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조롱
[녹염에 담긴 생명력으로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지킵니다]
[맹렬히 타오르는 적염이 스며드는 악의를 살라 먹습니다]
굳이 수도 한복판, 악의가 판치는 한복판으로 들어온 이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악의 깊은 곳에 잠든 채 두려움과 괴로움을 연료로 뱉어 내는 제국민들의 운명이 보였다.
어찌 보면 더 악랄한 행동이기도 했으나 나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릴 수 있는 자들은 살리리라.
그렇게 결심했고 놈들이 깔아 놓은 전장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퍼져 나간 적염이 두텁게 쌓인 악의를 살랐고.
얇아진 악의 안으로 녹염이 침투하여 생기를 잃어 가는 이들을 되살렸다.
물론 당장 생명력을 얻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몸을 덮고 있는 악의는 그들에게 끝없이 두려움과 고통, 슬픔을 쥐어짜 내려 하였으며.
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 댔다.
끄으으으-
끼야아아악!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고통.
그들이 질러 댄 비명과 내뿜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악의 속으로 스며들더니.
이젠 10m 이상 높이로 자란 데카론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대로는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
녹염으로 사람들을 살린다 하여도 그들이 뿜어 낸 두려움은 끝없이 악마들과 1황자의 배를 불릴 뿐.
그럴수록 그들의 고통도 길어질 뿐.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한 가지.
“이제 슬슬 죽어라.”
아직도 몸집을 불리고 있는 데카론을 죽이고 수도에 자리 잡은 악마를 멸해야 한다.
내 차가운 말에.
“다시! 다시! 부딪치자! 도망치지 마라!”
데카론은 방금까지 내뿜었던 황자로서의 기품마저 잃고선 떼를 써댔다.
자신이 품은 강철의 신비가 더 단단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모양.
물론 그럴 생각 따위 없었다.
“이미 한 번 이긴 놈이랑 부딪혀서 뭐하게.”
앞에 선 저 거대한 덩어리는 철사자 데카론이 아니다.
악마에게 이지를 먹힌, 악마도 되지 못한 부산물일 뿐.
“악마에게 네 몸을 허락한 순간, 네가 품은 신비는 이미 널 떠났다. 강철이란 침범을 허락지 않아야 이어지는 법이야. 미련하구나.”
신비는 그리 호락호락한 힘이 아니다.
그저 타고 태어났다고, 어쩌다가 얻었다고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마법과 검술은 오랜 고련과 선택받은 재능에게만 답을 내려 주기에 신비라는 힘이 일견 쉬워 보일지 모르나.
쉽게 허락받은 힘은 쉽게 떠나가는 법.
신비는 주인을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처음 품었던 마음과 삶의 태도가 바뀌면 주인을 버리고 떠나가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데카론을 향해 브레이커에 광염을 둘러 놈을 베었고.
갈라진 몸에서 너저분한 악의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분명 강철의 신비를 품었을 때는 끄떡도 없었던 공격.
하지만 지금은.
“봐라, 그리 자랑하던 강철이 사라졌으니 이제 넌 그저 거대한 살덩이일 뿐이다.”
너무나 쉽게 살이 갈라졌고 피가 쏟아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데카론이 쏟아져 내리는 신체를 잡아 다시 붙이려는 듯 손으로 더듬었다.
그래, 놈이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버리고 악의를 몸에 품기로 한 순간.
강철의 신비는 미련한 주인을 버리고 떠났다.
강철은 침범을 용서치 않는다, 물렁함을 용서치 않는다, 유약함을 용서치 않는다.
꿋꿋이 버티는 자에겐 무엇보다 단단한 신체로 보답하나.
제 고귀함을 버리고 악마의 힘을 탐한 순간 정해진 수순.
이제 그것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워졌는지 데카론이 아직까지도 흘러내리는 신체를 붙잡는 사이.
