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88화 (188/200)

188화 대악마 바알

무어라 형용해야 할까.

인간의 생김새를 나누는 말들. 잘생겼다, 못생겼다, 어벙하게 생겼다, 귀티가 흐른다 등등.

세상 어떤 단어도 지금 마탑 꼭대기에 나타난 악마의 얼굴을 묘사할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악의와 비열함, 죽음을 형상화한 생김새.

그중에서도 눈을 대신하여 타오르는 으스스한 보라색 불꽃.

비록 몸은 6황자의 것이었으나 이미 그건 6황자가 아닌.

“바알.”

대악마 바알.

수도 전역, 죽은 악마들의 악의와 육신을 제물 삼아 제 능력을 회복해 가는 놈.

이윽고 눈을 뜬 대악마가.

흐으으읍- 푸후우-

커다란 숨을 내쉬었다.

새로 얻은 육신으로 들이켜는 공기가 기분 좋은 것일까.

작게 어깨를 떨곤.

-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했군.

여전히 고고한 자태로 백금발을 휘날리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대악마란 이름은 쉬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악마들 또한 투쟁을 거친다.

세월과 군세에 상관없이 강한 자가 이기고 모든 걸 빼앗는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치 않다.

비열함이 미덕이며 배신은 훈장.

매 순간이 함정인 싸움을 수없이 거쳐 왔고, 마침내 이겨 놈들의 육신을 씹어 넘길 때마다 힘을 얻었다.

포식, 대악마 바알은 적의 살과 피를 삼켜 제 능력을 강화하는 악마.

과거 한 군단 전체를 잡아먹은 적도 있다지.

대악마라 불리기까지 그가 잡아먹은 적이 수도 없다.

지금껏 그의 식탐과 포식을 벗어난 이는 없다.

아니, 단 한 명.

마왕이라 불린 단 한 명의 인간을 빼놓곤.

고작 인간 하나였을 뿐인데, 지금껏 그 많은 악마를 씹어 삼켜 왔는데.

놈은 어째서인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억난다.

가면을 써 어떠한 표정도 읽을 수 없었던 자.

자신에게 수없이 패퇴하면서도 끝까지 날을 갈았던, 결국 목숨까지 바쳐 뜻을 이루어 낸 아름다울 정도의 집착.

소멸하는 육신과 더불어 놈이 남겼던 말.

“어디 한번 견뎌 봐라.”

놈의 말대로 굴욕의 시간이었다.

인간들의 발밑, 들리지 않을 저주를 외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왕이라 불린 자의 마법은 법칙을 넘어 기적에 가까웠고, 실로 대악마의 존재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마왕의 이름과 함께.

놈이 노린 게 바로 이것.

세월 속에 잊혀져 세상에 흔적도 남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전 에스키모가 그러했듯 세상에 남은 이름이 그들의 개념을 형성하는 법이니.

이름을 잃으면, 두려움을 잊으면 존재가 희석되리라.

그리 기대했으나.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우린 마왕의 후손이며, 대악마 바알의 대적자다!”

마왕을 기억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점.

그의 후손들이 마왕의 뜻을 기려 마도 왕국을 세웠다.

마왕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대악마의 이름 또한 더욱 흉험해졌다.

그렇게 단단한 결계 속에서 오랜 굴욕을 감내했고.

상상을 덧붙여 점점 거대해지고 악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들으며 만족했다.

때가 오리라, 분명 때는 오리라.

그리 견디길 얼마였을까.

마왕이 목숨을 대가로 펼친 결계에 작은 틈 하나가 벌어졌다.

미련한 후손들이 마구 건물을 부수고 세우며 생긴 결과.

차근히 준비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렸는데 이제 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마왕의 피가 섞인 이들을 몰아 죽이고 멀리 쫓아냈다.

한 명 한 명 욕망을 지닌 이들을 포섭했고 점차 자리를 쌓아 나갔다.

언젠가 자신이 다시 통치할 땅을.

그것도 모르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을 비웃어가며.

그렇게 마지막, 유일하게 남은 마왕의 핏줄마저 먼 제국으로 보내 버린 뒤.

부활을 준비하던 때.

건국제라는 놈의 친우를 마주했다.

그가 품었던 신비가 그리 달콤하다지?

율리우스라는 변절한 영웅을 포섭해 신비의 위치를 알아냈다.

다시는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으리란 의지.

각 불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였고, 결계를 깨고 나가는 순간 이를 모두 삼키리라 계획할 때.

의외의 요소가 하나 끼어들었다.

지금 앞에 선 황태자.

