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269)

“주군, 역시 그는 흡혈지존이었습니다.”

“역시...못 다한 전쟁을 치룰 때가 되었지. 남은 혈교도들을 끌어 모으라. 마지막 남은 혈교의 긍지니라.”

“존명!”

하얀 백발이 성성한 자는 혈교의 부교주였던 마도영이다. 그는 세월의 향수를 느끼며 마지막, 지옥의 생활을 끝 낼 때가 되었다. 이미, 세 명의 지존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직접 정보를 모아서 알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흡혈지존 역시 소멸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방금 전의 정보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약, 800년의 시간동안, 세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수를 끌어 모았다. 워낙 혈교와 마교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신진고수였던, 조송악이라는 애송이 때문에 제대로 세를 펼 칠 수 없었다.

조송악이 세운, 정도맹이라는 어이없는 세력에 혈교는 물론, 마교의 세를 펼칠 수가 없었다. 사파가 주루를 이루고 있는 이 지옥에서 정도맹이라니, 조송악이라는 녀석의 무공도 심상치 않았다.

과거 풍운지의 무공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인지 정순한 정파의 향기가 뿜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벌서 500년 전의 이야기다. 정보에 의하면 지옥에서 출생된 것으로 봐서는 심상치 않은 출생의 비밀이건만, 300살이 넘도록 장수한 것을 보면, 상당한 고수의 위치까지 올랐던 것이다.

조송악의 세력은 송악이 환생의 문에 들어가는 순간와해 되었지만 그 잔영이 남아, 아직도 지옥에서는 혈교는 물론, 마교의 인지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흡혈지존을 없앤다면, 다시금 혈교의 위상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         *         *

“너무 조용해....안 그래? 벌써 삼일이나 지났지만 지금까지 습격이 한 번도 없다니.”

“......”

제현으로써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흡혈지존에 대해서 안다면 감히 공격해올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마교나 혈교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마도맹도 없어 졌다는 것도 이상했다.

“앗, 드디어 보인다!”

하윤이 호들갑을 떨며, 눈앞에 보이는 고성이 눈에 들어왔다. 지옥의 넝쿨줄기가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돌던 성은 푸른빛이 감돌며 청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제현의 관심에서는 벗어 난 것인지 근처에 마신군과의 전쟁터로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곳곳에 아직도 비릿한 향기 퍼지며, 정신을 쥐어짜고 있었다.

“약 900년은 됐군.”

패인 자국하나하나가 검초였다. 그리고 마법의 흔적이다. 10서클의 마법과 혈마의 무공이 부딪힌 곳에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이 생겨 있었고, 많은 무인들이 흘린 피의 강이 된 곳은 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와....이게다 전쟁의 흔적?”

“후후...그렇지....마지막으로 가볼 곳도 이런 곳과 비슷하다.”

하윤은 곳곳에 아직도 꽂혀 있는 낡은 병기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이곳은 성역으로 통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곳의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오는 것이 아니고, 구경은 관광으로 오는 곳이다.

지옥에서 관광이라니 매치가 안 될 것 같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지옥은 넘치고 흘러넘친다. 지금까지 생활해온 곳은 극히 일부분, 말로 하자만, 하나의 지역 정도 될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상남도 정도의 땅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곳에서 전쟁이 처음 벌어졌지, 혈교와 마신군의 전쟁이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했지.”

“에...? 죽어? 죽으면 끝 아닌가?”

“하하! 지옥은 죽어도 다시 살아 날수 있지. 물론, 그에 따르는 피해도 있다.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것, 육체적인 고통과 끝없는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야 살아 날수 있다.”

아직도 지옥의 생리를 잘 모르는 하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다. 두 명의 부인과 풍운지가 걸었던 길을 보는 가하면, 혈교의 성이었던 곳을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아크리치를 만난 답시고, 무작정 이곳으로 쳐들어와 흡혈마공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까지 떠오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영혼의 낙인이 떠오르며, 하윤을 쳐다봤다.

하은을 닮았기 때문인지, 순간 두 명의 부인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곧 허상이 흩어지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미련은 두지 않았다.

“흠흠....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다시 움직이지.”

제현은 그렇게 말하는 한편, 혈교의 성이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발언권은 무시됐기 때문인지, 하윤이 약간 불평어린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하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게다가, 간간히 수련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밝은 인사성이다. 아마, 지옥의 원주민일 것이다. 원주민이란, 지옥에서 태어난 자들을 가리킨다. 워낙 지옥에서 태어나는 자가 적다보니, 알아보기 힘들지만, 대체로 밝은 행동을 하는 자가, 지옥에서 태어난 자다.

순수하게 자라온 것은 아니지만, 순수함을 가진 자들 역시, 지옥의 원주민이라면 누가 믿을 까? 아무튼 자신들의 딸아이가 지옥에서 벗어난 것은 작은 충격이다. 아마, 저승사자가 빠져나왔던 루트로 빠져나왔을 것이다.

지옥에는 빠져나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옥에서의 형량을 마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밀의 열쇠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하마 제현의 생각으로는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지옥에서 태어난 자는 형량이 없을뿐더러, 자연사를 하기 전에는 다시 부활해버리기 때문에 힘든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이곳에서 잘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아귀탕과 호돈구이로 가져 오겠습니다. 술은....?”

