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쾅!
번쩍!
하늘에서 강한 섬광이 내려쬐며, 온 세상을 밝혔다. 잠깐이었지만 제현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은 단 두 명, 은빛의 도(刀)를 움켜쥐며,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녀석, 그리고 비 때문에 머리칼이 뒤엉켜 대부분의 얼굴을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조하윤이다.
하윤의 얼굴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방향은 남쪽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고 있었고, 제현에게 도를 들고 달려드는, 절명도는 제현의 정면에서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도(刀)는 찌르기가 좋게 제련된 특별한 도였다. 어떻게 본다면 검으로 착각 할 수 있지만, 베기 위한 도였다.
팟!
순간, 하윤이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뛰어 들었다. 마령심법의 수법으로 한 번의 도약으로 절명도와 제현의 사이를 가로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몸이....?”
제현은 몸을 비틀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몸의 구석구석에서 상쾌한 느낌이 나기 시작하며, 지옥의 깊고도 깊은 중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느낌상이지만, 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절명도의 도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제현은 두명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절명도의 도가 지척에 다가왔고, 하윤의 몸, 역시, 제현의 지척에 다가왔다.
그녀에게 선물했던 검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오며, 절명도를 쳐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흥! 애송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텅!
절명도의 도에서 밝은 빛이 휘감는가 싶더니, 하윤의 검을 멀리 튕겨 내며, 곧, 방향을 틀어 제현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허나, 하윤도 만만치 않은지, 검이 튕겨나감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아무리 흡혈지존이라도, 큰 싸움을 치루니, 어쩔 수 없는 가보군!”
절명도의 손끝에서 기운이 폭사되는가 싶더니, 곧, 도강이 뿜어져 나왔다. 싸늘한 예기에 제현은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수만 번의 죽음을 통해,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하윤이었다.
파르륵!
도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절명도의 특기인 회류회강(回流回强)이다. 도를 사용함에도 찌르는 기술이 있다는 것은 큰, 변수로 작용하기도 하고, 빈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회류회강이, 큰 빛을 발하고 있었다.
푹!!
강기가 덧씌워진 도는 육체를 탐닉하며, 빠르게 뚫고 들어갔다. 제현의 눈동자는 순간 커지며, 눈이 파르르 떨렸다. 게다가, 손까지 파르르 떨리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내가 전설이다!”
“컥....”
절명도는 광소를 흘리며, 자신의 도를 움켜쥐며 함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아직까지, 제현의 모습을 보고 있던, 많은 지옥 고수들은 그 모습에 경악하며, 뒤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절명도가 흡혈지존에게 한방먹인 것이다.
도를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물웅덩이에 떨어졌다. 파르르 떨리던 제현의 몸이 평정심을 찾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감히...감히!!”
퍽!
제현의 손에서 분출된, 소수마공(素手魔功)이 오른손을 감싸며, 은빛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밝은 광체의 그림자는 마치, 인간의 뼈처럼 보였기에 손을 괴기스럽기 까지 했다.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하자, 무언가 잘못 됐다는 생각에, 절명도는 자신의 도의 끝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절명도의 시선이 머물기 시작하자, 그는 눈동자가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분명, 흡혈지존의 단전을 향해 찔러 넣었다. 허나, 이게 웬일인가? 그의 도가 뚫고 지나간 자리에는 이름도 모르는 계집의 허리를 꿰뚫고 있었다.
“네놈 따위가....! 손녀...손녀를!”
제현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당황해 하는 절명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려쳤다. 제현의 손과 그의 머리가 닫는 순간, 절명도의 머리는 얼음이 됐다는 듯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곧,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제현의 손을 중심으로 열 가닥이나 되는 작은 균열이 점점 절명도의 이마를 통해, 눈과 귀, 뒤통수 등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퍽!
곧, 그의 몸이 박살나기 시작하며, 도와 그의 손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현은 그에게 시선은 주지 않았다. 오직, 멍청하게 앞을 가로막은 손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900년이나 홀로지낸 만큼, 제현의 감정도 굳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손녀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멍청하게...왜 몸으로 막은 것이냐...어차피, 돌아갈 몸이거늘....”
“헤헤...”
