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74화 (174/200)

174화 죽어도 좋아

어둑한 공간, 그 사이에 마주한 세 기사.

“그게 이유의 전부인가.”

백작의 멍한 물음에.

“그렇다.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한가.”

베르베로스가 태평한 얼굴로 답했다.

안드레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

그들 또한 처음 암염에 잠겼을 때 가득한 어둠만을 보았다.

백작은 그곳에서 자신의 두려움을 만났고.

안드레는 최후를 겪었다.

둘이 각자의 절망을 뿜어내고 베어 내어 나아 온 자리.

그곳엔 새까만 눈으로 선 베르베로스의 신형.

등 뒤엔 새빨간 날개 두 장, 이마에 자란 하나의 뿔과 3의 눈.

악마로 탈피한 그가 둘을 맞이했고.

백작이 검을 휘두르기 전 물었다.

“왜 그런 꼬락서니를 허락했나.”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아니 솔직히 한 수 위라 평가받던 지고의 기사.

그와 여러 번 검을 나누었고 재능과 실력을 통감했다.

심지어 그 단단하고 곧던 아버지마저.

“베르베로스 그 녀석이 있는 한 제일검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

때론 나약한 소리를 하게 만든 자.

기사 중 기사라 불리던 이가 어찌 이런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백작의 물음에.

“그저 난 더 높은 곳을 원했을 뿐이네.”

베르베로스는 간단하게도 답했다.

율리우스처럼 열등감이나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저 향상심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노라고.

“제국제일검을 넘어 대륙제일검, 아니 그 이상이 되고자 했네.”

이미 인간을 벗어난 초인임에도 갈 길이 멀다 느낀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말.

백작의 의문이 다시 이어지기도 전.

“보았지 않은가. 우린 평생 저 괴물의 밑에서 자라 왔지.”

이유를 깨달았다.

율리우스.

시대의 초인.

인간의 해방자를 자처했던 저 위대한 이를 어릴 적부터 보아 왔구나.

어찌 자신이 가진 힘에 만족하겠는가.

고작 제국제일이란 칭호가 무슨 소용인가.

백작 또한 아버지의 검을 보며 열패감과 무력감을 느낀 적이 많았건만.

그 대상이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이라면?

몸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은 차원이 다를 거다.

“그가 품은 열등감과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노리개가 되어 살아왔어.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한가.”

악마가 되어서도 지워 내지 못한 씁쓸한 토로에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면 됐어. 말은 더 이상 필요 없겠군.”

그리 말하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려 할 때.

“이건, 이 싸움은 우리가 이겼군요.”

나지막한 깨달음이 어둑한 공간을 울렸다.

안드레.

그가 어딘가 멍한 눈으로 악마를 바라보며 뱉은 말.

무슨 자신감으로?

본래도 강했던 공작이 지금은 악마의 힘을 받아들여 더욱 강해졌건만.

확신에 찬 목소리는 어째서일까.

그런데.

“쯧, 안드레. 그리 말하면 적이 방심을 안 하지 않느냐.”

백작의 타박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백작도 같은 생각을 했단 뜻.

둘이 승리를 확신했고.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생각입니까.”

이번엔 공작 뒤 허공에 대고 묻자.

“아니, 이 사람아. 방금은 방심을 유발해야 한다며? 숨어 있는 사람을 부르나 그래.”

철컹, 철컹, 철컹.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가 어둠을 헤치며 등장했다.

가슴팍 선명한 불꽃 모양.

위로 올린 투구 바이저 사이 새파란 눈동자가 빛나는 이.

“불꽃 기사단 중 풍백이라 불렸던 기사. 쿤이다.”

무명 기사, 이젠 쿤이란 이름을 되찾은 기사 쿤이 저를 소개했다.

“이름을 찾았습니까?”

“깊은 기억 속에서 찾았지. 잠깐일지라도.”

“제가 기억해 드리죠.”

“그거 고맙군.”

이름과 정체를 찾은 무명이 전과 다른 기세를 뿜어내었고.

덩달아.

“자네들도 슬슬 보여 봐.”

무명 기사 쿤의 말에.

백작의 눈이 하얗게 물들었다.

시야에 가득 떠오르는 백색 실선들.

