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89화 (189/200)

189화 대악마 바알 (2)

제3성기사단장 거렌, 그는 지금껏 많은 심판과 신성의 기적을 보아 왔다.

과거 부단장이던 시절, 성기사단의 기조에 불만을 품고 대들었다가 근신당했던 인물.

어린아이들까지 심판대에 올리겠단 말에 분개하여 단원들을 직접 심판했다.

그 또한 조만간 장작더미에 올라 불경을 저지른 죄를 치러야 했겠으나.

그전에 그를 심판할 자들 모두가 사라져 버렸고.

기사단장 직위를 맡게 되었다.

그때 보았던 불을 기억한다.

비록 신성백화(神聖白火)는 아니었으나 붉은 불은 충분히 고결했고 아름다웠다.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거센 불 속에서도 한 점 뜨겁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아아, 신성이시여.”

신성을 마주했다.

하얀빛으로 다가온 신성께선 그에게 새로운 믿음과 성력을 내려주셨고.

지금껏 악마를 상대로 한 점 두려움 없이 맞설 용기까지 주시니.

새로 태어난 기분.

언제나 우리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우하여 주시는 신성의 은혜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악마를 베어 내는 와중에도 몸을 감싼 신성은 오염을 허락하지 않는다.

보아라, 이것이 신성을 따르는 이들의 심판.

악마들아, 이빨을 들이밀고 손톱을 뻗어 보아라.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성벽처럼 굳건히!

“적진을 무너뜨려라!”

성기사단 거렌이 거대한 모닝스타를 양손으로 잡은 채 마구 휘돌며 전진.

타오르는 성력에 감싸인 2m에 달하는 철퇴가 휘돌며 주변 악마들을 분쇄했다.

이것이 바로 신성의 위엄이다!

그가 주변 널브러진 악마들의 시체를 지르밟으며 다시금 신성에 대한 찬양을 외치려는 순간.

하늘 가득 차오르는 창백한 무언가를 보곤.

“신성-이시여?”

찬양이 의문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금 하늘 가득 빛나는 무언가가 설마 신성이란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콰르르르-!

신성이 불기둥이 되어 수도 어딘가로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도 환한 빛에 사위가 잠식당했고.

치열한 전투가 하얗게 물들었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감격했다.

이렇게 위대한 신성은 처음이다!

악마가 나타나고 세상이 위기에 빠진 지금.

진정 신성께서 응답하시는가!

잠시간 맹렬히 타올랐던 백화가 사라진 뒤.

다시금 쏟아지는 어둠.

아니 너무나 밝은 빛에 마비된 시야가 검게 물든 상태.

얼마 안 가 물감이 퍼지듯 찬찬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으으윽,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다들 아린 눈꺼풀을 비비는 중에도 3기사단장 거렌만은 눈을 부릅뜬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중.

지금 일어나는 기적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로.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한 그를 보며.

‘신성께서도… 기뻐하시진 않을 거 같은데.’

부관 수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보이긴 하십니까?”

“아직.”

“것봐요. 눈을 감아야 보이죠.”

“깜짝, 하지 않는다……!”

“전투는요.”

“신성께서 보우하시리라.”

“미친…….”

거렌이란 성기사는 항상 그랬다.

자신의 믿음엔 미련할 만큼 엄격하나, 남을 돌볼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대심판이라 불리는 대사건을 피해 갔겠지.

수녀가 성력으로 그의 눈을 회복시켜 주곤.

“괜찮아요? 보여요?”

“으음 이제 좀 보이는군. 역시 신성의 돌보심이다.”

“아니, 제가 치료했는데요.”

“그 힘 또한 신성께서 주신 것 아닌가.”

“그건… 맞죠.”

“것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난.”

“미친놈…….”

“점점 욕이 늘어난다?”

“…아뇨. 아니에요.”

홀로 투덜거리던 부관 수녀가 문득 보이는 풍경에 경악을 토했다.

“저기-!”

그녀가 가리킨 자리.

내리친 신성이 형성한 거대한 구덩이 앞.

한 노신사와 쓰러진 백금발의 사내.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가자! 가서 치료를!”

거렌이 부관을 이끌고 달렸다.

“자, 잠깐- 저, 저분은-.”

황태자의 정체를 아는 수녀가 언질을 주려 했으나.

이미 각오한 거렌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고.

도착한 자리.

“전하! 전하아! 정신, 정신을 차리십시오!”

