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69)

6편 - 수정완료

 “실프! 윈드 커터(Wind cutter)!”

 휘익- 서걱!

 “꾸웨에엑!”

 학교를 다녀온 제현은 집에 오자마자 셀리온 월드에 접속해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도시와 가까운 오크 마을이었다. 이미 수십 마리를 잡은 것인지 녹색비가 바다를 이룰 정도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녹의 탑에서 ‘샤먼’으로 전직을 마친 제현은 근처 잡화점에서 체력 포션을 구입하고 곧장 오크 마을인 오크베이스라는 사냥터로 왔다. 잡화점을 나서면서 마나 포션도 구입할까 생각했지만 착용하고 있는 ‘현자의 로브’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구입을 포기했다.

 마나량과 회복량을 늘려주는 로브였기 때문에 저 레벨인 제현은 마나 포션이 필요 없었다. 때문에 체력 포션만을 챙겨들고 이곳에서 홀로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도륙한 끝에 제현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졌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오고 나서야 제현은 사냥을 멈췄다. 상당히 오랜 시간 사냥한 것인지 게임 상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도 들을 존재가 없었지만 습관처럼 중얼거리는 제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후- 오크도 지겨워졌네. 레벨도 그럭저럭 올렸고……. 슬슬 옮겨볼까?”

 불과 며칠 전이었지만 과거의 경험이 있어서 레벨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올릴 수 있는 사냥터를 줄줄이 꿰고 있는 조제현이었다. 그렇기에 적은 시간을 투자해 많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사냥터를 생각하며 상태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불과 15레벨의 상태창이라 별 볼일은 없었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제현은 사방에서 뿜어지는 새하얀 빛으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며 상태창을 캔슬했다. 

 화아악!

 셀리온 월드는 죽은 자리에서 몬스터가 리젠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몬스터의 독식을 막고 매크로 성 사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주위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자 제현은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며 경계했다.

 새하얀 빛 사이로 비치는 육중한 몸집과 위압감을 과시하는 녀석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오크와는 다르게 완전 무장을 한 오크들이 제현의 주위를 감싸자 긴장감은 점점 커져갔다.

 완전 무장한 오크들은 전사급의 몬스터였다. 오크는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종류가 있는데 일반 오크와 전사급의 오크로 나눠진다. 일반 오크들의 레벨이 25레벨 대인 것을 생각한다면 전사급의 오크는 30레벨이었다. 그만큼 차이가 나는 몬스터들이었기에 제현은 살짝 긴장했다.

 “전사급이 대거 나타났다는 것은 오크 로드도?”

 오크 로드(Ork Lord)는 전사급의 오크를 대동한 채 리젠되는 사기성 몬스터였다. 초보자들을 위한 보스 몬스터였지만 절대 초보는 잡을 수 없는 몬스터였다. 둘에서 셋 정도의 파티를 이루어야 잡는 초급 보스였기에 제현은 굳은 얼굴로 오크 로드를 쳐다봤다.

 보스 몬스터가 아무리 랜덤으로 리젠 되지만 오크베이스의 초입부근에서 나올 리 없는 것이 보스몬스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제현은 어떻게든 녀석을 쓰러트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세를 잡았다.

 “취익! 적이다! 공격… 취익! 포위 공격하라!”

 상황정리를 하고 있던 제현에게 오크 로드의 시선이 닿자 녀석은 정해진 대사를 읊으며 오크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멍청한 오크 전사들은 로드의 명령을 듣고도 잠시 갸웃 거리더니 오크 로드의 포효를 듣고서야 제현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것을 보고 당할 제현이 아니었기에 녹의 탑에서 받은 정령인 실프를 소환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며 나타난 실프는 제현의 주위를 맴돌며 명령을 기다렸다.

 뾰로롱!

 “실프! 헤이스트(Haste)!”

 오크 전사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제현은 주위를 맴도는 실프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보조계열의 정령마법이었다. 마법과는 다르게 성장형 마법이었기에 3서클 마법을 펼치기에 무리는 없었다.

 성장형 마법은 위력은 떨어지지만 능력이 상승할수록 위력이 증가하는 마법이다. 실프가 펼치는 위력과 상위 계열의 정령이 펼치는 위력이 다르다는 소리다. 아무튼 실프가 펼친 헤이스트는 푸른빛을 동반하며 제현에게 펼쳐졌다.

 팟!

 움직이지 않던 목표물인 제현이 갑작스럽게 움직이자 오크들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그때, 한 오크가 빠르게 달려드는 제현을 보고 무기를 고쳐 쥐며 비명 같은 포효를 터뜨렸다.

