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아, 너는 도망가.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끌 테니까.”
“닥쳐! 너희 걱정이나 해!”
나의 말에 가연은 순간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굳은 결심을 한 듯이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걱정하지마라, 너희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테니까.”
“크하하하, 웃기는 군, 한줌의 내공도 없는 애송이가 우리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이제 막 B급의 애송이에다. 이제 막 B급 정도의 실력을 갖춘 꼬마여자애 로 말이야! 웃기는 소리!”
나의 말을 비웃으며 말하는 검은 양복의 사내의 모습에 나는 지금 이 순간 능력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나의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아니,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 남자의 웃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괴수 같은 웃음이었지만 겉으로는 얌전한 양처럼 온순하게 보였지만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며 나의 몸을 소름끼치도록 떨리게 만들어 오는 힘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컥....숨이....숨이 막혀....!”
“애송아! 나의 살기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하면서 나를 이기겠다고? 흐흐흐! 누구한테 전멸 당했는가 했더니 채, 어린 티도 벗지 못한 녀석에게 당했구나! 정말 실망이다. 마유!”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나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한 겨울에 옷이 없어진 것처럼 몸도 떨려 왔으며, 목이 막힌 것인지 숨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말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그 살기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남자의 말에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복수
복수를 하러 온 것이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닌 완전한 적의 말살을 하겠다는 의지가 여기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우리들의 처리되어야할 악이었고 녀석들은 정의 인 듯이....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모든 것이 반대였다. 녀석들은 없어져야한 악이었고 우리들은 정의를 수호하는 수호자였기에......
“자, 여기다. 네놈들이 죽을 곳, 약간의 시간을 주지. 뭐든지 지껄이고 하고 싶은 짓을 해봐, 시간을 줘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금방 도착한 공터는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무도 쓰지 않는 운동장이었다. 간혹 시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 같은 것이 벌어지는 곳이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공설운동장이 있기에 여기는 쓰지 않는 곳이었다. 남자는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는지 전투하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장소였다. 숨을 만한 곳이 없었으며 훤히 다 보이는 초원 같은 곳에서 도망 갈 길은 아무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무리는 살고 한 무리는 죽자는 생각 인 듯 했다.
스르르륵ㅡ챙!
양복의 사내는 자신의 바지춤에 숨겨 놓았던 긴 장검을 꺼내 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준비운동을 하듯이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동장은 예사가 아니었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십 가닥의 은빛의 선들이 이어지며 공기가 터져 나가는 것으로 우리에게 무언의 위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는 됐나?”
사신의 목소리처럼 무심하면서 차가운 목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려왔다. 가연은 긴장한 것인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남자의 눈길은 나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옆쪽에 있는 수강에게 가있었다. 마치 쓰레기는 그냥 구석에 처 박혀 있으라는 듯이, 무심한 눈동자였다. 하지만 나에게 끝까지 시선을 주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마유, 아직도 두려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도 여차하면 암기를 날릴 것인지 손이 양 소매 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제일 강한 놈부터다! 덤벼라! 애송아!”
남자의 말을 시작으로 나를 제외한 자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강은 순간 몸이 사라지며 남자의 뒤로 나타나 바람의 기운으로 남자의 온몸을 난도질 하듯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일정도로 집약된 힘이 남자의 몸을 모두 베고 지나간 뒤에도 땅을 부수며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인지 남자의 검이 소리가 나기도 전에 수강의 어깨를 지나치듯 베고 지나갔다.
찌지직, 서걱!!
순식간에 당해버린 수강은 어깨를 붙잡으며 손을 축축이 적시는 뜨거운 피로 전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쌩쌩한 몸놀림으로 남자에게 대항하며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남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이리 저리 피하며 수강의 공격을 적절하게 피하며 공격을 하고 있었다.
수십의 환영이 나의 눈에 비쳤지만 정작 수강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은 지나간 영상이었던지 수강은 다른 곳에서 검을 막고 있었다.
캉ㅡ!
수십의 검로가 복부 쪽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수강의 손에서 나온 바람의 기운은 머리 쪽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서 나타난 검은 정확하게 수강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온 검이었다.
