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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65화 (165/200)

165화 부끄러움이 많으신 편

강철성 한복판, 악의가 가득했던 장소에 감격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아들을 위해 목숨까지 건 아버지와.

그런 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아들의 재회.

새까만 악의가 걷힌 강철성, 묵색의 황좌 위.

푸르른 불꽃이 새싹처럼 황제의 삭은 육신을 감쌌고.

그의 몸에 점차 힘이 돌아왔다.

반역과 찬탈로 끝났어야 할 운명이 뒤집혔다.

황제는 황태자의 노고를 인정했고 황태자는 황제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다.

일견 감격스러운 장면.

멀리서 보기엔 그리 보이나 가까이에선 또 다른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서류 작업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황태자가 황제의 손을 꼬옥 으스러질 듯 붙잡으며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죽지 않고 버텨야 한다며.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며.

오히려 아버지는 몸을 파고드는 풋풋한 생명력을 거부하려 했다.

황태자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어찌나 악력이 좋은지 빠져나갈 틈이 없다.

이 빌어먹을 놈, 작게 읊조린 황제가.

“아니- 난 이제 그만 떠나고 싶은데. 열심히 버텼고 이제 여기서 물러나는 게 아름다운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남아 있지 않다며, 황제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해 달라 애원해 봤으나.

“거절은 거절합니다.”

황태자의 눈가엔 한 점 동정심도 없이 단호함 일색이었다.

아직 죽어선 안 된다,

전후에 처리할 서류가 얼마나 많은데.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가짜 옥새를 찍은 성지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욕심 많은 귀족들의 빈자리를 비롯, 재산 처리 문제까지.

따지고 보면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

행정 전쟁이 시작되리라.

여기서 발이 묶일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

반면 황제 또한 이후 사정을 예상했기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노련한 한 수.

본능이 외쳤다.

저 아들놈에게 묶이면 자신 또한 고생할 게 뻔하다.

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아우구스 아이로니아, 지금껏 제 뜻을 제대로 펼쳐 본 적 없는 황제는.

“놔라, 이제 그만 보내 다오.”

“싫습니다.”

“좀 놔.”

“싫어요.”

“아니, 내가 죽겠다는데 왜 네가 난리냐.”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손 놓고 두고 봅니까.”

“나중에 처리할 일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잖냐.”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방금은 서류 작업할 거 많다며?”

“…제가요? 잘못 들으셨어요.”

“눈은 멀었어도 귀는 멀쩡하다. 인석아 좀 놔줘라. 끝까지 부려 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냐?”

“부려 먹다니요. 섭섭한 말씀 마십시오.”

“황제의 자리를 준다는데 왜 지랄인 거냐. 이 빌어먹을 녀석아.”

“아, 그러니까 황제의 자리 필요 없다고요.”

“아니! 좀 받아! 이어받으라고!”

“필요 없어요! 전 지금은 황제가 될 생각 없단 말입니다!”

“에라, 그럼 천년만년 살아서 너 늙을 때까지 내가 황제 해 먹는다?”

“얼씨구 좋죠! 전 황태자로 남아서 평생 호의호식할 테니까, 국정 열심히 돌보십쇼- 전 신나게 먹고 마실 테니.”

“으아아아악! 이 못된 녀석아 어째 한마디를 안 지냐! 가는 길 멋지게 좀 보내 줘!”

마지막 죽음마저도 아들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처지.

황후의 계략을 타파하고 황태자를 도와 업적을 이룬 이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아닐까.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은 아비의 마음을 왜 몰라준단 말인가.

황제가 발악하듯 고함을 내지르려니.

“박수 칠 때 떠나긴 왜 떠납니까.”

황태자가 더욱 거대한 생명력으로 황제의 몸을 감싸며.

“끝까지 해 먹어야죠. 품은 뜻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가짜 황제가 아닌 진짜 황제가 되어 펼치고 싶은 뜻이.”

아직 황제의 속 깊은 곳에 남은 욕심 하나를 톡 건드렸다.

방금까지 몸부림치던 아비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진짜 황제가 되어 펼치고 싶은 뜻.

“솔직히 상상해 보셨잖아요. 황제로서 제국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원대한 포부. 이루고 싶은 이상향. 제국이 나아갈 영광을.”

황태자의 속살거림과 더불어 얼굴을 따뜻하게 데우는 햇빛이 삶을 유혹했다.