 “꾸워억!”

 한 오크의 포효에 다른 오크들이 무기를 다시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때는 늦은 후였다. 사방에서 쏘아지는 바람의 칼날과 빠른 움직임으로 오크의 목을 사정없이 따버리는 제현의 손짓에 여지없이 녹색 피가 뿜어졌다.

 “취익! 공격하라!”

 오크 로드는 점점 쓰러지는 전사들을 보며 공격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실프로 인해 몸놀림이 빨라진 제현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움직이며 정령을 부리는 제현을 잡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했다.

 실프를 제외하고 3대 속성의 정령을 더 사용하고 있었기에 오크 전사들은 맥도 못 추고 죽어나갔다. 하지만 오크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할버드를 고쳐 쥐며 달려드는 오크들은 멍청한지 용감한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 점이 제현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30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일제히 제현을 향해 움직이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때문에 제현은 헤이스트를 캔슬 시키고 4대 정령을 집결시켰다. 정령을 이용해 모두 없앨 작정이었다.

 “취익! 지금이다!!”

 후웅- 후웅!

 제현이 멈춰 서자 오크들은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느낀 것인지 일제히 돌격을 감행했다. 아까부터 서성이던 녀석은 할버드를 고쳐 쥐며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현은 정령을 향해 손짓했다.

 귀여운 생김세의 난장이었다. 땅의 정령인 놈은 주인인 제현의 명령을 알아들은 것인지 오크가 뛰어오는 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령의 손에서 뿜어진 갈색의 기운이 땅으로 흡수되자 땅은 작게 진동하며 둥근 기둥을 솟아올랐다.

 푸슉- 퍽!

 땅에서 기둥이 치솟자 할버드는 그대로 튕겨나갔다. 또한, 오크는 큰 타격을 입은 것인지 턱에서 녹색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제현은 불의 정령을 이용해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미 놈과 불의 정령 샐러맨더의 조합으로 많은 오크들이 죽어나갔다.

 그 후에도 정령들의 조합으로 수많은 오크들을 격퇴했고 오크 로드의 근처로 다가갈 수 있었다.

 제현이 오크 로드의 영역으로 들어서자 오크 전사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어졌다.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다. 자신의 로드가 죽으면 자신들도 죽게 된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무식하게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휘이익! 서걱!

 오크들의 공격을 피하고 공격하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바람, 불, 물, 땅의 정령을 이용해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제현의 몸에서는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고 체력과 마나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엘레멘탈 폼(Erementar Form)이 생성되었습니다.]

 레벨 업 소리와 함께 엘레멘탈 폼이라는 샤먼의 기술이 생성됐다. 제현의 주위는 오크 전사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오크 로드의 살기등등한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남아 있는 몬스터라고는 오크 로드뿐이었다. 1대 1의 상황이었다. 

 휘이잉-

 왠지 모를 바람이 스쳐지나가자 제현이 착용하고 있는 현자의 로브가 앞뒤로 펄럭였다. 또한, 오크 로드의 갈퀴가 흔들리며 기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회색빛으로 사라지는 오크들의 시체 사이로 하늘로 비산했던 병장기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후두둑- 챙!

 하늘에서 떨어지며 틀어박힌 병장기들은 주위의 무성한 풀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크 로드는 살기를 뿌리며 잡초들을 헤집으며 제현을 향해 다가섰다. 그에 따라 제현은 오크 로드와 거리를 벌리며 정령들을 대기시켰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얼마나 들렸을 까? 제현과 오크 로드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탐색전이 끝났다는 듯이 멈춰선 둘의 얼굴에는 차갑고 타오르는 듯 한 눈동자가 허공에 부딪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높은 레벨을 자랑하는 오크 로드다운 면모에 움찔한 제현은 뒤로 물러나며 정령을 좌우로 배치했다.

 제현의 행동을 쳐다보던 오크로드는 기회를 다잡은 것인지 노호 성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이상한 괴성을 터뜨리며 달려드는 오크 로드의 모습을 보자 순간 제현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취이이익! 죽어라! 크워어!”

 [오크 로드의 함성을 들으셨습니다. 회피율과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오크 로드의 기세싸움에서 진 제현은 일시적인 무력감을 맛보아야 했다. 몸의 움직임도 둔화된 듯 한 느낌이 들었고 머릿속이 텅 비는 듯 한 느낌이 받았다. 멍하니 오크 로드를 쳐다보고 있던 제현은 앞으로 다가선 오크 녀석의 검에 왼쪽 팔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스악!

