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인간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후.
드러난 풍경은 처참했다.
영지 중 멀쩡한 곳 하나 없었고 동남부 전역에 악마들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런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여기! 여기 생존자 발견!”
어떻게든 숨어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는 점.
하나 누구도 기쁘게 웃지 못하였다.
“으아아앙-.”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입, 작은 몸을 덮고 있는 비쩍 마른 어미의 몸.
이미 숨을 거둔 상태.
그러나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만은 죽은 몸에 짙게 남았는지 건장한 병사가 팔을 풀어내기 쉽지 않았다.
자리에 남은 어미의 사체를 향해 팔을 버둥거리며 터뜨리는 울음에.
병사들 또한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진창 속에서도 아이만은 지키려는 부모들이 많았고.
영문도 모르고 비극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눈물을 삼키는 동남부.
그들의 눈엔 상황이 끝났다는 기쁨보단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다.
“우, 우리는 어찌 되는 겁니까.”
“아직 하달받은 것이 없소.”
“반역이 일어났단 것도 악마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전하께서 판단하실 일이오. 기다리시오.”
동남부와 남부 중간에 멈춰 선 수정 장성.
새까맣게 썩은 살을 도려내려는 듯 명확한 구분.
반역에 악마까지 출몰한 땅에 어떤 처벌이 떨어질지 흉흉한 소문만이 스산한 바람과 더불어 휘돌았다.
심지어 몇몇은.
“신성 왕국에 우리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설마 그러시진 않을 거야. 그래도 제국의 땅이니까.”
“반역에 악마까지 출몰한 땅이야. 누가 이런 땅에 살고 싶어 하겠어.”
제국에서 동남부를 버릴 것이란 최악의 가정을 내뱉었고.
“…….”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아이들이 음울한 눈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려 애썼다.
무너진 공작성에선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는 상황.
황태자 전하께선 율리우스 공작가를 무너뜨린 후 요 며칠간 칩거하신 상태.
결정권자가 침묵하니 흉흉한 소문만이 떠돌 뿐.
심지어 그를 따라 공작성 공략에 나섰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사람들을 구하는 이들은 새로 도착한 동북부와 남부 지원군.
그들 또한 사정을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전하께선 그럴 분이 아니니 좀 기다려 봐.”
“괜히 불안 부추기지 말고. 아이들이 힘겨워하잖나.”
황태자 전하께서 베푸신 지난 은혜를 알기에 불안을 억누를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여전히 쨍한 햇볕이 거뭇거뭇하게 물든 땅을 비추었고.
간혹 살아남은 이들의 울음이 들리는 와중.
이제 그것마저도 뜸해졌다.
구할 이들 대부분을 구했고 죽은 이들은 이미 수습을 마쳤다.
깊은 절망만이 눅눅하게 내려앉은 땅.
먼 경계선에 등장한 한 무리.
하얀 사제복과 갑옷을 차려입은 자들이 동남부를 앞에 두고선 발걸음을 멈추었고.
커다란 종을 매달아 둔 마차가 등장.
사제들이 기도를 시작하자.
땡- 땡- 땡-
황금빛 종이 신성한 울음을 울었다.
사제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신성력을 품고선 동남부를 울리기 시작.
어둑한 땅을 정화했다.
하나 이는 단순히 악의를 벗겨 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고.
악의가 닿았던 모든 걸 사르듯 푸르른 불이 번져 나가려는 순간.
쿠르르릉-
땅이 거세게 진동했다.
악마의 잔여물을 정화하기 위해 신께 기도하던 사제들의 몸이 흔들리며 일순간 기도가 끊겼고.
“다들 주변을 방어해라!”
“성기사! 성력을 끌어올리도록!”
성기사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막 저들의 신성력으로 신물과 사제들을 보호하려던 때.
한 사제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곤.
“저, 저건-.”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들어 가리켰다.
지금 그들을 향하여 몰려오는 것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곧 같은 방향을 본 모두가 입을 벌렸고.
성기사들을 이끄는 자마저 든 검을 내렸다.
“오, 신이시여.”
절로 그들의 주인을 찾게 되는 광경.
신성과 기적을 바라는 그들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
햇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며 달려오는 해일.
땅 위에 해일이라니 누가 들으면 비웃으리라.
하지만 막상 목격한 이들은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앙심이 깊은 이들이라도.
“후퇴! 후퇴하라!”
지평선을 잡아먹듯 몰려오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그야말로 자연재해.
그들이 급히 신성력을 거두고 달리기 시작했고.