“윈드 플레어!”
수강의 손에서 나온 바람의 기운이 순간 땅으로 내려갔고 그 바람의 기운이 강해지며 순간 양복의 남자의 발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순간이동을 한 수강은 그대로 남자의 등 쪽에 기운을 응집해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다시 순간이동을 하며 남자의 다리를 낚아챘다.
“레그 본 스메쉬”
우드드득!
빠르게 낚아챈 수강은 그대로 남자의 다리에 자신의 기운을 집약했다. 그리고 저번에 나의 다리를 부수듯이 남자의 다리 쪽이 기이하게 틀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무담 담 그대로였다. 할 수 있다면 해보라는 듯이.
“너 바보 아니야? 그런 것은 허접한 놈들이나 당하는 것이지!”
촤르르륵!
기이하게 틀어졌던 다리가 순간 제자리를 찾으며 돌아오고 있었다. 약간의 다리 저림이 있는 것인지 쩔뚝였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없어지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질릴 때도 됐어, 조용히 맞고 기절이나 하라고ㅡ 유성현신(流星現身) - 섬(閃)”
다시 무표정을 찾은 남자는 검을 밑에서 위로 살짝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올린 것이 아닌 수십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기운을 집어넣는 모습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도 몇 초가 지난 후에야 나의 눈에 보인 것이었다. 이미 그 기술이 발출 된 뒤에야 본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슈슈슈슉!
수십개의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검에서 나온 강기들이 특유의 모습으로 변하며 수강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그 유성들 하나하나에 힘이 담긴 것인지 수강은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망설임이 수강의 복부를 꿰며 지나가 버렸다. 수십의 유성은 사라져 있었고 단하나의 검이 수강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다가 다시 빠져 나왔다.
푹!!!
“컥....환영은 그냥 환영일 뿐이었나?”
“어린애 치고는 대단했지만 역시 경험이 부족했다. 눈에 현혹되어 그걸 못 피하다니. 그건 나의 일초에 불과 했다. 아직 두 개의 초식이 더 남아 있지만......이만 쉬어라. 강자의 대한 예우는 이것으로 끝이다.”
슉!~서걱!
순간 검을 고쳐 쥔 사내는 그대로 수강의 횡으로 그어버렸다. 순간 수강은 배에서 가로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점점 몸의 균형을 잃어 갔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나는 순간 놀랐다. 수강이 다쳐서가 아니라 녀석이 사용하던 기운이 정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와 사용하던 힘의 같은 부류, 혹은 똑같은 것인지 친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 가지 않았다. 녀석이 나에게 다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조금만 기다려라. 네 친구 하나도 끝나면 네놈 차례니까.”
그 사내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나는 이 순간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한심했다. 어떤 행동도 할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나는 약해빠졌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무엇도 녀석들을 이길 수 없었다. 녀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짐이 되고 말았다.
“아아악!”
나의 눈에 비친 것은 수십 발의 바늘에 꿰여 점점 몸을 차가운 바닥으로 누이고 있는 가연의 모습이었다. 손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점점 희미해져가며 사라져 버렸다.
“왜, 이렇게 시간 끌어! 빨리 끝내! 혹시라도 내공이 돌아오면 우리는 끝이야, 끝!”
“뭘 그렇게 서둘러, 봐라, 저놈이 네가 생각하는 그 놈인지. 겁에 질려서는.....쯧! 죽일 가치도 없겠어.”
가연을 쓰러트린 마유는 나를 쳐다보며 눈동자가 흔들리며 양복의 남자에게 말했지만 양복의 남자는 느긋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 오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나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검으로 나의 볼을 툭 쳤다.
찰싹!
“봐, 뭘 보고 싸우겠어. 싸울 의지도 마음도 없는 듯한데. 그냥 가지고 놀다가 죽이라고?”
“그래! 빨리 죽여!”
검면으로 볼을 수차례나 때린 남자는 거 보라는 식으로 마유에게 말했지만 마유는 호들갑을 떨며 겁을 먹고 있었다. 그 표정을 즐기는 듯한 남자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나의 몸을 베고 또 베고 있었다. 경미한 상처만 생기게....아주 길게 시간을 끌듯했다.
