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69)

900년의 끝

지금 지옥은 굉장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과거의 고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혈교의 마도영, 마도맹의 조제현, 전설로만 전해지던 싸움의 주인공들이 지금 이 지옥에서 마지막 싸움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소문들, 흡혈지존의 무공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과 그의 제자가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지옥의 사람들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무공에 뜻을 둔 자에게는 꿈같은 무공서다.

과거, 지옥의 4존중에서도 당연 으뜸으로 꼽던 제현이니 만큼, 그의 무공은 엄청난 가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도 그가 마지막 싸움을 펼치기 위한 장소인, 지옥의 문 근처로 가는 것은 당연했다.

“틀렸다. 유를 펼치기 위해서는 검병의 끝을 부드럽게 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남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하윤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간간히 절벽아래에 무공에 대해 적어 놓는 것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세간의 소문은 사실이었다.

비록, 자신의 절기 중 기초만을 적어 놓은 것이지만, 그 어떤 무공보다도 강력한 무공이었다. 절벽을 가득 메우는 여러 가지의 초식들, 그리고 그림, 하나하나, 만오의 무공을 펼치기 위한 기초 수련까지 모든 것을 적어 놓았다.

“이곳의 주인은 너다. 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 놓은 대로만 수련한다면, 웬만한 고수는 일초에 끝 낼 수 있을 것이다.”

“으응...”

일주일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별이란 이런 것이다. 존재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순간 사라져 가는 것이 인간이다. 부모님의 빛이 가장 밝아 보이는 순간, 부모는 죽는 것이다. 하물며, 하윤으로써는 현생에서 느끼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존재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딸의 성을 따라 간 것인지는 모르겠다만...너는 만오문의 27대 문주로 임명하겠다. 만오문의 특별한 뜻은 없다. 만 가지의 깨달음을 얻는 다...이것이 만오문이다.”

제현은 그 말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었다. 물론, 무공을 준 것도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오문의 사람들 대부분, 자신의 절기중의 절기는 남겨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은 기초로 통해 자신이 길을 열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뜻 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제현은 자신의 절기중의 절기인 흡혈마공은 물론, 만검의 사초의 상위 초식을 모두 가르쳤다. 깨달음이 부족해 펼치는 것이 어색했지만 몸으로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큰 뜻을 펼 칠 수 있을 것이다. 

“이리 오거라.”

제현은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하윤을 부르며 유일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는 나무 그늘로 가며 자리에 앉았다.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제현의 모습을 본 것인지 아무 말하지 않고 제현의 곁에 앉은 하윤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연히 하윤은 가부좌를 틀며 제현의 앞에 앉았다. 매일 하는 것 인 것만큼 제현은 쌍장을 하윤의 등에 가져다 대며, 내기를 하윤의 혈도로 주입했다. 똑같은 기운이라 그런지, 반발력이란 미약했다.

중단전을 가로막는 기운을 없애기 위해, 제현은 일주일간, 하윤의 혈도를 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안배였다. 자신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정도의 선행을 배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단전과 중단전을 잊는 통로는 아주 중요하다. 중단전이 심장인 만큼 그 혈도는 대부분 사혈로 통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기로 보호 할 수 있어야 한다.” 

제현의 심장을 보호하는 것은 9개의 고리였다. 물론, 보호하지 않는 다면 언제든지 일반인  처럼 찔려 죽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방어의 자세는 목과 가슴을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물며, 사혈이라고 하면 작은 충격에도 강한 충격을 주기 때문에 내력으로 보호하는 것은 무림인들 사이에서도 당연하다는 인식을 주고 있었다.

“27대 문주, 하윤...하하하!”

제현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내기를 거두어들이는 한편, 옥당혈을 집었다. 잠을 재우는 혈도다. 하윤을 끌어 들일 정도로 제현은 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27대 만오문의 문주다. 비록 문도라고는 아무도 없지만, 만오문이라는 것이 일인문파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후읍ㅡ

팟!

“900년의 끝!”

제현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볍게 땅을 박찬 것 치고는 도약이 엄청났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무위였다. 가슴부터 우러나오는 차가운 기운에 벽은 미세한 균열이 가고 있었다.

