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269)

제현과 하윤은 이미, 예전의 마교의 도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물론, 마교와 혈교가 사라진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던지, 1, 2, 3계의 인물들이 화합을 이루며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봐야, 별로 바뀐 것도 없었다. 여전히 서열을 사용했으며, 이상한 패로써, 신분을 구분하고 있었다.

덜컥!

도시 안에 있는 여관을 잡아 놓은 제현은 여유롭게, 내공 수련을 하고 있었다. 내공의 기초수련인 내공을 느끼는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아도 되지만 약간 기분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야, 조제현! 어떤 녀석이 나에게 마도생사투(魔道生死鬪)라는 것을 신청했는데, 그게 뭐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다. 그리고 이기는 자는 상대의 서열을 취할 수 있지.”

하윤의 말에 제현은 머리가 살짝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간단하게 말해줬다. 그리고 이상한 것이, 하윤은 서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마도생사투를 걸어오는 것을 보니 이상함을 느꼈다. 아마, 상대에게 치욕감과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에 마도생사투를 신청했을 것이다.

제현 역시, 하윤에게 짜증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래의 나이를 말했음에도 공경은 커녕 반말과 싸가지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윤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줬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날짜는...?”

“어...오늘.”

제현은 하윤의 말에 이마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토했다. 하윤의 무공을 느껴봤기 때문에 제현은 잘 알 수 있었다. 기초수련은 잘 되어 있으나, 실전이 약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몸 주위로 흐르는 내공이 물처럼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만 봐도 상대의 수련 정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하윤은 기초수련만 잘 되어 있을 뿐, 고급적인 수련인 내공의 순환과 초식의 연계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보여 주었던 움직임은 상당히 좋았지만, 어설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잘 들어라...그냥 포기해라. 아직 수련도 부족하면서, 그런....”

“상관마! 내 일이야.”

제현의 말에 약간 기분이 상한 것인지 하윤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 버렸다. 자신의 딸이 외, 저 녀석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어떻게 그곳으로 간 것인지, 왜, 저 녀석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인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풍운지도 나에게 이런 느낌을 받았을 까?”

피식...

제현은 과거를 살짝 떠올리며 자신의 행동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과 하윤의 행동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같이 풍운지의 설득과 같은 것을 받으며 절제되었을 뿐, 하윤과 다를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제현은 살짝 웃음을 흘리며 하윤의 뒤를 쫒았다. 여관에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북적이고 있었다. 지옥이 지옥이니 만큼 몸속에 기운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수준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인지 눈에 띠는 강자는 보이지 않았다.

“요즘 따라 마도생사투(魔道生死鬪)가 빈번하게 일어나는구먼...뭐, 우리 같은 사람은 볼거리가 많아서 좋지만...”

“하하, 이번에는 여자가 출전 상대라면서? 그 여자도 불쌍하구먼, 어쩌다가 30위의 상마(上魔)에게 그런 짓을 했을 할 생각을 했을 까.”

“신입이라던데...? 잘못 걸린 거지.”

제현은 지나가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상당히 강자 축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0위라면 과거 마도영이라는 자의 순위였기에 약간 호기심도 동했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화경의 끝자락, 아니, 현경의 초입정도의 실력일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하윤이 이기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제현 자신이 움직일 생각을 했다.

툭....툭...

제현은 미세한 발걸음으로 마도생사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걸어갔다. 제현의 주위에는 알 수없는 기운의 이질감에 사람들이 접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제현에게서는 은연중 뿜어지는 미세한 살기, 즉, 죽음의 기운에 접근을 꺼려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눈은, 심연의 지옥과도 같아 보였으며, 가녀린 턱선과 몸의 가는 선은 약자를 속이기 위한 페이크처럼 보였던 것이다.

퍽ㅡ

걸음을 걷던 중 제현의 팔과 상대의 어깨가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현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일부러 부딪힌 것을 봐서는 시비를 거는 것으로 느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마도생사투를 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이봐...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사과...? 싸움을 하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알아봐라.”

요즘 지옥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 한 것인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제현과 거구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도생사투를 구경하기 위해 가던 자들도 걸음을 멈추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썩었군...지옥도.”

제현은 예전에 비해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진 점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수하게 무를 숭상하며 마도생사투를 하던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즐기기 위한 싸움! 지금 지옥에는 즐기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앙? 죽고 싶어? 애송아 사람을 쳤으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대가....?”

