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예, 폐하.”
란델 제국의 황성.
많은 귀족들이 양쪽을 데뷔로 일렬로 늘어선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직 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의 끝은 당연히, 제국을 상징하는 황제의 자리가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삼대 공작가의 가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차례대로 늘어선, 계급상의 테이블에는 각각의 가문을 상징하는 엠블럼들이 일렬로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우선, 코리안 공작가를 상징하는 붉은 색과 파란색의 조화를 이루는 둥근 모양이 있었고, 매의 형상과 날카로운 발톱 모양을 띤, 문양이 제국의 상징인 란델의 엠블럼이 놓여있었다.
“신, 카논이 아뢰옵니다. 제국의 적국인, 테라스 제국의 병력이 국경지대인, 엡솔루트 가든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첩보 병의 서신이 있었습니다. 본 국도 속히 병력을 증진하는 것이.....”
“카논 공작, 너무 성급 한 것 아니오? 이미, 예전부터 그런 움직임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었소, 같은 서대륙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오. 병력 증진이라니! 그런 망발을...”
카논 공작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금발의 사내가 약간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아마, 카논 공작과 같은 계급 선상에 놓여 있는 펜던트를 보아, 공작위에 앉아 있는 자 같았다.
“흠, 두 공작의 말은 잘 들었소. 크롬 공작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카논 공작의 조심성도 참고 해야 할 것이오.”
“맞습니다. 폐하! 하루 이틀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예사가 아니나, 테라스가 움직이는 병력은 과한 줄로 아옵니다. 우리 란델 제국도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황제의 말에 카논 공작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상세하게 테라스 제국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동대륙에 위치한 제국의 움직임이라도 위험성이 짙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움직이는 병력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과한 수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폐하! 카논 공작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서둘러 본, 제국도 움직이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카논의 말에, 그를 따른 많은 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병력을 국경쪽으로 움직이자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편, 공작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크롬 공작은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져, 검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국에는 삼대 공작이 있다. 그 첫 번째로, 황제파로 카논 공작을 들 수 있었고, 귀족팔고는 크롬 공작이 주력이었다. 반면, 오직 중립을 고수하는 나일 공작은 묵묵히 두 공작의 대답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폐하! 카논 공작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갑자기 많은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과 한 줄 아옵니다. 주변의 많은 왕국들도 본 제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니! 크롬 공작! 우리 란델 제국이 언제 왕국의 눈치를 보며 움직여야 하는 소국이었소? 폐하, 많은 병력은 움직이지 않더라도, 제국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줄 아옵니다.”
두 공작의 열띤 공세에, 많은 귀족들은 저마다, 거들었지만 황제는 묵묵히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쾅...
“뭐야. 나만 쏙 빼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자리에서 문이 벌컥 열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몰아치는 거대한 마나에 학문에 뜻을 둔, 귀족들은 저마다 가쁜 숨을 토해냈지만, 세 명의 공작은 평온한 얼굴로 들어온 자를 주시했다.
감히, 황제 폐하가 계신 자리에서 이런 천박한 행동을 하는 자는 단, 한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페이린 후작! 아무리 궁정마법사라고는 하나, 이건 건방진 행동이오!”
“호호호, 건방진? 크롬 공작!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니야?”
그렇다. 페이린 후작! 그녀는 란델 제국이 인정하는 대 마법사였다. 게다가, 그녀는 하프 드래곤으로써 황실에 몸을 담고 있는 귀족, 황제의 마법사였던 것이다. 이것은 모든 귀족들도 알고 있었고, 이런 무뢰를 한다고 한들, 황제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 더 이상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없소! 폐하, 소신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이런, 건방진 행동을 하는 군! 크롬 공작!”
페이린 후작은 손을 좌우로 흔들고는 적발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크롬 공작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깔깔 거리며 웃어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린 후작, 이건 공식적인 회의입니다. 어찌, 그런 행동을...”
“어머, 카논 공작님 이런 행동이라니요. 너무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호호호, 어때요. 폐하!”
카논 공작은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이런 중요한 회의를 망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웃기만 하는 것은 폐하만이 아니었다. 좌중의 많은 귀족들도 쓰게 웃고는 폐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들은 들으시오. 오늘의 일은 다음 회의 때 진행할 예정이니, 각자 소신껏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오시오. 오늘은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겠소.”