“대충...50명”

지옥의 문에서 느껴지는 기운만 오십이다. 아마, 그중 가장 강한 기운은 마도영의 것일 것이다. 제현은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을 보며,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를 사용했다. 기척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에 아귀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생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지옥의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전쟁의 시간이 다가온 만큼 많은 무인들은 지옥의 문 쪽에서 소란스러워졌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각지의 무인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대부분의 지옥의 상마(上魔) 1000위권 내의 고수들이었다.

저마다 화려한 무복이나, 무기를 뽐내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자들은 인사치례를 하며,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물론, 무공에 대한 열망으로 경계하며 적대하는 것은 있었지만, 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혈교의 마도영 때문이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지옥의 1위였기 때문이다. 지옥에서의 1위는 엄청난 위치인 만큼 그 누구도 무시 할 수 없는 자리다. 물론, 표면적으로 1위는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자였다. 게다가 무공도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오만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뭐야! 이 늙은이가 비공식으로 1위라고? 웃기는 군.”

무공의 수위가 높은 것인지 그의 온 몸에서 뿜어지는 마기가 주위를 옥좌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도영과 더불어 그 주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가소로운 눈빛으로 눈앞의 존재를 비웃고 있었다.

“애송아...꺼져라.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마도영의 말에 그는 약간 흠칫거렸지만 자신의 지위와 체면 때문인지, 호탕하게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는 등 뒤의 도를 꺼내들었다. 그는 과거의 대도의 고수인 마호영의 도와 비슷하게 제작했다. 그의 별호는 절명도(絶命刀)였다.

“절명도...주군의 말씀을 못 들었나?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큭...! 개자식들, 내가 누굴 줄 알고!”

마도영과 더불어 그의 수하까지 비아냥거리자 화를 참을 수 없었던 절명도는 분노의 도강을 뿜어냈다. 세 줄기의 휘강이 도를 휘감으며, 금빛의 마기를 뿜어냈다. 콧속에서 뿜어지는 뜨거움 김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곧 그의 도가 마도영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쾅!

“까불지 마라! 나 절명도야, 절명도!”

강한 괴력과 베는 것을 중점으로 둔, 도 인 만큼 파괴력은 엄청났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에 주위의 무인들인 인상을 찌푸리며, 내력으로 그 먼지를 걷어 냈다.

“고작 이런 실력으로 지옥 1위를 차지 한 것인가? 우습군. 식후 운동 거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보란 듯이 보여주는 비웃음을 머금은 마도영의 몸에서 천년의 내공이 뿜어졌다. 시뻘건 마기가 뿜어지며, 그의 온몸을 옥좌하며, 뱀의 눈빛처럼 그의 눈이 좌우로 좁혀졌다. 사안(死眼)이었다. 맹수에 붙잡힌 초식동물처럼 그는 부들부들 떨며 움직일 수 없었다.

“멍청한 교주와는 다르다. 나는 900년이나 무예를 수련했다. 멍청하게 복수에 눈이 멀어, 수련을 완벽하게 끝마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의 양손에서 강기가 뿜어지며 붉은 조(爪 : 손톱, 판타지 식으로 클로)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곧 그의 몸이 꺼진 듯이 사라지며, 절명도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깔끔한 수법에 모두, 절명도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퍽!

절명도가 멀리 나가떨어진다. 마도영의 무공에 맞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절명도를 마도영의 범위 권 밖으로 차 버린 것이다.

“마도영, 애송이를 가지고 놀고 있군. 나랑 놀지 그래? 900년이나 기다렸다. 그날의 치욕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

제현이었다. 은빛의 마기가 온몸을 뒤덮고 있다. 극의 냉기다. 얼음에도 색깔이 있듯이, 제현 역시, 냉기의 극에 달했다. 투명할 정도의 은빛에 주위의 무인들이 백보 이상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하하하! 노부, 역시 네놈을 기다렸다.”

“노부? 하하하! 웃기는 구나.”

제현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이곳에 오기 전 챙겨 놓았던 검을 꺼내 들었다. 마령검이야 소멸했지만, 비슷한 느낌의 검을 구해들었던 것이다. 그에 뒤질세라. 마도영은 조를 꺼내 들며 자신의 양손에 착용하고 있었다.

900년간 정차되어있던, 복수가 시작되었다. 

