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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51화 (151/200)

151화 탈각(脫殼)

고도, 만년설이 흩어지고 강철이 대신 자리 잡은 봉우리.

황태자가 갑자기 마구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번개를 뿜어내는 근원이 되었고.

그가 던진 망치가 하늘을 때리자 산맥 전체, 더 나아가 제국 중부와 동부까지 영역을 넓힌 먹구름이 아프다는 듯 몸을 뒤틀더니.

이내 전역에 거센 비와 번개가 쏟아져 내렸다.

며칠간.

북부 끝자락 산맥에는 천둥 번개가 쉼 없이 몰아쳤다.

현상의 근원, 황태자가 위치한 자리.

한 손은 땅에 꽂은 브레이커에, 한 손은 하늘로 향한 채 서서 번개를 하늘로 쏘아 내고 떨어지는 번개를 맞이하는 중.

어찌 보면 하늘과 소통하는 듯도 싶었다.

대체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아서 계속 번쩍이고 있는가.

얼핏 보기엔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 고고하게 검을 잡은 채 하늘과 소통하는 황태자라.

깨끗한 백금발은 차가운 북풍에도 한 점 상한 곳 없이 휘날렸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진눈깨비들도 감히 황태자의 옷자락을 침범치 못했다.

번개가 번뜩일 때마다, 먹구름이 몸을 뒤틀 때마다 그를 감싼 기세 또한 매섭게 변하였다.

번개로 사람을 벼린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산맥은 모루요, 번개는 망치, 가운데 선 황태자는 천하의 귀한 보구.

그리 보일 정도의 삼엄한 풍경.

다만 멀리서 보면 그렇다는 뜻이고.

“으아아아! 이러다 다 죽는다고! 미친 황태자야!”

“야! 야! 저거! 저거 무너진다! 곧 터진다고!”

“충전 과다야! 모닥불 꺼! 이러다 타 죽겠어!”

가까이에선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철이 가득한 높은 장소, 거기다 무더기로 떨어지는 번개라니.

황태자가 피뢰침이 되어 대부분을 받아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야! 피해!”

새어 나오는 번개를 어찌할 순 없는 상황.

마침 드워프들의 머리 위로 번개 한 줄기가 떨어져 내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휩쓸리기 직전.

파스스스-

은색 오른팔을 번쩍 든 안드레가 몸을 덜덜 떨며 외쳤다.

“버틴다! 견딘다!”

전하의 고통을 나눠진다!

스스로 피뢰침이 되어 번개를 견뎌 낸 그의 오른팔에 남은 전기가 파지직 튀었고.

거꾸로 치솟은 머리카락으로.

“가로등! 와서 같이 짐을 나누어지자! 우린 전하를 모시는 신하가 아닌가! 고통도 나누어져야지!”

솔에게 벼락을 함께 맞을 것을 강요했으나.

“그걸 대체 왜 맞아요? 정신 나갔어요?”

그림자 속에 떨어지는 번개를 욱여넣은 솔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안드레를 타박했다.

심지어.

“대체 그걸 왜 맞는 거야? 제정신이냐?”

백작은 검을 휘둘러 번개를 갈랐고.

마법사들은 실드로 막았으며, 깡통 기사는.

“와하하하! 나는 몸이 없어서 괜찮지!”

안에 번개를 담은 채 신나 춤을 추는 중.

“왜 나만 아픈 거야?”

모두 피하거나 막아 낸 번개를 안드레 홀로 맞은 모양.

곧 그가.

“아파야 신하다. 몰라요? 다들?”

혼자 아프기 싫어 주접을 부려 봤으나.

“아프면 환자지 뭔 개소리야.”

“정신 차려요.”

“머리 정리 좀 하고요.”

핀잔만을 들었다.

아, 딱 한 명.

“이봐 안드레! 합체하자. 그러면 번개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야.”

한 깡통 갑옷이 안드레의 편을 들었으나.

“혼자 많이 즐기십시오.”

안드레가 풀죽은 얼굴로 터덜터덜 돌아섰다.

