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축제라고요?”
그날 저녁 별채 안은 약간 떠들썩해졌다. 좀처럼 들어오지 않던 렌까지 돌아왔다. 그녀가 가지고 온, 이야기 거리는 피곤에 절어 있던 루시아와 페이린에게 잡혀 있던 케실리온까지 약간 들뜨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한가득 모여 있는 1층의 주방에서는 라나가 분주하게 차를 나르며 물었다.
“응, 검의 축제라고....다음주 수요일부터 토요일 까지, 총 사일 간 있을 예정이지.”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벌써 축제라니....”
렌의 말에 라나는 과거 있던 축제를 기억하는 것인지 약간 홍조가 띤 표정으로 차를 따르고 있었다. 물론, 하녀의 신분으로 자세히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기사들이 대결을 하던 모습이 아련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처음 루시아를 보좌했기 때문에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시아가 수도에 머무는 바람에 끝자락에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나의 표정은 한 없이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약간 부러움이 묻어 있었다.
“아가씨...이번 축제 때 구경이라도....”
“아? 축제...? 난 한창 바쁠 때라서. 못갈 것 같은데?”
루시아는 약간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실망 한 것인지 라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흠....축제 구경, 나도 가고 싶었는데.”
케실리온도 약간 실망 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떠올린 케실리온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체념의 표정을 지었다. 하긴,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아아, 그 카논이 주관한다는 그 축제?”
“예, 뭐.....좀 파격적이지만.”
카논 공작이 그렇게 열의를 불태우며 주관하는 검의 축제,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상금이 만만치 않는 것을 상기한 렌은 어색하게 웃고는 차를 한 목음 들이켰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치밀한 계획까지 세운 듯했다. 공작령 외의 사람들을 출전시킴으로 해서, 참가비를 받는 다는 말에 검의 축제에 대한 의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렌의 생각이었다.
“최초의 공작 각하인, 로한 폰 코리안님이 활동을 시작하신 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행사니까요. 요즘 들어서는 휴식의 날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렌은 그런 저런 생각을 하자,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순수하게 무를 숭상하는 로한 공작 각하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정세에 미간이 좁혀진 것이다. 지금은 물욕으로 가득차, 광기에 허덕이는 자신의 동료들인 기사단원들의 행각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검의 축제라면 검과 검술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축제 때나 통용되는 개념일 뿐! 상인들은 축제를 바탕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위해 장사를 하는 날일 뿐이다. 게다가, 순수하게 관람만 해야 할, 시민들은 우승을 점치는 도박까지 성행하고 있었으니, 축제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껴지는 축제의 의미를 빌리자면......
‘돈과 도박!’
......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축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무를 숭상하는 무인들의 행동! 그리고 무상으로 접대하는 상인들의 모습이건만, 아무리 황금지상주의가 가득찼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렌이었다.
‘절대, 상금은 넘겨 줄 수 없어. 후후후, 수련이다!’
어디선가 상금을 노리는 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만 같았다. 어쨌든 렌은 검의 축제에 관심이 전혀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케실리온과 라나의 모습에 약간 안쓰러움도 느껴졌다.
“으음, 역시 그런 축제는 않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겁니다. 루시아 아가씨.”
“칫, 나는 보고 싶어도 못 본다고 이놈의 숙제가 뭔지!”
아직도 깃펜으로 껄적 대고 있는 양피지를 살짝 구겨버린 루시아는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벌컥 벌컥 마셔버렸다. 물론, 렌은 그런 루시아 아가씨에게 공녀로써 체통을 지키라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좋아. 케실리온! 보고 싶다면 마법을 펼쳐라! 힘이 넘치는 매직 애로우를 보여준다면 대려가 주마!”
페이린은 실망한 표정의 라나를 쳐다본 후, 의미심장하게 케실리온에게 제안을 했다. 아침에 그렇게 가르쳤건만, 마법의 마자도 구경해 보지 못한 페이린이었다.
물론, 갑자기 시킨다고 해서 될 정도로 마법이 쉽게 펼쳐지지 않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1서클의 기초 중의 기초는 펼쳐 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하프 드래곤인 만큼 마나에 대한 친화도가 높기 때문에 1서클은 금방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결코 해내지 못하겠지만, 과거 마법의 주인이라고 불리던 드래곤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그 후손이라면 빠른 시간 내에 매직 애로우를 펼쳐 낼 수 있을 것이다.
‘후후, 솔직히 나도 가고 싶지만...’
급히 표정을 고친 페이린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케실리온에게 다시 압력을 가했다.
