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269)

제현의 두 눈이 순간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온 몸에서 들끓는 기운은 두 배로 훌쩍 뛰어 넘었다. 아슬아슬하게 걸친, 흑포 자락이 세 방향으로 치솟아 오르며 펄럭였다. 순간, 천마의 숨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검(魔劍)!!!”

제현의 입에서 광살마검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곧, 검은 빛 무리가 제현의 검에서 뿜어져 나갔다. 그에 뒤질세라, 천마의 양 손에서 강한 기운이 폭사되었다.

같은 검은 색의 기류가 뒤 엉켰다.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말이 이 순간 맞아 떨어졌다. 하늘은 놀랐으며, 땅은 움직였다. 강한 마기가 폭사되며 분사된 강한 기운에 양진형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강한 기운에 녹아 내렸다.

크어억!

두려움과 절망, 희망의 감정이 교차했다. 두 기운이 스치듯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천마의 기운이 제현에게 날아들었고, 제현의 기운이 천마에게 날아갔다.

‘피할...시간이 없다! 이대로라면!’

제현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동마법으로 피하자니 늦었고 몸으로 막자니, 천마의 기운이 강했다. 

‘젠장!’

천마의 기운이 제현의 몸을 휘감았다. 바닥은 균열이 일어나며, 공기는 블랙홀에 빠지듯이 천마의 기운에 흘러 들어갔다. 제현은 순간 소멸을 느꼈다.

솨아아아!

제현의 정신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몸을 지탱하던 힘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샤라랑!

흩어지던 기운이 순간 한 점으로 뭉치며 은빛 가루를 만들어냈다. 온 몸이 흩어지는 것을 본 제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이대로는 당한다. 무슨 수를!’

상황은 천마와 제현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많은 내력을 소모한 천마로써는 호신강기는 커녕 몸을 지탱할 기운도 없었다. 허나, 믿고 있던 수신무의 궤도가 변하며 제현에게 날아갔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곧 날아드는 제현의 기운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천마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많은 전투를 겪으며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이 무수히 떠올랐지만 이정도로 강한 내력과 광범위한 공격의 회피 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쩌저적!

순간, 천마의 몸에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며 다크 피니쉬먼트의 기운이 온몸을 꿰뚫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의 중심에 있는 듯 한 위압감이 전해지며 천마의 비명이 목을 뚫고 밖으로 세어 나왔다.

“크아아악!”

긴 비명소리를 더불어 그의 몸속에 잠재되어있던, 진원진기는 물론,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천마기(天魔氣)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꿈틀거리며 제현에게 날아갔던 수신무의 천마와 융화하며 제현의 몸을 더욱 조이고 있었다.

슈아악!

천마의 온 몸이 칼에 베인 것처럼 난자되며, 온몸이 조각나기에 이르렀다. 칠공에서는 제현의 내공이 침범하며, 눈과 코, 귀 등 있는 구멍은 모조리 박살나기 시작하며 육체가 소멸되어갔다.

이대로 1분이면, 그의 육체는 지옥 상에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제현의 육체 역시 이것 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한 참이 지나서야 천마의 육체는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소멸이었다. 허나, 그의 정신 한 가닥은 무간지옥으로 끌려 들어갔다. 작은 일그러짐의 공간속으로 들어가 버린 천마의 정신은 지옥 상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그의 육체가 복원되기 까지는 최소 100년의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휘이익!

두 명의 지존이 사라져 버린, 거대한 공터에는 약 1천 명가량의 무인들이 흩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도맹의 존재였으나, 상당수 마교도들도 살아남아 있었다. 하지만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이 병기는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덜덜덜

“지...지존!!”

손을 떨며 무기를 떨어뜨린 존재는 당송군이었다. 눈앞에서 은빛을 뿌리며 사라져 버린 두 명의 지존의 모습에 양 진형 쪽의 사람들은 넋을 잃었거나, 부상의 잔재에 몸서리 치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던 전쟁터는 태풍이 쓸고 지나간 흔적처럼 초토화 되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강맹한 두 개의 태풍에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은 당송군은 남은 인원을 살폈다. 처음의 전력에 10퍼센트도 되지 않는 전력이었다.

“마도..맹은...끝나지 않았다!!”

