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87화 (187/200)

187화 제단과 제물

그러니까.

“뭐야? 왜 이렇게 쉬워?”

생각보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처음이었다.

수많은 싸움을 겪고 위기를 헤쳐 나오는 중에 이리 순탄했던 것은.

북부에선 전대 백작과 노병들을 잃을 정도로 혈투를 펼쳤고.

서부에선 흑해를 헤치고 나아가며 끝없이 열쇠를 찾아다녔다.

그뿐인가, 남부에선 오만한 엘프들과 더불어 악마 군단장까지 상대해야 했으며.

동남부에선 과거 영웅이자 초인인 율리우스를 맞이해 목숨을 내던지고 싸웠다.

등에 진 운명의 무게와 앞에 깔린 험난한 길이 항상 힘겨웠건만.

이번 마도 왕국을 비롯하여 각 왕국의 깃든 멸망의 운명은 참으로 쉬이 길을 내주었다.

앞을 가로막는 악마들을 모조리 부수었고 쏟아지는 악의를 태웠다.

간혹 고위 악마들이 보였으나 강대하지 않았다.

재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여물지 않은 악마를 부수는 것은 손아귀에 쥔 사과를 으깨는 것보다 쉬웠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렇게 마도 왕국 수도를 눈앞에 둔 상황.

왕국 연합 곳곳에서 이어지는 승전보 소식에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결국 안드레가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평민,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까 무엇이요?”

“지금 이 싸움, 아니 전쟁. 지금껏 이런 전쟁은 처음이야. 너무나도 쉬워. 그래도 제국을 상대로 오랜 시간을 버텼던 왕국들인데 이리 쉬이 무너진단 말이야?”

“그거야 악마들과 6황자가 망쳐 놓은 탓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선 그 빈틈을 찌르신 거구요. 그러니 쉽게 느껴질 수밖에요.”

안드레의 대답에 순간 놀랐다.

“너 누구야.”

“평민 안드레입니다.”

“이렇게 똑똑할 리가 없는데? 너 그런 이미지 아니었잖아.”

“전하께 저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어- 주제 모르고 주접떠는 놈?”

“너무 하십니다.”

“사과는 하지 않으마.”

“…원하지도 않습니다요.”

“그래,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결과가 6황자와 악마가 제 잔꾀에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거지?”

“제 생각은요.”

퍽 타당한 의견.

본래라면 6황자 특유의 간교한 이간질과 협잡질로 왕국의 수뇌부를 장악.

대악마가 발호함과 동시에 왕국 수뇌부들부터 악마로 대체하여 연합을 잡아먹는 계획이었겠지.

그렇게 왕국을 규합, 악마들이 대륙 동부를 초토화하고 나면 무르익은 군단을 이끌어 제국을 침략했을 테고.

전생에 이루어졌던 과정.

그때 제국은 이를 알아챌 눈도, 막아 낼 힘도 없었기에 무력하게 당했을 뿐.

이번엔 달랐다.

더는 무기력하지 않았다.

놈들이 결집하기도 전에 첫 단추였던 신성 왕국부터 뒤틀어 놓았다.

[대상, 장소에 어린 운명을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를 얻었습니다. 전체를 새로운 운명에 투자합니다!]

[새로운 운명들이 사방으로 뻗쳐 나갑니다. 곳곳에 도사리던 죽음과 악의를 포식합니다]

특히 악룡 페르페투아는 놈들이 대륙 동부를 장악하는 데 중요한 열쇠.

하나 직접 개입하여 선봉을 앗아 갔고 더 나아가 신성 왕국이 전쟁에 참여.

악마들을 태워 죽이는 데 특별난 재능을 보이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참전한 덕에 오히려 불리해진 셈

심지어 왕국을 점령한 악마들이 결속을 시작하기도 전에.

목줄을 틀어쥐고선 제국군이 밀어닥쳤으니.

본디 갈라지고 젖은 둑이 쉬이 무너지는 법.

아직 여물지 못한 놈들이 속절없이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더군다나 제국군의 위상 또한 이전과 다르지 않은가.

북부는 다신 그러한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해졌고, 남부엔 인간과 엘프 연합 병단이 창설되었으며, 동부엔 수정 장벽이 버티고 있다.

더불어 장인들과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비행선이 하늘을 점령했고, 서부 등대지기와 하란의 능력으로 즉각적 병력 수송이 가능.

로이스 가문과 남부 상인 연합의 조력으로 보급까지 든든하니.

각 군단을 이끄는 것은 발자크 백작과 사일러스 공작.

지난 동남부 율리우스 공작가에서 싸움 이후 깨달음을 얻어 진일보한 그들의 실력은 대륙을 울릴 정도.