그가 휘두를 검로.

이어 안드레가 오른팔을 시작으로 온몸이 은색으로 물들기 시작.

팔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문양이 몸과 얼굴까지 치밀었다.

각자가 얻은 깨달음이 삼엄하게 피어났고.

“왜 그대들이 이긴다 확신하지?”

베르베로스의 물음에.

안드레가 동상같이 말간 얼굴로.

“그야. 우리가 따라잡으려는 초인이 당신이 두려워하는 초인보다 강하기 때문이며.”

답했고.

“그대는 두려워하고 싸워 이겨 보려 하지만, 우린 섬기고 따르기 때문이며.”

백작이 광망 어린 눈동자로 말을 받았으며.

“그 와중에도 우리는 우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지.”

쿤이 반짝이는 자아를 담은 눈동자를 들어 베르베로스를 쏘아보았다.

“결과는 보면 알겠지.”

곧 무명까지 합세한 대결이 펼쳐졌고.

어둠 속 폭풍과 하얀 번개가 몰아쳤다.

악마의 날개가 찢어지고 뿔이 잘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공작이 뿜어낸 수정은 여전히 투명했다.

너무나 투명하여 주변에 가득한 어둠에 녹아들 정도.

심지어는 사일러스 본인의 몸마저 수정으로 화했다.

전처럼 가짜가 아닌 진짜 몸을 수정으로 구성하는 마법.

그 속에서 일렁이는 대마법사의 써클과 몸을 휘도는 거센 마나.

이윽고 그의 몸을 헤집고 들어간 것은.

불, 새빨간 불.

황태자의 적염, 초적염, 광염과 녹염, 청염까지.

그가 뿜어낸 불이 일제히 공작의 몸을 파고들었고.

사일러스의 인도를 따라 그의 새로운 마법체계가 휘돌기 시작.

그가 짜올린 수정들이 각자의 색으로 빛났다.

더 나아가 황태자의 불을 분해, 재구성하였고.

까만 세상 위로 자신의 세상을 펼쳐 내었다.

수정 마법의 궁극, 투과와 창조를 이루어 낸 순간.

“이것이 나의 절망이었으며, 이젠 희망이다.”

공작이 색색의 눈으로 악마를 노려보았다.

스스로 짜올린 공간 안에서라면 그가 곧 신.

마음껏 재앙을 부리고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손짓 하나하나에 번개와 얼음, 불, 지진이 몰아쳤다.

율리우스의 주변을 감싼 수많은 재해.

놈이 검을 휘둘러 갈라 낸 공간 사이로.

브레이커를 치켜든 황태자가 몸을 들이밀었고.

다리를 베어 냄과 동시에 자리를 뒤바꿔 상대의 공격을 회피.

콰장창, 수정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후로도 공작은 분화(分火)와 재구성을 실행.

과거 데미가 카이론의 불로 이루려 했던 신비에 가까운 기행을 선보였다.

수정 속에서 번쩍번쩍 발광하며 흐르는 불에 눈이 아릴 지경.

와중에 황태자는 그가 자아낸 세상 속을 유영하며 검으로 베고 망치로 찍었다.

수정에 반사되는 환영이 수십, 수백으로 늘어났고.

모두가 실체로 탈바꿈하여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브레이커의 날이 초고속으로 울었고 망치가 하늘을 덮었다.

몸을 훑을 때마다 피어나는 불티와 망치를 따라 터지는 번개.

그렇게 천지를 뒤덮은 공격 사이.

“조잡한 재주!”

율리우스가 검은 번개를 사방으로 뿜어내자.

날카로운 소리가 연이어 울리며 주변 모든 것이 깨져 나갔다.

깨진 단면 사이 다시금 빛이 여러 갈래로 비쳐들었고.

공작의 수인을 따라 흩어졌던 수정들이 휘돌며 각각의 심상을 비춰 냈다.

그의 투명한 손가락이 다른 모양으로 맞물리며 빛과 그림자를 조합하여 다발적으로 마나를 결합.

공작의 거대한 마법 체계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계속하여 주문을 짜 올렸고.

일렁이는 형상들이 연이어 환상을 현실로 밀어냈다.

깨진 단면들로부터 피어나는 마법들.

