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69)

점심을 막 지난, 오후의 시작이다. 여름답지 않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은빛의 갑옷을 걸친 300명의 무리가 거대한 경기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자! 서둘러라. 아무리 축제라고는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기사의 의무!”

축제의 메인이벤트 인 검술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이다. 코리안 공작가의 자랑 거리인, 거대한 경기장, 한해에 딱 한번 운영되는 경기장인 로한이라는 이름의 경기장이다. 기사단의 단장인 라일은 기사단원들을 이끌고 경기장의 닫힌 문을 열어 젖혔다.

한 해에 한번 열리는 경기장인 만큼 먼지가 쌓여 있을 테지만, 꾸준히 관리를 해 온 덕에 깔끔한 경기장의 모습이 들어났다. 경기장의 중앙에는 강화 마법이 걸린, 대리석이 층층이 쌓아 올려져 있는 무대가 있었고, 그것을 삥 두른 원 형의 경기장과 관람석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귀빈석은 깔끔한 석조의 발코니가 있었고, 그곳에는 공작 각하의 내외가 앉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의자가 놓여있었다. 물론, 다른 귀족들도 가끔 찾아오기 때문에 1등석이라고 불리는 높은 곳은 당연히 이번에 찾아 올, 3대 공작인, 크롬 공작과 카이론 공작의 참석은 의외였다.

여태껏, 이런 고위급의 귀빈은 처음이었던지, 카논 공작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린, 발코니에는 두 공작이 관람할 위치였다. 최고 상석인 만큼 세명의 공작이 앉는 것은 당연했다.

“쩝, 이번 해에는 단장님까지 나오 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뭘 꾸물거리나! 정리하고 너희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하고 있어야지!”

“예엣!”

라일의 힘찬 대답에 기사단원들은 약간 주줌 거리며, 혹시나 있을 침입의 흔적을 조사하고 있었다. 3대 공작인만큼, 암살이나, 여타의 적에 대해 대비하는 것도 기사의 일이었다. 혹여 있을 암수의 장치나, 침입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대회의 장을 열었다.

맑은 하늘이 축제를 축복하는 것인지, 밝은 빛이 터져 나왔고, 짧게 열린 입구에서는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아직 대회의 개막식도 아니건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그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 로한 경기장은 코리안 공작의 자랑거리인 만큼, 공작령의 정 중앙인, 카논 공작이 다스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주위로, 렘 백작과 여타의 공작가의 가신들의 가문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입을 하기 위해서는 힘들었지만, 혹시라도 있을 침입에 경계를 강화했다.

처처척!

“귀빈석은 이상 없습니다.”

“일반 관람석도 이상 없습니다.”

장장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 끝에야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넓기도 넓었지만, 눈을 끄는 조각품이 많았기 때문에 확인하는 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닌 듯, 그들은 약간 지쳤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곧, 공작 각하와 여러 귀족들이 이곳으로 오실 것이다. 모두 긴장하고 있도록!”

“옛!”

우렁찬 기합소리에 마음이 들었던지, 라일은 즐거운 표정을 짓고는 선수대기실로 향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다섯 명의 기사들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기사들은 이번 대회에 다른 기사단의 기사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약간 긴장한 듯했다.

그들의 손에는 자잘한 상처가 있었고, 많이 훈련했다는 듯이, 맑은 눈동자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경기장의 중심 중, 최하층이 각 선수들이 대기하는 곳이었다. 혹여 있을 사태에 대비해, 지저스의 교단에서도 많은 신관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처 같은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그대들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다. 코리안 공작가의 위상을 떨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오오오오!!”

잔득 기합이 들어간, 기사들은 단장인 라일의 말에 불꽃과도 같은 눈빛으로 함성을 내질렀다. 속속 도착하는 기사들과 참가자들의 모습에 그들은 자신감이 가득찬 표정을 지었다.

“우승은! 우리의 것이다!”

