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憤怒)
“혈교가 소란스러워 지고 있다. 이제는 돌발행동은 안 돼, 제현!”
“그러지.”
제현은 풍운지의 말에 약간 짜증나기 시작했다. 허나,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미 한차례 혈교 녀석들이 하는 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눈물을 흘리거나 미친 놈 처럼 괴성을 질러 대는 녀석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람까지 죽이며 좋아하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저기도 2계 녀석들이 있다!! 죽여라!”
한 녀석이 우리 쪽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그리고 수백 명의 눈동자가 이리로 몰리면서 무작정 이곳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모습이었다. 제현은 앞으로 나서며 발검을 사용했다. 검에서 뽑힌 검기상인의 수법으로 수십 명이 허공으로 나뒹굴었다.
1합이었다. 검을 뽑았을 뿐! 허나 죽은 사람을 두 자리 숫자에 달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수법인가?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한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듯이 제현의 뒤로 이동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풍운지의 검기에 나뒹굴 뿐!
혈마교도들은 일제히 검을 제현에게 겨누었다.
스스스슷
제현의 주위에도 풍운지와 설후가 바짝 다가서며 무기를 챙기고 있었다. 이건 뭐가 잘못됐다. 허나 자신은 있었다. 제현은 살기를 피워 올렸다. 진득한 살기가 혈풍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꿀꺽
긴장감이 팽팽한 자리인지라 혈교의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주춤 거리는 소리, 그 녀석을 향해 제현이 소수신장을 날리며 수백 명이 되는 녀석들 사이로 뛰어 들었다. 풍운지 역시 뒤를 따랐으며 향향은 이곳으로 오는 자들은 하나둘씩 죽였다.
머릿수로만 따져도 세배 이상에 달하는 녀석들이 주춤 거리고 있다! 고작 두 명의 사내에게 한명의 사내에게서는 마기가 풍겼으며 한명의 사내에게서는 자연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하지만 살기는 어떤가? 두 명다 엄청났다. 마치 누군가에게 원수라도 진 것 처럼 빠르고 경쾌한 검을 놀리고 있었다.
“지금....나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인가? 크하하하!”
제현은 고개를 젖힌 채 양천광소를 터뜨렸다. 그들이 불나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단 일수에 죽어나가는 수만 해도 십여 명! 횡 베기 한방이었다. 하체와 상체가 양단되며 피분수가 뿌려지며 제현의 얼굴을 적신다. 끈적끈적했다. 하지만 왠지 기분만은 좋았다.
“만검 - 살(殺)”
제현의 검무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빠르게 휘둘러졌고 다음으로는 부드럽게 하지만 다시 강맹하고 저돌적인 검인 살이 펼쳐졌다. 수백의 검영이 난무했다. 처음에는 고작 두 개의 검영 뿐이었지만 수련이 깊어질수록 수백 수천의 검영이 생긴다. 하지만 오직 실초는 단 두초!
혈교인 들은 막을 레야 막을 수가 없었다. 수백의 검영을 막기에는 손이 부족했으며 수련이 부족했다. 살의 검무에 검기가 추가 되자 수백의 검영에는 힘이 생겼다. 실 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수백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두사람이 행한 일이다. 풍운지와 제현은 약간 지친 기색을 냈다. 이곳에 오면서도 많은 내공을 소진했다. 허나, 이곳에서도 많은 상대와 싸우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운 것이다.
끼요오오오오!
푸드득!
“아니...전서구?”
괴조였다. 풍운지에게 날아든 한 마리의 괴조! 그 발에 달린 작은 두루마리에 글이 적혀 있었다. 지옥에서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펼쳐지기 떄문에 상관없는데 글은 아니었다. 틈틈이 풍운지에게 배우고 있지만 한자는 너무 난해한 글자였다.
부들부들ㅡ
풍운지가 떨고 있다. 무언가 큰 일이 있다는 것이다. 얼굴이 씰룩 거리는 것을 봐서는 심상치 않다는 징조다. 마치 풍운지의 표정은 마교의 천마를 만났을 때와 비슷하다. 그만큼 엄청난 일이란 소리다.