900년의 끝

단체로 달려들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약 100미터로 벗어나며, 나무나 돌덩이 뒤에 몸을 숨기며 마도영과 제현의 싸움을 관찰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며 한번 볼까 말까한 싸움이다. 고수 대 고수,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결투가 아닌 것이다.

우르릉!

쾅!

“후후...마침 비도 오는 군. 그 날과 같은 환경.”

하늘이 어두워지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손바닥에 닫자, 스멀스멀 한기가 솟아올랐다. 과거, 처음 지옥에 발을 들였을 때도 이처럼 비가 스멀스멀 내렸었다.

그리고, 눈앞의 마도영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고 풍운지를 만난 것 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풍운지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너에게 당한 것을 지금으로써는 고맙게 생각한다. 네놈이 없었다면, 강해지고자하는 원동력이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900년간의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다.”

“네놈이 죽을 시간이지.”

제현은 검을 움켜쥐며, 검신을 땅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순간 검을 뒤집으며 마도영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곧, 마도영 역시 조(爪)를 바로 세우며, 자신의 기운을 뿜어댔다.

마치, 과거 혈마와 싸울 때처럼 기묘한 느낌에 몸이 욱신거렸다. 확실히 녀석은 900년간 강해졌다. 하지만 제현 자신도 꾸준히 수련을 했기 때문에 과거보다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른손에 들려진 평범한 검에 미세한 기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한기가 뿜어지며, 곧, 형상을 갖춘 검기가 형성됐다. 검강이다. 내기의 양만 따진다면 둘의 내공은 막상막하다.

저벅...저벅...

두 명의 고수는 빈틈을 찾기라도 한다는 듯이 느릿한 걸음으로 좌에서 우로 움직였다.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사람들도 침을 꼴깍 넘기며, 고수의 움직임을 머리에 세기겠다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돌고 돌았을 까. 먼저 움직인 것은 마도영이었다. 그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제현에게 뛰어 들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깔끔하게 한 번의 발자국이 찍혀있었고 곧, 그의 온몸이 불게 물들며, 기운이 폭사되었다.

창!

검(劍)과 조(爪)가 부딪히면서 청명한 음색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열 개의 손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제현의 검은 왼손에 의해 진동이 멈추었다.

차르릉~ 치이잉~

“제법 좋은 한 수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왼손으로 검신을 쓰다듬은 제현은 사납게 눈빛을 토해냈다. 왼발이 살짝 뒤틀리며 곧, 오른발의 아킬레스건이 강하게 수축했다. 지면을 박찬 것이다. 마치, 돌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던 그의 기척이 급속도로 커져갔다.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

일보에서 좌측으로 왼발이 나가며 곧 오른발로 교차되며 좌우로 움직이는 수법이다. 허나, 보이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상 제현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이다. 바람이란, 규칙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현은 풍류마신보에 특정한 발걸음을 만들어내지 않았던 것이다.

순수하게, 움직이는 것, 그것으로도 상대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영보법이 기척을 죽이는 것이라면, 풍운보법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현은 두 가지의 보법을 합쳐 풍류마신보를 만들어냈다.

샤샥!

두 번의 발걸음이 났을 까? 제현은 신형은 이미, 마도영의 지척에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신형이 마도영의 앞에 나타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무인들은 눈을 몇 번이고 비볐지만 제현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았다. 동에서 나타났다 싶으면 서에서, 서에서 나타났다 싶으면 북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낙(落)”

만검의 초식이 풍류마신보에 맞게 펼쳐졌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살초가 되며, 허초가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검을 섞었다는 듯이 마도영은 검의 선을 따라 모든 초식을 막아 내고 있었다. 자신 역시, 자신의 절기를 뿜어내며, 제현의 초식에 대응하며 응수를 했던 것이다. 자잘한 상처 따위야 두명에게는 그저 싸움의 흔적일 뿐이다.

5초도 되지 않았건만, 그들의 움직임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들의 움직임을 쫒을 수 있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간혹 나타나는 잔영으로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추측 할 뿐이었다.

캉ㅡ까가가가

각자의 병기가 서로 맞부딪히며, 듣기 거북한 소리를 뿜었다. 숨을 돌리기 위해서 인지, 제현과 마도영은 그 자리에 멈춰서며, 서로의 눈을 주시할 뿐이다.

