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보내줘!”
쾅쾅!
케실리온은 어두운 곳에서 몇 날 며칠을 갇혀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또, 어떤 일을 당하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간간히, 어딘가에서 멈추는 소리가 들릴 뿐,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눈물과 괴로움의 비명이 세어 나왔다.
두렵고, 무서웠다.
“엄마...흑...”
어린 시절, 마을에는 친구하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친구요. 든든한 보호자였다. 그런, 존재가 눈앞에서 힘없이 죽어간 것은 케실리온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쾅! 쾅!
“시끄럽다. 조용히 해!”
덜컹거리는 소리와 세차게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를 때면, 들리는 소리였다. 그들의 강압적인 목소리와 살기에 케실리온은 두려움이 일어났다.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는지 몰랐다.
꼬르륵...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하루에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간간히 먹던 스프라도 있었지만, 이자들은 스프에 물을 더 부어 희멀겋게 만들어 준다. 그것도 여러 번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하루에 단 한 번
성장하는 아이에게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게다가, 배설문재도 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에게는 이곳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생지옥(生地獄)의 고통에서 점점 미쳐가는 것만 같았다.
“룩, 아직 멀었나?”
일주일이나 달려왔다. 그동안 저안의 하프 드래곤 역시 많이 지쳤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먹을 것이라고 해봐야, 희멀건 스프뿐이었으니, 배고픔은 어떠할까?
“다 왔어. 젠장,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야.”
마부, 룩은 짜증난다는 듯이 한스와 빈센트를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젠장, 저 자식은 맨날, 다 왔다고 지껄이는 거야.”
“어이, 속도 좀 올리지, 애써 잡은 최상급의 노예가 아사 해버리면 곤란하니까.”
한스와 빈센트는 투덜거리며 말에 몸을 맡겼다. 그 말을 들은 룩은 한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다시 발작을 시작하는 하프 드래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조용히 못해? 노예 따위가!”
쾅쾅!
견고하게 만들어진 마차를 몇 차례 치고는 분이 풀렸다는 듯이 마차를 몰았다. 매일 있는 일상이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지루함을 느낀 것이다. 매일 같이 한두 차례 씩 발작하는 하프 드래곤에게 감사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룬, 네놈 몸값보다 비싼 녀석이니까. 닥치고 마차나 몰아.”
“예이, 예, 어련하실까. 마치 귀족하나 모시는 느낌이군!”
“뭐야? 죽고 싶어?”
한스의 말에 뜨끔한 룩은 고개를 획 돌려 엉뚱한 방향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한스는 짐짓 살기를 억누르며, 말을 몰아 룩에게서 멀어졌다.
“젠장...저 따위 녀석...언젠가....크! 내가 참는다.”
룩은 눈을 살짝 흘기며 한스의 뒷모습을 보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조용히 있던 라퓬과 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다 왔군...노예시장...흐흐, 저기서 몸값만 제대로 받으면...”
쾅!
“귀족 영애, 좋겠다. 이제 배부르게 수도까지 가겠어. 크크크”
라퓬과 릭의 말에 잠자코 있던 노예 상들이 환오하며, 마차와 말의 속력을 높였다. 모두들 기대하는 눈치였다.
눈앞에 큰 마을 하나가 있었다. 마을 주변으로는 높은 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고, 입구는 동쪽에 나 있었다.
이 마을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저기 길이 뚫려 있는 동쪽의 입구뿐일 것이다. 마치, 요새 같은 지형과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동쪽의 입구 앞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침략해온다 해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천연요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히히히힝!
“워워...”
잠시 후 마을 입구에 도착한 노예상들은 입구를 지키는 사내들과 마주섰다. 그들은 각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들고 노예상들을 이리 저리 훓어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 중, 얼굴에 깊숙이 칼자국이 난 덩치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어이, 한스! 갔던 일이 잘됐나보군...크크크, 상등품이 도망간것은 안됐어.”
“케케, 이번에는 최상급이라고! 최상급! 가격이 잘나오면 거하게 한턱 쏘지.”