제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있는 기운을 끌어 올리며, 하윤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강이 온 몸을 헤집어 놓은 것인지, 찔러 들어간 상처를 시작으로, 내상이 급속도로 번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푸우~
하윤의 입에서 검붉은 죽은피가 쏟아지며, 제현의 얼굴을 적셨다. 허나, 제현은 외상을 빠르게 치유하며,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내상을 바로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것인지, 몸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밝은 빛이 토해지며, 하늘에서는 검은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검은 공간에서는 가지각색의 기운이 몰아치며, 제현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900년이란 세월동안 많은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며, 그동안의 인연이 떠올랐으며, 마지막은 하윤으로 끝을 맺었다.
순간, 풍운지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왜 그런지 자신도 몰랐다.
* * *
“허허, 자네는 아는 가? 인간은 죽음으로써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네.”
“그런가...? 나는 아직 모르겠군. 하지만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풍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살짝 내공을 끌어 올렸다. 곧, 그의 손에서는 붉은 색과 노란 색, 주황색의 불꽃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그의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불꽃이라고 할 수 있지. 자신이 원하는 순간, 생명의 불꽃은 한 없이 커진다네.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갈 지라도, 그 불꽃은 영원히 가슴속에서 타오르지.”
“.....?”
제현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제현의 모습에 풍운지는 왼손을 들어 제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이, 무슨 짓을...!”
“하하, 만약, 소중한 존재가 죽음의 기로에 놓였을 때, 자네는 어떻게 할 것인가...그것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모든 것과 직결된다면....”
“나는....모르겠군.”
제현의 머릿속은 순간 복잡한 생각이 교차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고는 하늘에 떠 있는 지옥의 달을 보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난 말일세. 소중한 존재와 쌓아 올린 것을 비교한다면, 소중한 존재를 택할 것이네...그것이 나의 모든 것과 직결된다고 할지라도...”
그날 제현은 풍운지의 말을 흘려들었지만, 수년의 시간이 지난후, 풍운지의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내공과 무공, 그리고 젊음을 포기하면서, 제현, 자신을 탈출시킨 위대한, 사부이자 친구였던 풍운지의 행동을....
* * *
콜록! 콜록!
하윤의 내상이, 호전되는 가 싶더니, 더욱 악화되어 버렸다. 자신의 책임이다. 잡생각이 그 때 떠올랐기 때문에 더욱 심해진 것이다. 게다가, 몸은 더 이상 지옥에서의 생활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빠르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허...허허, 풍운지...드디어 자네의 질문에 답을 할 때가 온 것 같군...나 역시 자네와....”
제현은 흡혈마공을 끌어 올리며, 물에 빠진 고양이마냥,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하윤에게 가져다댔다. 게다가 그 흡혈마공은 상대의 내공을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공을 역행시키고 있었다.
“비록...나의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소중한 존재는 지켜야하지 않겠는 가....쿠쿡, 건방진 손녀여.”
제현은 자신의 복부를 향해 수도를 찔러 넣으며, 피가 잘 뿜어지도록, 상처를 벌렸다. 곧,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기 시작하며, 하윤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인지, 제현은 자신의 절기를 이용해, 내공을 끌어 모으며, 하윤의 내상을 바로잡으며 단전에 자신의 내공을 쌓아 주기 시작했다.
“쿨럭....컥...”
더 이상의 내상의 악화는 없었다. 이제, 조금씩 혈색을 회복하며, 죽은피는 모두 몸에서 빠져 나갔다. 게다가, 의식이 약간씩 돌아오는 것인지, 눈이 꿈틀거리며 떠지기 시작했다.
“잘 지내 거라....! 나의 후손이여....”
솨아아아!
제현은 남은 내공으로 하윤의 몸을 강제로 텔레포트 시키며 하늘로부터 시작되는 강한 기운에 이끌려, 지옥과 명계를 이어주는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드디어 900년의 고통과 억겁의 분노가 사라졌다. 더불어, 자신의 몸을 지탱하던 내공도 사라지니, 육체는 자연히 소멸되며 혼백의 영혼만이 게이트를 통해, 명계로 이동되고 있었다.
“어둠은 나의 육신을 속박하니, 나의 의지 역시 어둠에 속박되는 구나, 어둠을 가르는 진정한 어둠이 되리라.”
공허한 제현의 음성이 게이트에서 울리고 있었다.
외전 - 조하은, 이계진입
지옥 100년, 두 남매에게 있어서 지옥은 많은 시련과 고통을 낳았다. 지옥의 원주민이 갖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둘은 두 명의 어머니와 한명의 아버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95년 전,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었다. 분명, 지옥에 있다는 것은 확신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의 발자취만 느껴질 뿐, 아버지의 모습은 지옥 어느 한 구석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마도맹의 지존이었다는 것과 지옥 제일의 무인이었다는 점이다.
