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269)

“하아ㅡ 좋구나.”

제현이 무간지옥에 온지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물론 그동안 놀고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몸의 타박상과 기운이 없는 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물론, 가벼운 운기토납법으로 기운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삼일 전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 기운들은 끌어 모아, 쌓아 올릴 수는 없었지만 대단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이, 자네, 오늘도 운기토납법인가?”

“그래, 뭐 몸의 상태로 봐선 이정도 까지 해도 될 거 같지만.....너는 역시 풍운신검을 수련했겠지?”

나무 그늘아래에서 좌공을 취하고 기운을 느끼던 중 풍운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도 녀석은 풍운신검을 연습하고 온 모양이었다. 광살마검이라는 검술도 있지만 이제는 그 무공을 더 이상 수련 하지 않는 단다. 아마, 그 검법에서 나오는 사기가 자신의 정신을 갉아 먹는 것이 두려웠던지 풍운신검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그건 됬고, 오늘은 네 몸속의 혈도를 봐준다고 했으니....눈을 감고 바른 자세로 앉아 보게.”

몇 일전 제현은 풍운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바로 기운이 흘러가는 혈들을 정검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법사 때와는 다르게 기운이 흘러가는 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럼 시작하겠네,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게....”

풍운지는 천천히 제현의 뒤에 좌상을 했다. 그리고 제현의 상의를 벗겼다. 얇은 옷이 벗겨지자, 제현의 상체가 들러냈다.

타타탁ㅡ 탁탁ㅡ 탁탁ㅡ

풍운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현의 등을 타혈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타혈하자, 제현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토해냈지만, 풍운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그의 타혈이 끝나자 풍운지는 기운을 불어 넣어 운행시켰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인지 혈문이 완전히 막혀있어 곧 거둬들여야 했다.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당연히 혈문이 열려 있어야 했다. 혈문이란 기본적으로 내공이 흘러가는 방향의 문인데, 그 문이 닫혀 있다면 운기를 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혈문이라는 것이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운을 끌어 모았다면 필히 몸이 터져 죽었을 터였다.

“자네, 어찌 된 몸이 혈문이 닫혀 있는 가? 마치 무슨 특이한 신체를 모는 거 같군. 하핫, 하지만 걱정 말게, 한 삼일 정도면 혈문을 열수 있을 듯하니. 아프더라도 참게”

끄덕ㅡ

제현은 자신의 몸이 않좋다는 것을 알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마법을 사용할 때 느꼈지만 자신의 몸에 흐르는 기운이 빠르게 유동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지만 혈문이라는 것이 닫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풍운지가 해결해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살작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네. 참게나....”

풍운지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등의 혈도를 빠르게 타혈하며, 기합을 한차례 터뜨렸다. 강한 기합과 함께 솟아오르는 푸른 기운이 풍운지의 손에 맺히며 쌍장을 등에 가져다 댔다.

 “크윽.....”

주르륵

“입을 열지 말게....위험 할 수도 있으니.”

제현은 갑작스런 강한 기운이 등을 강타하자 신음을 내며 입가에는 붉은 피가 조금씩 흘러  내리고 있었다. 풍운지 역시 고통스러워하는 제현을 보며 약간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은 뒤 걱정스런 목소리로 제현의 행동을 제지했다.

풍운지의 쌍장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청기(靑氣)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한차례 제현을 타격했던 손이 다시 한 번 더, 타격을 하자, 자연스럽게 제현의 등으로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그 기운은 풍운지의 의지에 따라, 제현의 혈도를 따라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풍문(風門)-상단 척주 주위에 있음-를 중심으로 두문(頭門), 수문(手門), 족문(足門)에 이르기 까지 온몸으로 풍운지의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그때마다, 제현은 신음을 토해내며 피를 토했다. 게다가 눈썹을 꿈틀거리기 까지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막혀 있어.....’

풍운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였다면, 단단해 보통의 고수라도 일주일은 넘게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제현은 부드럽게 막혀있었기에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ㅡ 오늘은 이정도로 끝내지...너무 과하게 해도 안 좋을 수도 있으니....”