슈슈슈슉!!
은빛의 실선들이 나의 몸을 지나갈수록 나는 피범벅이 되어갔고 자잘한 상처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즐기는 듯 한 얼굴로 칼을 마구 자비로 휘둘렀지만 일정이상의 힘과 스피드는 올리지 않았다. 천천히 고통을 맛보라는 식이었다.
“컥.....허억, 허억”
몇 분이나 이런 고통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숨이 가빠오고 참을 수 없는 고통들이 나의 온몸을 강타하고 있었다.
콰직!!
뼈와 살이 꿰뚫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에게 휘둘렀던 검이 순간 나의 복부를 파고들어 갈비뼈를 스치고 지나 간 것이었다. 그 정도면 비명이라도 질러야 될 테지만 얼마나 이런 고통을 당했던지 생각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녀석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그 분노는 나의 온몸의 활력소가 된다는 듯이 나는 그것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나의 눈에서는 알 수없는 물기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괴로웠다.
아팠다.
눈물이 나왔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상처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생각이! 허약했기 때문에 나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츠츠츠츠
남자는 끝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나는 온몸이 떨려왔다. 입 안에서 비릿한 혈향과 촉감으로 가득차기 시작하자 나는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그 액체를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녀석의 공격이 나에게 닥쳐오는 것에 어떤 공격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의 몸은 움직일 줄 몰랐다. 무언가 가로막힌 듯이, 무언가 금제에 걸린 듯이 말이다.
“칫! 재미없어! 반응도 없고 죽여 버릴까?”
갑자기 달에서 비치는 빛이 나의 몸에 닿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 차오르고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 수없는 느낌에 나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달의 정기가 빨려 들어가듯이 나의 몸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빠르게 피가 도는 것인지 나의 몸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피가 차갑게 식어가며 나의 몸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이놈 왜이래, 상처가!”
“뭘 꾸물거려! 죽여! 죽이라고!”
나의 몸이 들썩 거리며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하자 마유라는 여자는 급속히 흥분하며 죽이라는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자는 검에 힘껏 내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유성월환(流星月換) - 변(變)”
다시 한 번 발출된 수십의 유성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나의 몸을 베고 또 베고 있었다. 베는 자리는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며 유성의 힘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 가버렸다. 남자는 계속 해서 초식들을 사용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이 사용한 힘이 눈앞에 정신을 잃고 있는 녀석의 몸에 다 들어 가버린 것이다.
쿵쾅ㅡ쿵쾅ㅡ!!
푸쉬쉬쉬쉬ㅡ!!!
몇 번을 그 남자의 검을 받아 낸 것인지 모른다. 수십, 수천 번의 검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점점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나의 몸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저번이 마법사의 몸처럼 허약했다면 지금은 점점 몸이 단단해지며 근육이 밀집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몸속에 숨어있던 산공독이 빠져나가듯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가며 나의 몸은 가볍게 하늘로 떠올라 버렸다.
“안 돼! 녀석이 몸을 회복하고 있어! 어떻게 좀 해봐!”
“멍청한 계집아! 그럴 시간에 네놈은 암기나 더 던져! 소용이 없으니까 나도 이러고 있지!”
나의 몸에서 넘쳐흐르는 기운에 놀란 마유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좀 더 죽일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베면 회복 되어버리는 육체에 자신도 질릴 지경이었다.
“염병! 베도 베도 끝이 없는데 무슨 수로 죽이여! 잘 흐르던 피도 나오지 않아, 이 멍청한 계집아! 독이나 써봐!!”
남자의 말에 여자는 소매에 있던 암기라는 암기는 모조리 던져 맞추고 뚫고 들어갔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몸에서 박혀 있던 암기들은 저절로 몸에서 빠져 나오며 치유되었고 독이라는 독은 몸속에 들어가자마자 몸 밖으로 배출되어 버린 것이었다.
쩌저저적ㅡ!
퍼퍼퍽!!