“......됐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배우고 싶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스승이라는 페이린님이 좀....”
“뭐랄까. 너무 못미덥다고 할까.”
케실리온의 독백과 같은 말에 페이린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명백히 케실리온의 무시하는 발언에 화라도 나겠건만, 여전히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고 있다.
“흥, 제자가 못났겠지. 저기 봐라, 케실리온, 너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라나 뿐만이 아니야. 렌과 루시아 까지 약간 기대를 하고 있는 눈빛을 봐라!”
“누, 누가! 이 아줌마가!”
루시아가 인상을 구기고는 소리쳤다. 얼굴에 비치는 엷은 투덜거림도 사라지고 오직 적의만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이 마법을 쓴다기에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페이린의 발언에 당황한 듯했다.
‘그래, 그래서 배우고 싶지 않았는 다고 했던 겁니다. 페이린님’
케실리온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라나가 구워온 쿠키를 살짝 베어 물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해 마법을 배우게 하는 페이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케실리온, 난 절대 기대하지 않았어. 그저 검의 축제가 보고 싶을 뿐이야.”
상큼하게 웃는 라나의 표정에 케실리온은 살짝 굳어졌다. 루시아 아가씨라면 모르겠으나,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라나의 존재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높았다. 게다가, 저 애절한 표정을 보고 넘어가는 존재는 세상이 몇 없을 것이다.
그에 케실리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큭, 마법을 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해보죠.”
“호호호, 역시 넌 마법에 대한 집착이 높아! 역시 나의 제자!”
“누가 제자란 겁니까.”
흥분하며 소리치는 케실리온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페이린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라나는 케실리온의 다짐이 그렇게 좋은지 차를 홀짝이며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에휴, 아가씨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렇게 보고 싶어 하는데.”
“뭐, 난 딱히 싫은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페이린의 행각에 렌은 고개를 흔들고는 루시아 아가씨에게 의중을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도 그렇게 썩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케실리온이 마법을 배우는 것도 약간 못마땅하지만, 루시아 아가씨의 숙제를 대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마법이 뭔지...참. 케실리온이 일주일 만에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제가 할 수....없다고 하셨습니까?”
“아...뭐, 그렇다기보다는....힘들지 않을 까하고.”
렌의 발언에 약간 움찔 거린 케실리온은 살짝 흘겨보고는 다짐했다. 렌경의 생각을 바꿔주고 말겠다는 듯이 주먹을 힘껏 쥐었다.
“라나! 걱정 하지 마. 내가 반드시 축제 구경을 시켜주지!”
“응! 난 케실리온을 믿으니까.”
보란 듯이 매직애로우를 성공 시키는 거다! 케실리온! 이런 다짐을 하고부터 후회하기까지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검의 축제, 소년이여 마법을 펼쳐라.
그날부터 페이린의 마법강의를 시작으로 잠을 깼으며, 마법강의로 잠에 들게 되었다. 밤을 먹고 잠을 잘 때 외에는 마법강의를 계속했으니,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청소에 방해가 될 정도로 조잘 거리니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매직 애로우는 말이지, 몸속의 마나라는 것을 끌어 올려, 뾰족한 화살을 떠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야.”
보통 마법사가 마법을 펼치는 것과는 달리, 페이린은 자신만의 특유의 마법을 가르쳤다. 이미지를 통해, 마나를 활성화해, 이미지를 하는 것으로 보통의 방법과는 괴를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사실, 페이린은 보통 마법사와는 달랐던 것이다. 멀리서 마법을 펼치는 타입이 아니라, 적 앞에 당당히 맞서며 마법을 펼치는 배틀메이지, 즉! 전투 마법사였던 것이다. 독백같은 설명이 페이린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케실리온은 바닥에 번진 누른 느낌의 얼룩을 향해 힘껏 걸래질을 해댔다.
벅벅!
계속해서 들려오는 마법 개념을 낭독하는 페이린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럴수록 케실리온의 걸레질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만, 그만!! 청소 좀 합시다. 페이린님!”
“칫, 청소 따위야 마법으로 하면 몇 초도 안 걸려!”
케실리온의 말에 버럭 화를 해며, 마법을 뿌려댔다. 어떤 마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붉은 섬광이 스쳐지나가자, 바닥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폭풍후의 폭풍이라고 했던가?
물기가 살짝 묻어 나던 복도는 순식간에 후끈한 열기에 말라 버렸다. 장장 한시간이나 해야 할 일은 손짓 몇 번에 끝나 버리는 것을 보며, 케실리온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사기잖아 이거....페이린님 이런 마법이 있었다면 진작!”