풍운지는 기운을 회수하며 쌍장을 등에서 때어냈다. 풍운지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등으로 땀을 훔치며 편안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제현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잘 자두라고....나중에는 더 고통스러울 지도 모르니....”

풍운지는 제현을 집안에 가지런히 눕히고는 밖으로 나왔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일까? 간간히 들어오던 빛이 어두워지며 절벽아래는 깜깜한 어둠으로 변했다. 지옥의 하늘은 어둠이었다. 달이라고 해봐야 낮에 보던 것이 식어버린 후의 모습이기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신비로운 별도 없었으며, 차가운 기운만 맴돌 뿐, 어떤 신비로움도 없었다.

“으음ㅡ”

제현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상쾌한 공기가 한가득 몸 안을 맴돌았고,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며 머릿속은 시원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찰라, 제현은 한 가지 바뀐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약간 몸이 가벼워 진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벼워진 만큼, 날아 갈 듯 한 기분에 절로 몸이 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의 마나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어이, 자네 이제 일어났는가? 상당히 오래도 자는 군. 꼬박 반나절은 더 잤을 걸세....”

제현이 집안에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며 주위를 둘러보자, 풍운지는 반갑다는 듯이 옷을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자는 시간과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련에만 매진하는 풍운지 였기에 당연시 되는 모습이었다.

“하아ㅡ 이곳을 본지도 일주일이나 흘렀지만 볼 때마다 놀라워...”

높은 절벽 사이로 늙은 나무가 우거져있었고, 높은 절벽위에서 내려오는 한줄기의 양광은 제현이 들어가 있는 집을 비추고 있었다. 게다가, 시원한 폭포수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은 제현의 정신까지 맑게 하고 있었다.

“자 오늘도 시작해볼까? 자네, 어서 웃옷을 벗도 좌공을 취하게, 한가롭게 경치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야.”

제현은 풍운지의 말에 허탈감을 느꼈다. 이제 막 일어났는데, 또 다시 그 억척스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니 몸이 부르르 떨려온 것이다. 게다가 풍운지의 즐기는 듯 한 부드러운 표정, 그 표정은 보는 순간 제현은 속으로 ‘제기랄!’이라는 말이 스쳐지나갔지만 어쩌겠는데. 다 자신의 몸 좋다고 하는 일인 것을....그렇게 단잠을 자고 깨어난 제현의 하루일과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련은 실전 처럼, 실전은 수련 처럼

헉헉ㅡ

제현의 손톱은 깨지고 그곳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찢긴 자국과 자잘한 상처들이 여기저기에 지저분한 흙에 뒤덮여 있었다. 풍운지는 옆에서 뭐하느냐고 물었지만 제현은 묵묵무답으로 절벽을 타고 있을 뿐이었다.

“어이, 자네 위험하게 무슨 짓인가?”

“보면 몰라? 수련이다. 수련!”

제현은 절벽을 타고 있었다. 그이유가 어떻게 됐든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위험천만한 절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절벽을 오르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바로 밑은 깊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기에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풍운지가 뚫어준 혈문 덕분인지 몸의 상태역시 최고였다. 혈문을 뚫은 것이 어제가 마지막이었으니, 이젠 더 이상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지만 제현은 고통을 스스로 당하고 있었다. 물론, 수련이지만, 보는 사람입장에서는 미친놈이라고 생각 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수련 코스였다.

“자네, 그게 수련인가? 근력에는 도움이 되겠군. 하지만 자네는 상당히 단련된 몸인데 어찌 그런 수련을 하는가? 몸속의 내공이나 모으시게!”

풍운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외친 것이지만, 제현은 그 말을 듣고 오기라도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듯이 끝이 안 보이는 절벽의 윗부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선 한손에는 틈이 있는 곳으로 손을 집었고, 반대 손으로는 몸의 균형을 지탱하기 위해 높은 곳의 틈을 잡고 있었다.

빠스락!

