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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47화 (147/200)

147화 새집 줄게 헌 집 다오

“모두 준비이이-!”

뜨거운 불과 망치질 소리가 한참이나 울리던 철옹성.

대장인 알렉세이의 고함과 함께 일순간 찾아온 침묵.

뼛속마저 녹일 것 같은 새빨간 풀무 불 앞에 선 장인들의 얼굴에 긴장이 줄줄 흘렀다.

흐르는 땀이 눈을 찔렀으나 숨조차 조심스레 쉬느라 닦아 내지도 못할 정도.

그들의 열망이 향한 방향은 바로 지금, 점차 식어가며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검.

브레이커.

꿀꺽, 침을 삼킨 알렉세이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불에 담겨 있던 검을 꺼냈고.

불티가 이지러지며 새로운 브레이커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게 달아올랐던 검신이 식자.

이전보다 한층 작아진 모양새가 뚜렷했다.

장인들이 모여 새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듯 검을 바라보았고.

알렉세이가 검을 들어 올린 채로 망치를 쥐어 검신을 깨우듯 살포시 때리자.

우웅- 우웅- 우웅-!

브레이커가 보드라운 울음을 토해 냈다.

뻗어 나간 공명이 드워프들을 넘어, 철옹성을 넘어, 저 멀리 공간의 끝에까지 다다를 정도.

검을 이루는 모든 구성이 각자 다르게, 그러나 하나가 되어 떨리니.

그 잔잔한 울림이 주는 감격에.

“아아- 아아아- 저게 검이로구나.”

“평생 저런 검을 볼 줄이야.”

드워프들이 탄성을 뱉어 냈다.

어떤 이들은 굵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고.

알렉세이 또한 붉어진 눈망울로 떨리는 숨결을 내뱉었다.

얼마 만이던가.

충만한 감격이.

단순히 만드는 것을 넘어 세상에 남을 무구를 탄생시켰단 기쁨.

때로 장인이 빚는 무기는 단순히 도구의 개념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걸 드워프들은 완성을 넘어 탄생시킨다고들 하는데.

장인이 마음으로 잉태하여 불로 감싸고 망치로 빚는 과정 전부가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며.

탄생한 검은 그 울음으로 그것의 고귀함과 놀라움을 세상에 알린다 했다.

검과 날카로움을 벼리는 철옹성에서 실로 오랜만에 막 태어난 검의 우렁찬 울음이 퍼져 나갔고.

미치는 범위가 철옹성을 넘어 공간 전체를 떨어 울릴 정도이니.

“세상을 놀래킬 아이가 태어났구나. 그래, 그래, 울어라. 더욱 크게 울어라. 네가 품은 날카로움이 많은 생명을 빼앗기도 하고 지키기도 할 테지. 다만 바라건대, 선한 일에 쓰이길 기도하마.”

갓난아이를 축복하듯 알렉세이가 순박한 손으로 검을 쓰다듬고는.

“우리가 탄생시킨 아이다. 모두 보아라. 모두 축복해 주어라 검의 아비들아. 녀석이 겪어 나갈 세상이 험할 테니까.”

찬찬히 그들이 빚은 아이를 내밀었고.

드워프들이 일제히 검을 축복했다.

우리가 탄생시켰다는 말.

혼자가 아닌 같이 탄생시킨 검이 이리 웅대하게 울어 대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아비들의 축복을 함빡 빨아들인 검을 들고 알렉세이가 달렸다.

“쉬, 쉬- 곧 만날 거란다. 걱정 말려무나.”

아이가 부모를 찾듯 검이 제 주인을 찾아 계속 울어 대는 중.

할아비가 된 알렉세이가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달렸다.

혹여 상할까 검을 받쳐 든 손이 조심스러웠다.

뒤에는.

“조심히 들어. 조심히!”

“어어, 애 흔들려요!”

간섭하는 드워프들이 한가득.

“너희는 왜 여기까지 따라오고 지랄이야!”