좁은 공간 안,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강렬한 화력.

여파를 반사하는 짧은 시간 동안 미리 수정에 담아 둔 주문이 부스러진 마나를 재조립.

마법이 연쇄적으로 쏟아졌다.

심지어 저써클 마법도 아닌 모두가 고써클 마법들.

“으으윽!”

곧 공작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는 붉은 실핏줄들이 그의 한계치를 나타내는 듯했다.

붉어지는 얼굴,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 올랐으나.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었다간 율리우스에게 역공을 당하리란 압박감.

하나.

“네놈도 알겠지. 지금 벌이는 재롱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치열한 마나 속 음울하게 울리는 악마의 목소리에 공작의 관자놀이에 맺힌 땀이 주륵 흘러내렸고.

놈이 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허공에 머무르던 수정 조각들을 부수었다.

몰아치는 검격에 조각난 수정들이 이젠 가루로 화했고.

끝까지 버텨 내려 했으나 결국 공작이 짜올린 주문진이 허무하게 부스러졌다.

파스스스 흩어지는 수정 안개와 마나.

이를 헤치며 등장한 것은.

“이제야 나타났구나.”

황태자.

수정 가루를 뒤집어쓰며 나타난 그의 얼굴과 백금발이 무수히 반짝였고.

이를 찢어 내며 뒤따라온 브레이커의 날에 작은 불꽃이 어림과 동시에.

푸화학-!

밀도 높은 가루와 마나를 타고 폭발이 번졌다.

악마가 날개로 제 몸을 감싸 보호함과 동시에 황태자가 불에 몸을 숨겨 뒤로 이동.

막 날개를 잘라 내려 할 때.

뾰족한 운명을 보았고.

고개를 틀어 피한 자리에 보인 건, 날개 틈 사이로 튀어나온 검날.

그의 얼굴을 베어 내려 주우욱 날개 선을 타고 움직이는 검을 브레이커로 막아 낸 뒤.

손을 세워 날갯죽지에 푹 찔러넣었다.

분명 강철의 신비를 담았건만 상대의 날개가 단단하여 손가락이 부러지고 뼈가 튀어나와 피가 터졌으나.

“좋은데.”

황태자는 붉게 웃을 뿐.

머리끝까지 치미는 고통이 즐거웠다.

남은 약지와 새끼로 날개를 움켜쥐어 찢어 내려 할 때.

율리우스가 힘의 방향을 따라 휘돌며 반대 날개로 황태자를 쳐냈다.

비로소 화염과 수정 가루가 흩어지며 황태자가 날았고.

그가 자세를 바로잡기 전.

콰앙!

따라온 율리우스가 검으로 그를 내리쳤다.

막아 내는 황태자를 밀어붙이길 잠깐.

그그극- 땅에 닿은 발밑에서 새까맣게 연기가 피어났다.

이후 그가 초적염을 폭발시켜 몸을 밀어내자 비로소 균형이 맞아 들었고.

그렇게 상대의 손발을 묶은 뒤.

율리우스 등 뒤, 네 날개가 쏘아지듯 황태자의 가슴팍을 노렸다.

막 그의 가슴을 헤집고 심장을 움켜쥐려하기 전.

수정이 황태자의 몸을 감싸 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게 율리우스의 날개까지 붙잡고 나서.

“전하 버티십시오.”

“얼마든지.”

공작이 붉게 빛나는 눈으로 손바닥을 치켜들어 율리우스를 겨눈 채.

그의 거대한 마법 체계로도 시간이 걸릴 만큼의 주문을 쏟아 넣었고.

빚어 낸 건 초고온의 불, 아니 초고온을 넘어 태운다는 개념을 형상화한 불.

8써클 대인 궁극기 헬파이어.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꿈일진대.

공작은 한 가지 변화를 더 부렸다.

바로 수정.

헬파이어 앞을 가로막은 수정 여럿.

이를 통과하자 사람 몸통만 했던 불이 반절로, 한 번 더 통과하자 그 반절로, 세 번째 통과했을 땐 머리통만 하게.

여러 번 압축을 거친 헬파이어가 이내 손가락 하나 크기만 해졌고.

공작의 날개를 감싼 수정을 파고들어 내부에서 반사 및 확산을 반복.