“시간을 끌어 봤자 고통만 길어질 뿐이지. 이제 끝내자.”
잠깐의 시간 동안 준비한 한 수를 펼쳤다.
이지가 옅어진 놈의 눈에 오색 염료를 뿌렸고.
이전 영림, 이젠 오색화림에서 얻은 오색 가면을 쓴 귀신들을 불러내어 놈의 눈을 희롱했다.
사방을 휘도는 색색의 가면에 데카론이 커다란 손을 애처롭게 휘둘러 댔다.
알리굴에게서 빼앗은 환상을 염료와 가면에 가득 싣자.
휘도는 염료 속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놈의 눈이 멍하니 풀렸다.
와중에도 탐욕스러운 몸은 끝없이 악의를 빨아들이는 중.
오색가면이 놈의 주의를 끄는 사이.
이번엔.
“흐읍-!”
진생철퇴에 담겨 있던 또 다른 힘 하나를 불러왔다.
[진생철퇴의 운명 연옥에 담아 두었던 악마 보티스의 힘을 불러냅니다. 거대화가 당신이 든 무구에 깃듭니다!]
거대화.
세계수를 휘감을 정도로 커다랗던 뱀.
육신을 펼쳐 탐욕스럽게 주변을 먹어 대던 힘 일부가 진생철퇴에 깃들었고.
곧 녀석이 플라잉 해머 호를 만들기 전의 크기로 되돌아갔다.
거의 데카론과 맞먹는 크기.
덩달아 자라난 세계수의 가지가 내 팔뚝을 감쌌고.
“흐으으읍-!”
숨을 함빡 들이마신 채.
퍼엉!
진생철퇴의 반대 면에서 초적염을 터뜨려 추진력을 얻었다.
올라서는 거대 망치를 그대로 온몸으로 이끌었다.
악문 잇새로 배어 나오는 피.
강철의 신비를 얻고 몸을 재구성했음에도 휘두르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
펑, 퍼퍼펑!
이대로는 내가 깔릴 것 같아 초적염을 연이어 터뜨렸고.
적염과 광염을 둘러 힘을 더했다.
운석이 떨어지듯 내리치는 진생철퇴가 염료를 뚫고 불쑥 꿈을 꾸고 있는 데카론의 눈앞에 닿았고.
꽈르르릉!
마지막 타점이 닿는 순간 청염을 터뜨려 벼락을 놈의 몸에 박아넣었다.
거대한 탑이 허물어져 내리듯 몸집만을 부풀린 데카론이 쓰러졌다.
비대하게 찌운 악의가 벼락과 불에 타오르는 짙은 냄새 사이로.
“웃기지 마라! 내가, 내가 황태자다! 내가 황제다! 모든 건 당연히 나의 것이다!”
여전히 악의에 둘러싸인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데카론의 얼굴.
핏줄과 독이 잔뜩 올라 추해진 모습으로 검을 휘둘러 대는 꼴.
차라리.
“아까가 재미있었다.”
처음 나와 신비를 겨누던 녀석이 훨씬 황자다웠다.
놈은 악의로 나를 짓누를 수 있다 생각했겠으나.
“자신이 쌓아 온 세월을 버리고, 쥐고 태어난 축복을 버리고 선택한 오물 어디에도 구원은 없는 법.”
“너, 너! 이 빌어먹을 새끼! 네놈이 모든 걸 앗아 갔어!”
“앗아 갔더라도 스스로의 고귀함을 지켰다면 이리 쉽게 죽진 않았을 거다.”
“내 것이다! 내 것이야! 이 제국은-!”
반대로 철퇴 아래에 깔린 채 그저 고함만을 질러 대었다.
가장 존귀한 자리에 있다 떨어지는 자의 말로인가.
전생에도 그러했지.
몇 번의 패배 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었다.
그래, 놈은 원래 강철과 맞지 않는 자.