말에서 내린, 한스는 입구를 지키는 자에게 걸쭉하게 대화를 하고는 마차를 가리키고는 웃으며 거구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는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사내는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어이, 곧, 사람들이 올 테니까. 적당히 씻겨서 데려가라고.”
“수고!”
입구를 지키던 사내들은 한쪽으로 비껴나며 한스 일행이 들어 갈수 있게 해주었다. 한스는 묘한 미소를 띠우며 유유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던 사내들은 한동안 한스 일행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 후 한스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는 마차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허...최상급? 엘프라도 잡아왔나....”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인지 기대된다는 눈동자로 마차의 끝을 바라보았다.
* * *
마을로 들어온 한스 일행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마을의 여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꽤, 깨끗한 여관이었다. 일주일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저거, 한스 아니야?”
“맞군. 저들은 중급 이상 아니면 다 죽여 버린다면서...”
“역시 프로는 다르군...”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마을처럼 보였다. 각종 야채나 보석, 의류 등의 것들을 주로 파는 반면, 주업으로 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마을 자체가 노예상인들의 마을이었고, 길드였다.
“전국의 노예상인들이 다 모여왔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진풍경이 들어왔다. 양쪽발에 족쇠를 차고 움직이는 노예들과 채찍을 들고 눈을 부라리는 자들이 수없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스는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는 살짝 입을 놀렸다.
“쓰레기들이군...고작 하급 노예, 크크큭”
한스 일행들은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최상급이라니! 일생에 있을까 말까한 기회였다. 상급만되어도, 몇 년은 놀고먹을 정도의 돈이 굴러 들어오건만, 최상급이라면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것이다.
웅성웅성....
둥둥둥!
한스 일행은 적당한 곳에 마차를 세웠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하프 드래곤에게 로브를 씌우고는 강제로 끌어내렸다. 간혹 반항도 했지만, 먹은 것이 별로 없어서 인지 힘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쇠사슬을 채울 수 있었다.
“네 년은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마나를 억제하는 바인드 체인을 채워야 겠다.”
한스는 아직까지, 케실리온을 여자로 착각하고 있었다. 워낙, 케실리온의 엄마라는 여자가, 귀하게 키웠기 때문에 자연히 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카락부터 길었기 때문도 있었고, 나이가 작았기 때문에 성별을 구별하기 힘들었다.
“어이, 빈센트...이 꼬마부터 씻기고, 경매장에 가야겠다. 벌서 시작 하려고 하는 군.”
다섯 명의 사내들이 케실리온을 호위하는 듯 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여관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살짝 미소를 짓는 한스 일행이었다.
“싫어...제발....”
노예로 보이는 여자와 그 주위를 둘러싼, 노예상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탐욕과 욕망이 가득한 눈길로 여자 노예를 보며, 소리를 쳤다.
“이 년아, 먹을 것을 줬으면, 그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저 노예를 잡은 상인들은 서서히 본성을 드러내며, 우악스런 손길로 여자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소리를 치며 그들의 손을 뿌리쳤지만 덩치가 산만한 그들의 힘에는 어쩔 수 없었다.
여자는 당혹스러웠다. 노예가 된 것도 황당했지만, 노예상인들의 친절에 속은 것도 분노가 치솟았다. 여자 노예는 누군가에 도움의 손길을 뻗었지만, 그것은 더욱 사내들의 욕정을 부추기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하하하, 적당히 해라.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팔 때 지장이 생기니까.”
“크크큭, 어? 저기 한스 들이잖아.”
한스의 노예상단은 상당히 유명 한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아는 체를 하는 것 보면, 상당히 거물급의 노예를 취급하는 것 같았다.
“여~ 크롬, 또 영웅놀이 하고 있었나?”
“키키킥, 뭐 그렇지. 어때, 이정도면 상등품..”
노예상들은 대략 4~5명 정도가 한 팀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간한 노예 상들은 다른 노예 상들과 친해져 큰일을 치를 때는 합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스의 노예상단과 같이 일을 한다면 쉽게 풀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한스 일행은 어딜 가나 인기였다.
