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복귀
회의실에 긴장과 침묵이 흘렀다.
지금 뭐라 한 건가.
어디에 뭘 박으라고?
왕족들이 잠시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한 자존심이나 치기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대뜸 들어와 살기를 풀풀 풍겨 대며 탁상 위에 머리를 박으라 한다면 누가 따르겠는가.
경우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 제국의 황태자가 아무리 패악과 오만으로 유명하다지만 최소한 상황은 이해시켜 줘야지 않겠는가.
아니, 상황을 이해시켜 준다 해도 그딴 명령을 따를 자존심도 없는 인간이-.
“박았습니다.”
아, 그런 놈이 있긴 있구나.
모두가 어리둥절한 와중 페티스만 이미 고개를 원탁 위에 올려 두곤 눈을 질끈 감았다.
“…….”
모두의 눈이 그쪽을 향했음에도 흔들림 없는 고개.
아니, 오히려 자신의 충심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머리통에 꾸욱 힘까지 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
어절씨구, 저러다 원탁 안에 머리통 들어가겠다, 들어가겠어.
줏대도 없는 새끼.
다른 왕족들이 페티스의 황당한 행동에 속으로 욕을 씹어 삼켰고.
황태자도 잠깐 말이 없었다.
너무나 빠른 굴복에 할 말을 잃은 모양.
그러나.
“뭐야, 너흰 목줄기에 철심 박았어? 왜 대가리 안 박아? 미친 건가? 아니지, 눈빛들을 보면 그런 건 아닌데, 뭐지? 왜 안 박았지? 어째서 아직까지도 날 보고 있는 거지? 열받게?”
황태자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아직까지도 머리를 숙이지 않은 이들 때문.
그의 입장에선 페티스의 반응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딜 감히 고개를 뻣뻣이 들고선 자신과 마주하려 한단 말인가.
아무리 초월에 이르고 대륙 동부를 구해 주었더라도 그건 가련한 민중을 위한 일.
여기 앉은 이들과는 관련 없다.
황태자의 입장은 언제나 확고했다.
상대의 신분 고하, 강약 따위 자신 앞에서 무의미하다.
감히 제국의 황태자보다 높다고 자랑할 이 없을 것이며, 대악마를 이기고 초월에 다가간 그보다 강하다고 하지 못할 터.
만일 그렇다면?
머리를 잘라 증명하면 그뿐.
중요한 건 속에 품은 뜻.
아직도 고개를 숙이지 않은 이들을 바라보던 그가.
“좋아. 끝까지 대가리를 뻣뻣이 들고 있겠단 뜻이군.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셋을 세겠다.”
정말 크나큰 자비를 베풀어 시간을 주었다.
떠오르는 운명들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자비.
아마 악한 운명을 지닌 이들이었다면 들어가자마자 망치를 휘둘렀을 테지만 황태자 나름대로 인내심을 발휘한 결정.
셋-.
시작된 초 세기에 왕족들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지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황태자의 반쯤 돌아가기 시작한 눈을 보았을 때 분명 무언가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
둘-.
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존심을 뭉개기 위한 정치적 술수인가?
끝까지 버티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닐까?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네놈의 기개를 보아 왕국을 맡기마’ 같은.
다급한 상황에 왕족들의 머리 또한 망가져 가는 중.
그 와중에도 꿋꿋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페티스가 얄미웠다.
하나-.
마지막 일 초가 지나고 들린 것은.
부우웅!
거대한 망치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
황태자가 거대한 망치로 원탁 사이, 정확히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격한 채 솜씨 좋게 휘둘렀다.
걸리면 머리통이 터져 죽으리라.
진심으로 휘둘렀는지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선뜻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죽이려고 했다.
아마 고개 숙이지 못한 이들의 머리통은 부서져 난잡한 풍경을 그리지 않았을까.
가까스로 직전에 머리를 숙인 이들이 바들바들 떨며 차마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때.
“이봐, 누가 함부로 간섭하라 했지?”
황태자의 살벌한 목소리가 먼저였다.
힐끔 바라본 입구, 얼핏 보이는 새하얀 자락.
이를 따라 올라가니 은백색 머리카락과 푸른 청안의 성녀 페르페투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와 황태자의 붉은 눈동자가 마주했다.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성녀. 선 넘지 마라.”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황태자. 지금 신성한 원탁 위에 사람의 피와 뇌수를 흩뿌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요?”
“목이 뻣뻣한 자들이다. 죽어 마땅했어.”