당송군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며 떨어져 있던 검을 높이 치켜세웠다. 지존의 생사가 불분명 한 마당에 싸움은 무의미 하겠지만 이 전쟁은 이겨야했다. 게다가 마교의 전력이라고 해봐야, 마도맹의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자멸! 어차피 떨어지던 꽃잎처럼 없어지던 마도맹이다! 이럴 바에야 마교을 멸교 시키겠다! 지존의 복수!”

맹주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얼이 빠져 있던 자들의 눈에서 빛이 나며, 마교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대는 존재의 모습에 코웃음을 친 당송군은 그들의 명줄을 끊어 놓았다.

슈악!

“마교의 잡것들!”

그렇게 마도맹과 마교의 전투는 양패구상(兩敗俱傷) 실질적으로 이긴 곳은 없었으며, 양쪽 다 회복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허나, 전쟁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비록 마교와 마도맹이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혈교와 마신군의 싸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         *

강한 두 힘의 범위 밖에 쓰러져 있던 묵룡대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주군을 찾겠다는 듯이 움직이던 그들의 눈이 탁 풀렸다. 허나, 곧 눈빛이 돌아왔다.

“크으으으...”

가장 먼저 신음을 터뜨린 존재는 1호였다. 머리가 깨 질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1호를 시작으로 모든 묵룡대가 겪는 현상이었다. 눈동자는 흰자위를 들어냈고, 입에서는 검색의 죽은피들이 흘러나왔다. 

“여기는....난....누구?”

모든 묵룡대에게 나타나는 현상! 온 몸을 조여 오던 속박의 끈이 풀리며 그들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된 것인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떠오르는 것은 단하나.

자신들에게 손을 뻗어주던 존재, 하지만 뿌연 안개가 얼굴을 가리며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곧, 그들의 몸은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옥의 역사 중 이 날을 마도혈겁(魔道血怯)이라고 부르며, 마교와 마도맹의 양쪽 지존이 싸웠다는 곳을 가리켜, 마성지(魔性地)라고 불렀다. 그날이후, 지옥의 어디에도, 천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없었다.

지옥전쟁(地獄戰爭)

휘이잉ㅡ

때는, 강한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와 더러운 생명체의 피들이 땅을 적시고 있을 때였다. 육체의 뜨거운 피에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김에 인상이라고 찌푸리겠지만 두 명의 인간, 아니, 언데드와 인간이 서 있었다.

“끝이다...벨즈비트!”

“양패구상(兩敗俱傷)....인가?”

전장에서 오직 남은 자라고는 혈마와 벨즈비트, 아니, 간간히 숨을 부지 하고 있는 샤프와 혈교의 요직에 앉아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적으로는 혈교가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상황을 그렇게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샤라랑ㅡ

촥!

죽음으로써 무간지옥으로 빠진 자들을 제외하고는 벨즈비트에 의해 스켈레톤 워리어로 되살아나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허나, 혈마의 검강에 다시 무너지며, 육체의 자유로움을 맛보고 있었다.

“그만! 나의 내력을 소모 시킬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다. 벨즈비트...죽은 자를 욕보이는 짓은 그만둬라.”

“칫! 웃기는 군...네 몰골을 본다면 너의 말은 모순이다.”

벨즈비트의 말이 옳았다. 많은 내력 소모로 인해, 혈마의 이마에서는 평범한 범인(凡人)처럼 폭포수와 같은 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을 잡아야 할 손은 조금 느슨해졌다. 허나, 벨즈비트의 모습도 혈마와는 그렇게 차이가 없었다.

다만, 뼈로 이루어진 육체에서 작은 균열과 남루해진 로브가 그의 상태를 정명해주고 있었다.

피식ㅡ

혈마와 벨즈비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들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몸을 빼자니, 그것은 자신들의 수하를 욕보이는 짓이요, 자신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그들은 조금씩 기운을 끌어 올렸다. 아마, 마지막 공격으로 결판을 내겠다는 심산 인 것 같았다. 혈마의 몸에서는 혈마기가 피어올랐고, 벨즈비트에게서는 끈적이는 마계의 기운이 흘러 넘쳤다.

