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지옥에 온 시간, 짧다면 짧지만 길 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고통과 인내에 따른 수련을 거쳤다. 게다가 지옥에서의 첫 번째 시련도 격고 난후의 상태였기 때문에 제현은 한층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청년과 소년의 중간 정도라면 지금은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마기의 영향으로 싸늘한 분위기를 흘리며, 얼굴은 갸름한 모습의 여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자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5년! 훗, 그 시간에 1갑자의 내공을 얻을 줄이야.”
제현은 5년의 시간동안 무서울 정도의 성취를 얻어 1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공의 성취까지 성장해 화경, 혹은 소드 마스터라고 칭해지는 차들과 비슷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풍운지라는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자네, 이제 슬슬 그 고통이 오는 시간이 아닌가?”
“물론, 이젠 그 따위 지옥의 고통은 참을 수 있다.”
풍운지는 어느새 지옥에서의 마지막 해를 가지고 있었다. 풍운지의 형량은 105년, 기동안의 고통과 인내로 꿋꿋이 견뎌왔다. 그동안의 지옥의 시련들은 104번이나 거친 사내였다. 절대적인 고통을 느낌에도 신음도 흘리지 않는 모습이란....
“후후후.....으드득”
제현은 웃는 얼굴에서 점점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차츰 그 고통은 절정에 다 달했고 제현은 익숙한 자세로 마령심법을 운용했다.
* * *
“으으으, 이젠 빙염지옥(氷炎地獄)”
제현은 그동안 수많은 지옥을 경험했다. 무한의 뜨거움인 초열지옥(焦熱地獄), 심마의 아비지옥(阿鼻地獄) 등 8가지의 지옥들 중 5가지의 지옥을 겪은 제현이었다. 물론, 거기서 거기인 지옥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세 가지의 지옥이 가장 지독했다. 모든 지옥은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근본으로 만들어진 지옥이었다.
또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지옥에서의 죽음은 8대지옥의 고통을 모두 겪은 뒤 다시 지옥으로 부활한다는 무시무시한 법이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지옥에서의 죽음은 무의미하다는 말이었다.
쩌저저적!
가부좌를 취했던 제현은 정신세계에서 조금씩 얼어가고 있었다. 물론 지옥에서의 고통은 엄청날 정도였다. 무공이고 뭐고 다 소용없는 것이 8대 지옥이었다. 차가우면 차가움이 온몸에 퍼지며 뜨거우면 뜨거움이 온몸에 퍼지는 곳이 지옥이다. 게다가 인간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더욱 커지는 것 역시 지옥이었다.
제현은 차가운 빙염지옥을 견디기 위해 마령심법을 운용해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지만 죽을 정도의 차가움은 제현을 잡아두고 있었다. 온몸이 얼어 버릴 것 만 같은 느낌, 아니 실재로 얼어 가고 있었다. 이건 시련 중에 최하위에 속하는 빙염지옥이라고는 하지만 정도가 심했다.
“읏....”
휘이이잉! 슈슈슉“
피부가 얼어 버렸고 다시 강한 바람이 일어나며 날카로운 얼음덩어리가 제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스친 곳은 비는 물론이요 상처가 난 부위는 그대로 얼어 버리며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런 현상을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한 후에야 시련이 끝난 것인지 제현은 감겨져 있던 눈을 뜨며 다시 돌아온 절벽아래를 보며 한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정신적으로 모든 고통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육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제현은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끝났는 가? 상당히 빠르게 시련을 극복하는 군.”
“아, 그러셔? 어떻게 하면 네놈처럼 고통을 안 느끼냐?”
“수양뿐이네, 경지가 높아진다면 그것이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제현의 말에 고개를 돌린 풍운지는 꺼이꺼이 웃고는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떠날채비라고 해봐야, 먹을 풀들 - 제현과 풍운지가 다 먹어버렸음, 이곳에는 더 이상 물고기가 살지 않음 - 과 옆에 차고 있는 검 뿐이었다.
하지만 제현은 어떤 짐도 없었기에 지금부터 떠나면 될 것이다.
“그나저나, 몇 달이 지나면 너도 슬슬 떠나겠군. 105년 동안 수고했다. 나는 이제 795년 남았군.”
“하하! 자네, 업보가 상당히 크군, 고맙네. 슬슬 가보자고”
제현은 투덜거리는 한편,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무간지옥에서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지옥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 당하는 고통이지만 그 어떤 고통보다도 고통스럽게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지옥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매일 당한다면 익숙해지겠지만 일 년에 한번이라는 커다란 시간차 때문에 잊으려 하면 더욱 큰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내가 먼저가지, 설마 못 올라오는 건 아니겠지?”
