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있다 없으니까
오랜 친우였던 율리우스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직후.
하늘이 걷히고도 한동안 침묵했다.
마음속 휘도는 불꽃들이 울컥울컥 슬픔을 뱉어 냈다.
무어라 해야 할까.
내 슬픔은 아니지만 내 슬픔이구나.
분명 암염은 제대로 심장에 자리를 잡았고 하늘은 맑아졌건만.
눈앞이 캄캄했다.
문득 옆을 돌아보자.
“…….”
건국제의 쓸쓸한 옆얼굴이 보였다.
짙게 떨어지는 콧날을 따라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친우가 사라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중.
곧 더불어.
“카이론.”
평이한 갈색 머리와 반대로 화려한 미모와 그것보다 더 화려한 보석을 치렁치렁 자랑하는 마법사 하나가 등장했다.
지금껏 침묵하던 카이론이 음울한 눈을 들어.
“데미. 오랜만이군.”
“그러게 천 년… 만인가?”
또 다른 친우를 맞이했다.
마주 보는 둘의 눈동자에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무어라 해야 할까.
반가움을 표하기엔 자리가 좋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이 맞았노라고, 율리우스가 죽지 않고 남아 제국을 흐트러뜨렸노라고 말하기도 뭣한 상황.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길 잠시.
“X발새끼. 뭣 하러 이런 짓을.”
데미가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미련한 선택을 한 친우를 욕으로나마 추모하는 것.
그래, 슬퍼할 수 없다면.
“미련한 놈, 제 분수를 알았어야지. 그 정도 실력으로 무슨 제국이야 제국이.”
차라리 욕이라도 하자.
그리 합의를 본 두 영웅이 죽어 버린 친우를 향해 한동안 저주를 퍼부어 댔다.
그러면서도 데미는 흐르는 눈물을 연이어 닦아 내었고.
카이론은 붉어진 눈시울로 턱을 짓씹어가며 눈물을 참았다.
“차라리 죽지. 차라리 일찍 죽어 버리지.”
“우리가 죽여 버릴 걸 그랬어.”
“그래, 우리 손으로 죽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예상은 했지만 결국 무의미했지. 우린 그럴 만큼 모질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죽이겠어. 어떻게 녀석에게 찾아가 그런 짓을 했겠어.”
“…그렇지.”
결국 데미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건국제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이 함께한 세월이 길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날 구해 준 게 몇 번이었는데. 어떻게 그래.”
“나 또한 죽을 뻔했을 때 녀석 덕을 많이 봤지.”
“기억나? 거인 수백을 참하고 네가 쓰러졌던 날.”
“등에 업어선 도망쳤지 아마.”
“응, 어떻게든 널 살리겠다고 피를 흘려가며 싸웠어. 녀석은.”
“알아. 잘 알아.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네가 미친 짓을 하면 내가 따라갔고 율리- 아니 그 녀석이 뒷수습을 했어.”
“…그게 지쳤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조금은 같이할걸. 말을 들을걸.”
지독한 싸움을 함께했다.
죽을 뻔한 적이 몇 번이며 서로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게 몇 번이었던가.
같이 피를 뿌려 이루어 낸 제국이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건국제가 이번엔 데미에게 물었다.
“너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나.”
나머지 친우 하나의 마음은 멀쩡했는지.
그의 물음에 데미가 살포시 웃고는.
“나쁜 새끼 그걸 이제야 물어보니?”
무심한 사내를 타박했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
“그냥 섭섭한 모든 것.”
“섭섭하면 끝나는 거야? 이야, 사는 거 참 쉽다.”
“…미안.”
“그니까 뭐가 미안하냐고. 넌 항상 그래. 그냥 미안하다면 다 끝나는 줄 알지. 남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미안.”
“그러니까 뭐가 미안하냐고. 구체적으로 말해 봐.”
“…X발.”
건국제의 항복 선언에 데미가 크게 웃어젖혔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큭큭 웃는 그녀.
웃는지 우는지 모르겠는 얼굴에.
“그래서 율리우스 녀석도 미쳐 버린 걸까. 내가 너무 눈치가 없어서?”
건국제가 우울하게 되물었다.
자신에게서 죄를 찾는 얼굴.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카이론.”
“응? 데미. 그런 걸까?”
“지랄하지 마.”
단칼에 건국제의 궁상을 잘라 냈다.