“애 들어! 욕질은 왜 하는 거야!”

“그러게요. 목소리 높이지 마십시오. 애 귀 아프니까!”

아주 보모처럼 옆에서 쏟아지는 잔소리에 귀찮을 지경.

알렉세이가 고개를 가로젓길 잠시.

어느새 잠잠해진 브레이커를 보니 느껴졌다.

아, 거의 도착했구나.

웅크린 모양새가 주인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모양.

이윽고 알렉세이가 막힌 공간으로 브레이커를 찔러 넣었다.

그가 자격이 있어서 검을 휘두른 건 아니었다.

검 손잡이를 잡은 순간, 기다렸다는 듯 브레이커가 알아서 공간을 갈라냈고.

제 주인을 찾아갔다.

황태자가 손에 새로운 브레이커를 쥔 순간 모두가 들었다.

까르르륵!

기쁘게 웃어 젖히는 검의 웃음소리를.

자식을 남의 손에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으나.

“행복하면 되었지.”

“그래, 오래오래 행복하렴.”

턱수염 풍성한 아저씨들의 감격스러운 얼굴이 부담스러웠으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에 깃든 감정만은 진심.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패악스럽고 우악스러우며 성격이 고약한 황태자는 갓 태어난 보송보송한 검을 너저분한 악마의 살갗에 꽂아 넣고는 돌려 버렸고.

드워프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못 보겠다.

* * *

드워프들이 불만을 표하거나 말거나.

브레이커를 잡는 순간, 손에 착 감기는 맛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전에도 훌륭했으나 손에 잡는 순간 깨달았다.

이게 진짜구나.

전에는 건국제를 위하여 만들어진 검.

지금은 나를 위하여 만들어진 검.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브레이커가 품은 모든 운명이 당신을 위해 새롭게 조정되었습니다]

[기존 품었던 운명 열쇠가 운명 날카로움과 맞물려 강화됩니다. 당신의 운명에 반응한 브레이커의 운명들이 강하게 태동합니다]

떠오르는 운명들과.

손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브레이커의 검신.

과거에는 1.5m짜리 거검이었다면 지금은 1m가 조금 안 되는 롱소드의 형태.

검면의 넓이 또한 이전보다 좁아졌다.

전에는 튀어나온 톱니가 비죽비죽 송곳니 같았다면 지금은 정교하게 축소되어 빼곡하게 자리한 모양, 끝은 무언가를 찌르기 위해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다.

강대한 힘을 쉬이 받아들이고 뿜어내는 구조는 그대로이나 더욱 정교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마음에 들었다.

자고로 황태자가 쥘 열쇠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리 오래 떨어진 것도 아니었건만 어지간히 반가운지 그르릉 만족감을 표하는 브레이커를 높이 들어 올려.

“열려라. 악마.”

악마의 몸에 깊이 찔러 넣고선 돌렸다.

철컥.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울렸고.

브레이커가 파고든 자리, 나타난 건 자그마한 실금.

아직 부족한 듯하여.

다시 한 바퀴를 돌렸다.

그러고도 열리지 않아 또 한 바퀴를 돌리자.

주변을 조여오던 거미줄이 어느새 저 멀리까지 벌어져 있는 것을 확인.

- 저거 뭐야?

- 왜 점점 벌어지는 거지?

샴쌍둥이 악마 또한 당황했는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지금 보니까 조여 오던 공간을 열어젖힌 모양.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이봐 늙은 드워프. 이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엉망이잖아.”

알렉세이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자.

“아, 아직 결합이 완전하지 않아서 그래! 원래 주인의 마나를 들이마셔야 검이 완전히 깨어난다고!”

알렉세이가 당황한 듯 외쳤다.

서로 간에 적응이 필요한 모양.

“진작 말할 것이지.”

아직 갸르릉거리며 만족을 표하는 브레이커에게 가장 익숙한 불.

적염을 쑤셔 넣었다.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부터 시작하여 몸을 내달린 불이 팔과 손끝을 타고 브레이커의 손잡이에 이른 순간.