알프레드가 황태자를 붙잡고선 서글픈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가슴을 관통한 자리에서 피가 끝없이 튀어나왔다.

포션을 부어 보아도, 손으로 막아도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심지어 황태자가 지닌 녹염으로도.

항상 고결하기만 했던 그의 입에 올라오는 피거품이 낯설었다.

평소 자제력과 평상심을 잃는 법이 없던 알프레드였건만 지금 황태자의 상처 앞에선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안 돼, 안 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횡설수설 손을 떨던 노집사가 이윽고 수녀와 성기사를 발견하곤.

“여기! 여기 환자의 치료를! 어서!”

다급히 둘을 불렀다.

그리고 그런 알프레드를 보며.

“알프레드…….”

황태자가 전에 없던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

홀로 많은 짐을 감당해 온 전하를 아린 눈으로 바라보는 집사와 그런 그의 얼굴을 향해 피 묻은 손을 뻗는 황태자.

왜 몰랐을까, 숨을 헐떡이는 전하의 얼굴은 어렸다.

항상 넓은 등만을 보며 쫓아오느라 몰랐다.

전하는 어렸구나.

이런 어린 나이에 제국과 대륙을 위해 험한 싸움을 감당하고 계셨구나.

어찌, 어찌 홀로 이 모든 짐을 감당해 오셨단 말인가.

알프레드가 찡하니 울리는 슬픔을 담아 황태자의 손을 바라보았고.

점차 알프레드의 얼굴로 향한 황태자의 손이.

찰싹-!

찰진 소리를 내며 노집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정확한 손목 스냅으로 아픔은 없지만 소리를 키운 솜씨 좋은 타격.

“……?”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황태자가 놀란 알프레드를 향해 뚱한 목소리를 뱉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냐. 그러니까 호들갑 좀 떨지 마. 가슴 좀 뚫렸다고 누가 죽나?”

“보통은… 죽죠.”

“넌 뭐야.”

“신성 왕국의 수녀인데요.”

“흥, 감히 날 보통 것들과 비교하는 거냐? 무엄하구나. 이 정도 상처론 죽지 않아.”

“그것보단 피가 계속 나는 걸요.”

수녀가 신성력으로 황태자의 가슴에 난 구멍을 메꾸려 하기 전.

“소용없어. 치워.”

매몰차게 그녀의 손을 밀어낸 그가 손에 붉은 불을 일으키더니.

치이이익-.

제 가슴을 지져 버렸다.

분명 고통이 심할 텐데도 미간을 살짝 찌푸릴 뿐.

이윽고.

“알프레드, 이봐.”

아직까지 멍한 알프레드의 얼굴에 다시 손을 가져다 대려 하자.

“정신 차렸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한 대 정도로는-.”

“차렸습니다.”

“아쉽군.”

“아쉽지 않습니다.”

“무언갈 봤지? 그러니까 급히 달려간 거고. 얼른 답해.”

“네, 마법진의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위치는?”

“왕성 위 보이는 육망성입니다.”

알프레드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

진의 약점이자 마왕의 상징 육망성.

“전하, 가십시오. 제가 여길 막겠습니다.”

알프레드가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항상 뒤를 따르기만 했다면 이번엔 자신이 지키리라.

전하께선 괜찮은 척하시지만 중상을 입으신 상태.

그러니-.

찰싹-!

“……!”

“역시 정신 못 차렸구만.”

다시금 뛰어난 손목 스냅을 선보인 황태자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그는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 이번 건 좀 아프군…….

대악마 또한 마찬가지.

놈이 이젠 인간의 육체라고 부를 수 없는 고깃덩어리를 뻗어 깊은 구덩이 위로 올라왔다.

기다란 손톱 끝에 매달린 붉은 살 한 점.

황태자의 것이 분명한 그것을 입에 넣고는.

으적, 으적-.

참으로 공들여 씹어 먹었다.

눅진하게 퍼지는 피와 살이 짙은 악의 속으로 퍼져 나감과 동시에.

뭉그러진 육신이 재구성되기 시작.

드러난 형태는.

“전하?”

“호들갑 좀 떨지 말라니까. 나도 충분히 보여.”

황태자를 어설프게 빼닮았다.

몸에 두른 불마저.

아직 빼앗기지 않은 불은 녹염, 암염 두 가지뿐.

벌써 사색 화염을 빼앗긴 상태.

“놈이 날 죽이고 제국에 가면 다들 알아볼까?”