진정 고수의 대결이었다. 급박하고 빠른 템포의 움직임에 그 누구도 숨을 돌리 수 없었다. 간혹, 누군가 안타까움의 소리를 내는 가하면, 자신의 수법과 대조해 가며, 고쳐야 할 부분을 탐색하기도 했다.

두 고수의 대결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하수(下手: 맞나? 경지가 낮은 자를 가리킴)들로써는 한걸음 높은 경지로 다가 갈 수 있는 대결이다. 이 순간 그들은 이런 위대한 대결을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었다.

“저것이 고수의 대결....”

“두 명에게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우리였다면 일초도 받아 내지 못할 수를...!”

제현의 도움으로 나가 떨어졌던 공식 지옥 서열 1위인 절명도가 입을 벌리며,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 주위로 많은 고수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엇다. 단순한 고수들의 싸움이라면 이렇게 까지 하지 않을 것이지만, 저 들은 전대 고수중의 고수였다.

그것도 전설로 전해지던 4존 중, 손에 꼽는 자인, 흡혈지존(吸血至尊) 조제현(曺帝鉉)이지 않은가! 그의 존재만으로도 큰 두려움이 된다. 게다가 그는 지옥 서열따위로 구분할정도로 얕은 무공수위가 아니다.

지옥 1위라고 칭한다면 그의 무위가 치욕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는 진정, 지존이다. 하물며, 그에 맞서는 존재인, 혈교의 부교주, 귀혈마권(鬼血魔拳) 마도영 역시 지존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무위다.

지금껏 지옥의 지존은 고작 다섯으로 알려져 있다.

마교의 천마, 혈교의 혈마, 마신군의 벨즈비트, 마도맹의 조제현, 그리고 정도맹의 풍운신협 조송악

900년간, 그들의 무위와 움직임은 지옥 역사 속에 기리 남을 만큼 위대했다. 그중 단연 손에 꼽는다면, 흡혈지존을 꼽을 수 있겠지만, 풍운신협 조송악 역시, 만만치 않은 전설을 만들어냈다.

마교의 잔당과 혈교의 잔당 괴멸, 지옥 미지의 대륙 겁화도 발견 등, 역사에 기리 남을 정도의 발견과 개발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정도인(正道人)이라고 칭할 만큼 의협심이 뛰어났다.

“마도영, 처음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라!”

“재계(齋戒) 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주었어야 했다. 그건 너의 실수!”

확실히 마도영의 무위는 혈마를 뛰어 넘고 있었다. 숨을 돌리던 둘은 급히 뒤로 떨어지며, 병기를 움켜쥐었다. 둘의 대결은 땀을 쥘 만큼 긴장의 연속이다.

마도영의 수하들은 그가 이길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다는 듯이 평온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지옥의 순위권의 무인들은 마도영이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만, 흡혈마공의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제현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믿을 뿐이다.

“하하하, 오랜만의 감촉이군! 파천(破天)”

제현은 파천을 사용했다. 찌를 듯 한 살기가 피어오르며, 하늘을 부수는 검이 되었다. 은빛의 검강이 대지를 뒤덮으며, 마도영의 시야를 가득 매웠다. 온몸을 분해 해버릴 듯 한 기운에 마도영은 급히 기운을 끌어 모으며, 파천에 대항할만한 초식을 펼쳤다.

“천지참살(天地慘殺)!”

제현과 비슷한 온 몸을 난자하는 기술이다. 내공이 없더라도 위력이 강한 만큼 강한 내력이 들어가는 지금이야 말로, 진정한 천지참살을 맛 볼 수 있다. 대지를 부수며, 하늘을 죽이는 엄청난 초식이었다.

두 가지의 기운이 급히 맞물리며 강한 파공음을 토해냈다.

파캉!

강한 내공으로 두 병기가 버터지 못한 것이다. 병기와 병기가 맞부딪힌 순간, 두 병기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병기의 파편이 각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 들었다.

티티팅!

병기가 부서지며 생긴 파편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미, 두 내력을 머금은 만큼 그 파괴력도 엄청났다.

볼을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생겨나 있었다. 길게 찢어진 상처에 제현은 살짝 그곳을 건드렸다.

툭!