가만히 유지될 것만 같았던 나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밖으로 배출되며 주위를 얼리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던지 다시 한 번 마기가 배출되며 얼려져 있던 얼음들을 깨 부셔 버렸다.
휘이이잉ㅡ!
=현실.....게임.....인생
순간 정신을 잃고 있던 나는 정신이 돌아옴을 느꼈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며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듣지 못했지만 현실과 게임, 인생이라는 단어만이 나의 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순간 온몸에 전율에 휩싸였다. 충만한 느낌,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느낌. 이루 말 할 수 없는 충만감이었다.
휘익ㅡ!
나는 순간 날아오는 수십 개의 유성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다만 그게 나의 생각인지, 나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의 행동이었다.
외전 - 제현을 만나기 까지(가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연이라고 해요. 예전에 여기 살았지만 잘 모르는 게 많아요. 잘 부탁드려요.”
이곳에 온지도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서울에 있는 초능력교육기관에서 교육이 있어 올라갔었지만 이제는 모든 기본 교육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 온 것이다. 또한, 친한 친구가 있는 학교이기에 꼭 같이 다녀보고 싶었던 학교이고, 마지막으로 다닐 학교이기에 나에게는 설레임과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기억을 잃었겠지만, 처음부터 친해지려니 초조한 기분이 든 것이다. 처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속을 지배했다.
‘안녕? 아니야 이건 너무 단순 한 것 같고....만나서반가워? 좀 어색해....어떡하지?’
나의 마음은 수 십 가지의 인사말들이 나열되었지만 마음에 드는 인사말은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 있던 나를 수강이 잡아끌며 나의 자리로 이동했다.
“뭘 그렇게 정신 팔려있어?”
“아....제현이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하고....솔직히 조금 기대 되잖아. 일 년이 지났는데.”
“하긴....나도 조금 기대되...하하!”
정신이 팔려 있던 나를 다시 한 번 수강이 일깨워 주며 나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수강의 물음에 미소를 띄며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고 수강도 약간 수긍하며 기되된다는 표정으로 일 분단의 제일 끝자리 창가 쪽에 앉아 버렸다.
‘내가 앉고 싶은 자린데....바깥 구경도 할 수 있고...’
나는 속으로 불만 아닌 불만으로 나의 자리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우리의 자리는 앞쪽이 아닌 뒤쪽이었다. 그리고 우리 바로 앞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의 태도도 이상했다. 한명의 친구가 오지 않았는데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자, 그럼 출석을 부르겠다.”
.......4번 추은지
네
15번 양재석
네
17번 윤진수
네
23번 정명우
네
26번 조제현
......
26번 조제현? 안 왔나?, 조제현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없어? 아무도 몰라?
이윽고 우리가 줄곧 생각하던 제현의 대답 차례였다. 전학첫날이라 정신이 없었기에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누가 제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출석 때 보기로 하고 잠자코 있었기에 기대되었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앞자리가 제현이 자리인 가봐....”
“그, 그렇네.....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모든 출석이 끝났지만 제현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살짝 걱정되었지만 어련히 오겠지 생각하는 둘이었다.
딩동ㅡ딩동!
“자, 저 둘은 학교 첫날이니까, 학교 안내도 해주고 이야기도 하면서 친해지도록, 이상이다.”
차렷, 경계
아침의 간단한 조례가 있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초능력자의 교육기관에서는 빡빡한 스케줄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지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익숙해진다면 지루해 지겠지만 선생님이 나가셨고 아이들은 벌 때처럼 달려들며 나와 수강에게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야, 나는 양재석이야. 혹시 남자 친구 있어?”
“아니, 없어.”
“그래? 그렇구나....하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나에게는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 싸여 질문이 오고 갔지만 재석이라는 녀석의 등장으로 나의 주위에 있던 몇몇의 남학생들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나에게 질문을 하며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뱉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지만 왠지 나는 그녀석이 싫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혹시....조제현, 어디 아프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주위에 있던 여자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여자아이들도 잘 모르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그럼, 제현이 어떻게 생겼어? 성격은 착해?”
