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는 물(流水)이라 하였다.
제현이 이 무간지옥이라는 곳을 온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지옥에는 계절이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없지만, 확실히 한해가 지나 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속의 내공역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자그마치 6년 정도의 내공을 얻은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만족할 제현은 아니지만 풍운지의 입장에서는 턱이 빠질 정도의 실력향상이었다.
지옥의 계절은 차가울 정도의 백설(白雪)이 내리며, 어떨 때는 뜨거운 지옥 불이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산성비(酸性雨)와 차가운 비를 뿌리기도 했다. 모든 계절을 느낀 제현은 어느새 다시,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계절을 맞이한 것이다. 세 가지의 계절, 차가운 백설이 내리는 겨울, 뜨거운 산성비와 차가운 비를 뿌리는 여름,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 단 세 가지의 계절이지만 어느새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온 것이다.
“낙(落)!”
제현은 마영보법을 이용해 낙의 움직임을 더욱 현란하게 만들었다. 마영보법(魔影步法)은 그림자와 같이 상대의 그림자를 밟으며 이동하는 보법이었다. 물론 제현의 발놀림에는 어설픈 모습이 보였지만, 장장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련한 보법이기에 상당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또한 마영신법(魔影身法)이라는 것 까지 같이 배웠기에 헤이스트를 쓴 것처럼 빠르게 이동 할 수 있는 방법도 배웠다.
차앗ㅡ 슈악, 휘리릭!
그림자 같이 빠른 몸놀림으로 시전하고 있는 만검의 초식들은 하나같이 빠르고 날카로웠다. 게다가 발의 놀림까지 더해지자, 극 쾌를 자랑하는 검법으로 자리 매김 한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지만, 제현은 꿋꿋이 버텨 내며, 지금의 경지를 밟았다.
“자, 이제 마지막 대련이다. 너의 성취는 뛰어 나다. 타고난 무골(武骨)이야!”
풍운지는 날카롭게 날이 선 진검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물론 제현이 들고 있는 검은 목검이었다. 지옥이라는 곳에서 철로 된 무기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현의 수련을 돕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어찌, 날카롭게 선 검을 목검으로 막을 까 생각 하겠지만 제현의 내력이 일정 범위에 도달했기 때문에 약간의 기운을 검에 실을 수 있기 때문에 몇 분 동안 진검과 목검의 대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준비가 다 됐네, 자네도 준비는 다 됐겠지?”
끄덕.
그동안의 수련을 증명하듯 제현의 눈동자는 살기는 물론, 무인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무심(無心)의 눈동자 속에서는 이글거리는 살기가 있었지만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승심이요, 기본적인 기술인 것이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무력과 기세를 가진 자가 진정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선(先)을 양보하지, 오라!”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
타앗ㅡ
제현은 마영신법의 수법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영신법은 한 번의 발놀림으로 상당한 거리를 이동 할 수 있는 신법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스피드를 살리는 기술이었다. 물론, 마영보법이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은밀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이겨 주마!”
순식간에 풍운지의 앞으로 나타난 제현은 만검 - 유(流)의 수법으로 검을 느슨하게 쥔 뒤, 빠르게 풍운지의 가슴 쪽을 노렸다. 6년의 내공으로 무엇을 할 까 생각하겠지만, 무림인에게 있어서는 한 톨의 내력이 있으면 몇 배의 위력을 내는 공격은 쉬웠다. 이것이 마법사와 무림인이 다른 점이었다. 무식하게 마나만 많이 가지고 있는 마법사와는 다르게, 축약과 집약을 통해 다져진 내력은 엄청난 힘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팍-툭-팍-팍-
가슴으로 파고든 제현은 성난 파도처럼 풍운지를 몰아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러운 표정으로 제현의 검을 받아 넘긴 풍운지는 다음 공격을 대비해 몸을 비틀었다.
차르륵
제현의 목검에 힘이 실려지자 맞부딪혔던 풍운지의 검에 살짝 뒤로 튕겨났다. 그러면서 풍운지의 신형역시 바닥에 질질 끌리며 조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지만 풍운지는 개의치 않는 다는 듯이 자신의 보법을 이용해 제현의 검을 살짝 빗겨 내며, 풍운참영의 수법으로 제현에게 응수했다.
싁, 스스스스, 솨아아아악ㅡ
순간 수십 개의 검영이 생기며 제현의 동공을 꽉 매웠지만 제현은 단 하나의 잔영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장 외각에 있는 작은 잔영이 풍운지의 실초였다. 나머지는 허초, 순간 제현은 모든 것을 판단하고 마영보법 중 뒤로 물러서는 방법을 이용해 이동했다.
하지만 풍운지의 검은 뱀처럼 빠르게 쫓아오며 제현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캉!!
제현의 목검과 풍운지의 검이 부딪히자,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절벽의 계곡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강한 울림 때문이었던지 높은 절벽에서는 자잘한 돌멩이가 물에 떨어졌다.