저 미친 인간이 제 힘이 될 불을 모조리 잡아먹어 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무너져 내리던 제국을 되살렸고 동남부, 자신이 심어 둔 가장 큰 재앙을 무너뜨렸다.

결계 안에서 준비한 비장의 수.

율리우스의 패배까진 예상치 못했다.

영웅의 타락과 제국의 절망을 토대로 마왕이 친 결계를 부수려 했건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악마는 오히려 웃었다.

위기는 기회다.

- 놈이 마지막 불을 얻으러 온 순간이 대악마 바알이 세상에 다시 군림하는 때이니라.

본래 세웠던 모든 계획을 수정했다.

하여 6황자에게 율리우스에게 들었던 대로 마지막 불을 훔쳐 오라 시켰고.

일부러 악마들의 힘을 약화해 자식들의 죽음을 방관했다.

그리곤 허물어지는 그들의 육신을 마도 왕국 수도에 그러모았다.

포식을 위해,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마침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황태자가 승리에 취해 제 형제의 목을 베어 낸 순간.

때가 도래했다.

지금껏 모아 둔 악마들을 함빡 삼켜 힘을 더했고.

주변을 감싼 결계를 무너뜨리기 시작.

오랜 세월 배치한 건물들과 공터의 모양을 따라 고인 악의의 모양새는 하나의 진.

악마를 소환하는 진.

갈라진 틈새, 쏟아지는 육신들을 먹어 치우며 진을 활성화.

바알의 일부가 세상에 나오는 데 성공했다.

탑을 타올라 6황자의 몸을 얻으니.

- 결국 모든 걸 얻는 자가 초월에 이르는 법이지.

대악마를 넘어 악신을 꿈꾸는 바알이 쩌억 입을 벌려 웃었다.

여섯 개의 불이든 하나의 불이든 결국 일곱 모두를 얻어야 초월에 이르는 싸움.

지금은 6황자의 피와 육신으로 마지막 불을 다룰 뿐이지만 황태자의 육신을 빼앗기만 한다면 일곱 불 모두를 다룰 수 있으리라.

대악마가 황태자의 육신을 잡아먹기 위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곤 달려들었다.

막 터질 살과 피의 달큰한 맛을 기대했으나.

까드드득-!

정작 들려온 건 단단한 무언갈 씹는 소리.

놈의 턱이 무언가에 걸려 나아가지 못했고.

바알이 억지로 황태자의 어깨를 찢으려 하기 전.

황태자의 검이 먼저 악마의 몸통을 갈라 먹었다.

흩어지는 살덩이와 내장.

연이어 떨어지는 검격, 팔이 날아가고 다리가 부서지고 가슴팍이 갈라졌다.

육신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초.

잠깐 사이 황태자가 6황자의 몸을 산산조각내곤.

“헛소리하지 마라. 누구 마음대로 군림을 해.”

퍼퍼퍼펑!

손바닥을 펼쳐 적염과 초적염을 뿜어냈다.

이지러지는 불과 안에 어리는 폭발이 거셌고.

곧 6황자의 육신을 넘어, 마탑을 넘어, 수도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불과 폭발이 이어졌다.

“맙소사.”

아래에서 악마를 베어 내던 신성 왕국의 병사들이 문득 밀려드는 열기에 하늘을 바라보았고.

그를 따라 고개를 든 사제들이.

“신성이시여.”

저도 모르게 신성을 찾았다.

하늘에 가득하던 먹구름 대신 자리한 붉은 불구름과 폭발.

그렇게 이어지던 황태자의 적염과 초적염이 일순간 뚝 멈추었다.

마탑 최상층 한복판, 황태자의 손 앞.

갈가리 찢어진 6황자의 육신이 얼기설기 이어지기 시작.

기능 따윈 생각지 않는지 누덕누덕 제 몸을 기운 바알이.

- 이것인가.

손가락이 제멋대로 붙은 손을 휘둘러 허공을 떠도는 적염 한 자락을 낚아채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불이 춤추길 잠시.

타타탁, 타타탁.

안에 담긴 초적염의 잔폭발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울렸다.

놈이 입을 쩌억 벌려 손에 넣은 불씨를 삼켜 버렸고.

동공이 있어야 할 자리, 보랏빛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자.

새까만 입가에서 황태자가 뿜어냈던 것과 똑 닮은 불이 새어 나왔다.

으적거리는 모양새가 그가 뿜어낸 불을 음미라도 하는 모양.

그렇게 불티를 씹어 삼킨 바알이 작게 트림을 하곤.

황태자를 향해 손을 뻗어.

적염과 초적염을 뿜어냈다.

방금 황태자가 뿜어냈던 것과 비슷한 규모.

이에 맞서 황태자가 한 줄기 빛으로 화했고.