“후후후, 네가 1서클만 마스터 한다면 청소 따위는 빨리 끝낼 수 있지.”
케실리온은 그녀의 말에 마법에 대한 갈망이 치솟았다. 손짓에 사라져가는 때 자국이 그의 마음을 뒤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법이 있었다면, 진작 배웠을 것이다. 몇 번의 마법이 토해지자, 유리로 되어 있던 창가는 물론, 커튼과 바닥을 장식하던, 시터까지 말끔하게 깨끗해져 버렸다.
그 순간 허탈해지는 심정이란, 그토록 열심히 빨고, 닦고 하던 자신의 모습이 바보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호호! 이쯤이면 완벽하게 넘어왔겠지.’
붉은 빛 가루가 흩날리며 한 치의 군 더기도 없이 마나를 거두어드렸다. 그러면서도 마법의 화려함을 일깨우듯이 페이린의 마법은 1서클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했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넋이 빠져 중얼거렸다.
“미, 믿을 수 없어.”
이유야 어찌 되었던, 케실리온은 마법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 * *
“현재 공작령은 모든 업무가 마비 상태입니다. 축제라는 명목으로 저택을 지켜야 할, 기사들은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검의 축제 준비가 한창일 무렵, 비서 겸, 재정을 담당하는 렘은 공작의 집무실에서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자 카논 공작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드싱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역시 내 생각대로군. 날씨 때문이라 생각했던, 기사들의 수련도 활발하고 말이야. 강해져야지, 암! 누구의 기사인데!”
‘......그런건 곤란합니다. 공작 각하. 업무가 마비되었단 말입니다.’
렘은 축제 이후 있을 공작령의 수입과 지출을 생각했다. 당연히 수입도 많겠지만, 축제 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소비될, 식비 때문에 많은 출혈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기다리는 건, 과다한 엄무와 몇날 며칠의 검토로 밤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업무의 수습은 자신에게 돌아 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렘은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그건 그렇고 자네 동생은 여전히 참가 의사가 없는 건가?”
“렌, 말씀이십니까?”
렘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카논 공작은 약간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당연한 것을 묻는 군! 렌경 말일세, 렌경!”
카논 공작의 목소리에 다분히 답답하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카논 공작은 아직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렘을 보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렘은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공작 각하 렌이야 여자의 몸이고, 그런 대회에 참가할 의사가 없습니다.”
“모르는 소리! 검을 든 자는 여자, 남자 구분이 없네! 오직 무인일 뿐이야. 아직도 답답한 소리를 하는 군. 이유가 어찌 됐건, 왜 참여하지 않는가 이 말일세. 아무리 루시아의 호위 기사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기사단의 일원이 아닌가. 납득 할 수 없어.”
“공, 공작 각하.”
렘은 카논 공작의 말에 살짝 감동한 목소리로 떨었다. 자신이 한 말이지만, 동생은 언제나 자신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라는 특성상, 남자에 비해, 근력면에서 뒤처지지만, 스피드라면 그 누구도 따라 올수 없는 렌이었다.
그런 존재를 바르게 봐주는 분은 역시 공작 각하뿐이다. 같은 기사단의 사람들도 그녀를 한수 낮게 보고 있건만, 검의 지주라고 불리는 공작 각하의 말 속에서 그녀에 대한 신뢰와 무인에 대한 자부심을 들을 수 있으니, 카논 공작은 진정 자신의 주군이었다.
하지만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약간 절망했다.
“홍일점인 그녀가 빠진다면 축제가 뭐가 되겠는가. 여기사가 부족한 시기에 그녀가 여기사의 발전을 촉진 시켜야 하거늘...쯧, 아쉬워. 그녀는 인기 또한 많지 않은가. 슬슬 결혼 할 나이도 되었고 말일세. 그 참에 결혼 상대도 찾아 볼 겸 대회에 나가도 좋으련만.”
“......”
렘은 침묵했다. 그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보고를 계속했다.
“어쨌든 이건 축제로 인한 지출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축제가 끝난 뒤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게다가, 축제 기간도 안 되는 시기에 벌써부터 출전 의사를 밝힌, 크롬 폰 카르멘 공작께서 단단히 벼르고 계십니다. 게다가 크롬 공작의 기사들은 강적입니다.”
“후하하하! 그래야지! 크롬 공작이라....그 녀석의 기사들도 출전한다 이 말이지. 기대 되는 구만.”
“......하지만 강적은 그들뿐 만이 아닙니다. 카이룬 폰 류드릭 공작 각하 역시 출전 의사가 있다고....”