“왜...왜 그러는 거지?”
“혈마...혈마가 마신의 경지에 달했다. 생사경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소리다. 천년내공! 독보지존! 혈마 혼자서도 우리 정도는 손 하나 깜짝 하지 못하고 죽는 다는 소리네.”
“그런.....”
제현은 무언 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신! 얼마나 지고한 경지인가? 이제 막 혈신의 경지에 접어든 제현으로써는 아득한 경지였다. 하지만 가슴의 낙인만 지운다면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모든 전력을 살릴려면 오행의 기운을 얻어야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마기의 빙(氷), 마기의 화(火) 단 두 가지. 세 가지 만 더 얻는 다면 블랭크 디스토션도 바라 볼수 있는 경지다. 이미 모든 마법의 구도는 다 알고 있는 상태! 낙인만 없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 할 수 있다.
“어서 움직인다. 빨리 아크리치를 만나야해!”
“큭, 내공이...”
제현은 신법을 발휘하려고 했지만 이미 바닥을 기는 내공. 약간 휴식이 필요했다. 풍운지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현님, 여기 닦으세요. 풍운지님도...”
어디서 구해 온 건지 향향이 흰색 천을 건넨다. 새하얀 천위에 붉은 물이 든다. 사람들의 거친 피다. 허나, 손수건 같은 천에서 나는 냄새는 향긋했다.
“고맙소.”
“고마워.”
풍운지와 제현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각자의 심법을 사용했다. 이미 많은 내력이 소모 된 상태에서 조금의 내력을 모으는 것으로 전력은 다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공야비운, 비겁하게....”
제현의 귓가에 설후의 외침이 들린다. 아마 공야비운을 탓하리라....그는 옆에서 방관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혈교 내로 들어오면서부터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일행과 떨어져 가질 않나. 혈마가 온다는 소리에 이상한 구호를 내뱉지 않나. 미친놈이 다름없다.
“후후후....여러분이 어떻게 알리오? 나의 마음을...”
공야비운은 다시 한 번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설후는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공야비운의 뒤를 밟았다. 공야비운은 꿈에도 설후가 뒤를 밟는 것을 모를 것이다.
작은 동굴 같은 곳에서 내력을 하루 동안 꼬박 회복해야 할 것이다. 향향은 두 명의 미남자들이 눈을 감고 내기를 모으는 모습에 입을 벌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제현의 주위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흘러 넘쳤고 풍운지의 주위에는 시원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꼬르륵ㅡ
“어머, 부끄럽게...배가 고프다....”
향향이 외친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듣는 사람도 없건만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감싸며 얼굴을 붉히는 꼴이란, 허나 그녀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와 비슷한지 동굴안의 작은 동물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들 고양이, 허나 귀여운 새끼가 있는 지라 약간 경계를 하고 있었다.
꺄아옹!
“특이한 소리를 내는 구나. 지옥의 고양이는...이리 온...”
향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들 고양이의 어미가 눈을 빛내며 손을 뻗었다. 그때, 누군가 검을 뽑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베어 버렸다.
“향 소저, 큰일 날 뻔 했소이다. 그 녀석은 보통 고양이가 아니오! 광묘(狂猫)로 사람을 먹는 고양이오. 설마 이런 곳에 저런 녀석이 있을 줄은...게다가 저렇게 많은 마물이라니!”
“그나저나, 설후는 어디 갔지?”
풍운지는 동굴안의 깊은 곳을 바라보며 안력을 높이고 있었고 제현은 향향에게 설후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공야비운도 보이지 않는 다.
“공야비운....의 뒤를 밟고 있어요. 요즘 들어 행동이 이상해진 것에 의문을 품으시고...”
“아...그놈! 요즘 낌새가 이상했지...가는 곳 마다 혈교 녀석들이 많이 보인다 했더니 녀석, 역시 혈교 녀석?”
“흐음.....나의 불찰이네.”
사실 풍운지가 그동안 공야비운과 향향을 감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도망가다 만난 사이, 허나 대행천마단은 그날부로 보이지도 않았다. 천마가 심어 놓은 첩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풍운지가 도 맞아 감시했던 것이다.
