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들이 한스들인가?”
“예, 공작각하....현명한 선택이셨습니다. 이정도의 노예는 아무 곳에서나 구하기 힘들죠.”
공작은 작은 서류를 적으며, 노예상의 리더인 한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예를 인수 받기 위해서는 일정양의 금액을 주어야 하는데, 많은 금액이라면, 서류를 통해, 증명서를 발급하게 되어있다.
지금이 그 증명서를 발급하는 곳이었다. 물론, 케실리온을 넘기는 자리도 되었기 때문에 라퓬과 빈센트에 의해 케실리온은 꼼짝도 못하게 잡혀 있었다.
“자, 공작각하, 여기 지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종이의 단면에 양쪽의 종이를 붙이며, 한스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곧, 공작은 지장을 찍고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공작의 수행원인 라일은 공작이 건넨 서류를 가슴속에 감추고는 케실리온에게 걸음을 옮겼다.
“이것으로 인수인계는 마쳤습니다. 그럼...”
한수는 희희낙락하며, 자신들의 일행을 이끌고, 접견실에서 나왔다. 귀족보다 먼저 나가는 행위는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공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케실리온을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라일, 저 아이의 몸 상태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공작의 명에, 라일은 케실리온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간혹,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피멍이나, 상처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표정을 풀고는 공작에게 보고를 올렸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과다한 구타의 흔적이 보입니다.”
“우선 저 아이를 속박하는 바인드 체인부터 푸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은색을 띠고 있는 바인드 체인을 보며, 공작은 중얼거렸다. 위험한 노예라면 그것을 차고 있어야 하지만, 공작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 한 것 같았다. 공작의 손짓에 살짝 뒤로 물러난 케실리온은 경계를 했다.
주춤...
“아이야...무서워 할 것 없단다.”
공작은 다정한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안심시켰지만 구타와 학대 속에서 몇날 며칠을 보냈기 때문에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수 없었다. 그 모습에 공작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라일을 뒤로 물렸다.
“아무래도, 지금은 안 되겠군. 우선 공작 령으로 돌아간다.”
“예!”
라일은 케실리온을 이끌고, 문으로 나섰다. 경매장의 뒤쪽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대는 그렇게 불편함이 없었다. 경매장을 나서자 많은 인파가 몰아 닥쳤지만 라일의 노력으로 공작의 주위에는 그 누구도 접근 하지 않았다.
차랑~ 차랑~
케실리온은 양 발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소리에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실감했다. 시선을 들어 옆에서 자신을 이끄는 라일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몸에서는 범접 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평범한 여행자의 복장이었지만, 묘한 느낌과 몸짓에 사람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마치, 자신을 보며 빗겨나는 착각까지 일게 만들었다. 한참을 걸었고, 그들의 목적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여관으로 도착 할 수 있었다.
“이름이 뭐냐? 아이라고 부르기 힘들구나.”
케실리온은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약간 찔끔하며,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건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신을 산 주인이었다. 카논 폰 코리안이라는 높은 위치의 사람, 그리고 케실리온의 주인, 그동안 고통을 당하며, 노예에 대한 기본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저절로 공포가 일어났다.
“케실리온....”
떨리는 목소리에 안심해라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은 카논 공작은 자신의 이름을 되네 이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검은 빛의 머리칼 때문인지 아니면 인자한 웃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순간 케실리온은 떨리던 몸을 멈출 수 있었다.
“긴 흑발이 어울리구나. 우리 루시아 같은 긴 흑발이야. 하하하.”
“공작님, 간단히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차에 오르시지요.”
짧은 대화 동안에 케실리온은 카논 공작이라는 자의 따뜻한 눈길에 약간 안심했다. 착한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는 하나,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구분 할 줄 안다.
“그러지, 뭐하느냐. 케실리온? 어서 오르지 않고?”
“공작님...저 아이는 저와 같이, 마부석에 앉는 것이...체통을 지키십시오. 저 아이는 엄연히 노예입니다. 어찌 저런 아이와 같은....”
“라일, 괜찮아. 노예면 어떻고 귀족이면 어떤가? 다 같은 사람인 것을....안 그러냐? 케실리온?”
케실리온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한스가 가르치던 것은 주인에 대한 복종, 죽도록 맞아가며 들었던 것이 복종이었다. 하지만 왠지 카논 공작이라는 자의 모습을 보면, 노예가 아니라도 그의 말을 들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노예....”
순간 케실리온의 목소리는 울 것만 같은 떨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눈 쪽에서는 눈물샘만 떨릴 뿐, 어떤 물기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응? 케실리온, 어서 타거라, 시간이 지체 되지 않느냐.”
카논 공작은 케실리온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강제로 마차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라일은 졌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옆에 착용하고 있던 검을 살짝 쓰다듬으며 마부석으로 올라섰다.