“란델 제국의 광명이 깃들기를...!”
모든 귀족의 자신의 엠블럼을 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좌중을 압도하는 구호를 외치고는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번 회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각 파벌 별로 모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였지만, 이런 모습은 보기 좋았다.
사실상, 세 파벌이 있지만, 제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 파벌도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논 공작, 잠시 남으시오. 짐이 긴히 말할 것이 있으니.”
“예, 폐하.”
엠블럼과 서류를 챙기고 있던, 카논 공작은 뒤늦게 들려오는 황제 폐하의 말에 잠시 주춤 거리며 서류를 빠르게 챙겨나갔다. 어느새 모든 귀족들이 빠져 나가고, 황제 폐하와, 카논 공작, 그리고 페이린 후작이 남아 있었다.
“공작, 이번에 새로 들인 아이가 하프 드래곤이라고 들었소. 사실이오?”
“폐하, 사실이옵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황성까지 이 사실이 들어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허허, 공작, 그런 사실이 있었으면 일찍 말하지 그랬소. 그 아이도 페이린 후작과 같은 하프 드래곤이니, 마법에 자질이 있을 것이 아니오.”
“폐하, 그 아이는 검술을 배울 것입니다.”
황제는 카논 공작을 따지듯이 물어왔다. 그 질문이 하프 드래곤이라는 사실에 약간 놀랐지만 란델 제국의 정보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대답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말에 약간 얼굴을 굳힌 공작은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럼 공작, 그 아이가 후계자 자리로 세울 작정이오?”
“그...그건.”
카논 공작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꺼려했다. 아직 정해진 사안은 아닌 듯했기 때문인지 더 이상 황제도 추궁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카논 너무 한 것 아닌가. 사적인 자리인 만큼 친구처럼 대하라고 했거늘...”
“하하, 그럼 폐하께서는 왜 그런 말투를 사용하시는지...쿠쿡 안 그런가? 페이린, 뭐 자네야 늘 그런 말투니 넘어가겠지만.”
카논 공작은 되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페이린 후작이라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약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카논 공작을 쳐다본 페이린은 살짝 얼굴을 구겼다.
“뭐야?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그건 그렇고, 에반, 무슨 일이야 먼저 나를 다 찾고.”
에반, 제국의 황제의 이름이다. 이렇게 황제를 부를 수 있는 것도 몇 없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카논 공작과 페이린 후작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크롬 공작도 어릴 때 친구였지만 그렇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흠, 나는 공작만 좋다면 그 새로운 아이의 스승으로 추천하고 싶었지, 검술을 가르친다니 뭐 별수 있나....페이린 헛된 걸음을 하게 했군.”
“뭐야? 그깟 하찮은 일에 나를 불러? 가뜩이나 실험이 번번이 실패 하건만! 이참에 마법 예산부터 늘려,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 어떻게 실험을 하라는 것이야!”
페이린은 에반 황제를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게다가 요즘 들어 실험이 잘 안되기 때문에 히스테리 끼가 넘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예산 문제를 걸고 넘어갔던 것이다. 제국의 세금의 20퍼센트가 마법 예산에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그것도 모자란다는 페이린 후작의 말에 고개를 흔드는 황제였다.
“크음...폐하, 그럼 본 공작은 물러가겠습니다.”
페이린의 행패에 살짝 긴장한 카논 공작은 서둘러 황실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벗어났다. 마침, 라일경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수도에 있는 공작가의 저택으로 이동 할 수 있었다.
페이린을 보면 식은땀은 물론, 긴장감이 생기는 카논 공작이었다.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족속인, 페이린 후작이다. 공작을 난감하게 만드는 후작이라는 점을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하, 페이린 후작도 여전합니다.”
“라일경...직접 격어 보고 말하게...”
공작의 호위답게, 모든 것을 잘 아는 라일경이었다. 잠자리와 뒷간에서 일 볼 때를 제외하고는 어디든 따라다니는 라일인 만큼 페이린도 잘 알고 있었다. 번번이 카논 공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공작각하...본가에서 연락이....”
“그래, 무슨 일인가? 바쁘지 않은 것이라면 내일 말하게....”
