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율리우스 (2)
몸에 휘감기는 뇌전이 화려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적뢰, 초적뢰, 광뢰, 녹뢰, 청뢰.
찌지지직, 다섯 번개가 얽히자 비단 수백 개가 찢어지듯 시끄러웠다.
피워 내는 균열이 다채로워 그가 선 공간만이 따로 떨어진 것 같았다.
자리에 뭉친 균열이 퍼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신을 모시는 성당, 신성을 드러내기 위해 물들인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듯 색색의 균열이 시야를 물들였다.
과거 영웅 중 영웅이자 인간들의 영광이라 불리던, 아이로니아 제국의 개국 공신.
건국제의 두 친우 중 하나.
율리우스.
분명 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영롱하다 기록되었던 얼굴은 그대로.
심지어 초상화에 그려진 모습보다도 젊어 보였다.
가슴께까지 치렁거리는 긴 흑발과 새파란 청안.
어찌 보면 앞에 선 황태자의 유독 깨끗한 백금발, 새빨간 적안과는 반대되는 모양새.
그리 마주하길 잠깐.
“흐음, 퍽 닮았군.”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눈을 휘며 미소지었다.
아래에서 위로 또르륵 구르는 눈동자가 그림을 품평하는 모양새.
거기서 끝내지 않고 손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눈매는 조금 더 날카롭고 머릿결은 더 부드러워. 피어나는 불냄새가 참으로 맑은 것을 보니 생각보다 성정이 깨끗한가 보네. 녀석보다 뼈대는 얇구나, 그래서 무기 크기를 줄인 거니?”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어르듯 보드라운 목소리.
살기도 미움도 없이 그저 자신의 친우였던 건국제와 후손인 황태자를 비교할 뿐.
“심장의 소리가 듣기 좋구나. 혹여 몸이 무너질까 걱정했는데 불에 남은 의념을 잘 받아들인 것 같아 다행이야.”
심지어 그의 건강까지 걱정해 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사일러스 공작이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려니.
“이런, 데미의 아이도 왔구나. 그래 아직도 수정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니? 얼굴은 안 닮지만 따뜻한 갈색 눈이 똑 닮았어.”
율리우스가 공작을 보며 마찬가지로 다른 친우의 안부를 물었다.
데미 하르델, 대륙 최초의 인간 대마법사.
율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개국 공신 중 일인이며 건국제의 오랜 친우.
셋이 이룬 전설이 워낙 많아 건국제 혼자였다면 제국을 이루지 못했으리란 평이 지배적일 정도.
황태자와 공작을 보며 대륙을 질타하던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한데 이상하구나. 원래 너희의 마법은 점점 감정을 잃어 가지 않던가? 데미도 그 부작용을 못 이기고 우리를 떠났는데 말이지.”
율리우스의 계속되는 말에.
“감히, 위대한 선조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사일러스가 억눌린 목소리로 추억을 끊어 냈다.
그리고.
“넌 율리우스가 아니야.”
상대의 존재를 부정했다.
“과거 인간의 해방자였던 세 영웅은 많은 적들을 물리쳤다. 개중엔 엘프와 거인, 드래곤이 포함되어 있었지. 그래도 결국 그들과는 공존을 택했다. 남부가 그 증거요, 북부의 드워프들 또한 증거.”
이후 시작된 역사 강의.
직접 그 시대를 살았던 초인은 여전한 미소로 친우의 오랜 후손이 지껄이는 말을 들어줄 뿐.
물론 마지막 끝맺음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악마만은 용서치 않았고 그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죽였다. 그리 말하고 싶었지?”
“그래. 세 영웅께선 악마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지금 이 꼴을 한 너는 율리우스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니?”
공작이 대답하기 전.
높은 웃음이 찢어지는 소리와 뒤섞여 울렸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손뼉까지 쳐 가며 웃는 꼴에 사일러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애써 부정했건만 이미 알고 있다.
진짜 율리우스라는 걸.
자신의 논리가 터무니없이 빈약하단 걸 알았다.
상대의 박장대소에 흩어질 정도로.
그가 휘어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그래, 데미도 평소엔 그리 논리정연하다가도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기도 했단다. 그런 면까지 닮았을 줄은 몰랐는걸.”
다시 한번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오랜만에 만난 친우의 후손들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주인장과 같은 모양새.
하나.
“그래서 악마의 주구가 되어 버린, 늙다 못해 썩은 시체의 추억 여행은 끝났나?”
지금껏 침묵하던 황태자의 스산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온화한 분위기를 얼렸다.