다시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대기실에 기사들의 비장한 눈빛만이 감돌뿐이었다.

“오...이게 누군가 했더니, 로한 기사단의 라일이 아닌가!”

“네 녀석! 웰즈!”

뒤에서 들려오는 깐죽대는 목소리에 라일은 뜨겁게 타오르던 마음이 착 가라 앉는 것을 느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것은 크롬 공작가의 기사단장, 웰즈였다. 아카데미의 동기로, 언제나 라일과 라이벌 사이였다.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 언제나, 그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 승리를 점 칠 수 없는 대결만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오랜만이군, 웰즈.”

“나 역시...라일! 20년 만인가?”

웰즈와 라일은 서로 마주보고 서며, 암묵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20년만의 친구를 만나는 것 치고는 과격한 느낌이었지만, 그들은 말없이 웃고 있었다. 오랜 원수이자, 라이벌의 등장은 기사들의 마음을 불사르기에 충분했다.

“훗, 검의 축제라 해서 와봤더니...흥미롭군.”

“하하하, 얼마나 수련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무승부는 없다.”

라일의 말에 좌우로 갈린 두 기사단들은 각자 투기를 발산했다. 잠시후, 많은 관중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자, 그들은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뿌우우우

긴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참가하는 기사단원들과 용병들은 각자 대기실에서 조용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자리를 지켰다.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것인지, 선수 대기실에서는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       *       *

“와...케실리온 저기 봐, 신기하다.”

라나는 공작가를 처음 벗어난 어린 아이 처럼 방방 뛰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간간히 보이는 신기한 것들에 라나는 어린아이처럼(실제로 어린아이다.) 케실리온을 붙들고는 쳐다보기에 바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과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 그리고 건장한 몸을 소유한 우락부락한 모습의 용병들이 눈에 들어오자, 케실리온도 붉어진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바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던지, 금세 라나 처럼 힐끔 거리기에 바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갈색 빛의 머리를 틀어 올린 라나와 긴 흑발을 단정하게 묶은 케실리온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 뒤의 보호자로 보이는 적발의 여성의 모습에 모두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더욱이 깊게 파인 가슴을 내비치는 페이린의 모습에 뭇 남성들의 마음을 불사르기에 충분했던지, 뜨거운 시선에 라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페이린은 아무렇지 않다는 좌우로 늘어진 상점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볼게 없네.”

페이린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앞서 걸어가는 두 명의 꼬마를 쳐다 볼 뿐이었다. 쑥스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라나의 모습에 피식 거린 페이린은 두 명의 꼬마를 잡아끌었다.

“자, 이대로 로한 경기장에 갈 필요 없으니까. 간단하게 먹을 거라도 먹자. 역시 관광은 먹는 것 아니겠어?”

“그것이 목적이었습니까.”

눈에 띠는 곳, 바로 그곳은 술집이었던지, 독한 향내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케실리온은 못말린다는 듯이 페이린은 쳐다보고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라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케실리온이야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라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실상, 케실리온 역시, 이 상황이 탐탁지 많은 않았다.

스르륵..

탐욕스럽게 쳐다보는 것부터 시작해, 알 수 없는 오한이 전해지는 여자들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 한 남자들의 시선에 페이린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페이린의 잡다한 지식에 눈을 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구분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슴이 여자와 남자를 구분 할 수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생김새와 몸의 선으로 구분 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다.

끼이익

의외로 분위기가 좋은 술집이었다. 페이린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두 명의 꼬마를 이끌고는 만원을 이루고 있는 술집의 빈자리를 찾았다. 페이린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거리에서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맥주 두잔 더!”

“아, 예!”

검의 축제라는 대목답게,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칼을 찬, 용병으로부터 시작해, 평민들과 답답하게 술을 마시는 로브의 사람들 까지, 가지 각색의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 있었다.

찌를 듯 한 알코올 냄새에 케실리온과 라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페이린을 노려봤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고 있었다. 그때, 이곳의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페이린 앞에 섰다.