몸을 지탱하던 절벽의 틈이 갈라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몸의 균형을 잃은 제현은 여지없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빠르게 물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풍운지의 몸이 흐릿해지며 빠르게 제현이 떨어지는 지점인 절벽을 향해 발을 튕구었다.

풍운지가 펼친 것은 궁신탄영(弓身彈影)

몸을 활처럼 휘게 해서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몸을 이동하는 최상승의 경신법이었다.

사실 궁신탄영은 모든 무림인 잘 알고 있는 신법이었다. 부드러운 유연성, 적절한 내공을 순간적으로 나누어서 시전 해야 하는 정교함이 필요한 궁신탄영은 익히기 까다로운 만큼 효용성도 그만큼 높은 신법이다.

게다가, 그 신법은 제현을 공격했던 피풍의의 사내도 처음 제현을 스쳐지나갔을 때의 신법이 바로 이 신법이었다.

탓!

궁신탄영의 신법으로 바닥을 살짝 퉁구며 쏘아져 나간 풍운지는 절벽을 향해 다시 발을 딛고는 그대로 제현을 받고는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제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내공을 키우라고, 내공이 뒷받침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한 육체라도 무너지기 쉽네....육체적인 수련도 좋지만, 정신적인 수련과 육체적인 수련은 같이 병행하게.....”

“마치 사부 같군!”

풍운지의 여러 설명은 탁월했다. 가장 효율적이며, 빠른 진보를 볼 수 있는 정파의 수련법이지만, 제현은 요지부동, 자신의 방식으로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말로 노가다근성, 제현은 셀리온 월드를 할 당시부터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독불장군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가. 중원의 고수인 풍운마검 풍운지, 비록 잘 알지는 못했지만 방금 전의 신법을 보아도 상당한 실력임을 알기에 제현도 순순히 수긍하는 눈치였다.

“충고 고맙네. 그러도록 하지.”

제현은 가볍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등뒤에 감추어져있던 제현의 손에서는 연신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풍운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현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친 듯하니, 손을 내어 보게.”

제현은 풍운지의 말에 급히 손을 뒤로 감추었지만 늦은 뒤였다.

“물가에 가서 간단히 씻고 기다리게, 간단한 금창약을 준비할 테니.”

풍운지는 신법을 발휘하며, 근처의 야생초를 꺾어 오더니, 자신의 내공으로 꽃잎을 제외한 모든 것을 없앴다. 그리고 그 잎을 으깨며, 즙을 만들어냈다. 진한 녹색의 향기로운 즙이 만들어지자, 제현의 손을 끌어 올리며 상처가 난 부위에 바르고 있었다.

“크윽ㅡ 왜 그리, 관심을 쏟는 거냐. 이정도 상처쯤은 자연히 나을 수 있는 것을....”

“뭔가 착각하고 있구만, 자네는.....상처 부위에서 진동할 피 냄새를 맞고 이곳에 요괴들이 몰려올지 모른다네...게다가, 지옥의 기운에는 사기(死氣)가 많기 때문에 자칫 고질병이 도질 수도 있지. 이렇게 약초로 바른 다면, 그런 걱정도 줄어들걸세.......”

약초의 때문에 생기는 쓰라린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제현은 고개를 들어 풍운지를 쳐다봤다. 마치, 제현의 아버지와 같은 자상함과 매일 같이 부드러운 인상만을 고수하는 풍운지가 왠지 경계되기 시작한 탓이다. 확실히 풍운지는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근본도 모르는 사람(제현)을 자신의 요새(집)로 초대 하질 않나. 이런 약초로 상처까지 치료해주니 이상한 기분이 든 탓이었다. 또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수련중임에도 힐끔힐끔 보는 것이 보통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혹시...자네, 나의 무공을 배워 볼 생각이 없는가? 아무리 봐도 자네의 자질이 뛰어 난거 같아서 말이네, 혈문을 열 때,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순수한 마(魔)의 기운이 마음에 걸리지만...나의 무공이 아니라도 상관없네, 사부라고 불리지 않아도 좋네, 그냥 자네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이....”