공작가로 돌아온 카논은 살짝 지친 어조로 통신 마법사에게 말했다.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들려오는 소리에 카논 공작은 서둘러 황실로 귀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거 큰일이군. 하프 드래곤이라...역시 그녀뿐인가! 골치 아프게 생겼군.”
카논 공작은 페이린 후작을 떠올리자 절로 머리에 두통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별수 있겠는가. 3만 골드나 하는 하프 드래곤이자,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을 아프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같은 하프 드래곤이라면 이런 현상은 단번에 파악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물론, 약간 늦었지만 그녀가 있는 곳은 한 곳 뿐이라는 생각에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황성의 외각, 황실 마법사의 수련실이다. 황실과도 그렇게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마차로 20분이면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분이라는 것은 황실에 도착하고 나서 부터겠지만. 결코 먼 거리는 아니었다.
==============================================================
홍염의 마법사 =하프 드래곤 페이린, 그녀는 레드 드래곤의 후손 쯤 되겠군요.
나머지 하프 드래곤은 누굴까요. 테라스 제국에 있습니다.
등장인물 소개 약간만.
카논 폰 코리안, 황제 파의 귀족
크롬 귀족파의 귀족, 아직 성이 안나옴
중립파 역시 이름 미정,
페이린 후작,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딱히 구분한다면 황제파의 마법사
대 마법사로 불린다. 홍염의 마법사 그녀에게 알려진 서클은 아직 없다.
그냥 대 마법사로 불릴 뿐이다.
라일경, 카논 공작의 호위기사.
에반 폰 크라드릭 란델 제국의 황제, 에반은 이름이고, 크라드릭은 별칭에 속한다. 그리고 란델은 제국의 국호, 국명을 상징한다.
기억의 파편
황성을 향하는 사륜마차라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에 그려진 문양을 보건데, 지체 높은 귀족가의 마차이리라. 깊은 밤을 향하고 있었던지, 주위는 삽시간에 어둠에 잠기고 있었지만 마차를 모는 마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열심히 마차를 몰고 있었다.
“공작 각하, 황성이 눈앞입니다.”
어두운 밤이 다되어 가고 있건만, 황성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나석이 부착된 것인지 은은한 은빛의 기운이 황성의 내부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마법석을 이용해 라이트 마법을 영구히 지정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황성을 관리하는 마법사들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밝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황성 앞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들이 달려오는 마차를 보며 눈을 빛냈다.
“멈추시오!”
“워...워..”
황성근위병의 모습에 라일은 마차를 모는 네 마리의 말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마차를 끄는 사두마 답게, 기수의 말을 잘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차로 말할 것 같으면, 황제 폐하가 직접 하사한 마차로,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은 물론, 마법 방어기능 까지 있었기 때문에 구하려야 구하기 힘든 마차였다.
“황성은 밤이면 출입이 불가능 합니다. 공작각하.”
“흠흠, 급한 일이 있네. 황성으로 들어 갈 것이 아니라. 마법사에게 부탁 할 것이 있어 가는 것이니 길을 열게.”
황성을 지키는 근위병답게, 전혀 위축감이 없었다. 황성의 성문을 들어가기 위해서도 많은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이라도 이곳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성의 법도에 따라, 국가가 지정한 날이 아니라면 출입이 불가능 합니다. 공작 각하!”
“할 수 없군...그럼 이건 어떤가? 황제 폐하께서 친히 내린 친서, 이거라면 충분히 황성으로 들어 갈수 있겠나?”
무표정을 고수하며,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근위병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던지, 카논 공작은 황제 폐하가 내린, 친서라는 문서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카논 공작 역시, 밤이 되면 출입이 금지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예비 할 수 있었다.
매의 문양이 찍힌 인장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황제의 친필이라는 글이 단 한줄 적혀 있었다.
[카논 공작의 출입은 언제나 허가 하노라]
단 한 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지만, 황제의 옥쇄라는 인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근위병은 양쪽을 가리던 검을 살짝 물리며 뒤로 물러났다.
“실례 많았습니다. 공작각하. 그럼 들어가시지요.”
