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 수정완료
제현은 흡수 능력을 얻은 지 1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겁던 몸은 한결 가벼워졌고 거칠던 피부도 좋아졌다. 더욱이 몸속에 흐르고 있는 마나(Mana)라는 것은 신기했다.
뜀박질을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치던 몸은 마나라는 것에 의해 장시간 뛸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언제나 피로하던 정신은 마나라는 것에 의해 맑아졌다. 하지만 마법은 처음에 비해 펼치기 어려웠다.
그때 펼친 마법은 우연이었던지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마법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때문에 1주일이나 걸쳐 노력한 끝에 간단한 마법 정도는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아- 정신 집중이 이정도로 어려울 줄이야. 게임이랑 달라도 너무 달라.”
제현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과 다르게 현실에서의 마법은 어려웠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역나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간의 노력이 없었다면 조금도 마법을 펼칠 수 없었을 지도 몰랐다.
일주일이나 게임을 포기하고 마법에 매달렸기 때문인지 정신은 피로했을 지언즉 몸은 가벼웠다. 제현은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현의 집은 단조로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 방 세 개에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였다. 당연히 앞뒤로 발코니가 있어 바깥 경치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밤새 마나 컨트롤을 연습했기 때문인지 머리카락과 얼굴이 약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었다. 음식도 별로 섭취하지 못했기에 살도 빠진 느낌이 들었기에 제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바닥이 울리지도 않는 가벼운 걸음이다. 평소 같았으면 바닥이 울리며 배가 출렁거렸을 테지만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뱃살은 조금씩 빠져 일주일이 된 후에는 이상할 만큼 살이 빠져 있었다.
“미스터리야. 미스터리”
화장실 거울 앞에 당도한 제현은 끝없이 중얼거렸다. 생전처음 보는 얼굴이 거울에 비춰져 있었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눈을 비비는 행동하며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있었다.
“확실히 난데……. 어떻게 일주일 만에 이런 일이.”
거울에 비친 제현의 모습은 놀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무협소설에서와 같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한 것처럼 모든 게 색달랐다.
더러울 정도로 여드름이 가득 찼던 얼굴은 맨들맨들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고 관리를 하지 않아 뚱뚱했던 몸은 살이 쫙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쉬운 점은 근육질의 몸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살이 빠졌다는 것이 중요했기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설마 이게 부작용인가?”
제현은 온갖 생각이 들었다. 흡수를 통해 생겨난 병이라든지, 마나를 이용하면 살이 빠져 말라 죽는 다든지 이상한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얼굴에 가져다대며 꼬집어보기도 했다. 수차례 반복 한 후에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 제현은 생각을 고쳤다.
“흡수의 약 빨이 이제 도는 건가?”
저번에 흡수한 직업들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때문이라면 모습의 변화가 이해되지만 왜 흡수한 직후 변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마법의 영향이라고는 설명되지 않았다. 사용한 마법이라고는 라이트 마법 밖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의 사용에 있어 아직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한 모습에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생각을 많이 해 머리가 복잡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뭐 괜찮겠지. 학교나 가야겠다. 오랜만이니……. 모두 놀라겠지?”
제현의 자신의 모습이 변했다는 것을 상기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가는 학교라는 것에 마음이 설랬다. 샤워기의 꼭지를 틀어 샤워를 시작한 제현의 얼굴에는 꽃이 피어있었다.
“하! 시원하다. 이제 가볼까?”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교복까지 챙겨 입은 제현의 모습은 약간 어색했다. 뚱뚱한 체격에 맞는 옷이었기에 교복은 헐렁했다. 그것은 매우 헐렁했다. 벨트로 간신히 허리를 맞춘 제현의 몰골은 어린 아이가 어른의 양복을 입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기에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대충 몸에 맞춰 입었기에 그런대로 볼만했다. 가방을 들쳐 맨 제현은 집을 나섰다. 아파트를 나서자 많은 학생들과 출근을 위해 차를 몰고 나서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아파트 인근에 정차하는 버스정류장에는 길게 줄지어서 있는 학생들도 보였다. 아마 시외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한 학생들일 것이다. 제현이 다니는 학교는 시외에 있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집과 가까운 학교였다.
‘사천고등학교’라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인근에는 다른 학교도 많았지만 사천고의 명성에 비해 낮은 학교들에 불과했다. 아무튼, 제현은 그런 학생들을 한번 보고는 사천고등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지름길로 가볼까?”