처음 제현은 풍운지가 미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꼴이 계집이 좋아하는 사내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잘생긴 풍운지의 외모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그 꼴이었다.

“흐음....사실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하긴 했어, 혼자서 익힐 만한 게 아니더라고, 만오전서라는 것이....”

제현은 못이기는 척, 풍운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물론, 그를 사부로 두겠다는 것이 아닌, 부. 탁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를 사부라 부를 필요는 없었다.

“고맙네, 고마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성실히 답해주겠네. 약속하지!”

“뭘, 그 정도 가지고. 아무튼 오늘 구해준거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풍운지는 제현을 가리킬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제현의 승낙에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현을 힐끔힐끔 쳐다 본 것도 말할 기회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3계의 중원 무림에서 제자라고는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초보 사부인 것이다. 그만큼 남을 가리키는 생각에 풍운지의 모습은 상당히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예전 못지않은 기상을......그리고 그 피풍의 개자식을....”

제현의 눈동자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마기맺히며 싸늘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 풍운지로써는 모든 것을 듣고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상처로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 틀림없었기에 대충 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마기가 넘실거리는 제현의 눈은 광기에 휩싸이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수련은 실전 처럼, 실전은 수련 처럼

“혹시 만오전서라는 것의 구결을 알고 있나? 아니면 기운을 움직이는 순서라던 지? 무공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네, 이름만으로도 흐름이나, 속성을 알 수 있으니. 알고 있나?”

“흠....마령심법(魔靈心法)....에....선기혈, 자궁혈....”

풍운지의 말에 제현은 생각을 하는 가 싶더니 빠르게 무공의 이름과 기운을 움직이는 순서를 말하고 있었다. 그에 늦어질 세라, 풍운지는 빠르게 제현의 등에 쌍장을 가져다 대며 기운을 주입하며, 제현이 말하는 곳으로 기운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순간 제현은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전체가 아니라 명치부분에서 맴도는 따스한 기운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이 선기혈(璇璣穴)이다.”

편안한 기분이 들며, 정신이 몽롱해져가는 제현의 머릿속에 풍운지의 음성이 들렸다. 예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이질적인 기운에 약간 움찔 할뿐 어떤 고통은 없었다.

“이곳이 자궁혈(紫宮穴)을 지나 심장부위에 있는 옥당혈(玉堂穴)....”

풍운지의 기운은 목 가슴 쪽으로 오더니 서서히 심장근처의 옥당혈에 머물렀다가 다시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심장부근에 있는 영혼의 낙인 근처였기에 망정이지 그곳을 관통해 지나갔다면 만오전서의 무공마저 못 배울 뻔했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구미혈(鳩尾穴)을 통해 지사혈(志舍穴)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유문혈(幽門穴)”

순간 수십 갈래로 흩어졌던 기운이 유문혈을 통해 제현의 배꼽 약간 윗부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한데 뭉쳐지며 둥근 달걀모양으로 뭉쳐졌다. 그래봐야 메추리알보다 훨씬 작은 콩알 만 한 수준이었지만, 이정도면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기운이 합쳐지자 제현의 양 볼이 빨개지며 몽롱한 기분이 더욱 나른해졌다. 그리고 활력이 샘솟고 있었다. 마치 담배를 피우면 순간 몽롱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기운이 몸을 돌아다니다 단전이라는 곳으로 들어오자 활력이 샘솟는 것이었다.

“이상하군....다른 심법보다 혈도의 수도 작은데 몇 번의 대주천을 한 것 보다 더한 효과라니....마공...인가?”

풍운지는 떨떠름한 표정과 놀랍다는 듯이 제현의 몸을 모고 있었다. 자신도 알지 못한 이상한 곳으로 기운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혈 자리들은 하나같이 사혈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제현의 말을 듣고 잘못된 것이 아닌가. 했는데, 제현이 모은 기운을 보니 엄청났던 것이다. 

“역(易)으로 다시 되돌린다니...이런 심법이!?”

