이 황태자 일행의 인도를 따라 일제히 어디론가 향하였다.
드워프 종족의 대이동.
철옹성을 버리고 떠나는 이들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으나.
헌 집을 버리고 새집을 얻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위태로웠다.
몰아치는 폭풍 속 숨겨진 검날.
불을 꼬아 만든 화살이 분수처럼 솟아났고.
콰르르릉, 망치를 내리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때마다 타오르는 불이 악의로 가득한 공동을 환하게 비추었다.
악마들의 신음과 비명, 고함이 가득한 가운데.
불과 폭풍이 어우러져 거미줄 위에서 뛰놀았다.
자르고 때리고 태워 보았으나.
끈끈하게 늘어진 거미줄은 계속하여 숫자를 불려 나갔고.
“전하!”
“왜!”
“점점 좁아집니다!”
거미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점점 포위망을 좁혀 왔다.
악마들이 줄 위에서 춤을 추며 더러운 체액을 뿌려대었다.
안드레가 폭풍을 쏟아 내어 스멀스멀 몰려오는 악의를 쓸어내 보았으나.
점점 조여 오는 거미줄과 악마들이 내뿜은 지저분한 악의가 폭풍과 불비의 범위를 좀 먹었다.
그나마 버티고는 있었지만.
“전하! 잘리질 않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잘 들려. 그런데-.”
자를 수 없으니 도망칠 수도 이겨 낼 수도 없는 상황.
그때 황태자가 다급한 상황임에도 의문을 표했다.
“공간이 끓어오르지 않는군.”
이상한 일이었다.
망치로 이렇게 후드려 패고 있는데도 공간이 끓어오르지 않는다.
왜?
문득.
“안드레 모습이 멀쩡해졌구나.”
“어? 전하께서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서로의 모습이 왜곡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평민, 보이나. 저 끝의 공간, 일그러져있다.”
“보입니다.”
이곳은 놈들이 따로 마련해 놓은 하나의 공간인 모양.
악마가 세워 놓은 법칙을 따라 몸을 감싼 왜곡도 벗겨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안에서부터 깨는 순간 놈이 세운 법칙도 무너질 터.
브레이커가 있었다면 단번에 열었겠으나 지금은 없으니.
대신 다른 검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올라타라. 날려 주마.”
황태자가 망치를 뒤로 당겨 평평한 면을 비스듬히 세웠고.
그 위로 안드레가 올라탔다.
힘찬 스윙이 절정에 달한 순간, 이를 박차고 튀어 나간 기사가 폭풍과 악마들을 뚫으며 날았다.
“으그그극!”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볼살과 입술을 떨어대며 막 공간 끝에 검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빠지직.
밖에서부터 공간이 갈라졌고.
안에서 삐져나온 것은.
“전하?”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의 얼굴.
서로의 가까워지는 얼굴을 보며.
“으와아악!”
“어어! 아저씨 비켜!”
예상되는 비극에 손사래를 쳤고.
알렉세이가 간신히 몸을 틀어 안으로 뛰어드는 안드레를 피해 내곤.
“전하! 열쇠! 새로운 검을 벼려 왔습니다!”
드워프들이 벼린 새로운 브레이커가 도착했던 소식들 알리자.
“와라!”
주인의 부름에 브레이커가 헐레벌떡 날았다.
악마들이 손을 뻗어 보았으나 검은 결코 주인이 아닌 자의 손길을 허락지 않았고.
요리조리 공간을 날아, 마침내 제 검, 승리, 열쇠를 손에 쥔 황태자가.
“열려라.”
쿠욱 브레이커를 악마의 몸에 끼워 넣고는.
“악마.”
철컥-!
열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