그 패배마저 딛고 일어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다면 퍽 훌륭한 적수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악마의 힘을 덕지덕지 처바른 지금은.
“추하다. 죽어라.”
그저 장애물일 뿐.
진생철퇴를 놓고 브레이커를 들어 쏘아져 나갔다.
놈이 억지로 몸을 찢어서라도 도망치려 했으나.
쿠웅, 찍어 내리는 발걸음에 깃든 무게가 주변을 억눌렀다.
처음 놈이 보였던 기예.
철사자가 내디뎠던 발걸음을 훔쳤다.
놈이 보였던 검도.
휘두르는 브레이커가 거센 압력을 내뿜었고.
주변을 휘감은 불이 열을 더했다.
데카론이 휘두르는 중검이 오러를 덧씌워 크기를 불려 나갔다면.
브레이커는 정말로 몸집을 키워 나갔다.
진생철퇴가 그러했듯.
거대화를 머금고, 이전 거검이던 시절 보다 더욱 커진 브레이커가 놈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고.
이내 차가운 절삭음을 내며 목을 잘라 냈다.
데구르르 구르는 눈동자에 가득한 허망함.
그렇게 황제에 가장 가깝다 불리던,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황자 철사자 데카론은 추레한 결말을 맞이했다.
녹아내리는 악의 사이 본래의 얼굴이 빼꼼 드러났다.
놈이 죽고 나서야.
“크르- 황, 황자 전하…….”
“아, 안 돼…….”
악의에 오염되어 이지를 잃은 철사자 기사단과 수도 방위군이 이상함을 느낀 모양.
그들이 죽어 버린 데카론을 보며 뒤늦게 충성심을 뽐내려 할 때.
“청익-!”
내 부름에.
“청익 기사단! 대기 중입니다!”
전장터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청익 기사단이 전면에 나섰다.
그들의 손에는 검은 천으로 싸여 있는 무언가.
드디어 나설 때가 왔다는 생각에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에.
“가면을 써라. 푸른 날개 속에 숨긴 타오르는 심장을 보여 줄 때다.”
전투를 허락했고.
“착면! 착검!”
청익이 드디어 제 위용을 드러냈다.
품에서 꺼낸 하얀 가면.
과거 영림에서 얻었던 백면귀의 가면을 썼고.
손에 든 까만 천을 풀자.
새하얀 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부 원시림에 새롭게 피어난 신철목을 드워프들의 기술로 빚어 만든 검.
하얀 가면을 쓴 기사들이 새하얀 검을 뽑아 들었고.
소음 하나 없는 발검이 검의 날카로움을 증명했다.
가슴 앞에 세운 백신철검이 악의를 밀어내며 새하얗게 빛났다.
이내.
“청익! 돌격하라!”
그들이 몸에는 새까만 그림자를 두른 채 손에는 순백의 검을 들고선 악마들을 향해 내달렸고.
고요한 진격이 악마들과 악의를 힘껏 밀어냈다.
그들이 신철목을 휘두를 때마다 번뜩이는 백광이 악마와 더불어 질척이는 악의를 잘라 냈다.
신철목은 본래 악마를 사냥하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
순수 신철목을 다듬어 만든 검인 만큼 악마들에겐 치명적인 보검.
곧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 청익을 선두로 황태자의 세력이 수도 가득한 악마들을 썰어 나가기 시작.
“하아앗!”
오색 가면 중 백색을 얼굴에 올린 솔이 손을 떨치자.
땅에 어린 그림자들이 춤을 추며 악마들을 찢어발겼고.
“전하! 길을 뚫겠습니다!”
안드레 또한 신철목으로 만든 검을 쥐고선 폭풍과 벼락을 뿜어내어 길을 뚫었다.
길을 가로막은 철사자 기사단뿐 아니라 수도에 남아 있던 다른 기사단들까지 일제히 밀어내는 강력한 폭발력.
그들이 황성까지 길을 뚫는 사이.