“그야 네 목숨!”

거구의 남자는 다짜고짜 제현에게 손을 뻗었다. 빠르게 날아온 주먹이 제현의 눈을 가격했지만 제현은 내공을 눈 주위로 돌리며 상대의 주먹의 힘을 흘려버렸다.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하하! 별것도 아닌 것이!”

“상대를 봐가면서...시비를 거는 것이다...애송아.”

주먹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즐거운 것인지 웃음을 터뜨리며 제현에게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현은 여전히 같은 표정인 무표정을 고수하며, 상대의 주먹을 쳐냈다. 마치 더러운 물질이라도 묻었다는 듯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츠츠츠ㅡ

“어...어? 뭐야!”

거구의 상대는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 역시 놀랍다는 듯이 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푹!

제현의 수도가 상대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내공으로 감싸진 수도는 칼처럼 잘 벼려진 검날과 같았다. 거구의 남자는 제현의 움직임에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변을 당한 것인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신입 사냥꾼이 당하다니! 신입이 저 정도라니!”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같았다. 신입 사냥꾼, 신입...아마 외모로 신입을 판단하는 것 같았다. 썩어버린 지옥을 보는 제현은 마음이 찹찹했다. 이미, 제현을 알고 있는 자는 전무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이해 할 수 있었지만, 지옥에서 무를 추구하던 자들의 순위쟁탈전이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한다는 것에 제현은 약간 실망했다.

“저기가...마도생사투가 벌어지는 곳인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성을 지르는 것을 보니, 마도생사투가 벌어지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원형경기장처럼, 관람석까지 구비 되어 있었다. 그런 곳으로 제현은 걸음을 옮겼다. 손에서는 거구의 사내에서 뿜어진 피가 적시고 있었지만 제현의 내공에 의해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 여행

콜로세움이라고 해야 할까? 넓은 경기장만큼 사람들은 넘쳐났다. 광기에 휩싸여 함성을 지르는 관중석부터 시작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한 하윤과 그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상대는 역시, 수련의 정도가 상당히 높았다.

“후우~”

제현은 한숨을 내쉬며 관중석의 한구석에 앉았다. 몇몇 이들이 손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며 남자에게 아는 채를 하고 있었지만, 하윤의 눈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오로지 제현을 찾겠다는 듯이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윤! 자세를 잡아라."

제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사자후를 날렸다. 엄청난 함성과도 같은 제현의 소리에 관중석은 한순간에 조용해지며 오직 제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현의 주위에는 그 소음에 약간 물러나며 경계까지 하고 있었다.

털석

제현은 그 말을 마치고는 관중석에 주저앉았다. 하윤은 검이 특기라는 것은 뻔했다. 소수마공은 그저, 보조수단이기에 하윤이 극히 불리한 상황이다. 하윤의 상대는 다리를 좌우로 벌리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발의 모양과 손의 자세를 보건데, 근접형식의 무공일 것이다. 그 주위를 휘감는 붉은 적기와 흔들리는 내공, 극양지기의 무공일 것이다. 물론, 제현과 하윤의 무공을 놓고 본다면 극음지기에 속하기 때문에 정 반대의 속성이다.

“어렵겠군...수련 차와 내공의 심오함까지...정확히 불리한 싸움이다.”

“호오...자네는 뭘 좀 아는 군.”

처음 제현의 사자후에도 끄떡없었던 늙은이다. 축 처진 피부 사이로 보이는 검은 빛의 심오한 눈빛과 은연중 풍기는 마기가 그의 존재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늙은 사람 답지 않게, 몸은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세월의 나이를 견디지 못했던지, 피부는 죽어가고 있었다.

“너도 뭘 좀 아는 거 같군. 늙은 모습과는 다르게, 강한 투기가 뿜어져...나랑 해보겠다는 작정이냐?”

“허허...말하는 것 한번 고약하군. 노부는 그저 익숙한 기운에 반응한 것뿐일세.”

“웃기는 군, 나는 단 한 번도 지옥에서 활동한 적이 없는 데 말이야.”

“허허허....”

늙은이의 말에 제현은 약간 동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그 관심을 지울 수 있었다. 마침 마도생사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저 처녀..죽을 지도 모르겠군.”