히히히힝!
짝!
“이랴!”
마부석에 올라선 라일은 고삐를 움켜쥐고는 힘차게 소리를 지르고는 마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란델 제국의 중심부의 수도 미스텔로 향했다. 중심 쪽의 근방에 위치한 곳이 공작령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도를 중심으로 공작가문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분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적절한 균형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차에 케실리온은 몸을 맡겼고, 공작은 시선을 밖으로 돌리며, 하늘에서 지고 있는 태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태양빛에 그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 * *
케실리온은 창밖을 보고 있는 공작의 모습에 잠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사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아주 달콤한 꿈이었다. 엄마와 같이 놀며 이야기를 하는 그런 꿈이었다.
그 어떤, 꿈보다, 엄마가 나오는 꿈은 케실리온에게 활력소가 되었고,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으음....”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맞기며 케실리온은 한참을 잤지만, 의외로 따뜻한 기분에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잘 잤느냐? 하하!”
“죄송합니다. 노예 주제 이런....”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카논 공작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옆으로 떨어졌다. 한스에게 익히 들었기 때문에 귀족들이 얼마나 노예를 하찮게 보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10살 꼬마라도 그토록 맞아가며 들었던 것을 이해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 노예상들이 단단히 교육시킨 모양이군.’
카논 공작은 속으로 뇌까리며, 슬픈 듯이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이미, 케실리온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는 뜻이다.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행동에 미소와 웃음을 짓지 않는 것과 슬퍼도 울지 못하는 것을 봐서는 마음의 문을 꽉 닫아 버렸다는 증거였다.
스윽...
공작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또 때리는 것이리라. 이미 많이 맞아봤지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짐승처럼 노려보는 눈동자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슥슥..
“왜 그러느냐? 불편하게 생각 할 것 없다. 나는 노예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에게 빛을 진 꼬마아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떠냐. 노예보다는 빛을 진 꼬마가 더 어울리지 않느냐?”
“아....”
케실리온은 뒤이어 느껴지는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지만 수십 초가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안심하며 눈을 살짝 떴다. 그러자, 공작은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케실리온에게는 카논 공작이 천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쉽게 다가가기는 힘든 것인지 고개를 푹 수기며, 카논 공작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을 뿐이다.
“내가 너를 3만 골드에 고용했으니, 너도 열심히 일 해주어야 한다. 하하하, 비싼 고용인이구만...그리고 나는 비싸게 너를 고용한 고용주고 말이다.”
딱
카논 공작의 행동에 멍한 표정을 짓던 케실리온은 뒤늦게 느껴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고는 공작을 올려다봤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 떨리기도 하고, 두려움도 일어났다.
그리고 방금 전의 고통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왠지 싫지 만은 않았다.
“너는 노예가 아니라, 내가 고용한 고용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고용인...”
케실리온은 멍하니, 고용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중얼거렸다. 곧, 마차가 멈춰서며, 라일이 마차의 문을 열었고, 곧, 카논 공작은 케실리온을 스치듯이 지나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케실리온은 살짝 몸을 떨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카논 공작의 따뜻한 말에 마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하하하! 케시리온, 어서 내리 거라. 뭘 하느냐. 고용주로써 명령이다. 두려움을 갖지 말거라.”
카논 공작의 말에 케실리온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실리온의 모습에 카논 공작과 라일은 어쩐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케실리온은 말랐다고 생각했던 눈물에 살짝 물기가 어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공작령으로 한발 짝 다가섰다.
공녀, 루시아
위잉위잉.
꿀벌의 날개짓 고리가 요란히 울리는 한가한 오후였다. 란델 제국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하는 코리안 공작 령의 경비대원 세빌과 롬은 여느 때 처럼 하는 일 없이 망루위에서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하암...롬,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롬이라 불린 자는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공작령의 초원 앞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이, 세빌 저기...”
“뭘...저 마차가 뭐?”
롬은 답답한 것인지 가슴을 두드리며, 세빌의 행동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평범하다 못해, 너덜너덜해 보이는 마차를 보며,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짓는 롬의 행동에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님이냐? 저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를 보라고!”
“아씨...평범한 마부겠지 뭘 그렇게 호들갑은?”
졸음 때문인지 세빌은 눈을 살짝 비비며, 군사용, 장창을 움켜쥐고는 망루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단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롬이 가리킨 서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갈색의 이두마차였다. 낡았기 때문인지 평민들이나 타는 조잡한 마차로 보였지만, 말의 기수를 보는 순간 눈이 켜질대로 커져 버렸다.
“뭐, 뭐야...”
“뭐긴 뭐야, 기사단장 라일경이구만.”
