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68화 (168/200)

168화 공성전(攻城戰)

황태자가 보인 풍경은 뭐라 해야 할까.

그래, 선물을 푸는 순간과 같았다.

사일러스 공작은 그리 느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진짜로 오래전.

마나 증기를 내뿜는 열차 따위 없던 그의 어린 시절의 한때.

생각해 보니 당시엔 말밖에 없어도 대륙이 잘도 굴러갔더랬다.

열차도 없고 차도 없는 시절, 잘만 살았는데.

어느새 세상이 이리 각박하게 변했는지.

그땐 불편함이 가득했으나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기사들과 용병들이 말을 타고 방랑하며 자신의 무력을 증명하려 하였고, 마법사들은 신비를 위해 삶을 바쳤다.

케케묵은 꼰대 같은 생각을 이어 가던 공작이 정신을 차리곤.

그에겐 낭만 넘치던, 다른 이들에겐 그저 기록에만 남아 있는 시절 받았던 선물을 떠올렸다.

포장지를 열어젖힐 때가 가장 즐거웠더랬다.

원래 선물이란 게 그런 법이다.

열기 직전 눈동자에 빼꼼 비치는 형태를 볼 때 가장 두근거리는 법.

그러한 감정을 느껴 본 지가 언제였더라.

약 130년도 넘지 않았던가.

아 아니다, 이전 가주가 되어 가주실에 처음 발을 들일 때도 가슴이 두근거렸었지.

그렇게 따지면 100년 정도 되었구나.

참 긴 세월이다.

그런데 그 긴 세월을 넘어.

“오오-.”

다 늙은 몸으로 그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을 느끼게 될 줄이야.

주름진 얼굴에 환희가 들어찼다.

한 줄기 빛으로 내려선 황태자가 이빨이 비죽비죽한 검으로 수정궁을 열었듯 장성을 열었고.

그가 쥔 검을 중심으로 과거 수정궁이 그랬듯 복잡한 실금이 쩌억 입을 벌렸다.

갈라진 쇠와 그림자 사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자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르익었구나.”

안에 숨겨져 있던 선물, 수정으로 이루어진 장성이 충분히 익었다는 사실을.

휘황찬란하게 뻗어 나오는 빛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지금 갈라진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빛만으로도 이러할진대.

속살을 가린 껍질을 완전히 벗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오직 감격만이 가득한 상태.

문득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뿜어지는 빛에 방금까지 파도처럼 몰려오던 악마들이 괴로워하는 모습.

맨 앞에 있는 놈들의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 눌어붙었다.

몸부림을 치며 눈을 가리는 꼴이 만족스러웠고.

그가 다시 힘을 내어 악마들을 몰아붙이자.

퍼엉-,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가득 쌓여 있던 악마와 악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비말이 되어 흩어지는 악마들의 육신.

그렇게 잠깐의 소강상태가 생겨났고.

저 멀리 물러났던 악마들이 다시금 파도를 형성하여 몰려오는 풍경.

이번에는 심상치 않았다.

지금까지 파도였다면 이번엔 해일.

동남부에서도 황태자의 등장을 눈치채곤 장성을 무너뜨릴 한 수를 준비하는 모양.

지금껏 간신히 공세를 막아 왔던 동북부 병력들의 얼굴에 희망이 피어났다.

황태자 전하께서 지원군을 이끌고 오셨으리라.

북부 방벽을 지키는 정예일까? 아니면 사막의 전사들?

사막의 전사들이 곡도를 그리 잘 쓴다던데 악마도 잘 자르리라.

설마 그것도 아니면 엘프들이 온 건 아닐까.

그렇게 민첩하고 아름답다던데.

아, 후자에 좀 더 관심이 가는 건 왜일까.

병사들이 한가득 기대를 담아 황태자를 바라보았고.

실제로 황태자는 그들이 생각하는 원군 모두를 데려왔다.

그런데 숫자가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비행선에서 뛰어내린 건 많아 봤자 약 일이백.

물론 면면은 꽤 살벌했다.

백작을 비롯하여 북부 정예 기사들과.

안드레와 청익, 홍익 최고참들.

블러디와 신비를 지닌 엘프들.

사막을 이끄는 이엘과 사막 최고 전사들까지.

거기다.

“황실 마법 전투단장 달런, 휘하 마법사단을 이끌고 도착하였나이다.”

과거 1전투 마법사단 부단장이자, 현 황실 마법 전투단장을 맡은, 마법 전투에 달인이라 불리우던 달런과 휘하 마법사들도 참전.

“부단장 솔도 왔어요!”

솔은 부단장 직위를 맡아 달런을 보조했다.