“내가 내버려 둘까?”

제현은 냉랭하게 대답하며, 어깨에 올려져있던 손을 치웠다. 옆에 있는 늙은 녀석은 무엇이 재미있는 지, 싱글싱글 웃으며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 월래부터 그런 것인지 쉽게 건드리지 못할 늙은이라고 생각 들었다.

단순히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대한 경계와 적절한 동작으로 상대의 무위를 측정하기 위한 행동까지, 모든 것이 제현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지만 제현은 꾹 참고 있었다.

“한번만 더 어깨에 손을 올린다면 영영 그 손목은 볼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내 능력을 측정하지 마라.”

“허허허...그러지.”

제현은 싸늘하게 안광을 토해내며 옆의 늙은이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물론, 그의 행동은 제현의 말에도 계속되었지만 제현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간혹, 기운으로 도발을 하고 있었지만 그 기운을 흩어 버림으로써 그 도발을 무시했다. 허나, 간간히 옆의 상대에게 말을 걸거나, 제현에게 하윤이 펼치는 무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그런 늙은이를 내버려두고 제현은 앞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퍽!

“신입 따위가!”

사내는 자신의 주먹을 하윤의 가슴을 노리며 뻗었다. 하지만 하윤이 양팔을 교차하며 그 사내의 팔을 가로막았다. 그 사내의 얼굴에서 번들거리는 기름기와 흉물스러운 웃음 그리고 반짝이는 대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내였다. 게다가 은은히 뿜어지는 적양(赤陽)의 기운이 더욱 그를 사납게 만들고 있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로 보건데 자신의 기운을 제대로 억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머리가 울릴 정도의 위력.”

사내의 주먹을 몸으로 받아낸, 하윤은 인상을 찡그렸다. 양팔에서부터 전해지는 충격이 머릿속의 뇌까지 울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만약 검이 있다면 처리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현의 충고를 거절한 것이 약간 후회되기 시작했다. 급히 마령심법으로 끌어 올린 내공으로 팔을 보호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양팔은 이미 부서졌을 것이다.

“신입 따위가 막은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고작 그 정도의 실력으로 나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니겠지..크큭.”

우두둑

사내는 주먹을 폈다 오므리며 뼈를 우두둑 거렸다. 다시 흉물스럽게 주먹을 쥐며 진각을 밟으며 뛰어 나갔다.

‘흐흐흐, 고작 그 실력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니.’

요즘부터 싸우는 것이 즐거웠다. 신입들의 반응도 좋았고 일부러 시비를 유도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계집이라니,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흐흐흐, 신입 따위가 죽어도 살아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지...하하 오늘 땡잡았군.’

잠시 생각을 하며 달려들던 대머리 사내는 이내 계집의 공격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는 몸을 살짝 비틀며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빠각ㅡ

내공이 담긴 주먹을 스치듯이 맞았기 때문에 위력을 반감 되었지만, 하윤의 옆구리는 무사하지 못했다. 스치듯이 지나가며 맞았기 때문에 미처 방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공방을 오고 가면서 양발의 가드가 자연히 풀리게 되었다.

양팔은 이미 퉁퉁 부어올라. 가드하기조차 힘들게 보였다. 하지만 하윤은 마령심법을 운용하며 애써 양팔의 고통을 무시했다. 바닥으로 굽혔던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젠장...근력과 내공 면에서 모든 것이...”

대머리 사내의 공세에 하윤은 주춤 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오만 방자한 녀석에게 칼침을 날려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칼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상상에 불과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지만 경기장 주위를 둘러싼, 관중들 때문에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후후후....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면 생각해보지...물론...흐흐”

하윤의 절망적인 표정을 봤기 때문일까? 대머리는 웃음을 흘리며 제안을 했다. 무슨 마법이라도 쓴 것인지, 그 말소리 하나하나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누군가라도 나설 것만 같건만 더, 함성을 질러댄다.

“용서를 빌어라!”

“빌어라!”

지옥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은 악인이다. 그들의 죄는 가지각색이다. 살인, 방화, 강간, 도둑질, 이 세상의 모든 범죄란 범죄는 다 저질렀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이기적이었으며, 오만했다.