너덜너덜해진 흑룡포에가 펄럭이며, 혈마검의 출수를 기다렸다. 벨즈비트의 눈은 순간 번쩍이며 먼저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지팡이에서 검은 기류가 뭉치며 강한 기운을 토해냈다.

솨아아!

한 곳으로 집중된 점에서 강한 기운이 요동쳤다. 혈마 역시 마른 입술을 훔치며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시야를 가렸지만 돌연 그 피가 눈가로 모이며, 강한 안광을 토해냈다.

그것은 혈마안(血魔眼)으로 혈교의 무공이다. 본, 목적은 혈마기를 제어 하는데 사용되는 무공이었지만, 지금은 오직 상대의 기운을 흘려보내는 데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내부에서는 혈마기가 마구 들끓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온 몸이 터져 나갈 것이 뻔했다.

꿈틀!

온 혈관이 솟아오르며, 그의 기운이 양손의 혈도로 움직였다.

“본좌가 이룩한 무극을 보여 주마....파혈만육검(破血萬肉劍) - 혈신광검(血神光劍)”

제현에게 조차 사용하지 않았던 초식이었다. 그의 양손에서 혈광이 비치며, 혈관이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그의 얼굴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나운 안광에서 피가 떨어질 듯이, 눈은 혈마안으로 충혈 되어 있었다.

“10서클....다크 컨볼루션(Dark Convulsion)"

벨즈비트는 소멸을 각오한 공격을 감행했다. 무리한 마법의 사용은 자칫 소멸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단 한번 이 마법을 펼친 벨즈비트였기 때문에 지금의 죽음은 무간지옥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10서클,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미의 벽이지만, 그는 당당히 10서클 유저라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아직 완성된 마법이 아님에도 엄청난 위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혈마는 물론, 자신까지 소멸 당할 것이다.

벨즈비트의 지팡이는 물론, 그의 뼈들은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완성되어 버린 마법은 하늘과 땅을 가르며, 세상의 개벽을 만들고 있었다. 천지창조, 모든 만물을 불사르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소멸을 말하는 것이다.

“벨즈비트ㅡ!!!”

“혈마!!!”

한명의 인간과 하나의 언데드의 싸움, 가히 신의 싸움이라고 칭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뒤덮는 마기와 그 사이를 비집는 혈마의 혈마기가 요동쳤다. 이대로 거대한 두 힘이 부딛힌다면, 이 근방은 초토화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때, 은빛의 기운이 모여 들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인영(人影)을 만들어냈다. 그곳에서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존재가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곧,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무엇이 짜증나는 것인지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혈마와 벨즈비트의 강대한 기운이 몰아쳤다.

*           *           *

샤라랑!

강한 마기가 뻗혀 온다. 이대로 그 기운에 직격을 당한다면, 자신의 몸의 소멸은 불 보듯 뻔했다. 물론, 육체의 소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대로 무간지옥으로 끌려 갈 것인가, 영혼의 소멸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운 좋게, 육체의 소멸로 그친다면 약 100년의 시간이 걸려서야 육체가 복원 될 것이다. 그 시간동의 고통 따위가 걱정은 아니지만, 이대로 당한다면 영혼에 강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곳은 엄연한 명계!

“육체의 소멸을 각오한다면, 단 하나....”

점점 몰아쳐 오는 기운에 제현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수없이 치러온 싸움을 떠올렸다. 처음 힘을 얻었을 때, 방심과 점점 익숙해지는 전투, 그리고 게임의 흡수...게임속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고 곧, 하나의 기억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검은 비늘의 거대한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아용했던 마법이 스쳐 지나가며 제현은 무작정 그 마법을 사용했다. 비록, 그것을 사용한 곳이 가상현실이라는 환경이었지만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천마의 기운을 받는 다면, 영혼까지 온전치 못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법의 효과는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다. 그 마법을 사용해 탈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위치에 장애물이나,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다면, 육체의 충돌로 돌연 육체의 죽음을 경험 할 것이다.

허나, 그것을 따질 정도로 시간은 넉넉하지 못했다.

“이스케입 텔레포트!!”

제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스케입 텔레포트, 마법사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탈출용 텔레포트다. 하지만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완벽한 랜덤이다. 게임이라는 상황이 있어, 그런 것은 없겠지만, 설명 상으로는 랜덤이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어디론가 갈 것이다.