풍운지는 모았던 기운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기운을 돌리고 있었다. 제현의 설명에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지만 심법자체가 의심스러웠다. 본시, 심법이라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건만 이 기운은 한 바퀴를 돌면 반대로 다시 돌리라는 말에 기가 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탁월한지 처음의 기운에 두 배 가량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이게 운기인가? 하하!”

“당연하지, 운기를 통해 생기를 증폭시키는 것이 내공심법이다.”

“생기?”

“하핫! 이거, 어린 애를 앞에 놓고 말하는 거 같군. 생기는 기운, 즉, 너의 아랫배에 있는 단전이라는 곳에 있는 것이지.”

제현은 손톱만 해진 기운을 보며 조아라했다. 심장에 있던 기운은 느슨하게 뭉쳐있었다면 이건 엄청난 압축력이었다. 게다가, 조그마한 기운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마나보다 더욱 정순해 보였다. 물론, 풍운지의 도움으로 움직인 거지만, 이제는 혼자서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쿠쿡ㅡ”

제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웃고야 말았다. 이제 드디어 마나를 모은 것이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기운, 제현은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큭ㅡ거리며 웃어젖히고 나머지 손으로는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던지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강해지는 것도 시간문제군!! 하하!”

제현은 단전에 잠들어 있는 기운을 느끼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했다. 제현의 모습 때문이었을 까. 풍운지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 자신의 수련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수련장이라고 해봐야, 야생화가 많은 곳에서 칼춤을 추는 것뿐이지만.....

‘다시 느껴져 온다. 차가운 어둠의 마나가!’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따뜻하면서 차가운 느낌의 어둠의 마나, 즉, 중원에서 말하는 마(魔)의 속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제현은 풍운지가 인도해주었던 곳을 따라 천천히 기운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바른 방향으로.....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를 반복할수록 제현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있었다.

마치, 늦잠을 자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상쾌한 공기를 맞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제현은 눈을 스르륵 떴다. 주위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인지 어두워져 있었다.

꼬르륵ㅡ

“아....마령심법에 정신이 팔려 밥 때를 놓쳤군....쳇!”

씨익ㅡ

배고픔에 짜증은 부렸지만 단전에 있는 기운에 배소를 짓는 제현이었다. 처음부터 많은 양을 모으면 체할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멈추었지만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이만큼의 양을 모으는 것은 자신도 어렵다고 한, 풍운지의 말에 미소가 어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노력으로 실력을 상승시키는 것을 처음으로 맛본 제현이었다. 물론, 지금 가진 기운이 일천하지만 꿀리는 것이 없는 제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자신이 최고 이므로...

“풍운지! 오늘은 맛있는 물고기 반찬으로 하지!”

“아? 그게 마음대로 되는 줄 아는 가? 자네가 이곳에 와서 먹은 물고기만 해도 상당양이야...이제부턴 좀 자중하게....그 귀한 것을 일주일도 안돼서 멸종직전까지 몰리다니....딱 오늘 하루만이네....앞으로 일 년간은 풀 반찬뿐이야.”

“하. 하. 하!”

제현은 기분 좋은 기분으로 풍운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물론 물고기 반찬을 먹자는 말을 빼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풍운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중하라는 듯이 말하고는 못이기는 척, 물가로 가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제현은 생각했다.

‘사부라....그것도 좋을 지도? 훗.’

쉭ㅡ 쉭ㅡ 슈슉ㅡ 쉭!

진짜 물고기가 별로 없는 것인지 평소 같았으면 1분도 되지 않아 잡아 올릴 물고기가 오랜 시간 지나서도 잡히지 않는 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풍운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의지로 행한 것이 아니지만, 기분 좋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하하!”

그는 진심으로 제현의 성취를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무아지경이라는 경험을 맛보았으니 앞으로 있을 성취는 더욱 놀라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자신의 성취를 뛰어 넘는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은 능력을 보여줄, 제자, 아니, 제현을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수련은 실전 처럼, 실전은 수련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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