마법사단 청소부에 불과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승진.

“솔, 단원들을 배치하도록.”

“네 단장님!”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게 기쁜 걸까, 아니면 부단장이 된 게 신나는 걸까.

솔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잡아두며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케엑-.”

황태자가 덥석 그녀의 뒷덜미를 쥐었고.

목이 막힌 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왜요?”

“왜요? 어쭈, 부단장 됐다고 가로등의 본분을 잊었어?”

“뭐, 뭘 말씀하시는데요.”

“기다려. 넌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까.”

“저 단원들 배치하러-.”

“제가 하겠습니다. 일 보십시오.”

“달런 단장님!”

단장의 손쉬운 배신에 솔이 눈을 휘둥그레 떴으나.

이미 단원들과 단장은 사라진 뒤.

잠깐의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해일은 어느새 장성의 두 배 되는 높이까지 솟아났다.

그러나 장성을 지원하러 온 인원은 너무 소수.

정예들이긴 했으나.

“이들이 지원군 전부입니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장성에 정신이 팔려있는 공작을 대신하여 지휘관이 물어왔고.

“제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인원들을 추려왔지.”

백작이 당당히 답했다.

차마 너무 적은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뱉지는 못했다.

실제로 정예이기도 했고, 백작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라도.

장성에 선 병사들과 다른 지휘관들도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해일은 점점 높아지건만 이를 막을 사람이 너무 적었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왜, 사람이 너무 적어 보이나?”

황태자가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리며 물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들이 품은 불만을.

이어지는 침묵.

감히 그를 향해 속에 품은 불만을 토해 낼 이는 없었다.

그럴 만한 담력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황태자의 악명을 알아서이기도 했으며.

그가 제국을 위해 해 온 일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제국을 위한 싸움.

그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제국의 영광을 포기할 순 없는 법.

이해했다.

또한 이렇게 정예들과 함께 목숨 걸고 찾아온 황태자에게 감사도 느꼈다.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흐르는 성벽 위.

황태자의 맑은 웃음이 번져 나갔다.

누가 보면 휴양지에라도 온 줄 착각할만한 선명한 웃음.

분노도 허탈함도 아닌 그저 즐거움이 가득했다.

숨을 들이켠 그가.

“역시 난 이런 자리가 참으로 좋아.”

갑자기 제 취향을 밝혔다.

이전 황성에서 올바른 신하들을 보는 맛도 좋았지만.

이리 두려움과 모순을 품은 전선이 그에겐 천성.

큭큭 웃어대던 황태자가 어느새 장성보다 세 배가량 몸을 부풀린 해일을 보며.

“두려운가?”

자리에 선 병사들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침묵이 이어졌다.

두렵다 말하고 싶지만 두렵다 하기 싫다.

전쟁이란 것이 그렇다.

남을 살리기 위해 남을 죽이는 모순이 가득한 행위.

날 선 칼날 위를 걸어가는 자들의 정신이 올바를 리가.

딱히 탓하진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에.

대신.

“공작, 뭐 하는 거야? 기껏 포장을 풀어헤칠 기회를 주었건만,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그들의 수장인 공작을 탓했다.

장성을 감싼 시온과 그림자를 직접 풀어헤치지 않은 이유.

“마지막 즐거움은 늙은 공작을 위해 남겨 두었으니. 열어서 확인해 봐. 자네가 품었던 비원이 이 안에 있으니까.”

공작의 꿈과 선조들의 의념이 담긴 장성이다.

이것의 주인은 황태자가 아닌 하르델 공작가.

수장인 사일러스 공작이 확인하는 것이 옳다.

“어서.”

황태자의 재촉에 공작이 들뜬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표정.

바로 뒤, 이제 장성 앞까지 도착한 악마들.

어찌 보면 욕심에 눈이 멀어 다가오는 위협을 외면하는 인간의 일면 같았으나.

공작은 확신했다.

포장 안에 들어있는 선물의 가치는 저 드높은 악의보다 더 빛날 것이라고.

이윽고.

“열려라!”

공작이 마나를 펼쳐 갈라진 시온과 그림자를 걷어 버렸고.

방금까지 쏟아지던 빛살은 일부에 불과했다는 듯 터지는 찬란한 광휘.

막이 열리고 무대에 주인공이 등장하듯.

전쟁터 한복판에 진짜 장성이 등장했다.

“아아-.”

공작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감격이 치밀어 올라서일까, 눈을 찌르는 빛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둘 다 이리라.

하나 눈이 찢어질 듯 따가워도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아름답구나. 우리의 비원은 이리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드러난 선물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방금 떠올렸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진정 좋은 선물은 포장을 풀고 나서도 감동으로 남는 법.