운이 좋다면, 익숙한 곳으로 운이 나쁘다면, 거대한 바위로 이동해 버릴 것이다. 허나, 제현은 모든 것을 운에 맞기며 그 마법을 펼친 것이다. 그 순간, 천마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꽝! 꽈과광!

강한 먼지가 피어오르며, 제현이 있던 자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생겨나며, 모든 것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지옥전쟁(地獄戰爭)

찌지직ㅡ

제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과도한 내공의 소모로 기력까지 쇄하게 되었다. 어디로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텔레포트를 타고 제현의 몸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의 시야에는 보랏빛이 아닌, 검은 빛이 요동치는 곳으로 떨어졌다.

풀석!

“크으으...살았는가...?”

몸이 지상으로 추락하며 온몸이 찌를 듯 한 고통이 일었지만 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동한 곳은 먼 거리가 아닌 듯했다. 여전히 강한 기운이 느껴지며, 털이 쭈뼛 서는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설마..이동한 곳이, 그 근방?!”

강한 기운에 하늘을 쳐다보는 제현은 절망에 휩싸였다. 여전히 강한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강한 두 힘의 존재가 느껴지며, 주위를 둘러왔다. 빛 무리가 휩싸여, 무간지옥으로 사라지는 존재들....그리고 하늘을 가득 메우는 습한 기운에 제현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제...젠장! 하필이면 저딴 녀석들이!”

하늘을 메운 요상한 기운의 정체는 혈마와 벨즈비트의 것이라는 생각에 제현은 빠르게 흡혈신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때는 늦었던 것인지 강한 기운이 몰아쳤다.

마기와 마기의 충돌!

그것만이라면 좋으련만, 그 기운의 여파가 제현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온 몸이 떨리며, 손마저 부르르 떨렸다.

부르르

“제엔장!!!!”

부들거리는 몸을 부여잡은 제현은 저주스러운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눈과 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 정신이 가물거리고 있었지만 서서히, 닥쳐오는 기운에 고통이 일어났다.

후우웅!

강한 강풍의 기류가 몰아치기 시작하며, 제현의 몸은 하늘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큰 검은 빛에 휩싸이며, 제현의 육체가 조금씩 분해됨을 느꼈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설풍(雪風 : 눈보라) 다리를 시작으로 몸이 소멸되어 갔다.

‘누....가, 당할 성 싶으냐....’

목이 턱턱 막히며, 숨까지 가빠오고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양팔과 팽팽 도는 눈뿐이었다. 옆으로 살짝 뻗은 손에서는 혈기가 모여 들며, 소멸되어 가는 육체를 간신히 붙들 고 있었다.

꽈드득!

하늘이 부서지며

꽈과광!

땅이 소멸되어갔다. 하지만 제현의 의지는 그것을 거부하며, 자연히 흡혈마공을 끌어 올렸다. 바닥을 타며 흘러가는 강한 기운들이 제현의 몸을 휘감으며, 아득히 사라져 가는 육체의 끈을 부여잡았다.

가루가 되어가는 육체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소멸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부서지는 육체를 보며, 제현은 눈을 감았다.

상단전의 기운이 폭사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회혈을 관통하며, 서서히 남아있는 혈도로 흘러갔다. 그리고 양팔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기운을 공급했다.

은빛으로 물든 제현의 눈은 검은 동자가 없어진 것처럼 싸늘하게 빛났다. 두 명의 존재 역시 제현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소멸을 맛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현처럼 느릿한 것은 아니었다.

사막에서 몰아치는 바람처럼 그들의 육체는 바람과 동화 되어 가며, 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영혼의 소멸이다. 껍데기인 육체가 소멸되어가며 흩날린 것은 갈색의 빛이었지만, 영혼의 소멸은 은빛이었다.

즉, 그들은 육체의 소멸은 끝나며, 영혼의 소멸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현의 정신은 두 명의 기운에 의해 잠식되어갔다. 육체의 소멸이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간당간당했다. 목 위로 간신히 남은 머리에서는 눈물이 흘러넘치며, 잡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뭐 하고 있을 까.....’