우우우웅-!

고양이 소리 같던 울음이 점점 고주파의 영역으로 넘어가더니.

아직 안에 남아 있는 기름을 태우듯 검은 연기가 푸르르 피어나길 잠깐.

곧 맑은 소리와 함께 피워 낸 불이 온전히 검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느껴졌다.

완전한 연결이.

손잡이부터 검신 끝까지 퍼져 나가는 불꽃이.

꾸욱 힘주어 잡는 손이 손잡이와 뒤섞이는 듯한 눅진한 감촉이 편안했고.

검날 구석구석까지 뻗친 적염이 심장의 고동을 따라 찬찬히 맥동했다.

확신했다.

내 검이다.

장인들이 안배해 놓은 구조와 기능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감각.

“첫 번째 적염.”

홀로 중얼거리며 검을 떨치자.

검을 감싼 톱날들이 초고속으로 회전을 시작.

붉은색을 머금었다.

고열로 회전하는 검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떨친 순간.

검날이 닿은 부위에서부터 거대한 불이 번져 나갔다.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불이 몰려들던 악마들을 일제히 휩쓸었고.

다시금 검을 떨치자.

넓게 퍼진 불이 한점으로 압축.

초고열로 이루어진 직선으로 사방을 갈랐다.

녹아내린 악마들의 시체가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는 광경에 피어나는 배부른 미소.

퍽 만족스러운 결과.

다음.

“초적염.”

적염을 거두곤 두 번째 심장의 불꽃을 내뿜자.

검면에 잘게 어리는 폭발.

앞으로 검을 뿌리니.

폭발을 머금은 브레이커가 깨졌고.

튀어 나간 톱니들이 악마들의 살을 파고들었다.

뒤에 다시 한번 이어지는 폭음.

폭발이 폭발을 일으켰고 연쇄된 초적염이 거미줄을 가득 채우며 요동쳤다.

폭발의 물결 속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지휘봉을 든 지휘자처럼 뿜어낸 불이 완벽히 손 안에 있다.

이어 다시 손을 휘두르자 퍼져 나갔던 브레이커가 다시 제모습을 갖추었다.

촤르르륵- 흐르듯 모이는 모양새가 아름다웠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시야 가득했던 악마들은 재가 되어 흩날리는 중.

사위를 압박했던 거미줄도 너덜너덜해진 상태.

이대로 끊어 버리기가 아쉬워.

“얼른 붙여. 기다려 줄 테니.”

잠시 악마에게 시간을 주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었다.

실험해 볼 기능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벌써 놈이 죽어 버리면 아쉬우니까.

그저 그뿐.

적에게 시간을 주는 오만.

적을 죽여야겠다는 살의보다 새로운 검을 알고자 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호흡이 찰지게 붙는 게 휘두를 때마다 쾌감이 머리를 울릴 정도.

손끝으로 공간을 주무르는 듯한 감각.

치미는 불과 어리는 폭발들이 완전히 내 통제 안에 있는 전능감이 짜릿했다.

하여.

“회복은 끝났나?”

- 조롱하지 마라!

- 감히!

놈들이 회복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

이번엔 광염을 피어 올렸다.

그러자 브레이커가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화했다.

날이 열리며 드러난 새까만 구멍.

회전하는 복잡한 내부 구조 사이로.

지이이잉-

광염이 어렸다.

본 적 있다.

감찰관이 공간을 모으던 방식.

그것처럼 광염이 모여들기 시작.

브레이커가 치열하게 회전하며 뛰쳐나가려는 광염을 잡아 두었고.

모여든 빛에 눈이 멀어 버리기 직전.

회전이 멈춤과 동시에 묶여 있던 맹수가 풀리듯 한점으로 모여든 광휘가 뛰쳐나가.

앞을 가로막는 모든 악의들을 살라 먹었다.

빛이 너무 밝아서일까.