츠츠츠츠!
“허억, 도망...도...수백의 고수들이..”
설후였다. 몸에 붉은 피를 칠갑하고는 숨을 헐떡이고 있다. 몸의 곳곳에는 검상이 심했다. 누군가에게 당했다.
“누가! 누가 이렇게 했냐!”
“공...공야비...운.”
제현은 화가 났다. 분노였다. 설후의 말에 제현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반나절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반나절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자신에 대한 분노와 혈교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이미 밖에서는 수백의 무인들의 함성과 병장기가 뽑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할 수 없네....좁은 틈을 이용해 싸우는 수밖에...아니면 저기로 들어가지...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크......젠장!”
쾅!!!
제현이 장법을 날리며 벽을 쳐 버렸다. 흔들리는 벽! 무너지는 돌덩이. 허나 제현의 장법 때문인지 금방 얼어 버렸다.
분노!
분노!
요즘 들어 제현은 분노를 자주 느낀다. 감히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녀석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분노만 치솟았다. 허나, 그 살기는 일행에게는 향하지 않았다. 오직 배신을 한 것 같이 떠난 공야비운에게만 보내 질뿐.
녀석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안으로 들어간다...할 수 없어. 이미 내력의 반도 채우지 못한 상황. 지금 싸운다면 필패다!“
제현은 결심했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이미 마물은 제현의 차가운 살기에 얼어붙으며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광묘는 물론, 수백의 마물들은 이를 벌리며 경계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다.
흡혈마공(吸血魔功), 풍운지 돌아가다.
“거기 서라!”
수십 명이 좁은 입구를 비집고 들어온다. 허나, 수많은 마물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제현일 행이 잘 모르고 있었지만 마물의 수준 역시 뛰어났다. 웬만한 도검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 피부를 지녔다.
풍운지의 검에서 출수된 것은 검기!
감히 검기에는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인지 뒤쪽에서도 많은 무인들이 들이 닥치고 있었다.
쑤쑤앙!
다발의 암기들이 제현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상처로 인해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계속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계속 안으로 들어간다. 이 동굴의 끝은 분명히 있을 거다.”
제현은 숨을 몰아쉬기 바쁜 설후를 등에 업고 뜀박질을 계속 하고 있었다. 간단히 혈도를 집어 상처에서는 출혈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지경이었다. 간간히 등을 통해 내공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부지 하고 있었다.
하악...
등 뒤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 언제라도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설후가 죽어 버린다. 이제 친근한 자는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제현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벌써, 1계에서 여러 번 경험 하지 않았던가? 자신 때문에 나약한 자신 때문에 오만한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이 제현 자신 탓으로 느껴졌다.
“풍운지...설후를 엎어라...나는 녀석을 막아서겠다. 그동안 더 깊숙이 들어가라.”
“차라리 내가 남겠다.”
“아니, 혼자서는 언제든지 몸을 뺄 수 있어.”
제현은 결심했다. 녀석들의 움직임을 늦추기 위해, 약간 희생하기로, 죽을 지도 모른다. 허나 빠져 나올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력이 다시 바닥을 갈 것이 뻔 하기 때문에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좋아...꼭 끝에서 만나는 것이네.”
풍운지도 제현의 의지를 느꼈던 탓일까? 순순히 설후를 등에 업었다. 설후는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괜히 거기다 마기를 주입하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때 만큼은 제현의 속성을 탓했다. 하필이면 마기를 지니고 태어난 집안 이라니!
“자, 가라!”
스롸라라라!
제현의 온 몸에서는 마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흡사 마왕처럼 보였다. 은은히 퍼지는 마기에 근처에 있던 괴수들은 움찔 거리며 어둠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럼....먼저 가겠네!”
풍운지와 설후는 빠른 속도로 어둠속으로 사라 져 버렸다.
키에에에!