“지금은 어설프니까 알아보겠죠.”

“완전히 잡아먹히고 나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하여튼간 어느 쪽이든 믿을 수가 없군. 이래서야 쉬이 죽지도 못하겠어.”

- 농담이 나오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보군.

바알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매만지며 턱들 덜그럭거렸다.

- 아무래도 좀 더 씹어 먹어야겠어. 이 정도로는 부족해.

아무래도 살 한 점으론 재현이 힘든 모양.

- 어이없군. 예전이었다면 이미 네놈을 죽이고 심장을 취했을 텐데 말이다. 어이가 없을 만큼 약해졌어.

놈이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반면.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어어, 어어어-.”

성기사와 수녀는 그리 생각지 않는 모양.

지금껏 많은 악마를 보았다 생각했는데.

어떤 악마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대악마 바알을 마주한 순간, 모든 결심이 산산이 부서졌다.

차원이 다르다.

악함의 차원도 강함의 차원도.

새롭게 부여받은 신성력이 한 줌으로 느껴질 정도의 악의.

그러나.

“신성이시여. 제게 힘을.”

거렌은 당연하단 듯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물러나지 않는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대한 악마라도, 신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죽으리라.

그가 대심판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유.

미련할 만큼 순수한 믿음.

오직 그것 하나만을 쥐고 살아왔다.

“단장님!”

“둘을 모셔. 내가 막을 테니. 가. 어서.”

“나도 같이하겠어요!”

그의 결의에 부관 수녀가 함께할 것을 외쳤으나.

“어서 가!”

거렌의 뜻은 확고했고.

“3기사단 집합! 악마를 막아 황태자를 지킨다! 우리의 희생이 신성을 승리케 하리라!”

그의 부름에 제3성기사단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메이스를 들고 신성력을 뿜어내는 그들의 숨이 가빴다.

무너뜨릴 진영은 없지만 저 정도면 성벽에 몸을 부딪치는 꼴 아닐까.

성기사로서 훌륭한 최후로다.

거렌과 3성기사단이 대악마를 향해 달려들려 하기 직전.

“아- 이 썩을 놈들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꺼지라고!”

사나운 목소리가 먼저 그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우습게 보는군, 다들. 아주 집사장부터 시작해서 성기사 나부랭이들까지 말이야.”

“네? 그러니까 저들은 전하를 지키기 위해서-.”

“누구 마음대로 날 지켜! 다들 물러나 빌어먹을 놈들아!”

황태자가 눈가에 분노를 가득 담아 외쳤다.

“너희 때문에 힘을 제대로 못 쓰잖아! 저건 너희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누가?”

수녀의 물음에 황태자가 살벌한 미소를 짓고는.

“그야 신성이시지. 너희가 그리 좋아하는.”

다시금 하늘을 가리키자.

하얀 신성이 또 한 번 기둥이 되어 내리꽂혔다.

위대한 풍경.

이번에도 거렌은 눈을 감지 않았다.

아, 악마를 심판하사 우리를 보우하시니.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 두 번은 안 당한다-. 황태자-!

세상을 물들이듯 떨어지는 백화에도 악마는 뭉개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고 어두운 악의를 뿜어내어 쏟아지는 백화를 막아 내었고.

흑백이 교차하며 시야를 명멸했다.

신성께서 진다?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악마는 본래 믿음을 배반하는 존재.

곧 새까만 악의가 황태자의 사색 화염을 머금었고 떨어지는 백화를 밀어내며 하늘을 뒤덮었다.

승리를 얻은 놈이 웃었고.

황태자도 웃었다.

의문도 잠시.

“뭐 하는 거야! 언제까지 거기 숨어 부끄럼쟁이 노릇을 하고 있을 거냐! 당장 움직여!”

하늘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설마 신성에게 화를 내는 걸까? 힘 좀 제대로 써 보라고?

아픈 거 맞네.

결론을 내린 이들이 다시 바알을 상대하려 할 때.

“이 거대 도마뱀! 어서 나와!”

황태자의 윽박에.

- 알았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요오…….

답하는 목소리 한 줄기.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을 찢어발기며 하늘에 등장했다.

그러니까 플라잉 해머호와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유려한 곡선은 같았으나 비행선의 그것이 인공적이라면 지금 보이는 곡선은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자연의 것.

철저히 경량화에 집중한 해머호와 다르게 멀리서도 보이는 육중한 무게와 가득 들어찬 근육.