근위병의 대장쯤 되어 보이는 자가, 부하들을 뒤로 물리고는 입성을 허가했다. 아무리, 황성의 입구를 지키는 자라도, 상당한 경지에 속한 자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황성의 문지기를 무시하지 않는다. 하물며, 공작들 역시 그들을 무시 하지 않으니, 얼마나 입지가 있는 지 잘 알 수 있었다.
“역시, 로열 나이트 군...”
카논 공작이 지나가면서 근위 대장에게 말하고는 황성으로 입장 할 수 있었다. 라덴 제국 제 1의 기사단 로열 나이트였다. 그들은 황성의 안전은 물론, 황제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고작 300명이라는 숫자였지만 대륙 3대 기사단이라는 특별한 명칭도 가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황성으로 들어서자, 잘 정리된 길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는 동상들이 여러 개 보였고, 황궁의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황성은 제국의 얼굴을 상징하기 때문에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소소한 나무들 역시, 정원사가 다듬어 아름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느끼는 것은 거대한 황궁을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황성을 지키는 근위병들과 황성주둔 기사들의 위용에 놀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황성의 아름다움을 느끼니, 그 누구라도 위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스..
황성의 중앙에서 시작된 황궁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별궁으로 향하는 길은 오솔길로 되어 있다. 워낙 큰 황궁이다 보니, 작은 숲도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황족들이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정리된 정원과 가로수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제국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세발의 피였다.
“공작 각하, 도착했습니다.”
황궁에 비해, 초라하지만, 마법사 집단이 거주하고 있는 곳인 만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뿜어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법진들에 절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공작은 익숙하다는 듯이 별궁의 입구를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작 각하. 페이린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하, 이거 못 당하겠군. 이것도 마법인가?”
“예. 수정구로, 황성을 출입하는 존재는 이곳에서 다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흰색의 로브를 걸친 앳된 마법사의 말에 살짝 수긍한 카논 공작은 어린 마법사를 따라, 페이린 후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법사의 별궁답게, 진득한 마나의 향이 느껴지고 있었다.
간간히, 침입자를 대비한 여러 가지 공격용 마법이 있다는 말에 주춤거림이 있었지만 공작의 위엄에는 마법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미로처럼 꼬여 있는 별궁의 모습에 신기함도 느꼈던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걸음으로 보냈던지 라일경과 카논 공작은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페이린이 우리를 골탕 먹일 작정인가?”
“이곳입니다. 공작 각하.”
별궁이되 별궁이 아니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벽면에는 기묘한 마법진이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는 걸음을 옮길때 마다 불이 켜지는 것인지 마법석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똑똑.
“대 마법사님, 모셔왔습니다.”
정중하게 문을 두드린 마법사의 말에도 페이린 후작의 말은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페이린 후작의 자리에 앉아 카논 공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카논 이 늦은 시간 까지. 나 실험에 바쁘다는 거 몰라?”
페이린의 얼굴에는 이상한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실험을 했던 것인지, 이상한 향까지 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중요한 실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봐주지만, 다음에는 절대 너라도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할거야.”
“하하, 어련하실까.”
“무슨 일이야. 일이 없다면 이곳에 발걸음도 하지 않는 녀석이.”
페이린은 말하는 와중에도 살짝 손을 내저으며, 마법으로 차를 꺼내왔다. 황궁의 마법사답게, 모든 것이 마법으로 이루어졌다. 한순간에 물이 끓어오르는가 하면, 어디서 온 것인지 차의 잎이 손에 들려 있었다.
부글부글...
차를 젓는 손짓이 기묘하다. 마치, 시약을 젓는 듯이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이번에는 삼대 일 비율로 섞었어. 아마 좀 진한 맛이 날 걸..? 음...걸쭉한 느낌도 들지만 맛은 괜찮아.”
“괜찮네. 사실 부탁이 있어서 왔네.”
진흙이 끊는 듯 한 모습에 살짝 미간을 좁힌, 카논 공작은 자신의 일을 떠올리고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고개를 내저은 페이린 후작은 마법으로 준비한 차들을 없애 버렸다.
“쿡쿡,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재미없으면 이곳에서 나가지 않겠어.”
페이린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카논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나섰다고 하면, 못 할 일도 없었지만, 장난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다. 마법사답게 호기심이 너무 왕성했고,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 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는 어느 정도 미쳐있었다.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케실리온이라는 하프 드래곤이....”