그리고 자비란 없었다. 그저 강한자의 행동에 환호했으며, 광기에 휩싸인다. 대머리 사내의 말에 흥분을 한 듯이,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하윤에게 빌 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외침에 전염 된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휩싸인 것인지 하윤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모습을 보건데 며칠간은 침울해 할 것이다.

“상황이 참...”

“자네 나서지 않을 생각인가? 보아하니,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늙은이 참견이 많군.”

옆의 늙은이의 말에 짜증이 난 제현은 몸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늙은이가 말하지 않았어도 나설 생각이다.

왜 이런 곳으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성에, 같은 집안사람과 딸의 제자에게 저런 치욕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제현은 좌석을 박차며 경기장의 중앙으로 유유히 다가갔다. 하늘을 걷는 듯이 그는 하늘에서 걸어가며 경기장의 중앙에 도착했다.

“능공허도!”

제현의 심상치 않은 등장에 관중들은 침묵에 휩싸이고 있었다. 하지만 제현의 옆에 앉아 있던 늙은이는 눈을 빛내며 제현의 동작하나하나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해....저 나이에 저 정도의 수련은 불가능 할 것인데...아니, 단 한 녀석이 있었지....벌써 900년 인가...”

제현의 옆에 있던 늙은이는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으로 제현을 보고 있었다. 마치, 친우를 보는 것처럼, 그의 늙은 피부와 검버섯이 잔뜩 낀 얼굴에서는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마지막 여행

넓은 경기장

밝은 지옥의 태양이 내려쬐고 있었다.

피의 광기와 싸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경기장에서는 어느새 적막감이 들 정도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능공허도를 사용할 정도의 고수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지금의 지옥 1위라는 자는 과거의 1위에 비해서 무공이 한참이나 낮은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신진 고수의 등장은 많은 관중들의 호기심와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뭐지...?’

하윤은 떨리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차마 용서를 구하기도 그랬다. 그렇다고 싸울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와 광기에 휩싸여있던 관중들의 침묵은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

온 몸은 시퍼런 멍으로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가느다란 소년의 등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런 안도의 한숨이 나온 지도 모른다.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소년의 등이 이 순간만큼은 든든했기 때문이다.

적막감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하윤은 흔들리는 시야를 고정하려 했지만 아까의 충격인지 머리가 아직도 지끈거리며 아파왔기 때문에 도저히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아이를 용서하지 않겠나?

귀청이 찢어질 것 같았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하윤은 꾹 참았다. 눈앞의 소년이 말하는 것이 희미하게 들렸지만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것 인지부터 확실치 않았다.

=어디서 나타난 애송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받아야 할 것이 있는데...흐흐흐

=명을 재촉하는 군.

하윤은 울리는 귀를 바로 잡기 위해 억지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머리에 기운을 흘려보냈다. 마령심법에 의해 차츰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시각과 청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보냈을 까. 밝은 태양빛이 눈으로 들어오며 눈을 찌푸렸지만 자신의 앞을 가려주는 따뜻한 느낌에 표정은 한 없이 밝아졌다. 뒤이어, 그 소년의 정채를 알아챈 순간 하윤은 멍하니 그의 등만을 쳐다봤다. 강한줄은 알았지만 저정도 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하윤”

제현의 말에 하윤은 고개를 들었다.

“헤헤..고마워.”

“멍청한!”

하윤의 미소에 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옥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그런 행동을 취한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면 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현이 나선 것이다.

“왜....?”

“잘들 노는 군!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 가? 그녀는 나에게 볼일이 있다. 흐흐..”

하윤은 자신의 뺨을 때린 제현을 보며 영문을 몰라 했지만, 대머리 사내는 자신을 조롱한다는 생각에 제현의 뒤에 있는 그녀를 보며 싸늘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제현을 스치듯 지나가며 하윤에게 손을 뻗었다.

퍽!

“재수 없다. 하윤에게 다가가지마라.”

제현의 일장에 대머리 사내는 멀리 나가 떨어졌다. 가볍게 친 것이기 때문에 대머리 사내는 내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기분이 상한 듯 한 느낌이었다. 내공이 실리지 않았던 것만큼 멀쩡해야 할 사내였지만 가슴에 장을 맞았기 때문에 입에서는 작은 실선 같은 피가 배어 나왔다.

‘대단한 힘이다.’

하윤은 아무리 용을 써도 대머리를 물러서게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제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힘만으로는 내공의 고수를 물러서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제현이 상상도 하지 못할 고수라는 것도 생각했다.