충성스런 신하들이 내리치는 번개를 막아 내는 동안.

드워프들은 산맥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온을 조정하느라 정신없었다.

번개가 떨어질 때마다 이를 빨아들인 기관들이 활성화되었고.

넘치는 에너지로 과부화된 장치들이 증기를 뿜어내며 신음했다.

“이봐 이거 저장고로 보내!”

“이런 1저장고 다 찼는데?”

“다른 저장고 있을 거 아냐!”

곳곳에서 새파란 전력이 관을 타고 흘렀고.

모닥불이 덩달아 새빨간 열기를 더했다.

산맥 전체에 붉고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모습.

그리고.

그르르르-

피가 휘돌 듯 몸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에 시온이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곳곳에서 과부하 되어 터지는 힘이 마치 거대한 생물의 용트림 같아 보일 정도.

모닥불은 펑펑, 연기와 불꽃을 뿜어내며 뜨겁게 땅을 달구었고.

푸른 번개가 내리쳐 산맥 곳곳을 밝혔다.

과부하된 열기와 전기를 함빡 머금은 시온이.

“깨어난다.”

알렉세이의 말대로 깨어나기 시작했고.

“더는 번개가 떨어지지 않을 테니. 장인들은 안정화에 집중해라.”

비로소 눈을 뜬 황태자가 몸에 번개를 휘감은 채로 난리가 끝났음을 알렸다.

“소중히 다뤄야 할 거야.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으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드워프들이 아까와는 달리, 산맥이 깰까 고요히 의견을 나누어 가며 각종 장치를 어루만졌고.

거칠게 용솟음치던 불과 번개가 차근차근 산맥 방벽에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 * *

- 퍽 훌륭히도 자리 잡았구나.

“…….”

- 보아하니 충분히 산맥을 덮고도 남겠어.

“…….”

- 삐졌냐? 후손아?

건국제의 느물거리는 목소리에 다시금 망치를 던져 버리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왜 안 사라집니까?”

- 그야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해서 그런 게지. 그러고 보니 너 대체 어떻게 지금껏 그리 잘 버텨 왔냐?

건국제가 뱉은 알 수 없는 소리에 분노를 멈추었다.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그럼 지금 심장 주위에 자리 잡은 다섯 번째 원은 무어란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버티다니.

“악으로 깡으로 버텼죠. 제가 선택한 힘 아닙니까.”

- 하!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야. 네 몸을 봐라.

“왜요. 완벽하기만 한데.”

- 완벽은 무슨, 엉망이지 않으냐. 강철의 신비를 얻은 것치고 혈관은 좁아 터졌고 몸 곳곳에 역한 찌꺼기들이 가득해.

“그 정도까진-.”

- 원래라면 가을바람 맞은 종마처럼 벌떡벌떡 뛰어야 할 심장이 불에 짓눌려 간신히 헐떡이고 있지 않냐.

“가을바람 맞은 종마요?”

- 어허, 안에 들어와 보니 알겠다. 지금껏 제국을 살리겠노라 몸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그저 힘을 기르는 것만 집중했으니 쯧쯧.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다. 이 녀석아. 빈약한 토대 위에 높은 탑을 지으면 언젠간 무너지는 법이야.

이내 건국제의 말투가 심각하게 변했다.

지금껏 그저 이겨 내 왔다.

원래 폭군의 몸이 가진 재능은 밑바닥 중의 밑바닥.

다만 처음엔 광기로 뜨거운 불을 견뎌 냈고 이후엔 튼튼한 강철의 신비로 버텨 왔다.

몸뚱이가 지닌 한계가 명확했으나 각종 신비를 덕지덕지 발라 이를 뛰어넘은 지 오래.

지금껏 신비를 서로 맞물려 균형을 유지해 왔던 것.

- 심장, 신체, 정신. 이 셋이 이룬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게 스러진다. 물거품처럼.

“…….”

- 이런 멍청한 후손 같으니라고, 치열하게 달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무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시간이 없는데 어쩝니까. 선조 같았으면 몸 좋아질 때까지 어디 산속에 박혀 수련이라도 하셨을까요?”

