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부터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물론 수련이라는 것이 몸속의 기운을 다스리는 일이지만, 그것은 제현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게다가, 마령심법이라는 것이 워낙 탁월한 것인지 제현의 수련이 지속될수록 내공은 더욱 많이 쌓여 가고 있었다.
“그만....오늘은 그만하고, 자네가 밤에 말했던 검법을 가르쳐 주겠네.”
“드디어....!”
제현은 드디어 몸으로 익히는 것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상당한 시간을 내공을 모으는데 투자했기에 슬슬 질려가던 차였다. 물론, 조금씩 강해진다는 기분에 따분한 느낌은 안 들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수련이 지겨워 진 탓이었다.
“아무리 내공이 높아 봐야, 기운을 적절하게 사용하게끔 하는 검법과 같은 무공을 알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힘이겠지. 또한, 네가 사용하고 있는 마령심법이라는 것에 걸맞게 패도 적이며 날카로운 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풍운지의 말을 들을수록 제현의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드디어 익히는 것이다! 여러 가지의 설명과 주의사항이 들려왔지만 제현은 이미 상상의 나래 속에 빠져 있었다. 하늘을 날며, 적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검법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배우고 싶군.”
제현의 눈빛에서는 흐릿한 기운이 흐르며 안광(眼光)이 감돌았다.
그것은 마령심법이 발출되는 증거였다. 무공을 익힐수록 그 현상이 몸에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는 풍운지는 크게 흐뭇해하며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벌써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성취가 높고 열의가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현의 눈
심연처럼 무심한 살기(殺氣)가 느껴지는 눈!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살기와 몸을 경직시킬만한 위압감, 벌써부터 강자의 느낌이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역시....내 생각대로 성취가 빨라. 그 정도의 기세라면 충분히 배울 수 있겠지.”
풍운지는 제현의 눈빛에서 욕망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무공에 대한 것임을 알고 다행으로 여겼다. 과거 자신이 복수에 눈이 멀었을 때의 눈빛과 비슷했기 때문에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가르쳐 줘.”
제현은 흥분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풍운지에게 말했다. 계속 가르친다. 가르친다 하면서 질질 시간을 끌고 있었던 탓에 제현은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래, 비록 내가 펼치는 것을 겉핥기식에 불과 하겠지만, 이것의 정수를 펼칠 수 있는 것은 네가 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내공을 움직여야 할지, 어떻게 보법을 해야 할지....”
풍운지는 웃는 얼굴으로 근처의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선, 처음은 쾌(快), 만검(萬劍) - 낙(落)”
거목에게 다가간 풍운지는 검법의 이름인 만검과 첫 번째 초식인 낙을 사용했다. 그러자 풍운지의 검이 순식간에 거목을 홅고 지나가며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쾌속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검이 수십 갈래로 변하며 단 일수에 나무는 동강나기 시작했다.
풍운지는 빠르게 검을 회수하며 검 집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탓ㅡ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백스텝을 했다. 그러자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거목! 그 견고하고 웅장했던 거목은 수백조각으로 나눠져 있었다. 짧은 시간에! 제현은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 사용한 기술이 이정도의 위력이라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허ㅡ”
제현은 풍운지가 시전 하는 만검을 지켜보며 웃음을 흘렸다. 저 굉장한 검법을 배운다는 생각을 할수록 제현의 놀랍다는 웃음이 더해졌다.
“다음은 중(重), 만검 - 파(破)”
풍운지가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직각에 이를 정도로 숙인 풍운지는 가볍게 지면을 탁- 발로 튕겼다. 허리가 굽은 상태에서 앞으로 튕겨 나간 풍운지는 검을 역으로 잡고 있었다.
타탁- 팍-
풍운지는 탄력을 그대로 검에 힘을 주고 나무 옆에 있던 곰 같은 크기의 바위를 내려찍었다. 강한 일격! 찌르듯이 쥐어짜며 바위를 관통하고 들어갔다. 깊숙이 박혀 버린 검에서는 미세한 기운이 요동치더니 꽈꽈꽝, 굉음을 토해냈다.
꽈꽈꽝!
검에서 뿜어져 나간 기운이 그대로 바위 속에서 터져 버린 것이다. 기운으로 검을 보호하며 검으로 빠져나간 미세한 기운이 바위의 입자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방으로 분출하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것이 파의 묘리였다. 강한 피부를 가진 상대의 연약한 피부 속 살결을 그대로 터뜨리는 것, 그야 말로 잔인한 손속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식이었다.
패도 적이며, 무거운 한방이었다. 비록, 풍운지의 심법으로 인해, 빠른 이미지도 주고 있었지만, 엄연히 한방을 위한 기술이었다.
“절제 되고 부드러운, 유(柔), 만검 - 유(流)”
“호오ㅡ”
제현은 풍운지가 초식을 펼칠수록 기대가 부풀어만 갔다. 다음에 어떤 초식이 나올지 제현은 집중하였다. 유(流), 방황하고 흐른다는 의미의 유였다. 순간, 이상한 초식 명들이 생각나자 실소를 흘렸지만 자신의 선조가 만들고 사용한 초식이었기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절세의 무공 같아 보였다.