자조적인 표정을 지은 제현은 갈색의 가루가 눈동자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을 꽉 메운 설후와 향향,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이 생각나며 제현의 의식은 끊어 져 버렸다. 육체의 죽음이었다.

샤라랑ㅡ

은빛의 구체가 나타나며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은빛의 가루가 흩날리며 강대하던 기운은 조금씩 사라져 가며 제현의 영혼역시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영혼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휘이잉ㅡ

육체가 사라진 영혼은 은빛의 가루가 되어 흩날리며 어디론가 불어 닥쳤다. 다행히 소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의 영혼은 바람이 되며, 지옥을 주유하다. 무간지옥의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영혼에 투영된 두 명의 아이와 두 명의 여인들의 모습에 은빛의 영혼은 한차례 진동하며 곧,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어머니, 그만 쉬세요.”

10살가량의 나이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은은한 향기를 품는 여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꼬마 아이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꼬마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렇게 싫지 않은 것인지 헤헤 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빠! 한판 어때?”

같은 또래의 아이가 부르자 그 꼬마 아이는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통통통 거리며 뛰어갔겠지만, 그 남자 아이는 일정한 보폭으로 이동했다. 놀라운 것은 발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녹색 빛의 기운이 몰아쳤던 것이다.

“송악아...하은아!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돼.”

“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인은 설후였다. 5년째 소식하나 없는 자신의 남편인 제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벌써 목검을 가지며, 열심히 무공을 연마 하고 있건만, 자신의 낭군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칫,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야!”

하은이라고 불린 여자 아이는 특이한 기수 식으로 목검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앞의 남자아이인, 송악이라는 꼬마 아이는 안정된 자세를 취하며 검을 쥐고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검을 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약간 주춤 거리던 하은은 마영보법을 펼치며, 송악에게로 달려들었다. 사슴처럼 빠른 몸놀림에 송악은 미소를 지으며, 풍운보법으로 회피했다. 살짝 흘려보낸 검식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만검의 낙이네...역시 처음은 그 수로 시작 하냐? 읏차!”

풍운신검(風雲神劍) - 풍운지로(風雲知路)

송악은 살짝 흘려보낸 다음 그대로 풍운신검의 1초인 풍운지로를 사용했다. 아직 검에 기운을 덧씌우지는 않았지만 미세한 바람이 몰아치며, 하은의 옆구리고 치고 들어갔다. 하지만 하은 역시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만검의 유로 검을 살짝 흘리며, 송악의 복부를 치고 들어갔지만 역시 송악의 검 앞에 막혀 버렸다. 하지만 하은을 지탱하던 검이 멀리 날아가며, 하은은 삐졌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아~ 치사해! 누가 기운을 쓰래!”

“하하하, 미안, 미안..."

송악은 그런 하은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샤라랑ㅡ

“눈....?”

하늘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은빛에 눈을 빛낸, 하은과 송악은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조아하고 있었다. 눈이 은빛이라는 것에 신기 한 것인지 손으로 잡아 보기도 하며, 입에 가져가기도 했다.

“헤헤, 오빠! 에잇!”

“아 차거! 거기 못서?”

하은은 자신의 소수마공을 펼치며 송악의 목덜미를 잡았던 것이다. 아직 수련이 낮아, 살상력은 없었기 때문에 차가운 느낌만 들 뿐이었다. 이리 저리 도망가는 하은을 잡기 위해 풍운신법을 펼쳤지만 마영신법을 잡기는 힘들었던 지, 자신의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송악은 설후에게로 다가갔다.

“향향...따뜻한 느낌이지?”

“네...따뜻하네요...은빛의 눈이라니....약간 그리운 느낌도...”

송악은 자신의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의 대화에 약간 갸웃 거리며, 하은에게로 뛰어 가버렸다.

“낭군님...”

“보고 싶어요...빨리 돌아오시길...”

은빛의 눈을 바라보며, 설후와 향향은 제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여행

지옥 900년...

제현이 지옥에 머문 시간이었다. 수많은 이별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그 중에서도 정신적인 고통이 엄청났다. 무인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은 치명적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마음의 고통이 가장 큰 고난이기 때문에 지옥의 진정한 고통은 마음의 고통일 것이다.