지금 황태자가 허락한 비원이 그러했다.

먹구름과 악의를 경계로 들이치는 햇빛을 반사하는 장성의 모양새가 놀라웠다.

꽈악 뭉친 다이아몬드가 단단함과 찬란함을 품듯.

어둑한 그림자와 무거운 철 안에서 뭉쳐 든 장성이 그러했다.

수정을 넘어선 무언가.

투명한 내부를 타고 흐르는 색색의 마나.

과거 선조들이 남겨 둔 의념.

압축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단면이 안에 담긴 마나와 의념을 이리저리 내비쳤고.

덩달아 쏟아지는 햇볕을 산란시켜 오색찬란하게 뿜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을 받아들여 날렵한 마나로 재가공하는 놀라운 비원.

이런 기술이 존재한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마나는 본래 대자연을 이루는 구성이니 당연히 자연광에 가장 많이 들어 있지 않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바람과 자연의 생명까지 모조리.

장성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여 마나로 치환.

이를 분사하듯 악의를 향해 흩뿌렸고.

악마들이 몸부림치며 스러졌다.

드높았던 악의의 밑동부터 허물어지는 광경.

스러지는 악마들의 육신과 흩날리는 악의 속.

“모두 무기를 들어라!”

황태자의 높다란 목소리가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다.

검은 파도와 찬란한 장성이 부딪혀 물보라를 뿜어내는 사이.

“공작-! 장성을 밀어라!”

황태자가 생경한 명령을 입에 올렸다.

장성을 밀라니?

이미 완성된 장성을 어찌 움직인단 말인가.

그러나.

“어디까지 밉니까.”

공작만은 알아들은 듯 굳은 얼굴로 되물었고.

이에 황태자가 여전한 광기를 담아.

“동남부 끝까지. 원래 장성은 국경에 놓아야 하는 법 아닌가.”

국경 끝자락, 타국과 맞닿은 경계선까지 전진을 명했다.

“성도 움직이는데, 장성 하나 못 움직일 리 없지요.”

사일러스 공작이 커다란 마나로 화답했다.

그가 손을 앞으로 밀어내자.

그와 황태자가 있는 구역을 선봉으로 장성 전체가 전진했고.

광휘를 뿜어내며 악의를 밀어냈다.

“악마들을 베어라-!”

백작의 명을 따라 기사들이 먼저 검을 휘둘렀고.

이어서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난사했다.

이번엔 그들이 찬란한 파도 위에 올라타 적들을 베어 내는 상황.

몰아치는 검격과 마법.

파도는 기사와 마법사들 동북부의 병력들을 싣고선 우직하게 내달렸다.

방금까지 두려움에 젖어 있던 이들의 얼굴에 환희가 들어찼다.

“하아압-!”

“마법이여! 마법이여!”

몇몇은 황태자의 광증이라도 옮겨붙었는지 알 수 없는 외침을 이어 가는 중.

그럴 만했다.

기사들의 몸을 채우는 힘이 웅혼했고.

마법사들의 머릿속에 치미는 깨달음과 마나가 무한했으니.

속살거리는 소리가 장성 위에 가득했다.

바로 이전 공작가의 기둥이자 수정궁 깊이 잠들어 있던 전대 가주들의 의념.

오래 묵은 대마법사의 지식들이 장성 속 신비로 남아, 기사들에겐 힘과 의지를 마법사들에겐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이르도록 도와주었다.

점점 속도가 올라갔다.

가파르게 치달리는 파도 위.

정신적 육체적 절정에 다다른 마법사들과 기사들 병사들의 고함이 악마들의 비명을 덮었고.

그들이 뿜어내는 한 수 한 수가 악마들을 찢어발겼다.

찬란한 전투 가장 선두.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공작?”

“마음에 듭니다! 어찌 마음에 들지 않겠나이까!”

황태자와 공작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장성 가장 앞에 선 그의 검과 망치가 벼락과 불을 내뿜었다.

활로 별을 뿜어내듯 수만 가닥의 빛줄기를 흩뿌려 댔고.

심지어 어느 임계점을 넘은 순간 그가 품은 상서로운 불이 기름 뿌린 나무에 불이 번지듯 장성 전체를 휘감았다.

장성 위 가득했던 마나가 불을 머금고 형상화된 채.

파도 위에 선 이들을 지켰다.

아, 이래서 사람을 많이 데려오지 않으셨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오히려 군더더기다.

이미 장성이란 대군이 존재하지 않는가.