붉은 핏줄이 번지듯 황태자가 반쯤 찢어 낸 날개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몸통까지 번지는 붉은 역병.

송골송골 맺힌 땀이 공작의 주름을 타고 흘렀다.

따가울 정도의 열기.

“공작! 화력을 높여! 괜찮으니까 제한 따위 버려라!”

황태자의 강요에 공작이 조절하던 힘을 풀어 버렸다.

수정 밖으로 삐져나오는 고열 고압축의 불길이 튀겨 대며 황태자의 몸도 긁어 댔다.

그럴 때마다 피부가 갈라지며 붉은 피가 쏟아졌고.

금세 둘의 몸이 벌겋게 물들었으나.

“아하하하-.”

황태자는 오히려 즐거이 웃었다.

이런 미친 새끼.

율리우스의 작은 읊조림.

이어 브레이커가 기이잉 기묘한 울음을 울기 시작.

율리우스의 검을 파먹었다.

탐욕스럽게 파고 들어가 놈의 몸까지 가를 작정.

물론 율리우스가 당해 줄 리 없었고.

검은 번개를 뿜어 수정을 부수곤 공작의 마법을 튕겨 냄과 동시에.

훌쩍 하늘로 솟아올랐다.

갈라진 날개에서 떨어지는 피가 후두둑 황태자의 얼굴을 물들였고.

“어딜 도망가-!”

황태자가 혀로 흐르는 피를 핥으며 영웅의 비겁함을 탓했다.

이후 어느새 등 뒤에서 튀어나온 활에.

“데스 레인!”

율리우스가 친우의 무기를 알아보았다.

“잘 아네. 그럼 하늘로 날아 오른 게 멍청한 선택이라는 것도 잘 알 테지.”

황태자가 여전한 미소로 불을 올올이 짜기 시작.

얇게 벼린 다섯 가지 불이 밧줄처럼 뒤엉켰다.

쏘아 내기 직전.

공작이 흩뿌린 수정이 율리우스의 진로를 차단.

황태자가 시위를 놓았고 어둠이 화살을 꿀떡 삼켰다.

암염에 깃든 그림자와 공작의 수정으로 시야를 왜곡하여 부려 낸 속임수.

이윽고.

악마의 날개 한쪽에 색색의 화살이 피어나듯 꽂혔다.

황태자의 얼굴에 환희가 피어났다.

율리우스가 확신했다.

저 새끼는 미친놈이다.

그것도 선조 카이론보다 더 미친놈.

그들 또한 싸움을 즐겼으나 저리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상대의 상처를 살피지는 않았다!

“크으윽!”

생각은 거기까지.

날개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수많은 불가닥이 그의 몸을 찢어발기려 했고.

율리우스가 제 능력과 더불어 암뢰를 뿜어내어 이를 털어 내려는 사이.

시야를 가득 채운 색색의 선들을 부수며 등장한 거대한 망치.

진생철퇴가 악마의 약해진 몸을 짓이기려 들었고.

이를 막아 내려니.

반대편에 몸을 숨긴 황태자가 등장.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저 반듯하게 잘린 날개 두 장이 바닥에 철퍽 떨어진 후.

이어 날개를 잃은 율리우스의 몸이 가라앉았다.

추락하는 놈을 따라 황태자가 허공에 튕긴 망치를 잡아 내리치자.

파문이 일 듯 원형 충격파와 더불어 공작이 이룬 수정 공간이 터져 나갔다.

퍼퍼퍼펑-!

갈라진 수정 사이 피어오르는 불.

모양새가 마치 용암이 솟아나는 땅 같기도 했고 악마들이 산다는 지옥 같기도 했다.

그 가운데 망치로 악마를 짓누르며 웃고 있는 황태자는 지옥의 주인.

진생철퇴가 율리우스의 신체 반 틈을 짓뭉갰고.

그가 뻗은 검이 황태자의 어깨를 꿰뚫었다.

각자 서로의 몸을 터뜨리기 위하여 불과 번개를 뿜어내니.

공간이 들끓었다.

“미친놈! 이러다 둘 다 죽어!”

아래에 깔린 율리우스가 경악하며 몸을 빼내려 했으나.

