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그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중간계와 마계의 결계인 다크 문(Dark moon)을 열 자니요!”
금발의 여인이 직 사각형의 거대한 탁자를 내려치자 강한 진동과 함께 탁자는 움푹 패여 버렸다. 인간의 괴력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금발의 여인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위의 남녀들을 노려보며 자리에 앉았다.
직사각형의 탁자의 끝에 위치한 한 남자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과 무엇이든 없애 버릴 듯 한 기운이 몸에서 뿜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찮은 용족의 계집이 망발이 심하구나, 주신이 계신 자리에서 무슨 짓이냐!”
움찔
검은 머리칼과 검은 복장과 붉디붉은 눈을 가진 남자가 말하며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남자의 기운역시 만만치 않은 것인지 금발의 여인은 약간 몸을 떨며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 하고 있었다.
“주신, 카르디스여 어찌 저런 하찮은 신의 노예를 이런 자리에.....”
“그만하라. 데카스 D.D 클라우드....”
순백의 머리칼과 순백의 옷을 입고 있는 주신이라고 불린 자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하자 좌중은 다시 조용해져 버렸다. 데카스라고 불린 마족처럼 보이는 남자는 마족중의 마족, 마왕과 마황의 상위 존재인 마신이었다. 그 역시 주신보다는 아래였던지 약간 움찔 거리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 지저스는 이 지루함을 깨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열려 한다. 그건.....”
“마계의 문을 열어 중간계를 멸망시키고자 한다. 비록 나는 창조신에 의해 만들어 존재, 허나, 이 세계는 나의 것....그 누구도 나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다.”
주신인 지저스의 말에 데카스는 작은 웃음과 입가의 작은 주름이 잡히며 자신의 앞에 있는 용족의 여인을 보며 입을 씰룩 거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순간 좌중은 들 썩이며 놀란 듯이 주신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들을 창조한, 주신이기에 작은 불만을 표출 할 수 없었다.
“주신 지저스여....그건 세계와의 약속을 저버리시는 것입니다. 어찌, 차원간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하십니까. 부디....부디, 재고 해 주십시오.”
“하찮은 용족, ‘제이 G.D 세인트’ 어찌, 주신인 나의 뜻에 반발을 할 수 있는 가. 이건 나의 작은 유희(게임)를 위한 세계 일 뿐이다.”
용족인 제이가 나서서 주신의 뜻을 막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더욱 주신의 뜻을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어찌 하여, 주신이라는 당신이 차원의 균형을 무너뜨리는지는 모르겠으나, 후회 할 것이오.”
“하하하! 용족에 이어, 명계의 심판자인 네놈 따위가 어찌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하찮은 심판자여, 소멸로 용서를 구해라!”
강인한 얼굴과 촘촘히 손에 박힌 굳은살로 뒤덮인 자가 조용히 주신을 노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주신은 손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몸속에 조용히 있던 기운을 끌어내며 앞으로 뻗으며 중얼거렸다.
“사라져라.”
솨아아아악!!
“후회할 것이오....주신이여.”
단 한마디의 말로 당당히 주신의 의견에 반하던 자의 비참한 최후였다. 점점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신들은 움찔 하며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다만, 용족의 제이는 주신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신, 당신은 후회 할 것이다!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명계를 관장하는 신을 소멸시키다니!”
“하하, 명계의 신이야, 차기 후계자에게 넘기면 될 것이고....네년의 종족도 처리해야, 재미있는 유희가 될 것이야.”
주신 지저스의 말에 그녀의 종족은 대륙력 1000년, 소리 소문 없이 봉인이라는 이름하에 여섯 가지의 신기라는 열쇠를 남기고 작은 구슬이 되어 영원한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용족의 신인, 제이 G.D 세이트는 타 차원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버렸고 명계의 차기 후계자는 선임이 어떻게 된 지도 모른 체 묵묵히 명계라는 거대한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하하! 앞으로 1천년 후, 유희는 시작될 것이다! 데카스....이 지겨운 세상을 소멸 시켜라....실망시키지 말도록....”
“예, 후후후”
“드리어, 드디어, 이 갑갑한 라덴계라는 틀을 벗어나 드넓은 차원을 가질 발판이 마련 되려하고 있구나....하하하! 감히 창조주 따위가 이 좁은 차원을 나에게 주다니....으드득”
마신 데카스는 조용히 답을 하고는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혼자 남은 주신 지저스는 조용히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보며 외치고 있었다. 자신의 어버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주를 입에 담으며 이를 가는 모습이 원수를 생각하는 자의 모습 같았다.