이 감촉을 놓치기 싫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짙은 구름이 걷힌 강철성이 아름답겠구나.”

평생 보아온 풍경, 검은 도화지 위에 어느 한 날의 꿈결이란 물감을 풀어 그림 하나를 그려 보았다.

맑은 하늘 아래 찬연한 형체를 자랑할 강철성의 단단함과 고귀함을.

그리고 그 위에.

“그래, 내가 꿈꾼 제국이 있었지.”

젊은 시절부터 이루고 싶었던 비원 하나를 덧칠했다.

황좌에 앉아 민생을 돌보는 자신을, 고개를 조아리며 이를 따르는 대신들을.

아이들은 풍족하게 뛰놀고 사람들은 추수를 기다리며 노래를 부른다.

기사들의 검은 무엇보다 날카롭고, 검날보다 더욱 날카로운 정의와 충의로 제국을 섬기며.

마법사들이 이루어 낸 놀라운 연구의 성과가 제국 곳곳을 풍족하게 만드는 광경.

조금은 힘겨울지 몰라도 제국 구석구석 돌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비록 모두를 휘어잡을 카리스마와 강렬한 기세는 없더라도 현 황제의 마음속에는 제국의 어려움을 돌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유약한 성미 탓에 이를 뒷받침할 수 없었을 뿐.

정말 어쩌면.

황후의 정치력과 황제의 치세가 함께하였다면 아이로니아 제국은 또 다른 황금기를 맞이했을지도.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미 지나간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매달릴 정도로 미련한 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깨달은 건.

“그래, 해 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

황태자의 말대로였다.

어차피 꿈꿔 왔던 것이라면.

“진짜 황제로 살아 보는 것도, 내 품은 뜻을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이번만 넘어가 주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겠지.

지난 시간엔 그러지 못해 고통을 겪었으니까.

황제의 허락에 비로소 황태자의 얼굴에 기쁨이 번져 나갔다.

아무리 그가 녹염을 쏟아부어도 이미 삶을 포기한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법.

신비는 의지를 따르고 생은 마음에 깃들기 마련이니까.

황제가 다음을 품은 순간.

녹염의 생명력이 한꺼번에 그의 몸에 깃들었고.

이내 황제가 새로운 삶을 얻었다.

“진짜 황제가 된 것을 감축드립니다.”

황태자의 너스레에 황제가 짐짓 웃다가.

“그런데, 너 왜 그리 생겼냐?”

갑자기 인신공격을 해 왔고.

“뭡니까. 이렇게 갑자기 공격한다고요?”

황태자가 짐짓 눈살을 찌푸리려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불타고 있지 않으냐. 안 뜨겁냐?”

“원래 신비로 불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근데 눈이 안 보이신다면서요.”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형상이 아니야. 뜨거운 불, 그리고 얽힌… 그러니까 엉켜 있는 실타래. 마음에 뭘 얽어 놓았기에 그리 단단히도 묶여 있는 거냐. 태자, 답해 보아라 속에 뭘 숨겨 놓은 게야.”

“…폐하?”

황제의 얼굴이 심각하여 황태자 또한 쉬이 넘길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보길래.

흐린 눈은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나.

“어찌하여 네게 미래와 과거가 같이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깃든 깊은 고독과… 지독한 슬픔도. 태자, 내가 모르는 비밀인 게냐.”

“…….”

마음에 생긴 새로운 눈이 더욱 많은 사실을 보여 주는 모양.

황태자가 침묵했다.

어찌 자신이 원래 황족이 아닌 폭군의 대역에 불과했으며 멸망의 순간 과거로 돌아오는 기연을 얻었다 말하겠는가.

딱히 둘러댈 말이 없기도 했거니와 황제가 어찌 이를 보았는가 궁금증이 일어 살피길 잠시.

“새로운 눈을 얻으셨군요.”

비로소 황제가 눈을 잃은 대신 신비를 얻었음을 알아챘다.

놀라운 일.

그런 아들을 보며.

“그래, 그리 되었나 보다.”

황제가 보이는 것에 대해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답하기 곤란하다면 그거로 족하다.

그를 탓할 생각도 또 따지고들 생각도 없다.

다만.

“앞길을 방해하는 짐이라면 언제든지 말해 다오. 도울 방법을 찾아보마.”

아들에게 모든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뜻만을 전했다.

아르한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그래, 내가 보기엔 저 옥새를 네가 꼭 집어야 할 듯싶구나.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보여.”