“여기선 안 돼요.”
“나가서는 괜찮고?”
“…제발 그만 좀 부숴요, 이 미친 인간아. 회의실 간신히 복구했는데 또 부수면 안 된다고요.”
성녀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비로소 황태자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쯧, 괜한 참견을-. 너희 다섯, 운이 좋았어.”
황태자가 망치를 휘두르는 순간, 성녀가 직접 그들의 머리를 내리누른 덕에 비명횡사를 피한 이들이 식은땀을 뚝뚝 흘렸다.
성녀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다.
그리고 가장 소름 돋는 점은 바로.
“다음번에도 그런 행운을 기대하지 마라.”
황태자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언제든 제 입맛을 거스르면 죽일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아니, 누구 하나 죽여 본보기로 삼지 못해 아쉬워 보일 정도.
모두가 머리를 처박고 있는 위로 망치가 서너 번쯤 더 휘돌았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무게에 머리카락이 휘말려 올라갔고.
혹여 재수 없게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 갈까 봐 그들이 고개에 힘을 주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가 애처로웠다.
“으음, 이제야 조금 볼만하군.”
그렇게 순식간에 분위기를 정리한 황태자가 뒤이어.
“자, 그럼 거기 마도 왕국 페티스, 너부터 말해 봐. 마도 왕국을 어떻게 살릴 생각이냐.”
페티스를 가리켜 왕국을 어찌 끌어갈 것이냐 물었고.
“예! 우선 무너진 기반을 바로 세우고 남은 마법사들과 귀족들을 규합하여 왕국의 법을 새로 정할 것입니다. 하여 왕국의 근간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또한-.”
왕국의 1왕자가 마치 준비해 놓았다는 듯 답안을 줄줄 읊었다.
아니, 진짜 저 새끼는 배알도 없나?
이런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망치 앞에선 평등하니 누가 감히 불만을 품을까.
이젠 다들 페티스의 답안을 바탕으로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중.
“하여 제국에 어떠한 피해도-.”
거기까지 말했을 때.
콰앙!
페티스의 머리통 바로 옆에 황태자가 망치질을 했다.
비명도 못 지르고 몸을 바르르 떠는 페티스를 보며.
“다시.”
“…….”
“다시 말해. 다음번에 내리칠 땐 더 가까울 거야.”
황태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태연히 망치의 위치를 조정했다.
얼핏 귀를 뭉개기 딱 좋을 정도.
운 좋으면 귀만, 운 나쁘면…….
생각하지 말자.
페티스가 긴장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이전에 황태자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자.
“집을 잃고 생업을 잃은 이들의 삶을 돌보고 더 나아가 평화가 유지되도록 힘쓰겠…….”
힐끔, 눈동자를 올려다본 자리.
다행히 황태자는 아직 망치를 휘두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답이구나.
“…습니다. 왕권은 물론 귀족들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여 향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최대한 부패와 패악을 막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을 이어 갈수록 페티스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아닌 힘이 깃들었다.
처음엔 황태자가 무서워 내뱉던 말이었음에도 점점 지날수록 정말 그러한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말들.
왕족들이 모두 죽고 폐허에 불과한 마도 왕국을 보며 느꼈던 절망.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대륙 동부는 이대로 폐허로 남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했다.
한데 말을 하다 보니 깨달았다.
원하는 이상향이 있었다는 걸.
평안 속에서 다시 번영할 마도 왕국을 꿈꿨었다는 걸.
왕자의 목소리에 짙은 열기와 물기가 어렸고.
“가능하다면! 진정으로 이룰 수만 있다면! 과거의 번영을 넘어! 영화를 이루고 번성하여 이번과 같은 괴로움을 막아 내려 합니다! 마도 왕국의 이름으로!”
마지막, 거의 발악에 가까운 고백을 끝으로 페티스가 말을 멈추었다.
씨근덕거리는 숨 사이사이 들리는 흐느낌이 그가 진 짐과 마음에 깃든 슬픔을 알게 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리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던 황태자가.
“좋아, 다음.”
하나하나 돌아가며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물어보았고.
모두가 각자의 의지와 꿈을 담아 대답했다.
* * *
모든 대담이 끝난 후.
끼이익 열리는 문, 나오는 걸음 뒤로.
“흑, 으흑, 흐흐흑.”
“어헝, 크응-.”
“흐으으, 흐으으-.”
각종 울음을 참는 소리가 가득했다.