주신은 작게 손을 내 저으며 중간 계에 작은 빛을 내 뿜었다. 그러자 그 빛은 작은 섬광이 되어 대륙의 중심부인 엡솔루트 가든으로 내려 꽂으며 작은 주문 같은 것을 외고 있었다. 또한 옆에 포박되어 있는 용족 제이에게 다가 가며 예의 섬광을 뿌리며 몸을 틀며 거칠게 나가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주신 지저스의 어깨가 약간씩 들썩이는 것으로 보아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용족은 봉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천년 후 마족은 발호할 것이다.
더 언더 월드(The Under World, 저승)
죽음, 수많은 사람들의 논란 속에서 많은 상상의 죽음이 있다. 많은 사람들 중 두 가지의 의견이 분분하다. 죽음을 혹자들은 삶의 끝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환생, 즉, 또 다란 삶의 준비 단계라고도 하기도 한다. 나는 두 가지의 의견 중에서 후자의 의견을 믿고 있다.
그래야 녀석의 부탁이라는 것을 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무너져 가는 몸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죽음이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인가?’
세크리파이스의 영향으로 나의 몸은 조금씩 소멸해가고 있다. 제현은 자신의 몸을 보며 생각에 빠져 들었다. 점점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자신, 기묘한 떨림과 이 상황은 약간 떨떠름하기도 했다. 진정 이 느낌이 죽음이라는 고통인가라는 착각도 들었다.
제현, 자신의 생각이었던 죽음이라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렵거나 삶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다. 다만, 녀석이 부탁한 것으로 인해 두근거릴 뿐이었다. 녀석의 모습도 보지 못했지만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순간 몸은 편안해 졌다.
자기희생으로 죽은 제현의 모습은 너무나 성스러웠다. 제현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육체이탈, 즉 영혼상태에서 모든 상황을 감상하고 있던 자신은 허공을 보며 애달프게 중얼거렸다.
“부모님도....이런 느낌을 겪은 것인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인자하고도 애달픈 남자와 여자의 잔영,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비친 것이다.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은 제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스으윽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현은 손을 뻗으며 부모님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스으윽, 제현의 손이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대로 통과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눈에 비치는 여러 명의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보이며 차래로 사람들의 몸을 통과해갔다.
그제야 제현 그 자신은 진정으로 죽음을 실감했다. 촉감도 생기도 느껴지지 않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애달픈 듯 한 눈길을 주었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녀석들....이젠 만질 수도 없는 것인가?”
제현은 점점 사라져 가는 수강과 가연, 제이, 프로얀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현은 조그마한 인기척을 느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과 혼자임을 아는데도 그곳으로 시선이 가고 있었다. 그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
시선의 끝자락에 자리 한곳에는 한 사내가 무심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의 모습은 푸르스름하며 뱀파이어의 얼굴처럼 피가 통하지 않는 듯, 새하야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얼굴을 가졌고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게임 속에서 보아왔던 언데드라는 존재처럼 움직이는 소리에 맞춰 발소리만 들릴 뿐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눈가에는 게임의 페인처럼 푸르스름한 다크 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고 산발의 백발이 있었고 입술역시 새파랗게 떠 있었다. 턱선은 매우 가늘었으며 눈동자는 사나운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눈빛에 겁에 질릴 테지만 수많은 몬스터와 고수들과의 전투로 인해 그저 사나운 눈빛이구나? 라는 생각만 들뿐 놀란 기색은 하지 않았다. 또한 검은 도포와도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으니 척 보기에도 저승사자 구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신이 조제현이라는 자인가?”
“그런 당신은 저승사자인가?”
제현과 저승사자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검은 도포를 착용한자가 약간의 끄덕임으로 긍정을 표했다. 제현 역시 약간의 끄덕임으로 표하고는 조용히 서있었다.
사라락
“명부첩(名簿牒)에 따르면 당신은 1990년생 11월 13일에 태어났다. 맞는가?”
끄덕.
“이름, 조제현(曺帝鉉) 맞는 가?”
“맞다.”