성벽 위에서 수다를 떨던 두 명의 경비대원들은 마차가 점점 가까워지며, 공작령의 문쪽으로 다가오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라는 위치의 사람이 마차를 모는 것을 보면, 공작가의 사람 중 상당한 지위의 인물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잘 보여서 손해는 없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등 한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초조함 속에서 그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휙
마차에서 뛰어내린 기수가 크게 외쳤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세빌과 론은 바짝 긴장하며 움찔 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직분을 떠올린 롬은 어깨를 폈다.
기수의 몸에서 뿜어지는 당당한 기백과 침착성을 볼 때 귀족이 분명했다. 절제가 습관처럼 몸에 배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그의 행동을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라. 코리안 공작령의 주인, 카논 폰 코리안님이 타고 계신 마차다.”
라일경이 크게 소리쳤다. 성내가 쩌렁쩌렁 울릴 듯 한 당당한 목소리에 경비대원들은 순간 몸이 마비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문을 열수 없소! 신분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을 보이시오!”
“미쳤어? 롬, 상대는 기사야...미치지 않고서는..”
롬의 행동에 당황한 세빌은 식은 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은 물론, 온 몸이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혹여, 밉보여,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에게 화가 미치지 않을 까, 살짝 걱정까지 들기 시작했다.
세빌은 롬의 행동과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감히! 뭐라고 했느냐!”
공작령의 당당한 기사단장인 라일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잠깐 외출했다고는 하나, 한낱 공작령의 문을 지키는 경비대원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하물며, 평민의 옷을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작령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차안에는 공작각하 까지 계시는 마당에 이곳에서 지체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겨우 문지기들에게 홀대 받는 것이 살짝 기분이 상한 라일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다시 외쳤다.
“당장 이 문을 열라! 공작각하께서 타고 계신다! 지금 귀족을 능멸하는 것이냐!”
그 말에 세빌은 불안에 떨며 기어코 글썽이듯 롬을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롬은 세빌의 말을 들은 것인지 투덜대며 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설사, 당신이 기사라고 할지라도, 공작령의 법이 있는 법이다. 이 법은 공작 각하께서 친히 내린 것이니, 문지기인 우리들은 그저, 법에 따라 행동을 할 뿐이다.”
라일은 순간 왼쪽 허리에 대롱거리고 있는 롱 소드를 뽑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뒤쪽의 마차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하하하, 이거면 신분이 증명이 되겠는 가!”
카논 공작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마차에서 내렸다. 검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라일경이 눈에 들어오자, 얼굴을 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토록. 자신의 영지가 대단한지 지금 몸소 깨달은 것이다.
물론,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정한 법을 그대로 준수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품속에서 반짝이는 펜던트를 하나 꺼내들었다.
붉은 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검은 막대가 줄줄이 놓여있었다. 기묘하게 조화된 색상에 경비대원들은 약간 움찔 거리며, 그 펜던트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자...이 영지를 상징하는 펜던트다.”
공작의 위엄과 확답을 보여주는 펜던트에 롬은 그제야 인정했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리며, 아래에 있는 문지기들에게 어떤 행동을 보이고는 성문을 열기 시작했다. 일반 마을과는 달리, 공작령이라는 위대한 이름이 있기 때문인지, 보안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한 듯했다.
“공작각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괜찮네, 다 안전을 위해서 아니겠는가!”
펜던트를 갈무리한, 카논 공작은 마차에 올라타며, 창문을 옆으로 젖혔다. 창문으로 경비대원의 음성이 들리자, 공작은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경비대원들을 안심시켰다. 지금 카논 공작의 표정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되려, 답답한 마차로 여행하는 동안의 피로가 씻겨 내려간 듯이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공작령은 대대로, 인품과 인덕이 좋은 자들이 공작의 작위를 수여했다. 물론, 그것을 지키지 않으려는 후손도 있었지만 잠깐일 뿐, 코리안 가문은 대대로, 백성들을 생각하며,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충신의 가문이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롬이라고 합니다. 공작각하!”
절도 있는 롬의 행동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카논 공작은 그의 모습을 찬찬히 눈동자에 담았다.
“하하, 자네가 마음에 드는 군. 롬이라고 했던가? 경비대장에게 이야기 잘 해주겠네. 자네의 행동하나하나가 마음에 드는 군.”
카논 공작은 공작령의 입구에서 점점 멀어지며, 요즘 들어 잘 볼 수 없는 경비대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행동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귀족도 있겠지만, 카논 공작은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경비대장에게 말해, 그의 계급을 한 단계 특진 시킬 생각이었고, 곧, 이루어 질 것이다. 작은 행동하나로, 공작에게 잘 보인 롬은 자신의 동기인 세빌보다 빠르게 특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라일경, 이곳부터는 천천히 가게.”
“예.”