번쩍ㅡ
풍운지는 바닥을 궁신탄영으로 차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기운을 용천혈로 보내 빠르게 이동하는 기술이었다. 물론 앞서 설명했겠지만, 어느 정도의 경공술을 사용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기술이었다. 물론 최상의 신법에 속하기에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쳇, 잘난 척 하기는 그 정도는 나도....!”
마령심법 탓인지 제현은 가는 선을 소유 하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여자라고 착각 할 만 했다. 제현이 소유하고 있는 내력은 극음의 마기였기 때문에 어쩌면 이 무공은 여성의 무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얼굴역시 심법의 영향 탓인지 도도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자처럼 보일 지언정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타탁!
순간 제현은 바닥을 박차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아직 궁신탄영을 쓰기에는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박찬 제현은 물가의 절벽에 있는 나뭇가지를 밟으며 활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다시 치솟은 제현의 신형!
총알처럼 쏘아진 제현은 조그마한 구멍이 보이자 다시 한 번 벽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틀어진 방향에서 손을 뻗어 구멍에 손을 잡았다. 물론 풍운지가 대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질 일은 없었다.
덥석
“이제 올라왔군.”
풍운지의 목소리가 들리며 검붉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밤이 찾아오는 듯했다. 주위는 사기(死氣)가 들끓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평범한 지옥에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오랜 만이네, 이곳도, 처음 왔을 때는 엄청 낯선 느낌인데 이젠 편안한 느낌이라니...”
제현은 가느다란 허리에 팔을 올리며 감상에 빠져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있기에 앞서 풍운지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고통을 덜 받을 수 있었다.
“감상은 그만 빠지고 슬슬 움직이자고.”
“그러지.”
제현과 풍운지는 그렇게 절벽 안에서 벗어나 지옥구경(?)에 나섰다. 물론 같이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최대한 즐겁게 지내자는 취지였다. 지옥에서 즐겁게 하는 것은 전투 밖이겠지만....
캉ㅡ 카캉!!
“전투?”
“그냥 무시하지, 괜히 휩쓸렸다가 힘들어지네, 무림의 일 수칙,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마라.”
“아아, 알았다고 귀가 썩겠네. 몇 번이나 말해”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고통에 찬 비명도 들렸지만 제현은 그곳으로 갈수 없었다. 자고로 즐거움에 있어서는 남 싸움 구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는 용납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의 일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죽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무림과 비슷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무림의 법을 따라 가고 있었다.
강자 존, 강한자만이 살아 갈수 있는 곳 한마디로 이곳은 제 2의 무림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미흡한 부분도 많았지만, 수많은 인종과 수많은 강자들이 있는 곳, 강자들은 이런 곳을 천국이라고 부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뺑 둘러서 이동해야겠네. 빠르게 움직이지.”
풍운지는 그런 말을 하고는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물론 제현이 따라 올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가는 것은 잊지 않은 듯했다.
번쩍ㅡ
“거기, 둘 서라....”
모든 상대를 처리 한 것인지 피를 칠갑한 사내는 먹잇감을 노려보듯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이동해왔다. 그리고 풍운지의 앞을 가로막으며 살기를 내뿜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우리는 갈 길을 가는 것뿐이오. 길을 비키시오. 싸우고 싶지 않으니.”
“호오, 이거 누군가 했더니, 그 유명한 풍운마검 풍운검이 아닌가? 아직도 있었나?”
상대는 풍운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피가 떨어지는 도(刀)를 밑으로 늘어뜨리며 웃고 있었다. 상대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떨림을 주최 할수 없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덜더니, 거대한 도를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풍운검,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고 있다. 크큭, 지옥 서열, 30위 마호영, 25위 풍운검에게 도전한다. 검을 뽑아라! 단숨에 끝내 주지, 덤으로 거기 있는 계집! 넌 나중이다.”
순간 제현은 울컥하며 달려들 뻔했지만 풍운지가 살짝 막으며 검을 서서히 뽑고 있었다. 오래간 만에 검을 뽑고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은 명상만을 하겠다는 말을 한 풍운지 였기에 지금의 모습은 색달라 보였다.
“나, 지옥서열 25위 풍운지, 그대 마호영, 서열 쟁탈전에 동의한다. 오라.”
스르릉
경쾌한 바람이 몰아치며 풍운지는 검을 뽑아 올렸다. 처음으로 보는 강자들 간의 대결이었다. 물론 제현은 그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 서 있었다. 이건 풍운지와 마호영이라는 자간의 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