그리곤 찬찬히 다가와 건국제의 얼굴을 감싸 쥐곤.
“그저 너무 오래 살아서 미쳤던 것뿐이야. 너도, 나도 그게 두려워 죽음을 택했잖니. 그러니 자책하지 마. 이미 죽어 버린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
“언제나 현명하네.”
“그래, 이렇게 현명한 내가 널 좋아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진심이야?”
“진심이었지 이 멍청아.”
“몰라 줘서 미안.”
“그래, 사과는 그렇게 하는 거야.”
서로 재회를 속삭였다.
이미 지나가 버린 청춘을 후회해서 어쩔까.
그들이 나름의 재회와 후회를 씹어 삼켰을 즈음.
“저, 계속 이야기 나누실 거면 우리는 좀 앉아 쉬고요.”
황태자가 공작을 부축한 채 뚱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공작은 이미 기진맥진하여 서 있을 기력도 없는 상황.
그 또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심상치 않았다.
휴식이 간절했다.
그만큼 힘겨웠던 싸움.
그제야.
“어머, 우리 귀중한 후손들!”
데미가 황태자와 사일러스 공작을 발견하곤 그들을 급히 바닥에 앉혔다.
“피 좀 봐 괜찮니? 얼굴 좀 봐. 눈동자가 풀렸네. 얘 정신 차려! 얘!”
데미가 다급히 사일러스 공작의 정신줄을 붙잡으려는 사이.
* * *
“…저렇게 해줄까?”
“뭐요. 뺨 때리고 싶다구요?”
“이놈아 그게 그 뜻이겠냐?”
“전 섭섭한 거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눈치 보지 말고요. 안 어울립니다.”
“넌 나보다 더 심한 거 같다. 원한을 참 많이 샀겠어.”
“생각보다 없을걸요? 다 죽여서.”
스스럼없는 대답에 비로소 건국제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왜요, 싫어요. 억지로 감동 주려 하지 마세요.”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매번.”
“에이씨… 하지 말라니까요.”
“나 편하려고 하는 말이니까 들어라.”
“와, 그건 좀 치사하네요.”
“뭐 한두 번이냐? 꼰대의 특기지 넌 안 되고 난 돼. 그러니까 들어.”
“끄응, 그래요 한번 해보십쇼. 그 사과인지 뭔지.”
“…하기 싫어졌다. 왜인지 재수 없어서 하기 싫어졌어.”
“뭡니까. 싱겁게.”
소탈한 표정으로 하려던 말을 이었다.
“처음의 영광이 영원할 줄 알았다. 우리의 노고가 이상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지.”
“…….”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아니더구나. 그저 인간이 영원하지 못한 것뿐이었어.”
“저 드높은 산맥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그래, 그 말대로였다. 때로 너의 여정을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살아 있었다면, 내가 살아 있었다면 제국이 이리 망가지지 않았으리라. 많이 후회했고 솔직히, 분노했다.”
제국을 세운 이의 후회와 분노.
후손으로서 무어라 답해야 할까.
아니, 건국제는 후손들의 미련함을 보며 어떤 답을 찾았을까.
침묵으로 기다리자.
“그런데 그것마저도 착각임을 알았다. 내가 있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아니, 내가 미쳤을 수도 있지. 내가 세운 제국을 내 손으로 부쉈을지도.”
“그랬을지도 모르죠. 방금 증거를 보았으니까요.”
“그 오랜 세월을 이 작은 머리로 견뎌 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 우린 인간이지 드래곤이 아니니까.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영생에 대해.”
“오만이겠죠.”
“오만?”
“자신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단 오만, 영원하리란 오만, 깎이지 않으리라는 오만.”
“말대로다. 작은 오만들이 쌓여 멸망이 되었고, 넌 날 대신하여 오만과 멸망을 태워 버렸다. 놀라운 일이야. 놀랍고 기특하며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방금은 안 하신다더니.”
“그래도 해야겠어. 고생 많았다. 후손아. 네가 제국을 구했고 제국의 영광을 되살렸다. 네가 이루었으니 네 것이며 더 나아가 이제부터 이루어질 제국의 역사는 너의 역사다.”
“나의 역사… 내가 이룬 제국이라. 기분 좋은 말이네요.”
“좋은 만큼 무겁고 고통스러울 거다.”
“그 정돈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요.”
내 장담에 건국제가 빙긋 미소짓고는.