동남부를 벗어나기 직전.
덜그럭거리던 마차가 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풀썩 꺼졌다.
“아, 안 돼!”
“위험합니다!”
“성물을 잃을 순 없어!”
“사제님!”
“당장 도와!”
믿음의 발로일까, 아니면 교단에서 내려 준 성물을 잃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나온 행동일까.
몇 사제가 남아 무거운 종을 붙잡았고.
그 와중에도 시시각각 그들을 향해 몰려오는 높다란 파도.
아래에 깔린 모든 것을 짓누르며 달려오는 광경에 그들이 두 죽음을 예견했다.
“신이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자리에 주저앉아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신의 기적을 바랄 뿐.
“이런 제기랄!”
결국 성기사 하나가 욕설을 뇌까리며 도망가려는 순간.
일개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눈앞까지 들이닥쳤고.
쿠웅-!
거대한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섰다.
“아, 아아, 아아아-.”
종을 꼭 끌어안은 사제가 코앞까지 다다른 투명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말간 표면에 비친 얼굴, 턱이 덜덜 떨리는 꼴이 우스꽝스러웠으나 그마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수정…….”
“…벽이잖아.”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의 정체를 알고 놀랐을 뿐.
그러니까 그들이 해일인 줄 착각했던 파도는 투명한 수정.
심지어 드높은 장성의 형태.
이러한 건축물을 지은 것만으로도 놀라울진대.
이걸 어떻게 옮겼는지도 의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악마의 조화란 말인가? 악마의 조화라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
그들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날 때.
불쑥 튀어나온 한 사내의 얼굴.
깨끗한 백금발과 진홍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자신들은 악으로 가득한 땅을 정화하기 위해 왔으며, 이 장성이 길을 막았으니 좀 치워 달라고 부탁하기도 전.
* * *
“뭐야. 이것들은. 왜 길을 막고 서 있어?”
황태자의 뚱한 목소리가 울렸다.
안 그래도 율리우스와 싸움 후유증을 치유하고 암염의 제어를 공고히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황태자뿐만 아니라 사일러스 공작, 발자크 백작, 안드레, 솔, 알프레드까지 모두.
치열한 전투였고 얻은 깨달음이 컸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다만 그동안 동남부에 깃든 불안감을 알았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건만.
웬 어정쩡한 것들이 와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단 말인가.
“우리는 신성 왕국에서 파견 나온 신성 사제들과 성기사요! 악에 물든 땅을 정화하러 왔으니 길을 비키시오!”
그때까지 종을 안고 있던 사제가 목소리를 높여 길을 터 줄 것을 요구했다.
“안에 악의가 가득하니 신의 뜻을 따라 땅을 정화하고 악에 먹힌 사람들을 정화할 것이오!”
저들의 신성력으로 동남부를 정화하겠단 고결한 뜻.
당연히 길을 터 줄 것을 예상했다.
한번 악의에 물든 땅은 오랜 시간 의미를 잃는 법이니.
경작과 소출이 불가능하고 더 나아가 온갖 독물과 소악마들이 판을 치는 죽음의 땅으로 탈바꿈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거대한 땅이 그리되었다면 말할 것도 없지.
소악마 정도가 아닌 본격적인 악마들이 준동할 것이 분명.
“선발대로 도착한 정화 사제들이니 길을 열어 준다면 우리가 악한 땅을 정화하겠소! 이후 신성 왕국의 군대를 파견하여 땅을 깨끗이 할 것을 약속드리오!”
신성 왕국이 직접 나서 정화할 것을 표명했다.
아무리 믿음을 버린 오만한 제국이라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그들에겐 이 거대한 땅을 정화할 만한 사제들이 없으니.
제국의 콧대를 누를 좋은 기회.
차라리 놈들이 이 땅을 포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었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황태자를 올려다보았다.
자, 길을 비켜라. 신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테니.
그러나 그들의 앞에 떨어진 건 신의 뜻이 아닌.
카악 퉤-
걸쭉한 가래침.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종 위에 떨어진 침이 걸쭉하게 늘어졌고.
“밀어. 죽어도 괜찮은 놈들이다.”
황태자가 멈추었던 장성을 다시 밀라 명령.
“잠깐! 잠깐! 지금 신성 왕국의 도움을-.”
성기사가 검을 부여잡으며 분노를 표하자.
“지랄, 도움은. 이리 같은 새끼들이 진짜 악마가 득시글거릴 때는 숨어 있다가 이제 나타난 이유가 뭐겠어? 땅덩어리 좀 빼앗아 보겠단 심보지.”