솨아아!

차갑도록 시린 비가 내리자 상처부위는 쓰라렸지만 곧,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간단한 치유술이다. 하지만 내상은 어쩌지 못하는 것인지 작은 충격에도 고통이 느껴졌다.

“큭...역시 병기에 무리가.”

고개를 뒤로 젖힌 마도영은 조(爪)를 지탱하던 가죽을 떼어 내며, 거칠게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었던 만큼 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치유가 되었다고는 하나, 처음 베였을 당시 뿜어졌던 피는 차가운 빗줄기에 씻겨 나갔다.

“본격적으로 해볼까?”

“크크...”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운으로써 각자의 병기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제현은 은빛의 검이 손바닥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마도영은 양손의 손톱 쪽에서 강한 기운이 뭉쳐지며, 무형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방금 전까지의 싸움이 고작...몸 풀기...?”

“저럴 수는....!”

“저게 지존들의 싸움인가!”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당혹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비는 더욱 거칠게 쏟아지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우르릉, 쾅!!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는 듯이 더욱 거세게 내리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고 있었다. 마치 두 명의 싸움을 축복하고 있다는 듯이 어두운 싸움터를 간간히 밝혀 주고 있었다.

900년의 끝

무형의 기운으로 싸우는 둘의 온 몸은 역동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둘의 무공이 마(魔)에 속하기 때문인지 경쾌하기 까지 했다. 싸늘한 빗방울에 아랑곳 하지 않는 다는 듯이 거센, 기합을 토해냈다.

“하압!”

빠지직!

강한 기운과 강한 기운이 부딪히며, 반발력이 생기는 것인지 작은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둘에게는 초식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직, 수많은 실전을 통해 얻어온, 공격 술을 응용할 뿐이다.

둘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초식에 얽매이는 것은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둘은 범인(凡人)이 본다면, 막 싸움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상, 엄청난 싸움에 속하고 있었다.

작은 오류를 남긴다면, 언제 어디서, 팔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물며, 작은 움직임에도 초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만큼 심적인 부담도 컸기 때문에, 제현과 마도영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주르륵!

“그때 떠오르나? 왜 날 공격했지?”

제현은 굵은 빗줄기에 얼굴을 쓸어 넘기며, 짧은 숨을 토해냈다. 질퍽해진 바닥에 물이 점점 고이며, 발은 진흙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곧 몸은 10센티미터 정도 떠오르며, 마령지기(魔靈持氣)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왜냐고...? 내 대답은 이것이다!”

마도영의 손에서 기묘한 기운이 뭉치며, 그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몸뿐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역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듯 한 움직임이었다.

거친 숨소리 하나하나, 그의 입에서 뿜어지는 김마저 천천히 사라져갔다. 곧, 그의 손이 빗줄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터터텅!

그의 손바닥에 부딪힌 세 줄기의 빗줄기가, 곧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며, 제현에게로 날아들었다. 하나하나, 강한 기운을 머금으며, 살아있는 뱀처럼, 핏빛의 꼬리를 만들며 날아갔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마도영의 수법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쓸 대 없는 짓...!”

쩌어억!

마령지기에 의해, 제현의 몸에 닺기도 전에 얼음으로 변하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는 영향에 미치지 않은 것인지 마령지기를 뚫고 지상을 적시고 있었다.

또르륵

제현의 이마에서 시작된 작은 줄기가 서서히 턱을 타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가만히 있던 제현의 손이 움직이며, 그 작은 물기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차가운 냉마기 때문인지 그 물기는 곧 얼음으로 변하며, 마도영에게 날아들었다.

그 얼음덩어리는 타원을 그리며, 빠르게 마도영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가는 내내, 뻥 뚫려 버린 하늘에서 내려쬐는 물기가 동조하기 시작하며, 싸늘한 예기를 토해냈다.

우르릉~ 쾅!

순간, 하늘에서 굵은 번개가 떨어져 내리며, 사방을 밝혀 주었다. 노란빛에 모두 눈을 껌벅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번개는 마도영의 판단력을 흐트러버렸다.

비를 뚫고 들어간, 제현의 소수신장(素手神掌)의 변형, 즉, 방출형의 장풍의 파공음이 번개 소리에 파묻혀 버렸던 것이다. 천운인 것인지, 우연인지, 그 장풍은 마도영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푹!