렘이 말한 두 인물 중, 크롬이라는 자는 확실히 적이었다. 귀족파를 대표하는 공작으로써, 여간 골치 아픈 존재였다. 하지만, 카이룬 폰 류드릭이라는 공작은 중립파로써, 이도 저도 아닌 존재였다. 어떻게 본다면 확실한 크롬공작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일지도 몰랐다.
“흠...확실히 변수군. 참여하길 좋아하지 않는 카이룬 공작이...”
“무엇보다도, 숨기기를 좋아하는 공작인만큼, 그의 기사단이 주목됩니다. 아마, 저희 정보부 쪽에서는 카이룬 공작의 기사단 중, 최고의 기사가 출전 할 것이라고 합니다.”
“큭, 뒤통수를 맞았군. 그것도 멋지게....”
설마 이번에 중립파의 카이룬 공작이 나올지 몰랐던, 카논 공작은 렘에게 소리쳤다.
“좋아, 우리도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해, 우승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전하게. 그리고 이번에, 라일 경까지 출전을 허락한다고 전하게, 뭐...벌서 준비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아니, 단장이 출전이라니요. 이건 축제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그리고 쉽게 결정할 사항이...”
라일 경은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얼굴은 알려져 있었지만,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하, 두 공작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비밀을 보여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나!”
‘하아.’
렘은 카논 공작의 막무가내 방식에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카논 공작의 심복, 주군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공작가의 비밀을 하나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 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보좌해온 렘은 카논의 충실한 가신이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기사의 신분을 하고 있는 여동생, 렌이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생에게 백작가를 맡기는 것이거늘....약간의 한탄이 렘 백작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검의 축제, 소년이여 마법을 펼쳐라.
검의 축제를 하루 앞둔 날, 별채에서는 긴장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긴장을 한 것은 라나 뿐이었지만, 페이린과 케실리온은 별채 앞의 작은 공터로 나왔다. 그 앞에는 표적이라도 되는 듯이, 1미터 정도 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다.
“지금 저걸 향해 매직 애로우를 날리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아, 음....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펼치는 방식도 모르는 판에 저걸 맞추라니!”
마법을 펼치는 방식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뭘 하라는 건지, 기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뭐하겠는가. 페이린의 말은 마치, 기어가는 아이를 향해 뛰라는 소리나 마찬 가지였다.
“왜, 너 잘하는 거 있잖아. 물 잔을 얼리는 것처럼 기운을 손에 집중시키고 이미지를 하면 되지!”
“하...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않습니까.”
라나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곤 거렸기 때문에 라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별채의 일이야, 페이린이 다 처리했다고 하지만, 마법이라는 것을 처음 시도하는 케실리온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케실리온, 열심해 해!”
케실리온은 라나의 응원에 볼을 상기시키며 손을 뻣뻣하게 흔든 후, 페이린을 향해 흘겨보았다. 라나를 참관 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대를 잔득하고 있는 라나를 이용해, 자신을 움직이겠다는 심산 인 것 같았다.
그렇게 케실리온은 담담한 표정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노려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약간 신음을 흘렸다.
“이건.....”
페이린이 단단히 준비를 한 것인지, 목표물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목표물이라는 것을 향해 마법을 펼칠 수준도 안 되거니와, 목표물이 없다고 할지라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밤 몰래, 마법을 펼치기 위해 끙끙 거리기는 해봤지만, 화살의 모양은커녕, 마법의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긴박하고 긴장감이 케실리온의 이마를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마법을 펼치기 전에, 상대방의 거리를 떠올리고, 마법의 이미지를 구상해, 마치 무언 가를 꿰뚫겠다는 느낌으로!”
“그게 잘 됩니까. 언제나 저는 얼린다는 생각으로 그 찬을 손에 가져다...아!”
페이린의 말에 케실리온은 신음을 삼켰다. 지금껏 마법을 날리겠다고만 생각했지, 이미지를 제대로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포크 모양을 떠올렸다.
보지도 못한 화살을 떠올리는 것 보다야, 포크나 나이프를 떠올리는 것이 가장 알맞을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후훗, 이제야 깨달은 것인가? 네가 한 행동들 하나하나가 마법과 관련 있다는 것을! 청소할 때를 떠올려라.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지? 깨끗해진다는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물을 얼릴 때는 물을 얼리겠다는 상상을 하며 마나를 움직인 것이다!”
케실리온은 그녀의 비상식적인 가르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제는 어디까지나 비상식적인 가르침을 토대로 마법을 펼치는 것뿐이었다. 양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케실리온은 온 정신을 이미지에 쏟아 부었다.