“기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예전에는 엄청 뚱뚱하고 못생겼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된 게 날씬해지고 근육도 있고 아무튼 잘생겨 졌지만 성격이 무뚝뚝하고 차가워서 아무도 접근 안 해. 그리고 왕따였거든? 아무튼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무서워하지.”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알고 있는 것을 묻어와서 기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제잘 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며 걱정되었다. 흔히 뉴스에서 보던 왕따가 제현이라는 말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섭다는 말에 다시 의문이 생겼다. 흔히 왕따는 괴롭힘의 대상이었기에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오전에 들어오는 몇 명의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자 점심시간이었다. 처음 오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몰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지만 많은 반 친구들이 우리들을 이끌고 매점으로가 여러 가지 먹 거리로 점심을 때울 수 있었다.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도시락을 가지고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고 있을까? 제현이는.....”
“모르지.....지금 아파서 누워 있을지 누가 아냐....”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문득 나는 입 밖으로 제현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았지만 수강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나와 수강은 책상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다시 반복적인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말 익숙해 지지 않는 곳이었다. 아침처럼 설레이던 마음도 한풀 꺽여 무의식 적으로 수업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암.....”
그 덕에 잠이 왔다. 나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없는 일이었지만 수강도 여간 지루한 것이 아닌지 하품을 하며 졸고 있었다. 선생님도 점심이 금방 끝나서 그런지 아무런 탓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 아이들 중 잠을 자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제지가 없는 것을 알고는 편안하게 잠을 자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잠이 오는 것을.
“학교라는 게 이렇게 지루한지 몰랐어. 그런데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것도 체험해 보려고 남는 거야?”
“뭐, 그렇지....오늘 하루뿐이겠지만, 조제현. 끝까지 학교 안 왔어...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것같다. 선생님한테 주소 물어서 찾아 가 볼까?”
“됐어. 내일은 오겠지.”
지금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치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의 6시 30분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자율학습이 시작될 것이다. 다행히 이 학교는 자율학습이 정말로 자율적이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날에 자율학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보통 싫어서 가는 게 정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
자율학습은 단순했다.
칸막이 있는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양 옆이 가로막혀 이야기 할 생대도 없었다. 다만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지루하게 잠을 촉발시키는 볼펜이나 샤프를 열심히 굴리는 소리였다. 사각사각이는 소리에 저절로 잠이 오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잠을 자지 않는 듯했다. 오늘은 이 문제 만을 꼭 풀겠다는 진념인지. 아니면 라이벌에 대한 경계감인지, 아무튼 모두들 열심이었다.
딸깍ㅡ또르르르
마침 누군가 샤프하나를 떨구었다. 멀리까지 굴러 가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짜증 섞인 시선과 질시어린 표정으로 그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의 발 밑 까지 굴러온 사프는 약간 낯익었다.
나의 발밑까지 굴러온 샤프를 집기 위해 나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수강....무슨 짓이야....”
그 사람의 정체는 이수강...약간의 한숨이 나오며 얼른 샤프를 주워서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석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자....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가는 건데....”
“그래....왠지 힘도 없고...”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짜증 섞인 눈빛을 보고서야 조용히 하고 야자실을 나와 버렸다. 밤이라 그런지 상쾌한 공기와 함께 우리들의 기분을 날려 주는 듯했다. 내일은 꼭 제현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은 3일 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제현의 눈빛은 반가운 것이 아니라 무슨 원수를 보는 눈빛이었다. 나의 준비되어 있던 인사말이 무안해 질정도의 싸늘한 말이 우리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수강이의 갑작스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줄 알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착각이었다. 그 말을 들음으로 해서.....
-적에게 베풀 친절 따위는 없다.
그 말 뒤에는 재석을 구타하는 장면이 우리들의 머릿속에 틀어 박혔다. 그것은 제현과 우리들의 첫 번째 만남이 아닌 두 번째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제현에게 공포를 맛보고 말았다. 제현의 환상이....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자상했던 제현, 말없이 친절을 베풀던 제현의 환상이....마치 악의 화신이 되어 돌아온 듯했다. 우리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날 정말 제현은 무서웠다.
외전 - 제현을 만나기 까지(수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