율리우스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황태자를 보았고.
“이 빌어먹을 개같은 새끼. 네놈이 예전부터 은근히 악마의 피를 탐했던 변태 성욕자 새끼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 진짜 이런 짓을 저지를 줄 몰랐구나.”
“전하?”
“눈웃음은, 이 징그러운 새끼야. 확 눈깔 빼버리기 전에 얼굴 안 풀어? 데미? 데미이이? 이 쌍놈아 어딜 감히 이름을 올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감정까지 버린 위대한 전우의 이름을. 이 야비한 새끼야.”
“…….”
“원래 그랬지. 권력과 힘에 대한 욕심이 유독 과했어.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기꺼워 살려 뒀더니 이런 개짓거리를 버려? 이 쌍노무 새끼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줄줄 욕설을 뱉어 냈다.
좀 이상했다.
황태자가 율리우스를 알 리 만무.
한데 지금 쏟아지는 말을 듣자면 마치 알던 사람 같지 않은가.
이를 반증하기도 하듯.
“카이론? 설마 카이론 네 녀석이냐?”
율리우스가 약간은 굳은 얼굴로 건국제의 이름을 불렀다.
“감히 귀한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쓰레기 새끼야. 그리 전해 달라더군. 아 물론 마지막 쓰레기 새끼야는 내가 붙인 거야. 조금 더 독하게 바꿨지만 나름 그대로 전했다.”
이에 황태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인정했다.
방금 자신이 뱉은 말이 건국제가 직접 전한 말이라는 것을.
막 공작성에 들어가 율리우스를 만난 순간.
심장 주위를 돌던 불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더니.
황태자의 정신을 환상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각 불에 남아 있는 의식의 통합체, 어쩌면 생전 건국제와 가장 가까울지도 모를 무언가가 표출한 주된 감정은 분노와 실망.
이전 보았던 초인은 자리에 없었다.
그저 믿었던 친우의 배신에 뼈저린 아픔을 토해 내는 한 사내가 있었을 뿐.
황태자가 전한 말은 앞뒤에 붙은 후회와 슬픔을 걷어 낸 것.
처음이었다.
건국제가 이리 슬퍼하는 건.
지금껏 망가진 제국을 보면서도 씁쓸해한 적은 있어도 슬퍼하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참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빌어먹을 새끼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는군. 귀가 아플 정도로.”
건국제는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
그가 내뿜은 슬픔이 불을 눅눅하게 물들였다.
자욱이 피어나는 후회가 속을 막막하게 가리는 중.
황태자의 입을 빌려 건국제가 표한 의문에.
“흐음, 이유가 뭐였더라. 잘 기억이 안 나는군.”
율리우스가 약을 올리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과 쨍쨍 검 부딪히는 소리가 만들어 내는 묘한 하모니.
영광을 잃은 영웅은 비열한 웃음으로 시간을 끌려 할 뿐.
“건국제와 하르델의 시조가 부러웠구나. 네놈이 가장 약했던 게 열등감으로 남았나 보군.”
“…너.”
황태자가 단번에 핵심을 짚어 냈다.
비로소 율리우스가 쓰고 있던 가면이 깨졌다.
상대를 비웃듯, 자신의 감정을 감추던 얇은 눈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그래서 그렇게 더러운 똥통도 마다하지 않고 들어간 건가? 악마를 죽이면서도 그들이 선물해 준다던 힘이 머릿속에 남았나 봐. 그냥 힘으로는 둘의 영광을 빼앗지 못할 테니까.”
“이봐. 넘겨짚지 마.”
“그래서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심지어 제국을 약화해 가면서까지. 겁이 나셨나? 무덤에 누워 있는 백골도 남지 않은 친구가 벌떡 일어날까 봐? 그것부터가 네놈의 수준을 보여 주는 거야. 마음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었으면 그때 판을 뒤엎었어야지.”
“황태자.”
“둘만 못하다는 열등감과 제 처우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군. 흔한 이유야. 그래, 너도 그저 그런 인간 중 하나였어. 영웅도 인간에 불과했다라… 이거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인걸?”
“황태자!”
“어때 내 진단이. 이젠 인간도 아니게 되었군. 열등감과 공포감에 찌들어 있는 쓰레기만도 못한 악마 새끼야.”
황태자의 차가운 결론.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천년이 넘는 시간, 인간은 얼마나 위대해졌는가.
문명이 제대로 자리 잡고도 한참.
본래 강대한 종족들의 노예나 다름없던 인간이 이젠 대륙의 주인을 자처했다.