“그럼 수고! 우리도 준비해야지...경매 하려면 이 녀석 좀 씻겨야 하니까. 흐흐”
한스 일행은 카운터로 다가가, 대충 열쇠를 움켜쥐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이곳은 노예상인들의 쉼터로 누구나 이용 할 수 있다. 물론, 꽤, 높은 사람들이 자주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노예상들은 이곳에 들어오는 경우가 없었다.
“대충 짐이나 풀고, 바로 상품 단장하러 가지...흐흐, 뭐 어린애가 볼게 있냐마는...그래도...”
라퓬이 가장 기대한다는 표정으로 동료들을 돌아보며 음흉한 웃음을 보냈지만, 그들은 관심 없다는 듯이 짐을 푸는데 정신이 없었다.
부들부들...
케실리온은 두려움을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구석진 곳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우악스런 손에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 순간, 케실리온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른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꼬마 노예
케실리온의 경매날짜가 잡힌 것은 삼 일후였다. 워낙 많은 노예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접수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낙 커다란 경매이다 보니, 대륙의 거부와 귀족이라는 귀족은 대부분 참여하고 있었다. 심지어 란델제국의 공작까지 참여했다고 하니, 얼마나 커다란 경매인지 불 보듯 뻔했다.
이번 경매에는 노예 말고도 휘기한 보석류도 같이 나오기 때문에 수집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물론, 귀족들에게도 자신을 어필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돈이 조금 있다고 하는 자는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공작전하, 어찌 이런 천박한 곳으로....”
“라일경, 잘 듣게, 이건 선조의 유지일세, 유지!”
“끙...”
경매장으로 향하는 내내, 라일경이라는 자는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작령에서 이곳까지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이곳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워낙, 공작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나섰지만, 수행원까지 대동하지 않은 것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라일이었다.
“그렇다고 수행원까지 대동하지 않은 것은....”
“하하, 뭘 그렇게 생각하는가? 자네가 있는 것을! 아무튼 시작하려 하니 빨리 들어가세.”
수장과 신하의 대화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로, 상당한 우애와 우정이 깊었다. 그렇다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예의를 지키니, 공작으로써는 기분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공개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두 명은 무난히, 경매장으로 들어 설수 있었다. 물론, 참가비라는 것도 있었고, 공작이라는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앞줄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만일에 대비해, 다수의 마법사가 실드 마법으로 무대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자객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 * *
“흐흐흐...네 녀석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케실리온?”
“그 더러운 입에서 내 이름을 내뱉지 마라....으윽...”
삼 일간 많은 일이 있었다. 케실리온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내성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멍한 상태로 지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노예 따위가!”
“으으...”
매일 지속되는 구타와 욕설, 그리고 세뇌와 비슷한 주입식 교육에 케실리온의 정신은 말라가고 있었다. 이미, 눈물 셈마저 말라 버린 것인지 눈물은 흘러내리지도 않았다. 간간히 떠오른 이상한 숨쉬기 운동에 케실리온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흐흐...얼굴은 상하게 할 수 없으니 아쉽지만...쩝.”
“어이, 라퓬 슬슬 저 녀석 차례니까 그만해, 혹시라도 품질이 떨어진다면 네놈을 팔아 버릴 테니가.”
빈센트의 성화에 못이긴 라퓬은 정신을 잃은 케실리온을 철창 속에 쳐 박아 두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밀실이라서 그런지, 밖으로 나왔을 때의 빛 때문에 눈을 살 짝 찌푸렸지만 곧, 평온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케실리온...?”
“으윽...아파, 아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
철창 속에 갖힌 케실리온은 허망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물은 말라버렸고 얼굴의 표정은 사라져 버렸다. 오직, 무표정의 얼굴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표정이 묘하게 익숙한 것은 자신도 몰랐다.
“케실리온!”
“아, 레나.”
케실리온과 레나는 같은 시각에 경매가 되는 아이였다. 레나라는 아이는 어둠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여운 아이였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묘한 친근감과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를 제외한 여자를 본다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호기심도 일어났었다.