브레이커를 휘두른 자리엔 피어오르는 어둠.

사방을 촘촘히 메웠던 거미줄이 가닥가닥 끊어진 모양새가 처량했다.

축 늘어진 악마의 시체를 보며.

“추하구나.”

다시금 비웃음을 띄워 올렸다.

그렇게 단단함을 자랑하더니 갈기갈기 찢어진 모양새가 불만이었다.

“좀 더 버텨 봐라. 이래서야 제대로 기능 확인이 안 되잖아.”

그래도 악마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좀 버텨 주어야지 새로운 브레이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놈들을 괴롭히고 조롱하는 게 재미있었다.

더욱 괴롭히고 싶은 마음.

놈들이 수많은 이를 조롱과 가학으로 망가뜨렸듯.

“무능력하고 쓰레기 같은 악마들이로군. 너희들이 만든 에스키모가 너희들보다 훨씬 강하고 위협적이었다. 자식보다 부모가 못하니 그냥 너희들이 뒈져 버린 에스키모들의 자식 노릇이나 하는 게 어떻겠나.”

- 죽여 버리겠다! 네놈의 껍질을 한 풀 한 풀 벗겨 주마!

- 사지를 잘라 똥통에 넣고 악마들의 오물을 받아먹게 해 주마! 그런 꼴로 평생 조롱받으면서 살게 될 거야!

“가서 뒈진 에스키모들 시체나 파먹고 살아. 아, 시체도 없구나? 그럼 지옥에서 만나야겠군. 가서 자식들에게 전해. 너희도 나한테 뒈졌다고. 부모와 자식 모두가 같은 이에게 뒈지다니, 꽤 감동적인걸?”

키야아아악!

신랄한 조롱에 악마들이 고함을 지르며 몸을 더욱 활짝 펼쳤고.

이내 얇은 막으로 변하여 주변을 감쌌다.

이대로 나를 잡아먹으려는 속셈.

어쩌면 최후의 발악일지도.

곧 피막이 범위를 좁혔고.

“전하!”

안드레의 날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안에서부터 배어 나온 진득한 악의가 발밑을 적셨다.

이대로 녹여 먹기라도 하려는가.

놈들의 비웃음이 들리기에.

“이제 좀 할 만하겠네.”

아직 누런 광염을 머금은 브레이커를 흔들자 검이 둥그런 고리 수십 개로 변하여 피막 안을 채웠다.

번져 나가는 빛살.

고리 하나하나를 타고 넘어간 빛이.

공명하며 고속으로 이동.

수십 개의 고리가 꺾이고 반대로 회전하며 빛을 이리저리 산란시켰다.

그렇게 빛나는 풍경이 끝난 자리.

나를 감쌌던 악의가 갈가리 찢어지는 모습에.

이번엔 검에 푸르른 새싹을 둘렀다.

* * *

분명 고치를 틀었다.

저 재수 없는 미소를 짓는 황태자를 녹여 죽이리라.

고치에 갇힌 이상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놈이 조롱했던 에스키모들을 탄생시킨 장소.

여기서 황태자를 녹이고 재조립해서 무엇보다 추한 에스키모로 만들리라.

하면 두고두고 놈을 조롱할 수 있겠지.

더 나아가 지금 황태자를 보며 희망 어린 눈을 빛내는 드워프들을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겠지.

드워프, 산맥, 더 나아가 제국 전체가 두려움과 고통에 떨리라.

그들이 뿜어내는 향취와 감정이 얼마나 달콤할까.

이를 마시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 역시 넌 천재야.

- 공들여 망가뜨리고 괴롭히자고 형제여.

무르무르, 푸르푸르.

두 샴쌍둥이 형제가 서로의 악함을 칭찬했다.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황태자는 자신의 몸이 녹아내리고 나서야 이를 깨닫겠지.

누구보다 추한 꼴로 변하리라는 것도 모르고.

그들이 만든 에스키모는 과거 누구보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섰던 이들.