“넌 그 오만을 품을 생각이냐.”
“영생 말입니까.”
“뭐 얼추 비슷한 것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입에 담았다.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고는 있지만 작게 끼어 있는 불안과 걱정.
영생,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만일 영생이 내게 허락된다면? 영원히 진짜 황제로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다면?
꿈꾸었던 모든 걸 이루고 더 나아가 그 영광을 계속하여 누릴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흐려질 정도의 욕심과 쾌감이 피어올랐다.
생각해 보라.
지속될 제국의 번영을, 퇴색되지 않을 영광을.
내가 통치하는 한 이전처럼 구더기 같은 이들이 제국을 좀먹을 리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자리를 지킬 것이니까.
완벽하며 완전한 통치.
거기까지 생각하다.
“푸후, 고민할 가치도 없군요.”
거센 한숨을 내쉬곤.
“영생 좋죠. 하지만 황제는 아닐 겁니다.”
“황제는 아니다?”
“네, 황제로선 글쎄요 한 80살? 길어 봤자 100살? 그 정도면 충분히 고생했을 테니 떠나렵니다. 나머지는 후손들이 할 일이니까요.”
“어디로?”
“멀리요. 바다도 보고, 산맥 너머 땅끝에도 가 보고 나도 삶을 좀 즐겨야죠.”
“그다음엔.”
“불을 나누어 담아야죠. 대륙 곳곳에.”
“황제는 왜 그만두는데.”
“으으, 언제까지 거기 앉아서 지루한 국정이나 보란 말입니까? 왜 미치겠어요. 그러니까 미치는 겁니다.”
“그럼 떠나고 나서는.”
“음 한 200~300살 정도에 죽지 않을까요? 너무 오래 산다는 말은 마세요. 저 공작만 해도 벌써 150이 넘은 나이니까요.”
“굳이 떠난 김에 영생을 누리지 않고.”
“지겹잖아요. 그 정도면 대충 다 볼 거 보고 해 볼 거 해 봤을 텐데. 무슨 재미가 남았겠어요. 아, 대신 황궁에서 보석을 많이 챙겨야겠네요. 그래야 재밌게 놀지.”
내 당당한 발언에 건국제가 입을 떡 벌렸고.
공작을 돌보던 데미까지 놀란 얼굴로.
“와- 너 내 취향인데?”
취향 운운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러시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건국제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곤.
“그래, 내 후손이라면 이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역시! 율리우스 이놈아 봤냐? 내 후손이 이리 멋진 놈이다!”
등을 팡팡 두드려댔다.
그렇게 얼마나 웃어댔을까.
“좋아, 그거면 충분하지.”
혼자 무언가를 납득하곤.
“마지막 불이 담긴 장소를 알려 주마. 거긴 네가 찾을 수 없어. 다른 불과 다르게 일부러 숨겨 놨거든.”
마지막 일곱 번째 심장의 존재를 언급.
“이름하여 자색염, 일곱 불 중 마지막이다.”
“자색염. 설마 일곱 불 모두를 모으면 영생이 가능합니까?”
“그래, 영생뿐이냐. 인간이란 종을 넘어 절대적인 무언가에 가까워진다.”
“왜 굳이 홀로 아는 곳에 숨겨 놓은 겁니까? 후손 불편하게.”
“녀석이 어떤 녀석일 줄 알고? 너처럼 옳게 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 만일 최악의 폭군이 이를 모두 얻으면 어떻게 하겠냐.”
“그건 맞네요.”
“하여 물어본 것이다. 지켜본 것이다. 네가 어떤 자인지.”
“그래서 결과는요?”
“나 못지않게 훌륭하게 미쳤으니 허락할 만하다!”
그의 선명한 외침에 데미가 미친놈,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저 꼰대가 꼰대 했네 여기며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그래서 어디 있습니까? 자색염은.”
건국제가 어디 있는지 대답해 주기 전.
“잠깐! 그거 말하면 우리 여기 못 있잖아. 잠깐만 기다려.”
데미가 다급히 건국제의 입을 막고선.
“얘, 너 신체 재구성을 이루었구나. 그런데 마나 회로와 서클 구성이 너무 헐거워. 어떻게 내가 손 좀 봐줄까?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지금 쓰러진 녀석들 모두 손봐 주면 되겠네!”
의념을 넓게 확장해 나를 비롯하여 사일러스 공작, 발자크 백작과 안드레 등 모두를 휘감았고.