“수도에 넘치는 악마들을 정리하겠나이다!”
백작은 북부의 기사들과 병력을 이끌고 수도를 정리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자리, 하얀 실선이 지나간 뒤에는.
악의도, 악마도 모조리 산산조각 나 떨어져 내렸다.
그가 바이올렛과 함께 우측으로 달리는 사이.
“전하! 우리는 반대쪽을 정화할게!”
“사막도 함께하겠어요!”
블러디가 이끄는 엘프들과 이엘이 이끄는 사막 전사들이 백작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블러디가 피운 신비가 악의를 함빡 빨아들여 새로운 힘으로 탈바꿈했고.
이엘이 이끄는 염료 사이 전사들이 곡도를 발톱처럼 숨긴 채 적들을 잡아먹었다.
점차 수도에 가득했던 악의가 저물고 있다.
방금까진 새까맣기만 했던 하늘 위로 쨍한 태양이 검붉게 번졌다.
타오르는 불과 덕지덕지 남은 악의 위로 번지는 검붉은 색이 멸망의 때와 같다.
이런 풍경을 본 적 있다.
전생 마지막 순간.
제국이 무너지고 쌓인 운명들이 들이닥치던 때.
원망에 미쳐 버린 반역자들과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던 악마들까지.
오직 죽음을 위해 달려가던 때와 같았으나.
“전하! 전하!”
“알프레드.”
“여기 있나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군. 여기까지 오는 데 말이야.”
어째서인지 흐릿한 감상이 몸을 휘감음은 왜일까.
그때는 강철성 황좌 위에서 멸망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였지.
그에 반해.
“여기까지 오는 데도 너무나 오랜 시간과 많은 고통을 감내했어.”
지금은 멸망을 뒤집기 위해 역으로 강철성으로 들어가고 있다.
운명을 여기까지 뒤바꾸기 위해 많은 걸음을 했고 많은 피를 보았다.
흐릿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태양을 바라보는 나에게.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제국의 영광은-.”
알프레드가 잠시 벅찬 숨을 고르곤.
“전하의 손에 의해 다시 쓰일 것입니다.”
꿈꾸는 바를 내뱉었다.
하릴없이 퇴색하던, 계속하여 잃어 가던 제국의 영광이 당신의 손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그리 믿는 듯한 얼굴.
옆에서 보아온 시종장이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날 미워하고 원망했던 이들이 이젠 나를 위해 싸웠다.
생소한 감각.
이젠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길을 뚫고, 알아서 앞섰다.
문득 모두의 등을 바라보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무엇이 말입니까.”
“남의 등을 바라보는 것 말이야.”
항상 앞에 서서 달리기만 했는데 다른 이들의 달리는 등을 보는 광경도 나쁘지 않았다.
알프레드가 살풋 웃더니.
“그야 전하를 위해 달리는 등이니까요.”
합당한 이유를 대었다.
맞는 말이다.
“항상 홀로 달리는 건 꽤 외로운 일이야.”
“외로움을 느낄 줄 아셨습니까?”
“나 또한 사람이니까.”
“사람이셨습니까?”
알프레드의 짓궂은 장난에 쿡쿡 웃으려니 늙은 시종장도 같이 웃어 댔다.
전장 한복판에서 피어난 작은 웃음 끝.
“도착하였나이다.”
드디어 강철성의 정문 앞에 도달하였고.
힘껏 숨을 머금은 알프레드가.
“황태자 전하 납시오-!”
강철성이 떠나가라 목소리를 높여 내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적들을 모조리 참하고 도열한 안드레와 청익 기사단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니.
한 걸음 한 걸음에 기사들의 예가 더해졌고.
강철성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악의로 쌓여 있는 강철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폐하를 뵈러. 황후를 죽이러.”
날 가장 기다리는 이를, 날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이를 만나러.
당당히 발을 옮겼다.