누군가는 인간들의 영웅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지혜로운 거인이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가장 아름다운 엘프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모두 같았다.

추하게 녹아내리는 결말만큼은.

고치 안에서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했고, 오랜 조롱과 학대에 자신의 영광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었다.

이후 남은 건 그들의 신비를 재조정하고 살육을 탐하는 괴물로서의 자아를 심는 것뿐.

황태자도 같아질 거다.

곧 누렇고 못생긴 괴물이 되어 고통스러워하다 식탐을 부리는 괴물로 변하겠지.

오래오래 괴롭혀 주리라.

그렇게 킬킬거리는 동안.

“뭐 해. 벌써 죽었어?”

- ……?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는 황태자의 얼굴이 보였다.

왜 고통에 떨고 있어야 할 놈이 악마들을 내려다보고 있단 말인가.

녹아내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규해야 할 자가 어떻게 저리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단 말인가.

의문도 잠시.

황태자의 얼굴에 살기 어린 미소가 번져 나갔고.

“아아, 너희 꿈꿨구나?”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이게 꿈이 아닐까 싶은 상황.

그러나 갈가리 찢긴 몸은 지금 처한 현실을 다시금 알려 주었고.

그들이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할 때.

“그럴 필요 없어.”

황태자가 푸르른 불꽃으로 그들을 감싸.

몸을 복구시켜 주었다.

온전히 회복된 몸.

그러나.

“아직 확인할 게 좀 더 남았거든.”

그의 얼굴에 어린 가학과 조롱을 마주한 악마들이 절망에 떨었다.

공동엔 꽤 오랫동안 고통에 찬 울음과 즐거운 웃음이 섞여 들려왔다.

무너진 몸을 회복시켜 다시 짓이기를 반복하는 황태자의 손속이 독했고, 눈에는 광기가 찰랑거렸다.

악마와 인간의 역할이 뒤바뀐 풍경에.

“다들 고개 돌리자고.”

“그래, 괜히 마주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

드워프들을 비롯하여 막 황태자를 돕기 위해 모인 기사들과 마법사들마저 고개를 돌려 일어나는 일을 외면했다.

그렇게 얼마나 괴롭혔을까.

- 그, 그냥 죽여-.

- 죽여 줘 제발.

다른 이들을 괴롭혀 왔던 악마들이 제 죽음을 구걸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과 조롱.

지금껏 베풀었던 악행이 역으로 그들을 휩쓸었고.

그제야 고통을 깨달은 악마들이 차라리 죽이라 소리치는 가운데.

“좋다. 자비를 베풀어 죽여 주지.”

다시 원래의 브레이커를 든 황태자가 쿠욱 놈들의 몸 깊숙이 검을 찔러 넣었다.

마음을 꺾었으니 이번엔.

놈들을 찢어 놓을 차례.

익숙해진 지금, 아까와 같은 실수는 없을 거다.

다시금 처음처럼 악마의 몸속에 꽂은 열쇠를 돌리자.

철컥.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울렸고.

- 푸르푸르!

- 무르무르!

샴쌍둥이로서 붙어 있던 악마들의 몸이 완전히 갈라졌다.

열쇠로 놈들의 연결을 열어 버린 셈.

그제야 놈들이 바라 마지않던 죽음이 허락되었다.

모든 악의를 멸한 자리.

자신에게 등 돌아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던 황태자가.

“대장인들은 뒤를 돌아라.”

각 철옹성을 이끄는 대장인들을 불렀고.

돌아선 그들을 마주한 황태자의 얼굴에 불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 측근들이 봤다면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는 걸 알았겠지.

하지만 참으로 운 없게도 모두 뒤돌아 있는 바람에 황태자의 미소를 보지 못하였고.

“헌 집을 다오. 그리하면 새집을 주겠다.”

악마마저 조롱하고 괴롭혔던 황태자가 슬며시 달콤한 제안 하나를 했다.

“그 새집은 너희들의 천국 시온이 될 것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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