속절없이 밀리는 악마들이 처절한 고함을 외치며 죽어 나가는 와중.

특히 활약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기사단! 검을 들어라! 전하의 뒤를 받쳐라!”

발자크 백작.

그가 휘두르는 검격이 악의를 무참히 베어 냈고, 백작과 북부 기사단이 선 장성은 황태자 못지않게 빠르게 전진했다.

외에도.

“청익! 착면! 착검!”

“안드레! 같이 서겠다!”

안드레를 선두로 백면과 백검을 착용한 청익이 화려하게도 날뛰었다.

안드레의 은빛 팔뚝이 거센 폭풍을 뿜어내며 뇌전을 쏘아 대었고.

청익의 백색 검이 폭풍의 이빨이 되어 적들을 찢어발겼다.

그뿐만 아니라.

홀로 기사단에 준하는 활약을 하는 이도 있었다.

달런.

과거 1전투 마법사단 부단장이자 알리굴을 상대할 때 황태자를 옆에서 도왔던 이.

운 좋게 황궁 마법사단 단장으로 임명되었으나 항상 능력의 부족함을 실감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알리굴이 보여 주었던 환상.

이를 현실로 이룰 만한 장소.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불과 번개, 얼음이 뛰놀았고.

귓가에 속살대는 깨달음이 기꺼웠다.

펑, 퍼펑, 퍼퍼펑!

그의 귓가에 연이어 터지는 축포.

적들을 죽여서가 아닌 몸 안을 가득 채운 마나가 체내 막혀 있던 험로를 뚫는 소리.

본디 다섯 개의 원을 극한으로 짜내어 마법을 펼쳐 왔던 그의 심장이.

새롭게 여섯 번째 고리를 둘렀고.

달런이 마법사 한 개 단에 달하는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기뻤다.

부서지는 적들보다 한계를 깨 나가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다시금 새로운 계단으로 이끌었다.

늙은 육신은 괴롭다 비명을 질러대었으나 치미는 쾌감에 뇌가 익어 버린 듯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그의 몸을 황태자가 뿜어낸 녹염이 휘감아 치유했다.

덩굴에 휩싸인 채 무한으로 마법을 뿜어대는 마법사라니.

그야말로 공포.

그러나 더욱 무서운 점은 바로.

다 늙은 나이에 경험하는 실시간 성장.

‘더-! 더! 더! 더 많이 쏘아내란 말이야! 한계를 풀고 머릿속 가득한 것들을 뱉어 내!’

‘쪼잔하게 다루지 마. 마나의 은혜는 그것보다 훨씬 위대하다.’

귓가에 몰아치는 대마법사들의 가르침과 재촉.

“으으- 죽을 것 같습니다!”

마침내 달런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나왔으나.

“사람은 그렇게 쉬이 죽지 않아.”

“죽을 거 같습니다. 써클이 터질 것 같아요. 공작 각하!”

“터질 것 같아? 괜찮아. 그렇게 쉽게 터지지 않아.”

“아니, 진짜로 이러다간 써클이고 혈관이고 망가진다고요!”

“망가질 거 같지? 안 망가져.”

이번엔 공작이 그의 뒤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떨어지려는 팔을 꽈악 붙잡은 채 마법을 강요했고.

달런이 억지로 마나와 깨달음을 흡수하길 퍽 오래.

마침내.

일곱 번째 고리를 심장에 새겨 넣었다.

“크허어억-.”

“것 봐라. 안 터지지. 안 죽었지. 자 봐라. 어때? 죽여주지 않아? 새로운 세상이.”

공작이 장성을 보며 감동했듯.

“놀랍습니다. 이게- 이게- 7써클의 시야였군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한 초인들의 세계로군요.”

달런 또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적과 싸우는 와중 얻는 깨달음이라니.

아무리 홀로 수련해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가장 위태로운 자리에서 깨닫다니.

역시나 전쟁터는 모순이 가득한 곳.

전진한 장성은 어느새 공작령을 주파하여 동남부 공작성을 앞에 둔 상태.

공작이 다시금 속도를 올려 막 공작성에 장성을 부딪치려 할 때.

동남부 공작성이 악의를 뿜어내며 움직이기 시작.

역으로 장성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내.

쿠우웅-!

성과 성이 부딪쳤다.

검게 일렁이는 공작성 가장 높은 자리.

전선을 짓누르는 거대한 존재감이 피어나자.

이에 맞서 황태자가 광기와 벼락을 피워 올리며.

“공성전을 시작하지.”

진짜 공성전(攻城戰)을 선포.

새까만 공작성과 찬란한 장성이 부딪히며 내지르는 굉음이 동부를 떨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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