“꽤나 많은 것을 이뤘군. 지금까지.”

본래 작은 노력들은, 작은 변화들은 당장 티가 나지 않는 법.

그 변화들이 모여든 지금에서야 제국의 새로운 힘을 실감했다.

[드넓은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당신이 키운 선한 운명들이 점수를 머금고 점점 거대해집니다. 모여든 운명들이 하나의 시대 흐름을 형성합니다]

[새로운 거대 운명 생명이 대륙을 흐릅니다. 당신이 투자하는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가 거대 운명의 크기를 불립니다!]

뒤바꾼 운명들이 맞물려 힘을 발휘하기 시작.

각기 떨어져 있을 땐 그저 생존과 삶에 불과하던 운명들이 모여들어 줄기를 이루었고.

상생과 화합을 원류 삼아 거대한 흐름을 이루었다.

생명.

멸망과는 반대되는 이름.

멸망의 반대는 존속 따위가 아니다.

존속은 그저 구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연장에 불과할 뿐.

새로운 탄생이야말로 멸망의 대척점.

지난 시간 동안 이루어 낸 성과가 싹을 틔운 시점.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감격일까, 불신일까.

복잡미묘한 무언가.

지난 생과 이번 생 내내 고생스러웠다.

결과를 마주한 뒤에야 안도가 깃드는 기분.

이젠 멸망을,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력하게 황좌에 앉아 멸망에 휩쓸리던 제국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 속에서 치미는 감정을 곱씹던 중에.

“아니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쓸데없는 감상을 뒤로 치워 버렸다.

생명이 싹튼 것이지 아직 꽃피운 것은 아니었다.

이젠 바로 앞까지 다가온 마도 왕국의 수도.

검은 먹구름, 검은 비, 검은 번개, 온통 검은색 일색인 풍경.

드높은 마탑과 악의를 뭉글뭉글 뿜어내는 왕성까지.

아직 멸망의 운명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다.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서야 진정 생명을 이루었다 할 터.

아직은 안도하고 안주할 때가 아니다.

까드득-

오히려 이를 사려 물고 살기를 뿜어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마지막 순간이 도래하고 있으니.

“레이건-! 이 야비한 새끼야! 당장 악마와 같이 내려와! 목을 잘라 줄 테니!”

남은 적을 향해 더욱 거센 분노와 원한을 불태워야지.

대악마를 죽이기 위해 뜨거운 불과 단단한 철을 다듬을 시간.

마탑 위에서 제국군을 내려다보고 있던 6황자 레이건이 허둥지둥 마탑 아래로 도망가는 것을 보았고.

“전군-!”

뒤돌아 여기까지 함께한 이들을 둘러보았다.

검은 악의가 몰아치는 배경 속에서도 단단하며 고결하게 빛나는 눈동자.

악마들의 위협에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검을 휘둘러 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전우들이 아닌가.

대악마를 앞에 두고 있는 지금, 미소가 피어남은 어째서일까.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기꺼워서, 같이 이룰 생명이 기꺼워서, 여기까지 용케 따라와 줬다는 게 고마워서겠지.

긴 연설은 필요 없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 * *

황태자의 말에 병사들이 덩달아 웃었다.

이상했다.

쏟아지는 악의와 내리치는 번개가 삼엄한 전쟁터.

어쩌면 지금이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한데 어째서 웃음이 나오는가.

지금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전하 덕분이리라.

그가 있기에 여기까지 왔다.

악마들을 상대하며 보았다.

선봉에 선 황태자 전하의 위대한 무력을.

그가 우리를 이끄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이 마지막 전쟁이 끝나면 휴식을 즐기도록 하자고.”

휴식이라는 너무나도 달콤한 말.

“악의도, 비열함도, 미련한 탐욕도, 죽어가는 이들의 비통함도 없는… 풍족한 휴식을.”

분명 대악마가 도사리는 성 앞.

하나 모두가 황태자의 말에 마침내 맞이할 승리와 번영을 꿈꿨다.

넘실거리는 황금빛 밀밭, 뛰어노는 아이들, 추수하는 아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푸르른 하늘 아래 이어지는 평온.

꿈을 꾸는 자들은 배울 것이며 삶을 원하는 자는 이루리라.

황태자가 그리는 제국의 미래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꿈꾸는 미래가 일치했다.

이를 위해서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마지막 순간만이 남았구나.

치미는 감격을 못 이기고 기사들과 병사들이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승리하기도 전에 울리는 승리의 함성.

황태자와 제국군의 얼굴에 피어난 광기와 미소가 똑 닮았다.