“무엇으로 드릴 까요?”

“음, 역시 맥주! 아참, 이 얘들은 마실게 없을 까?”

페이린의 말에 힐끔 옆의 라나와 케실리온을 쳐다본 점원은 약간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은 술집이었기 때문에 알코올이 안 들어간 음료는 없었기 때문이다.

“손님, 약간 곤란하군요. 전부 술이 뿐이라. 제일 약한 술이, 베리슈 칵테일입니다. 술이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만, 엄연히 술입니다.”

“흐응....”

점원의 말에 라나와 케실리온을 내려다 본, 페이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것을 두잔 시켰다. 페이린이야, 성인을 넘어 36살 이라는 나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앞의 아이들은 고작 10살의 꼬맹이에 불과했다.

카논 공작의 나이 역시 36살, 라일 경의 나이도 36살이라는 것을 관점으로 볼 때, 그들은 아카데미의 친구였다는 것을 살짝 추측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늙어가는 나이답지 않게, 동안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주문하신, 맥주와 베리슈가 나왔습니다. 손님!”

여점원의 상큼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케실리온과 라나는 움찔 거렸다. 술이란다. 저 악한 악녀가 술을 먹인다는 생각에 라나는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곧, 달콤한 향기의 칵테일이 앞에 놓이자 침이 고이는 것인지, 힐끔 힐끔 페이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꿀꺽...

“캬! 얼마 만에 먹어보는 거야. 황실에서는 입만 고급이라니까.”

페이린은 그동안 못먹었던 맥주를 다 마실 참인지, 연신 맥주를 주문해대고 있었다. 그저 앞에 놓인 칵테일을 보는 두 명의 어린 양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뭐야, 기껏 시켰는데 안마시고. 아? 혹시 어른 앞이라 못 마시겠다는 거야? 괜찮아. 내가 허락하지!”

페이린은 쭉 들이키라는 듯이, 케실리온과 라나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라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컵을 잡고는 살짝 입에 가져다댔다. 향기로운 냄새에 반했고, 달콤한 맛에 반 한 것인지 라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맛있어요.”

“호호, 벌써 술에 눈을 뜬 것인가?”

페이린은 라나의 행동이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케실리온을 재촉했다. 마지못해 먹고는 있었지만 의외로 잘 넘어가는 베리슈라는 칵테일에 케실리온은 반해버렸다. 목 끝으로 넘어가는 상큼한 맛과 어우러지는 혀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잘 마시네. 자, 내가 먹는 것도 살짝 맛봐야지.”

맥주잔을 가득 메운 노란 빛의 액체를 보며 라나는 입맛을 다셨다. 페이린이 먹는 것도 달콤한 맛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조금 따라준, 맥주를 본, 라나는 그대로 그것을 삼켰다.

꿀꺽...

“에...써, 히극....머리도 아파.”

못먹을 거라도 먹은 듯이, 라나는 딸꾹질을 하며, 얼굴이 조금씩 붉어져 갔다. 그 모습이 웃긴 것인지, 페이린은 깔깔 거리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세 명의 모습에 호탕하게 웃고는 연신 술을 들이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하하, 어린 아이들이 벌써 술을 배우는 군. 껄껄껄.”

호탕하게 웃는 용병의 모습에 케실리온을 살짝 흘겨 보았지만, 귀엽다는 듯이 맥주를 페이린에게 건내고 있었다.

“껄껄, 마음에 드는 아이들이군. 자, 마음에 드는 자에게 주는 술이네.”

“호호호, 술에 대해 뭘 좀 아는 군요!”

뭘 안다는 것인지, 페이린은 검의 축제의 메인인 검술 대회를 안 볼 생각인지 연신 퍼 마시고 있었다. 그에 동한 사람들은 각자, 페이린에게 술을 권하며 희희낙락거리며 술을 퍼마시며 놀고 있었지만, 케실리온은 목표에 어긋한 행동에 한숨이 나왔다.