- 나? 나는 원래 재능이 뛰어났는데? 수련이 왜 필요해. 타고나면 되는 일인데.

“좋으시겠네요. 재능 뛰어나서.”

- 그럼! 그런데 어떻게 내 핏줄 중에 이런 몸뚱이가 있을 수 있냐. 참 괴팍한 몸이로다.

“그래서 그만 감탄하시고 방법 좀 알려 주세요. 몸 안에 들어온 김에.”

내 투덜거리는 소리에 건국제가 씨익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번개가 몸을 헤집는 동안, 어찌 된 일인지 건국제의 의념이 안에 머물렀다.

이유는.

- 보아하니 네 심장이 무너지기 직전이라 이리 몸에 깃든 모양이다. 이 미친 후손아 당장 다섯 번째 심장을 억지로라도 거두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란 말이다.

번개로 화하여 신체를 샅샅이 작살내던 건국제마저 놀랄 정도로 엉망인 상태여서.

시험을 내려야 함에도 후손이 죽을까 염려되어 이리 찾아온 모양.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그리고 나름 방법도 생각해두었다.

“녹염을 이용하여 신체에 생명력을 쏟아부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그거론 여섯 번째 심장을 감당하기엔 어림없어.

단호한 답.

곧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쉬곤.

- 좋아 그렇게까지 각오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구나.

“무엇이요?”

- 신체 재구성.

“재구성이라면, 특별한 방법이라도 알고 있습니까?”

- 재구성이 별거냐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면 되는 것이지.

“아니, 어떤 식으로 일으켜야 할지 알아야죠. 그냥 막 주무른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주변을 둘러봐라 널리지 않았느냐. 바로 발아래에 그 무엇보다 정갈하며 가장 완벽히 조형된 세상이 있다. 네 몸을 이처럼 만들어 내면 될 일이다.

“맞네요. 하죠. 까짓것.”

고민할 이유 따위 없었다.

나보다는 건국제가 앞으로 얻을 심장의 위력에 대해 더 잘 알겠지.

지금의 신체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란 말도 사실일 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방법이 나온 김에 처리해야 할 일이다.

하여.

“드워프! 당장 주변에 방벽을 세워 내 몸을 가려라!”

“응? 갑자기?”

“어서! 터진다!”

“으와아아! 잠깐만 기다려!”

드워프들을 시켜 주변을 덮는 방벽을 만든 뒤.

“시작하죠.”

- 좋아. 이끌 테니 견뎌라.

바로 신체 재구성에 돌입.

첫째로 적염과 초적염으로 몸을 휘감았다.

평소와는 달랐다.

초고열로 달아오른 몸에.

광염을 쬐었다.

날카로운 빛살이 몸을 샅샅이 분해했다.

신체를 구성한 입자 하나하나가 부스러져 내리는 듯한 기분.

죽어 사막의 고운 모래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마치 어디 저 먼 곳으로 떠나는 듯한-.

- 정신 잡아!

건국제의 호통에 막 느슨하게 풀리던 정신을 바짝 죄었고 허물어지던 몸이 형체를 되찾았다.

이건 고통과의 싸움이 아니다.

고통은 광기와 의지로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으나.

신체 재구성은 황홀함과의 싸움.

몸을 잠식하는 탈각의 황홀함과 안온함, 느긋함.

여기에 빠져 긴장을 늦추는 순간.

- 네 몸도 산산이 무너져 내릴 거다.

이번엔 편안함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해 본 적 없는 싸움.

몸을 벗어난 의식이 한없이 넓게 퍼졌고.

본래라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올올히 받아들였다.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몸이란 껍질을 발가벗고 영혼으로 느끼는 세상이 새로웠다.

산맥을 덮은 시온의 구성, 안에 흐르는 힘, 이를 치밀하게 전개하고 보관하고 다시 밀어내는 장치들의 움직임이 모조리 의식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거다.

가닥을 잡았으니 이루어야 할 때.