처음엔 그리 고개를 박기 싫어하더니 지금은 들라 해도 박은 채 버티는 중.
스스로 감정을 못 이겨 눈물이나 터뜨리는 꼴이라니.
“한심하군.”
저런 자들에게 대륙 동부를 맡긴다는 게 걱정이었다.
“그런 것치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데요?”
문을 닫자 밖에서 기다리던 페르페투아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몰라 지금껏 기다린 모양.
“…뭐, 왜.”
“역시 황태자는 상냥하네요.”
“하지 말라 했지.”
“왜요? 틀린 말도 아닌데요.”
“상냥하긴 무얼 상냥해. 아까 죽이려 한 것 못 봤어?”
퉁명스러운 물음에 키득거린 그녀가.
“고개를 숙이게 한 것도, 그들의 다짐을 굳이 여기서 들은 것도 모두 신성께 올린 기도잖아요? 그들을 굽어살피사 축복을 내려 달라는 의식.”
“…….”
“그뿐만일까요. 저리 굴욕적이지만 감동적인 순간을 보냈으니 묘한 유대감이 생겼을 테고 앞으로 몇십 년간은 서로 협력하겠죠.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요.”
옆에서 깡총거리는 발걸음이 얄미웠다.
드디어 이 드래곤이 미쳤나? 저번부터 왜 저러는 거야.
페르페투아는 그런 의문에 아랑곳하지 않고는 뻔뻔히도 따라왔다.
“진정 제국의 통일을 원했다면 모조리 죽였겠죠. 그러나 저들에게 맡기고 굳이 이런 상황까지 마련해 주신 게 친절한 게 아니면 무어겠어요? 친절을 넘어선 상냥한-.”
“죽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망치를 휘둘렀고.
페르페투아가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도망쳤다.
그러곤.
“유리엘-! 유리엘! 황태자께서 절 죽이려 해요-!”
동생의 작은 등 뒤로 쏙 숨어 버렸다.
유리엘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모양.
“동생아, 조금 일찍 성녀가 되고 싶지 않으냐.”
“네?”
“당장이라도 만들어 주마.”
“안 돼요, 유리엘. 사특한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요.”
“당장 나와, 비만 도마뱀. 어린아이 등 뒤에 숨을 수 있을 것 같아?”
“으윽- 인신공격은 불법이에요!”
그렇게 투닥거리기를 잠깐.
“오라버니, 안 돼요. 화를 가라앉히셔요.”
유리엘의 적극적인 만류에 간신히 살용을 면했다.
그러곤 빤히 나를 바라보던 동생의 한마디.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즐거워 보이셔요.”
“……!”
즐거워 보인다는 말에 문득 올라간 입꼬리를 매만졌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통치, 결의, 대의가 크기를 키워 부정적인 운명들을 틀어막습니다]
[장소의 운명에 번영과 생명이 함께합니다! 그들의 운명이 바로 자리 잡습니다!]
보이는 운명들이 그러했으니까.
처음 폭군의 몸에 빙의했을 때까지만 해도 불운한 운명이 사방에 가득했다.
죽음과 미움, 부패와 멸망 등이.
하나 이젠 아니었다.
깨끗한 운명을 바라보는 눈길에 굳이 분노를 담을 이유가 없다.
창밖, 맑게 갠 하늘과 쏟아지는 운명을 바라보다.
“이제 화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좋은가 보다.”
담담히 이유를 토로했다.
나를 바라보는 유리엘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깃들었다.
미소에 담긴 축복과 믿음이 미래의 성녀다웠다.
* * *
싸움이 끝난 이후, 대륙 동부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첫 번째 이유로는 보이는 것보다 적은 피해.
제국군의 빠른 개입으로 악마들이 창궐하기 전에 정리를 끝냈고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다.
비록 삶의 터전은 잃었으나 살아만 있다면 다시 일구면 될 일.
두 번째로는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
넘쳐나는 제국의 식량과 자원이 로이스 가문, 남부 상인 연합을 통해 유통된 덕분.
물론 무상은 아니라 지원이라 하긴 뭣하지만, 폭리를 취하진 않았으니 그 나름의 상도를 지켰다.
거기다 당장 기반이 무너진 대륙 동부 전체에 물량을 공급해 준 덕에 활력이 더해졌다.
제국에 쏟아지는 돈과 더불어 재건되어 가는 왕국들.
마지막으로는 지배층의 새로운 정치 철학.
황태자 앞에서 외친 결심을 잊지 않았다.