“겁나나? 겁이 나? 그 죽을 위기를 다 헤쳐 나온 천하의 영웅이 고작 이 정도에 겁을 먹었나? 아니, 어서 더 몸부림쳐 봐. 그때처럼, 인간들을 구원했을 때처럼 스스로를 구원해 보란 말이야. 이래서야 재미가 없지 않나.”

“…….”

황태자의 번들거리는 눈을 마주한 율리시스가 잠시 말을 잃었다.

죽음을 각오한 걸 넘어 오히려 즐기는 눈.

황태자의 얼굴을 타고 흐른 피가 그의 눈가를 붉게 물들이다 못해 온 얼굴을 물들였다.

광기가 번지듯.

“죽는 것 따위 내가 알 바냐? 죽으면 뭐.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하자. 내가 너보다 한숨이라도 더 쉬고 죽는다. 그러면 이기는 거 맞지?”

“미친 새끼가!”

“그래 미쳤다. 그러니까 같이 미치자고. 나 혼자 미치면 의미가 없잖아? 미쳐 봐. 미쳐 날뛰어 봐. 이대로는 죽는다. 너?”

속삭이는 목소리에 율리우스의 숨이 거칠어졌다.

미친 황태자의 말대로.

지금 둘이 대치를 하는 중에도 공작이 마법을 짜올리는 게 느껴졌다.

뭉쳐 드는 마나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직격당하면 분명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거다.

마침내 황태자의 광기가 율리우스에게 전염되었고.

“좋다. 같이 미쳐 보자고. 누가 먼저 죽는지.”

놈이 암뢰도 검도 놓은 채 몸을 찢어 황태자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이런 빌어먹을! 도망치는 게 미치는 거냐! 이 재미없는 새끼!”

황태자의 윽박에.

“좀 기다려 이 어린놈아. 왜 이리 참을성이 없어? 죽여 준다잖아.”

율리우스가 내장과 피를 주르륵 쏟아내면서도 짜릿하게 웃었다.

그래, 굳이 놈들에게 힘을 아낄 필요는 없지.

여기 두 놈만 죽이면 제국에 날 막아설 녀석은 없다.

지금 몰려온 놈들까지 모두 죽이면 어차피 제국은 그의 것.

망설일 필요 없다.

지금껏 혹시 몰라 기다렸으나 놈들의 전력은 이게 전부.

그렇다면 이제 모든 힘을 펼쳐 죽이기만 하면 그뿐.

악마의 몸이 산화하듯 흩어져 암염 속으로 녹아들었고.

곧 검은 벼락이 사방으로 내달렸다.

처음 암염이 세상을 잡아먹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

지금 율리우는 암뢰를 통해 암염이 빚어 낸 어둠마저 절망마저 모두 먹어 치우려는 속셈.

뻗어 나간 까만 전뢰가 암염을 옭아맸고 이어.

공간이 된 율리우스가 눈을 떴다.

“후우우- 그래 이게 전능이라는 것인가.”

느껴진다.

동남부의 모든 것이, 더 나아가 제국이, 더 나아가 세상이.

그가 이룰 수 있는 위대한 파멸과 다룰 수 있는 힘이!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이 오만이 아닌 자신이 된 순간.

아니, 그 스스로가 파멸이 되었구나.

그리 실감했다.

이후 열차 앞 개미와 같은 꼴인 황태자와 공작을 보며.

“자, 누가 먼저 죽는지 볼까.”

비웃음을 가득 띄워 올리려는 찰나.

“왜 덩치가 커지면 때릴 곳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항상 잊는 걸까.”

“뭐?”

“너 말이야, 너. 너무 커서 벨 곳이 많아졌잖냐. 생각이 있냐 없냐.”

“무슨 개소리야. 난 어둠이며 파멸이다. 벨 수 있을 리가 없지. 백작의 검을 믿는 게냐? 녀석은 내 끝자락만 벨 수 있을 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냐? 정말로? 진실로?”

황태자의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가 불안함을 자극했고.

“넌 이미 내 손아귀 안이야.”

불안을 현실로 당겨오듯 손을 움켜쥐자.

끄아아악-!

파멸이, 악마가, 타락한 영웅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어둠이 어둠을 잡아먹는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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