황제가 이번엔 아직 허공에 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옥새를 가리켰다.

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무거운 권력, 그리고 황태자와 연결된 얇은 선.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생경한 풍경에 잠시 고민하던 황제가.

“옥새에 강철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강철성을 네가 쥐어야 한다는구나. 내게 보이는 것은 그래.”

대략적으로나마 의도를 설명했다.

그가 보기엔 강철성은 검게 타오르는 불이오, 옥새는 이를 담은 불씨.

황태자는 이를 삼킬 용광로와 같았다.

이글거리는 풍경에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

황제가 보는 진실을.

* * *

나 또한 다른 방식으로 보았다.

[대상의 운명을 읽습니다. 옥새 안에 깃든 검은 불꽃의 향취를 느낍니다]

[여섯 번째 심장 – 암염(暗炎)이 검은 혀를 날름거리며 주인의 손을 기다립니다]

옥새에 깃든 여섯 번째 불꽃을.

뿐만 아니라.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장님이 깃듭니다. 어두워진 시야를 새로운 신비 본질화(本質畵)가 대신합니다. 숨겨진 본질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황제가 얻은 새로운 신비도.

현상을 보는 눈을 잃은 대신 본질을 그리는 그림이라.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내 본질까지 바라보는 바람에 조금 피곤할 뻔하긴 했지만.

어쨌든 잘 넘어갔으니.

이후 황제의 제안대로 찬찬히 옥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암염을 획득하기 위해서, 또.

[혼돈 속 녹아들었던 운명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장소의 운명들이 일제히 변화합니다. 혼란과 혼돈을 포식합니다! 개별 운명들과 뒤얽힌 운명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거대한 운명 변화에 운명 포식자가 한 층 더 거대해집니다. 개인의 운명, 장소의 운명을 다루는 범위가 넓어집니다. 더 나아가 시간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혼돈에 빠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손끝이 옥새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거친 바람이 불 듯 변화가 몰아쳤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죽음과 멸망, 패망과 패배를 잡아먹고 점점 덩치를 불려 갔다.

현재 변하는 운명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정되어 있던 운명들까지 함께.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런 뜻이었던 모양.

이전 제국 전역의 운명을 뒤틀어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만큼 혼돈 속에 담긴 운명들이 많았고.

그것들이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아름답고 놀랍구나-.”

황제 또한 신비를 통해 몰아치는 변화를 보는 모양.

“번지고 뭉치고, 새롭게 덧그리고, 찢고 파낸 자리를 메우고 자라나는 생명들이 아름다워. 확실한 건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 점점 밝아지고 있구나. 아들아 옥새를 잡아라. 이 그림의 정점을 찍어다오.”

그가 보는 그림은 그러한 모양.

그래도 다행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말이 힘이 되었고.

이내 옥새를 손에 쥔 순간.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투자합니다. 새롭게 피어나는 대상, 장소, 시간의 운명들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방금까지 터질 듯 모여들었던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올바른 뜻을 품은 이들과 제국, 더 나아가 미래에 투자했고.

하나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혼란에서 건져 올린 운명들을 잡아먹고선 이를 새로운 운명에 투자하는 선순환.

과거부터 쌓여 있던, 미래에도 쌓일 악한 운명들이 무한했고.

새로운 운명들이 이를 함빡 머금고는 푸릇하게 자라났다.

지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순환 고리가 끝없이 제국의 살을 깎아 먹었다면.

이제 선한 순환 고리로 비어 버린 공간들을 채워야 할 때.

새로운 톱니바퀴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고.

이윽고.

[거대한 운명, 멸망의 운명이 다시 한번 비틀립니다!]

본래 항거할 수 없었던 거대한 멸망이 차근히 뒤틀어졌다.

아직 완전히 비틀린 것은 아니지만 초침이 움직여 분침이 돌아가고, 분침이 돌아 시침이 돌아가고.

마침내 날짜가 변하여 연도가 지나가듯.

맞물린 톱니가 일정한 방향을 형성했고.

이를 따라 제국을 덮었던 거대한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

아직은 시침이 느리게 흐르듯 작은 변화에 불과했으나.

점차 운명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속도가 붙으리라.

하면 결국 저 거대한 머리를 치켜들고 대륙과 제국을 노리는 최후를 잘라 낼 수 있겠지.

최르르륵, 연이어 변하는 운명들에 미소 지을 때.

“변하고 있구나. 거대한 무언가가 변하고 있어.”