지옥전쟁에서의 죽음은 제현에게 있어서 많은 경험을 하게했다. 무간지옥에서의 1만 번의 죽음과 육체에 대한 역경, 그리고 심정인 고통으로 많이 성숙해져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또한, 수백 년의 시간은 제현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약 300년이라는 무간지옥에서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고통은 억 겹의 시간을 견디며, 무간지옥에서 빠져 나온 뒤부터였다. 사랑했던 가족이 없다는 것,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지는 느낌에 몇 년간은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으음...”

9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제현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되려, 더욱 젊어져 꼬마 아이처럼 보인다고 할까? 소멸의 고통으로 영혼의 자락이 떨어져 나가 영혼의 밸런스와 육체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 같았다.

키는 20센티미터나 줄어 150정도의 작은 키였으며, 얼굴은 중학생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그의 굳게 다문 표정에서 싸늘한 느낌만 감돌뿐, 어디에서도 고수의 흔적은 없었다.

짹짹!

절벽 위에서 들리는 새의 지저귐에 제현은 가부좌를 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며, 과거의 행동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약간 애잔(愛盞)에 찬 모습인가 하면, 사납게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훗...결국 지난 일. 슬슬 떠날 준비를....”

자신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고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옆에 떨어져있던 의복을 살짝 걸쳤다. 검은 색도 아닌, 그저 평범한 색의 옷감이었다. 약간 남루한 느낌도 들었지만 제현이 입음으로 해서 빛을 발하고 있는 옷이었다.

이 옷은 상당히 오래된 옷이었다. 절벽아래, 집안에서 곱게 개어져 있던 옷이기에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부인들이 만들어 놓았거나, 아들, 딸이 놓아두었을 지도 모른다.

“좋군...”

완벽한 여행준비가 갖추어졌다. 과거 풍운지의 행동이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된 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돌아볼 지옥의 풍경을 하나하나, 담아 두겠다는 의지가 가득 느껴졌다. 준비라고 해봐야, 몸만 추스르는 것으로 끝이지만, 어쨌든 준비를 끝이 났다.

팟!

이제 오지 않을 절벽 아래의 쓰러질듯 말 듯 한 초가집을 보며, 미소를 지은 제현은 하늘로 도약을 시도했다. 이미, 제현의 무공의 성취는 측정하지 못할 정도로 극에 달해있었다. 과거 천마와 혈마와 비등 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게다가, 검을 쓸 정도의 경지는 이미 벋어 났기 때문에 따로 검을 준비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마령검이 있다면 가지고 다니겠지만 육체의 소멸과 영혼의 타격으로 마령검은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져 버렸다. 

휘이잉ㅡ

절벽위의 공기는 신선했다. 또한, 익히 알고 있던 주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울창한 숲과 풀들이 즐비했다. 10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과거에 알고 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간간히 풍운지와 자신의 가족들이 걸어왔던 길목이 조금씩 보였지만 제현의 걸음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부스럭!

제현의 걸음 외에도 짧은 기척이 느껴졌다. 숨소리와 발소리가 일정치 않을 것을 봐서는 무공을 배운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사기(死氣)를 보건데 아귀임이 틀림없었다.

샤라락!

순간 제현은 짧게 숨을 멈추며, 살기를 지웠다. 제현, 최고의 경신술(輕身術 : 보법, 신법을 가리킴)인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를 펼쳤다. 몇 백 년을 걸쳐 보완에 보완을 거듭했기 때문에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때도 잘 들리지 않는 미약한 발자국 소리지만, 지음으로써는 완전한 무음(無音)이었다.

아귀의 지척에 도달한 즉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검을 사용하는 경지는 이미 벗어 낫다고 판단한 제현이었기에 우유 빛이 감도는 연약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칼날처럼 곧게 세워진 수도를 이용해 아귀를 공격할 심산 인 것 같았다.

“무살(霧殺)!”

슈악!

스스로 창시한 무공이었다. 예전에 비해, 간단하게 만들어진 초식이었다. 짧고 간결하게 적을 베어 버리는 초식이기도 했지만 마음만 먹는 다면, 육체를 조각 낼 수도 있는 무공이었다. 짧은 순간, 수도에서 기운이 모이며, 아귀의 육체를 때려 버렸다.