꿈틀
제현은 고분이 녀석의 옆에 서서 녀석의 질문에 꾸준히 대답과 끄덕임으로 표했고 마지막으로 이름이 맞는 가를 답하고는 입을 닫아 버렸다. 저승사자는 마지막의 반말이 거슬렸는지 창백한 얼굴임에도 ‘나 흥분했다‘라는 식의 얼굴을 표하고 있었다. 제현은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따라오시오. 저승으로 갑시다. 모든 절차가 끝났으니.”
“저승이라.....나는 할 일이 많아. 그 녀석의 부탁을 들어 줘야 하니까. 갈필요가 있을 까?”
꿈틀.
녀석은 명부첩을 덮어 버리고는 나의 앞에 서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제현은 녀석의 말을 듣지 않고 팔짱을 끼며 말하는 것으로 녀석의 말을 거부했다. 그러자 녀석은 음산한 웃음을 띠고는 입을 열었다.
“웃기는 군. 네놈이 얼마나 이승에서 잘났는지는 몰라도, 이곳은 죽음의 땅. 네놈의 의견 따위는 애초에 존재 하지 않는다. 따라 와라.”
녀석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현은 녀석의 말에 몸의 마나를 끌어 모아 보려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진실로 죽었다는 것을 느끼며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갔다.
저승사자는 앞의 검은 동굴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벽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제현도 잠깐 주춤 거리며 망설였지만 귀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벽에 손을 가져다 대며 저승사라의 뒤를 따랐다.
스스스스스
벽을 통과하자 완벽한 어둠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간간히 스산한 바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생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환경에 약간 흠칫 거린 제현은 앞서 가고 있는 저승사자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얼마나 저승사자의 뒤를 따랐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이라는 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제현은 오직 저승사자의 뒤를 따랐다. 그러기를 수십, 수백시간이 지난것 같은 느낌이 들자 드디어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어둠을 뚫고 옅은 빛이 뿜어지자 ‘우우우우‘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착각이 들었다. 어느새 주위는 차갑고도 자욱한 안개가 깔려있었고, 눈앞에는 좁은 거리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지옥의 형상을 한 지옥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으로 공포감이라도 조성하기라도 하는 듯이 작은 비명소리도 들려오자 제현은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날렸다.
“지옥도 별거 아니군.”
“저게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곳, 죽음의 길에서 도망치다 방황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그냥 평범한 길에서 방황하고 있지...저 자욱한 안개는 영체, 그러니까 귀신의 몸의 방향감각과 사고 능력을 저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
꿀꺽.
제현은 저승사자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이 잘못 됐다는 것을 알고는 작게 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저승사자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따라 오지 않는 다면 저 녀석들처럼 길을 잃고 영원히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녀석의 스산한 말을 들으며 제현은 좁은 길을 통과했다. 그리고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인간의 땅처럼 흙내 음이 나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다 온 건가?”
“웃기는 군, 저승의 문턱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다.”
저승사자는 그런 말을 하고는 다시 휘적휘적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인간처럼 땅을 디디며 걷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줄곧 공중에 떠서 이동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지상에 착지해 걷고 있었다.
제현 역시 공중에 떠서 이동했기에 오래간 만에 땅을 밟는 다는 느낌으로 바닥에 내려섰다. 하지만 발이 땅을 뚫고 서서히 가라앉자 저승사자는 비웃음을 띄며 말했다.
“몇몇의 영혼들이 꼭 흉내를 내지, 인간들은 알 수 없다니까. 처음 보는 것은 꼭 따라 한다니까. 크크크.”
조롱하는 듯 한 저승사자의 말에 발끈했지만 아무능력도 없고 나약한 자신을 보고는 입을 다물며 녀석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9서클의 대 마법사가 고작 저런 녀석에게 조롱을 들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며 살심이 들었지만 어쩌라, 지금은 귀신, 즉 영혼의 상태 인 것을.....
‘젠장, 정말 짜증나는 군.....죽이고 싶다.’
제현은 속으로 살심을 참으며 녀석을 노려 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스스스스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지며 녀석의 등을 옥좌하는 게 아닌가?
“그, 그건 도데체....? 어찌 영혼의 상태에서 살기를....”
“하하하! 길이나 안내 해라, 멍청한 녀석!”