풍운지는 물이 흐르듯이 부드럽게 초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떨 때는 빠르게, 어떨 때는 부드럽게, 어떨 때는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제현은 눈으로 쫒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풍운지를 보며 눈을 비볐다.
슈슈슈슉!
유는 보통 절제되고 부드러움의 상징인 초식이었다.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만든 것인지 제현의 선조는 한 초식 안에 여러 개의 초식을 혼합해 상당한 양의 변 초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 초식 하나 만으로도 상당한 고수가 될 수 있는 절초중의 절초였다.
순간 풍운지의 동작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느린 호선을 그리며 검을 휘두르며 춤을 추듯이 나긋나긋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옷을 짜는 아낙네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마지막이다! 이건 몸을 가누지 않고 상대하기 힘든 적을 위해 만들어 진 것 같군. 그다지 사용할만한 초식이 못 될 거 같다. 최종오의 같은 초식이다. 필살의 필(必), 만검 - 살(殺)”
초식 중 가장 가슴에 와 닫는 말이었다. 몸을 가누지 않고 적을 죽이는 검, 그야 말로 필살의 수가 아니겠는가? 가장 마음에 와 닫는 초식 명이었을 까, 제현은 앞의 초식들 보다 더욱 집중했다. 눈에서는 적을 향해 살기를 내비치는 것과 똑같이 매섭게 풍운지를 보고 있었다.
슈아아악!
공기가 부서질듯한 패도적인 쾌검이었다. 허공이 베어지며 은빛의 검 날이 빠르게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수로 적을 베고 넘기는 모습이었다. 오직, 사혈만을 노리는 일격필살(一擊必殺)!
방금 풍운지가 베고 지나간 곳은 사혈 중의 사혈인 태양혈과 명문혈을 수직으로 그어 내리는 형태였다. 게다가 약간 비틀어 베는 듯 한 모습을 보인 풍운지는 적의 왼팔을 자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격필살의 수법 때문인지 풍운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초식이라는 소리였다.
쉬이이익- 쉭-
풍운지의 검이 연속 두 번 휘둘러졌다.
적의 오른팔을 두 번으로 나눠 자른 것이다!
파팟- 쉭-
풍운지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왼팔, 오른팔, 왼다리, 오른다리 순으로 자르고 가슴에 수많은 검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고통으로써 해방을 시켜줄 자비로움을 보여줄 만한데 그대로가상의 적의 얼굴을 난자하였고, 마무리는 태양혈 부근을 찌르는 모습이었다.
“후우ㅡ 이것이 네가 말했던, 만검(萬劍)이라는 4개의 초식이다.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검법이다. 이정도의 검법이라면 일류, 아니, 초일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마지막 초식인 살만 없다면, 정파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래?”
사실 풍운지가 한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보통 구파일방의 무공이 일류무공이라고 한다면, 제현의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무공은 구방일파와 맞먹을 정도의 검법이라는 소리였다. 또한 제현의 가전 무공인 만검에는 주로 두 가지의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첫째는 쾌, 대부분의 초식들이 쾌로 이어지고 있었고, 적을 파괴하는 중의 묘리가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적은 부분이지만 부드러움의 유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일류무공을 넘어서는 무공이었다.
“우선, 기운을 싫지 않은 와중에 수련을 하도록 하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면, 보법을 넣어서 움직이며 수련을 하겠네. 그 정도가 되면 나와 가벼운 대련을 하면서 검법을 익히도록 하지. 자, 여기 자네에게 보여준 초식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네. 잘 보관하게....”
풍운지는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조잡한 책을 제현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물론 지옥에서 종이를 구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구하기도 힘들었고, 구하기 위해서는 도시라는 곳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풍운지는 널려있는 나무들의 껍질을 얇게 베어내, 책같이 만들어 낸 것이다.
“너희 가문의 초식이니 완전히 외우고 있겠지만, 혹시 모르니 다시 정독하고, 외워 두게, 물론 몸으로도 기억하고 말일 세. 그 이유는 자네도 잘 알 것이네. 초식의 오묘함을 깨닫기 위해선 우선 외운 후 정신과 육체로 수없이 시전 해봐야겠지. 그럼 나는 오랜만에 주위를 정리하고 오겠네. 상당히 불어나 있군.”
풍운지는 그 말을 하고는 절벽을 밟으며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현은 뒤질세라, 풍운지가 주고 간 비급을 읽으며 초식을 하나하나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몸속의 기운을 배제한, 순수 육체적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내공이 담기지 않은 만검은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일단, 제현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꼭, 만검의 마지막 초식인 살(殺)을 완벽하게 익히겠다.”
굳은 결심까지 하는 제현이었다. 물론 그 살을 이용해 적을 농락 시켜줄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갑고 빈정대는 듯한 말투, 오만한 눈동자와 온몸을 옥좌 하는 듯 한 붉은 빛의 눈동자, 그리고 피풍의 모든 것이 떠오르자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핫ㅡ 하앗! 하, 핫ㅡ!
그날 제현은 만검의 처음 초식인 낙(落)을 수백 번, 수천 번을 휘두른 끝에야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수련은 실전 처럼, 실전은 수련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