놈의 몸을 브레이커로 베어 내는 순간.

카드드득-!

방금은 쉬이 잘렸던 놈의 몸이 이번엔 브레이커의 비죽비죽한 검날에도 상하지 않았다.

분명했다.

이건 강철의 신비.

베어 먹지 못했음에도 신비를 훔쳐 갔는가.

튀어 오르는 불꽃과 폭발 사이.

바알의 몸을 벤 황태자가 지나간 자리.

악마가 다시금 입을 벌려 황태자가 남긴 꼬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이번엔 입안에 광염을 물고선 우물거렸고.

황태자가 기다려 줄 생각 없다는 듯 다시 빛줄기로 화하여 놈에게로 들이닥쳤다.

검이 아니라면 망치.

진생철퇴로 놈을 후리는 순간.

악마의 육신이 흐린 빛으로 화하여 자리를 피했다.

황태자의 옆, 나타난 바알이 날카롭게 벼린 악의를 휘둘렀고.

황금색 빛줄기 두 개가 치열하게 하늘 위를 내달렸다.

처음엔 분명 황태자가 두른 광염이 우세했다.

하나 몇 번 부딪히고 나서는.

- 이렇게 쓰는 건가? 그리 어렵지 않군.

어느새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둘.

정확히 눈을 맞추곤 내뱉는 바알의 비아냥에 황태자가 하늘 위로 높이 떠 오르더니.

“그럼 이것도 훔쳐 봐라.”

진생철퇴를 높이 들어 대악마를 향해 내리쳤다.

터지는 푸른 번개가 붉은 불과 폭발을 찢어발기며 확산.

두 팔을 들어 진생철퇴를 막아 낸 바알의 발이 마탑에 움푹 박혀 들었다.

이어지는 망치질.

꽈릉- 꽈르릉, 꽈르르릉!

한 번 한 번 더해질 때마다 청염이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고.

퍼지는 번개가 검붉은 하늘을 푸르게 물들였다.

위에서 대체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계속 쳐대는 망치 덕에 기껏 강철의 신비를 담은 바알의 팔이 뭉그러졌고.

허리까지 바닥에 박힌 뒤에야.

우르르르- 마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황태자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같은 불을 품었단 사실은 개의치 않는 모양.

어떤 흔들림도 없이 그저 적을 죽이겠단 일념 하나.

바알로서도 조금은 놀랐다.

보통 이 정도까지 자신의 능력을 빼앗기면 놀라거나 두려워하기 마련이건만.

놈에겐 그런 감정 자체가 잘려나간 듯했다.

오히려 황태자가 품은 불과 휘두르는 무기가 더욱 강한 힘을 뿜어냈다.

대악마 바알도 따라가기 힘겨울 만큼.

- 제법이구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겠어.

그러나 놈은 육신이 부서지는 와중에도 끝없이 입을 놀렸다.

그럴 만도 했다.

바알이 황태자의 능력과 더불어 그의 핏방울을 입에 머금은 순간.

- 네놈은 그저 견뎠구나. 얼마나 견뎠지? 얼마나 많은 운명과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냐.

“닥쳐라.”

- 놀랍구나, 넌, 넌, 지금과는 다른 패배를 맞이했어.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너는- 너는-.

미래를 살았고 과거를 살고 있구나.

황태자가 겪어 온 전생의 향취를 느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신비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놈은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했고 이를 철저히 바꾸었다.

오지 않은 미래에선 자신의 승리가 엿보였다.

대악마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진실.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해석해 보려 애쓰는 동안.

“야, 악마.”

- 호오 드디어 진실을 이야기해 줄 생각이 생겼나.

“너 뭐 하냐?”

- 뭐?

“뭐 하냐고. 이 악마 새끼야-.”

까드득, 황태자가 이를 악물며 광기와 살기를 폭사했다.

몸을 감싸고 도는 오싹오싹한 감각.

죽음과 위협이 도사리는 자리.

무너지는 탑 사이에 뒤섞여 벌이는 죽음의 무도.

“이 귀한 싸움을 이따위로 날릴 생각이냐?”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대악마라는 놈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다른 곳에 정신을 파는 것에.

감히 자신을 앞두고 부리는 오만에!

“미래를 살았든 과거를 살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 개같은 악마 새끼야. 현재에 집중해라. 난 널 죽이고 말 테니까.”

황태자의 호언장담에 바알이 비로소 씨익 불쾌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저 말이 맞다.

미래는 뒤틀렸고 과거는 지나갔다.

마주한 현재만이 유일하다.

지금 앞에 있는 황태자의 심장을 씹어 먹으면 자신의 승리.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비로소 악마가 싸움에 집중하기로 했고.