제현은 살기는 그대로라는 생각에 만면에 웃음꽃이 피며 녀석에게 길을 재촉했다. 그래봐야 살기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것 크나큰 오산이다. 살기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 가? 그것처럼 과다한 살기를 내 뿜는 다면 평범한 사람이나 저런 녀석쯤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제현이었다. 그리고 저승으로의 길이 편안해진 제현이었다.
더 언더 월드(The Under World, 저승)
‘얼마나 가야 하는 거야.....’
제현은 슬슬 지겨워 짐을 느꼈다. 색다른 광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와는 달리 같은 길, 같은 모양의 벽들로 가득 차 있는 길이 슬슬 지겨워 진 탓이다. 하지만 그때, 저승사자가 앞에 보이는 새빨간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이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생사(生死)의 문이다. 그리고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죽은 자의 강이라고 불리는 곳이지...그곳을 지나야만 진정한 명계라고 하는 심판의 땅으로 들어가 환생과 업을 청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군.”
새빨간 생사의 문을 지나자 커다란 평야가 있었고, 평야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들은 강둑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배에는 저승의 뱃사공과 수십의 영혼이 한 번에 오고 갈수 있을 정도의 큰 배가 있었다.
작은 어선 같은 크기였기에 타고 갈수 있는 수는 대충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유일하게 타고 갈수 있는 장치가 그 배였기에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는 자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현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자신이 지나온 생사의 문 외 에도 두 개의 생사의 문이 더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제현은 호기심이 동했다. 그 생사의 문에서는 각인각색의 인종이 걸어 나오고 있었고 또한, 이상하게 생긴 인간도 눈에 들어왔다.
“각인각색(各人各色)....장관이군.”
“장관이고 나발이고, 나에게는 지겨울 뿐이다. 어쨌든 순번이나 지키도록....”
제현을 인도하던 저승사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다. 처음 볼 때도 신기했지만 점점 몸의 기척과 신형이 사라지는 것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몸이 투명해지며 흩날리듯이 사라지는 모습은 평생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자, 줄이나 서 볼까?”
그 모습을 본, 제현은 줄의 제일 끝으로 자리로 옮겼다.
한참을 기다려도 배를 타는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꽤 오랜 시간을 더 기다려야 제현의 차례가 올듯했다. 그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제현은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었다. 동양인, 서양인, 흑인, 백인, 황인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최근 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제현이라도 이정도의 사람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현은 그렇게 주위를 살피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 곳의 문에서 두 곳은 인간만이 나오고 있지만 한곳의 문에서는 귀가 긴 사람, 즉, 엘프처럼 보이는 자가 들어오고 있었고 키가 작은 자, 즉, 드워프처럼 보이는 자도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현은 약간의 의문이 들어 옆으로 지나쳐 가는 엘프 처럼 보이는 자를 붙잡았다. 그자는 초록색의 눈동자와 초록빛이 나는 머리칼을 소유한 미남이었다. 키도 190정도로 보였기에 제현은 약간 고개를 들어 말을 걸었다.
“혹시 엘프?”
“나를 아나? 인간?”
“그냥 궁금해서 붙잡았습니다.”
“죽으나 사나, 역시 인간들이란.”
제현은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붙잡았지만 엘프의 남자는 냉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그것을 노칠 사람이 아닌 제현은 모든 것을 들었다. 녀석의 말하는 투나 행동을 종합 해볼 때 엘프가 맞았다.
또한, 세 개의 문중에서 가운에 있는 것이 엘프가 나온 곳이었고, 그 왼쪽에 있는 곳이 제현의 세계가 있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른편 가장자리 구석에 있는 곳에서는 동양인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또한 이상한 점은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과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일정한 발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간혹 어깨라도 부딪힐 낫이면, 사나운 얼굴을 하며 째려봄은 물론 살기까지 내비치는 것이 여간 내기가 아니었다.
“네 녀석, 카르마(이승의 업 : 業)가 지독할 만큼 높군.”
“뭐라고?”
“모르나 본데, 인간. 모든 카르마를 청산 하려면 최소 900년 이상은 지옥에서 보내야 겠군...후훗”
엘프는 그런 말을 하고는 천천히 제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분명 제일 끝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라는 작은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어이, 거기! 줄을 이탈 하지 마라!”
저승사자는 줄밖으로 약간 삐져나온 제현을 보자 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제현을 한번 훑어보더니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이젠 너무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영혼이 들어오고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 지겨울 뿐이었다.