- 좋다. 천천히 천천히. 방금 느낀 감각을 몸에 새겨넣어라. 시온의 구성을 네 몸으로 재현해라.

건국제의 인도하에 신체를 재구성하기 시작.

방금 영혼으로 읽어 낸 시온의 구성을 몸에 각인했다.

작은 철들의 유기적인 움직임, 힘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옮기는 파이프와 장치, 곳곳에 세워진 보관소와 모닥불까지.

근육들을 유기적으로 이었고, 혈관을 넓히고 튼튼히 하였으며, 곳곳에 거점을 두어 즉각적으로 힘을 분출하고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몸을 시온처럼 재구성하는 과정.

심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이루어진 신체에 네 번째 심장 녹염의 생명력을 부어 넣었고.

다섯 번째 심장 청염의 번개를 뿌려 이를 이어 붙였다.

더욱 긴밀하게 더욱 완벽하게.

몸 안에 남아 있던 찌꺼기를 완전히 태우고 그 빈자리에 깨끗한 불과 살, 번개를 밀어 넣었다.

혈관을 파이프 삼아, 근육을 기관 삼아.

장인들의 기술이 어린 천국을 몸으로 이루어 내니.

돋아나는 새살이 오래된 것들을 밀어내었고.

머리끝까지 치미는 황홀경과 만족감에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끝없이 번개로 몸을 지져 댔다.

그렇게.

“후우, 후우-.”

탈각(脫殼)을 이루었다.

새로운 몸에 깃든 새로운 운명들이 소란이었다.

과거 가장 밑바닥이라던 재능, 근육이 붙지 않고 가진 힘마저 줄줄 흘려 대던 몸이.

꾸우우욱-

힘 한 점 흘리지 않은 채 완벽하게 맞물렸다.

느껴졌다.

안에 품은 무한한 잠재력이.

이런 거구나 재능이란 게.

원래 거센 불을 간신히 받아들였던 혈맥이 드넓게 펼쳐졌고.

안을 다섯 빛깔 불이 마음껏 내달렸다.

그럼에도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그중에서도 심장.

피와 마나를 힘껏 뿜어내는 심장은 지금까지 느꼈던 전능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처럼 힘찼다.

아아, 이것이로구나.

이게 힘이라는 것이구나.

분명 드워프들이 친 방벽으로 사방이 막혀 있으나 보였다.

밖에 존재하는 이들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힘을 품고 있는지.

발밑 뻗어 내린 시온을 이룬 철이 생생히 느껴졌고.

하늘 높은 곳부터 의식이 미치는 모든 공간이 잡힐 듯 생생했다.

눈을 감자 떠오르는 부감.

의식이 자유롭게 노닐며 새로운 재능의 축복을 만끽하던 순간.

팔랑-

작게 들려오는 날갯짓 소리.

저 멀리, 어딘가에서부터 나비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이 폭풍이 되어 의식으로 치밀었고.

그대로.

“다들 할 일이 끝나면 동북부로 와라. 나 먼저 가 있을 테니.”

밝은 빛살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 * *

콰카캉-!

방벽 안에서 한참을 있던 황태자가 갑자기 빛으로 화하여 하늘로 날아간 뒤.

“…고생이 많아.”

“그러게. 또 고생하러 가야겠군.”

요즘 들어 황태자라는 같은 고난을 이겨 내며 친해진 알렉세이가 백작의 단단한 허벅지를 두드리며 위로했고.

백작 또한 이번엔 어떤 사건일까 걱정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안에서 풍겨 나온 기세를 느꼈다.

자신마저도 압도될 정도의 날카로운 기세.

특히 마지막 방벽을 부수고 나오기 직전.

‘사라진 줄 알았다.’

백작 자신마저도 안에 있던 전하가 사라진 줄 알았다.

의식을 넘어선 경지.

일전 보았던 거센 번개 다발을 생각해 보았을 때 대체 어떤 경지를 이룩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만 그리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저 괴물 녀석 대체 어디로 튀어가는 거야.”

살라스 황태자의 걱정 어린 목소리.