놈의 손끝에서 악의가 부풀더니.

콰르릉-

황태자와 같은 모양의 번개를 뿜어냈다.

무너지던 탑 안에서부터 발생한 강렬한 번개와 충격파에, 간신히 유지되던 형태가 부스러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편 안에서 부딪치는 황태자와 악마.

번지는 불과 모든 걸 날려 버리는 폭발, 잔해 사이를 뛰노는 빛과 귀를 찢을 듯 울어 대는 번개.

악마가 제 육신을 벼려 황태자를 베었고.

황태자 또한 무기를 휘둘러 놈을 죽이려 했다.

방어는 도외시한 싸움.

그 끝, 6황자의 몸을 빌린 바알의 머리통이 다시 한번 날아갔고.

황태자의 뱃가죽 또한 크게 갈라졌다.

하나 악의가 끝없으니 다시금 몸을 회복하는 건 쉬웠고.

황태자 또한 녹염을 몸에 두르자 몸에 새겨졌던 상처가 금방 아물었다.

- 크크큭, 좋다. 좋구나. 보면 볼수록 놀라운 신비야.

바알이 몸을 흔들거리며 만족스럽게 웃더니.

- 그것 또한 내놔라!

황태자의 녹염마저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 * *

“전하!”

알프레드.

어릴 적부터 황태자, 아니 망나니였던 아르한을 모셔 온 이.

미워했다.

그의 패악함과 잔혹함이 날로 더해 가기에.

싫어했다.

혹여라도 그가 황제가 될까 하여.

언젠간 죽이리라 마음먹었고 언제고 죽이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뀌었다.

여전히 미쳤고 패악스러웠으나, 그는 진정 모두를 위했고 모두를 살리려 했다.

안다. 죄악이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다만 어려운 길을 걷는 황태자께서 이겨 내길 바랐다.

지난 율리우스 성, 타락한 영웅과 목숨을 건 싸움.

무력한 자신의 꼴이 한심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도움이 되고자 했다.

드워프에게 받은 눈.

현상의 구조를 파악하는 기술이 담긴 의안.

지난 공작성 데미 하르델의 환상을 만났던 때에.

“어머, 재미있는 눈깔을 갖고 있구나. 흐음. 어디 보자. 너에겐 조금 다른 걸 주마.”

알프레드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을 받았다.

키이잉-

마나가 치열하게 번지길 잠시, 까만색 일색이었던 의안에 투명한 동공이 열렸고.

곧 사철과 감각을 펼쳐 사방을 훑었다.

어디냐 이 빌어먹을 진의 약점은.

중심은 분명 마탑이었으나 마탑이 부서져도 멀쩡한 것이 다른 곳에 심어 놓은 모양.

전하의 불을 따라 하는 악마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면 최대한 놈을 방해하리라.

알프레드가 전력을 다하여 마나를 의안에 그러모았고.

과다한 마나 집약에 얼굴에 불거진 혈관에 이어, 압력을 못 이긴 의안 아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나 멈출 수 없다.

전하를 위해서!

제국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수도 곳곳을 훑던 알프레드의 눈이 문득 위를 향했다.

정확히는 마도 왕국 왕성의 가장 꼭대기.

과거 마왕의 상징이라 불리던 육각별 모양을 한 상징.

저것이구나, 약점이!

거기까지 파악한 알프레드가 막 사철을 밟고 뛰어오르려 할 때.

푸욱-

섬찟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확인한 자리엔.

날카로운 가시가 닿지 못한 채 다른 이의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따라가는 시선.

싫지만 멈출 수 없다.

부정하고 싶지만.

“전하… 어찌하여…….”

부정할 수 없다.

황태자가 자신을 대신하여 악마에게 찔렸단 사실을.

정확히 그의 가슴을 관통한 가시.

섬기는 자를 위해 섬김받는 자가 행한 희생.

가슴팍을 빠져나가는 가시와 쓰러지는 황태자의 몸이 느리게 비쳤다.

이윽고 알프레드가 넘어지려는 전하의 몸을 받쳐 들었다.

과거 깊은 협곡에서 기절한 채로 그에게 기댔던 때처럼.

알프레드가 손에 번지는 황태자의 붉은 피를 보곤.

“전하! 저 같은 자를 위해!”

황태자의 안위를 걱정할 때.

“신성이시여-.”

황태자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고.

곧 그가 손가락을 들어 바알을 가리키며.

“저 개X끼를 심판하소서.”

심판을 입에 올리자.

그의 손가락을 따라 검은 악의, 불은 불, 푸른 번개가 가득한 하늘을 찢으며.

창백한 성화(聖火)가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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