플라잉 해머호가 바람을 가르기 위해 디자인을 단순화했다면 지금 하늘에 나타난 저것은 제 위용과 위대함을 드러내듯 넉 장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길게 뻗은 목은 유려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했고, 까만 먹구름과 거친 바람을 타고 나르는 움직임이 고귀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푸르른 눈동자.

지금 마도 왕국 하늘에 나타난 것은 바로.

“드래곤……?”

“맙소사. 신성이시여.”

전설에서나 등장하던 드래곤, 그것도 순백의 드래곤.

세상의 위대한 모든 것을 뭉쳐 놓은 듯 홀로 빛나는 드래곤이 고개를 틀어 대악마 바알을 굽어보았고.

- 이런, 고고한 도마뱀께서 이렇게 직접 현현할 줄은 몰랐는데.

- 당신에겐 빚이 있으니까요. 그걸 갚으러 왔을 뿐이에요.

- 이제 와서? 비열하군.

- 당신이 할 말은 아니죠.

둘의 대화만으로도 공기의 흐름과 마나가 뒤섞여 혼란을 일으켰다.

그만큼 드래곤과 대악마는 상리를 벗어난 이름.

땅 위 악마와 하늘의 드래곤.

상반된 존재가 서로를 노려보길 잠시.

수도 전역에서 끌어모은 악의가 뭉글뭉글 형태를 이루는 동안.

드래곤의 목이 크게 부풀며 점점 공기가 뜨거워졌다.

일촉즉발.

구름이 흩어지고 바람이 도망간다.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두 존재가 다시 한번 격돌.

이번엔 드래곤의 브레스가 악의를 내리눌렀다.

더불어 거대한 육신도 신장이 내리찍는 창이 되어 하강.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수도를 가득 메웠다.

압도적인 힘.

모두가 넋을 놓은 사이.

“으음 이런 게 바로 손 안 대고 코 풀기지!”

“이미 손을 잔뜩 대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거 사소한 것 좀 신경 쓰지 마. 알프레드.”

신경 줄이 굵은 것인지 미친 것인지 황태자가 박수까지 치며 웃곤.

“이봐! 거기 덩치!”

충격에 빠진 거렌을 불렀다.

거렌과 수녀는 지금.

“어? 어어? 방금 그 목소리- 그러니까 분명-.”

“성녀님?”

생각지도 못한 드래곤의 정체의 혼란을 느끼는 중.

분명 축사 때 들었던 성녀님의 목소리와 드래곤의 목소리가 닮았다.

그들의 혼돈을 아랑곳하지 않은 황태자가.

“당장 날 따라. 성녀든 드래곤이든 살리고 싶으면.”

알프레드의 등에 업힌 채 달리기 시작.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진영을 무너뜨려라!”

“진영을 무너뜨려라!”

“그러니까 대체 무너뜨릴 진영이 어디 있단 말인가요.”

3성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왕성 바로 앞까지 도착.

“알프레드, 발판!”

“괜찮으시겠습니까?”

“얼추 회복했어!”

알프레드가 사철을 뭉쳐 왕성 지붕으로 올라갈 발판을 이루어 냈고.

황태자가 불안불안한 발걸음으로 올라갔다.

뿜어내는 불이 흐린 연기를 뿜어냈다.

도착한 왕성 꼭대기.

마탑보단 낮았지만 전황을 내려다보기엔 충분했고.

특히.

“꼴좋구나.”

드래곤에게 짓뭉개지고 있는 악마의 꼬락서니가 유독 기꺼웠다.

- 크윽, 이 새끼가.

“어때, 뒈지게 무겁지? 그 여자 보통 무게가 아니라고.”

- 진짜! 뭐라는 거예요!

성녀의 분노가 엉뚱한 악마에게 쏟아지는 사이.

쿠욱- 황태자가 브레이커를 상징 위에 꽂아 넣어 이를 돌리자.

철커억-

공간과 더불어 수도 전체에 이루어 낸 진이 갈라졌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쾌한 악의.

이를 부수듯 황태자가 망치를 높이 들어 브레이커를 내리쳤고, 그가 선 왕성을 중심으로.

수도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들끓던 악의가 허물어지며 더불어 악마의 육신도 흩어지는 와중-.

- 크크큭, 계획대로.

대악마 바알이 입을 쭈욱 찢으며 황태자와 비스무레한 광기 어린 미소를 자아냈고.

깊은 땅,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굴욕을 견디어 냈던 대악마의 육신이 상승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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