“이제 시작인가요?”
이미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라나가 페이린의 옆에 서며, 케실리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색과 하얀색이 조합된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라나의 모습은 ‘나 지금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라는 표정으로 페이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호호, 보이지...저 집중력! 나의 가르침은 대단해! 단 시간 안에 저런 집중력을 끌어 올리다니!”
“약간 두근거리네요.”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페이린의 모습을 보며, 라나는 긴장했다. 일주일간 지켜본 결과 페이린이 가르친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명상과 마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가장 쉽게 이미지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다였다.
잘 모르는 라나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방법이었지만, 페이린은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표물과 일자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케실리온과 그 옆에서 관찰하는 두 명의 여자...
“이거 페이린님 아니십니까.”
“뭐야, 제스잖아. 이런 말종!”
아직도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것인지 페이린이 애꿎은 땅을 걷어차고 있을 무렵, 마법 구를 관리하는 공작령의 유일한 마법사인 제스가 웬일인지 어두침침한 곳을 벗어나 별채에 발걸음을 했다.
“하하, 너무 하십니다. 마탑에서 도망치듯 나온 사람은 저 말고도, 페이린님도 있잖습니까.”
“훗, 너와 나의 격차는 현저하다. 네 녀석과 비교될 대상이 아니지! 게다가 이미 난 란델 제국에 몸을 담고 있는 몸! 황실마법사다.”
“아무튼, 케실리온이 마법을 펼친다기에 마법사로써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럼 입 다물고 구경이나 해.”
페이린은 건들거리는 제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강경하게 충고 같은 말을 하고는 열심히 마법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대단하군요. 이 정도의 집중력이라니. 역시 하프 드래곤이라서일까요?”
“헹! 내 제자다! 호호”
제스의 아부 성 칭찬에 기분이 금세 좋아 진 것인지 페이린은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주억 거렸다.
스스스슷!
케실리온의 몸에서 한기가 뿜어지기 시작하자 미약한 마나의 파도가 출렁거렸다. 두 명의 마법사는 느껴지는 것인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주시하고 있었다. 라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 페이린을 올려다봤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 라나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순간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인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페이린은 실드까지 펼쳤다. 예전에 욕실에서도 확인했지만 그때보다 더 상승한 마나의 양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마나를 모으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의문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다.
번쩍!
케실리온의 눈이 빠르게 떠지며, 은은한 광채가 손에 보여 들었다. 마나의 향기에 걸 맞게 은빛의 섬광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는 자신 특유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오크도 자신의 특성에 맞게 마나를 가지고 있다. 인간 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확실히 자신만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 중에 돌연변이로 오크 마법사라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도, 마나의 과밀도로 태어나는 존재에서 비롯된다.
그 확률이 지극히 낮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포크...포크다. 포크로 저 앞에 있는 것을 맞춘다.”
조금씩이지만 흐물거리는 은빛의 마나가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약간 어중 충 한 모습이지만, 확실히 모양은 갖추었다. 기대하던 화살의 모양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
“아...아름다워요. 은빛이라니.”
라나는 성스럽게 뿜어지는 양손의 마나에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만지고 싶은 것인지 라나의 작은 걸음이 조금씩 케실리온에게로 다가갔지만, 페이린이 손을 꼭 잡으며 걸어가는 라나의 발길을 막았다.
‘뿜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방출!’
미약하지만 형상을 갖추자, 케실리온은 이 포크의 모양을 한 매직 애로우를 날릴 생각을 했다. 걸래를 빨대, 물이 톡톡 튀는 것처럼, 혹은 쥐어짜면 물이 나오는 듯 한 모습을 그렸다.
“매직 애로우(Magic Arrow)”
케실리온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지자, 은빛의 포크가 직선 방향으로 비해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토막을 향해 광란을 질주를 하듯이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에 라나는 기쁨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건만, 곧 사라져 버리는 매직 애로우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매직....”
나무토막에 부딪히기도 전에 사라지는 모습에 케실리온은 뒷말을 다시 잊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스는 가볍게 웃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페이린님의 가르침은 대단하군요. 물체에 맞추기도 전에 사라지다니. 하하하”
언뜻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케실리온은 처음 보는 남자의 말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마법을 펼치기는 했으나, 물체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마법의 모습을 본, 라나와 페이린에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설렁 설렁 배운 것 치고는 잘한 거야.”
케실리온은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처음 펼치는 마법의 장은 막을 내렸다.
검의 축제, 소년이여 마법을 펼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