“큭...”

가슴언저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도영은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 혈도를 집으며, 출혈과 한기를 억제하고 있었다. 곧, 바른 혈색을 되찾은 마도영은, 지체 할 수 없다는 듯이, 무형조(無形爪)를 뿜어내고는 질퍽한 진흙을 박찼다.

팟!

그는 빗속을 뚫고, 어두운 어둠을 틈타, 기척을 잠재웠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와 질퍽한 진흙이 조화가 되며, 기척이 순간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살기(殺氣)마저 억제하며, 날카로움의 예기를 지워버렸다.

마도영은, 날카로운 눈빛을 띠며, 조를 휘둘렀다. 순간 폭사된 살기는 거친 야생마처럼, 날뛰기 시작하며, 제현의 가슴을 노린 맹수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툭 튀어나온, 혈관이 부풀기 시작했다.

쉐에엑!

떨어지는 빗줄기에 기척을 죽인 완벽한 수법이었다. 그의 혈관을 통해 뿜어진, 혈기에, 정신을 일깨운 제현은 몸을 살짝 비틀었다. 하지만 마도영이 당한 곳처럼, 가슴 언저리를 내어 주며, 무형검으로 마도영의 조를 튕겨냈다.

텅!

“제법...”

튕겨나간 마도영을 보며 제현은 무형검을 잡지 않은 왼손으로 바닥을 향해 살짝 장을 뿜어냈다. 그러자, 제현의 신형은 급히 앞으로 쏠리며, 그의 발에서는 작은 기운이 생겨났다. 풍류마신보다.

마도영은 튕겨나가며, 제현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곧, 제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마도영은, 튕겨나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몸의 중심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몸을 비틀며, 회전시켰다. 하지만 빠르게 들이 닥치는 제현의 몸을 보며, 호신강기를 급히 끌어 올렸다.

슈우욱!

공기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제현의 몸은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은빛으로 빛난 제현의 눈빛에서는 스산한 살기가 비쳤다. 그리고 마음 한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푹!

“컥....? 호신강기를....어떻게?!”

핏빛의 호신강기를 뚫고 그대로 마도영의 명치를 찔러 버렸다. 화려한 초식도 없었다. 패도적인 검법도 없었다. 오직, 분노의 내공과 주체 할 수 없는 살기로 그의 호신강기를 뚫고 명치를 찔러 버렸던 것이다.

우우우웅~

무형검이 파르르 떨리며 공명을 토해낸다. 주인의 승리에 자신 역시 기쁘다는 듯 한 울음이다. 하지만 곧, 제현은 무형검을 유지하던 내공을 흩어 버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뭔가 답답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아니다. 뭔가 부족한 느낌.”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부족한 느낌에 허망하다는 듯이 제현은 뒤로 물러나며, 마도영과 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쿨럭...애송이 따위에게...!”

“......”

과거 무식하게 광범위 공격도 필요 없었다. 오직, 필살의 수법에 적을 없앨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무엇인가? 복수가 눈앞이건만, 허망하다는 생각에 싸울 의지가 사라진 듯이 제현은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900년간, 그리고 그리던 복수...하지만 세월의 시간 때문인지 많이 희석 되어 버렸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이 거리낌이 없건만, 지금은 약간 주춤 거린다. 900년의 세월에서 남긴 것은 고독뿐이었다.

알고 지내던 존재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것은 제현으로써는 고통스러웠다.

“이런 복수가 무슨 소용일까. 다 허망할 뿐이다. 어차피, 지금이 지난 다면, 잊혀질 일이다. 네 목숨은 취하지 않겠다. 이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지긋지긋하니까.”

제현은 멍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마도영에게, 은빛의 기운을 뿜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은빛의 기운은 마도영의 가슴과 여러 가지 상처를 감싸며, 곧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은빛의 기운에 마도영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크하하하...내가 전설이 되겠다! 조용히 죽어라!”

마도영에게 등을 보였던 제현은,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마도영의 것은 아니었다. 마도영은 제현과 마찬가지로,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이, 수하들에게 손짓하며, 조용히 물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돼!!!”

누군가 외친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보건데, 여성의 음성이다. 곧, 두 명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900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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