“하은아, 더 이상 찾지 말자. 이미 95년이나 지났잖니.”
“오라버니...하지만...”
하은은 자신의 오라버니의 말에 눈에서 이슬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송악의 뒤에는 수하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소리 높여 울 수는 없었다. 오라버니의 품에서 흐느끼며 하은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흑....”
“아버지도 무심하시지...어찌하여, 100년이 지나도록, 가족을 찾지 않는 것인지...!”
송악은 아직도 소리죽여 울고 있는 하은을 보며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두 명의 어머니를 명계로 보낸 것이 50년 전이다. 하물며 하은과 송악의 나이도 2갑자에 근접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알 수 있었다.
스윽...
“헤헤...오라버니, 이제 안 울게요.”
“그래, 그래야지. 그만 잊으렴, 아버지가 없어도 잘 지내왔잖니.”
하은은 송악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찾기 위한 결심은 굳어져 있었다.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왜, 가족을 떠난 것인지 가족보다 무공이 중요한 것인지 물어봐야 했다.
“오라비는 가야겠구나...”
“아...”
하은은 잘 알고 있다. 오라버니가 하는 일을... 그는 한 단체의 수장이었다. 언제까지 하은 자신의 곁에 머물며 신세타령을 할 정도로 얕은 위치가 아니었다.
“미안...다음에 만나면, 꼭 곁에 있어주마.”
송악은 그 말을 하고는 등을 돌리며, 자신들의 수하들과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옥에서 밝혀지지 않은 땅을 개척하러 가는 것이다. 물론, 마교나 혈교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처럼의 시간도 용납 할 수 없었다.
하은은 멀리 떠나가는 송악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눈가에서는 다시 습기가 뿌려지며, 앵두 같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오라버니...저는 포기 할 수 없어요.”
하은은 자신의 오라버니가 단체를 이끌 동안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며, 몇 백 년에 한번 열리는 위치까지 파악했다. 그것이, 지옥의 입구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지옥에 없다면, 그곳뿐이잖아요. 안녕히....”
하은은, 지옥의 평야를 가로질렀다. 마영신법의 극에 달한 그녀의 신법은 그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오라버니인 송악마저도 하은의 신법을 따라 잡는 것은 여간해서는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상당한 내공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가 남긴 무공의 효과가 엄청났기 때문 도 있지만, 어머니들의 도움이 컸다. 적절한 수련법과 아버지나 남긴 무공을 직접 보아온 그녀들이었기 때문에, 익히는 데는 그렇게 어려움이 없었다.
하은은, 몇날 며칠을 달려, 옛 마교의 성 근처인, 지옥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절벽아래의 집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들렸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대로 놓여 있는 집안의 의복, 그리고, 한가득 쌓여 있는 먼지에 손을 내저어 청소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간혹 들릴 때마다 하는 행동이다.
“여기가...지옥의 문...”
크어어어!
지옥의 문 주위에는 수많은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절벽주위의 마물들을 정리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지옥의 문 근처에는 수십의 마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은은 왼쪽 허리에 매여져 있는 검을 살짝 뽑아 올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모양의 무기였다. 그 검의 이름은 빙화(氷花)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청명한 음색을 토해내며 뽑힌 검을 보며, 살짝 쓰다듬으며, 기운을 피워 올렸다.
스스스
검강이다. 이미, 현경의 초입에 달한 하은이었기 때문에, 수십의 마물은 한순간에 처리 할 수 있다. 오라버니에 비하면, 미천한 실력이었지만, 상당한 고수에 속하는 하은이었기 때문에 검을 잡는 순간은 그 어떤 무인보다, 무심(無心)을 유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라버니와는 다르게, 자신은 아버지의 절기를 그대로 이어받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에 대한 과다한 집착은 이 무공에서부터 비롯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만검....낙(落)!”
특이한 기수식과 동작, 하나하나가 제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사슴 같은 두 눈은 은은한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기가 휘감자, 마물들은 더욱 흥분 하는 가 싶더니, 주춤거리고 있었다.
슈아악!
미약한 파공음이 들린다. 단 일수에 반월의 검기가 뿜어지며, 마물들의 상체와 하체가 분해되어 나가떨어졌다. 핏방울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바닥은 은은한 핏빛의 혈로가 만들어졌다.
크어어....
꿈틀꿈틀..