 피가 흘러내린다. 풀로 차있던 체력은 출혈과 함께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스치기만 한 상처였지만 녹슨 검이라 그런지 경미한 독이 중독되는 것과 출혈이 계속 진행됐다. 

 중독된 독은 초당 1~2정도의 데미지를 주고 있었고 블리딩은 10의 데미지를 주며 체력을 야금야금 깎아 먹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끌수록 제현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놈! 디그(Dig)! 운디네! 아쿠아(Aqua)!”

 뾰로롱-

 제현의 명령에 놈은 땅을 팠고 운디네는 땅을 판 장소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깊게 파여진 웅덩이는 오크 로드가 들어갈 정도로 넓고 깊었다. 제현은 그것을 확인하며 오크 로드를 그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실프에게 보조계 마법을 펼칠 것을 명했다.

 몸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헤이스트가 펼쳐지자 제현의 움직임은 가뿐해졌다. 헤이스트가 걸린 즉시 제현은 오크 로드를 유인했다.

 “멍청한 오크! 이리와!”

 제현의 하찮은 도발에 오크 로드는 흥분하며 뒤를 쫓았다. 하지만, 보스급 몬스터답게 약간의 지능(?)이 있는 건지 웅덩이를 건너뛰며 제현을 따라잡고 있었다. 때문에 제현은 이를 앙 물고 다시 오크를 도발했다.

 당연하게도 오크는 제현의 뒤를 따랐다. 일부로 웅덩이를 후회하며 몇 번을 움직였을 까? 웅덩이 쪽으로 방향을 튼 제현은 오크 로드의 시선을 끌며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병신 오크! 이리로 와! 멍청아……. 엇?!”

 오크를 유인하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움직이고 있던 제현의 발에 돌이 걸렸다. 어이없게도 제현은 자신이 판 웅덩이에 돌연 자신이 빠져 버린 것이다. 덩치가 큰 오크의 몸에 맞게 판 함정이라 그런지 웅덩이는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얼마나 깊은지 제현이 까치발을 들고서야 간신히 물위로 숨 쉴 수 있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제현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셀리온 월드는 현실성을 중시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유저가 판 구덩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복구되는 것이다.

 제현의 모습을 보던 오크는 의미모를 표정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낡은 검을 수직으로 치켜세우고는 웅덩이를 향해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매서운 공격이었던지 제현의 몸에는 가느다란 생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당하다가는 과다출혈과 독으로 인해 사망할 기세였다.

 “후웁!”

 제현은 오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물속으로 잠수해 웅크리고 앉았다.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나도 거의 고갈된 것인지 정령을 이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놈을 이용해 땅을 팔 수도 없었다.

 또한, 숨을 참는데도 한계가 있기에 빨리 빠져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가 제현은 숨을 참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물위로 나가자니 오크 로드의 검이 걱정됐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푸학!”

 후웅- 서걱!

 제현은 다급히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때 오크 로드의 검이 머리카락을 스치며 거친 파공음을 터뜨리며 몇 가닥의 머리칼을 베어버렸다.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긴 제현은 다시 한 번 물속으로 잠수를 해야 했다.

 물속으로 잠수한 제현은 머리를 세차게 굴렸다. 마음속으로 수십 가지의 생각이 교차했다.

 ‘빠져나갈 방법, 방법…… 아!!!’

 번쩍!

 물속에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킬하나가 생각났다. 방금 전 레벨 업을 통해 얻은 기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엘레멘탈 폼이라면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정확한 능력을 잘 몰랐지만 스킬 창의 설명으로는 유저의 육신을 정령과 비슷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다. 아직 초보 단계라 하나의 정령력을 이용해 변신할 수 있었다.

 엘레멘탈 폼은 초보스킬이면서 고 레벨들의 유저들도 곧잘 이용하는 아주 좋은 스킬이었다. 엘레멘탈 폼이 마스터 급에 이른다면 모든 정력을 집결시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자 제현은 그 스킬을 사용했다.

 “엘레멘탈 폼(Erementar Form) 운디네!”

 마나를 아끼기 위해 역 소환되어 있던 운디네가 물속에서 생겨나더니 제현의 주위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운디네의 행동에 제현은 몸속으로 유입되는 정령력에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글보글-

 숨쉬기 어려웠던 물속이 마치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숨결이 편해지고 있었다. 또한, 현자의 로브로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놈을 소환시켜 웅덩이의 벽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놈이 오크 로드의 뒤쪽으로 길을 열었다.

 제현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웅덩이를 빠져나갔다. 제현은 아까의 치욕을 잊기 위해 눈에 살기를 띠웠다.

새로운 시작(New Start) -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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