제현은 종업원에게 주문을 맞겨 버렸다. 다만, 술은 제현이 골라야 된다는 표정에 잠시 고민하던 제현은 풍운지가 권했던 술을 떠올렸다.

“용화주로 하지.”

툭!

제현은 이곳으로 오기 전 많은 습격 자들에게서 얻어낸, 금속들을 테이블에 올리며 종업원에게 건넸다. 그에 종업원은 조심스럽게 그 금속들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진짜 이곳의 화폐가치가 뭐야...?”

“금속이 워낙 귀하다 보니, 금속으로 계산하지. 무게로 따지기 때문에 대장간에서 그 무개를 측정해서 계산하지만, 뭐...나 같은 경우는 대충 계산하지.”

제현은 지금껏 계산할 때, 원가로 계산 한 적이 없다. 워낙 시비가 많이 붙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결에서 이 긴자가 진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풍운지도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지만.

술이 먼저 나왔다. 아마, 음식을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제현은 병에 든 액체를 보다 병을 땄다. 토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술의 향이 짙어져 있었다. 병의 마개를 따는 순간 뜨거운 액체의 향기가 은은히 퍼지며 제현의 군침을 다시게 만들었다.

“몇 살이지?”

“이래 뵈도 서른이다.”

하윤의 외모로 본다면 상당히 젊었다. 대충 봐도 스물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동안이다. 아마, 무공의 영향이겠지만, 이건 너무해도 너무하다. 그렇다고 제현 자신의 외모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도 안 나오겠지만.

“음, 독하니까 한잔만 받아라.”

“칫...독하면 얼마나 독하다고.”

술잔에 붉은 액체가 조금씩 채워지자 향기가 더욱 거세어진다. 하윤은 그 잔을 받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무례한 행동에 약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며, 제현은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웠다.

쪼르륵

“캑...뭐야, 이 술!”

하윤은 속이 뜨거운 것인지 미간을 좁히며 제현에게 따지듯이 물었지만 제현은 그 술을 음미하듯이 들이켰다. 목에서부터 타고 흐르는 뜨거운 느낌에 제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기운을 흘려보냈다. 

“후...아직 어린 애군.”

“뭐야! 키는 훨씬 꼬마면서!”

제현의 내공으로 정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눈을 부라렸다. 그에 제현은 내공을 흘리며 술병을 들어 올리며 그녀의 술잔을 채우며 미소를 짓는 것으로 입을 다물었다. 허공섭물의 수에 놀란 것인지 술잔에 술을 채운 것이 당황스러운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누가 이정도로 겁먹을 줄 알고”

쾅!

단숨에 들이키고는 술잔을 거칠게 테이블을 치고는 몽롱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본다. 취한 것인지 술 때문에 내공이 역류해선지 모르지만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쿵...

몇 초가 지났을 까...그녀는 테이블에 엎어지며 고른 숨을 토해내며, 조용해졌다. 아마, 쓰러졌을 것이다. 처음 자신 역시 기절했기 때문이다. 두 잔이나 마신 것도 놀라웠다. 누가 이정도의 술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대단했다.

“손님, 주문하신 아귀탕과 호돈구이가 나왔습니다.”

모든 음식이 나오자,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약간의 소란에 주위에 있던 자들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조용해지자 자기들 끼라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현은 나온 음식을 안주삼아, 숨을 몇 병이나 들이켰다. 그래봐야, 취하는 것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취했다.

“바람은 자유를 상징하니, 나의 의지 역시 자유롭네. 바람이 하늘을 떠도니, 나의 영혼조차 자유롭구나....”

제현은 풍운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의 심연을 울리고 있었다. 곧, 그의 마지막 깨달음이 떠오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제현은 풍운지의 깨달음의 전철은 밟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길을 통해 얻어진 경지였다.

“손님...누군가 이것을 전해주라고....”

종업원의 말에 그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양피지다. 종이를 구하기 어려운 만큼 동물의 가죽을 통해 글을 남기고 있다. 지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종이다.

“누가?”

“아...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종업원은 곧 종이를 건 내고는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위해 제현과 멀어졌다. 제현은 그 가죽에 적힌 글귀를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잘지냈는 가?

 흡혈지존 조제현! 이제 인연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안한가? 하지만 아직 끝을 보지 못한 것이 있지. 나와 자네, 혈교와 자네 말이야.

지옥에 처음 만났을 때는 한주먹도 안 되던 자네가 이정도로 성장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네.

하하하, 혹여, 싸움을 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네. 자네 역시 그걸 바라지 않을 테니! 

 혈교의 부교주, 아니, 어두운 날, 비가오던 날, 자네의 가슴을 때렸던 사내, 피풍의를 걸쳤던 자라고 하면 알까.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만나지. 시간은 일주일 뒤, 나에게는 시간이 없네, 일주일 후에는 나 역시 형벌이 끝나, 환생의 문으로 들어가지.

악연을 끊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인줄 알았던 자네가 용이 될 줄이야. 기다리고 있겠네.

“하하, 죽으려고 스스로 찾아오는 구나. 마도영.”

제현은 용아주를 단숨에 삼키고는 하윤을 들쳐 업고 방으로 올라갔다. 일주일 뒤, 처음 만났던 장소를 가기위해서는 빡빡하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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