아름다운 엘프들은 남쪽 숲에 처박혔고, 거인들은 억지로 몸을 줄여 산 깊은 곳으로 숨었다.
신에 가장 가까운 피조물이라던 드래곤은 전설 속에만 남아 있을 뿐.
저 멀리 인간들의 발이 닿지 않는 땅에 숨어 있거나 인간들 사이에 정체를 숨기고 섞여 살아간다지.
실제로 대륙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이들 중 본래 정체가 드래곤인 자도 있다.
뭐 여담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원래 질문.
위대한 발전 아래, 인간은 얼마나 진화했는가.
마법을 펑펑 쏘아 내고 검에 마나를 싣고 더 나아가 차가운 철을 심장 삼아 달리는 철마들을 만들어 냈건만.
정작 인간은 어떠한가.
여전히 유치하고 여전히 무지하며 여전히 탐욕스럽고 여전히 질투와 시기를 멈출 줄 모르며 여전히 실수를 반복한다.
그게 인간이다.
위대함과는 별개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못난 본성들.
황태자가 떠올린 건 유치한 성악설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일면을 지적했을 뿐.
자신 또한 느끼는 감정들.
전생, 가짜 황제로 살아가던 시절 얼마나 많이 느끼고 겪었던 부족함이던가.
그래서 더욱 잘 알았다.
다만.
“네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
율리우스에겐 황태자의 말이 매우 고깝게 들렸던 모양.
그래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던 방금과 다르게 그의 표정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드러난 건 무너진 유적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얼굴.
무뎌진 감정 위로 달빛이 미끄러졌다.
제 욕망을 들켜 버린 초인의 민낯.
황태자는 그것마저 즐거운지.
“알지, 잘 알지. 아주 잘 알아. 너 같은 놈들은 세상에 가득하거든.”
광기를 빛내었다.
일렁이는 백금발과 번쩍이는 진홍색 눈동자가 생생했다.
차갑게 떨어져 내리는 율리우스와는 반대되는 상승과 열기.
이를 뿜어내며.
“그저 넌 조금 더 강하고 오래가는 쓰레기였을 뿐이야. 건국제의 친구이자 영웅이었다는 수식어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말이지.”
그의 정체성을 확정지었다.
율리우스의 주변에 머물던 균열이 성안을 점거했다.
유리에 균열이 번지듯 순식간에 퍼져나간 전류가 황태자와 공작을 휘감으려 들었다.
그대로 찢어 죽이려는 의도.
물론.
“웃기는 짓!”
쉬이 당해 줄 둘이 아니었고.
공작이 수정을 일으켜 순식간에 방벽을 만든 반면.
황태자는 대번에 브레이커를 잡고선 허공을 찔렀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일렁이길 잠시.
철컥, 검을 돌리자 울리는 자물쇠 풀리는 소리.
이어지는 균열.
율리우스가 이루어 낸 균열이 색색으로 아름다웠다면 황태자가 만든 균열은 새까맣게 공간을 부쉈다.
두 균열이 치열하게 영역을 주장했고.
맞물리는 틈 사이.
황태자가 빛줄기가 되어 치달았다.
파스스스 부서지는 공간 사이를 뚫어 도착한 건 영웅의 앞.
“왜 방금처럼 웃어보지. 얼굴을 으깨 주려 했는데 말이야.”
자세를 낮춘 그가 벌겋게 미소 지으며 브레이커를 들이밀었고.
“얼마든지.”
율리우스가 다시 가면을 뒤집어쓰듯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시끄럽게 울었다.
브레이커가 적염을 뿜어내며 우르릉 이빨을 갈아 대자.
율리우스가 적뢰를 뿜어내며 검을 마주했다.
초적염으로 폭발을 일으키자.
초적뢰로 이를 상쇄.
일그러지는 불과 번개 사이.
황태자가 빛으로 화하여 상대의 뒤를 노렸고.
타락한 영웅 또한 누런 번개로 변하여 황태자와 함께 내달렸다.
공작성 안, 누런빛과 번개가 가득 들어찼다.
황태자는 곧게 영웅은 뒤틀린 채.
속도는 빛이 더욱 빨랐으나 번개는 수백 갈래로 갈라져 진로를 막았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공방.
번쩍이는 틈바구니 속.
“멈추어라!”
공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껏 균열 틈새로 마나를 풀어 시기를 엿보던 그가 단박에 주문을 쌓아 올렸고.
빛과 번개만이 가득하던 세계가 굳었다.