“많이 아파?”
“응, 조금...하지만 버틸만해, 이상한 숨쉬기를 하면 몸이 편안해 지거든.”
케실리온은 레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록 어두운 공간에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철창 너머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와 앙증맞은 목소리가 두 명의 아이들에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매일 일어나는 구타네 케실리온은 고통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겠네...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작은 레나의 음성이 사방이 꽉 막힌 밀실에 울려 퍼졌다. 이미 이곳을 나가 팔려간 사람도 세 명이 넘었다. 이곳은 최상등품만 판다는 곳이었기에 유사인종도 다수 있었다. 물론, 케실리온을 보며 두려워하는 존재들도 있었지만, 레나는 아무래도 좋은 것인지 케실리온과의 관계가 그런대로 좋게 유지 되었다.
끼이익~
“거기, 레나라고 했던가? 네 차례다.”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온 자는 노예를 경매장으로 이끌고 가는 자였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이었고, 아무런 구타도 없었으며, 오직 일에만 충실한 자였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홀로 남은 것이다.
“안녕...케실리온. 그동안 즐거웠어.”
“......”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케실리온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순간에도 눈물이 흘러나와야 할 것 같건만, 무표정의 얼굴로 전해지는 싸늘한 기운에 살짝 몸을 떨며, 시선을 돌렸다.
좁은 문으로 사라져 가는 레나의 뒷모습이 보였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살짝 섞인 머리칼이 보였다.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본 케실리온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삼일 간 많은 것을 배웠다.
주인에게 복종하라. 주인의 앞에서 걸어도 안 된다. 걸을 때도 땅만 보고 걸어라. 등 많은 주입식 교육과 구타에 점차 케실리온은 노예화 되어갔다. 그렇다고, 고지 곶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맞지 않기 위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끼이익! 철컹!
십 분을 더 기다렸을까? 차츰 어둠속에 동화되어 어둠에 익숙해 질 때였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다 보니, 경매의 시작이 한참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경매가 끝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케실리온은 살짝 손을 얼굴로 가져다 대며, 빛을 가렸다. 눈이 아팠기 때문이다.
“나와라. 네 차례다.”
철창의 자물쇠가 열리며, 케실리온은 그의 인도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고, 오직 자신을 이끌고 걸어 갈 뿐이었다. 복잡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움직이는 그의 발걸음은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하프 드래곤이라지?”
“아...?”
인도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입을 연다. 다짜고짜 하프 드래곤이라는 말에 케실리온은 어색한 대답을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녀석도 할 말이 없는 것인지, 길을 따라 움직이며, 케실리온을 이끌 뿐이다.
벽은 칙칙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족쇄가 채워진, 유사종족과 인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같은 그림이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길을 여러 차례 둘러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패턴으로 그림이 나열되어 있었다.
탁탁!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리자, 길을 인도하던 녀석이 엉뚱한 벽면을 살짝 밀치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가 어찌되었든, 케실리온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경매장의 무대위로 올라섰다.
“예! 이번 경매의 마지막 상품입니다. 그것도 최상품!"
“오...”
경매장의 일원으로 보이는 자가, 제법 고가의 옷을 걸치며, 마법으로 된, 확성기를 움켜쥐며 케실리온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미, 케실리온의 모습을 보고, 노리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어머, 흑발에 흑안...”
경매에 참석한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시선에 케실리온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표정은 무표정이니, 인형과 같은 이미지가 그려졌다.
“이번 상품은 대륙에서 단 둘, 제국의 황제만이 보유하고 있는 노예입니다. 하프 드래곤!”
“하프 드래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하프 드래곤이라면 대륙에 단 두 명, 즉 황제의 노예였다. 16세가 되면 성별이 정해지기 때문에 희귀한 것이었고 희소성을 따진다면 으뜸에 속했기 때문에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노예였다.
“이 상품은 란델 제국의 서쪽에서 발견된 상품으로 노예사냥꾼, 한스 일행이 포획한 상품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노예는 16세가 되면 성별이 정해지기 때문에 잘 키운다면 여성체로도 변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게다가 수명까지 길기고 노화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희소성을 따진다면 전 종족을 통틀어 으뜸에 속하는 특급에 해당하는 상품입니다.”