순식간의 양단으로 인해, 마물들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지만, 하은의 기운이 다시 폭사되었다. 만검의 파(破)가 사용되며, 지축을 흔드는 강한 파공음이 들렸다.
꽝!! 꽈과꽝!
만검의 파가 사용되자, 지각이 갈라지며, 많은 기운이 땅속에서 폭사되어, 꿈틀거리고 있던, 마물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스윽...
볼에 튄, 피를 살짝 훔치며, 은빛의 검을 납검했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광기에 찬, 마물들은 고요해졌다. 뜨거운 피가 위에서 흐르고 있었지만, 하은은 그것을 건너뛰고는, 근처,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뿐..사뿐..
사뿐거리는 발걸음에 하늘거리는 의복은, 춤을 추고 있었다. 가녀린 허리와 앙증맞은 얼굴을 본다면, 제현의 부인들과 닮아 있었지만,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을 놓고 본다면 제현을 닮아 있었다.
유약해 보이는 모습이건만, 몸속에서는 거대한 마룡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홀한 장미는 가시를 품고 있다고 했던가? 하은은 오라버니를 제외한 그 어떤 남자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았다.
“설마 이곳에, 명계로 잊는 장치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어...”
제단의 끝에 작은 구슬이 박혀 있었다. 그 구슬은 검은색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최근 100년 전에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물론, 100년이라는 시간이 그 장소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지만, 오랜 연구를 해온, 하은에게는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후후...이것만 있으면...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갈수 있다.”
오래도록 간직해온, 아버지가 선물해준, 무공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혹여, 이것으로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씩 때문이다. 하은은 그 무공서를 제단위에 올려 놓았다.
이것이 방향이 될 것이다. 아버지를 찾기 위한 나침반! 그리고 하은은 그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곳에 냉마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제단에는 총 여섯 개의 구슬이 박혀 있었다. 그 구슬로 빨려 들어가는 기운에 하은은 고운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더욱 많은 양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검은 빛을 띠던 구슬이 곧, 밝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빨간색, 파란색....차례대로 구슬에 불이 들어오며, 제단위에 올려져 있던, 무공서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후우우웅!!!
지옥의 문에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다. 검은색의 게이트에서 점점 밝은 빛을 나타내는, 흰색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하은은 그 게이트를 향해 빠르게 도약했다.
“안녕히...지옥이여.”
하은은 게이트로 뛰어 들며 몸을 비틀었다. 뒤 쪽으로 보이는 지옥의 광경에 살짝 눈물을 흘리고는,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그 흰색의 게이트가 닫히며, 제단에서 밝은 빛을 쏘아대던, 기운과 제단에 박혀 있는 구슬들의 빛이 사그라졌다.
게다가, 제단위에 올려져 있던 무공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산화된 것이다. 제현의 자필로 썼던 무공서는 나침반이 되어 하은을 인도할 것이다.
* * *
“주군! 서쪽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알고 있다...묵룡단주.”
휘이잉!
곧, 강한 바람이 느껴지며, 송악의 머리를 살짝 쓸어 넘겼다. 그리고 송악은 살짝 눈을 감으며, 강풍의 기운을 느꼈다. 곧, 풍운지기가 발산되며, 그 바람과 동화되어 바람에 몸을 맡겼다.
“아버지를 찾기 바라마...하은, 후후후...나와 못 만날지 모르는 길을 갔구나...”
송악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은이 뭘 할지. 무슨 행동을 할지. 100년이나 같이 해온 동생의 마음을 모를까. 자신 역시, 아버지를 찾고 싶다. 하지만 송악에게는 많은 가족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주군...앞에 적입니다.”
“처리해라..”
“존명!”
송악은 살짝 눈을 뜨며, 묵룡단주인 1호를 바라봤다. 묵룡단주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온몸에 문신이 있었으며, 기묘한 술법을 이용해, 육체와 검을 휘두르는 손이 빨라지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총 여섯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신을 찾아 온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자취가 느껴졌고, 그들도 자신을 잘 따랐다.
“전, 묵룡대(墨龍隊)에게 알린다. 마도맹을 뛰어 넘는, 맹이 되자!”
“존명!”
송악의 말처럼, 그들은 광휘가 되어, 지옥의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다. 그들은 강압적이 아닌, 바람의 순리대로 움직인다.
그들은 정도맹!
풍운신협....
흡혈지존의 후손...그리고, 지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 할 것이다. 물론,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묵룡대가 존재한다.
꼬마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