물론 잊을 수 없었다.
황태자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니까.
하지만 협박 없이도 그들은 제 뜻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러니한 점이라면 악마들이 중앙 귀족들을 비롯하여 탐욕 많은 자부터 잡아먹어 준 덕에 일이 한결 편해졌다는 것.
덕분에 본래 품었던 뜻을 쉬이 풀어낼 수 있었고.
이러한 요소에 더해 선한 운명들이 뒤를 받치니 번영을 안 할 수 있을까.
하늘을 바라보는 황태자의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듯 몸집을 키워 가며 도도하게 흐르는 생명과 번영의 운명이 기꺼웠다.
문득 요즘 들어 화낸 일이 적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광기도 줄어들었다.
그냥 모든 게 만족스러웠고 풍족했다.
콧노래가 흘러나올 만큼.
신성 왕국 화이트 캐슬 한복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황태자의 걸음을 따라.
우르르- 고용인들과 수도사들, 성기사들이 도망치는 중이었다.
물론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그들 사이에 퍼진 금언 하나.
“전하께서 웃거나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면 그날은 누군가 죽는다.”
근래에 황태자가 화낼 일이 없었던 이유.
모두가 목숨 걸고 그의 비위를 맞췄기 때문.
본인은 모르는 비밀.
지금도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혹여 누굴 마주칠까 통제하는 중.
그리고 오늘부로 이 짓도 끝이다.
“모두 준비는 끝났나?”
“넵! 탑승 완료했습니다!”
각 왕국과의 조율을 마친 황태자가 떠나기로 한 날이었으니.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마음.
유리엘과 페르페투아가 나란히 서서 화이트 캐슬 하늘에 떠 있는 플라잉 해머호를 바라보았다.
처음 저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재앙이 도래한 줄 알았건만.
“구원을 실은 고래였네요, 알고 보니.”
구원을 뿜어내는 고래였다.
페르페투아의 말에 유리엘이 동그란 눈으로 의아함을 표하는 사이.
준비를 끝마친 황태자가 어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럼, 슬슬 가 봐야겠네. 유리엘, 네 뒤에 제국과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렴.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고.”
슬쩍 뒤에 늘어선 추기경들과 성기사단장들을 쓸어 보는 눈이 매서웠다.
유리엘을 못살게 굴었다간 당장이라도 플라잉 해머호를 타고 강림하리라.
그땐 구원이 아닌 재앙이 되어서.
따뜻한 날씨임에도 치미는 한기에 잠시 부르르 몸을 떠는 사이.
“괜찮아요, 오라버니. 다들 친절한 분이신 걸요. 신성이 계신 이상 문제없을 거여요. 어머니 아버지께 소식 전해 주세요.”
“그래, 황태자. 너무 걱정 마, 내가 잘 돌볼게. 종종 수도에도 들르고.”
“그래, 부탁한다. 굳이 오지는 말고.”
“뭐야-, 고생할까 봐 배려해 주는 거야? 역시 상냥-.”
“간다.”
오라비와 정반대인 순한 유리엘의 눈동자에 다들 안도감을 느꼈다.
반드시 잘해 드리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 흘릴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그렇게 결심하는 사이.
황태자가 빛줄기가 되어 비행선에 올랐고.
플라잉 해머호를 비롯한 비행 군단이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수정 장성 너머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경.
대로를 따라 자원을 싣고 움직이는 트럭들과 열차.
더불어 푸릇한 밭에서 한 해 수확을 준비하는 이들과 삶을 풍족하게 가꾸어 나가는 이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살가운 광경에 모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만에 제국 수도 페르마, 강철성에 도착.
황태자가 막 은빛 황성에 발을 내디딘 순간.
가득한 인파가 그를 맞이했다.
“어?”
순간 놀라 눈을 감았다 떴음에도 여전한 풍경.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듯 쏠린 눈동자 수만 쌍.
끝이 아니었다.
강철성 너머 수도 골목 끝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인파 앞, 황태자가 상황 파악을 하는 사이.
“왔느냐, 태자.”
일의 주범, 황제가 등장했다.
“너를 위해 특별히 승전식을 준비했지.”
옆에 선 어머니와 아버지.
잠깐 정돈 장단을 맞추어야겠다 싶어.
“소자, 모든 싸움을 승리로 끝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황태자가 무릎을 꿇으며 공손히 예를 취했고, 그제야.
우와아아아-!
들끓던 고요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숙인 황태자를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