“좋아! 수락하지.”
“말도 끝나지 않았네..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지. 하프 드래곤이란면 재미있는 녀석일게 분명해...호호호”
카논 공작의 말을 끊어 버리고는 자리를 박차며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에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와 라일은 머리를 흔들었다. 마법사는 두통이 이는 것인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다.
“페이린님, 그럼 황성을 관리하는 것은...?”
“내가 없어도 못하는 일이야? 다른 마법사들로 채워 넣어!”
“예...”
이곳에서는 페이린이 곧 법인 것인지 마법사는 찍소리 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급히 나가버렸다. 그 꼬마 마법사도 상당히 난처한 것 같았다. 이미, 페이린의 악명은 익히 제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황제도 무시하는 마법사라는 소문은 제국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망나니짓을 하는 마법사로도 유명했다. 그만큼 그녀의 마법력은 뛰어났기 때문에 군소리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페이린 후작과 카논 공작은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코리안 공작가의 본가로 가게 되었다. 순간, 카논 공작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지금은 선택할 답안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소리 할 수 없었다.
기억의 파편
별채에서는 스산한 한기가 폭사 되어갔다. 좀처럼 줄어가지 않는 한기 때문에 때 아닌, 난로를 피우고 있었다.
타탁..
방마다 구비 되어 있는 작은 난로에서 쉴세 없이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기를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두터운 겨울용 의복을 걸치고 있었다. 털로 뒤덮인, 수북한 털 모에 양털로 된 것인지 하얀색의 털로 되어 있는 모피를 입고 있었다.
“집사, 아빠는 아직도 멀었어? 벌서 사흘이나 지났다고!”
방안에는 루시아와 집사 크라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약간 걱정이 생기는 것인지 추위 때문인지 입에서는 뜨거운 입김과 불그스름하게 변한 볼을 하고는 옆에 묵묵히 서있는 집사에게 말하고 있었다.
공작가에는 때 아닌, 추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변방의 별채에는 발걸음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사람의 발길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더욱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버렸다. 간간히 보이던 하녀들과 렌경과 라나 역시 무슨 일이 있는지, 공작가의 일을 도우고 있었다.
“아가씨, 연락이 닿았다면 지금쯤 도착 할 시간입니다.”
“칫, 내가 저 딴, 견습 집사 때문에 무슨 꼴이람.”
“하하, 아가씨, 여기는 걱정 마시고 렌경과 검술 수련이라도.”
크라우스는 뾰로통한 얼굴을 한, 루시아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워낙 무표정인 크라우스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입가의 주름을 보건데, 미소는 분명했다.
“하지만 라나와 렌은 밀린 일 때문에 만나기도 힘들다고!”
“하긴, 마냥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 않겠지요. 그간, 케실리온이 모든 일을 도 맞아 했으니....”
차가운 한기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케실리온을 내려다 본, 크라우스는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별채이긴 하나, 엄연히 공작가에 속한 별채였다. 그만큼 할 일도 많았으니,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대 저택의 하녀들을 차출해 이곳에 보내기도 힘들었다. 그들 각자, 대 저택에 맞은 일이 있기 때문에 한가롭게 이곳에서 간호나 할 정도로 한가한 하녀는 없었다.
똑똑!
“루시아 아가씨, 주인님께서 오셨습니다.”
집안에 쌓인 먼지를 털고 있던, 라나는 케실리온의 문을 두드리고는 공작가의 주인인, 카논의 등장을 밝혔다. 그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카논의 등장은 루시아의 표정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아빠!”
“루시아, 오랜 만이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논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장시간 마차로 이동했던 탓인지, 피곤한 모습은 보였지만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 서 있는 붉은 머리의 여인을 보고는 약간 미간을 좁혔다.
“페이린 아줌마도 왔군요. 아빠.”
“뭐야? 저 꼬마가!”
느긋하게 별채를 구경하고 있던, 페이린은 아줌마라는 말에 발끈 하며, 카논 공작을 밀치고는 루시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에 카논 공작은 어색한 웃음을 띠고는 침대 위에서 한기를 내뿜고 있는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좁혔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저런 한기를 내뿜다니. 크라우스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이...루시아 아가씨와 대련을 하고 나서 이 모양입니다.”