카논 공작은 마차의 속도를 당연히 줄여야 한다는 듯이 마부석에 있는 라일경에게 살짝 말하며, 느긋하게 한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는 케실리온이 주위를 두리 번 거리며, 번 화의 거리인 공작 령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느 곳과는 다르게 깨끗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케실리온은 신기한 것을 본다는 듯이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며, 눈을 빛냈다.
“이곳이 공작령..”
여기저기에서 뛰어다니는 또래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고 깨끗하게 정리된 길을 보며 과거 자신이 살던 곳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공작령인 만큼 많은 상인들도 있었다. 어느 하나 노칠수 없다는 듯이 시선을 이리 저리 돌리고 있던, 케실리온은 거대한 대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성처럼 보였으나, 어떻게 본다면 저택처럼 보이는 거대 건물이었다. 게다가,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과 성안을 지키는 많은 수의 병사와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빛의 갑주를 차고 있는 기사들에게서는 은은한 광체가 뿜어지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어떠냐. 케실리온, 네가 일할 곳이고 살 곳이지.”
케실리온은 할 말을 잃었다. 코리안 공작령의 성을 들어서면서부터, 일렬로 늘어선 경비대원들이 보이고 있었다. 무장을 갖춘 채 절도 있게 질서를 지키는 경비대원들. 다른 영지와는 다르게 활기가 느껴지며 의욕이 있어 보였다.
광기에 휩싸인 노예상인들의 모습이 아닌, 무언가를 지키는 자들의 눈동자에 케실리온은 상기된 얼굴로 다른 풍경을 찾아 시선을 이리 저리 돌렸다.
저택을 가로지리는 곳에는 양좌우로 잔디가 깔려 있었고, 그 주위로 가로수인지, 온갖 조각과 나무, 꽃들로 표현된 아름다운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움에 매료된 케실리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간혹, 신음 같은 음성을 토해냈지만 싫지 않은 듯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 볼 뿐이었다.
“공작각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내리시지요.”
공작령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달려 온 곳이 이 공작의 저택이다. 하지만, 공작의 저택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들어왔으니, 얼마나 거대한, 공작의 성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은 공작이 관할하는 영지였지만 그 주위로 공작이 하사한 많은 영지 역시, 공작의 소유였다.
그리고 그 곳을 지배하는 귀족들은 공작의 수하들이었기 때문에 한나라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카논 공작이었다. 그런 생각이 어린 케실리온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자, 온몸이 전율하기 시작했다. 이런 존재에게 자신은 팔려온 것이다.
쏴아아...
케실리온은 공작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눈앞에 커다란 저택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앞에는 어떤 원리고 발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뿜어지며 태양빛을 쪼이고 있었다.
마차를 중심으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시녀와 하인들이 질서를 지키며 카논 공작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치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는 듯 한 느낌이 들며, 케실리온은 멍하게 그 자리에서 멈춰서 있었다.
“쿡, 쿠쿡!”
케실리온의 멍한 모습이 웃긴 것인지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쿡쿡 거리며 웃고 있는 공작의 모습을 본 것인지, 좌우로 서 있는 시녀와 하녀의 중심에서 단정한 머리와 단정한 양복, 그리고 신사의 수염을 기른 존재가 공작의 앞에서 헛기침을 하며, 공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험험, 공작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오...집사, 그 동안 별일 없었겠지.”
공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사를 보고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집사는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는 것인지 공적인 대화를 주관하고 있었고, 카논 공작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폐하께서 공작각하를 찾고 계십니다. 입궁하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폐하께서...? 음...여행에 대한 피로를 풀 시간이 없겠군...알겠네, 오늘 내로 찾아뵙지.”
카논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실리온은 이끌었다. 처음 보는 호화저택에 위축된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케실리온은 어딘가에서 쏘아지는 시선에 두리번거렸다.
“공작각하...이 아이는?”
“아참, 소개하지 않았군. 이번에 고용한 케실리온이네. 자네가 저 아이에게 거처와 할 일을 내리며 되네.”
집사는 약간 못마땅한 표정으로 케실리온의 전신을 훑어보고는 양발을 조이고 있는 족쇄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분명, 노예를 사들인 것이 분명하다는 듯이 살짝 눈을 흘기고는 케실리온을 잡아끌었다.
“그럼 저 아이는 제가 맡겠습니다. 아, 공작부인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말씀도 없이 사라지셨다면서...각오하셔야 할 듯싶습니다.”
“하....하...이 거 큰일이군. 아무튼 저 아이는 특별하니, 신경써주게.”
“예, 그럼 가겠습니다.”
집사는 허둥지둥 떠나는 공작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돌리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케실리온은 호화스러운 저택을 보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못마땅하다는 듯이 쏘아보는 집사가 보였다. 그리고 케실리온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한숨을 살짝 토해냈다.
공녀,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