줄은 굉장히 느렸다. 끝도 없이 수많은 영혼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배의 속도 역시 느린 탓에 줄은 끝도 없었다. 아무래도 금방은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후우ㅡ
제현은 한숨을 풀 내쉬었다.
“이래서 언제 저승의 문턱을 밟아 보냐....”
새치기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엄연히 규칙이라는 틀과 저승사자의 사나운 눈초리를 더 이상 보기 싫었기에 묵묵히 서 있었다. 자신의 살기에 길을 열어 주겠지만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자는 생각이 많았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무엇보다도 현생에서 깨달은 것이,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비겁하다! 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무엇보다도 제현 그, 자신도 당해 보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묵묵히 서 있었다.
“야이 개 세끼! 누가 새치기를 하래!!”
퍽!!
하지만 제현의 생각과는 정반대로의 행동을 하는 자가 하나가 있는 듯했다. 뒤에서 들린 시끄러운 소리에 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을 향했던 몸은 뒤쪽으로 향해 틀어졌다. 서서히 앞으로 이동하는 하나의 영혼, 단단한 체격에 투박하고 무쇠 같은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에 맞고 날아간 영혼은 바닥에 넘어지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영혼 상태라도 물리적인 공격이 되는 것인지 이따금씩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안면은 얼마나 흉악하게 생긴 것인지 그 외모를 본 다른 영혼들은 슬금슬금 새치기를 하는 사내에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비켜, 비키라고!”
그 흉악한 녀석이 제현의 뒤 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십의 눈동자, 아니, 모든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슷한 덩치였지만 단단한 체격, 흉악한인상의 사내와 제현, 누가 보아도 제현이 밀릴 입장이었지만 제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제현은 조금씩 옆으로 밀려나는 자신의 몸을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사내는 제현을 보고 깜짝 놀라며 뒤로 약간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커지는 눈동자, 아무래도 그 사내는 제현을 아는 듯한 눈초리였다.
“조...조제현!!”
그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제현을 가리키며 놀라고 있었다. 녀석은 반듯한 무복 차림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의 손에 죽은 중국 놈 중 하나였던 모양이었던 것 같았다. 어찌 시간이 지난 후에 이곳에 온 것인지 몰랐지만 저승이니 그러려니 생각한 제현이었다.
“어째서, 멀쩡하게 살아서 우리, 불사교를 괴롭히던 녀석이 이곳에!”
“......?”
그는 놀라워하며 외쳤다. 그 말에 줄을 서고 있던 많은 영혼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또한 깜짝 놀라는 영혼도 많았다. 대부분 중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제현은 절대적인 적이었고 피해야 할 상대였다. 현생에서의 능력은 능히 한 지역은 물론 거대한 땅 덩이의 중국의 지도까지 바꿀 정도였으니 말 다한 것이었다.
“네놈, 누구냐?”
“크윽! 이 놈이!”
파악!!
그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이 제현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현은 옆으로 살짝 물러서며 사내의 손바닥을 피해내며 다시 물었다.
“네놈 누구냐....”
싸늘한 제현의 말에 더욱 열이 뻗힌 것인지 연속으로 제현을 공격했지만 제현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고 있었다.
“허억...허억...! 쥐새끼 마냥 잘도 피하는 군. 죽은 뒤에는 능력을 사용 하지 못하는 것인가? 조제현?”
“그러니까 네놈이 누구냐....워낙 기억에 남는 녀석이 없었던 지라....아마 네놈도 찌꺼기 같은 녀석이겠지?”
“이 놈! 불사교의 천유! 천유를 잊은 것이냐?!”
불사교의 천유라면 제현에게 작은 수모를 주었던 놈이었다. 불사교에서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의 실력도 월등했지만 제현에게 각성이라는 작은 길을 열어 주었던 녀석이었다.
그는 유성마검이라는 검법을 익힌 자였고 상당한 경지에 올랐기에 불사교 내에서도 높은 직책과 명성이 뒤를 이르고 있었지만 마유라는 당문의 암기술을 배운 여자와 함께 제현의 학교에 찾아와 시비를 걸던 녀석들이었다.
산공독에 당해 있던 제현이었지만 극적으로 녀석들의 도움으로 각성이라는 작은 힘을 얻음으로써 녀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었다. 그 후, 천유라는 자에게는 제현은 잊을 수 없는 원수였다.