황태자가 역으로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었다.
“개소리하지 말고 꺼져. 가서 전해. 탐하다 죽기 싫으면 얼씬도 말라고. 말 전하기 위해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막 장성 안으로 들어가려던 황태자가.
“아니지? 말 전하는 데 한 명이면 충분하잖아?”
새빨간 눈을 빛내며 돌아섰고.
떨어지는 진득한 살기에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겁을 집어먹을 때.
쿠르릉.
장성이 움직이기 시작.
“공작! 잠깐, 저놈들 죽이고 가야겠다!”
“안 됩니다! 이미 출발했어요.”
“그럼 깔아뭉개 죽여 버려!”
“방금은 말 전한다면서요!”
황태자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길 잠깐.
“그럼 하나만 살릴 정도로 움직여. 그러면 되겠네.”
잔혹한 미소로 해답을 내놓았다.
그의 말을 따르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장성이 땅을 깔아뭉개며 전진하기 시작.
“으, 으와아악!”
“신이시여!”
“이대로는 사제들은 다 죽겠어!”
“종, 종은?”
“으으- 난, 난 못 옮겨!”
방금까지만 해도 신의 뜻을 따르리라며 중얼대던 그들이 일제히 살기 위해 달렸다.
성물이라며 귀하게 여기던 종마저 내팽개친 채.
그런 그들의 뒤에서.
“그래, 달려라. 죽어서 신 만나는 것보다 살아서 회개하는 게 백 배 나은 법이지. 달려! 이 이리 같은 새끼들아! 공작, 속도를 높여라! 이러다가 다 살아 도망치겠어!”
황태자의 광기 어린 조롱이 이어졌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신의 자비를 바라는 외침이 시끄럽게 떠돌았다.
* * *
동남부 너머 정화를 빌미로 제국의 땅을 탐하려던 신성 왕국의 본대.
“그렇단 말이지.”
앞서 성물을 잃고 살아 돌아온 이들의 보고에 유독 무표정한 사내가 고개를 주억이곤.
“알겠다.”
손에 든 불을 높이 쌓인 장작더미에 툭 던져 넣었다.
기름을 타고 번지는 화염.
이윽고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그러나 자리에 선 자들 중 누구도 동정심을 표하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투명한 눈으로 선발대의 죽음을 바라볼 뿐.
“성물을 잃고 돌아온 너희가 악의에 놀아나지 않았음을 증명해라. 신께서 너희를 어여삐 여기시면 살아 있을 것이고. 악에 홀렸다면 그대로 재가 되리라.”
이유는 간단했다.
성물을 잃고 악에 물든 땅에서 도망친 죄.
기껏 황태자의 패악질을 피해 달아난 그들에게 떨어진 형벌.
그들이 주절주절 살기 위해 말을 늘어놨으나 화형식을 피할 길은 없었고.
보고가 끝남과 동시에 이루어진 믿음의 심판.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부서지려는 정신을 붙잡곤 기도를 중얼거렸고.
성력으로 몸을 지켜 내려 애썼으나.
발아래 가득 쌓인 장작과 끼얹은 기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꺼질 줄 몰랐다.
“아악! 신이시여! 신성이시여!”
“회개합니다! 살려 주소서! 살리소서! 죄를 용서하소서!”
“자비를 자비르으을-!”
이내 그들의 기도가 비명이 되어 갔고.
곧 하나둘씩 누린내를 풍겨가며 타들어 갔다.
모든 사제와 성기사들이 죽어 버린 뒤.
심판을 다한 장작이 무너져내리며 거센 불티를 자아냈을 뿐.
“죄인들의 죄를 심판하소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무너지는 육신이 이를 바라보는 지휘관의 말간 눈동자에 광기가 되어 맺혔다.
불에 타죽은 이상 그들은 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이들.
신성 왕국의 일원이 아닌 죄인.
늘어선 이들 중 누구 하나, 죄책감 하나 동정심 하나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 섬찟했다.
이미 새까만 재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서 눈을 뗀 지휘관이 투명하게 햇빛을 반사해 내는 장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들리는 듯했다.
안에서 피어나는 악의와 고통에 찬 비명이.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드디어 거대한 악의가 준동하는가.
“돌아간다. 성국에 보고를 올리고 신의 뜻을 확인하리라.”
곧 뿔나팔 소리가 울리길 몇 번, 진지를 거둔 신성 왕국의 병력들이 동남부 끝자락에서 후퇴.