크라우스는 단편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고는 공작의 뒤로 이동했다. 아직도 루시아의 버릇을 고친다며 날뛰고 있던 페이린은 크라우스의 말에 다시 루시아의 머리를 쥐어박고는 케실리온의 곁으로 다가갔다.
“역시 이 꼬마가 문제였군! 꼬마는 뒤로 물러나! 방해만 되니.”
루시아를 카논에게 떠넘기고는 케실리온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온 몸에서 뿜어지는 한기에 페이린은 자신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역시 레드 드래곤의 후손 답게, 열화의 기운이 뿜어지며, 케실리온의 몸을 뒤덮었다.
“디텍트 매직(Detect Magic)”
솨아아!
페이린의 마나가 케실리온의 몸을 뒤덮자, 방을 가득 메우던 한기가 조금 가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펼친 마법은 디텍트 매직, 마법사라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수 마법이다.
마법적인 요소와 마나를 탐지하는 것으로 인체 내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는데 탁월한 마법이다. 그것으로 마법적인 데미지나, 저주를 푸는데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마법사들이 이용하는 마법이었다.
“마나 역행이라....”
페이린은 약간 심각하다는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내려다 봤다. 잘 흐르던 마나가 갑자기 역전현상을 보이며, 반대로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나타내며, 한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페이린, 위험한 것인가?”
“카논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마나라는 것이 육체를 강화하거나, 마법을 사출하는데 이용된다는 것을..”
“그건 기본중의 기본이 아닌가? 기사라면 반드시 오러 소드(검기)를 사용할 때 이용되지, 게다가 마법사라면 마법을 만드는 이미지와 더불어 마나라는 것을 이용해 실체화 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
카논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페이린은 아까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우고는 케실리온의 몸에서 뿜어지는 한기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쩌저적..
손가락을 타고 오르는 한기에 손가락의 반응이 굳어지는 것을 느낀 페이린은 자신의 마나로 손가락을 보호했다.
“마나는 사용하는 자를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이 처럼,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기도 하지, 게다가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 마나다.”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답답하군. 저 녀석의 몸에 흐르는 마나가 순리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고 있단 말이야. 잘 흐르던 마나가 방향을 트는 것은 위험한 일.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바인드 체인이 거슬리는 군.”
마나를 흩어 버리는 바인드 체인을 쳐다본 페이린은 카논 공작에게 설명을 구했다. 어째서 케실리온의 발목에 바인드 체인이 걸려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흐음...그러고 보니, 저 바인드 체인을 때어 내지 않았군. 노예상에게 인수 인개를 받을 때부터 착용하고 있었네.”
“평범한 바인드 체인 치고는 너무 마나의 향기가 짙군. 아마 저 아이가 하프 드래곤이라 바인드 체인을 체운 모양인데...저 아이의 마나를 억제 하지 못하고 있어.”
몸에서 뿜어지는 한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바인드 체인을 보고는 그것이 케실리온의 온 몸의 마나의 순환을 방해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이상해, 저런 마나 역행은 내상을 당했을 때나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프 드래곤이라도 어릴 때부터 마나에 대한 민감도만 있을 뿐, 수련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마나를 뿜어내는 것을 보니, 확실히 특이하군.”
하프 드래곤은 어릴 때부터, 마나를 감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페이린 자신 역시 어릴 때부터 마나를 잘 느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마나를 쌓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이정도의 마나를 보면, 1차 성징을 했다는 뜻인데...”
“아! 하프 드래곤은 커 가면서 특별한 성장을 한다고 들었지.”
둘의 말에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자신을 따돌린다는 생각에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후후...꼬마 아가씨, 설마 16세 때 성별을 결정하는 것만이 하프 드래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뭐야! 이 아줌마가!”
두 명의 개차반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통에 카논 공작의 머리를 지끈거렸다. 페이린 하나 만으로도 벅차건만, 자신의 딸마저 점점 페이린을 닮아가니, 머리가 지끈 거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부인마저 합세 한다면 감당할 재간이 없어 보였다.
“그만, 그만! 루시아 조용히 하거라. 어떻게 네 어미를 그렇게 닮아서는...”
“호호호, 당연히 언니를 닮았다면 그 정도의 모습을 보여야지!”