긴 사회자의 설명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신들의 재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반드시 하프 드래곤만은 취하고 싶은 것인지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어,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그럼 경매가 1만 골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정도 가격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님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경매이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있었다. 전 대륙의 거부들은 물론, 고위급 귀족까지 있었기 때문에 보완과 경비 등 안전에 철저하게 기여하고 있었다. 다수의 마법사들이 케실리온을 쳐다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마법사들이라면 실험체로 사용하기 위해 입맛을 다시는 것이겠지만, 간혹, 늙은 마법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얼굴을 살짝 붉히기도 했다. 늙어서 주책인 것인지...
“1만 2천!”
한 귀족으로 보이는 자가, 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순간 경매장이 약간 술렁이며, 각자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고위급의 귀족인 것 같았다.
“네! 라디안 왕국의 후작님이시군요. 그럼 1만 2천 골드 나왔습니다.”
경매를 주체하는 사회자는 전호를 살피며, 그 이름을 찾고 있었지만, 이름은 나와있지 않고 직책만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국가와 직위를 말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이름과 명성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만 골드.”
“헉...2만 골드!”
맨 앞좌석의 중년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아까의 귀족에 비해 야간 허름해 보이는 의복이었지만 은연중 뿜어지는 카리스마와 누군가를 압 도하는 느낌에 주위의 관중은 물론 사회자까지 숨을 들이켰다.
“흐흠...죄송합니다. 2만 골드 나왔습니다.”
사회자는 라디안 왕국의 후작을 살짝 쳐다보며, 더 안 부르겠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라디안 제국의 후작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을 번쩍 들고는 1천 골드를 더 높이고는 의기양양하다는 듯이 앞의 중년에게 시선을 주고는 자리에 착석했다.
웅성웅성!
경매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자잘하게 높아진 경매가에, 많은 사람들은 환호하며, 돈이 많은 자들은 도박이라는 생각에 자신들의 전 제산을 털어 경매에 참가했지만 중년의 끝도 없이 치솟는 사격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3만 골드!”
“더, 더 없습니까? 그렇다면 저기 계신 분께 낙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줄의 중년의 말에 사회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정도의 금액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이, 그의 표정은 한없이 상큼해져있었고 눈을 돌려 케실리온에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말도 안 돼!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가?”
스륵..
라디안 왕국, 후작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중년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들도 궁금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금액은 어지간한 귀족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작이상, 아니, 공작도 힘든 금액이었다.
“무례하다! 감히 공작각하께!”
술렁
조용히 중년 남자의 옆에만 앉아 있던, 자가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 말은 경매장에 울려퍼졌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공작, 결코 호락호락한 지위가 아니었다. 황제의 자식들 다음으로 황제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공작이다.
공작은 황제와 친밀한 관계, 즉, 왕족이 아니면, 엄청 큰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공작의 작위를 내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 공작이라면 왕족이었다.
“라디안 왕국의 후작이라고 했던가? 나는 란델 제국의 공작인 카논 폰 코리안이다.”
카논 폰 코리안! 황제에게 있어서 충신의 가문이다. 코리안 가문은 대대로, 란델 제국의 황제를 보좌하는 가문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코리안 가문을 우습게 여기거나 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한 가문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 들어 약간 쇄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명성을 떨치는 가문이었다.
코리안 가문은 란델 제국의 개국을 시작으로 생겨난 가문이기 때문에 개국충신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코리안 공작은 특이하게도, 어느 순간에 나타난 인물이기 때문에 신비의 공작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특이한 이름을 사용하는 공작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코리안 가문의 명성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런....”
“아직도 본 공작이,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사회자는 할 말을 잃은 것인지, 확성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본업에 충실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공작 각하, 그럼 이번으로 마지막 경매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참관해주신 여러 나라의 귀족, 대 부호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것으로 기나긴, 케실리온의 노예생활은 시작되었다.
꼬마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