허나, 그 여파는 대단했다. 칼로 베었다는 듯이 아귀의 짧은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육체는 머리에서 보내는 운동효과로 인해 몇 발자국을 더 움직이고 나서야, 머리의 죽음을 인식한 듯이 우뚝 서버렸다.

후두둑

“너 같은 마물만 보며 역정이 일어나는 구나.”

중저음의 일정한 톤의 목소리였다. 소년과 같은 앳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손속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불필요한 동작도 없었고, 적절하게 근육을 컨트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현은 아귀의 시체를 뒤로 하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그의 주위로 몰려 들것 같던 마물들은 자연히 멀리 사라져 버렸다. 은연중 뿜어지는 기운에 지래 겁을 먹은 것이다.

“슬슬...빠르게 움직일 까!”

팟!

계집애 같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약간 긴 머리가 찰랑이며, 바람이 나부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바닥에 나풀거리는 풀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의 흐름마저 무시하는 것인지 움직임에 불편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몇 백 년이나 지속되어온, 육체의 단련으로 한계의 인간의 육체로써는 낼 수 없는 위력의 근력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 다면, 기운을 순간 집중시켜, 육체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할 수도 있다.

많은 잔영이 눈에 비치며 제현의 신형은 지옥의 문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처음에 왔을 때와 마지막에 보는 문의 광경은 다르게 느껴졌다.

벗어 날수 없다고 느껴지던 문이 이제는 언제든지 빠져 나갈 수 있는 조잡한 문으로 보였다.

처음에 보았던 제단이 눈에 들어오자, 살짝 그곳으로 걸어갔다. 물론, 발목을 잡는 손 따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척도 잘 느껴지지 않는 몸놀림에 그 이상한 손들도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환상은 보는 것인지 자신들의 가족과 아들, 딸...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성을 잃으며 환상에 빠져 들지는 않았다.

“낭군님....”

흠칫

제단에서 손을 때려던 제현은 환상의 인물이 말을 거는 것을 보았다. 살짝 눈을 뜬 모습에 약간 흠칫 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다시금, 평정심을 유지하며, 때려던 손을 살짝 펼쳤다.

“넌...허상일 뿐이다. 그저...모습만 같을 뿐이지.”

쩌저적!

제현은 손에 기운을 불어 넣으며 손을 제단에서 떨어뜨렸다. 네 줄기의 균열이 생기며,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심오한 내공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내공으로 완전히 부셔 놓았다. 발경의 수법이었기 때문에 내부부터 균열이 생기며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강한 빛이 토해지며, 지옥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검은 색의 공간이 펼쳐지며 누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긴 머리와 잘록한 허리를 보건데 여자였다. 이미 내공을 눈으로 돌리며 안력을 높였기 때문에 먼 거리고 잘 볼 수 있었다.

사뿐한 몸놀림으로 본다면, 기본적인 능력도 우수한 것 같았다. 사람의 능력은 겉모습만으로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제현은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 위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악! 젠장 맞을 저승사자!”

“........”

거친 말투를 하는 여자의 모습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몰랐다. 앵두 같은 입술과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미인이었지만 끌리지는 않았다.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갔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잘생겼나, 못 생겼나를 구분 할 뿐, 그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여자는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친 곳이 없는 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제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으르릉 거렸다.

“꼬맹아, 넌 뭐야. 지옥의 원주민이라도 되냐?”

“........”

여자의 말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제현은 몸을 틀었다.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몸을 트는 즉시 사뿐한 걸음으로 앞으로 전진 했다. 평범한 발걸음이었지만 인간이 내어야 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바닥에도 미세한 자국만 남을 뿐, 흔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봐...꼬마야..누나가 말하면 대답 해야지!”

슉!

제현의 무시하는 행동에 화가 나는 것인지 거칠게 기운을 뿌리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제현은 옆으로 살짝 물러나며, 계속 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그 여자를 자극 한 것인지 살기까지 내 비치고 있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꼬마!”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간결한 말에 여자는 더욱 화를 내며 제현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게다가 제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미 900살이 넘은 제현이기 때문에 지옥에서 따지자면 최 고령자 정도가 아닐까?

천마와 혈마, 벨즈비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고령자는 제현이다.

“이게! 오냐오냐 했더니! 에잇! 소수마공(素手魔功)!”