카논의 말에 페이린은 잠깐 자신의 일을 잊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루시아의 표독스런 눈길에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프 드래곤은 13세가 되면 마나를 수용하기 위해서 몸의 변화를 준다. 그 때부터, 보통 인간과는 다른, 친화력을 보이는데 그때가 바로, 1차 성징이라고 한다. 지금 저 아이가 보이는 것이 1차 성징이라면 이해가 가지.”
페이린의 말에 케실리온의 나이를 짐작했다. 저 아이의 나이는 10살, 1차 성징이 나타나기에는 한참이 남았던 것이다.
“그럼...지금이 그...1차 성징?”
“바인드 체인이 촉매가 된 거 같아. 역시 이곳에 오기를 잘했어.”
페이린은 만족한다는 듯이 케실리온의 발목에 달린, 바인드 체인을 내려다 봤다. 설마, 이런 속박용 도구가 성장에 촉진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이린, 저 바인드 체인을 해체 할 수 있겠나? 마나 역행은 위험하니까. 지금 푸는 것이 좋겠군.”
“어련하실까. 지금 당장 풀어주지. 한기가 가득하지만 나의 마나에는 세발의 피니까.”
카논 공작과 페이린 후작은 바인드 체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댔다. 물론, 한기 때문에 마나를 끌어 올려야 하는 수고 까지 해야 했지만, 둘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검술로 일가를 이루는 코리안 공작가였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 마법사로 통하는 페이린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철컹!
케실리온을 속박하는 바인드 체인이 떨어져 나가자. 세차가 기운이 몰려들었다. 1차 성징의 영향인 것인지, 온 몸은 한기를 나타내는 은빛의 마나가 몰려들며, 케실리온의 몸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역시 1차 성징이었군. 정말 마나가 민감한 아이 같군. 마법사에 소질이 있어.”
“무슨 소리인가! 저 아이는 검술을 배워야 하는 아이야.”
페이린은 만족한다는 듯이, 1차 성징을 감상하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온 몸에서 뿜어지는 은빛의 마나에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같은 하프 드래곤에 대한 호기심은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저 모습을 보고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카논 공작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런데...저 아이, 블랙 드래곤이 아니었던가? 은빛의 마나라니. 게다가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마기!”
카논 공작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케실리온의 마나를 감상했다. 블랙 드래곤의 마나는 검은 빛을 띤다. 그런데 저 은빛의 마나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하늘거리는 은빛의 마기라니!
“설마...마족인가? 페이린, 어떻게 된 일인가?”
“흐음....은빛의 마기라...”
케실리온의 몸에서는 차갑기만 한,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드래곤은 중간계를 수호하던 종족, 마기를 소유한 존재는 없었다.
“확실히...마기군...내 기억으로는 다크 드래곤인거 같아...역시 재미있어.”
착실하게 마나를 수용하는 모습에 페이린은 눈을 빛냈다.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1차 성징을 한단느 것은 특이했다. 게다가, 은빛의 마기라니! 만약 다크 드래곤인 어둠의 종족이라면 확실히 이해도 갔다.
“아줌마 무슨 소리야. 다크 드래곤이라니!”
“이 꼬마가! 아줌마 아니라니까!”
다시 싸움에 불이 붙은 것인지, 루시아가 발끈 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미, 케실리온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페이린은 가소롭다는 듯이 루시아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받치며 밀어 내고 있었다.
“닥쳐!”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루시아와 페이린은 카논 공작을 쳐다봤지만 공작은 고개를 흔들뿐이었다. 이 방에 있는 존재는 단 다섯, 크라우드 집사와 케실리온, 하지만 케실리온은 1차 성징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소리 칠 수가 없었다.
“아..아가씨....저기.”
크라우드가 가리킨 곳은 한창, 1차 성징에 정신없어야 할, 케실리온이 눈을 부릅뜨고는 일어서 있었다.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루시아는 케실리온의 망발에 정신이 없었다.
“감히! 케실리온 네놈 따위가!”
루시아의 외침에, 페이린은 깔깔 거리며 하프 드래곤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소리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암! 하프 드래곤이라면 당연한 모습이다.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있어.”
하지만 케실리온의 몸은 시간이 멈춘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으며, 침대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기억의 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