“이 애송이가!”

대머리사내는 제현의 능공허도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방심했다는 생각인지 얼굴을 약간 붉히고는 얼굴에 푸른 혈관이 튀어나오며 제현에게 달려들었다. 깔끔한 발동작을 보아서는 상대가 얼마나 많은 실전을 겪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동작이었다.

쌔애액!

제현의 가슴으로 들어난, 틈을 노려보며 대머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머리는 상대가 방심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공까지 끌어 올리며 순간적인 위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수법을 사용했다.

내공으로 주먹의 속도를 향상시킨 것이다. 그의 무공은 일약권(一躍拳)으로 인간의 사혈이나, 치명적인 장소에 닫는다면 당한 상대가, 흥분하며 내공이 들끓어 혈관이 터지는 무서운 권법이다.

하지만 약점도 있으니, 상대가 강하다면 그 수법이 통하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 무공은 이류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공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거나, 상대가 방심한다면 고수라도 당하는 수법이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는 것이다.

“안 돼!”

퍽!

하윤은 제현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급히 몸을 일으키며, 대머리 사내의 주먹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리며 제현의 앞을 그렸지만 언제 나타난 것인지 제현은 하윤의 몸을 받아낸 한편, 반대 손으로는 대머리 사내의 주먹을 막아 내고 있었다.

“쓸 대 없는 짓.”

제현은 갑작스런 하윤의 행동에 약간 흐뭇해하는 한편, 저 거구의 행동에 분노가 치솟았다. 감히, 딸아이의 제자를 이런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손봐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애송이 주제에 자신 있는가 보군.”

“애송이라...몇 년 만에 들어보는 말인지....허허.”

대머리의 말에 제현은 쓴 웃음을 토해 내고는 하윤을 근처, 구석진 곳에 내려놓았다. 이 대머리에게 당한 것이 아픈지 약간 신음을 토해냈지만, 제현의 치유마법에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물론, 내공까지 회복해주는 것까지는 힘들기 때문에 슬립마법으로 잠재웠다.

“무...슨 짓?!”

제현의 슬립마법에 하윤은 몸이 축 늘어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워낙, 내공의 소모가 컸던지 간단한 마법에도 걸리며 아기 고양이처럼 귀엽게 자고 있었다.

스윽~

“오래 기다렸다.”

제현은 하윤을 볼 때와는 다르게, 지옥의 야차와 같이 사나운 눈빛을 토해내며, 경기장 중앙에 서있는 대머리를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제현의 수련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세한 기척에 땅의 모래는 작은 잔영을 남기며, 무취의 향기가 대머리에게 퍼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제현의 눈동자를 본 순간, 그 대머리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버렸다.

*         *        *

“대체...”

제현 옆에 앉아 있던 늙은이는 지금 보이는 상황에 몸을 벌벌 떨며 수전증에 걸린 듯이, 손이 마구 흔들렸다. 마치 과거 900년 전의 거대한 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넘지 못할 산. 그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흔들렸지만 약간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한주먹도 안 되던 애송이가...저 정도 까지나.”

늙은이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기장을 빠져 나와 바람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가는 늙은이....뭘 그렇게 중얼거려....”

“허허허, 애송아...갈 길이나 가거라. 노부는 그저, 중얼거린 것뿐이니”

늙은이는 자신에게 시비 거는 남자를 보며, 싸늘한 웃음을 토해내고는 스쳐지나가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거슬렸던지 남자는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지만 늙은이의 양손에서 붉은 혈기가 뿜어졌다.

츠츠츠

두 눈에서는 사안(死眼)이 번뜩이며, 양손의 손톱에서는 붉은 손톱이 길어져 나왔다. 그리고 늙은이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지며 남자의 복부 앞에서 양 손이 나타났다.

“귀혈마권(鬼血魔拳) - 환위살수(幻位殺手)”

늙은이는 그 말을 내뱉고는 그 자리에서 벋어났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갑자기 젊은 남자가 쓰러지며 복부에서 내장이 쏟아지자, 당황해했지만 곧, 자신들이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이처럼 지옥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900년 만이라...오랜만이군.”

늙은 사내는 바람을 따라 정처 없이 움직였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 한 구석에서는 제현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졌다.

마지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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