게다가 자신의 손을 잘라 버린 장본인 역시 제현이었기에 불사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까지 갔었다. 결국, 마지막 보옥전쟁이라는 곳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죽고 말았다.
“개 새끼! 비록 현생에서는 졌지만 저승에서는 엄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죽어라!!”
천유의 주먹이 제현에게로 쏟아졌다. 생전의 무공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그의 손놀림은 마나가 없음에도 빠르고 정확하게 사혈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제현은 이미 그의 움직임을 알고는 작게 목을 감싸며 다른 손으로는 녀석의 허점인 오른팔, 즉, 휘두르는 녀석의 어깻죽지를 향해 오른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퍽!!
“이....이럴수가!”
가볍게 천유의 주먹을 막은 제현, 천유는 그런 제현을 보며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제현이라고 할지라도 죽은 상태에서 마나를 끌어 올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제현에게 공격을 했지만 이렇게 너무나 쉽게 막힌 것이다.
게다가, 녀석의 눈에서는 현생에서 볼 수 있었던 붉은 빛이 감도는 눈빛을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 버릴 듯 한 느낌을 받았고, 순간 움직일 수 없었다. 순간의 찰나에 일격을 허용한 천유는 어깨쪽의 뼈가 탈골되며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어떻게! 마나가 없음에도 나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지?”
“네놈 따위가 휘두르는 팔에서 살기의 흐름이 보일뿐...”
“이 놈!”
천유는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절기인 유성현신(流星現身) - 섬(閃)의 수법으로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처 올렸다. 워낙 빠른 검술이었기 때문에 주먹 역시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이미 영혼이 되어 생전의 잘린 팔로 인해 흩틀어져 있던 몸의 균형은 온데간데없었기에 천유의 주먹은 강맹했고 빨랐다.
비록 마나의 힘을 빌릴 수는 없지만 생전의 검로와 펼치는 유성마검은 일반인의 주먹보다 훨씬 강했다.
“아까도 말했을 텐데....살기가 보인다고.”
짜아악!!
“크으으윽”
제현은 슬쩍 천유의 주먹을 피하며, 손바닥을 쫙 펴며 녀석의 뺨을 때렸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위의 영혼들도 모두 들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다른 불사교도들도 약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으으으으ㅡ
바닥에 쓸어지는 천유의 왼팔을 들어 올린 다음 나는 인정사정 볼것없이 그대로 수직으로 발을 내려 찍었다.
우지직!!
“크아아악!!”
팔은 기이한 각도로 틀어지며 꺾여 버렸다. 한마디로 잘 부러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듯한 각도였다. 천유는 부러진 왼팔을 부여잡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은 마치 영혼이 소멸하는 듯 한 비명이었다.
“아아아악!!”
“시끄럽다. 더러운 입, 다물어라”
퍽!!
제현은 다시 다리를 들어 녀석의 안면에 위치한 입을 그대로 찍어 눌러 버렸다. 그러자 녀석은 부르르 떨던 몸이 천천히 멈추며 기절해버렸다. 그런 제현의 잔인한 처사에 모두들 크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간혹 엘프같은 이계의 족속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계의 인간도 역시...’ 라는 말을 내뱉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짜증나는 군!”
“무슨 일이냐!!”
저승사자들은 시끄러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영혼의 상세한 상황설명에 저승사자는 간략하게 추리를 할 수 있었다. 여러 영혼의 말로는 제현이 한 불쌍한 영혼을 괴롭혔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 우리들과 같이 가야겠다.”
제현은 모든 상황 설명을 듣고는 불사교 녀석들을 한차례 노려 본 후,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군. 저 녀석들은 같은 동료야. 그것만 듣고 내가 네놈들을 따라 갈 것 같아? 나는 여기서 배를 기다릴 테니, 끌고 가려면 네놈들이 한번 데려가 보시지!”
제현은 좋지 않게 돌아가는 상황임에도 당당하게 외치며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미 궁지에 몰린 상황이기에 더 이상 눈치 볼 필요도,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었다.
“저....저놈이!!”
저승사자들은 분노하며 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점점 않 좋게 돌아가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리는 제현이었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 진 물인 것을.....
더 언더 월드(The Under World, 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