풍덩ㅡ
잠깐의 대치 상황에서 돌멩이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풍운지와 제현은 뒤로 물러서며 최종 오의를 펼치기 위해 준비했다.
이정도의 시간이 제현이 기운을 싫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상당히 많은 움직임 탓이었던지 제현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반명 풍운지는 지친 기색은커녕 감탄의 빛을 내며, 제현을 바라 보고 있었다.
“호오ㅡ 아무리 기운을 싣지 않고 응수했다고 하지만, 이정도로 나의 풍운참영을 막아내다니....놀라워! 아지만 나의 풍운신검 중 내가 지금까지 사용 한 것은 삼초 중 이초, 그럼 마지막 초를 보여 줄 때가 됐다는 건가?”
풍운지의 말에 따라, 제현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막아 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제현의 팔뚝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목검을 움켜쥔 손을 적시고 있었다. 끈적거림에 더욱 세게 검을 쥔 제현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인 살(殺)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잡을락 말락 쥐고 있던 검을 세게 움켜쥐자, 착 감지는 검을 보며 미소를 짓던 제현은 기세가 바뀐 풍운지를 보며 긴장했다. 방금 전까지는 여유러운 대련을 했다면, 지금의 풍운지는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정도의 경지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풍운지로와 풍운참영....그리고 마지막 초인.....풍운연무(風雲煙霧)다!!”
풍운연무, 먹구름과 같다는 의미였다. 먹구름이 끼며 어떻던가. 새까만 구름으로 가려진 세상, 어두운 세상, 우레와 같은 노란 빛의 번개가 빠르게 떨어지는....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징벌이었다.
풍운지의 검이 안개와 연기처럼 순간 흩어지며 제현에게 쏘아졌다.
스아아악ㅡ
제현 역시 살을 펼치며 풍운지의 검에 응수를 했다. 게다가 둘의 보법은 특이했기 때문에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물론 일정한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위치를 파악하겠지만 아직 그런 것에 미숙한 제현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슈악!!
순간 제현의 검을 스쳐 지나간 검은 제현의 머리칼을 몇 개 베며 지나가 버렸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제현의 눈에는 그저 안개가 없어지는 것처럼 흐릿하게 스쳐지나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눈앞으로 스쳐지나간 검은 제현의 앞머리는 몇 가닥 베고는 지나간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실명, 혹은 영원히 빛을 못 볼뻔 한 것이다.
털썩ㅡ
제현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사납게 빛나던 풍운지의 눈은 예전처럼 편안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제현은 아까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듯이 앞 머리를 만지며 풍운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자네의 검은 초식으로써는 완벽하네, 초식만을 본다면 엄청난 수준이야, 보법역시 일정 수준에 이르러,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만 아직 미숙한 편이고, 아마, 4년가량 더 수련을 한다면 엄청난 경지에 이를 것이네, 내공의 증진 상태를 본다면 1갑자에 못 미치는 양정도?”
풍운지의 말을 들을수록 힘이 빠졌지만 이것도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잘 아는 제현이기에 군말 없이 휴식을 취했다.
한참을 휴식을 취했을 까, 풍운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깊은 구덩이를 파 놓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아귀한마리가 있었고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을 잡아먹을 듯 한 괴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자, 휴식을 다했으면 실전을 경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서오게.”
“아, 알았다고...”
제현은 풍운지의 말에 마지못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놈의 수련은 끝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내공수련을 하고나면 검의 초식을 펼쳐 내야 했고, 점심때가 지가면 풍운지와의 대련이 이어진다. 또한, 가끔씩 실전경험이라는 것을 하는데, 지금 수련이 실전경험이었다.
카아아악!!!
그 깊은 구덩이 속에는 한 마리의 아귀가 사나운 눈빛을 하며, 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아귀의 주위에는 다른 아귀의 시체가 있는 것인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체를 만든 장본인은 저 아귀였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동료를 잡아먹은 것이다.
“에휴....왜 저런 수련을 하는 것인지?”
저런 녀석을 보며 한숨부터 내쉬는 제현이었다. 물론 저 수련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욱 효과가 좋은 것도 있을 텐데, 저런 수련을 고집하는 풍운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런 수련을 하는가 물었는가? 수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수련처럼 이라는 나의 사부의 말씀이 있었다네, 물론 그때는 저런 녀석이 없었기 때문에 사부에게 맞으면서 수련을 쌓았지, 그럼 자네도 나한테 맞으면서 수련을 쌓을 텐가?”
“윽...”
제현은 풍운지의 말에 신음을 토해내며 구덩이 속으로 뛰어 내렸다. 매일 듣는 소리였지만 마음속 깊이 와 닫는 말이었다.
수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수련처럼 이라는 말이......
그렇게 여름이라는 계절은 흘러, 네 바퀴를 돈 후에야 멈추었다. 그런 수련을 쌓으면서 제현은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물론 풍운지는 그럴수록 더욱 힘든 수련을 강요하지만 그것은 제현도 바라고 있는 일이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과 온몸이 날아 갈 듯 한 가벼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지옥서열 입문(入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