그들을 바라보던 황태자가 뒤돌아 대악마가 도사리는 멸망의 땅을 노려보며.

“모두 따르라.”

삼엄한 불을 피워올렸다.

여섯 가지 색이 이지러지며 어둠을 살라 먹었다.

태우고 폭발하고 비추고 살리고 지지고 물들인다.

황태자가 육색 빛줄기가 되어 쏘아져 나갔고.

그를 따라 제국군이 내달렸다.

몰려드는 악마와 악의가 무참히 부서졌다.

황태자가 검과 망치, 활을 휘두를 때마다 거센 불이 사위를 휩쓸었고.

백면을 착용한 기사들이 줄기줄기 살벌한 검기를 뿌려대며 길을 넓혔다.

그 뒤로 정예병들이 창과 도끼를 휘두르며 진입.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는 마법들이 수도를 타격하며 군세를 비호.

“놀랍군…….”

“저게 제국의 힘-.”

“지금껏 악마를 이겨 온 이유인가.”

제국군의 활약을 보며 신성 기사단을 비롯하여 신성 왕국의 사제들이 감탄을 토했다.

볼 때마다 놀라웠다.

악마를 향해 짓쳐 드는 황태자와 그를 따르는 제국군에겐 두려움이란 게 없는 듯했다.

그저 광기와 살기로 악마들을 찢어발기는 모습이 신성을 믿는 그들마저도 소름 돋게 만들 정도.

평소 악의를 미워하기로 유명한 신성 왕국의 사제들이지만 제국의 황태자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

악의에 나름 강점을 갖춘 그들이었으나 화력에서도 제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사들의 수준, 마법사들의 수준이 달랐다.

특히 황실 마법사들을 이끄는 달런이란 자의 연사가 놀라웠고.

가면을 쓴 솔이 펼치는 그림자 마법은 이제 일가를 이룰 지경.

안드레를 비롯한 청익은 어떠한가.

백작이 없는 자리를 완벽히 메울 정도.

폭풍과 더불어 백색 번개를 뿜어내는 통에 눈이 아렸다.

만일 정말 성전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결과는 명백했다.

신성 왕국 전체가 앞의 악마들처럼 갈가리 찢겼으리라.

그들이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낸 뒤.

제국군을 따라 악의를 정화하며 전진.

마탑까지 진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아악!”

첫 시작은 누군가의 비명.

눅진한 비명을 찢으며 등장한 건 황태자.

그가 붉은 눈을 굴려 마탑 안을 살폈다.

악의가 뚝뚝 흐르는, 마치 악마의 아가리 속 같은 풍경에.

“어디 숨었냐.”

오히려 짙게 미소 짓곤.

오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별다른 무력시위가 필요 없었다.

그저 자신이 품은 불을 뿜어내기만 하면 될 뿐.

좁은 공간 속 번지는 불이 업화가 되어 타올랐다.

도망갈 곳 없이 타오르는 악마들의 비명이 무기력했다.

간혹 숨어 그를 공격하려던 마법사들이 있었으나.

“보좌하겠습니다.”

알프레드가 뿜어낸 사철이 이미 촘촘하게 사위를 잠식한 뒤.

놈들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시체가 되어 널브러졌다.

지난 공작성에서 활약을 못 한 게 아쉬웠는지 유독 살벌한 기세로 적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고.

황태자가 제 불로 융단을 깔아 둔 길 위를 걸었다.

도착한 마탑의 최상층.

뜨거운 불길을 헤치며 나아가자.

탁 트이는 시야.

처음 6황자 레이건이 서 있던 장소.

그리고 처음과 달리.

“미친 새끼-!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겁에 질린 채 꽥꽥 비명을 질러 대는 놈.

도망치려다 실패하여 다시 내몰린 자리.

황태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떤 위협도 없었으나 뿜어내는 불과 살기만으로도 혼절하기 직전.

아슬아슬 끝에 걸쳐 차라리 떨어져 죽는 게 나을지 고민하는 형을 바라보던 황태자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구는 거냐.”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살고 싶으니까!”

“살고 싶어서? 단순히 그 때문에 이리 제국을 배신하고 악마에 붙어먹었단 말이냐.”

“넌 모른다! 넌 몰라! 영광을 잃은 황자가 어찌 되는지! 그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한지! 황제가 아닌 삶은 의미 없는 삶이다!”

“의미 없는 삶이라. 그래, 우린 그런 존재지. 황제가 아니면 의미 없는 생명. 그래도 다들 한 가지 신념은 품었다. 각자 위하는 무엇인가가 있었지. 네놈은 대체 뭘 위해 그리 치열하고 비열하게 살았냐.”

“나는- 나는.”