황제 또한 이를 봤는지 감격에 몸을 떨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풍경이 보이십니까.”

나는 지금껏 글로 변화를 보았는데, 황제의 신비는 어떤 풍경을 그리는지.

잠시 보이지 않는 눈을 껌뻑이던 황제가.

“놀라운 풍경이다. 뭐라 해야 할까… 변할 수 없는 것들이 변하고 있는 모습이로구나. 불꽃놀이, 그래 건국식 날 보았던 밤하늘의 불꽃과도 같이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었다.”

제가 보는 풍경을 설명해 주었다.

비록 나는 볼 수 없으나 말간 하늘을 덩달아 올려다보며 그가 보는 풍경을 따라 상상했다.

터져 오르는 운명들의 색이 강철성을 비롯하여 수도, 더 나아가 제국에 가득하였고.

“그 위, 변해서는 안 될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물러나는구나. 그래 어쩌면 동이 트듯 말이다. 어둡던 하늘이 개듯 밤이 물러가고 새벽이 몰려오고 있다. 신선하고 깨끗한 색이야.”

그 위, 어둠을 몰아내며 들어차는 새벽.

새벽 공기의 싱그러움이 충만했고 뱉는 숨결에 맑은 입김이 어리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깨끗한 풍경을 공유하던 마지막.

“그리고, 강철성이 은색으로 빛나는구나.”

항상 우중충한 먹색을 띠었던 강철성이 맑아졌다는 말.

이는.

“실제로도 맑아지고 있습니다.”

비단 그의 심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새까만 옥새를 손에 쥔 순간 강철성 끝자락에서부터 먹이 빠져나가듯 꿀럭거리며 몰려들었고.

빈자리부터 말간 은빛이 드러나며 어둑한 암염이 내 팔을 타고 들어와 심장에 자리 잡았다.

건국제의 말대로였다.

신체를 재구성하지 않았다면 이대로 물들어 죽었겠다.

하나 이젠 전과 다른 신체를 이루었고.

이미 그림자와 암화라는 어두운 신비를 이룬 적 있으니.

몰려드는 먹색의 불이 그리 아프지만은 않았다.

강철성과 옥새에 담겨 있던 여섯 번째 심장이 자리를 잡은 후.

심장에 휘도는 어둑한 남색의 불이 끈적거렸다.

내리쬐는 햇빛 아래, 강철성이 점차 은빛 제 모습을 찾아갔다.

새하얀 황성으로.

“전하!”

가지각색의 운명을 지닌 이들이 몰려들었고.

“물감들이 몰려오는구나.”

황제의 말대로.

그들은 순수하게 탈바꿈한 강철성을 도화지 삼아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 갈 이들.

잠시 나와 황제를 바라보는 백작을 비롯 많은 이를 마주하여.

“폐하와 대화는 끝났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우리의 걸음과 노고를 인정해주셨다. 다들 고생 많았다.”

마침내 수도까지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표했다.

그들의 얼굴에 들어찬 기쁨과 환희.

반역으로 시작하여 여정으로 끝난 발걸음.

황궁을 점령했던 황후와 황태자는 죽었고.

“황자 아르한은 여전한 황태자이며 지난 폐위와 더불어 동북부가 뒤집어쓴 반역의 죄 또한 없던 일로 하겠노라.”

정신을 차린 황제의 선언에 어긋났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모두 들어라. 어긋난 것이 바로잡혔으니. 이제 새롭게 쌓을 때이다. 공을 논하여 새로운 직위를 내릴 것인즉. 폐하.”

“…왜 그러느냐 황태자.”

“말씀하신 대로 바로 어전 회의를 열겠습니다.”

“내가 그랬던가……?”

“네.”

제국을 새로 다질 때.

물론.

“전 명령하신 대로 방에서 쉬고 있을 테니 회의 힘내십쇼.”

“…그런 명령한 적 없다.”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었나이다.”

“아니, 미친 녀석아.”

난 쉴 생각.

감격과 충성심으로 버무려진 기사들의 얼굴에 반해.

내 속닥거림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우스꽝스러웠다.

“폐하의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다 아버지를 위한 아들의 배려입니다.”

물감을 들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갈 화가는 내가 아닌 황제.

대신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뒤에서.”

좀 누워서 응원하기로 했다.

빌어먹을 놈…….

나지막한 욕이 낯간지러웠다.

부끄러움이 많으신 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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