자리엔 거뭇한 화형대만이 타닥거리며 잔불을 튀겨 대었고.
“그자의 말이 정말 맞았군. 성전, 성전이 몰려오고 있어.”
물러나는 병사들의 눈에 말간 광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 * *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광신도, 맹신이 물러갑니다. 전운과 성전을 싹을 틔우려 합니다]
물러나는 병력에게서 떠오른 운명들.
썩 즐거운 운명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좋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머리통을 깨야 할 놈들이 알아서 들이밀어 준다는데 싫어할 리가.
이젠 꽁무니만 보이는 신성 왕국의 병력들 너머, 장성에 올라서서 보는 지평선 위로 떠 오르는 운명들이 흥미로웠다.
호시탐탐 제국의 살을 노리는 이빨들.
아마 이번 내분으로 제국의 전력이 약화되었다 판단.
최대한 이득을 챙길 심산인 듯했다.
물론.
“공작! 장성은?”
“문제없습니다! 모두 완전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군세가 몰아쳐도?”
“그럼요. 제가 다 몰아내겠습니다.”
“좋아, 흡족하군.”
살은커녕 피 한 방울 내줄 생각도 없었다.
공작과 동북부 병력이 장성 위에 버티고 있는 한.
“백작은? 당분간 동부를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원 병력과 기사단을 배치하여 방어를 돕겠습니다.”
수성전의 달인인 북부 기사들과 병력들이 존재하는 한 놈들이 이 너머 발을 들이미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거기에.
“알렉세이는 어디 있지? 블러디도 불러와.”
북벽에 거주하는 드워프 대표와 남부 숲에 거주하는 엘프들의 대표를 불렀다.
“무슨 일이오? 방금까지 장성 보수작업 중이었소만.”
“어쩐 일이야. 전하? 우리 할 일이 아직 남았나?”
알렉세이와 블러디가 정 반대편에서 올라오다.
서로를 발견하곤 흠칫 몸을 굳혔다.
눈에 피어나는 경계와 공격성.
원래 드워프와 엘프는 뿌리 깊은 앙숙.
둘의 눈이 서로를 바쁘게 탐색하기 시작했고.
“이봐 난쟁이, 반쪽 귀쟁이.”
개의치 않고선 둘을 불러 시선을 모았다.
그리곤.
“저기 펼쳐진 들판을 보아라.”
과거엔 권력이 가득했던 동남부, 지금은 폐허에 가까운 들판을 가리켰다.
그들이 뒤돌아 드넓게 펼쳐진 풍경을 보는 사이.
한 손은 블러디의 어깨에 한 손은 알렉세이의 어깨에 얹곤.
“생각해 본 적 있나? 남부의 엘프, 북부의 드워프, 중부의 인간이 모여 있는 꿈같은 장소를.”
“……!”
뱉어 낸 이상에 둘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풍경.
“드워프의 위대한 장인 정신이 쌓아 올린 건물들과, 그사이 엘프들이 키워 낸 나무들이 어우러진 터전. 세상의 모든 진귀한 것들이 모여드는 자유로운 도시.”
이어지는 말에 얼굴이 몽롱하게 풀렸다.
“반쪽짜리 하프 엘프도, 고집 센 장인도, 덩치 누일 곳 없는 거인도 삶을 갈망하는 고아들도 각자의 삶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데.”
꿈결과 같은 세상을 그려내는 말에 빠져들길 잠깐.
“엘프들이랑?”
“드워프들이랑?”
알렉세이와 블러디가 서로의 존재에 껄끄러운 기색을 드러내기에.
“이봐들, 내가 말을 부드럽게 한다 해서 제안이 아님을 알지?”
꾸우욱- 어깨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슬쩍 미소 지었고.
“아, 아, 알지- 알다마다. 재수 없는 엘프들이라도 좋은 구석이 하나쯤은 있겠지. 하, 하하, 하하하하-.”
“그럼, 전하의 말을 거부할 리가. 작달막한 드워프들의 거친 손도 무언가를 길러 낼 수 있게 알려 주면 될 일이지.”
둘도 덩달아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이후 드워프의 장인 정신과 엘프의 생명력으로 세운 도시를 다스릴 이를 따로 세우면 될 일.
“그럼 맡기지.”
그렇게 그들에게 일을 떠맡긴 후.
마침 머리 위에 뜬 플라잉 해머호를 보곤.
“수도에 가야겠다. 마지막 심장을 얻으러.”
잠들어 있다는 마지막 불꽃 자색염(紫色炎)을 얻으러 수도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