쏟아지는 검은 빗줄기를 훔쳐 내며 덜덜 떨던 레이건이.

“그냥 욕심이 났을 뿐이다.”

* * *

탐욕을 입에 올렸다.

그래, 원래 그런 놈이었지 이놈은.

황족 중에서도 유독 탐욕이 크고 비열했던 놈.

“그래서 모든 걸 부수고자 한 거냐? 지난번엔 제국을 좀먹어 무너뜨리고 이번엔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아 가며?”

“뭐? 지난번이라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놈이 내 말을 이해 못 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레이건의 얼굴에 파인 주름을 타고 흐른 검은 빗물이 균열처럼 퍼졌다.

전생, 황태자도 황제도 되지 못한 놈은 집요하게 제국의 멸망을 추구했다.

“네가 갖지 못할 바엔 부수겠다는 생각이군.”

“그래, 차라리 멸망하는 걸 보겠다.”

“빌어먹을 욕심이야.”

“빌어먹을 욕심이지. 네놈은 다른가? 네놈은 고결하며 모든 자를 위한다는 위선이라도 내뱉으며 날 심판할 생각이냐.”

이미 죽을 각오를 마쳤는지 놈의 동공이 번들거리며 광기를 뿜어냈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다. 어차피 죽을 놈, 굳이 떠들어 대서 뭐하게.”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네가 훔쳐 간 불. 건국제의 마지막 심장은 어디 있나.”

“당연한 걸 묻는군. 누구에게 주었다 생각해.”

“그래, 답이 되었다. 이제.”

끝내자.

담담한 고별을 끝으로 놈의 목을 잘라 내었다.

기우뚱 떠오른 머리가 높은 탑 아래로 추락하였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진창에 쓰러져 원망과 함께 피를 뿜어냈다.

자색염은 담겨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악마의 앞에 가야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겠구나.

마탑에서 바로 보이는 왕성으로 쏘아져 나가려 하기 전.

휘돌리던 심장을 멈추곤.

아래를 굽어보았다.

분명 승리의 운명들이 연이어 떠오르는 풍경.

하나 이상한 점 하나.

죽어 가는 악마들의 운명과 흩어지는 악의가 향하는 방향.

분명 운명을 포식해야 하건만 놈들의 운명이 향하는 곳은 바알이 있는 왕성.

더불어 수도 전역을 굽어보길 잠시.

고개를 갸웃 꺾었다.

“전하?”

알프레드의 물음에.

“이봐 알프레드, 지금 전황의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아?”

그의 의견을 구했다.

옆에 서서 전선을 바라보던 그 또한.

“이상하군요. 무언가, 말하긴 어렵지만 이상합니다.”

인상을 찌푸리며 안대로 가린 눈을 드러냈다.

드워프들의 기술이 집약된 의안이 기묘한 문자들을 뽐내며 전황을 분석했고.

“일부러 죽음으로 내모는 듯한 모양새- 곳곳에 고인 웅덩이들이 무언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알 수는 없으나 무언가 거대한 그림 하나가 맞추어지고 있단 의견을 내었다.

마지막.

“중심은 마탑……!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수도 전역에 이루어진 거대한 그림의 중심축이 지금 내가 선 곳임을 파악.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장소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대악마가 악의로 가리웠던 운명의 실체들이 드러납니다! 말라붙어 있던 대악마의 일부가 새로운 그릇에 깃듭니다]

놈이 안배해 놓은 수가 해일처럼 일어났다.

지금껏 편히 길을 뚫을 수 있던 것도, 왕국에서 전해지던 승리 소식도 모두 지금을 위한 안배.

레이건에게 마지막 심장을 받아 기다린 거다.

앞선 모든 심장을 모은 자를.

결국 이를 모두 모아야만 초월로 나아가니.

단번에 빼앗으면 될 일이라, 그리 생각했겠지.

하여 길을 열어 끌어들인 셈.

부하들조차 제물에 불과했고 지금껏 우리가 거두었던 승리는 이 순간을 위한 제사.

대악마다운 오만과 비열함.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바알의 조각이 마탑을 타올랐고.

같은 핏줄 6황자의 피를 머금고 생동하기 시작.

“전하!”

알프레드의 다급한 외침 속.

머리가 잘린 6황자의 몸이 우뚝 일어서더니.

스물스물 잘린 머리가 새로 생겨났다.

형용할 길 없이 검은 악의와 비열한 사특함이 뭉쳐 피어난 얼굴.

까만 악의가 열리자 번뜩.

눈이 있어야 할 자리 보랏빛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대악마 바알이 당신의 운명과 불을 훔치려 합니다. 운명 제단과 제물이 당신의 운명을 침범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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