검의 축제, 소년이여 마법을 펼쳐라.

“지, 지옥에나 떨어져라.”

“지옥? 좋지...”

케실리온의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지는 마나의 향기에 술집에 있던, 모든 존재들이 침묵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페이린을 뜯어 말리던 모습은 온대 간데없었다. 온몸을 휘감는 범접하지 못하는 살기에 페이린은 물론, 라나까지 움찔 거렸다.

케실리온의 이마에서는 한줄기의 피 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주위에는 매직 애로우가 넘실넘실 춤을 추듯 주위를 회전하고 있었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은 지 오래였다. 로브 자락은 이미 넝마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건, 20분 전의 모습으로 돌아 갈수 있다.

*         *        *

“페이린님,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생각이십니까. 곧, 축제가 시작된다고요.”

케실리온은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는 페이린을 뜯어 말리고 있었다. 옆의 라나는 이미, 알코올에 몸이 달아올랐던 것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어차피 메인이벤트는 결승전 아니겠어?”

“역시 마음에 드는 군! 한나, 맥주 좀 더 가져와.”

아까의 그 용병이다. 아까부터 시작된 술의 축제에 페이린과 그 용병은 부어라 마셔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별다른 탈은 없었지만, 목적의 요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장사가 잘되 기쁜 것인지, 한나라는 종업원은 사뿐 거리는 걸음으로 술을 나르고 있었다. 게다가, 술집은 어느새 절정에 달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축제에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와장창!

한나의 실수였을 까? 가득 채워져 있던 술잔에서 술이 쏟아지며, 손님의 온 몸을 적셔버렸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거칠게 한나의 따귀를 때리며, 로브를 털며 인상을 찌푸렸다.

짜악!

“뭐야, 이 중등 품도 못되는 계집이!”

검은 로브에서 노란 맥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따귀를 맞았기 때문인지 한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 뱉을 뿐이었다.

갑자기 살벌해진 분위기에 케실리온은 살짝 몸을 떨었다. 검은 로브를 떠올리자,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엄마와 자신을 농락했던, 노예상인들이 떠오르자, 여지없이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죄송합니다. 죄송...”

짜악!

“죄송? 죄송하면 다야? 이 로브가 얼마 짜린데!”

검은 로브의 사내는 죄송하다는 한나의 팔을 우악스럽게 낚아채고는 따귀를 연신 갈겼다. 주위의 용병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페이린과 같이 술을 마시던 용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은 로브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굳게 닫힌 입술을 보건데 화가 난 것 같았다.

“용병아저씨, 어디가 술 받아야지.”

“껄껄, 아가씨 기다리게....”

페이린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것인지, 술만 계속 찾고 있었다. 용병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은 로브의 사내를 둘러쌌다. 갑작스런 싸움에 술집에 있던 용병들과 모험가들은 숨을 죽이며 그들을 쳐다보며 술을 들이켰다.

“껄껄, 자네 미안하다는데 그만 용서하지 그러나.”

“뭐라고! 네가 뭔 참견이야.”

“조용히 해결하란 말일세. 여긴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야.”

최대한 화를 삭이는 것인지 용병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페이린과 술을 마시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다. 그리고 모습이었다. 꿈틀거리는 근육에 주위의 사람들을 휘파람을 부르며 용병의 모습에 감탄해 하고 있었다.

“낄낄,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검은 로브의 사내는 로브 자락을 살짝 들추며, 옆구리에 매어져 있는 검을 보였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둘러싼 채찍, 그리고 노예상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바인드 체인이 묶여 있었다.

“노예상인? 껄껄...아직도 노예상인이 눈에 띠다니. 그냥 조용히 술이나 마시게. 더 이상 일을 크게 벌리지 말게.”

오랜 용병생활을 했던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살짝 그를 다독였지만 화를 더욱 내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거칠게 검을 뽑아 들고는 용병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용병 물 꾀나 먹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되지. 난 아직 화가 덜 풀렸어.”