“다들 준비! 비행선을 띄워 동북부로 향한다!”

저 재앙을 맞이할 불쌍한 이들을 보호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급히 비행선으로 향하는 모습이 얼른 황태자를 도우려는 모양.

그런 그들의 머리 위.

남은 빛과 번개만이 아스라이 흩어졌다.

* * *

단 한 명의 등장으로 전황이 바뀌었다.

연합 국가의 지도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들은 바대로 제국에선 동북부를 완전히 버렸고.

때맞춰 시작한 진군.

사령부가 가장 혼란에 빠져들었을 때 치고 들어가는 판단.

비록 요 며칠간 예상외로 방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으나.

결국 수정궁과 대마법사가 없는, 거기에 더해 제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북부는 연합의 진격을 막아 낼 수 없다.

그야말로 최적의 타이밍.

어쩌면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올무에 걸린 거북이를 단칼에 쳐죽일 기회.

반드시 잡아야 한다.

연합 국가 병사들의 사기가 팽팽하게 올랐다.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거다.

이번에야말로 제국의 단단한 성벽을 넘을 때임을.

분명 그랬을진대.

“나비?”

전장터에 갑자기 등장한 나비를 보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길 잠깐.

내리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꿋꿋이 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의외의 존재에 눈살을 찌푸릴 때.

빛과 번개가 강림했다.

아니, 황태자가 강림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황태자가 분명했다.

동북부를 돕는 자는 반역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지금에 와서야?

그런 의문도 잠시.

번쩍.

하얀빛이 시야를 물들인다 싶었던 순간.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던 지휘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흔적은 남았다.

그저 거대한 구덩이 하나만이.

그러니까 지금.

“번개?”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그들을 모조리 멸해 버렸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천벌…….”

하늘의 벌.

상식을 벗어난 결과에.

“마법사! 기사단! 준비!”

“레인저! 활을 겨눠라!”

곳곳에서 정예병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고.

수백의 마법사와 수천의 기사단, 수만의 정예병이 단 한 사람 황태자를 겨누었다.

원래라면 동북부 가득한 요새를 겨누어야 했건만.

콰르르릉!

하늘에서 울리는 으르렁거림이 심상치 않았고.

그가 휘감은 마나를 벗어난 생경한 힘이 두려웠다.

곧 마법사들이 대규모 공격 마법을 시전.

뒤로 기사들이 내달렸다.

요새 하나 정도는 쉽게 초토화할 정도의 화력.

이를 맞이한 황태자가.

“흥.”

그저 코웃음을 치고는.

무릎을 굽힌 순간.

전장터의 한가운데에서 연합의 코앞까지 이르렀다.

궤를 달리한 속도.

마법 사이를 내달린 뒤에야 도착한 마나 덩어리들이 하릴없이 땅을 헤집었고.

기사들이 단단히 벼린 기세를 제대로 뿜어내기도 전.

황태자의 망치가 땅을 때리자.

퍼엉!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 주변을 휩쓸었다.

이윽고 솟아오른 기둥이 가라앉으며 폭발로 화하여 쏟아져 내렸고.

따갑게 내리는 불비 속.

기묘한 모양새를 한 검을 떨치자.

촤르르르륵!

천 갈래로 뻗어 나간 검에 푸른 번개가 어렸다.

요 근래 하늘에서 쏟아지던 번개 다발을 그대로 떼어 내 손에 쥔 모양새.

설마 하는 순간.

황태자가 전능을 손에 담아 그대로 휘둘렀고.

기사들이 일제히 바스러졌다.

재가 되어 흩날리는 적들 사이 피어난 황태자의 벌건 웃음이 공포였다.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는 기사들을 물리친 그가 이번엔 활을 잡았고.

다섯 갈래의 불이 반목하면서도 뒤엉켜 꼬였다.

단 한 발의 화살(火虄)로 노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러나 황태자는 하늘을 겨누었다.

왜? 해답은 금방.

효시처럼 시야를 어지러뜨리며 날아간 화살이 먹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불과 폭발, 빛과 번개가.

비를 대신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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