“아프더라도 좀 참으렴. 아파야 성장하는 법이란다.”
우드드득! 온몸의 마나 통로와 심장 주변에 휘도는 고리들을 꺾어 버렸다.
* * *
잠시 떠오른 고통에 몸을 떨었다.
사실 공작과 전투로 인한 후유증이 아닌 데미 하르델, 그 망할 대마법사가 선사한 새로운 마나 통로들과 써클 조형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일단 고통이야 당연한 것이었고 원래 신체를 따라 형성되었던 통로와 각 원형을 이루고 있던 고리의 변화가 극심했다.
뭐, 인체의 통로를 따를 뿐인 마나는 비효율적이라나.
실제로 그녀가 억지로 꺾고 자르고 이어붙여 준 마나 통로는 이전 핏줄을 따라 흐르던 마나와 달리 흘렀다.
더 곳곳에, 더 넓게, 그러면서도 더 빠르게.
한번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불을 뿜어내는 속도도 거두어들이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심지어 속사 마법이 장기인 달런 같은 경우 너무 빨라진 마나 구성 속도를 못 따라잡아 한동안 일부러 캐스팅 속도를 늦췄을 정도.
“전하 도착하였나이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는 강철성 비고.
이전 브레이커를 주웠던 거대한 블록들이 떠다니는 공터.
황태자가 된 이상 웬만한 곳은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심처, 황제에게만 허락된 마지막 공간.
“옥새함이 준비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소서.”
평소 제국의 옥새를 보관하는 함에 출입하고자 했다.
본래라면 폐하의 윤허가 필요하겠으나 지난 옥새를 쥔 후 모든 권한이 열린 상태.
어찌 보면 황제가 보내는 신뢰의 증표.
하늘에 둥둥 떠다니던 거대한 블록들이 소리 없이 뭉쳐 들었고.
이윽고 하나의 정사각형을 이루자.
가장 위, 새로운 블록 하나가 솟아올랐다.
비고를 완전히 조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아공간.
“준비가 끝났습니다.”
비고 관리자의 정중한 안내를 따라 들어선 내부.
정리된 잡동사니들 사이를 지나쳤다.
전에는 여기 있는 하나하나가 모두 보물이나 다름없었는데, 더 좋은 것을 하도 얻다 보니 익숙해져 버린 모양.
“참, 비고 중 황실 재산을 보관해 놓은 장소도 있었지?”
“네 맞습니다.”
“그중 보석과 금화가 얼마나 있나?”
“금화 창고만 10개가 넘으며 보석 또한 세 개가 넘습니다.”
“모두 황실의 것이렷다? 황제와 황손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그렇사옵니다.”
흐흐흐-
만족스런 대답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황제 은퇴 후 챙겨 갈 여행 자금은 충분하겠구나.
그리 음흉한 생각을 숨기지 않으며 도착한 옥새함.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기다리도록.”
“네, 전하.”
알프레드와 담당자를 자리에 두고선 옥새함으로 발을 옮겼다.
새하얀 공간.
너무나도 하얘서 벽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터벅, 터벅.
이질적인 재질을 지르밟는 소리가 귓가에 낯설었다.
건국제의 말에 따르면 분명 이곳에 마지막 일곱 번째, 자색염이 있다 했다.
옥새를 받치는 받침대에 두른 천, 그것이 바로 자색염이 담겨 있는 비밀 장소.
본래는 황제가 된 이후 품은 불에 담긴 건국제의 의념의 허락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는 불.
허락을 받았으니 눈에 보일 터.
그런데.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눈앞 어떤 운명도, 불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불을 얻을 때면 울렸던 심장의 고동도 잠잠한 상태.
설마 데미 하르델, 그 망할 마법사가 고리를 건드려서일까?
갑작스레 피어난 불안감에 가슴팍을 쾅쾅 내려쳤다.
혹시라도 심장이 고쳐질까 해서.
그러나 묵묵부답.
아무래도 이상하여 불을 피워 올리려 할 때.
“어? 뭐야? 왜 없어?”
건국제의 어이없다는 목소리와 동시에.
[대상에 깃들어 있는 운명을 확인합니다. 시간의 운명을 읽습니다. 과거 운명 중 일곱 번째 불 자색염의 흔적을 확인합니다]
지금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운명입니다]
“야 이 망할 선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