뒤를 따르는 기사들이 응원하듯 척척 발걸음을 맞추었고.
그 끝, 황태자 임명식을 했을 때보다 더욱 드높은 자리.
외로이 놓여 있는 황좌.
어찌 된 일인지 알현실이 사라진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황좌 위에는.
“아르한…….”
늙은 아비와.
주변 가득, 굳어 버린 채 멈추어 선 신하들.
그 풍경이 망해 가는 제국을 그대로 빼다 박아서일까.
마음이 아려왔다.
놀란 듯, 공포에 질린 듯, 도망가려는 듯 멈추어 선 신하들 사이로 걸었고.
마침내.
“폐위된 황태자, 아르한이 여기 왔습니다.”
* * *
아들이 아버지를 마주했다.
호통을 칠까, 아니면 반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황제는 그럴 힘도 없이 그저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
아무리 어버이가 빨리 늙는다 하지만 세월을 너무나 빨리 맞이한 모양새.
그가 간신히 손을 까딱거렸다.
가까이 오라는 것일까.
황태자가 황좌가 놓여 있는 단상을 향해 오르려 할 때.
“황후 폐하- 납시오-!”
간드러진 목소리가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하얀 분칠을 한 내시가 기괴한 걸음으로 황좌 옆에 섰다.
쭉 벌어진 입에서 흐르는 타액, 그리고 다시 외치는.
“황후 폐하 납시오-!”
커다란 목소리.
웅웅 울리는 고음이 귓가를 찌르며 정신을 흔들었고.
퍼억.
황태자가 빛 한 줄기를 뿜어내어 놈의 머리를 단번에 터뜨려 버렸다.
얼굴에 서린 분노와 역겨움.
그가 황좌를 노려보며.
“모습을 드러내라.”
황후보고 모습을 드러내라 하였고.
곧.
- 후후후, 황태자, 아니 이젠 버림받은 자는 어찌하여 그리 분노가 많을까요.
황좌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상 끝에서부터 드레스가 피어나듯 하늘하늘한 장막이 일어났다.
인간의 거죽으로 만든 모양인지 고통 가득한 표정으로 이루어진 드레스 자락 위.
황좌가 곤충의 갑피를 뒤집어쓴 황후로 변하였다.
등에는 끈적한 악의가 날개가 되어 일렁였다.
그녀가 얼굴을 펼치자 사마귀 주둥이 같이 갈라진 얼굴 틈새로 일그러진 공허함이 제 징그러움을 자랑했다.
다그르륵, 다그르륵.
제 손등을 두들기는 황후의 손가락에서 딱딱한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공허와 비웃음으로 황태자를 관찰하던 황후가.
- 여기 이 불쌍한 아비를 보아요. 당신을 기다리다 이리되었답니다?
“…….”
- 당신은 그동안 무엇을 하였나요. 아비가 아들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동안.
곧 드레스 자락 가득한 얼굴들이 덩달아 비웃음을 띠었고.
- 아! 제국을 구한다 설레발을 치고 다녔지요. 진짜 위험은 피한 채로. 당신 덕에 황제는 이리 이지를 잃었고 제국은 악마의 것이 될 것이에요. 어떤가요. 이제야 후회가 좀 되나요?
황태자를 조롱했다.
징그러울 정도로 선명한 악의 앞에서.
황태자는 등 뒤에 숨겨 놓았던.
“네 아들도 널 기다리던데. 내가 녀석을 이리 만드는 동안 무엇을 했지.”
1황자 데카론의 머리통을 바닥에 내던졌고.
툭, 떨어진 머리가.
“어머니…….”
애처롭게 황후를 부르는 사이.
콰직.
진생철퇴를 들어 머리통을 완전히 으깨어 버렸다.
그리곤.
“어때, 이제야 좀 후회가 되나요? 썅년아?”
짙게 미소 지었다.
끼야아아아-!
황후가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그녀의 온몸이 해일처럼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