제현은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름길이라고 해봐야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 한복판이다. 하지만 왕따가 다니기에는 불편한 거리였다. 소위 노는 녀석들이 곳곳에 보이는 곳이었기에 제현이 다니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다.
빙 둘러서가던 거리와 다르게 지름길로 향하자 같은 학교 학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간 가까운 거리를 멀리 돌아서 갔던 제현은 이 거리가 신기한지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툭!
‘음?’
제현은 어깨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제현은 균형을 잡기 위해 앞으로 약간 튀어나가 듯이 신형을 바로잡았다.
“이 새끼가 아침부터 야마 돌게 하네.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이런 뜻일까?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저 양아치 같은 녀석이었다. 전제척인 더벅머리에 한쪽 귀를 뚫어 귀걸이를 착용한 녀석이다. 또한 운동을 했기 때문인지 탄탄해 보이는 몸을 지닌 녀석이었다.
우리 학교 교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학교 학생이다. 제현은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무시하며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끝까지 따지려는 것인지 건들거리며 다가오며 욕을 내뱉었다.
“야! 이 새끼야.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주위에 많은 학생들이 있었지만 쉬쉬하며 다들 지나치기에 바빴다. 괜히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마 녀석이 두려운 모양이다.
“……뭐냐.”
제현은 평소부터 약간 과묵한 성격이었기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왕따라는 것도 한몫했기 때문에 말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딪힌 녀석이 욕을 내뱉으며 건들거리자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참고 살았기 때문에 쌓인 것이 많았다. 이제 힘도 얻었으니 자신감도 생겨났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제현의 머리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꺼져. 한번만 봐주지만 다시 마주치면 죽을 줄 알아라.”
“이 새끼…….”
제현의 싸늘한 말에 녀석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짧게 말하며 학교로 서둘러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제현은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드디어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그 의지가 과했던지 제현은 몸과 마음이 다르게 행동했다. 마법을 펼친 것이다.
“그리스(Grease)”
제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엄 있고, 무상(無上)함이 어려 있는 목소리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마법으로 제현의 마음은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철퍼덕!
제현의 귓가로 들리는 경쾌한 소리였다. 평소 때라면 넘어진 존재는 제현이었을 것이다. 왕따라는 이름아래 아이들의 구타에 바닥을 구르며 산지가 어언 한학기가 되어간다. 그 울분에 제현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일어서려는 녀석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스!”
철퍼덕!
귀걸이를 한 녀석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일어서려했지만 몸은 다시 차가운 대지와 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풋…… 크크큭.”
제현은 웃음을 참기 힘든지 크게 웃고 말았다. 속으로 웃는 다는 것이 그만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자연스럽게 마음대로 마법을 펼쳤던 육신은 제현의 의지대로 돌아왔다.
“씨발! 아침부터 돌아버리겠네.”
최대한 소리죽여 웃었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던 양아치 녀석의 귀에 들어간 것인지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녀석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인해 검붉어져있었고 입에서는 씩씩 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붉어진 얼굴 위로 혈관이 튀어나왔고 코는 벌렁거렸다. 제현은 두 차례의 경험으로 마법이라는 것이 분노와 의지가 전해지면 펼쳐진다는 것을 느꼈다. 게임과 다르게 생각만으로도 펼쳐진다는 것을 느낀 제현은 뛸 듯이 기뻤다.
고 서클의 마법은 모르겠지만 하위계열의 마법은 게임과 비슷한 설정으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시동어만으로도 펼칠 것이다. 하물며 생각만으로 마법을 펼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 새끼, 아까부터 거슬리네. 쳐 웃지 마라.”
“남이 쳐 웃던. 바닥을 구르던 네놈이 뭔 상관이야. 갈 길이나 가라.”
제현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법을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녀석이 기분 나쁜 말을 했기에 분노도 있었다. 방금 전의 우스꽝스러움에 화가 가라앉았지만 아직 덜 풀렸다.
생각만으로 마법이 펼쳐지는 것을 알았으니 제현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뭐 병신 같은 새끼가!”
녀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제현은 살짝 긴장했다. 게임 상에서야 익숙한 마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니다. 또한, 주위 싸움이 났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싸움은 익숙하지 않은 제현은 화려한 마법대신 마나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마나라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았다. 자시의 육신을 날씬하게 바꿔줬던 마나가 아닌가!
꽈악- 팟!
녀석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빠른 스피드였지만 왠지 제현에게 모든 것이 보였다. 달리는 속도와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제현의 예상은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