점점 가까워진다. 괴수들의 소리를 보고 확인 할 수 있었다. 점점 녀석들의 기척도 많아졌다. 제현의 심장은 평소 때 보다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문득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있었던 지도 모른다. 풍운지와 함께 했던 시간. 짧지만 설후라는 여자를 만나서 즐거웠던 일! 그리고 향향과 공야비운....그리고 공야비운의 어이없는 배신이 떠오르자 살심이 치솟아 올랐다.
스르릉!
제현은 문득 벽을 어루만졌다. 말라 있었다. 벽을 이루고 있는 흙에는 물기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잡초 하나, 풀 쪼가리 하나 존재 하지 않았다. 텁텁한 공기와 함께 저 멀리서 괴수들과 혈교 녀석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한참을 기다렸다. 녀석들의 신형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좁은 동굴이라 그런지 다섯 명 정도만이 걸을 정도의 통로였다. 이곳만 막으면 된다! 그 시간 안에 풍운지는 저 멀리 피하고 있으리라.
“죽고 싶다면 그 선 안으로 들어오라.”
제현은 미리 그어 놓은 선을 향해 소리쳤다. 그 선에서 죽음의 냄새들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기 때문에 혈교의 인물들은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제현의 의지 때문이었다.
스산한 살기에 자극 받은 것인지 녀석들은 돌연 한꺼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나방과 같았다. 제현이 땅에 꽂아 놓은 검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만검(萬劍) - 파(破)
꽝!
그 초식은 꼭 사람에게 사용 할 필요가 없다. 땅에 꽂아 놓았던 검에서 미세한 진동과 폭발음이 나자 혈교인들은 행보를 늦췄다. 반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제현을 제외한 자에게 파편이 날아들며 몸을 타격하고 지나갔다.
차르륵ㅡ 쉭!
무수한 파공음에 녀석들은 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켰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제현의 검에서 출수된 검기상인의 수로 녀석들이 사용하려던 검기상인은 와해되어 버린 것이다. 뒤쪽에 있었던 자는 간신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며 막았지만 상당한 피해다.
즉사였다.
앞의 다섯 명은 물론 뒤쪽의 상당수도 부상을 입거나 죽었다. 엄청났다. 이것이 진한 내력이 담긴 파의 수법이었다. 제현의 선조는 다수와의 싸움에 능통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르륵!
“이 선을 넘어 와라. 피를 보고 싶다면!”
제현은 다시 땅에 금을 그었다. 제현 역시 반 발짝 뒤로 물어난 상태. 약간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겉으로는 당당하고 오만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몸에서 뿜어지는 무형지기의 살기는 어떤가?
마치 마룡과 같았다. 감히 누구도 올려 보지 못할 강압적인 살기였다. 한기가 느껴지는 눈동자에서는 레이저라도 뿜어지는 것인지 눈을 보는 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동굴안의 텁텁한 공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리며 추워지기 시작했다.
“동요하지마라! 녀석은 고작 하나다!”
녀석들도 정신을 차린 것인지 주위의 환경을 살피고 있었다. 이 동궁의 벽은 말라있다. 그렇다면 불을 이용한다면 제현은 당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동굴 속의 바람은 제현의 편인지 반대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굴의 끝은 막혀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다. 미묘하지만 역풍도 불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암기를 꺼내라. 이 좁은 곳이라면 한발은 맞을 것이다.”
처처척!
수백의 무리에서 나온 암기의 고수들이 풍만한 소매 자락을 찰랑거리며 제현의 눈을 관찰했다. 어디로 피할 것이냐는 듯 한 모습이었다.
“크하하하!”
“하하하! 죽을 때가 되니 실성한 모양이구나!”
제현이 웃고 있는 이유는 녀석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웃고 싶었다. 확실히 이곳이라면 암기에 당해버릴 것이다.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는 시간도 있다.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조적인 웃음을 띠고는 웃음을 뚝 그쳤다.
“그 웃는 얼굴을 없애 주마!”
선수필승!
제현은 무작정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열 보나 떨어져 있던 녀석들에게 2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당도한 제현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대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암기고수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현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소수마공!”