챙!

잠자코 있던 노예상인들의 무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여긴 엄연히 공작령이다. 함부로 날뛴다면 공작령의 경비병들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을 뽑아드는 대담함에 용병들은 침을 삼켰다.

“우...우우우우!”

주위의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용병들의 모습에 야유를 보냈다. 수도 딱 맞는 것인지 4 대 4, 페이린과 술을 마시던 녀석이 용병들의 대장인지,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며, 검을 뽑았다. 투박하게 생긴 바스타드 소드였다.

많은 전투를 경험 한 것인지, 몸의 여기저기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들이 가득했고, 바스타드를 드는 투박한 손에는 굳은살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용병들의 대장이 검을 뽑았기 때문인지, 주위의 동료들도 분위기상 검을 뽑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페이린의 모습에 케실리온은 숨을 죽였다. 저들이 노예상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알 수 없는 느낌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온몸이 떨려왔던 것이다.

라나 역시,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케실리온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한나, 걱정하지 말고 멀리 떨어져.”

용병 대장의 투박한 말에 눈물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는 한나였다. 자신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갔다는 것을 알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쓰라린 뺨은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잘 모여 주는 모습이었다.

캉!!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술집에서는 칼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노예 상들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때리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용병들을 압도했다.

노예 상들도 엄연히 용병들이었다. 용병 계에서 쫓겨난 자들, 신뢰를 저버린 자들이 노예 상으로 뛰어드는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 상들의 성격은 악랄 했으며,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카캉!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티며, 검과 검이 부딪혔다. 서로 막상막하. 좁은 곳에서의 전투였던지, 금방 검은 효율성을 잃었고, 서로 주먹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피가 튀며, 주위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제법이군. 하지만 어림없다.” 

노예 상들의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며, 빠르게 용병들을 제압하기 시작했지만, 용병들도 여간내기가 아닌 듯이, 그들의 주먹을 피하며 복부와 얼굴을 집중 공격했다. 게다가, 의자는 물론, 탁자까지 내던지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개싸움의 형국이다.

“개자식!”

그때, 의자를 집어든 노예 상 중 하나가, 힘껏 용병대장에게 의자를 내 던졌다. 하지만 가벼운 몸짓으로 의자를 피한 용병대장은 꽉쥔 주먹을 녀석의 안면으로 꽂아 넣었다.

퍽!!

“아악...”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자, 노예 상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비명의 소리는 용병 대장의 뒤쪽에 있는 꼬마에게서 들려왔다. 의자에 부딪혔던지,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베어 나왔다.

모서리에 찍힌 것이다. 게다가, 의식을 잃어버린 것인지, 눈의 초점이 사라져 버렸다.

털썩...

“꼬마야! 컥...”

한눈파는 사이에 용병대장은 목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정신을 잃어 버렸다. 게다가, 다른 용병들도 당해 버린 것인지, 바닥에 쓰러져 약간씩 꿈틀 거리고 있었다.

“칫!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

한나의 따귀를 때리던, 노예 상이 거칠게 바닥에 침을 뱉고는 한나에게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처리 된, 용병들의 모습에 한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죄를 지었으면, 값아 야지...돈이 없다면 그 몸으로!”

다른 노예 상들도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버린 용병들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그들의 무위에 놀란 것인지 주위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주춤 거리며 술집에서 나가고 있었다.

“아...아..악!”

거칠게 휘어잡은 노예상은 한나를 질질 끌고는 테이블위로 내동댕이쳤다.

찌이익..

“흑...제발..”

우악스럽게 찢어지는 옷을 보며, 한나는 힘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라나는 그런 상황에 페이린은 불렀지만,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술에 절어, 몸도 가눌 수 없는 것인지 잠을 자는 것인지 짧은 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휘이이잉!!

순간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가 케실리온이라는 것을 눈치 챈, 라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의 축제, 소년이여 마법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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