쇄에에엑!

깨끗한 수로 제현에게 날아가며, 그대로 등에 장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제현은 등 쪽에 기운으로 여자의 수법을 그대로 막아 버렸다. 실드와 호신강기의 응용 기였다. 불필요하게 몸 전체를 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팟!

제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여자의 뒤로 나타나며, 수도를 그대로 목에 가져다 댔다.

“누구...에게 배운 거냐....”

제현이 이 무공을 얻은 것은 사마준이라는 3계의 무림인에게서였다. 설사 사마준이라는 자가, 환생을 통해 소수마공을 가르쳤을 지도 모르지만, 실상 그것을 불가능 했다.

츠츠츠

제현의 살기가 주위를 가득 메우며 여자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여자는 그것에 경악하며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냈다. 이마에서는 뜨거운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봐서는 그 살기를 받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대단한 살기...”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가.”

제현의 강압적인 모습에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을 들이 키고 있었다. 그에 제현은 살기를 거두어들이며, 그 여자를 재촉했다.

“말하기 싫다는 것인가...? 훗, 그럼 필요 없다.”

제현은 치욕스럽다는 듯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여자를 보며 몸을 틀어 버렸다. 실상 알아도 뭐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궁금할 뿐. 물론, 물어 보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자의 행동이 약간 괴심 했기 때문이다.

두벅..두벅

제현의 신형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진정됐다는 듯이 한숨을 크게 내 뿜은 여자는 큰소리로 외쳤다.

“기다려!”

타타탁!

여자는 빠르게 뛰어 오며 제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제현은 관심 없다는 듯이 계속 걸어 갈 뿐이었지만.

“이봐...꼬맹이! 사람 말 안 들려?”

“아직도 정신을 안 차렸군.”

제현의 검은 눈동자가 여자에게 향하며 기광을 뿜었다. 그 눈동자에 약간 주춤하던 여자는 자신도 눈에 힘을 주며 눈을 부라렸다. 그 어이없는 행동에 약간 실소를 머금은 제현은 걸음을 늦췄다.

“꼬맹이...아....이름을 알아야 뭐라고 할 것 아니야!”

“그것도 그렇군...흠....조제현이다.”

꼬맹이라는 말에 미간을 좁힌 제현은 그 여자의 말뜻을 이해했다. 다짜고짜 공격해오던 차에 이름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같은 성이네? 나는 조하윤.”

“.......”

하윤, 어딘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딸과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미 자신의 딸은 몇 백 년 전에 지옥을 떠난 지 오래였다.

“야...꼬마! 너무 과묵 한 거 아니야? 아니면, 내 미모에 반하기라도?”

“쓸 대 없는 소리.”

통명성을 하고 나서부터 쫑알거리는 하윤이라는 여자를 보며 제현은 잘못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설후와 같은 느낌이었다. 시비를 거는 가하면, 심심하다며 보채기도 했다.

“맞다. 네가 소수마공을 어떻게 배웠냐고 물었지?”

하윤의 말에 제현은 자연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그제야 약간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 여자였다. 처음이랑 딴판의 성격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여자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숨기는 것 같았다.

“사실 이상한 녀석이 가르쳐줬지. 내가 중학생 때였을 까? 어떤 여자가 가르쳐 주더라고, 누구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호호, 이상하지?”

“여자....?”

제현은 속으로 자신과 계약을 맺은 제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글쎄, 자기가 지옥에서 왔다고 하잖아...호호, 얼마나 웃었던지...아무튼 그 여자의 이름이 조하은이었지 아마?”

“뭐...라고 했냐?”

제현은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자신의 딸 아이 이름이 나오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은이라고 했지...꼬맹이 이상하다?”

“아니다.”

모든 것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딸아이가 맞을 것이다. 소수마공, 그것이 하은이 가르친 것이라면 소수마공 외에도 다른 무공도 배웠을 것이다. 만검은 물론, 마영신법, 마영보법, 마령심법 까지 다 배웠을 것이다.

지금 하윤이라는 여자와 제현은 마교가 있던 도시로 가고 있었다. 물론, 이제 마교는 없을 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향했다. 어쩌다 보니, 혹 같은 여자를 달고 갔지만 그렇게 심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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