근접전에서는 검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이미 검을 쓰기에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제현은 소수마공을 끌어 올리며 천마소수를 이용해 적을 격퇴시키기로 했다. 갑작스런 제현의 무공의 변화에 녀석들은 놀라워하는 한편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캉! 땡강!!
투명해 질대로 투명해진 제현의 손에 검이 하나 붙잡혔다. 그 검에는 검은 빛의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지만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듯이 움켜쥐고는 부러 뜨려 버렸다.
정신없이 싸웠다. 적이 제현의 퇴로를 막을 정도로,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벌써 30분 이상이나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상처는 물론 내력까지 고갈 되 도망갈 힘도 없었다. 하나라도 더 무간지옥으로 보낼 심산으로 제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검을 휘두르거나 소수신장으로 적의 심장을 얼려버렸다.
“네놈! 과연 혈신의 경지답구나. 허나 혼자의 힘으로는 수백의 고수들을 당해 낼 수 없는 법! 그만 포기하라!”
“끌끌끌...네놈들 같으면 포기 할 것이냐...죽어도 싸우면서 죽겠다. 크크크”
푹
제현의 목에서는 마른 웃음이 나왔다. 엄청난 체력소모, 1계에서를 제외하고는 이정도로 싸워보지 못했다. 몸의 체력까지 고갈되었는지 제현은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뚜벅, 뚜벅!
조용해진 동굴 안, 말로만 싸우던 녀석이 앞으로 나왔다. 녀석 역시 상당한 직위인지 피풍의와 비슷한 적포를 입고 있었다. 순간 제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하하! 수적으로도 불리한 싸움이었다. 잘 싸웠지만 우리의 승리. 이대로 죽어서는 안 돼지. 단전을 폐해, 마물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주위의 혈교 원 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동료가 죽었다. 혼자서 수십을 없애버린 괴물이었다. 거기가 내력까지 온전치 못했던 녀석이 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마침 저기 깊은 낭떠러지도 있군! 클클!”
녀석은 손에 기운을 끌어 올리며 무력해 진 제현의 단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의복은 너덜너덜해져 몸이 훤히 비치는 모습이었다. 제현에게 다가온 녀석은 제현의 얼굴을 보더니 약간 음흉한 웃음을 띠더니 남자라는 것을 알고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녀석은 기운을 터뜨리듯이 방출해버렸다.
쩡!!
“개자식! 죽여 버리겠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기운이 세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상단전은 물론 하단전의 내공이 모조리 빠져 나가고 있었다. 제현은 이성을 상실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마인이 되어갔다. 이미 검을 들 힘도 없었지만 검은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좋은 말이야. 저 녀석을 저곳에 던져 넣어 버려라!”
“충(忠)”
하급 무사인지 조잡한 천으로 만들어진 자가 걸어 나와 너덜너덜해진 제현을 낭떠러지 속으로 던져 버렸다.
순간 제현은 풍운지와 향향, 설후는 무사할까? 라는 생각이 나왔지만 자신이 죽을 지경인데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자조적인 웃음은 물론 악에 바친 소리를 내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크하하하! 크크크크!”
제현은 괴기한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돌아와 모두 무참히 죽여 버리리라! 감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무위를 손에 넣으리라!!”
제현은 떨어지는 와중에도 눈만은 부릅뜨고 하늘 위로 약간의 빛으로 보이는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제현의 머릿속에는 죽여 버릴 녀석을 생각했다.
마교 교주, 천마
그리고 저 처음 만났던 녀석과 같이 재수 없는 혈교의 피풍의를 입은 녀석들!
제현은 엄청난 분노와 함께 복수를 다짐하고는 빠른 속도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자 확인했으니 나머지는 포기하고 돌아간다. 교주님이 오신다! 모두 준비하라!”
“존명! 천유양월! 천세만세지유본교! 천존교주, 독보염혈 군림천하! 무림 독보 천상천하 지상지하 광명본교!”
혈교 녀석들의 우렁찬 교리를 읊고 있었다. 그 누구도 웃음을 흘리지 않으며 굳은 결심을 했다는 듯이 당당히 교로 입교하고 있었다.
흡혈마공(吸血魔功), 풍운지 돌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