마녀의 유리병 속 세계처럼 투명한 수정이 기하학적인 둘의 싸움을 그대로 담아 냈고.
황태자와 율리우스가 멈춰선 사이.
공작이 주름진 손을 바쁘게 놀려 바로 다음을 전개.
펼친 영역을 뒤틀어.
율리우스를 압박, 반면 황태자는 수정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역 속, 수없이 생겨나는 날카로운 가시들.
수정이 비죽비죽 자라나 율리우스의 몸을 부수려 했고.
쏟아지는 공격 속.
율리우스가 밀도 높은 수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버텼다.
“오랜만이로군. 이런 장난!”
아직은 여유로운 놈의 모습에.
공작이 손을 좁히자.
이번엔 공작성을 가득 채웠던 수정이 한점으로 모여들었다.
초고온과 압력이 동반된 봉인술.
와중에도 몰아치는 공격.
더불어 상대가 뿜어내는 벼락을 무위로 돌리는 중.
한 번의 수에 겹친 주문이 여럿.
늙은 머리가 열을 뿜어내며 돌아갔고.
점점 응축되던 수정이 정점에 이른 순간.
“전하! 지금입니다!”
공작의 외침에 황태자가 진생철퇴를 잡아들었다.
이어지는 거대화.
순식간에 공작성 한 축을 무너뜨리며 등장한 거대한 망치.
황태자가 이를 악물며 산봉우리만 한 망치를 휘둘렀고.
초적염을 펑펑 터뜨려 추진력을 얻은 진생철퇴가 공작성을 무너뜨리면서 번쩍 날아올랐다.
날아오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
거대한 질량에 질린 공작성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다.
천장을 무너뜨리며 지나간 길.
잠깐의 정적 이후 쏴아아아, 거센 빗방울이 건물 잔해 위를 두들겼다.
아직도 전진하고 있는 황태자의 망치가.
성 반절을 뭉개며 마침내 공작이 압축한 수정에 닿았고.
꽈르르릉!
먹구름으로 어두워진 일대를 밝힐 만큼 환한 벼락이 터졌다.
밖에서 목숨 걸고 싸우던 기사들마저 멈칫할 정도.
얼마나 강대한 전류였는지 저릿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이어지는 정적.
결과가 나온 것일까.
싸우던 이들이 모두 멈춘 채 혹여나 들려올 승리 소식을 기다렸다.
누구도 제 수장의 패배를 예상하진 않았다.
황태자를 따르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율리시스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과거 영광에 기대어 승리를 예견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크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아주 재미있어. 그래, 녀석들과 투덕거릴 때가 생각나 즐거워 참을 수가 없구나!”
광소를 터뜨리는 율리시스의 모습.
대마법사의 한 수와 황태자의 거센 공격에도 상처 하나 없는 모습에 황태자 세력의 얼굴에 수심이 끼는 순간.
“지랄하네.”
황태자가 욕설과 함께 스타레인에 걸어둔 불화살 수백을 쏘아 올렸다.
내리치는 빗금과 올라가는 직선이 교차했고.
마찬가지로 수백 갈래 전뢰가 불화살을 일일이 꿰었다.
터지는 불과 벼락 사이.
내려다보는 율리시스와 올려다보는 황태자.
과거 영웅이었던 자와 지금 영웅이 되려는 자의 시선이 맞물렸다.
“그 번개. 죽은 황손들에게서 빼앗은 거냐.”
황태자가 뜨거운 눈으로 물었고.
“그래, 그들의 불을 올올이 묶어 만들었지. 손이 많이 갔어.”
율리우스가 여상히 답했다.
친우의 자손을 해하여 얻은 불꽃으로 친우의 능력을 복사한 꼴.
황후의 드레스가 그들의 피부를 엮었다면 지금 보이는 번개는 그들의 심장을 엮은 것.
놈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같은 색의 불로는 이기지 못한다. 같은 힘이라면 쌓아 온 세월이 많은 쪽이 이기는 법이야. 우습구나.”
황태자를 비웃었고.
이에.
“그래? 너 가진 게 그게 전부냐?”
황태자가 불길한 질문을 던졌다.
율리우스의 얼굴이 굳길 잠깐.
“그렇다고 한다면?”
질문이지만 확실한 대답.
이에 황태자가 입꼬리를 쭈욱 끌어올리더니.
“같은 색의 불로는 이기지 못한다고 했지? 그럼 이건 어때.”
까만 미소를 따라 어둑한 불이 빗방울을 타고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